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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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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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숙  replied to 심국보's comment: "심국보 조지훈의 "한국휴머니즘의 원형과 특질"까지 잘 읽었습니다. 그 자료를 올려주시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카스트리에 공유합니다."
하경숙  liked Sunghwan Jo's comment: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유하겠습니다^^"
하경숙  liked 황문식's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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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숙동학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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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제우는 한국사상에 있어서 
             최대의 인물이라 할 것이다"]ㅡ조지훈
『동경대전』인제 초판본을 손에  쥔 그날, 2020년 10월 23일, 그날은 정말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금요일이었다. 내가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게 된 인연 자체가 나의 생명의 빛줄기가 최수운의 삶과 만나게 되는 희연(稀緣) 중의 희연이었다. 나는 본시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대학에 들어가 신학을 공독(功讀)했다. 그러다가 유전제(有前提)의 신학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무전제(無前提)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진리에 접근하는 첩경이요, 정도라는 생각이 들어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즉각 실천에 옳겻다.
당시 철학이라 하면 무조건 서양철학이었고, 신학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칼 바르트를 버리고 버트란드 럿셀을 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내가 입학한 1960년대의 고려대학교 철학과는 사정이 달랐다. 고려대학교 철학과는 "민족대학"이라는 자부감에 걸맞게 동양철학과 한국사상의 본산으로서의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서양철학 수업이 부실했던 것도 아니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이 빵빵하게 "한국사상"이라는 독자적 학문영역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철학사 일반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천재형의 인간, 신일철과 아주 고지식하며 정확한 문헌학의 정도를 추구하는 칸트철학 전공자인 최동희, 이 두 분을 모시고, 천도교의 자금지원을 얻어 한국사상연구회를 조직하여 『한국사상』이라는 학술연구잡지를 내기 시작한 것이 단기 4292년(1959) 8월이다. 그 최초의 판본이 나들나들 곰팡이 슬은 채 내 서재에 꽃혀있다. 그 창간호에 시인 조지훈은 "한국사상의 근거"라는 호쾌한 글을 게재했는데, 대강인즉 다음과 같다. 
"실학운동이 서학운동으로 변질되면서 민족 내부에서 일어난 커다란 사상이 있었다. 외래의 종교와 외래의 사상을 포섭하여 하나의 자체적인 종교사회사상을 이루었으니 이것은 한국사상사에 있어서 세종 때의 사상적 흐름에 비견할 바 있다. 이는 최제우가 창도한 것이다.
그는 한국종교사의 거인 원효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서울 경주에서 출생하였다....................그는 유교는 명절(名節)에 구니(拘泥)하여 현묘(玄妙)의 역(域)을 모르고, 불교는 적멸하여 인륜을 끊고, 도교는 자연에 유적(悠適)하여 치평(治平)의 술을 모르니, 이 삼교의 단소(短所)를 버리고 장점을 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
이들은 지상천국의 건설에 3대개벽을 전제한다. 첫째, 미신, 우상 편견, 이기 등, 개성의 해악과 정신적 질병의 퇴치인 정신개벽, 둘째, 민족은 전 인류사회의 집단적 단위이므로 지상천국의 건설은 과정상 민족생활에서부터 개선된다.그러므로 민족해방의 개벽. 셋째, 개성과 민족의 해방은 인류평화 상호부조의 사회개벽에 이른다.
그 교리의 출발이 한국에서 받은 천명이므로 한국민족의식이 강렬하였기 때문에 우리역사상 잊지 못할 3 · 1혁명(3 · 1운동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을 주도한 세력이 천도교였고, 그 중심인물이 교주 손병희였음은 다만 우연한 일이 아니다. 최제우는 "한국사상에 있어서 최대의 인물"이라 할 것이니, 그 사상은 {이 민족정신 문화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주체를 발양한 것}이기 때문이다. 
  (!! 특히 {  }안의 글에 주목하여 진지하게 음미된다.)
이 민족을 위한 바른 이상의 싹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현실에 직접 연결된 살아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학의 연구는 "현대 한국사상연구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천도교는 비종교(非宗敎)라고도 하고 사상단체라고도 말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이러하다.
인간생활의 전체다. 감정생활의 비현실적 자타의 일부면(一部面)이 아니다. [ 모든 문화를 혁신하는 운동이야말로 그 시대의 종교운동이다. ]
나는 말한다. 동학은 이전의 개념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종교이다."ㅡ조지훈
[도올]
내가 다닌 고려대학철학과는 이러한 분위기로 육중하게 다져져 있었다. 신일철 선생도 틈틈이 서양철할 강의 속에서 동학을 말하였고, 최동희 교수도 칸트철학을 강의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최수운의 발상의 특이한 면을 비교론적 시각에서 강론하시곤 하였다. 나는 동학을 이렇게 만났다. 1970년에는 고대 철학과에서 최초로 "한국사상"이 개설되었고, 나는 그 강좌의 첫 수강자였다.
           ㅡ도올의 『동경대전』에서


하경숙동학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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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이 없었다면 20~21세기 우리역사의 
         진취적 기상은 없다.! ]
"우리민족의 성경, 『동경대전』!!!
최초의 판본발견"이라고 주요 일간지 제1면 전면을 때려도 시원찮은 사건이 침묵 속에 흘러갔다. 초각판을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삼암장은 저승의 객이 되었고, 나도 당시 삼암장 뒷바라지를 좀 해드리다가,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에 몰빵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학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통탄스러운 사실은 논문작성자의 겸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학" 그 자체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민족 지성계의 몽매성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조선왕조를 끝낼 수 있었던가?
일제의 강탈에 의한 것일까? 아니다!
일제의 침탈로 조선의 왕정은 막을 내렸을지라도, 우리민족의 심성을 물들여온 조선왕조의 멘탈리티는 단절될 길이 없었다. 동학이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는 일제를 끝내고 우리의 주체적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까? 과연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명시된 3 · 1운동의 대세를 주도한 주축세력이 과연 누구였던가? 
해월이 육군법원에서 처형될 때 그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물었다. 해월은 이와 같이 말했다. 
    "내가 죽은 후 10년 후에 시천주 주문 소리가 장안을 진동시키리라!
우리의 모든 근대정신(구태여 "근대"라는 말로 표현될 이유가 없지만 방편적으로 쓴다), 컨템포러리한 개명정신의 근원은 동학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21세기 조선대륙문명의 진로도 동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동학은 난(亂)이 아니요, 그렇다고 하나의 정치사적 혁명사건도 아니다. 
전봉준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백산기포는 21세기에도 귾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그 모든 혁명의 계기에 일관되고 있는 것은 역사적 수운의 정신이요 육필이며 그것을 공감한 우리민족의 혼백의 흐름이다. 이 모든 것이 『동경대전』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최초의 목활자본이 인제 갑둔리 초판본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수운과 해월의 핏물로 인출된 것이다. 『동경대전』이 없었더라면 동학은 사라졌다. 정치혁명의 기록만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한들 그것은 "태평천국의 소요" 이상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동학은 혁명을 넘어선 개벽을 말한다. 현세의 개벽을  넘어서는 지고의 미래비젼을 말한다. 동학은 눈물이요 빛이다. 수운 자신이 육필로 쓴 수고를 상재하려 했던 그 심정, 그리고 그 심정을 헤아린 해월의 고투의 역정, 이 영원히 살아 생동하는 입김이야말로 지금부터 우리가 읽고자 하는 『동경대전』의 실상이다.
                  도올의 『동경대전』1권에서
하경숙동학하는 사람들
26tS SoiMayp uaouneltflrsoerugd 0e9dor:2S4  · 
☆♧물구름과 바닷달 VS 
                 용담에서 대해로
수운이 해월에게 도통을 전할 때 써서 주었다고 하는 詩가 한 구절 남아 있다.… See more
하경숙동학하는 사람들
2tSepS1f MauoiyS noastmd o1redmg9Se:5ao8s  · 
우리는 동학하면 언뜻 녹두장군 전봉준을 떠올린다.동학을 구한말 정치혁명의 중심테마로 인식하게 만든 장본인이고,민중의 신념으로서의 동학을 조선의 역사를 핏빛으로 물들인 혈원으로서  찬란한 광채를 발하도록 만든 민중의 리더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심오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다.정치사적 표층의 소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전봉준은 어디까지나 해월이 건축한 동학전국조직의 한 로컬 리더였다는 사실이다.
전봉준은 해월이 닦아놓은 거대하 평원 위에 피어오른 한 불씨였다. 그 불씨가 온 대지를 불사르고도 남을 맹렬한 것이겠지만,그 작은 불씨와 거대한 대지 그 자체를 혼동하는 것은 역사를 바르게 기술해야 할 사람들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나는 녹두장군의 위대성을 조금도 폄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이야기"이고, 해월의 삶이 이룩한 가치의 한 결정이다. 그것을 "남접"과 "북접"이라는 터무니없는 후대의 방편적 기술에 근거하여 마치 북접의 리더는 해월이고, 남접의 리더는 녹두이며, 이 양자가 대립한 것처럼, 역사를  바라보는 무지스럽고 천박한 견해들은 깨끗이 불식되어야 마땅하다. 해월은 오직 수운, 큰 선생님의 가르침이 온 누리에 펼쳐져야 한다는 신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그러나 녹두주변의 진취적 세력들에게는 민중의 고난이 너무도 절박하고 또 핍진한 것이었다.
자아 이야기가 자꾸만 곁가지로  빠지는 느낌이 드는데, 해월의 《동경대전》발문에 숨어있는 의미의 맥락을 독자들에게 명확히 인식시키기 위한 나의 고충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해월은 조선역사의 장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장기 도바리꾼이다. 그런데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자가, 그것도 집중적인 추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햇수로 35년의 세월 동안,그것도 꼼짝달싹하지 않고 숨어 있기만  숨어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조직과 교세를 확대해나가는 위업을  성취하는 와중에, 단 한 번도 검거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도바리꾼이 잡히는 대부분의 이유는 관군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결국 내부에서 밀고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해월의 삶에서 내가 가장 고개를  숙이게 되는 부분은 그의 생애에 단 한 명의 밀고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해월은 지극히 초라한 행색으로 단촐하게 다닐 수밖에 없었다. 수운이 호쾌한기색을 느끼게하는 남성성이 강한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해월은 강단은 있으나 좀 여성적인 인품의 소유자였다.그러나 해월에게는 압도적인 성자의 기품이 있었다. 누구든지 해월 앞에서는 인간적인 따스함과 동시에 성스러운 카리스마를 느꼈다.그를 보는 순간,범상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복으로 느꼈다,
해월이 마지막으로 강원도 원주  송골에서 잡힐 때는 그는 피체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의 시기를 명예롭게  선택한 것이다. 더 이상 자연수명을 유지시킨다는 것이 무의미했기 때문에 중요한 후계자들을 다 피신시키고 결박을 선택했다. 소크라테스도 최수운도 해월도 모두 죽음을 삶 속에서 실현했다.ㅡ도올의 《동경대전》에서 발췌
하경숙동학하는 사람들
2tSepS1f MauoiyS noastmd o1redmg8Se:4ao0s  · 
♡ [ 해월의 도바리 : 우리
             역사의 최대사건 ]
해월은 한국역사에서 특이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최장기 도바리 꾼이다.
해월은 19세기 후반 조선왕조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꼬박 35년 간이나 (1864~1898) 도바리 생활을 했다.… See more
하경숙동학하는 사람들

tm1nt8siS May erpautS ocn0sorhed7:rmft1t0  · 
<목천계미중춘판 해월 발문>ㅡ최시형
오호라! 우리 수운 선생님께서 동학의 가르침을 펄치실 당시로부터 이미 그 성스러운 가르침이 잘못 전하여질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계해념에 이르렀을 때 수운 선생님께서는 나 시형에게 친히 이 『동경대전』의 원고를 건네주시었다.
(於戱!  先生布德當世 恐其聖德之有誤 乃及于癸亥, 親與時亨)
위 발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경대전』 상재 역사상 최초의 발문으로서 궐후 판본들에 쓰여지는 발문의 프로토타입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발문을 통하여 『동경대전』 간행과 관련된 초기정황에 관한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을 여기 번역하여 놓는다.ㅡ도올
수운과 해월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사계의 학자들이 "도통전수"라는 주제를 놓고 그 정통성의 시비를 운운하는 방식으로 양인의 관계에 관하여 소음을 빚어내고 있다. //수운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해방"이었다. 인간을 자기가 창도한 조직 속에 "가두려는" 의도가 전무했다. ...............따라서 "도통"이라는 것도 근원적으로 의미 없는 짓이었다.
수운에게 해월은 문자그대로 "순결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수운을 사랑하고 따르고 배우는 허심한 인간이요, 지식의 옹벽이나 편견이나 아성의 아이넨티티가 없는 소박한 인간일 뿐이었다. 수운은 해월의 지식을 보지 않았다. 수운은 해월의 우주적 통찰과 순결한 인품을 곰감하였다.
그들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 "도통"이라는 것은 실제로 "수운 수고(手稿)의 침재(鋟梓)에 관한 약속이다. 이 약속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其人)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수운의 통찰력은 진실로 놀라운 것이다. 
그의 주변에 그토록 쟁쟁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고, 지식이 빵빵한 사람도 많았지만, 수운의 눈에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은 소박한 화전민, 마북동 검등꼴 산중 마을에 사는, 자기보다 불과 세 살 어린, 지식인의 교육을 받지 못한 너무도 소박한, 너무도 인간적인 그 사람 최경상이었다. 최경상은 불과 3살 위인 수운을 하늘처럼 모시었다. 최경상이 수운을 특별히 숭배하고 따랐다는 얘기가 아니라, 최경상은 모든 인간을 하늘처럼 모실 수 있는 인품의 절박성을 그의 가슴바닥에 깔고 살았다는 사태가 먼저 인지되어야 한다. 
그 모든 도약의 깨달음의 계기를 최경상은 수운과의 몇 번의 만남에서 일거에 마련하게 된다. 그것은 우주의 섬광이었다. 지식이 아닌 직관이엇고, 훈육이 아닌 천성의 교감이었다. 진실로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천명(天命)이었다. 
한 사람은 치열한 지식의 축적 속에서 대오를 얻어 지식을 초월한 각자(覺者)였고, 한 사람은 개념적 사유에 오염됨이 없이 生生하는 천지 속에 고존(孤存)하는 개방된 자연이었다.
          도올 <동경대전>1권)에서
하경숙 shared a post.
tm1nt7siS May erpautS ocn1sorhed2:rmft4t7  · 
하경숙
2t3S Npoolultcgenveumsbecmrgeloc 2dr0fte2d0d  · 
*동학주문 21자의 의미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 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至氣今至 願爲大降 侍 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화이트헤드의 '영원한 객체'에 관한 
           탬 헌트와 매트와의 대화 
[ 탬 헌트 ]  그러나 현실 계기들의 사회는 당신과 화이트헤드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영원한 객체들(동학주문의 '천주의 '외유기화'들)"이 없어도 (그러나 항상 매순간마다 변화하면서) 시간에 걸쳐 이 계속성을 성취할 수 있지 않은가?
더욱이 일반적으로 시간에 걸쳐  이런 종류의 계속성은 화이트헤드가 "존속하는 객체"라는 것으로 의미하고자 하는 바의 그것이 아닌가? (그것은 영원한 객체들과 다르고 "인격적 질서"를 가진 사회들이다.)
[ 매트 ]  화이트헤드는 상당히 명쾌하다. 현실 계기들의 사회를 인격적 질서(인걱적으로 질서지어진 사회들은 존속하는 객체들의 특별한 케이스다)를 가진 '영원한 객체'로 한정하는 것은 그것은 발생적 계승이라는 역사적 경로를 거쳐 이 계기들이 반복적으로 진입하는 영원한 객체들(천주의 '외유기화들')의 복합적 배열이다. 인격적으로 질서지어진 사회를 포함하고 있는 임의의 계기들의 사회의 공동 형상은 그것의 한정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영원한 객체들(천주의 '외유기화들')'의 계승된 배열에 의해 제공된다. 
[ 탬 헌트 ]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제공한 영원한 객체들의 한 예인 저 "짭쪼름함"이 당신에겐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명백한 세계보다는 다른 영역에 속하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실재의 특징들은 우리의 행성인 지구 위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조건들로부터 발생한 더욱 더 우리 우주의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특징들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 실재와 좀 더 일반적으로는 불변하는 "영원한 객체들"(천주의 '외유기화들')로서의 실재에 대한 그러한 특색들에 대해 긍정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매트 ]  "찝쪼름함"은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단순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복잡한 영원한 객체들(외유기화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영원한 객체들의 형이상학적 역할을 당신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최선의 사례는 아니다. 수학적 객체들은 플라톤의 형상과 같은 어떤 것의 필연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우를 거의 확실하게 제공하고 있다. 당신은 자연계의 어디에서나 "돌이됨"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자연계에 참여하고 있는 끝도 없는 "둘이 됨"을 발견할 것이다. 두 마리의 새, 두 개의 돌, 두 사람, 두 손가락, 두 개의 매우 다른 객체들은 당신이 어떠한 이유로든 무리를 지으려고 결정한 것들이다. 그러나 "돌이 됨"의 관념 자체는 이들 독특한 사례의 어떤 것에 의해 포획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가? 
    ( !! 여기에서 심오함의 경전적 준거는 "음양상균 수백천 만물화출 어기중 독유인 최령자"이다. 여기서  '음'과 '양'은 '둘'이며 이 둘의 "균화"는 수백천 만물이 화출(化出)되어  나온 형상이 바로 '자연계'라는 것이다. . 그 중에도 최령자(최고의 영을 가진 자)는 오직 '인간"뿐이다"라는 뜻이다.)
명목론자들은 다른 수학적 관념들처럼 둘이 됨은 임의적으로 발명된 상징의 관습적인 사용으로부터 도출되는 하나의 이름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에서 화이트헤드를 포함하여 수학자들 대부분은 이 개념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며 수학의 역사는 발명된 상징들로 환원될 수 없는 진정한 발견들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수학자들은 그들의 관념들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들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수학적 형식들과 관계들은 그러한 상징들 이상으로 더 많다. 
"짭쪼름 함"과 같은 복합적인 영원한 객체는 염화나트륨 분자들의 결정체와 감각 기관들의 진화의 진입을 위한 다른 많은 요소들에 의존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그 중요성과 실제의 이들 요소들의 우선순위를 거부하지 않지만, 그는 현실태의 영역에 따르는 가능성의 영역에 합당하지 않은 정합적인 형이상학적 도식을 수용할 수 없었다. 
"정합성"이란 화이트헤드에게는 가능성이나 현실성이나 모두 타자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ㅡㅡM. 데이비드 시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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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숙
1tr5 rioSeMay raptoiao an1sm6origSdh:l32ed  · 
!!동학(東學)은 東의 學이 아니다!!
도올의  『동경대전』 1, 2권을 사들였다. 열흘 만에 제1권을 펴들었다. 책 표제에 
     "나는 코리안이다." 라는 도올 자신의 짤막한 선언과 함께 다음 장을 넘기니 
 "개경지축(開經之祝)"이라는 서두에 잠시 멈추었다. 뭐지? 스스로 동경대전을 집필하게 된 데 대한 자축인가?...........아무튼 우선 가볍게 읽어볼려고 하다가 내 뇌리에 각인시키고 싶은 글귀들에 유의가 되어 결국 펜을 들었다. 평소의 주목되는 구절을 필사하는 버릇이다. 도올의 동경대전의 첫글귀부터 연속적으로 그냥 읽어넘기기에는 너무나 설득시키려는 약동하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특히 놓치고 싶지않은 구절만 복사하여 그대로 올려본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어서 맛보기로 >>>>>>>>>>
    [ "동학은 동의 학이 아니다."]
즉 그 동이 西에 대응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서는 우리민족사의 도도한 흐름의 최근 어느 시점에 끼어든 덧없는 손일 뿐이다. 동학의 동은 서의 상대가 아니라, 서의 침략에 자극받아 일어난 조선혼의 총체이다. 이 "땅"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수운은 말한다. 
서구의 근대가 낳은 것은 터무니없는 진보의 신념, 인간의 교만, 서양의 우월성, 환경의 파괴, 불평등의 구조적 확대, 자유의 방종, 과학의 자본주의에로의 예속, 체제(System)의 인간세 지배, 민주의 허상.............이런 것들의 안착일 뿐이다.
   ["동학은 혁명인 동시에 개벽이다."]
그것은 근대를 맞이하는 운동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웁게 살아가는 대도(大道)를 제시한 것일 뿐이다. 모든 인간이 인간다웁게 살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느님이 된다는 것"과 "하느님을 모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명제이다]
즉 인간의 참다운 평등과 조화는 오로지 황제적인 신이 사라질 때만 가능한 것이다.  동학에 관한 그대로의 진실한 기술 앞에서 눈물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기존의 세계문명에 염습되어 있는 모든 유치함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동학은 유구한 조선문명의 총화이며 인류의 미래 이상이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앞으로 닥칠, 수없는 혁명을 위하여 이 한 권의, 더 없이 원전에 충실한 해석이 우리민족의 여여(如如)한 실력을 다시 깨닫게하고, 남북통일은 물론, 세계사의 주역으로서 웅비하는 발판이 될 수 있기를 앙망한다. 
                  2021년 3월 뜨락의 매화가 열 개쯤 피었을 때
                                     도올 김용옥 쓰다.
9 comments
류성수
풀이에는 글풀이가 있고
뜻 풀이가 있습니다
지식은 글 풀이를 하고…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