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1

알라딘: [전자책] 유사역사학 비판 이문영 2019

알라딘: [전자책] 유사역사학 비판


[eBook] 유사역사학 비판 - 『환단고기』와 일그러진 고대사 
이문영 (지은이)역사비평사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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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100자평(34)리뷰(5)










종이책 페이지수 : 384쪽

책소개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1990년대부터 ‘PC 통신’을 통해 유사역사학의 허구와 날조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싸워온 ‘초록불’이라는 닉네임의 소유자 이문영이 유사역사학을 전면 해부하는 책을 펴냈다. 유사역사학이 무엇인지, 그 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환단고기』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며 왜 유사역사가들이 그렇게 떠받들고 있는지, 엉터리 사료비판으로 왜곡하는 한국 고대사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담아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단고기』를 필두로 상고시대에 위대한 한민족이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유사역사가 대중을 매혹시킨다. 오늘날 한민족은 한반도의 작은 땅덩이에 살고 있지만, 먼 상고시대, 고대에 전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말에 그 기록의 진위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고 놀라워하면서 아무런 비판의식도 가지지 못한 채 빠져든다.

그러나 국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유사역사의 언설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내며, 부지불식간에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해 배타적으로 바라보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갖게 한다. 저자는 애국심에 기댄 민족주의, 역사적 사실과 다른 주장을 내세워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극단적 국수주의, 나와 다른 남을 배척하고 자민족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독재와 전체주의까지 용인하는 파시즘의 씨앗을 유사역사에서 발견한다.



목차


차례

책머리에 나는 왜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는가?

제1부 유사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제1장 유사역사학, 위서, 열등감
1. 유사역사학의 정의 / 2. 위서의 세계사
제2장 우리나라 유사역사학의 뿌리
1. 투라니즘 / 2. 유사역사학이 계승한 식민사관 / 3. 일본에서 건너온 유사역사학 / 4. 신채호를 팔아먹는 유사역사학

제2부 유사역사학과 식민사학 프레임
제1장 유사역사학의 본격화
1. 의사 출신의 명망가 최동 / 2. 일제강점기 군수 출신의 문정창 / 3.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으로 규정하기 / 4. 독재 정권의 이론가 안호상 / 5. 『환단고기』를 내놓은 이유립 / 6. 『환단고기』의 번역자 임승국 / 7. 유사역사학 전파와 확산의 배경

제2장 유사역사학 만개하다
1. 국사 교과서 공청회 사건 / 2. 『환단고기』의 등장, 막전막후 / 3. 천문학으로 다시 피운 불씨 / 4. 유사역사학의 공격과 역사학계의 대응

제3부 『환단고기』를 비판한다
제1장 사료비판이란?
제2장 『환단고기』의 출현에 얽힌 수수께끼
제3장 기자와 위만을 한국사에서 추방하라
제4장 『커발한』에서 드러나는 『환단고기』의 제작 과정
제5장 알수록 이상한 『환단고기』
제6장 『환단고기』의 이상한 세계관
1. 환국의 영토 / 2. 배달국의 영토 / 3. 한족의 영토 / 4. 단군 조선의 영토―전반기 / 5. 단군 조선의 영토―후반기 / 6. 삼국시대의 영토 / 7. 발해와 회·대 지역 / 8. 고려

제4부 유사역사학의 일그러진 한국사 23장면

제1장 치우라는 괴물
제2장 『규원사화』 원본 이야기
제3장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을까?
제4장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을까?
제5장 친일파가 모신 단군도 있다
제6장 환국은 정말 있었을까?
제7장 홍산문화를 둘러싼 아전인수 해석
제8장 유사역사학이 공자를 소비하는 방법
제9장 낙랑군 미스터리
제10장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이어졌었나?
제11장 『태강지리지』라는 사료
제12장 훈민정음에 나오는 ‘중국’은 어디?
제13장 가림토 문자라는 허구
제14장 영문학자가 사이비 역사학자로 둔갑당하다
제15장 나라의 맥을 끊는 쇠말뚝 괴담
제16장 조선총독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17장 허왕후, 과연 인도에서 왔는가?
제18장 광개토왕비에 얽힌 엉터리 이야기들
제19장 삼국은 정말 중국 땅에 있었을까?
제20장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 하시나요?
제21장 900여 차례 침공당했다는 한민족의 진실
제22장 유사역사학이 아끼는 『만주원류고』라는 역사책
제23장 유사역사가들이 떠받드는 부사년의 진실

맺음말 증오를 가르치는 것은 역사가 할 일이 아니다

참고문헌 유사역사학과 역사학의 자료들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유사역사학의 유사(類似)란 국어사전에서 '서로 비슷함'으로 정의된다.



P. 48역사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역사는 그런 사건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경험적자료를 이용하여 그 근원적 원인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과학이기도 하다. 모든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들은 이용 가능한 사실은 무엇 이나 고려하고, 다음으로 그 사실들에 적합해 보이는 이론들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후 얻어진 정보가 어떤 이론과 모순된다면 그 이론을 수정하거나 폐기한다. 이와 반대로 유사역사가들은 그들이 참인 것으로 선호하는 이론을 뒷받침 하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이 ˝사실들˝ 이기를 원하고 있는지를 결정한다. 접기 - 에크리르



저자 및 역자소개
이문영 (지은이)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역사 콘텐츠를 써왔다. 매일경제신문에 「물밑 한국사」, 고교 독서평설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등을 연재했으며 유사역사학 비판서 『유사역사학 비판』과 『만들어진 한국사』, 역사학을 가르치는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 역사 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등 다채로운 역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작 :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하룻밤에 읽는 한국 전근대사 세트 - 전3권>,<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세트 - 전5권> … 총 6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유사역사학은 역사학 자체를 오도하면서 역사 연구의 목적이 자국의 영광을 되살리는 것이라 현혹하고, 현재 시점에서 수치스러운 역사는 은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도한다.
또한 한민족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는 생각을 퍼뜨려 다른 나라 사람들을 깔보고 업신여기게 만든다. 이런 역사관을 가졌던 이들이 나치와 일본제국주의였다. 그들이 행한 일들을 우리가 또 답습해야 하는가?

pseudohistory,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 ‘가짜’의 유혹

인터넷의 발달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급속도로 증가시켰다. 고급 정보도 많지만 무분별하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 또한 많다. 가짜 뉴스의 범람은 이미 세계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학문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제법 그럴싸한 논리이고, 게다가 이것저것 근거라면서 갖다 붙이고 억지스럽게 밀어붙이면 쉽게 믿어버릴 수밖에 없다. 특히 고대사의 영역은 더욱 그러하다.
저자 이문영은 과학잡지 『스켑틱(SKEPTIC)』의 발행인인 마이클 셔머의 말을 인용하여 유사역사학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뒷받침하는 증거나 개연성이 없는데도 주로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목적으로 제시되는 주장”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1990년대부터 ‘PC 통신’을 통해 유사역사학의 허구와 날조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싸워온 ‘초록불’이라는 닉네임의 소유자 이문영이 유사역사학을 전면 해부하는 책을 펴냈다. 유사역사학이 무엇인지, 그 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환단고기』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며 왜 유사역사가들이 그렇게 떠받들고 있는지, 엉터리 사료비판으로 왜곡하는 한국 고대사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담아냈다.
저자는 먼저 유사역사학의 영어 단어인 ‘pseudohistory’의 ‘pseudo’를 유사(類似), 즉 ‘서로 비슷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영어의 본래적 뜻인 ‘가짜의’, ‘거짓의’, ‘사이비’ 뜻으로 정의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한다. 서구에서 대표적 유사역사로 꼽히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는 가짜 역사이다. 이런 것을 누가 믿겠냐고 하겠지만, 지금도 나치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 속에서 암암리에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단고기』를 필두로 상고시대에 위대한 한민족이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유사역사가 대중을 매혹시킨다. 오늘날 한민족은 한반도의 작은 땅덩이에 살고 있지만, 먼 상고시대, 고대에 전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말에 그 기록의 진위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고 놀라워하면서 아무런 비판의식도 가지지 못한 채 빠져든다.
누가 싫어하겠는가? 우리가 4대 문명보다 더 위대하고 더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으며 아시아를 호령하며 광대한 제국을 이룩했다는데!
그러나 국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유사역사의 언설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내며, 부지불식간에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해 배타적으로 바라보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갖게 한다. 저자는 애국심에 기댄 민족주의, 역사적 사실과 다른 주장을 내세워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극단적 국수주의, 나와 다른 남을 배척하고 자민족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독재와 전체주의까지 용인하는 파시즘의 씨앗을 유사역사에서 발견한다.

오래된 바람, 만들어진 한국사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유사역사를 전파하다

우리나라의 유사역사학은 일제강점기에 고조선과 만주에 주목하여 만주와 조선은 하나라는 만선사관이나 일본 민족과 한민족은 같은 조상 아래 나왔다는 일선동조론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친일과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해방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놓여 있었다.
해방 이후 1960~1970년대에 이르면 유사역사학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이 책의 제2부에서는 유사역사학의 토대를 다지고 발전시킨, 유사역사학의 대표적 선구자들을 알아본다.

• 최동 : 세브란스 병원 의사, 조선 민족과 야마토 민족이 동종동근이라고 주장.
• 문정창 : 일제강점기 군수 출신, 중국·수메르·이집트 문명이 모두 한민족에서 기원했다고 주장.
• 안호상 : 초대 문교부 장관, 일민주의 주장, 국사찾기협의회 결성, 민족 주체성 확립을 목표로 국정교과서 추진.
• 이유립 : 『환단고기』를 몰래 숨겨왔다가 세상에 알렸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조작해 만들어냈음. 단단학회를 결성하고 기관지 『커발한』을 발행했으며, 이를 통해 『환단고기』 정교하게 위조하여 소개.
• 임승국 : 『환단고기』의 번역자, 민족주의와 반공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면서 역사를 국가체제철학이라고 주장.


1932년 ‘조선 쇼와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수여받고,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 1942년 황해도 은율군수, 1945년 이사관 승진,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을 지냈던, 그야말로 일제의 정책을 수행했던 고위 공직자 문정창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해방 후 그는 『군국일본 조선점령(강점) 36년사』를 펴내면서 스스로 농촌 발전을 위해 민족주의 활동을 했던 것처럼 기술했다.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가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후에는 일본의 망언에 대항하고자,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책을 썼다고 주장했다.
문정창은 조선총독부가 꾸며낸 조선상세사(朝鮮上世史)를 한국 역사학계가 답습한다며 식민사학자라고 매도했다. 조선 민족의 고향이 중앙아시아라고 주장한 최동의 주장에 깊이 감명한 문정창은 이스라엘과 한민족이 깊은 연관성이 있다면서, 그 근거로 성서에 ‘Chosen people’이라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choose의 과거분사 ‘chosen’을 우리식 발음대로 읽어 ‘조선 사람’이라 제멋대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발음의 유사성을 가지고 역사를 재구성하는 수법은 오늘날 유사역사가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안호상 등과 함께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하여 국가의 권의와 의사에 절대적 우위를 두고 국민은 그에 기반한 공통된 국가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광스러운 한국사,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날조도 서슴지 않았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 정말일까?
거짓과 허상과 환상으로 오도하는 유사역사의 함정


『환단고기』란 대체 어떤 책일까? 유사역사학 쪽에서는 한국 상고사가 기록된 아주 위대한 기록이라고 떠받들리는 책이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우리는 단군조선 때 만주와 시베리아, 중국 하북성 일대와 산둥반도까지 차지한 대제국의 영토였다. 이런 말이 ‘고서’에 적혀 있다고 하니 실로 믿을 만하지 않은가? 왠지 모를 뿌듯함, 자존감, 애국심이 솟아난다. ― 『환단고기』가 만들어낸 달콤한 환상이고, 유사역사학에서 퍼뜨리는 허구이다. 저자는 『환단고기』의 출현에 얽힌 수수께끼뿐 아니라 이유립이 발행했던 단단학회의 기관지 『커발한』을 통해 『환단고기』가 어떻게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했다. 『환단고기』에 담겨 있는 세계관이 무엇인지,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그 밖에 한국 고대사에서 엉터리 이야기로 사람들을 잘못 이끄는 23가지를 뽑아, 그것의 맹점과 허구를 파헤쳤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환국’이라는 유사역사학 쪽의 주장을 그동안 역사학계가 축척한 연구 성과를 소개하며 ‘환국’이 얼토당토하지 않음을 논박했다. 『단종실록』, 『제왕운기』, 『삼국유사』(석남본, 파른본) 등을 통해 환국의 ‘국’ 자가 원래 ‘인’ 자임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병도가 내놓은 학설이라면서 중국 진나라가 쌓은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에서 시작한다는 주장(지금도 인터넷상에서 이와 관련된 지도를 쉽게 볼 수 있다)도 터무니없음을 논증했다.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엉터리 이야기가 어떻게 신화로 둔갑하고 역사화되는지, 또 그것을 오늘날 역사적 사실로 기려지는 현상까지 거침없이 비판했다.
저자는 유사역사학에서 퍼뜨리는 위대한 조상, 광대한 영토에 사로잡혀 자랑스러운 고대사에 현혹되지 말 것을 몇 번씩 거듭하여 강조한다. 역사를 통해 시민에게 국수주의를 주입하고 환상의 역사를 믿게 하는 행동은 유사역사가들도 주장했듯이 독일과 일본이 저질렀던 일이며, 그 결과는 참혹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한다.

역사는 우리 조상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는 걸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풍부해질 수 있도록 인간과 삶에 대해 배우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다. 접기
=====


7.0




유사역사학의 저승사자 초록불님이 집대성한 유사역사학 이야기. 너무 기대가됩니다. 바로 주문합니다!
yoosang81 2018-11-28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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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작~
Micca.Kim 2018-11-29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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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기 위하여! 일단 만나 봅니다.
들풀처럼 2018-12-03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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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의 시원을 밝혀주는 책.
만술 2018-12-08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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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역사학 또는 유사 역사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최동, 이유립, 안호상, 문정창, 임승국 등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에 물들었음을 보여 준다.
解明 2018-12-2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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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유사역사학 비판

유사역사학 비판 서평: 유사역사학은 파시즘의 변형된 형태다.

내가 환단고기를 처음 알게 됐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당시 고구려사를 전공한 모 교수님은, ˝한국에도 대마도 회복을 외치는 모 집단이 있다.˝ 혹은 ˝환단고기라는 판타지 위서를 추종하는 집단이 있다.˝라고 주장했었다. 당시 환단고기에 대해 모르던 필자는 ˝무슨 소고기 이름이냐˝하고 그냥 넘겼던 것 같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이었다. 당시 페이스북을 굉장히 열심히 했던 필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페친을 맺었다. 이를 통해서 굉장히 많은 환빠들이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이런 말도안되는 주장들을 진서라며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2017년 대전에 있는 증산도라는 사이비 종교를 알게 됨으로써, 그들이 참으로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시중에 나온 책들 중엔 환단고기와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는 책들은 찾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수많은 서점에서는 소위 환빠 교주 안경전이 저자인 환단고기와 개벽과 같은 종교화된 서적들이 시중에 나도는 모습을 보았고, 굉장히 거부감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난 가끔씩 환빠들을 까는 글들을 SNS를 올렸다. 2018년 소방서 사회복무요원을 마치고 그 기념으로 1달간의 미국여행을 갔다오고 나서였다. 내가 미국여행을 마치고 귀국했을쯤 이 책이 출판되었고, 책의 저자인 이문영 선생을 SNS를 통해 알게 됐다. 그를 통해서 ‘유사역사학 비판‘을 알게됐고, 궁극적으로 환빠들에 대한 위험성과 비판부분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이 내리는 결론은 자명하다. 유사역사학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외세에 대한 알 수 없는 열등감에서 부터 시작된다. 즉 한국 역사는 대륙을 정복하지 못한 역사이기에, 과거의 영토들 왜곡하고 과장해서 ‘민족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정상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세력들을 죄다 ‘이병도 제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마녀사냥을 한다.

그들에게 있어 다른 나라의 유사역사학자들이 한 얘기는 그리 큰 문제가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약간 변형시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캐임브릿지 대학에서 인정한 하버드대 한국사 교수가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비판하면 유사역사학은 입에 개거품을 물고, 성난 침팬지들 처럼 날뛴다.

참으로 재밌는 사실은 그들이 그리도 진실이라 하고 싶은 환단고기를 진실로 규정한다면 그건 역으로 과거에는 위대했으나 중국에게 털려 시간이 갈수록 영토가 줄어든 열등한 역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위대함만을 고수하는 그들에겐 그런건 전혀 상관없다.

과거에도 했던 생각이지만, 이들의 사상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나치와 비슷하다. ˝아리아인의 위대함˝을 외치던 그들의 구호에서 주어만 바꾸면 환빠가 된다. 20세기 역사가 증명하듯이 민족우월주의와 과도한 민족주의에 경도된 나치독일과 일본은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6천 5백만명의 목숨을 빼았았다. 그렇다. 이 처럼 위험한 사상이 바로 유사역사학이다.

몇몇이들은 이들도 종교니까 종교로서 인정하면 된다고 한다. 그것은 이들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서 하는 소리다. 그렇다면 네오나치도 허용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유사역사학은 학문과 사실관계를 자신들 멋대로 조작하여 식민사학과는 무관한 역사학계를 공격하고, 자신들의 추종하는 파시즘을 대중들에게 이식시킨다.

따라서 굉장히 위험하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학문이라는 것을 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학계의 잘못도 있다. 어쨋든 유사역사학은 굉장히 위험하다. 이를 알고 비판적인 의식을 길러야 한다. 이문영 저자님의 저서 ‘유사역사학 비판‘은 올바른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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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2-02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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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유사역사학 비판

대학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았을때로 기억한다. 내 주변에서도 환단고기라는 책이 회자되었고, 심심찮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관심사는 우리나라의 고대사 보다는 현대사 였기에 난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시 갓 대학생이 된 내가 이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면 소위 환빠들의 생각에 쉽게 빠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르게 보기, 삐딱하게 보기 혹은 신선한 관점이라고 하여 새로운 것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은 사실에 기반해야하고 특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의도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소위 환빠나 유사역사학자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하는 사람들에 불과할 것이다.

이이화 역사학자가 인터뷰에서 말한 환단고기에 대해 하는 말이 역사를 좋아하는 일반독자가 새겨들을만한 말인 거 같다.
˝사서 읽지 마세요. 책값도 아까워! 어디 헌책방 같은 데서 한번 뒤져보라고. 완전 거짓말이야. 삼국유사에도 허황된 얘기는 나오지만, 어떤 민중적 사유라든가 그런 걸 담고 있죠. 단군신화는 그냥 신화로 해석해야지. 고대에 천조대신이 어쩌고저쩌고… 이게 말이 되냐고? 석기시대에 돌멩이 들고 싸우던 시절인데 어떻게 제국을 건설해요? 역사발전에서 그 시기는 부족국가 시대에요.˝



한편 나는 환단고기 같은 것은 믿지 않지만이라고 말머리를 꺼내면서도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옹호하는 이들을 간혹 만날 수 있다. 그들은 흔히 일본에서 새역모가 중심이되어 교과서 등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 역시 동북공정 등으로 역사 왜곡을 하는데, 이에 대항하기 위해사 우리도 환단고기같은 것들을 이용하여 역사를 포장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일본과 중국은 거짓말로 역사를 포장하지만 우리는 진실만 이야기해도 그들의 주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외치는 것에 비하면 건전해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역사학은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거짓말임을 알지만 필요하니까 사용하자는 주장은 정말 위험천만기 짝이 없다. 더 이상 학문이라 할 수 없는 주장이다. p.12

우리는 한국사를 가문의 역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민족주의 오랫동안 강조되어온 결과이다. 그리하여 고대의 일도 마치 어제 삼촌이 도둑 맞은 것처럼 여기면서 역사를 들여다본다. 로마의 멸망은 아무렇지도 않게 읽으면서 고구려의 멸망은 할아버지네가 망한 양 분통을 터뜨리면서 읽는다. 그러다보니 유사역사학을 믿는 사람들은 현재 한국사 교육에 극도의 저항심리를 느끼게 된다. p.33

개인적인 위로 차원에서 읽을거리가 필요하다면 웹소설과 웹툰을 읽기를 권한다. 추리소설처럼 두뇌회전을 요하는 읽을거리도 좋을 것이다. 편안하고, 느낌이 좋고, 위로도 받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협하는 무서운 사상으로 발전하지도 않는다. p.62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조선은 반도 국가라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에 휘둘리며 사는 운명‘이라고 말하면 ‘반도 국가에 그런 운명따위는 없다‘라고 받아치는 것이 맞지, 엣날에 우리 집 창고에도 금송아지가 있었다고 추억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p.72

애초에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사료는 그 사료가 지칭하는 시대를 재구성하는 재료로서 가치가 없다. 가짜 히틀러의 일기를 가지고 히틀러의 사상을 분석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역사학계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외적 비판 작업은 벌써 끝났다. 하지만 이 책을 믿는 사람들은 이 비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환단고기 안에는 근대이후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가 나타난다. 위작이라는 증거 중 하나다. p.181

배달국은 환국 다음에 환웅이 세운 나라 이름이다. 아무튼 이런 거대한 땅덩어리를 신석기시대에 다스렸다고 주장하는 그 배포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아유립은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제국이 어떻게 성립 가능한지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p.215

김정열은 이렇게 말한다. ˝홍산 문화가 우리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것인지에 대한 집착과 논쟁은 본디부터 근대 국민국가 성립이후 이 관점을 선사시대까지 무제한 확장하여 투영하는 가공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다.˝ 목적에 맞춰 증거를 나열 하지 말고 홍산 문화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성숙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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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로카가티아 2019-01-09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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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비판 / 이문영



"우리는 한국사를 가문의 역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민족주의가 오랫동안 강조되어온 결과이다. 그리하여 고대의 일도 마치 어제 삼촌이 도둑 맞은 것처럼 여기면서 역사를 들여다본다. 로마의 멸망은 아무렇지도 않게 읽으면서, 고구려의 멸망은 할아버지네가 망한 양 분통을 터뜨리면서 읽는다. 그러다보니 유사역사를 믿는 사람들은 현재 한국사 교육에 극도의 저항심리를 느끼게 된다."(33) 가짜의 세계는 다양하다. 돈이 잘 벌릴 것 같아서 만들 수도 있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 만들 수도 있고, 종교를 위해 만들 수도 있다. 공통점은 조작된 자료를 가지고 기존의 사실을 부정하면서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사역사학의 고약한 문제는 (객관적으로 자료를 검증하고 판정을 내리는) 심판관(역사학자) 자체가 오염되었다고 몰고 가는 데 있다. 유사역사학에서는 역사학자들을 친일파, 매국노, 식민사관 추종자로 비난하며 낙인을 찍고 있다."(37)




# 로버트 T. 캐롤의 유사역사학 정의

1. 신화·전설·모험담 그리고 이와 유사한 문학을 문자 그대로 사실로 수용

2. 고대 역사 문헌에 비판적·회의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그 명목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고대 사가의 주장에 대한 경험론적·논리적 반증을 외면

3. 절대로 확실한 것만이 '진실'이며, 절대로 확실한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니라는 극단적인 회의적 개념에 집착

4. 자신의 의제에 맞는 것은 호의적으로 인용하고, 맞지 않는 문헌은 무시하거나 해석에서 제외하면서 고대 문헌을 선택적으로 사용

5. 의제에 들어맞기만 하면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진실이 되기에 충분조건이라고 간주

6. 인종적 편견이나 무신론, 자민족우월론 때문에, 또는 정치나 종교적 의제에 반대하기 때문에 자기들 주장을 억압하는 음모가 있다고 강조

7. 역사는 승자의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에 역사학이란 엄정한 과학이 아니며, 그저 국가의 이익 또는 도덕에 봉사하면 된다고 주장




시카고대학 종교학과 교수인 브루스 링컨은 『신화 이론화하기』에서 "영국 태생의 동양학자 윌리엄 존스 경이 1786년에 내놓은 유럽 언어들과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페르시아어의 관계와 공통 기원에 대한 가설이 어떤 파장을 끼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존스의 이론은 게르만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찬란한 그리스·로마와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문화적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리아족과 관련이 없는 유대인을 상정함으로써 독일인에게 유대인 박해의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인도-아리아 어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위에 '민족'이 덧씌워지면서 후일 나치가 이 신화를 이용해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대범죄를 저지를 계기가 착착 만들어져갔던 것이다. 유사역사학에서는 파미르 고원을 중요시한다. 파미르 고원에서 인류가 발생했다는 말도 흔히 한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생명체가 진화했다는 걸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53)




"유럽 국가들이 언어를 통해 민족의 기원을 신비하게 채색하려 했던 것과 같은 일이 아시아에서도 일어났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우랄-알타이 어족'이라는 학설이 나오면서 동아시아에서도 같은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우랄-알타이가 아리아어나 셈어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이미 19세기때부터였다. 핀란드와 헝가리를 중심으로 '범투라니즘'이라는 운동이 일어난 적 있었다. 투라니즘은 이란 북동부의 투란 평원에서 나온 말로, 우랄-알타이 어족을 '투란 민족'이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묶어내려는 이념이다. 투라니즘은 헝가리에서 19세기 초에 시작되었고 1914년 터키의 아타튀르크에 의해 제창되어 터키 민족주의에 이용되기도 했다. 우랄-알타이라는 거대한 영역을 포괄하는 공통의 조상 이야기는 인도-아리아어족의 상정이나 마찬가지로 근대국가 건설에 목마른 이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있었다. 일본은 얼른 이 개념을 차용했다." "투라니즘은 일본제국의 대아시아주의와 결합하여 전파되었다."(65-6)




제국주의를 지향한 일본은 "아시아를 병합할 명분이 필요했다. 일본의 힘이 성장함에 따라 그들의 논리도 점차 제국주의화되었다. 시작은 동문동종론(同文同種論)이었다. 동일 문명인 한자 문화권에 들어 있는 아시아 인종이 뭉쳐 유럽 인종에게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사람들을 강력하게 이끄는 이론이 일본에 등장하게 된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유사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혈통주의에 입각한 '아시아주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쥬신론' 또는 '대동이(大東夷)'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 혈통주의 속에서 중국은 같은 혈통이 아니다. 당시 일본이 같은 혈통으로 간주한 종족은 일본, 한국, 몽골, 만주, 그리고 시베리아의 고아시아 인종들뿐이었다. 이 세력은 후일 '동이족'이라는 이상한 카테고리에 묶인다. 감히 동이족의 땅을 침략하는 러시아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고, 결국 그들의 뜻대로 러일전쟁이 벌어졌다."(74-5)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했던 신채호는 "민족은 역사가 없으면 국민이 되기 힘들 뿐이지만, 역사는 민족이 없으면 아예 존재 자체가 말살된다고 말하고 있다. 민족과 역사에 대한 신채호의 인식은 그 유명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말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아)와 내가 아닌 남(비아) 사이의 관계(투쟁)로서 역사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초기의 신채호가 견지했던 이 역사관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아와 비아의 투쟁에서 패배한 민족은 어떻게 되는가? 그런 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흡수되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신채호는 약자를 밟아버리는 사회진화론에 회의를 품었다. 그 결과 그는 1920년대부터 무정부주의자로 탈바꿈했다." "신채호는 이제 민족이 아닌 민중을 중시하고, 민중을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바라보게 되었다. 불행히도 그는 이런 인식 변화를 책으로 남기지 못한 채 1928년에 무정부주의운동 중 체포되었고 옥사했다."(86-7)




"광복 이후 한국에는 두 조류의 민족주의가 흐르고 있었다. 초대 문교부 장관(지금의 교육부 장관) 안호상으로 대표되는 극우적인 국수주의가 한 흐름이고, 4월혁명으로 촉발되어 터져 나온 제3세계적인 민족주의 흐름이 다른 하나다. 4월혁명으로부터 촉발된 민족주의적 흐름은 중립화 통일론과 같은 급진적 방식의 통일론을 불러왔는데, 이런 흐름은 5·16쿠데타로 일시 정지되고 만다.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1963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군정 이양'이라는 자신의 약속을 저버린 박정희는 민주 세력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 첫 표출이 한일협정 반대운동, 이른바 6·3운동이었다." "문정창의 책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그는 한일협정에 대해 탄식하면서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일절 입에 담지 않고, 그 분노를 엉뚱한 방향으로 쏟아냈다. 바로 역사학계를 향해서였다."(107-8)




"문정창은 역사학계를 매도하는 프레임을 짰고, 이후 유사역사학에서는 끊임없이 그것을 이용했다. 어떤 프레임인가?" 그것은 일부 사가史家들이 일본인 어용학자들의 술수에 넘어가, 단군조선의 실존을 부정하고 '단군신화설'로 격하했다는 주장이다. "문정창이 꺼낸 조선총독부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역사학계가 조선총독부 사관을 답습한다'고 공격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자들은 상대방을 악마화 한다고 말한다. 상대를 악마화 하면 설령 우리 편이 실수를 해도 그것을 상대방의 공작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고 자신들을 비판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세력은 악마가 된다." "문정창의 주장을 확산시킨 것은' 국사찾기협의회'라는 단체였다. 국사찾기협의회는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이 1975년에 설립했는데, 이 단체가 결성되면서 유사역사학이 달궈지기 시작했다."(111-2)




"안호상에게 '역사학계=식민사학'의 프레임이 나타나는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그는 늦어도 1973년에는 문정창을 만났으며, 1975년부터는 함께 행동했다. 또한 배달문화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유사역사가들과 정기 모임도 가졌다. 백제의 중국 동남부 점거, 낙랑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등의 주장에 학계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문교부를 상대로 '국정 국사 교과서의 국정 교재 사용금지 및 정사 편찬 특별기구 설치 등의 조치 시행 요구에 대한 불허 처분 취소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이후 그는 1975년 10월 8일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하고 국사찾기운동을 시작한다. 당시 역사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회고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인사 중 한 명인 "월간 『자유』의 박창암은 퇴역 군인이다. 그는 만주군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서 중국 공산군인 팔로군 진압에 활약했던 인물이다. 뒤에 5·16 쿠데타에 참여하여 혁명검찰부장으로 서슬 퍼렇게 활동했다."(117-8)




"박정희의 사상적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1968년 12월 5일의 '국민교육헌장' 제정이었다. 안호상은 초반에는 구정치인으로 박정희 정권의 홀대를 받았지만, 1968년에는 민족주의를 표면에 내세운 박정희 정권과 협력하여 국민교육헌장 선포에 관여했다. 국민교육헌장 제정 이후 박정희는 민족에 대한 열등감보다 민족의 긍정적 측면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런 변화의 흐름 중 하나가 1970년대에 일어난 이순신 영웅화 작업 등 외침에 저항한 '민족사 복원' 작업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특히 '화랑도'가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화랑을 부각한 사람은 이선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선근은 제4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역사학자이다. 그는 안호상과도 친했으며 안호상이 일민주의를 내세웠을 때 '일민'이라는 한자보다 우리말 '한겨레'를 쓰라고 권했을 정도였다. 이선근은 우익 단체인 '대동청년단'의 부단장이기도 했다."(136-7)




"식민사학 프레임의 등장에는 그 전까지 검인정이었던 한국사 교과서가 1974년에 국정교과서가 되었다는 사실이 배경으로 존재한다. 전 국민에게 동일한 역사관을 주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된 국정교과서 체제는 유사역사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기에 최적의 체제였다." "유신이 실시된 1972년에 국사교육 강화 방안이 등장했고, 이 방안에서 민족 주체성 확립이 과제로 제시되었다. 1973년부터 국정교과서 발행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표면적인 목표 중 하나가 식민사관의 극복이었다."(119) "안호상이 주창했던 일민주의도 한백성주의로 이름을 바꾼 채 계속 유지되었다. 당연히 한백성주의에서도 안호상은 핏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여러 종족이 섞인 나라는 혼혈이기 때문에 하나의 핏줄로 변할수록 더 나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한다. 이승만 때 하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되풀이한 셈이다."(121)




'국사찾기협의회'의 주요 회원이자 『환단고기』의 번역서 『한단고기』를 내놓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임승국은 국가보안법으로 역사를 재단하자고 말하면서 전두환에게 꼬리를 쳤다. "대통령 각하의 의지 하나로 결정될 수 있는 국사 광복".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면 역사의 진리가 입증된다는 논리다. "임승국은 민족주의를 반공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았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도 국가안보(반공)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역사를 국가체제철학이라고 주장한다."(130) "그는 한국사를 다섯 개의 조국으로 구분하는데, 제1조국은 환인의 나라인 환국, 제2조국은 신시개천의 환웅의 나라, 제3조국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제4조국은 부여→삼국→발해로 이어지며, 제5조국은 제5공화국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조선은 없다." "그가 조선을 덮어버리자고 하는 것은 조선의 역사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겨야 한다고 주장한다."(132-3)




"『환단고기』는 그 첫마디부터 "우리 환국의 건국이 가장 오래되었다(吾桓建國最古)"라고 시작된다. 처음과 오래됨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또한 「삼성기전 하편」에서는 첫마디에 "인류의 조상은 나반이라 한다(人類之祖曰那般)"라고 적고, 이후 중국과의 대결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내용을 적어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 열등감 때문에 핏줄의 문제가 묘하게 꼬이고 말았다. 중국의 고대 신화·전설의 인물 대부분을 동이족, 즉 한민족의 일원으로 설정하다보니 중국사를 한국사로 할 수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조차 불분명해진 것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는 고려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역사를 기술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조선에 대한 멸시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의 역사에서도 금나라를 사대한 사실이나 몽고의 침략으로 결국 항복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고려사를 모르는 상태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의 기술을 하고 있다."(172-3)




"『환단고기』 안에는 근대 이후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들이 나타난다. 위작이라는 증거 중 하나다. 이에 대한 유사역사학 측의 이른바 '반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다. ① 근대에 사용한 용어가 아니다. ② 가필이 있다고 해서 위서는 아니다. ①의 반론은 의미 없는 우기기일 뿐이다. ②의 반론은 사료비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환단고기』의 문제는 근대에 사용된 단어가 들어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환단고기』 「삼성기」의 지은이라고 주장된 안함로(安含老)와 원동중(元董仲)은 안함(安含), 노원(老元), 동중(董仲)을 잘못 읽은 것이다. 「삼성기」는 원래 『세조실록』에 나오는 책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황해도 해주목 '고적' 조에 "수양산성을 안함, 원로, 동중 세 사람이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노원(老元)의 이름이 뒤집혀 원로(元老)가 되었는데, 한자는 동일하다. 이처럼 다른 책을 통해서도 『환단고기』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181-2)




"이유립은 기자조선을 사마천이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면서 기자를 극력 부인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단군의 고조선이 있고 기자가 와서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위만이 기자의 후예 준왕을 몰아내고 조선을 차지했다. 단군은 한민족의 시조이지만 기자나 위만은 '중국인'이다. 그가 보기에 중국인이 감히 한민족의 나라를 차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피의 순수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이유립뿐만 아니라 유사역사가들의 공통된 의식이다. 국사찾기협의회의 일원인 임승국은 『한단고기』에서 "우리는 '하늘→하느→한'의 음운 법칙을 갖는 민족으로 '하늘님→하느님→한님'을 조상으로 모시는 민족신앙을 갖는 민족이다. 하느님의 피를 직접 유전으로 받아 곧 하느님으로 태어나는 백성이라는 천민신앙(天民信仰)은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우리의 믿음이다"라고 말했다. 순혈이 중요한 유사역사가의 입장에서 기자와 위만은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다."(187-8)




# 기자조선의 빈자리를 채워넣은 한국사 : 『환단고기』




"『환단고기』 「삼성기」 상편에는 "한 신이 사백력(斯白力) 하늘에 있어 홀로 신이 되어 (···) 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 백산의 땅으로 내려보냈다"는 구절이 있다. 유사역사가들은 '사백력'이 시베리아라고 주장한다. '시베리아' 자체가 근대에 생긴 지명인데, 마치 고대에 비슷한 발음으로 불렸을 것처럼 만들어진 단어가 '사백력'이다.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 백산의 땅으로 내려보냈다"는데, 이 땅은 만주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흑수'는 흑룡강 '백산'은 백두산이라는 것이다. 즉, 이유립이 「삼성기」 상편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환인이 시베리아 땅에서 만주로 와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티베트고원에서 산동반도까지 장악한) 배달국은 환국 다음에 환웅이 세운 나라 이름이다." "이유립은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제국이 어떻게 성립 가능한지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저 땅의 절반 이상이 농사도, 심지어 유목도 불가능한 동토의 땅이라는 사실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으리라."(213-5)




서거정이 편찬한 『동국통감』을 보면 "요임금 원년 갑진년설에 따라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요임금 25년 무진년으로 결정되었는데, 바로 이 해가 기원전 2333년이다. 이렇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명나라 건국과 조선 건국의 연도 차이가 25년이 나기 때문이다. 그 연도 차이에 맞춰 요와 단군의 간격도 벌려놓았던 것이다. 만일 요임금-고조선 동시 건국설을 따른다면 고조선의 건국년은 기원전 2357년이 된다. 2018년도 단기 4351년이 아니라 4375년이 될 것이다. 한편 『삼국유사』에 언급된 『고기』에 근거해 요임금 50년 건국설을 따른다면 기원전 2308년이 된다."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들은 (『동국통감』에서 확정된)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역사를 꾸며놓았다. 워낙 오랫동안 알아온 연대였기 때문에 고칠 생각을 못한 것이다. 『환단고기』 등이 실제로 과거의 책이 아니라는 간단한 증거라 할 수 있다."(254-5)




"이른바 '영토 순결주의'라는 게 있다. 우리 영토에는 일체 다른 민족의 '더러운' 손길이 닿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고대사에 투영되면 낙랑군이라는 '다른 민족의 더러운 손길'이 문제가 되고 만다. 그러나 유사역사학에서는 반대로 말한다. 사대주의와 식민사관 때문에 우리 역사를 축소시켜온 것이 한국 역사학계이고, 그 대표적인 예가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라는 주장이라는 것이다."(281) 문명은 흔적을 남긴다. "요서의 어디가 낙랑군이었다고 말하는데, 수백 년을 유지한 그곳에는 아무런 유적·유물이 없다. 그렇지만 그곳이 낙랑군이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들이 '식민사학의 수괴'라고 치를 떠는 이병도의 말을 인용해서 고고학보다 문헌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는 이병도 시절의 낡은 이야기일 뿐이다. 고고학의 눈부신 성과에 대항할 방법이 없자 꺼내든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평양에서는 엄청난 양의 낙랑군 유물과 유적이 나왔다."(283)




"근대에 와서 광개토왕비를 발견한 사람이 일본의 밀정 포병 대위 사코 가게아키(사코 가게노부)이기 때문에 비문 위조설도 광범위하게 퍼졌다." "광개토왕비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구절은 신묘년(391) 조의 기사로, 위조된 것이라는 주장도 이 기사 때문에 나왔다. 이 기사는 왜가 신라와 백제를 공격하여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비문의 내용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광개토대왕이 병신년(396)부터 기해년(399)까지 백제를 토벌하고, 경자년(400)에는 신라를 도와 임나가야를 정벌했으며, 갑진년(404)에는 다시 백제와 손을 잡은 왜를 격멸했다는 내용이 신묘년 조 다음에 적혀 있다. 왜가 신라와 백제를 공격하여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비문이 결국 이야기하는 바는 왜(일본)의 대패이다. 광개토왕비는 왜군의 패배, 그것도 대패가 기록된 비석이다. 오늘날 한·중·일 학계는 모두 신묘년 기사가 고구려의 허풍이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상대가 막강해야 쳐부순 맛이 난다는 거다."(342-4)




"일본 역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광개토왕비를 일본으로 가져갈 생각을 했다. 이 무렵 일본은 러일전쟁을 치르던 중이었다." "광개토왕비를 일본에 가져가려 한 이유는 그 비에 적힌 패배를 보고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분발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라토리는 패배를 직시하여 분발하자고 했지만,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은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남연서(南淵書)』라는 위서가 등장한다. 견수사로 중국 수나라를 다녀오던 일본 사신 미나부치노 쇼안이 귀국하다가 광개토왕비를 보고 그 전문을 적어 온 책이 『남연서』라는 것이다. 『남연서』에 따르면 왜는 고구려에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결국 패배했다는 열등감이 위서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1943년 조선총독부는 각도 경찰부장에게 항일 기록이 새겨진 고비들을 폭파하도록 지시했다. 이 명령은 실제로 행해졌다. 남원의 황산대첩비도 지금은 복원해놓았지만 이때 부서졌다."(344-6)




1994년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관측사실 검증」이라는 논문에서 "박창범은 초기 신라가 양자강 중류 지대에 있었으며 백제는 북경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말을 하는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이 근거가 너무 박약한 터라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참에 "삼국이 중국 땅에 있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주어졌으니 환호할 만도 했다." "박창범이 계산한 백제와 후한의 일식 관측 최적 위치를 보면 동일한 지역을 최적 관측지로 꼽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창범은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단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책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는 후한의 최적 관측지 지도를 빼버렸다." "박창범 등의 주장은 기본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다. 일식은 범위가 아주 넓어서 관측할 수 있는 영역도 매우 크다. 이 영역이 겹치는 곳의 중심이 일식을 관측한 곳이라고 볼 수 없다. 특히 고대사의 경우 관측 기록, 즉 표본이 너무 적기 때문에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없다."(347-9)




유사역사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만주원류고』는 건륭제가 제작을 지시하고 검토한 책인데, "'부족' 조에서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완안, 건주 순으로 숙신과 관련된 자료들을 열거한다. 책 제목 그대로 만주족의 원류를 파악하겠다고 쓴 책인데 여기에 부여, 삼한, 발해와 같은 한민족 국가들을 다 집어넣었다. 즉, 부여, 삼한, 발해를 여진족의 변방 부족으로 구성한 책이다. 언어와 음성적 유사성을 근거로 만주의 길림 지방이 신라의 계림이라고 말하는 등, 학문적 신빙성과는 거리가 먼 책이다. 『만주원류고』 '강역' 조에서도 부여, 삼한, 옥저, 백제, 신라, 발해까지 전부 만주에서 활동한 것으로 만들어 청나라의 전사(前史)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만주의 지배자였던 고구려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고구려를 빼놓은 왜곡된 역사책을 만들었는가? 만주 지역의 역사적 주인공은 여진족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361-2)




# 유사역사학자들이 우리나라 상고시대 지명들을 대부분 요동에 비정하고 있는 이유




"유사역사학 추종자들은 흔히 "일본과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드는데 우리는 있는 역사도 챙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있는 역사'라 주장하는 것이 세계 학계에서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국수주의에 물든 유사역사학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몇몇 외국 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반박하지만 그 절반은 역사학자가 아니고 나머지는 유사역사학 추종자들의 오해와 오독의 결과에 불과하다. 부사년처럼 동북공정의 전초를 만든 학자의 이론을 가져와 단장취의하는 파렴치한 짓들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유사역사학은 역사학 자체를 오도하면서 역사 연구의 목적이 자국의 영광을 되살리는 것이라 현혹하고, 현재 시점에서 수치스러운 역사는 은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도한다. 또한 한민족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는 생각을 퍼뜨려 다른 나라 사람들을 깔보고 업신여기게 만든다. 이런 역사관을 가졌던 이들이 나치와 일본제국주의였다."(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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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19-03-11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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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유사역사학 비판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이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나서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철저하게 파헤친 좋은 연구서입니다.다만 내용이 통시적인 순서이고 매우 상세하여 너무 많은 인명과 단체명이 등장하는 등 복잡하게 느껴지네요. 유사역사학 비판서를 처음 접하는 경우에는 읽기 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관련 내용애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좋은 책이 없을 것 같아요.
개미핥기 2019-01-0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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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과 비뚤어진 민족주의



저자의 전작 <만들어진 한국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역사학과를 나온 저자는 인터넷에서 널리 퍼진 환단고기에 대한 분노로 유사역사학 혹은 사이비, 아마추어 역사가들과 싸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위서를 가지고 역사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으나 학계의 이런 반응 때문에 대중들에게 한민족 지상주의가 의외로 널리 퍼졌던 것을 보면, 학자들이 대중과의 소통에 노력을 많이 해야 할 듯하다.

동이족이 곧 한민족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은나라라는 주장은 많이 익숙하다.

환국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황당해 별 파급력도 없는 반면, 은나라가 동이족이고 곧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얘기는 그럴 듯해 보인다.

저자가 비판한 대로 고대 중국이 이룬 문화적 성과를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동북공정 못지 않은 동이공정이 아닌가.

민족의 역사를 허황되게 확대시키려는 극우파시즘과 유사역사학은 비슷한 점이 있는데 희안하게 좌파들도 좋아한다.

토착왜구라고 상대를 인신공격하고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태도는, 역사학자들을 식민사관에 매몰된, 친일파 이병도의 제자들이라고 몰아세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화랑세기>에 대해서도 저자가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이제 치우는 한민족의 조상이 아니고, 은나라 사람들도 동이가 아니며, 동이가 곧 한민족은 더더욱 아니며, 낙랑은 평양에 있었던 한나라의 군현이었으며, 백제는 요서땅을 경영한 적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알겠다.







<인상깊은 구절>

23p

유사역사학은 "뒷받침하는 증거나 개연성이 없는데도 주로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목적으로 제시되는 주장"이라고 정의한다.

47p

"사이비역사가들은 증거를 선별적으로 채택한다.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주는 증거만을 사용한다. 사이비역사가들은 논리 전개 과정에서 가능성과 개연성의 구분을 흐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일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났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에 '어떤 일이 개연성이 있다'고 할 때에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사이비역사가들은 하고 많은 증거 중에서 하필이면 예외적인 것에 주목한다."

56p

자신들만 역사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친일파와 노론에 의해 나라가 조종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학자(친일파와 노론의 앞잡이)를 증오하고 이들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믿으며 무책임한 인신공격을 가한다.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증거 하나만 대보라"고 요구하면서 증명의 부담을 자기 쪽에서 체제 쪽으로 돌리려 한다."

역사학은 단 하나의 증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증거들의 결합을 통해 귀납적으로 증명되는 학문이다. 이 증거들 가운데 한두가지 불일치가 존재한다고 해서 전체 결론이 무너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역사학가들은 증거의 수렴을 거부하고 자기들 주장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여 대중에게 알린다.

143p

역사학계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민족적 감정에 호소하는 주장을 늘어놓아 시민들을 현혹하는 것이 유사역사학이 행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했던 약점을 가진 이병도를 공격하고, 역사학자들은 모두 이병도의 제자라는 어이없는 프레임을 제시하며, 엄연히 존재하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역사학자들(이기백, 전해종 등)까지 친일파 사학자로 몰아간다. 오히려 친일 행적이 뚜렷한 최동이나 문정창 같은 이들의 주장은 잘도 이용하면서 때로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시미치를 떼기도 한다.

174p

유사역사가들이 증오하는 식민사학은 진작에 죽어버렸다. 오히려 죽은 식민사학을 살리려 애를 쓰는 것은, 그것이 살아야 적대적 공생 관계를 끌고 갈 수 있는 유사역사가들이다.

역사학계는 그동안 대중과의 소통에 힘쓰지 않은 점을 반성하고 더욱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통해 역사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해나가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240p

치우는 우리 민족과 아무 관계없는 중국의 전설 속 괴물에 불과하다. 치우가 높이 평가받게 된 것은 중국 한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황제의 적대자였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열등감은 집요한 보상 심리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황제의 가장 지독한 라이벌이었던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최소의 작업은 <규원사화>에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자부심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규원사화>는 치우를 우리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후손이 없는, 그러나 강력한 무력을 지닌 존재'는 후대에 이용해먹기 좋다. 유럽의 여러 국가가 트로이의 후손을 자처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똑같은 이유로 치우는 한민족과 묘족의 조상으로 둔갑해버렸다. 이를 첫 번째로 수행해낸 것이 바로 <규원사화>였다.

278p

고대 중국은 우리 민족의 역사로 윤색된다. 고대 중국이 이룬 문화적 성과는 모두 동이족이 해낸 것이고, 동이족은 바로 한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고대의 모든 국가를 한민족이 세웠다면 대체 중국사와 한국사를 구분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유사역사학은 '동북공정'보다 더 심한 '동이공정'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멸망했다. 왜? 그것은 조선이 유교 탓으로 문약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토에 엄청나게 집착하면서도 조선의 영토가 고려보다 더 확대되었다는 뻔한 사실조차 외면한다. 조선에 비하면 고려는 무수한 외침에 자주 시달린 편인데, 그런 점도 살피지 않는다. 일본에게 멸망당한 원죄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333p

일본제국이라면 능히 이런 짓을 할 만하다는 확신이 괴담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해왔다. 쇠말뚝 괴담은 결국 강한 상대에 대한 피해 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으며, 상대를 바꿔가면서 계속 살아남았다.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일제강점기의 일본인이 했던 짓들 때문에 우리에게 인재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증거도 없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허무맹랑한 미신을 일제의 만행으로 규탄할 때,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하고 규탄해야 할 만행은 오히려 잊힐 수도 있다.

372p

"전문 역사가들은 자기 영역을 그렇게 쉽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그들은 역사의 모든 풍부함과 복잡성 안에서 과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저기 바깥의 대중 영역에 있는 편향되고 틀리기까지 한 역사서에 맞서 싸워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의 지도자와 여론 형성가들이 역사를 악용해 거짓 주장을 강화하거나 어리석은 불량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을 용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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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9-06-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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