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2

121127 독서연찬회 -정다운 사회의 시도 - Daum 카페

121127 독서연찬회 -정다운 사회의 시도 - Daum 카페

<11월 27일> 독서연찬회 -정다운 사회의 시도|독서연찬

맑은공기|조회 70|추천 0|2012.11.29. 13:02http://cafe.daum.net/nshumanschool/W0Aq/8

27일에는 10분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장 정다운 사회를 다 읽고 이제 2장 에즈원 커뮤니티의 다양한 활동들을 읽었습니다. 꼭지 하나 하나 읽으면서 그때 그때 이야기 되는 방식이어서 녹취가 쉽지가 않아 본문만 올립니다. ㅋㅋㅋ

찐고구마를 김장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으면서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의 것을 모두 내놓고 인생을 하나의 실험으로 살아가는 에즈원 커뮤니티 분들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좀더 가까이 살고 싶어 집을 옮기기도 하고 자유의 기풍을 바탕으로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회를 성립시키는 바탕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성립의 바탕에는 어떤 사회관과 인간관이 있는가? 생각해 볼게 많은 테마들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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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정다운 사회의 시도

1. 에즈원 커뮤니티

O 시작

커뮤니티의 시작은 2000년 말부터 2001년 초에 걸친 일로서, 마침, 20세기로부터 21세기로 바뀌는 때 였습니다. 정말로 사이좋게 친하게, 누구나가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뜻있는 이들이 모여 이 활동은 시작되었습니다. 장소는, 미에현(三重縣)의 스즈카시(鈴鹿市)입니다.

에즈원 커뮤니티라고 하는 명칭은 최근에 붙인 것으로, 그렇게 부르게 된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애초에는 명칭도 없이,「하나의 사회의 시도」라거나 뭔가라고 말하고 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격의(隔意)나 경계(境界)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반목(反目)이나 대립(對立)이 없는, 규모는 작아도, 가족과 같이 친근하고 다정한 사회를 실현(實現)하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O 스즈카(鈴鹿)로

우선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은 계기로 몇 명의 뜻있는 사람들이「새로운 사회의 시도를 하나에서부터 해보자」하고, 우연히, 이제까지 관계도 인연도 없는 이 미에현(三重縣) 스즈카(鈴鹿)의 땅에 모였습니다.

그 이전부터,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모임은 이루어져오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앞으로의 사회나 각자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의(討議)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임이 유지(有志)에 의해 스즈카(鈴鹿)에서 행해지게끔 되자, 그것을 듣고 각지로부터 참가자가 생겼고, 그 참가자 안에서 「새로운 사회의 시도」를 같이 해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잇달아 나타나서, 스즈카(鈴鹿)로 옮겨 와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기세는 상당한 것 이었는데, 각자 이제까지의 직업이나 사는 집을 그만두고 정리하여, 이 활동에 전부를 걸고 하는 것이어서,각자의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하며 큰 결단을 내리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1년(2001년) 동안에 50세대 이상이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O 사는 집

이렇게 해서, 각자의 신천지(新天地)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는데, “이 활동을 해가는 데에 있어서 큰 요소구나” 하고 처음으로 느낀 것은, 서로 사는 곳의 거리입니다. 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별로 그런 관점도 없이 각자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집을 정했기 때문에,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도 있고 1~2km 떨어진 집도 있었습니다. 무슨 활동을 할 때에 모이는 것 만이라면, 1~2km정도가 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일상생활이라고 하면, 마음 편하게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은 아주 편리하고 쾌적한 것이기도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요소라고 느꼈습니다.

개중에는, 살기 시작해서 얼마 안 되었지만,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다고 수 백 미터의 거리를 위해서, 일부러 사는 집을 옮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같은 맨션이나 아파트에 10세대 정도가 입주하는 등, 재미있고 즐겁게 신생활을 시작했습니다.

O 일

그 다음으로 크다고 느꼈던 것은, 각자의 일이라는 요소입니다. 각자가 취직자리를 찾아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것이 일과 활동의 양립(兩立)이라고 하는 과제입니다.

「새로운 사회의 시도」라고 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검토하거나 시도하고 싶은 일은 많이 있었습니다만, 각자가 시간적인 제약(制約)이 있어서, 서로 같이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었습니다. 여가(余暇)나 휴일의 짬을 내서 시간을 할애하는 소극적인 활동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좀 더 활동할 수 있도록 해가자고, 제각기의 지닌 맛이나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살려서, 자영업(自營業)을 시작한다거나 몇 명이서 회사를 차린다거나 하였습니다. 여러 업종에 손을 대었기에, 순조롭게 되어가는 일이나, 순조롭게 못가고 도중에 그만두는 일 등이 있었습니다만, 이처럼 자기들끼리 사업을 행하는 것에 의해, 일과 커뮤니티 활동이 별개로 영위하는 것이 아니고, 커뮤니티 활동의 일환으로서의 각자의 일이나 사업경영이다 라고 하는 방향성이 보여 왔습니다.

O 자기를 살펴보는 기회

다음으로 떠올려 진 과제는, 「일상을 떠나서, 차분히 생각하는 기회를 갖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차분하게 자기가 자기자신을 살펴보는 기회를 갖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머리도 몸도, 생활이나 일의 문제로 소비해 버리고, 또, 각자의 취미나 오락이나 문화적인 활동 등도 있습니다만,그런 일상의 자기 페이스로부터 떨어져 자기자신 그 자체를 새롭게 응시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인가」 「어떤 삶의 방식을 갖고 있는가」라고, 자기가 자신을 다시 새롭게 응시해 보는 기회입니다.

그리하여, 점차로 그 중요성을 느낄 수 있게 되어, 단지 막연하게 생각하는 기회가 아니고, 자기자신을 살펴보는 요점이나 순서 등,검토를 더해가며 몇가지의 코스를 마련할 수 있게 되어, 한사람 한사람에게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자기자신을 살펴보는 기회가 정착되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 의한 기풍이 침투되어, 이 「새로운 사회의 시도」라고 하는 활동의 척추로서의 자리 잡힘이 명확하게 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에 언급할 「사이엔즈 스쿨」이라고 하는 기관에로 정비되어 갑니다.

O 연구와 시험

겨우 2,3년 사이에, 같이 활동하려고 하는 사람은 배(倍)로 늘어나고, 혹은, 당초에는 같이 하려고 했던 사람 중에서도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어, 많은 사람의 움직임 속에서 사업이나 생활 등 수많은 변천(變遷)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이전부터 사람이나 사회에 대해서의 연구회를 계속해 온 유지(有志)의 멤버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의 활동이나 여러 생긴 일 하나 하나를 시험(試驗), 실험(實驗)적인 활동으로서 이해(理解)하는 것에 의해, 갖가지 연구과제가 명확히 드러나게 되어 왔습니다.

이 커뮤니티 활동이 번창하게 되면 될수록, 점점 연구활동의 필요성도 높아져, 연구기관으로서 2004년에 「인간사회과학연구소」를 발족하였습니다. 이 연구소는, 나중에 「사이엔즈 연구소」라고 하는 기관으로 진전하게 됩니다.

「새로운 사회의 시도」라고 표현한 것처럼, 여기에서의 커뮤니티 활동은, 전부가 시험, 실험 단계의 것으로, 체험한 것은 전부가 연구자료이기도 한 것입니다. 모두가 지향하는 사회나 이상(理想)적인 삶의 방식을, 각자,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서의 검토기회를 가지면서,「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그렇게 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인가」하고, 시도와 검토를 반복하여 쌓아가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몸에 붙어있는 생활양식(樣式)에 사로잡힌다거나, 보수적(保守的)이 된다거나 하지 말고, 생활형태를 하나하나 고쳐서, 사는 집이나 집안일이나 가계(家計)의 단위를, 복수(複數)의 가정(家庭)이 모여서 공동으로 하는 것 같은 형태를 취해 본다거나, 또, 분산해 보기도 하고, 일의 면에서는, 음식점이나 보육원 등에도 손을 대어, 개개의 수입(收入)을 위해서라기보다 서로의 삶을 떠받치고, 활동을 떠받치는 산업으로서 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세월이 더해가며 서서히 보여 온 것입니다만, 지향하는 사회를 그리며 실현해 가는 데에는, 그 구체적인 구조나 운영의 방법 면보다 그 전에, 좀 더 중대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져 왔습니다.

O 사회관(社會觀)과 인간관(人間觀)

「사회관(社會觀)」 「인간관(人間觀)」이라고 하는 말에 친숙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사회나 인간에 대한 관점」입니다.

현상(現狀)의 사회에는, 대단히 많은 법률이나 규칙이 있어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의무다 책임이다 라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게다가, 지키지 않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벌칙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법의 눈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끝이 없고, 그것을 단속하는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베이스에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법을 지키는 의무나 책임이 필요하다」라거나 「법률이나 벌칙을 만들지 않으면 사회는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사회관(社會觀)」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 「사회관」의 근본에는 「인간에게는 의무나 책임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거나, 「단속하지 않으면 사회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한다」라고 하는 「인간관(人間觀)」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되어있는 「사회나 인간에 대한 관점」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붙어버린 것입니다만, 그것을 다시 살펴보면, 정말은 바라지 않았던 일이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는데도 하고 있는 일이 많이 있겠지요.

정말로 살기 좋은 사회를 실현하려고 할 생각이었는데도, 「사회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하고(포기하고) 있는 사회관(社會觀)이나 인간관(人間觀)이라면, 새로운 사회는 태어나지 않겠지요.

이렇게 해서, 자기 속에 있는 사회관이나 인간관을 알아차리게 되면, 「사회란 어떤 것일까」 「사람이란 어떤 것일까」하고,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O 자유의 기풍(氣風)

에즈원 커뮤니티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가장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적고 좁은 것입니다만, 사람이 모이는 것에 의해, 넓은 범위의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보다 큰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면, 혼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쉬게 되면 일이 정지해 버립니다만, 많은 사람과 같이 하고 있으면, 한 사람이 쉬어도 일이 정지되는 일은 없겠지요.

그런데, 지금의 세상에서는, 조직(組織)을 보아도 작은 단체를 보아도, 개인의 자유의지보다도 주위사람의 시선을 신경 쓴다거나, 전체의 형편이나 규칙, 룰이 우선적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모두 같이 행동할 때에는, 혼자 할 때처럼 자유롭게는 행동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지요.

자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것에 의해 자유로이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는 것은, 아주 이상한 얘기네요.

왜,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인가. 거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종래(從來)의「사회관(社會觀)」, 「인간관(人間觀)」이 커다란 요인으로 들어 올려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하고 있으면 사회나 조직은 성립될 수 없다」거나, 또는,「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데에는 규칙이나 인내가 필요하다」 등의 사고방식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더욱 크게 실현하기 위해서의 사회나 조직」이 아닌, 「사회나 조직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으로 되어버리고 있는 것이겠지요.그래서,

그것에 위화감(違和感)을 느끼는 일도 없이,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희들은, 개인의 의지를 굽힌다거나 누르거나 할 필요가 없고, 누구나가 자유롭게 쭉쭉 신장하며 행동하는 것에 의해, 진보(進步),발전(發展)하는 사회나 조직을 그리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자기 멋 대로다」 「자기중심적이다」 「협조성(協調性)이 없다」는 등이라 말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욕구를 억압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규칙이나 룰, 모두가 결정한 것이나 일의 형편 등을 강요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없어져서, 자기의 사고방식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견책(譴責) 한다거나 비난하는 일 없이, 「하고싶다」거나 「하고싶지 않다」거나,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자유의 기풍(氣風)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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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꽃 12.12.02. 18:41

글을 읽으며 에즈원에 관련한 사람들은 기존의 사고방식이 아닌 새로운 사고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내부에도 이런 생각들이 숨어있을텐데 밖으로 꺼내놓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동조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다수의 생각대로 내 생각을 꿰맞추며 살아온 습관적인 삶, 변화에 대한 두려움 ~등이지 않을까?라는 짧은 생각.저는 본문 중에서 일, 자기를 살펴보는 기회, 연구와 시험 ,자유의 기풍을 인상깊에 읽었습니다.자신이 하는 일과 추구하는 삶이 따로이지 않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자기 삶의 목적성이 일속에서 얻어지고 생활도 유지되고 내 의식이 좀더 발전적으로 나아가고행복하다면

맑은공기 12.12.03. 11:54

그러게요~ 자유의 기풍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함께 사는 사회에 보탬이 되어 더 풍요로워지는 그런 인생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