무사도 정신은 근대에 만들어진 날조로 밝혀져.
무사도는 전쟁 미화할려고 창작해낸 애국심 고취용 단어
중앙일보 "일본의 무사도 정신은 뻥이다"
1957년에 나온 영화 ‘콰이강의 다리’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희 놈들이 부시도(武士道)에 대해 뭘 알아!”
일본군 포로수용소장 사이토 대령이 영국군 포로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작업을 거부하는 영국군 장교들을 사살하려는 장면에선 이런 말도 나온다.
“비무장한 사람을 살해하는 게 일본군의 행동규율(부시도)입니까?”
포로가 된 미국 군의관의 항의다. 이 말에 사이토가 움찔한다. 영화 내내 사이토는 부시도로 무장한 일본 군인으로 묘사된다.
사이토가 보여주려던 부시도는 사무라이, 즉 무사계급의 규율이자 윤리다. 충의, 예절, 용기, 명예, 신의, 검약을 중시한다. 일본인들의 자긍심이 응축된 정신세계로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일본인 특유의 미학으로 포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너무 빠져들진 말자. 그걸 진짜라고 믿는다면 순진하다. 부시도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실체가 아니다. 신화나 상징 조작에 가깝다. 심하게 말해 ‘뻥’이라 할 수도 있다.
부시도를 처음 체계화한 이는 일본의 농학자이자 교육자인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1862~1933)다. 미국과 독일에서 수학했고, 미국 여성과 결혼했으며,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일본 근대의 국제적 지식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그의 초상은 5000엔짜리 지폐에 사용됐다. 그가 1899년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한 책이 『BUSHIDO:The Soul of Japan』이다.
서문엔 집필 동기가 간단히 나온다. 그는 “종교교육을 하지 않는 일본에선 도덕을 어떻게 가르치는가”라는 벨기에 학자의 질문에 답이 궁해진 적이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본 결과 그는 일본의 부시도 정신이야말로 일본인의 도덕규범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에도 제대로 된 도덕과 윤리 체계가 있다, 서양에 기사도가 있듯이 일본엔 부시도가 있다…. 그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책을 썼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서양의 기사도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참고로 어릴 때 어렴풋이 듣던 유교적 덕목이나 사무라이 전설들을 버무려 만든 것이었다. 니토베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는 얘기다. 부시도라는 게 정말 일본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면, 왜 하필 사무라이의 시대가 끝난 뒤에야, 그것도 서양물 먹은 청년의 손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쓰였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인은 모두 부시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서양인도 많았다. 서양에서 유명해지자 곧 일본어로도 번역됐다. 부시도가 일본에 역수입된 게 바로 그때였다. 그 뒤 부시도는 일본인의 의식 속에 자기네 고유의 도덕규범이나 미덕으로 각인됐다. 때마침 불어 닥친 군국주의 바람도 집단최면을 거든 듯하다. 이거, 일본에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굳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도 부시도는 일본인의 의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보수층이 중시한다. 국격을 높이자, 국민의식을 고양시키자, 하는 논의에서 꼭 나오는 게 부시도의 함양이다. 굴절된 자아도취다.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때 방위청 간부가 “부시도 나라의 기개를 보여주라”고 훈시한 적도 있다. 코미디다.
니토베는 자신의 책에서 ‘용맹과감한 페어플레이 정신’으로서 ‘의(義)’를 부시도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부시도를 숭상하던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보면 부시도가 허구였다는 게 잘 드러난다. 지금의 보수우익도 마찬가지다.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인색한 그들에게 도대체 부시도의 풍모를 찾을 수 있는가. 원래 없었던 것이니 찾을 수가 없는 거다.
일본의 보수우익은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아직도 아쉬운 내용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자학적 역사관’으로 매도한다. 부시도를 숭앙하는 보수세력일수록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침략을 반성하기보다 패전을 반성한다. 이러니 무사의 체취를 느끼기는커녕 무책임하고 비겁하고 얍삽해 보이는 거다. 부시도를 (말로만) 숭상하는 일본의 보수우익들이여, 니토베의 책은 아예 찢어버려라.
【中央日報コラム】日本の「武士道精神」は誇張(はったり)だ、新渡戸の本は破り捨ててしまえ[08/18]
- 1 :はらぺこφ ★:2010/08/18(水) 17:50:04 ID:???
- 1957年の映画「The Bridge on the River Kwai」にはこういうセリフが出
てくる。「お前らのような奴に武士道のことが分かるか!」。日本軍捕虜収容所長の斎藤大佐が英国軍捕虜に
吐いた言葉だ。
作業を拒否する英国軍将校を射殺しようとする場面ではこういう言葉も出てくる。「非武装の人間を殺害する
のが日本軍の行動規律(武士道)ですか?」。捕虜になった米国軍医官の抗議だ。 この言葉に斎藤はびくっ
とする。 映画の終始、斎藤は武士道で武装した日本軍人として描写される。
斎藤が見せようとした武士道は侍、すなわち武士階級の規律であり倫理だ。 忠義、礼節、勇気、名誉、信義、
倹約を重視する。 日本人の自負心が凝縮された精神世界に拡大解釈されたりもする。 日本人特有の美学とし
て包装する人もいる。
しかし深入りはしないでおこう。 それを本当だと信じれば純粋だ。 武士道は歴史的事実を根拠とする実体で
はない。 神話や象徴操作に近い。 ひどく言えば‘はったり’ともいえる。
武士道を初めて体系化したのは日本の農学者であり教育者の新渡戸稲造(1862-1933)だ。 米国と
ドイツで修学し、米国人女性と結婚し、国際連盟事務次長を務めた日本近代の国際的知識人だ。 熱心なキリ
スト教信者でもあった。 数年前まで新渡戸の肖像は5000円紙幣に使われていた。 新渡戸が1899年に
米国で英語で出版した本が『BUSHIDO:The Soul of Japan』だ。
序文には執筆の動機が簡単に出てくる。 新渡戸は「宗教教育をしない日本では道徳をどう教えるのか」という
ベルギー人学者の質問に対し、返答に窮したことがあった。 つくづく考えた結果、新渡戸は日本の武士道精神
こそが日本人の道徳規範だという結論に達した。 日本にもしっかりとした道徳・倫理体系がある、西洋に騎士
道があるように日本には武士道がある…。 新渡戸はこうしたメッセージを伝えようという強い思いを抱いて本
を書いた。
もっともらしく見えるが、実は西洋の騎士道や「ノブレスオブリージュ」を参考に、幼い頃に少し聞いた儒教的
徳性や侍伝説を混ぜ合わせて作ったものだった。 新渡戸の想像力の産物だったということだ。 武士道という
ものが本当に日本の伝統として受け継がれてきたとすれば、何故よりによって侍の時代が終わった後に、しか
も西洋の空気を吸った青年の手で、米国で英語で先に書かれたのか。
ところがこの本が出ると、米国はもちろん欧州でもベストセラーになった。 日本人はみんな武士道に基づいて
行動するものと錯覚する西洋人も多かった。 西洋で有名になると、すぐに日本語にも翻訳された。 武士道が
日本に逆輸入されたのがまさにこの時だった。 その後、武士道は日本人の意識の中に自分たち固有の道徳規範
や美徳として刻印された。 ちょうど吹き荒れていた軍国主義の風も集団催眠を手伝った。 これは日本でも知る
人はみんな知っている。 敢えて持ち出して話さないだけだ。
今でも武士道は日本人の意識で重要な比重を占める。 特に保守層が重視する。 国格を高めよう、国民意識を
高揚させようという議論で必ず出てくるのが武士道の涵養だ。 屈折した自我陶酔だ。 自衛隊を海外に派遣す
る時、防衛庁の幹部が「武士道の国の気概を見せよう」と訓示したこともあった。 コメディーだ。
新渡戸は自分の本で「勇猛果敢なフェアプレー精神」として「義」を武士道の基本と考えた。 しかし武士道
を崇敬していた日本軍国主義の蛮行を見れば、武士道が虚構だったことがよく表れている。 今の保守右翼も
同じだ。 侵略戦争に対する反省と謝罪を惜しむ人たちのどこに武士道の風貌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か。 元々
なかっただけに見えないのだ。
日本の保守右翼は菅直人首相が韓日強制併合100年を迎えて発表した談話に反発しているという。 私たち
には今でも惜しまれる内容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だ。 彼らは侵略戦争に対する反省を「自虐的歴史観」と罵倒
する。 武士道を崇める保守勢力であるほど過去の過ちを認めない。 侵略を反省するより敗戦を反省する。
これだから武士の体臭を感じるどころか、無責任で卑怯でずるく見えるのだ。 武士道を(言葉でのみ)崇める
日本の保守右翼たちよ、新渡戸の本はいっそのこと破り捨ててしまえ。
中央日報 2010/08/18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132223&servcode=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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