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찬문화연구소 | <2012년 10월 7일> 독서연찬회 풍경 - 사람과 사람, 친한사이에 대하여...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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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독서연찬회 풍경 - 사람과 사람, 친한사이에 대하여...|독서연찬
맑은공기|조회 97|추천 0|2012.10.10. 15:02http://cafe.daum.net/nshumanschool/W0Aq/2
<2012년 10월 7일 저녁 7시 논실마을학교 독서연찬회> 풍경
어제 처음 ‘사람의 본성에 맞는 사회’라는 책으로 독서연찬회를 시작했습니다. 열 두 분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과 인사를 하고 어떤 분이 ‘인간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왔다고 참가 동기를 이야기 했습니다. 예습도 복습도 필요 없이 언제라도 참가하여 가볍게 읽고 나누는 즐거운 자리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어제 나눈 이야기들을 요약해서 올려봅니다. 다시 생각하니 곱씹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강독>
정다운 사회
혼잣말
오늘 밤도 가족이 모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며, 즐기고 있다.
우리 집은 이 지역 스즈카의 케이블 테레비, 지상파 디지털 방송. 근처의 가전 양판점에서 새벽녘부터 줄서서 산 파나소닉의 비에이라. 큰 화면에 아주 멋지다. 나는 PC 삼매. 블로그에 트위터에 스카이프. 유튜브로 블루스 뮤지션의 라이브 영상을 보는 것이 좋다.
「무엇 무엇을 갖고 싶다」 「어디 어디에 가고 싶다」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라고 자기 안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지만, 현대인의 욕구는, 거의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부터의 정보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돈을 갖고 싶다고 하는 사람 많지만, 진짜 진짜 본심은, 돈을 갖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싫다, 싫은 사람이다, 가끔 밉다든가. 그렇지만, 진짜 진짜 본심은, 싫은 사람이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울거나 화내거나 싸우거나 걱정하거나 참거나 노력하거나, 왠지, 진짜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있다.
인간은 애처롭다.
자신을 묶어 두고, 가능한 한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갸륵한 모습.
지구를 운동장으로 삼아 온 세상의 사람이, 빵 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한 웃기는 모습.
험로 난관 장애물을 만들고, 악전고투 하는 인생 게임에, 보람을 느끼고 있을까.
사실은, 괴롭지 않은 어렵지 않은 무섭지 않은 길을 좋아하는데····
어릴 적의 쉬운 길을 잊어 버린 것 일까.
아들이 어렸을 때, 둘이서 이른 아침 드라이브를 했다.
아침 해를 받으면서.
아들은 「와 저것 봐- 햇님이 굉장히 빨라」
나는 그 귀여움에 감동-.
자신을 소중히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소중히 하고 싶어진다.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을 좋아하고 좋아해서···.
어떤 동물보다 인간을 제일 좋아해.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람 중에 있기 때문에 안심이 있다.
( 2011년 1월 )
<대화>
-‘돈을 갖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본심은, 돈을 갖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요? 돈을 갖고 싶은 것은 본심이 아닐까요?
-태어날 때에는 그런 게 없는데 살아가면서 돈 욕심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요? 본성이 아니었는데 살아가면서 돈이 필요하니까?
-저자가 돈에 맛을 못 본 것 아닐까? 돈의 맛을 보면 생각이 들려질 겁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그랬는데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되려면 약 30억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30억 정도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돈이라는게 없어도 편했는데 쓸 일이 있으니까 필요하게 되니까 돈이 쓸 일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물물교환?
-‘그 사람은 싫다, 싫은 사람이다. 가끔 밉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본심은, 싫은 사람이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떻게 생각해요?
-싫은 거와 미운 거는 다른가요?
-이유가 없는 것은(관심도 없고) 싫은 것이고 미워하는 것은(관심도 있고)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경상도에서 살 때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유도 없이 싫어하니까 소통이 안 됩니다.
-말 그대로 혼잣말이니까 독백입니다. 이 사람의 관점이지요? 본심으로는 싫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들었을 때 납득이 갑니까?
-싫은 사람 있거든요, 그런데 미워하거나 싫어하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합리화하는 핑계거리를 생각합니다. 그런 걸로 보면 싫어하는 감정은 겉에 들어나는 표면이고 진짜 본심은 다른 것이 아닐까요?
-내가 싫어하는 사람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면성을 가지고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비폭력 대화법에서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의 표현이다라는 말을 생각해봅니다. 어떤 사람이 싫어질 때 그 사람이 싫은 게 내 어떤 충족되지 않는 욕구의 표현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와이프와 관계에서 보면 와이프가 나에게 냉소적일 때 내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물어봤는데 왜 자꾸 짜증을 내냐고 하면 힘들어서 그런다고 합니다. 내가 싫어서가 아닌거지요~ 그래서 머리로는 싫다는 것이 아닌지 알지만 그래도 막상 닥치면 싫어집니다.
-싫은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싫은 것은 아니고 만나기 전에 선입견 때문에 싫다가 관계에서는 입장차이가 커지니까 싫어지는 것 같아요~ 사회적 관계를 빼고 보면 이해가 가는데 사회적 관계 안에서 보면 싫어집니다.
-싫고 이런 게 상대방과 단절되니까 그런가요?
-단절되면 그래도 괜찮은데 계속 같이 해야 하니까요~
-여기서 본심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본심이 뭘까요? 누군가 싫거나 미워하면 자기가 힘들다. 불가에서 팔고 중에 하나가 미운 사람을 만나거나 좋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그렇습니다. 본심은 결국 자유롭고 즐거운 상태가 아닐까요? 진짜 본심은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면 자기가 힘들어지니까 그런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까 합니다. 본심이라는 게 뭘까요?
-누구를 미워하면 부자유스럽고 불편하니까 본심이 아닙니다. 본심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왜 사람을 싫어하게 될까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봅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왜 생길까요? 자기 만의 틀에 다른 사람을 끼워놓으려고 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 합니다. 틀에 맞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싫고...그런 쪽으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니 재밌네요~ 어떤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싫은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데 그러면 나는 싫은 사람일까요?
-싫고 좋고가 자기 틀에 맞춰서 그런다고 하는데 아침, 점심, 저녁이 좋다가 인 좋아 졌다가 하는데 그러면 틀이 막 변하는 것인가요?
-사람 마음이 변하니까 틀도 변하는 건 아닐까요? 틀이 변해야 마음이 변해지니까요~
-어머니가 아파서 도와드렸는데 처음에는 고생하는 어머니하고 좋은 기분이 드는데 아침에 일어나라고 하고 너는 왜 그러냐 하면 싫어지고 또 자식 자랑을 하면 좋다가 또 미워지고 그러는데 근데 내가 어머니에 대한 틀이 변하는 건가요?
-사람들이 힘드니까 관념 조작을 많이 합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이런 게 틀리다거나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표층의식에서 관념을 조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짜는 뭐냐면 관념 조작을 안해도 싫은 사람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싫은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좋은데 보통은 싫은 사람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이 책 속에 더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마지막 문장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 중에 있기 때문에 안심이 있다.”
-사람과 있으니까 안심되잖아요?
-글쓴이의 의도는 혼자가 아니어서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속에 있어서 염려가 덜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공자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사람들 속에서 사람하고 함께 살아야지 누구와 살겠는가? 사람들 속에 있어야 안심이 있다. 근데 싫은 사람이 있으니까 힘들어진다. 진짜 안심이 되려면 미운사람이나 싫은 사람이 없으면 됩니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식들이 안심이 됩니다. 학교라는 곳도 아이들이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왕따도 당하지 폭력도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학교에가면 안심이 되나요?
-머리가 아파요~
-여기에 나와 있네요 ‘울거나 화내거나 싸우거나 걱정하거나 참거나 노력하거나’...학교에 가면 이래요~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을 봤는데 주인공이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서워 산사람이 무섭지 그러는데 관객들이 모두 공감을 합니다. 지금 사회가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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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제1장 정다운 사회의 기본
1. 사람과 사람
사회라고 하는 것은, 복수(複數)의 사람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으로, 한사람으로는 사회로는 되지 않습니다. 또,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점에서 인간을 사회적동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사회에는 복수(複數)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만, 복수(複數)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고, 복수(複數)의 사람이 서로 관계해가면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해서」말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란, 어떤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관점으로부터 얘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주위에 사람이 있는 까닭에, 태어나서 곧,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깊다 얕다, 진하다 엷다, 친하다 친하지 않다 등 있습니다만, 이것은 물리적(物理的)인 것이 아닌, 심정(心情)이나 기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겠지요.
물리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반드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이나 이웃에 살고 있다고 해서 꼭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통근통학(通勤通學)의 만원전철에서, 매일 딱 붙어있다고 해서 친한 것은 아니겠지요.
혈연(血緣)은 물리적인 관계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혈연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깊음이나 가까움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예를 들면, 낳아준 어머니라고 해도 그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친숙함도 정(情)도 솟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요. 혈연의 가까움=관계의 짙음, 애정의 깊음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태어난 직후에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라도 동등(同等)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져서 자란다면, 그 사람이 가장 가깝고 친한 사람이 되겠지요. 즉 바꿔 말하면, 사람은, 어떤 사람하고도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 런지요.
부모형제와 쭉 같이 살고 있어도 친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친하게 될지 안 될지는 환경적인 요소(要素)나 여러 가지 체험, 가치관의 차이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환경이나 기회(機會), 사고(思考)의 변화 등에 의해서, 어떤 사람하고도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연애(戀愛)나 결혼은,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사람이, 가장 친한 관계가 된다고 하는 현저(顯著)한 예입니다. 또, 활동이나 생활을 같이 하는 것에 의해서, 부모자식 형제이상의 매우 친한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지요.
<대화>
-결혼하는 것을 보면 기적같아요~ 나는 전라도고 처는 경상도입니다. 참 만난다는 것이 기적같은 일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구하고도 친해질 수 있는 증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만났으면 잘 살아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석 후에 이혼이 3배가 는다고 합니다.
-고부 갈등이나 남편과의 갈등도 그렇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부부간의 갈등이 되기도 합니다.
-요 단락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환경이나 기회, 사고의 변화 등에 의해 어떤 사람하고도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쓰여 있는데 환경도 중요합니다. 특히 교육 환경도 중요한 요소 같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이좋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뭐가 있을까 환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고의 변화, 우리가 인문운동이 표방하는 것도 사고의 변화인데 환경만 변한다고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고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하고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되는 거는 사고가 다른 사람하고는 멀어지는 것 아닐까요? 사고가 변했는데 사고가 변했다고 멀어지면 생각이 다르거나 사고가 다르다는 것으로 인간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많이 보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고의 변화는 우주 자연의 이치에 맞는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한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닐까요. 공자도 받아들이는 것을 제일 강조합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실제로는 잘 안 받아 들여집니다. 이치에 맞는 사고가 뭐냐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부부가 하는 게 받아들이는 연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나서 연습하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선 만해도 어떨까요? 받아들이는 것은 성인군자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내가 못 받아들이는 것에서는 인식이 됩니다. 과학적으로만 보더라도 알게 됩니다. 내가 옳다는 사고법이 이치에 맞는 사고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연습을 마음 바탕으로부터 하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을 때 연습의 기회로 해서 하면 어떨까요? 부부는 스파링 파트너가 부부사이에 연습을 하다보면 나가서도 되는 것이 아닐까?
-연습하다가 실전이 됩니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것을 깨야 되는데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포기하거나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제 생각이 옳지 않은 것일까요?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는 생각이 아닐까요? 자기 머릿속의 생각이 어떻게 만둘어졌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부모, 학교, 혹은 인터넷 등의 정보를 툴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을 봐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가요?
-고정함 없이, 단정함 없이 되돌아 봄.
-시대적으로 그런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요? 사고법의 전환이랄까요?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로부터...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치에 맞는 사고법으로...
-현대인들의 욕구가 정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책에 쓰여있는데 여러 영향으로 만들어진 생각들이 마치 옳다라고 여겨지는 것. 그것에 의해서 관계라든지가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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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친한 사이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아버지, 형(오빠), 누나(언니), 할아버지, 할머니 등등, 사람과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가족이라든지 가정(家庭)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입니다만, 이것도 하나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우 친한 관계의 사람들입니다.친한 사람들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동시에, 대단히 안심상태(安心狀態)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경우에도,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반드시 혈연관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혈연관계의 부모형제가 아니라도, 가족이라든지 가정이라고 하는 가장 친한 관계, 안심상태(安心狀態)는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족이라고 하는 사이가 아니라도, 예를 들면, 근처의 사람들이 매우 친한 사이로, 가족처럼 대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근처의 아는 집에서 식사를 한다든지, 목욕한다든지, 묵기도 한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자란다면, 가족이외의 사람하고도 가족같이 친숙한 기분이나 안심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것과는 반대로, 가족이외의 사람하고는 서먹서먹하고, 마음써야하고, 염려나 사양이 필요한 관계의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친해진다든지 친해지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개인차도 있습니다만, 주위사람의 존재가, 「자기에게 있어 어떠한 사이의 사람인가」에 따른 것이겠지요. 바꿔 말하면, 주위사람들의 기풍(氣風)등으로부터 「친숙함이나 안심을 체험, 실감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하고 의식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요.
앞에서도 얘기했습니다만, 사람은 환경이나 체험에 의해서, 누구하고도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친숙한 인간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 안심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중대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사회의 중대요소(重大要素)이기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안심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네요. 마음이 편안한 상태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불안사회에서 안심사회로...
-농담을 했을 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안심이 되는데 흘겨보거나 하면 안심이 안됩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사회, 저희 부부가 처음에 야마기시를 나와서 해보려 했던 것이 서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웃들입니다. 귀농했다가 역귀농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웃과의 갈등이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 피해 살려면 대도시 아파트가 났습니다. 귀농하면 된통 걸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한사이가 안심이 되는 사회인가요?
-사람들과 친하게 되면 안심이 되는 것 아닌가요?
-친한게 뭔가요?
-너무 친해도 안됩니다. 거리가 중요 합니다.. 거리를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한 공식이 하나 있는데 ‘사람사이에 적당한 거리는 아집에 반비례한다’입니다. 아집이 강한 사람끼리는 거리가 떨어져야 합니다. 부부도 아집이 강한 사람들은 주말 부부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집 들이 엷어 져서 가까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부부가 힘든 요소 중에 하나가 너무 가깝다는 것입니다.
-관계에 거리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관계의 거리가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거리를 유지할 때 가장 편안해질 때 마음이 편해지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환경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의 생활공간이 달랐습니다. 남자는 사랑채, 여자는 안채로 다릅니다.
-아는 지인이 빵집을 하는데 부부가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그런데 그 사장의 소원이 아내하고 떨어졌다 만난다는 것입니다. 저도 실감이 나는데 직장에 헤어졌다 만나는 싸이클인데 몇 칠 늘 붙어 있다 보면 몇 건씩 터지는 것 같습니다.
-같이 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만나 살다보면 부딪히는데 그것이 조율이 되는 것 같습니다. 관계의 거리가 바로 조율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요? 조율이 되면 편안해 집니다.
-자연스러운 상태가 뭔가요? 저는 거리를 두는 편인데 그것을 상대방이 뚫고 올 때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교사는 노후가 걱정이 없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노후 대책이 없습니다. 복지라는 것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그것만 가지고 안심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마음 속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 산사음악회에 다녀왔는데 70~80먹은 사람들이 연주도 하고 시낭송도 합니다. 곱게 늙고 아집이 없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복지와 함께
-안심이 친한 사이가 있을 때 그런 것 같습니다. 힘든 사회에서 친한 사이가 있다는 것. 아이들 끼리의 어려움들을 한명이라도 친한 아이가 있으면 어려움이 가벼워지는 것 아닐까요? 사회도 그런게 아닐까요? 저희 어렸을 때 이웃집에서 밥먹고 자는게 자연스러웠는데 에즈원 커뮤니트에서 충격 받은 게 가족관계에서도 어려운 친한 관계들이 이웃과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학교도 안심할 수 있는 학교, 마을도 안심할 수 있는 마을~ 그런 사회를 마음 깊은 곳에서는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안심이라는 것이 불안 요소를 없애는 것인데...
-이야기 할 것이 강요되지 않는 사회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전에 연찬을 진행 할 때 불안 요소가 있습니다. 다 말하고 혼자 말 안했을 때 불안합니다. 이야기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환경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분위기 자체가 강요하는 분위기면 안심이 안 됩니다.
-안심과 긴장. 거리를 다른 표현으로 긴장은 어떨까? 긴장이 불안요소가 아니고 다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친한사이는 긴장이 없는 것일까요? 안심만 있는가요?
-친하면 긴장이 없지 않을까 부부가 긴장하고 살지 않잖아요
-너무 편하면 막하게 되는데 약간의 긴장은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정없는 사고도 긴장적인 사고가 아닐까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것이 조바심이 아닌 긴장이 아닐까? 안심에는 긴강의 요소는 없을까 생각되어졌습니다. 가족들하고도 친한 사이에서 좋은면 더 해주고 싶은데 뭘 해줘야 기쁠까 하는 생각은 긴장의 긍정적인 요소이고 긴장이 잘못 풀리면 대립으로 가지 않을까요?
-긴장이 몰입 같은 것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어떨까요?
-관계의 긴장감을 주고 받으면 서로 편한 것 아닐까?
-긴장이 아니라 관심아니 집중이 아닐까요?
-친한사이가 어떤걸까? 안심상태가 어떤 걸까? 고민되어서 이야기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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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웃음소리와 같은 것은 담지 못했네요~
말씀하신 분들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리되었더라도 그저 한사람의 참가자의 의견으로 생각해주세요~ 수요일 오후 신정식님과 콩밭에 들렀다가 어제 나눈 이야기를 다시 이것 저것 꺼내봅니다.
차를 만들 때 불안합니다. 지금은 구절초가 필 때 니까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꼭 안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불안이 없어졌습니다. 토론도 꼭 말을 해야 하거나 그런 불안감에서 벗어나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토론회니까 안심하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 신정식님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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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독서연찬회 풍경 - 사람과 사람, 친한사이에 대하여...|독서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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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저녁 7시 논실마을학교 독서연찬회> 풍경
어제 처음 ‘사람의 본성에 맞는 사회’라는 책으로 독서연찬회를 시작했습니다. 열 두 분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과 인사를 하고 어떤 분이 ‘인간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왔다고 참가 동기를 이야기 했습니다. 예습도 복습도 필요 없이 언제라도 참가하여 가볍게 읽고 나누는 즐거운 자리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어제 나눈 이야기들을 요약해서 올려봅니다. 다시 생각하니 곱씹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강독>
정다운 사회
혼잣말
오늘 밤도 가족이 모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며, 즐기고 있다.
우리 집은 이 지역 스즈카의 케이블 테레비, 지상파 디지털 방송. 근처의 가전 양판점에서 새벽녘부터 줄서서 산 파나소닉의 비에이라. 큰 화면에 아주 멋지다. 나는 PC 삼매. 블로그에 트위터에 스카이프. 유튜브로 블루스 뮤지션의 라이브 영상을 보는 것이 좋다.
「무엇 무엇을 갖고 싶다」 「어디 어디에 가고 싶다」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라고 자기 안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지만, 현대인의 욕구는, 거의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부터의 정보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돈을 갖고 싶다고 하는 사람 많지만, 진짜 진짜 본심은, 돈을 갖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싫다, 싫은 사람이다, 가끔 밉다든가. 그렇지만, 진짜 진짜 본심은, 싫은 사람이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울거나 화내거나 싸우거나 걱정하거나 참거나 노력하거나, 왠지, 진짜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있다.
인간은 애처롭다.
자신을 묶어 두고, 가능한 한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갸륵한 모습.
지구를 운동장으로 삼아 온 세상의 사람이, 빵 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한 웃기는 모습.
험로 난관 장애물을 만들고, 악전고투 하는 인생 게임에, 보람을 느끼고 있을까.
사실은, 괴롭지 않은 어렵지 않은 무섭지 않은 길을 좋아하는데····
어릴 적의 쉬운 길을 잊어 버린 것 일까.
아들이 어렸을 때, 둘이서 이른 아침 드라이브를 했다.
아침 해를 받으면서.
아들은 「와 저것 봐- 햇님이 굉장히 빨라」
나는 그 귀여움에 감동-.
자신을 소중히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소중히 하고 싶어진다.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을 좋아하고 좋아해서···.
어떤 동물보다 인간을 제일 좋아해.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람 중에 있기 때문에 안심이 있다.
( 2011년 1월 )
<대화>
-‘돈을 갖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본심은, 돈을 갖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요? 돈을 갖고 싶은 것은 본심이 아닐까요?
-태어날 때에는 그런 게 없는데 살아가면서 돈 욕심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요? 본성이 아니었는데 살아가면서 돈이 필요하니까?
-저자가 돈에 맛을 못 본 것 아닐까? 돈의 맛을 보면 생각이 들려질 겁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그랬는데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되려면 약 30억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30억 정도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돈이라는게 없어도 편했는데 쓸 일이 있으니까 필요하게 되니까 돈이 쓸 일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물물교환?
-‘그 사람은 싫다, 싫은 사람이다. 가끔 밉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본심은, 싫은 사람이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떻게 생각해요?
-싫은 거와 미운 거는 다른가요?
-이유가 없는 것은(관심도 없고) 싫은 것이고 미워하는 것은(관심도 있고)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경상도에서 살 때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유도 없이 싫어하니까 소통이 안 됩니다.
-말 그대로 혼잣말이니까 독백입니다. 이 사람의 관점이지요? 본심으로는 싫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들었을 때 납득이 갑니까?
-싫은 사람 있거든요, 그런데 미워하거나 싫어하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합리화하는 핑계거리를 생각합니다. 그런 걸로 보면 싫어하는 감정은 겉에 들어나는 표면이고 진짜 본심은 다른 것이 아닐까요?
-내가 싫어하는 사람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면성을 가지고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비폭력 대화법에서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의 표현이다라는 말을 생각해봅니다. 어떤 사람이 싫어질 때 그 사람이 싫은 게 내 어떤 충족되지 않는 욕구의 표현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와이프와 관계에서 보면 와이프가 나에게 냉소적일 때 내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물어봤는데 왜 자꾸 짜증을 내냐고 하면 힘들어서 그런다고 합니다. 내가 싫어서가 아닌거지요~ 그래서 머리로는 싫다는 것이 아닌지 알지만 그래도 막상 닥치면 싫어집니다.
-싫은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싫은 것은 아니고 만나기 전에 선입견 때문에 싫다가 관계에서는 입장차이가 커지니까 싫어지는 것 같아요~ 사회적 관계를 빼고 보면 이해가 가는데 사회적 관계 안에서 보면 싫어집니다.
-싫고 이런 게 상대방과 단절되니까 그런가요?
-단절되면 그래도 괜찮은데 계속 같이 해야 하니까요~
-여기서 본심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본심이 뭘까요? 누군가 싫거나 미워하면 자기가 힘들다. 불가에서 팔고 중에 하나가 미운 사람을 만나거나 좋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그렇습니다. 본심은 결국 자유롭고 즐거운 상태가 아닐까요? 진짜 본심은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면 자기가 힘들어지니까 그런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까 합니다. 본심이라는 게 뭘까요?
-누구를 미워하면 부자유스럽고 불편하니까 본심이 아닙니다. 본심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왜 사람을 싫어하게 될까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봅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왜 생길까요? 자기 만의 틀에 다른 사람을 끼워놓으려고 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 합니다. 틀에 맞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싫고...그런 쪽으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니 재밌네요~ 어떤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싫은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데 그러면 나는 싫은 사람일까요?
-싫고 좋고가 자기 틀에 맞춰서 그런다고 하는데 아침, 점심, 저녁이 좋다가 인 좋아 졌다가 하는데 그러면 틀이 막 변하는 것인가요?
-사람 마음이 변하니까 틀도 변하는 건 아닐까요? 틀이 변해야 마음이 변해지니까요~
-어머니가 아파서 도와드렸는데 처음에는 고생하는 어머니하고 좋은 기분이 드는데 아침에 일어나라고 하고 너는 왜 그러냐 하면 싫어지고 또 자식 자랑을 하면 좋다가 또 미워지고 그러는데 근데 내가 어머니에 대한 틀이 변하는 건가요?
-사람들이 힘드니까 관념 조작을 많이 합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이런 게 틀리다거나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표층의식에서 관념을 조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짜는 뭐냐면 관념 조작을 안해도 싫은 사람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싫은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좋은데 보통은 싫은 사람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이 책 속에 더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마지막 문장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 중에 있기 때문에 안심이 있다.”
-사람과 있으니까 안심되잖아요?
-글쓴이의 의도는 혼자가 아니어서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속에 있어서 염려가 덜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공자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사람들 속에서 사람하고 함께 살아야지 누구와 살겠는가? 사람들 속에 있어야 안심이 있다. 근데 싫은 사람이 있으니까 힘들어진다. 진짜 안심이 되려면 미운사람이나 싫은 사람이 없으면 됩니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식들이 안심이 됩니다. 학교라는 곳도 아이들이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왕따도 당하지 폭력도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학교에가면 안심이 되나요?
-머리가 아파요~
-여기에 나와 있네요 ‘울거나 화내거나 싸우거나 걱정하거나 참거나 노력하거나’...학교에 가면 이래요~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을 봤는데 주인공이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서워 산사람이 무섭지 그러는데 관객들이 모두 공감을 합니다. 지금 사회가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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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제1장 정다운 사회의 기본
1. 사람과 사람
사회라고 하는 것은, 복수(複數)의 사람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으로, 한사람으로는 사회로는 되지 않습니다. 또,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점에서 인간을 사회적동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사회에는 복수(複數)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만, 복수(複數)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고, 복수(複數)의 사람이 서로 관계해가면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해서」말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란, 어떤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관점으로부터 얘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주위에 사람이 있는 까닭에, 태어나서 곧,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깊다 얕다, 진하다 엷다, 친하다 친하지 않다 등 있습니다만, 이것은 물리적(物理的)인 것이 아닌, 심정(心情)이나 기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겠지요.
물리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반드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이나 이웃에 살고 있다고 해서 꼭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통근통학(通勤通學)의 만원전철에서, 매일 딱 붙어있다고 해서 친한 것은 아니겠지요.
혈연(血緣)은 물리적인 관계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혈연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깊음이나 가까움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예를 들면, 낳아준 어머니라고 해도 그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친숙함도 정(情)도 솟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요. 혈연의 가까움=관계의 짙음, 애정의 깊음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태어난 직후에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라도 동등(同等)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져서 자란다면, 그 사람이 가장 가깝고 친한 사람이 되겠지요. 즉 바꿔 말하면, 사람은, 어떤 사람하고도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 런지요.
부모형제와 쭉 같이 살고 있어도 친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친하게 될지 안 될지는 환경적인 요소(要素)나 여러 가지 체험, 가치관의 차이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환경이나 기회(機會), 사고(思考)의 변화 등에 의해서, 어떤 사람하고도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연애(戀愛)나 결혼은,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사람이, 가장 친한 관계가 된다고 하는 현저(顯著)한 예입니다. 또, 활동이나 생활을 같이 하는 것에 의해서, 부모자식 형제이상의 매우 친한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지요.
<대화>
-결혼하는 것을 보면 기적같아요~ 나는 전라도고 처는 경상도입니다. 참 만난다는 것이 기적같은 일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구하고도 친해질 수 있는 증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만났으면 잘 살아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석 후에 이혼이 3배가 는다고 합니다.
-고부 갈등이나 남편과의 갈등도 그렇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부부간의 갈등이 되기도 합니다.
-요 단락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환경이나 기회, 사고의 변화 등에 의해 어떤 사람하고도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쓰여 있는데 환경도 중요합니다. 특히 교육 환경도 중요한 요소 같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이좋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뭐가 있을까 환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고의 변화, 우리가 인문운동이 표방하는 것도 사고의 변화인데 환경만 변한다고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고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하고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되는 거는 사고가 다른 사람하고는 멀어지는 것 아닐까요? 사고가 변했는데 사고가 변했다고 멀어지면 생각이 다르거나 사고가 다르다는 것으로 인간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많이 보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고의 변화는 우주 자연의 이치에 맞는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한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닐까요. 공자도 받아들이는 것을 제일 강조합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실제로는 잘 안 받아 들여집니다. 이치에 맞는 사고가 뭐냐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부부가 하는 게 받아들이는 연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나서 연습하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선 만해도 어떨까요? 받아들이는 것은 성인군자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내가 못 받아들이는 것에서는 인식이 됩니다. 과학적으로만 보더라도 알게 됩니다. 내가 옳다는 사고법이 이치에 맞는 사고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연습을 마음 바탕으로부터 하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을 때 연습의 기회로 해서 하면 어떨까요? 부부는 스파링 파트너가 부부사이에 연습을 하다보면 나가서도 되는 것이 아닐까?
-연습하다가 실전이 됩니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것을 깨야 되는데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포기하거나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제 생각이 옳지 않은 것일까요?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는 생각이 아닐까요? 자기 머릿속의 생각이 어떻게 만둘어졌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부모, 학교, 혹은 인터넷 등의 정보를 툴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을 봐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가요?
-고정함 없이, 단정함 없이 되돌아 봄.
-시대적으로 그런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요? 사고법의 전환이랄까요?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로부터...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치에 맞는 사고법으로...
-현대인들의 욕구가 정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책에 쓰여있는데 여러 영향으로 만들어진 생각들이 마치 옳다라고 여겨지는 것. 그것에 의해서 관계라든지가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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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친한 사이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아버지, 형(오빠), 누나(언니), 할아버지, 할머니 등등, 사람과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가족이라든지 가정(家庭)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입니다만, 이것도 하나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우 친한 관계의 사람들입니다.친한 사람들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동시에, 대단히 안심상태(安心狀態)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경우에도,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반드시 혈연관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혈연관계의 부모형제가 아니라도, 가족이라든지 가정이라고 하는 가장 친한 관계, 안심상태(安心狀態)는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족이라고 하는 사이가 아니라도, 예를 들면, 근처의 사람들이 매우 친한 사이로, 가족처럼 대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근처의 아는 집에서 식사를 한다든지, 목욕한다든지, 묵기도 한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자란다면, 가족이외의 사람하고도 가족같이 친숙한 기분이나 안심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것과는 반대로, 가족이외의 사람하고는 서먹서먹하고, 마음써야하고, 염려나 사양이 필요한 관계의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친해진다든지 친해지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개인차도 있습니다만, 주위사람의 존재가, 「자기에게 있어 어떠한 사이의 사람인가」에 따른 것이겠지요. 바꿔 말하면, 주위사람들의 기풍(氣風)등으로부터 「친숙함이나 안심을 체험, 실감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하고 의식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요.
앞에서도 얘기했습니다만, 사람은 환경이나 체험에 의해서, 누구하고도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친숙한 인간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 안심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중대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사회의 중대요소(重大要素)이기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안심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네요. 마음이 편안한 상태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불안사회에서 안심사회로...
-농담을 했을 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안심이 되는데 흘겨보거나 하면 안심이 안됩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사회, 저희 부부가 처음에 야마기시를 나와서 해보려 했던 것이 서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웃들입니다. 귀농했다가 역귀농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웃과의 갈등이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 피해 살려면 대도시 아파트가 났습니다. 귀농하면 된통 걸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한사이가 안심이 되는 사회인가요?
-사람들과 친하게 되면 안심이 되는 것 아닌가요?
-친한게 뭔가요?
-너무 친해도 안됩니다. 거리가 중요 합니다.. 거리를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한 공식이 하나 있는데 ‘사람사이에 적당한 거리는 아집에 반비례한다’입니다. 아집이 강한 사람끼리는 거리가 떨어져야 합니다. 부부도 아집이 강한 사람들은 주말 부부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집 들이 엷어 져서 가까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부부가 힘든 요소 중에 하나가 너무 가깝다는 것입니다.
-관계에 거리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관계의 거리가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거리를 유지할 때 가장 편안해질 때 마음이 편해지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환경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의 생활공간이 달랐습니다. 남자는 사랑채, 여자는 안채로 다릅니다.
-아는 지인이 빵집을 하는데 부부가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그런데 그 사장의 소원이 아내하고 떨어졌다 만난다는 것입니다. 저도 실감이 나는데 직장에 헤어졌다 만나는 싸이클인데 몇 칠 늘 붙어 있다 보면 몇 건씩 터지는 것 같습니다.
-같이 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만나 살다보면 부딪히는데 그것이 조율이 되는 것 같습니다. 관계의 거리가 바로 조율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요? 조율이 되면 편안해 집니다.
-자연스러운 상태가 뭔가요? 저는 거리를 두는 편인데 그것을 상대방이 뚫고 올 때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교사는 노후가 걱정이 없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노후 대책이 없습니다. 복지라는 것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그것만 가지고 안심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마음 속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 산사음악회에 다녀왔는데 70~80먹은 사람들이 연주도 하고 시낭송도 합니다. 곱게 늙고 아집이 없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복지와 함께
-안심이 친한 사이가 있을 때 그런 것 같습니다. 힘든 사회에서 친한 사이가 있다는 것. 아이들 끼리의 어려움들을 한명이라도 친한 아이가 있으면 어려움이 가벼워지는 것 아닐까요? 사회도 그런게 아닐까요? 저희 어렸을 때 이웃집에서 밥먹고 자는게 자연스러웠는데 에즈원 커뮤니트에서 충격 받은 게 가족관계에서도 어려운 친한 관계들이 이웃과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학교도 안심할 수 있는 학교, 마을도 안심할 수 있는 마을~ 그런 사회를 마음 깊은 곳에서는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안심이라는 것이 불안 요소를 없애는 것인데...
-이야기 할 것이 강요되지 않는 사회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전에 연찬을 진행 할 때 불안 요소가 있습니다. 다 말하고 혼자 말 안했을 때 불안합니다. 이야기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환경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분위기 자체가 강요하는 분위기면 안심이 안 됩니다.
-안심과 긴장. 거리를 다른 표현으로 긴장은 어떨까? 긴장이 불안요소가 아니고 다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친한사이는 긴장이 없는 것일까요? 안심만 있는가요?
-친하면 긴장이 없지 않을까 부부가 긴장하고 살지 않잖아요
-너무 편하면 막하게 되는데 약간의 긴장은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정없는 사고도 긴장적인 사고가 아닐까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것이 조바심이 아닌 긴장이 아닐까? 안심에는 긴강의 요소는 없을까 생각되어졌습니다. 가족들하고도 친한 사이에서 좋은면 더 해주고 싶은데 뭘 해줘야 기쁠까 하는 생각은 긴장의 긍정적인 요소이고 긴장이 잘못 풀리면 대립으로 가지 않을까요?
-긴장이 몰입 같은 것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어떨까요?
-관계의 긴장감을 주고 받으면 서로 편한 것 아닐까?
-긴장이 아니라 관심아니 집중이 아닐까요?
-친한사이가 어떤걸까? 안심상태가 어떤 걸까? 고민되어서 이야기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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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웃음소리와 같은 것은 담지 못했네요~
말씀하신 분들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리되었더라도 그저 한사람의 참가자의 의견으로 생각해주세요~ 수요일 오후 신정식님과 콩밭에 들렀다가 어제 나눈 이야기를 다시 이것 저것 꺼내봅니다.
차를 만들 때 불안합니다. 지금은 구절초가 필 때 니까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꼭 안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불안이 없어졌습니다. 토론도 꼭 말을 해야 하거나 그런 불안감에서 벗어나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토론회니까 안심하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 신정식님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