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보다 백합 썩는 냄새 지독”
김종철 발행인 “재물 집착은 정신 빈곤 드러낸 것”
2016년 08월 05일 (금) 10:19:57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 경향신문 캡쳐
“공양이라는 말로써 우리가 매일 습관적으로 먹는 밥이지만 그때마다 이것이 얼마나 거룩한 희생의 산물이지를 우리가 기억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전통을 세우고 계승한 것만으로도 한국불교 공로가 크다.”
김종철 발행인(<녹색평론>)이 3일 <경향신문> ‘수하한화’ 코너에 게재한 ‘백합이 썩을 때’ 제하의 글이 대중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이 글을 읽은 황찬익 전 봉은사 종무실장은 “따귀를 얻어 맞은 듯하다”고 했다.
공양, 보살로 살겠다는 의지
“절집에서는 밥을 공양이라고 말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왜 그렇게 부르는지 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은 ‘자연과 뭇 중생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보살로서 살겠다는 의지와 깨달음을 얻겠다는 의식’이 공양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즉 ‘발우공양’을 줄인 말이 공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밥을 공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내가 확실히 납득한 것은 그게 공희(供犧)와 같은 말이라는 것, 그리고 공희란 산스크리트어 야즈나(yajna)의 번역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김 발행인은 “우리의 생명·삶은 누군가가 내게 바치는 희생 없이는, 그리고 동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바치는 희생 없이는 한순간도 영위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밥은 쌀로 짓지만, 쌀은 땅과 하늘, 바람과 구름과 비의 ‘자기희생’, 농부와 그 가족의 헌신적인 땀, 그리고 그들 이웃과 공동체의 노고와 협력이 없으면 단 한 톨도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고, 밥 한 그릇을 알면 만사(萬事)를 안다고 하는 것이다”고 했다.
절집 이상하게 변해버려
김 발행인은 “이 모든 것은 불가(佛家)에서는 원래 극히 낯익은 상식이었다. ‘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天地同根萬物一體)’이라든지 ‘세상은 순환하며 뭇 중생을 살린다(空界循環濟有情)’ 등 표현은 모두 그러한 근원적인 생명사상·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고 했다.
이어 “한국불교의 공로가 크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적어도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일개 종교가 아니다. 사람이 겸허한 마음으로 단순·소박하게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실천적 지식·사상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절집이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나는 산중 사찰들에 즐비한 자동차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척 편치 않다. 게다가 한국불교의 기둥이랄 수 있는 조계종에서는 선거 때마다 금품이 난무한다는 소문이고, 동국대에서는 비리 혐의를 받는 총장(스님)이 외려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과 교수를 탄압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김 발행인은 “며칠 전 미국인 출가자 현각 스님이 한국과 인연을 끊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돈을 너무 밝히고 권력자에게 굴종적인’ 한국 사람들에게 질린 모양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범부들이라 할지라도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적 빈곤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하물며 출가 수행자들이 돈과 권력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너무나 서글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김 발행인은 셰익스피어의 “백합이 썩을 때 그 냄새는 잡초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는 말로 글을 끝냈다.
<기사 제공 = 불교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