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4

「老子」を読んで。老子とインテグラル理論、2種類の悟り#153 | Man in the Mirror|阿世賀淳

「老子」を読んで。老子とインテグラル理論、2種類の悟り#153 | Man in the Mirror|阿世賀淳

「노자」를 읽고. 노자와 통합 이론, 두 가지 깨달음 # 153
통합 이론 윌버 컴즈의 격자 깨달음 동양 사상 노자 노장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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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기 시작했지만 굉장히 재미있다.

켄 윌버는 화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면서도 노자를 읽는 것으로 사상, 철학, 심리학으로 전신해 지금의 인테그럴 이론에 이른다.
노자가 계기가 되는 이유가 조금은 알았던 것 같다.

노자는 역설의 철학으로 생각한다.
약하지만 강하다
지는데
승리 천천히 빠르다
는 역설을 붙이고 있다.

하지만 노자의 진수는 여기가 아니라 타오(道)에 있다.

타오의 진리는 불교의 공성, 무분별지, 깨달음의 경지와 같다.

그 유사성으로부터, 도가 속에서 재미있는 설(노자화후설)이라고 하는, 노자가 인도에 가, 석가로 이름을 바꾸어 불교를 열었다고 하는 설까지 나올 정도.

그리고 중요한 키워드는 "무위 자연" .
아무것도 하지 말고, 모두를 하고 있다.

이 근처가 인테그럴 이론의 제3층의 세계관일 것이다.

비이원이라는 절대적 진리에 대해, 자신이 마음대로 일부를 잘라 인과관계를 만들고, 자신이 하고 있는, 자신이 일으킨, 자신이 이루었다는 추억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은 모든 현상이 상호 작용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로 모든 것이 무언가의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거나 생멸하고 있어 확고한 것은 없다는 공성.

그것을 언어, 생각, 분별에 의해 잘라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 남아 버리는 나나 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조차도, 새로 넘겨가는 것이 「
무위 자연」의 경지인 것이다.

자신의 사고가 아니라 대자연의 호흡에 맞춰 간다.
이것을 윌버가 큰 존재의 중첩으로 말하는 마음이 아니라 영혼이다.

이상의 인식이, 나의 이해, 해석, 지금의 의식을 통해서 태어난 산물인데, 제3층의
의식 구조에 대한 이해가 진행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의 이야기로 누르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이 무위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탈력계의 이야기가 되기 쉽고, 되기 쉽다고 할까 그런 것인데, 역시 의식 구조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 상태가 비이원, 즉 수평적인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ー(참고)ー
수직적인 깨달음, 수평적인 깨달음에 대해서는, 윌버컴즈의 격자를 참조.

이미지 1

주로 서양심리학의 성인 발달 이론으로 발전해 온 것이 의식 구조(레벨)이며, 수직적인 깨달음에의 길.
한편, 동양 사상으로 발전해 온 것이 의식 상태(스테이트)이며, 수평적 깨달음에의 길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

「학을 하면 매일에 유익하고, 길을 내리면 날마다 손해.

즉, 학문을 하면 말, 지식에 의해 분별이 늘어나고, 그것은 타오와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어 버린다. (무분별지에서 멀어진다.)

말, 분별을 줄이는 먼저 무위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 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사고(마인드)를 가리키고 있어, 지금에 집중할 수 없는 죄인 상태를, 메디테이션에 의해 정돈해 나가는 의식 상태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학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학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그것은 그것으로, 의식 구조로서의 발달, 즉 수직적인 깨달음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을 계속하고 있어도 제3층으로의 발달은 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마인드 자체가 한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깊고 넓게 자각해 가는 것으로, 제3층에 수직적인 깨달음을 열어 간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확실히 제3층에는 사고가 한계를 만드는 것, 틸 단계나 터키석 단계(통칭 비전 로직 단계)라는 제2층의 단계는 오히려 사고(마인드)야말로 발달에 필수적 할 수 없다는 것.

사고가 수직적인 깨달음에 대한 길을 걸어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 사고, 인지에 의해 분별이 늘어나는데, 한편 사고, 인지에 의해 분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말을 바꾸면 메타인지가 진행되어 물건들이 통합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사를 배우는 것.
알기 쉬운 예는 유발 노아 하라리의 사피엔스 전사를 통해
인류가 허구를 만들어 왔음을 이해한다.

국경이라고 하는 것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그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인, 한국인과 국경이라는 개념으로 분별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편의상 명명을 한 것만으로, 메타인지하면 같은 지구인임을 인지할 수 있다.

이렇게, 본래 지구인, 혹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였던 것을, 우리는 명명에 의해 분별하고 있었던 것에 역사를 통해서 알아차릴 수 있어, 지식, 인지, 사고는 통합에의 길을 진행시킵니다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이와 같이 사고(마인드)의 단련에 의한 인지의 확장이, 분별을 줄여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고가 수직적인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걸어준다.

지금까지의 의미, 인식이 없으면, 노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의식 상태의 이야기에 닫은 것.

오히려 의식구조로서의 발달을 멈추어 버리는 것처럼 착각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근처는 누르고 어색한 점으로 생각한다.

노자는 정말 깊은 것이 있고, 노자를 아직도 탐구하고 싶다.

2021년 5월 15일의 일기부터 2021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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