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2

알라딘: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 의식 연구의 권위자 최준식 교수 최고의 강의





알라딘: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 의식 연구의 권위자 최준식 교수 최고의 강의

최준식 (지은이) | 시공사 | 2015-05-22

 품절 확인일 : 2023-04-26





정가 14,000원
판매가 12,600원 (10%, 1,4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마일리지


반양장본 | 296쪽 | 152*223mm (A5신) | 535g | ISBN : 9788952773777



9.1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무의식에 귀 기울여라! 의식 연구의 권위자 최준식 교수는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의식에 귀 기울일 것을 강하게 제안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못하고 삶의 방향을 잃는 이유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내가 제자리에 있기만 하면, 방향을 잃을 일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바로 우리가 얼마나 비주체적으로 살고 있는지 짚어본다. 저자는 심리학이나 인접 학문 분야의 실험과 이론들을 인용하여, 우리가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휘둘리는지 또 그것을 의식하는지 보여준다. 후반부는 최면의 역사와 원리, 실제 최면의 진행 과정 등을 보여준다. 최면에 관한 수많은 오해들을 풀고, 우리가 이 최면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바로 무의식에 다가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내는 것이다.





들어가며

1장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앵무새 같은 사람들 | 인습적 인간과 후인습적 인간 | 비본래성 | 자신은 물론 남까지 흔들어대는 사람들 | 무모한 간섭이 가져오는 나쁜 결과

2장 최면을 통해 본 우리의 모습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인간 | 인간은 모두 최면에 걸려 있다 | 사회가 우리의 생각을 결정한다 | 자극과 의식 | 마음은 물리적 법칙을 초월한다

3장 심리학 실험을 통해 본 우리의 모습
애시의 동조 실험 | 자아를 무력화하는 세뇌의 진실 | 사이비종교의 생명이 오래가는 이유 | 우리의 고정된 마음

4장 권위에 터무니없이 약한 우리의 모습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 외부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 |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작은 독재자 | 히틀러도 사실은 소심한 인간일 뿐 | 전쟁과 복종 | 짐바르도의 죄수와 간수 역할 실험 | 최면과 역할 | 비주체적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

5장 진짜 나를 찾기 위하여
인본주의 심리학의 탄생 | 매슬로의 욕구 단계 | 순수한 행복을 찾는 방법

6장 무의식에 다가가기
무의식으로 가기 전에 |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 | 융과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 | 마음의 구조 | 무의식은 지혜의 창고다

7장 최면, 그 오해와 진실
최면에 대한 이미지는 왜 좋지 않을까 | 최면을 정통 의학으로 인정하는 미국 | 프로이트와 최면 |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는 최면법 | 최면은 수면이나 무의식 상태가 아니다 | 최면은 위험하지 않다 | 그 밖의 오해들

8장 최면의 역사
최면의학의 역사 | 최면의학계의 도인, 밀턴 에릭슨 | 에릭슨의 상담 이론

9장 최면과 무의식
의식과 무의식 | 무의식 탐색 수단으로서의 최면 | 에릭슨이 제시하는 최면의 과정 | 에릭슨식 최면치료법

10장 최면의 진행
최면감수성을 측정하는 방법 | 최면의 단계들 | 유도 단계 | 탐구 단계

11장 실제 최면 현장을 찾아서
내담자의 증세에 대한 일차적인 판단 | 네 번의 최면 | 무의식으로의 초대

마치며







P.31~32
왜 우리는 항상 남에게 호기심을 갖고 잡담만 일삼을까? 그것은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보려면 지혜와 용기 등이 있어야 한다. 지혜와 용기 같은 덕목을 갖추지 않으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은 고역이다. 아니 아예 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존하지 못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남의 눈치를 살핀다. 내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않아서 항상 남에게 기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것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독존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혼자만 ‘중뿔난’ 그런 독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조하되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그런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 범부들은 이와 같은 양식으로 독존하지 못한다. (…)
어디선가 익명의 바람이 불면 자기도 모르게 바람이 부는 대로 눕고 중심을 잡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이유도 잘 모르면서 왔다 갔다 하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면서 산다. 한평생을 이렇게 갈팡질팡하며 살다가 어느 날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다. 이게 보통의 우리들이 사는 삶이다. ■ 1장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_ 비본래성
P.55~56
예컨대 우리 한국인들이 장례식장에서 보이는 반응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아주 흡사하다. 우는 소리나 외마디 소리, 그리고 동작까지 매우 닮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외가 없다. 장례식장에서 한국인들이 보이는 태도는 일본인이나 미국인의 그것과 대단히 다르다.
상을 당한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긍정적으로 보면, 이런 태도는 인간이 슬픈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관례를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너무나 슬픈 나머지 자신의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례를 따라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다(사실 인간은 어떤 표현을 하든지 그것은 사회에서 학습된 것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남(혹은 사회)이 자신을 대신 해서 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슬픔을 표현하다가 자신의 진실한 내면적인 감정을 만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삶의 끝까지 사회에서 정해준 관습대로 간다. 그게 편하고 무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철저하게 남을 내 속에 넣고 살고 있다. ■ 2장 최면을 통해 본 우리의 모습_ 사회가 우리의 생각을 결정한다
P.82~83
이렇게 세뇌당한 것은 나중에 지우려 해도 잘 안 된다. 그러니까 프로그램된 것을 ‘디프로그래밍deprogamming’하는 것인데 이것이 생각 같아서는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이미 세뇌 내용이 피실험자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서 이것을 풀어버리려고 하면 당사자가 큰 저항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한번 세뇌당한 사람들은 그것을 풀어버리기보다는 그냥 간직하고 살게 된다.
우리는 주위에서 한번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이 그 종교가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켜 괴멸된 다음에도 그 종교를 계속해서 믿는 현상들을 목격할 수 있다. 그가 해당 종교를 계속해서 믿게 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령 그동안 이 종교에 함몰되어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했던 터라 사회에 재적응하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 종교의 교리가 너무나 강하게 프로그램되어 있어 그것을 지우는 것이 불가능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전의 가치관을 계속해서 고수하는 것이다. ■ 3장 심리학 실험을 통해 본 우리의 모습_ 사이비종교의 생명이 오래가는 이유
P.160~161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은 프로이트 당대부터 시작된다. 이를 첫 번째로 시도한 사람은 칼 융이었다. 융은 프로이트가 제기한 성욕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융이 바라본 인간의 무의식은 성욕 이상이었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가 바라본 무의식은 인류 지혜의 보고이자 원천이었다. 그는 집단무의식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집단무의식이란 융이 착안한 것으로서 개인적 무의식보다 더 심층에 존재하는 것이다.
융에 따르면 인간의 집단무의식에는 인류가 생긴 이래로 전승되어 내려온 수없이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 그동안 인류가 경험한 것들이 모두 이 무의식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무의식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특히 인류가 지금까지 터득해온 최고의 지혜가 있다.
예를 들어 이 무의식 안에는 융이 말하는 원형, 즉 아키타입archetype이라는 이미지 혹은 개념이 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개념인데 거칠게 말해서 인류의 생각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 6장 무의식에 다가가기_ 융과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
P.173~174
최면의 대가인 밀턴 에릭슨Milton Erickson?신프로이트학파의 대가인 에릭 에릭슨이 아니다?의 주장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에릭슨은 최면학계에서도 매우 독특한 인물로 전통적인 최면기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에 따르면 각 개인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능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이런 자원들의 많은 부분이 실제의 경험으로부터 해리되어dissociate 있어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자원들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무의식에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에릭슨에 의하면 무의식은 창조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의식과는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 개인의 심리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에릭슨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당신의 의식적 마음은 매우 지혜롭지만 당신의 무의식은 더욱 지혜롭습니다.” ■ 6장 무의식에 다가가기_ 무의식은 지혜의 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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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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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한국사)을 전공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종교학 박사). 1992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 폭넓은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국제한국학회’를 만들어 김봉렬 교수(2018년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나 고(故) 오주석 선생 등과 같은 동학들과 더불어 한국 문화를 다각도로 연구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단법인 ‘한국문화표현단’을 만들어 우리 예술문화를 공연형태로 소개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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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무의식에 귀 기울여라!
무의식이 알려주는 당신의 진짜 마음

의식 연구의 권위자 최준식 교수가 무의식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프로이트, 융은 물론 20세기 세계 최고의 최면치료 전문가 밀턴 에릭슨의 연구를 통해, 의식과 분리된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한다.
문득, 밑도 끝도 없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니 원하는 게 있기는 한지, 말하자면 ‘내가 나를 잃었을 때’ 말이다.
그렇다고 멍하니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일단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기왕이면 행복하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책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의 저자 최준식은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의식에 귀 기울일 것을 강하게 제안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못하고 삶의 방향을 잃는 이유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내가 제자리에 있기만 하면, 방향을 잃을 일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것.
이 책의 전반부는 바로 우리가 얼마나 비주체적으로 살고 있는지 짚어본다. 저자는 심리학이나 인접 학문 분야의 실험과 이론들을 인용하여, 우리가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휘둘리는지 또 그것을 의식하는지 보여준다.
굳이 저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평소에 우리가 하는 생각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의해 형성된 의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독자적인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금 달리 말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나 일은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라기보다 주위에서 그런 생각이나 일을 하라고 부추겼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의식을 조금이라도 잠재우면, 주위의 간섭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무의식이 깨어나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생각하게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최면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최면의 역사와 원리, 실제 최면의 진행 과정 등을 보여준다. 최면에 관한 수많은 오해들을 풀고, 우리가 이 최면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바로 무의식에 다가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내는 것이다.
이 책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지만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남을 의식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제 무의식에서 진짜 나를 찾아보자.


의식 연구의 권위자 최준식 교수가 말하는
‘나’를 찾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

저자는 우리가 지금처럼, 자신이 자신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려 살면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말한다.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취해 살면 노이로제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이로제는 주체성이 심하게 훼손 혹은 침해되었을 때 걸리는데, 이렇게 되면 심하게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남들이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고, 자꾸 자신이 신경 쓰인다. 자기 자신이 자꾸 의식되는 것은 자기가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노이로제의 증상들은 바로 이렇게 빼앗긴 자기를 찾아오라는 지시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 같은 것을 통해서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 같은 일반인이 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이에 저자는 일반인들도 쉽게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면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바다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보면 그 표면은 파도가 항상 출렁거리고 있다. 그래서 저 바닷속이 잘 안 보인다. 이때 출렁거리는 표면이 바로 우리의 의식 세계를 나타낸다. 우리의 의식 혹은 생각은 언제나 남에게 휘둘리고 있고 잡념이 많아 출렁이고 있다. 보통 때에도 이렇게 출렁이고 있어 그 속이 잘 보이지 않지만, 흥분이라도 하면 격랑에 휩싸여 우리의 깊은 마음속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그것을 알려면 의식이 평온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밑에 있는 무의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최면은 현재 많은 오해를 받고 있지만, 저자에 따르면 사실 최면은 인류가 자신의 무의식 세계와 만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써온 방법이다. 최면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들지도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고, 약간의 지식과 전문가의 도움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최면에 들어가 자신의 무의식과 조우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최면은 간단하게 보면 3단계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순서대로 보면 ‘유도?탐구(혹은 암시)?각성’의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인 최면 유도는 내담자를 서서히 무의식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도는 내담자의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주 많이 사용하는 최면유도법 중에는 강한 암시를 주어 손을 올리고 내리게 하는 것이 있다. 이때 최면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유도문을 제시한다. ‘손이 풍선처럼 가벼워진다?가벼워지면 손이 올라간다?손이 올라가면 몸이 편안해진다?몸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는 식인데, 이것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점진적으로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면 유도가 끝나면 최면사는 내담자와 소통을 하면서 간접적인 암시나 직접적인 암시를 준다. 이 과정에서 양자는 내담자의 무의식 등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를 같이 탐구한다. 이때 내담자를 최면에 들게 한 다음 상상으로 영화를 만들게 하는 방법도 있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마음대로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암시를 주면 내담자는 의식으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마음껏 스크린에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방법을 써보면 내담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자기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최면치료의 본론에 해당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최면에서 깨어나게 하는 각성의 단계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최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무의식의 세계가 얼마나 깊은지는 논쟁 중에 있지만, 중요한 것은 최면이 자신도 잘 몰랐던 무의식을 탐구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죽음이 임박해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찾고자 한다면, 또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저자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자.





최미순 2015-12-10
최준식 교수의 다른 책들(사후생.전생.죽음학개론 등등) 사서 봤을때 나름 유익했다...원래 무의식에 대한 다른 책 사려다가 이 책이 우연히 눈에 보였는데 저자 이름이 같길래 동명이인인가??했더만 같은 분인걸 알고 내용이 호기심이 나고 궁금해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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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자 기준은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빙혈 2015-06-20


무의식이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정신 영역의 일부입니다. 이성과, 이성에 기반하여 인간의 모든 정신, 행동, 선택, 결단이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합리주의가 서구의 사조를 휩쓸 때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이 사람들이 무의식에 대해 취한 태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애써 무시하거나, 분별력이 부족한 이들만이 집착하는 미성숙한 "태도"의 일종으로 치부되었습니다. 하지만 S 프로이트 이후 무의식이란 엄연히 우리 정신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며, 해당 영혼의 운명을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주체라는 데에 의견이 거의 모아졌습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오히려 기라성 같은 현인들에 의해, 무의식의 중요성이 일찍부터 강조된 바 있습니다. 다만, 저자 최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대로, "집단 무의식 외 개인 무의식이 주목되지 못한 탓에" 프로이트 같은 선각자 한 사람의 기여만도 못한 진도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인간이 주위와 잘 융화하고, 내면의 자아와도 불화하지 않으며(이것이 잘못되면 온갖 정신질환과 신경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나아가 언제나 맑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이 무의식의 균형을 잘 잡는 게 필수적입니다. 다만 그 무의식이, 불건전한 집단 동조 현상과만 밀접한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은 마치 좀비와도 같이, 양심 실종, 죄의식 부재, 타인에의 책임 전가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무의식적 동조(confirmity)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예증하기 위해, 한국 일각에 만연한 사이비 종교 집단과,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의 악행을 들고 있습니다. 사이비종교 집단이라고 해서, 저학력, 저소득, 취약 계층 출신만 모인 건 아닙니다. 직장에서 멀쩡히 제 기능 잘 수행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일상의 일을 처리할 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이도 있죠. 사이비 신념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자들은 반사회성향이 강할 듯하지만, 오히려 반대인 수가 더 많습니다. 이들 신도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는, 자기들 종교 집단끼리만 모여 있을 때입니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그것도 조직을 갗춘 상태의) 다수인들이 전부 특정 방향의 행동을 취하니, 그게 보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인지 아닌지 따질 겨를도 없이 무작정 따라하고 봅니다. 오히려 이런 특수 집단도 소(小) 사회라고 보았을 때, 이들은 지극히 "사회적 성향이 강한" 성원들이 되어 "질서"를 충실히 따릅니다.



나치 독일도 마찬가지죠. 공감무능력은커녕, 이들은 자신이 속한 소집단에 대해 지극히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이들의 비극은 인류 보편의 대의를 망각하고, 자신들이 밀접 관계를 맺고 있는 네트웍에 대해 맹목적 충성을 바쳤다는 데에 연원합니다. 이들도 아마, 기독교적 양심에 입각하여 유대인 학살에 반대하려는 자국 내 소수자(본회퍼 목사님 등)에 대해서는, "공감무능력자"라며 마녀사냥을 일삼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주변의 소위 "대세"라는 것에 대해 이를 진정한 권위로 착각하여, 그 앞에서 아무 도덕성이나 이성을 작동시키지 못하고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인간이 무의식보다 의식에 의해 자신을 매 순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런 역사적 우행을 저지르는 함정에서 얼마든지 벗어났을 것입니다.



저자는 한국전 당시 미국포로들이 플랭카드까지 들고서 "북침으로 벌어진 6.25"라고 주장하게 세뇌되었던 사례를 들며, 인간 정신 작용에서 의식, 이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낮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세뇌가 되었다 해도, 이를 "디프로그래밍"한 후엔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엄청난 강도로 혹사를 당한 후 이른바 "demonic angel"에 의해 달콤한 어조로 주입된 생각, 사상, 아이디어는, 이후 이 사람의 의식 깊숙한 곳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어렵다고 합니다., 강철 같은 의지로 영악하게 자신의 행동과 신념을 일일이 통제하는 "이성적 인간"의 관념은, 이런 뚜렷한 실증 앞에 허상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인간이 건전한 행복을 추구하며 가능한 한 최고 수위의 만족과 행복을 누리려면, 자신의 행동과 기호, 생각을 일일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일본 어느 사무라이와 사환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집단 무의식의 수레에 끌려가며 썩은 의식으로 정체(停滯)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깨어있는 삶이라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내 행동이 남의 행동을 무턱대고 모방하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의 분명한 가치관과 준칙에 의해 이뤄지는 건지, 언제나 반성해 보는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아이를 과도하게 지배하여 자신의 (좌절된) 이상을 투사하려 드는 부모의 engulfment 심리/증상도, 결국 부모 자신이 독립된 인간으로 살지 못한 여한을 자녀에게 대물림하려는 비극적인 시도입니다.



이런 자기 성찰 습관이 몸에 밴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유연하게 자신의 방침을 수정해 가면서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데, 어리석고 비이성적인 인간일수록 마지막 자존이나 되는 양(혹은 누릴 걸 못 누린 불우한 처지라 이런 데서라도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듯) 자기 스타일을 조금도 고치지 않는 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가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람은 오히려 양보를 하고, 전혀 타의 기준 노릇을 못할 사람은 자기 영향권을 더 늘려 가니,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가 퇴보를 거듭하는 게 다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무의식의 세계로 첫발을 디디게 된 프로이트, 그리고 그의 직계 제자이면서 프로이트에 대한 강력한 안티테제를 제시했던 융의 입장을 재미있고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그간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개인 무의식"의 세계를 이론적으로 처음 해명하여, 인류가 무지의 장막 뒤에 불안스럽게 감추고 있던 거대한 영역을 우리에게 소개한 공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성욕 일원론적인 프로이트 패러다임에 반대하는 편이며, 오히려 (개인 영역이건 집단성이건) 무의식을 "지혜의 보고(저자의 규정입니다. 책에서 여러 번 반복되더군요)"로 규정한 융의 세계관이 더 너른 효용성을 지닌다고 간주합니다.



이미 미국에선 의학협회, 이후 정신과 의사 단체에서 요법 중 하나로 공식 인정한 "최면"에 대해, 저자는 여러 챕터에 걸쳐 자세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점 중 첫번째 것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최면술사 한 마디에 바로 최면에 빠져들어, 무려 "전생"에 대해 줄줄 이야기하는 연예인들의 "쇼"가 일반인들에게 대단히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에 따라 최면에 절대 안 빠지는 이도 있고, 반대로 유명한 허버트 스피겔이 마주한 어느 군인처럼 단 한 마디로 최면에 죽은 듯 빠져드는 아주 드문 타입도 있다는 거죠. 주문 한 마디에 줄줄이 표준 체질의 성인이 최면에 빠져들 수는 없으며, 하물며 최면에 걸린 채 무의식이 털어놓는 스토리가 "전생 사연"이라니 터무니없다고 지적합니다. 전생을 믿고 안 믿고, 또 그것이 실존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최면 중 발화와 전생(의 기억)은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여튼 "꿈"은, 분명 인간 의식과 무의식이 대화를 나누는 장(場)입니다. 이런 채널을 적절히만 활용하면, 개인의 무의식과 의식이 균형을 잡게 도우므로 아주 유익하다는 지적인데요. 한 예로 말레이의 세노이 족은, 범죄 발생률이나 정신질환자 유병률이 거의 0에 가까워서, 많은 학자들의 주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선 아이들이 꿈을 꿀 때, 원로들이 자상하게 상담해 주며 "다음 번 꿈을 꿀 때는 이러이러하게 (꿈 속에서 과감히)행동해 보라"고 조언해 주는 게 오랜 관행이라는군요. 이렇게 어려서부터 "정신 요법"을 생활처럼 받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도 건강하고 균형 잡힌 정서를 유지한다는 게 저자의 소개입니다. 참 귀가 솔깃해지는 토픽이 아닐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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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다윗 2015-05-26


인간은 누구나 남을 의식하고 산다. 우리는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일까. 바로 인생을 ‘선’이라 여기고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그 선의 인생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인생은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문득, 밑도 끝도 없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니 원하는 게 있기는 한지, 말하자면 ‘내가 나를 잃었을 때’ 말이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일단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기왕이면 행복하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못하고 삶의 방향을 잃는 이유는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이자, 인간의식연구센터 대표인 최준식 박사가 무의식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프로이트, 융은 물론 20세기 세계 최고의 최면치료 전문가 밀턴 에릭슨의 연구를 통해, 의식과 분리된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바다에 비유해 설명한다. 바다를 보면 파도가 항상 출렁거리기 때문에 바닷속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때 출렁거리는 표면이 바로 우리의 의식 세계를 나타낸다. 우리의 의식 혹은 생각은 언제나 남에게 휘둘리고 있고 잡념이 많아 출렁이고 있다. 보통 때에도 이렇게 출렁이고 있어 그 속이 잘 보이지 않지만, 흥분이라도 하면 격랑에 휩싸여 우리의 깊은 마음속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그것을 알려면 의식이 평온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밑에 있는 무의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실 최면은 인류가 자신의 무의식 세계와 만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써온 방법이다. 최면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들지도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고, 약간의 지식과 전문가의 도움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최면에 들어가 자신의 무의식과 조우할 수 있다.



사람이 최면에 걸리게 되면 자신의 통제력을 잃게 된다. 최면에 걸리면 자신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 최면사의 명령에 복종하게 된다. 그러나 최면은 본인이 걸리지 않겠다고 저항하면 결코 걸리지 않는다. 최면이란 최면사가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면 시 피최면자가 원하면 결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자아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 상태에서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기 힘들지만 무의식 상태가 되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최준식/ 시공사/ 2015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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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아트로포스 2015-07-22



인간은 자신에게 닥칠 어려움이나 고난의 한치앞도 모른채 살아가곤 한다. 그러다 그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순간 정신적인 혼돈을 느낀다. 때론 그 충격에 흔히 말하는 정신줄을 놓기도 하고 어떻게든 가지고 있던 낙천적인 기질로 헤쳐나가곤 한다. 나또한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참 자식농사라는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것이로구나싶다. 심리상담도 약도 그때뿐인 것 같아서 도대체 이 무기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신에게 매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함께 상담하고 이야기를 해보는데도 매일 아침만 되면 되풀이된다. 학교도 가기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실상은 이런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환경문제인지 유전인 것인지 아이가 어렸을때 잘못된 육아에서 비롯된 것인지..아무도 자세한 것은 모른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아는 학대나 방치처럼 심한 경우가 아닌데도 이런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열정페이니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취직을 위해 공부하는 곳이라는 둥 연세대를 나와도 갈 곳이 없다느니 이러한 암담한 미래상이 부모의 걱정섞인 대화와 매일 학원에 가야만 하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해야하는지 모르고 살아가야만 하는 그러한 것들이 무기력한 아이들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암튼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여러가지 심리서들을 찾게 된다.



그 중에 이 책은 의식 연구의 권위자인 최준식 교수가 쓴 양질의 책이다. 왜 맨날 엄마만 잘해야 하는가 왜 엄마이어야만 하는가. 딸이라면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정하고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부인하고 살고 싶었지만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오전엔 누워있다가 아이들이 오는 시간에 다다닥 집안일을 하고 간식을 주고 저녁을 차려주고 공부를 봐주면 나의 일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우울감에 뭔가 나의 영역에서 제대로 작은것 하나 도와주지 않고 대충 하는 남편에게 다다다 잔소리를 하거나 짜증섞인 하이톤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 아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엄마들이 진정으로 변화해야하고 무엇보다 본인의 우울감에서 벗어나 본인이 행복하고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야 아이들도 변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나 부모교육이나 아이와의 상담교육을 통해서 한결같이 깨닫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하루아침에 좋아지거나 변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나의 우울감에서 벗어나 비폭력대화법을 익히고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사회가 우리를 결정한다는 것,여러가지 예를 통해서 자극과 인식적인 면에서 우리는 최면아닌 최면에 걸려있다는 것, 세뇌에 빠지는 것, 우리의 고정적인 습관과 인식, 우리안에 도사리고 있는 작은 독재자, 어느새 비주체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이 책을 읽음으로서 많은 것을 인식하게 되고 깨닫게 된다. 내가 무엇을 중요시 하는 사람인지 무엇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내가 벗어나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무의식에서 나를 찾아나서야 하는 것은 그래서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선결과제인 것이다. 최준식 교수가 쓴 글은 공감이 잘 되었고 예를 통해서 다름 사람의 사례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무의식에 귀를 귀울여야 함을 깨닫는다. 그러면 그저 눕고만 싶고 회피하고만 싶은 마음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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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서지연 2015-06-16


현대인들의 각박한 삶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거나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 나를 이입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진정한 내가 그 어디에도 없다. 인간망의 관계 속에 휩쓸려 다니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찾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는 결코 자신이 다른 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의식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최준식 교수는 그 답을 무의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인간은 왜 살고 있을까를 필두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거기에 대한 답은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원초적인 행복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올바른 답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거기에는 참된 나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

진정한 자아 찾기는 자기 주체의 실현이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굉장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라는 존재는 나름의 주관된 의견을 가지고 있고 '나'의 생각을 올바르게 판단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한다. 예를 들어 종교인, 정치인, 운동권에 소속된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바른 일을 하는 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갇혀 다른 이들에게 언제나 자기의 주장만이 올바르다고 말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힘 또는 강압, 강요까지도 할 수 있다.

?

저자는 이와 함께 부모의 역할도 말한다. 인간은 사회라는 제도를 경험하기 이전에 이미 가정'이라는 제도 안에서 사회를 경험하게 되며 그때부터 자신의 부모를 통해 세상에 대한 선입견과 더불어 부모의 사고체계를 답습하게 된다. 세뇌라는 말이 아이러니컬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기 전에 자신의 습관, 사고 방식, 인간관계 등을 그들의 부모에 의해 기준잡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사회에 나가 자신보다 많이 알고 있거나 자기보다 강한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종속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집단 속에 머무는 것이 편하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기 이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고 그것을 수긍만 한다면 그 삶을 편하게 느끼며 편승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차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그런 생각들이 자기 자신을 사회 속에서 인습적인 인간으로 살게 만드는지 모른다.


저자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유한한 존재'라고 한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가 말한 '비본래성'에 주목하였다. '비본래성'이란 세상의 통념대로 휘둘려 사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 '나'라는 존재는 없다. 내 삶의 주체가 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익명의 주체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산다. 익명의 주체들은 언제 어느 때고 나를 공격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무관한대도 불구하고 타인의 상처를 헤집고 핡퀴고 그들을 간섭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기를 아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죽음을 제대로 직시할 때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게 진정한 삶이었는지 신은 누구인지와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맞이한다고 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정한 주체의 삶이란 언젠가는 죽지만 그 죽음이라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하며 죽음이 오기 전에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진정한 삶에 대한 성찰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문자 그대로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산다. 내가 잠시라도 괴롭거나 불행하다 느낄 때면 주변에서 듣는 말이기도 하다. 말이 쉽지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할 때가 많다. 오히려 직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히기 보다는 돌아가는 편이 많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마음을 열고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는 지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은 자유를 희구하지만 사실은 자유로부터 도망치려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언제나 책임이 뒤따른다. 자유의 책임을 스스로 지는게 힘든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얻게 되는 집단의 힘과 권력을 무자비하게 이용한다. 그들은 누군가 책임져 줄 사람이 뒤에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일말의 후회나 죄스런 감정조차도 갖지 않는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들이나 2차 세계대전에 패하고도 전쟁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은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놓고 있다. 그들에게는 도덕적인 문제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상부에서 지시받은 것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지키느냐만이 중요한 것이다.

?

이를 보면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면서 그들의 세계관, 공동 의식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한 무리들에 속하면서 그것들이 마치 자신의 참된 주관인냥 행세한다. 저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집단 최면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오로지 커다란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생각은 그것들에 맞춰 움직일 뿐이다. 순간 애국심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국가가 우리에게 원하는 건 애국심이다. 국가는 개개인의 주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라는 집단에 소속된 사명감을 가진 인간만이 존재하며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다. 애국심이라는 명분으로 만행하는 책 속의 갖가지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도대체 그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 든다.

?

사회심리학자 애쉬의 실험에서 보다시피 정답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답을 말하는 그룹이 등장하면 그 사람들의 답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는대도 불구하고 자신의 답을 포기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있다. 다수의 의견에 묻혀 소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이런 사례에서도 충분히 나타난다. 그는 구원파 같은 사이비 종교, 중세시대의 마녀 사냥같은 모순된 집단이 추구하는 바를 한 인간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자신의 주체성이 쉽게 무너지는지도 알려준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예를 들기도 하는데 톰 행크스가 열연한 주인공 검프는 지능이 낮은 사람이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가 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는 모습을 설명해준다. 주인공 검프는 그냥 뛰는 것인데 사람들은 마치 그가 어떤 의미를 두고 뛰는 것인냥 한다. 몇 년씩 뛰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그를 따라하기 바쁘다. 그런 그가 뜀뛰기를 그만두자 같이 뛰는 의미를 두지 못한 사람들도 모두 흩어진다. 남이 하니 따라했는데 그 주체가 없어지니 자신들도 더 이상 뛰는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진짜 나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인본주의 심리학에 대한 설명도 하고 있다. 심리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프로이트가 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는 바로 '무의식'이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은 1차적인 학설이지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무의식의 발현을 성욕에서 출발했다. 이전의 계몽주의자들이 말한 이성적 인간과는 상반된 견해로 인간은 이 무의식이 억압을 받게 되면 정신병으로 발전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연구가 환자들을 상대로 진행되었기에 모든 인간에게 대입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매슬로는 이런 문제들을 확장시켜 인간의 욕구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존중에 대한 욕구, 자아실현 욕구 더 나아가 자아초월욕구 등으로 단계를 나눠 보여준다. 이 단계들은 어느 하나라도 월단할 수 없고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면서 도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다.

?

참된 자아가 자기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진정 나 스스로 좋아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장자의 이야기 중 신발이나 허리띠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그것들이 나에게 꼭 맞으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고 편하지만 꼭 맞지 않으면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나를 의식하지 않고 즐거워 하는 것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 주체성을 회복하는 순간이지만 자기를 계속 의식한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타자로부터 자꾸만 침범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나를 찾기 위해 무의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 첫번째로 국민교육헌장의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처럼 우리 각자는 해야할 일을 가지고 태어났다. 자아실현이란 이런 자신의 잠재 가능성을 실현하여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해야하며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의식적이지 않더라도 무의식은 그 자신의 사명, 소명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자아 실현이 안된 아이의 경우 부모의 필터링을 거쳐 아이에게 각인되어 버리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그 가치관이 바뀌기는 어렵다. 사고 체계가 후인습적인 교육체계에 의해 틀이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하지 않았던가..진정 우리의 내면,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삶이 좋은 것인지 그것이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의 사유보다 무의식의 사유가 크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의식의 사유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문제는 다르다. 저자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로 무의식의 깊이를 말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성욕의 근간인 무의식 이론을 확장시킨 칼 융의 이론처럼 무의식은 인류 지혜의 보고이자 원천으로 본다. 음양의 조화처럼 무의식의 발현도 의식의 발현과 마찬가지로 해석 될 수 있으며 인간 의식의 심층에는 대극을 합일하려는 기운이 있다고 하였다. 융의 해석처럼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다. 현실 세계에서 해석되지 못하는 무의식은 지혜의 창고이기 때문에 꿈에 대한 해석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

무의식의 세계를 만나는 방법으로 저자는 최면을 이야기한다. TV쇼 등을 통해 우리는 종종 최면을 접하게 된다. 그런 의식들을 통해 만나다 보니 최면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국에 비해 미국 의학계는 최면을 의술로 인정한다고 한다. 프로이트도 최면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의 최면법은 권위적이었고 환자와 상생하는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단되었다. 그래서 그가 고안하게 된 치료법은 자유연상법이다. 그것은 떠오르는대로 이야기하는 도중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무의식 속에 들어있는 욕망이나 현재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면법은 권위적이었던 프로이트가 최면을 배척하게 되면서 연구가 진전되지 않다가 1960년대 이르러 재조명 받게 되었고 점차 진보하여 다양한 의료 행위와 범죄조사 또는 스포츠, 입시 등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최면에 대한 다양한 오해들도 많은데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최면의 역사와 함께 최면의 진행 방법, 그리고 최면 현장 예시 등을 소개하고 있어 무의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면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무의식은 정말 깊이를 알 수 없다. 어떤 세계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세계를 통해 진정한 참된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인 듯하다. 세상에 휩쓸려 나라는 존재를 잃고 살아가기 보다는 주체적인 삶을 살다 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일이지 않을까? 우리가 좀 더 지켜보고 연구해야 할 숙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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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 융, 밀턴 에릭슨 글고 최면과의 만남...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
애서가 2015-06-22


어느 연예인이 안대를 하고 긴의자에 누워있습니다.
글고 방청석에서 방청객들이 진행자와함께 이광경을 지켜봅니다.

그러면서 최면술사가 마음을 평안히 가지라며 뭐가 보입니까?
무엇이 연상됩니까? 라며 물어봅니다.
?
그러자, 연예인은 뭐가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최면술사는 또 그다음엔 뭐가 보입니까? 계속 묻습니다.
?
이렇게 연예인과 최면술사는 서로가 대화를 합니다.
이윽고 안대를 풉니다.
?
그러자 ?최면술사는 연예인에게 어렸을때의 안좋았던 기억도
얘기해주면서 그 연예인의 과거를 유추설명해줍니다.
?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최면에 잠시 자신의 몸이 빠지면 정말
내가 전생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전생이라는게 진짜로
있는건지 있었다면 왜 기억을 못하는지 궁금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친구들끼리도 가끔 농담을 합니다.
?
너희들은 전생에 부부였던거 같아~
너희들은 전생에 원수였는데 현세에서 서로 그악감정들을 풀라고
이렇게 형제로 태어나게한거야~

참으로 최면의 세계는 무엇인지 전생이라는게 정말 있는건지
궁금하던차에 이화여대 한국학과교수이자 인간의식연구센터
대표로 계시는 최준식교수님께서 저술하시고 <시공사>에서 출간한
이책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을 읽게된건 행운이었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위해서도 뜻깊은 만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이렇게 독자와 책의 만남도 인연이라는게 있나 봅니다.?

이책에서는 최면에 걸리는 정도를 <최면감수성>이라고 표현하는데
<눈동자굴림 측정하기>, <사시정도 측정하기>등의 가벼운 테스트를
통해 최면에 잘걸릴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먼저 테스트합니다.
?
글고 본격적으로 최면의 단계로 <유도 →탐구 → 각성> 이 세단계로
최면을 유도합니다.?

그리하여 최면술사가 피최면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들도 소개되었는데
저도 지인에게 책에서 나오는대로 읊어보라며 최면의 세계에
빠져볼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책을 통해 저는 많은 걸 느꼇습니다.
평소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걸 의식하면서 살고있습니다.
조선시대 519년간의 전형적인 유교사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는?
체면주의, 형식주의, 허례허식, 남들의 따가운 시선, 사회적 지위와 체면
등에 지나치게 민감하며 살고있습니다.
?
심지어는 지금의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자신이 진정 원해서 전공을
선택한게 아닌 사람들도 많아 놀라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금 사회생활하고있는 직장인들도 진정 자신이 원해서 이직업을
택한게 아니라는 사람들이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그냥 경제적 문제때문에 남들이 어느 정도는 인정하니까 그냥 일이
쉽고 여가시간도 많이 날거 같아서라는 천편일률적인 이유에서
그냥 그직업에 젖어 살고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으시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져있고 무미건조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테두리안에서만 살기에 코쿤족, 캡슐족 등의
신종 계층도 생격나는게 아닌가 생각되엇습니다.
?
이렇게 남들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사는 삶은 바람직하지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식세계를 잠시 잠재우고 자신이 타인에게서 간섭을
덜받는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해들어간다면 진정 자기자신과 해후할 수
있고 자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무의식의 세계로 가는 방법으로 최준식교수님께서는 <최면>을
권유하고계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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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무의식의 세계인 최면을 통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된다면 긋것만큼 중요한건 없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면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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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도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얘기했듯 <내가 다시
태어나도 이일을 할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자문해보는 그런 시간을
갖고 본인이 진정 하고싶은 걸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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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 이책에서는 프로이드, 융 등의 심리학자들의 이론도 적절히 소개하고
세계 최고의 최면치료 전문가 밀턴 에릭슨의 이론도 설명해주면서 이야기
하기에 더욱 알기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책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내가 지금하고있는 일이 내가짅어 원해서 하있는 것인지
회의에 빠지신 분들, 매너리즘에 빠져 무미건조하게 지내는 분들께서도
한번쯤 읽어보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저도 제자신과 대화를 하기위해서 시간나는대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고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세계> 바로 그곳에서 진정한 제자신을 만날 수 있고
악수할 수 있다고 생각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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