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6

"한국불교 원융사상은 태고에서 귀결" :: 주간불교

"한국불교 원융사상은 태고에서 귀결" :: 주간불교

"한국불교 원융사상은 태고에서 귀결"
하춘생 | 2001/11/08 16:28

종호스님 "보우국사는 철저한 간화선 수행자"


허흥식 교수 "여말선초 척불론은 자초한 업보"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자 태고종의 종조로 추앙받고 있는 태고보우 국사의 탄신 700주년을 맞아 국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기리는 문화행사가 다양하게 전개됐다. 그 중 태고보우 국사의 사상과 종풍을 연구·계발·실현해 한국불교의 법통과 체계를 정립한다는 취지로 지난 1월 공식 출범한 한국불교태고학회(회장 서무공)는 4일 오후 1시 불교방송 3층 대법당에서‘태고보우 국사의 원융불교가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이란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출가승려 2백여 명과 재가불자 3백여 명 등 사부대중 5백여 명이 대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한·중 불교학자 7명이 각각 주제발표에 나섰다. 장장 5시간 동안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으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의 내용을 요약해 지상 중계한다.<편집자 주>



태고보우 국사의 원융·일불승 사상을 조명한 이날 국제학술회의는 총 7명의 주제발표자와 4명의 토론자가 참가한 가운데 선교겸수에 의한 중도적 수행과 제종통합을 통한 원융무애를 구현했던 태고보우 국사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7명의 발제자는 각각 ‘한국불교에 있어서 태고보우 국사의 원융불교사상과 그 위상’(권기종) ‘근세로 이어진 원융불교의 법통과 보우국사의 자타수용의 무애자락한 삶’(정태혁) ‘태고보우 국사와 보조지눌 국사의 사상과 수행-교화법 비교연구’(김방룡) ‘태고보우 선법의 중심사상과 그 수행법’(박종호) ‘태고보우 선사의 선법과 대승교화법 연구’(오형근) ‘원대 선종의 법맥에 대한 소고’(홍수평) ‘공민왕시 조계종과 화엄종의 갈등 : 태고와 편조의 사상적 차이’(허흥식) 등의 주제로 발표에 나서 새로운 학설들을 내놓았다.
첫 번째 발표에 나선 동국대 권기종 교수는 “한국불교사에서 많은 학승들이 원융불교사상을 주창했으나, 원효의 화쟁사상은 성상(성상)·진속(진속)·공유(공유) 등과 같은 사상적 대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의천의 경우는 교관겸수와 회삼귀일승을 주장하면서도 주교종선적(主敎從禪的) 입장을 고수했고, 지눌은 선교일여를 제창했지만 주선종교적(主禪從敎的)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역설했다. 권교수는 “그러나 보우국사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 아닌 차교입선(借敎入禪)의 입장에서 선교원융을 모색한 점 △선과 정토를 동일수준으로 융회해 염불을 공안으로 수용한 점 △회삼귀일승이 아닌 삼승십이분교의 귀일승을 주창한 점 △선교의 대립을 넘어선 원융실천운동을 전개했다는 점 등에서 원융사상의 종합적이고 총결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정태혁 명예교수도 발제논문에서 보우국사의 선의 세계를 밝힌 ‘태고암가’, 교와 선의 불이(不二)를 증득한 ‘잡화삼매가’, 국사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산중자락가’ 등을 살핀 후 “보우국사의 삶은 실로 원융무애함 그대로요, 자타가 불이를 증득한 법열의 법락 그대로였다”며 “보우국사는 교와 선을 통해 원융불이의 법을 증득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한 참된 불자요 인격자였다”고 설명했다.
보우와 지눌의 비교연구를 발표한 영산원불교대학 김방룡 교수는 “보우-지눌의 선사상 체계에서 양 국사는 각각 간화결택(看話決擇)과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선교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각각 사교입선과 선교일치 입장을 보여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토관에서도 보우는 염불선, 지눌은 선정일치, 대중이 지켜야 할 청규(淸規)에 대해서도 보우는 호국적 성격이 강한 백장청규를, 지눌은 호법적 성격이 강한 수선사청규를 수용했다”며 “그러나 두 선사의 생애와 사상은 치열한 구도과정·사상의 일관성·시대적 사명감·지행합일의 실천성 등에서 수행자로서 또 불교계 큰 스승으로서 귀감이 되고 있다”는 게 김교수의 결론이다.
보우국사의 선법을 살핀 동국대 교수 종호스님은 “보우의 선세계는 기본적으로 선의 본질, 그 궁극의 경지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전제하고서 “보우는 바로 이런 선사상에 바탕해 교학을 ‘오교와 삼승십이분교가 오직 석가 늙은이의 오줌 찌꺼기였고, 부처나 조사가 모두 꿈 속에서 꿈 이야기한 사람들’이라 하면서 교학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취하며 오로지 선수행에 의거할 것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종호스님은 결론적으로“보우는 방편으로 염불수행과 잡화삼매행법 등을 밝힌 것일 뿐 가르침의 행법은 아니었다”며 “그의 수행핵심은 간화선으로 기존의 화두 참구법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동국대 오형근 명예교수는 논문에서 “보우선사는 불교에 귀의한 후 화엄학과 원각경 등 경전을 공부해 진리를 깨달았고, 만법귀일과 조주무자를 화두로 삼아 견성하고 오도한 인물로, 선사는 이처럼 경전을 연구하고 참선을 하여 마음을 깨닫는 선교일여(禪敎一如)의 사상을 정립했다”며 종호스님의 입장을 반박했다. “불타가 설한 경전은 직지심지(直指心地)를 위한 방편으로, 보우선사는 이 방편의 경전을 통해 심지의 도리를 이해하고 참선을 해야 한다는 사상을 강조했다”는 게 오교수의 설명이다.
중국학자의 입장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남경대 홍수평 교수는 “석옥청공은 보우의 태고가에 발문을 지었고, 아울러 가사를 부촉하면서 ‘의발은 오늘 것이지만 법은 영산에서 전해온 바이니 오늘 그대에게 다시 부촉하는 바이다’며 보우에게 법을 전했다”며 “이로부터 고려에 임제종이 전해진 바, 보우가 최초의 적손”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표에 나선 정신문화연구원 허흥식 교수는 고려말 조계종과 화엄종의 갈등을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인 태고보우와 신돈으로 불린 편조(遍照)의 사상적 차이를 살핀 가운데 “두 종파의 갈등은 당시 불교계의 약화와 정치적 이념으로서 성리학이 우위를 점유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했다”며“고려후기에 승려는 세속화하고 사원을 통한 부의 축적에 눈을 돌림에 따라 사원을 장악하려는 주지쟁탈이 심하게 야기되면서 불교는 종교로서의 도덕적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고 성토했다. 한마디로 “여말선초 척불론의 대두는 ‘자초한 업보’라는 불교의 교리와도 상통하고 있다”는 게 허교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