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4

스즈키 오오츠키 「일본적 영성」을 통해 # 265 | Man in the Mirror | 아세가 준

스즈키 오오츠키 「일본적 영성」을 통해 # 265 | Man in the Mirror | 아세가 준

수국
2021.9.4
스즈키 오오츠키 '일본적 영성'을 통해 #265
통합 이론 윌버 컴즈 의 격자 켄 윌버 반사 저널 불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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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오오츠키의 '일본적 영성'을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스즈키 오오츠키가 전하고 싶었던 생각은 무엇인가, 그 생각에 빠지게 되면, 윌버와 마찬가지로 영성(스피리츄어리티)을 되찾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야마토혼이라고 하는 그 근원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영성을에 ​​각성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적 영성은 뭔가 하면 무분별지.

이곳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이며, 대졸과 교류가 깊었던 니시다 기타로의 「선의 연구」와 같은 이야기로 생각한다.

그것도 처음이었고, 양자 모두 선이나 불교 개념을 배우면서 서양 철학을 배우고 그들이 어떻게 통합할지 주제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졸은 이 무분별지를 선이나 정토진종에 의해 언어화되어 민주화되었다고 하는데, 엄밀하게는 이것이 선이나 정토진종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확실히, 정토 신종이나 선이 태어난 가마쿠라 불교는 일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었지만, 원래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 머물고 있는 것.

그것이 일본적 영성으로서는 가마쿠라 불교라고 하는 역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만으로, 일본을 떠나면, 미국적 영성, 중국적 영성, 인도적 영성, 아프리카적 영성 여러가지 있어, 어느 종교도 그 토지나 민족에 맞춘 것이 되어 있는 것만으로, 근본의 무분별지라는 비이원의 세계는 공통된 진리로서 있다.

원래 우리에게 있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대졸도 이해하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은, 우선 일본적 영성이 있는 것을 주체에 두고, 그 위에 불교를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불교가 밖에서 와서 일본에 심어져 수백년이나 천년 이상이나 지나 일본적 풍토화해 더 이상 외국 도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일본 민족 속에 일본적 영성이 존재하고 있어, 그 영성이 우연히 불교적인 것에 체착하고, 자신 중에서, 그 본래구 유저를 현현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 여기에 일본적 영성의 주체성을 인식해 둘 필요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물

무분별한 지혜
대지성이란?
막망상이란?
윌버 정리
무분별한 지혜
다시 한번, 무분별 지치란 무엇인가. 분별은 개념이나 언어를 사용하여 사물을 이해하는 것.

사물은 언어나 개념이라는 어떤 종류의 단절된, 기호화된 정보에 한정되어 버린다.

눈앞에 있는 사과를 사과라고 명칭함으로써 다른 사과와 같은 사과가 된다.

이런 분별이 아닌, 세계의 전체를 포착해,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무분별 지치.

니시다 기타로의 말로 말하면, 주객 합일의 실존 그 자체에 접해 가는, 순수 체험을 하라고 하는 말에 해당한다.

우리가 사고를 사용하기 전의 그 순간, 직감으로서 잡고 있는 것이 해당된다.

그러므로 무분별이란 말을 바꾸면 직감으로 세계를 그대로 잡는 것.

영성, 영성이라는 말에 현대 사회에서는 혐오감을 안고 있는 말이지만, 그 인지는 앵무새 진리교와 강원 계지에 의한 부정적인 인상에 의해 오염되어 있어 본래 스즈키 오오츠키, 니시다 기타로를 비롯해 선의 세계에서도 소중히 여겨져 온 영성이 잃고 있다.

현대사회의 사람을 보고 법을 설한다면 영성이나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한다면 '직감'이라는 말이 좋을 것이다.

대지성이란?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니시다 기타로에게 조금 전해져 버린 적도 있어, 다시 스즈키 오오츠키의 「일본적 영성」으로 되돌리고 싶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대지성입니다.

생명은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뿌리는 아무래도 대지로 내려야 한다. 대지에 관계 없는 생명은, 진정한 의미로 살아 있지 않다.

 
영성의 안쪽의 원은, 실로 대지의 좌석에 있다

대지는 자신의 존재의 바닥이라고 한다.

여기서 대지가 나온다는 것이 기쁘다. 우리는 대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막망상이란?
막망상은, 망상(≒집착) 하는 것인가.

무분별하게 연결되는 개념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고 그 몸 그대로 상대방 가운데로 뛰어든다는 것이 일본 정신의 밝은 곳이지만, 영성의 영역에서도 또 이것이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영성은 실로 이 밝은 것을 가장 근원적으로 일으킨 곳에 나타나는 것이다. 밝은 마음, 청결한 마음이 의식의 표면으로 움직이지 않고 그 가장 깊은 곳에 침잠해 가고, 거기서 무의식적으로 무분별하게 허망상에 움직일 때, 일본적 영성이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

일본적 영성의 특질은 그 막망상의 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일본적 생활의 면에도 언제나 그것이 읽혀진다. 이것을 보통은 선사상의 침투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일본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적 영성이 선형태로 운위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실제로는 항상 뇌가 일하고 있어 어렵다, 사고를 하지 않고는 어렵다. 여기도 어떤 종류의 훈련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예는 마음 가득한 명상의 실천이된다.

이전 저널에서 쓴 과학과 종교의 그루브를 메우는 신경신학으로 쓴 것처럼 뇌과학적으로도 뇌의 작용이 다르다. 실천의 선물이다.

윌버 정리
다시 한번 이렇게 되면 켄 윌버의 메타인지는 무섭다.

즉 동양 사상이나 철학을 의식 ​​상태의 이야기로 하면서 서양에서 전개된 심리학을 의식 ​​단계로 삼는다. 윌버컴즈의 격자가 완성된다.

게다가 일시적인 변성의식이 항상적인 것으로 변하는 제3층의 세계에도 동양적인 세계를 가져온다.

또, 의식의 스펙트럼도 에서, 동양적인 세계를 가장 근저로 가져오는 정리는, 재차 잘 생긴 정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적 영성이라는 일본에 근차한 표현으로 잃어버린 영성을 말해 나가고 싶다.

2021년 9월 4일의 일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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