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환상
돈에 물든 교육과 비판적 지성의 죽음
크리스 헤지스1)
경제파탄에서부터,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붕괴, 보편의료보험의 부재, 중동에서 겪고 있는 제국주의 군대의 패주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다방면의 실패들은, 영리한 엘리트 계층을 생산하고 지탱하는 교육기관들 탓인지도 모른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토론토대학교, 파리정치학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엘리트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에서는 기껏해야 보통 수준밖에 안되는 교육만 실시하고 있다. 대신에 그들은 표준화된 시험, 심화학습활동, 입시를 위한 우등반 수업인 AP클래스, 고액개인교습, 호화로운 사립학교, 입학시험, 권위에 대한 맹종과 같은 거름망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여, 유능한 체제 관리자 집단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세계경제 붕괴에 대한 책임은 하버드와 MIT가 있는 케임브리지, 예일대학이 있는 뉴헤이븐, 토론토, 파리 등의 정갈한 건물과 강의실에서 금융과 정치권력의 중심지로 곧장 연결된다.
엘리트 대학들은 정직한 지적 탐구를 경멸한다. 그것은 본질상 권위를 의심하고, 지독히 독립적이며, 종종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엘리트 대학들은 세세하게 분화된 학과, 한정된 대답, 그런 대답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엄격한 체계를 중심으로 학문을 조직한다. 이 교육기관들이(경제·정치·사회적으로) 따르는 기존의 기업위계(corporate hierarchies)는, 규제 없는 자유시장을 최우선시한다는 분명한 기준과 고도로 전문화된 용어를 숭배한다. '전문가'이 상징이자 엘리트의 표지이기도 한 이런 용어는 보편적 이해를 방해한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의 불쾌한 질문을 막아내며, 공익을 추구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학과, 교수진, 학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을 잘게 썰어, 작고 전문화된 파편들로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자족적인 영지 안에 숨게 하고, 매우 긴급한 도덕·정치·문화 문제들을 놓치게 만든다. 이 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데니스 쿠치니크, 랄프 네이더 같은 사람들은 과소평가되고 주류 논쟁에서 배제된다. 이 엘리트 대학들은 자기비판을 멀리해왔다. 그들은 자기정당화 체계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조직, 테크놀로지, 사리추구, 정보시스템뿐이다.
1967년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이란 논문을 썼다.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도덕 타락은 "대체로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으며, 우리는 "사람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메커니즘들"을 교육을 통해 밝히고, 조사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학교는 기술 이상의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는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든 또다른 아우슈비츠가 생길 수 있다. "모든 정치교육은 궁극적으로 아우슈비츠가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그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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