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가 선고에 앞서 판사에게 자신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밝히면서 선처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고, 그 내용이 기사에 나왔다.
그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이렇게 밝혔다.
“여덟살에 해리포터를 읽어주면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해서 영어를 배웠고, 어머니는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면서 TV 컴퓨터를 집에서 제거했다”
“또래가 가요를 들을 때 고전오디오북과 위인전기를 읽었고, 보드게임을 할때 영재를 위한 퍼즐을 받았다.”
“입시에서 옥스포드와 스탠포드는 붙었지만, 하버드에 떨어지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방을 나갔다”
이렇게 자라서 성인 된 그는 일단 그의 스펙과 인맥으로 성공했다. 그는 2022년 5월 그가 자신만만하게 만든 테라와 루나가 무너지기 전 의문을 제기한 이에게
“난 가난뱅이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그쪽에게 줄 잔돈이 없어 미안하다”
고 조롱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그는 지금에야 비로소 ‘지적 오만’이었다고 반성하고 있지만, 실은 “이건 부모가 나를 잘못 키워서 그런 것인것“이라며 방향을 부모로 전환시켰을 뿐 진정한 반성과 후회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공부망상’에서 엄기호 선생님과 깊이 다뤘던 내용이 테라 권도형의 사건에서도 뚜렷하게 두드러지고 있었다.
공부만이 성공의 길이라고 여기고, 공부 이외의 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제외한 채 달려나간다. 부모와 아이가 한 팀이 되어 이인삼각의 완주를 했다. 20년전과 달라진 점은 그 끝이 SKY가 아니라 아이비 리그로 확장된 것이고, 한국에서 사회적 성공보다 한참 확장된 세계적 거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은 성공을 했다. 그리고 문제점이 드러나고 붕괴하게 되었을 때 발생할 파국도 그만큼 글로벌 해졌다. 전세계 수십만명에게 400억달러의 손해를 입혔다.
공부중독이 공부망상으로 확산되어 공부와 교육, 대입을 넘어서서 삶의 가치관이 되었고, 성공해서 ‘너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바보니까..’라고 생각하며 능력주의적 관점만을 갖고 내가 아닌 남을 조롱하듯이 쳐다보면서 살아온 이들이 사다리의 위에 서있다. 그는 정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을까? K-pop, K-drama에 이어서 K-education이 학원시스템의 수출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으로 몰딩되어서 망상적 가치관을 가진 괴물을 만들어 내서 글로벌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오직 공부만이 살길, 친구보다 공부, 내가 잘한 것은 내 능력탓, 네가 잘 못하는 것은 네가 열심히 안해서 그런 것, 내 능력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법적 문제가 되지 않으면, 혹은 잠깐 법의 범위를 벗어나도 걸리지 않으면 그만아닌가 라는 윤리의식의 결핍. 이제는 부모가 나를 키운 양육 환경으로 원인을 돌리며 “실은 나도 피해자에요”라는 논리로 방어하는 모습까지. “unshakable false belief” 가 망상의 정의다.
東亞日報
2025년 12월 24일 수요일 A35면 오피니언
교육의 의미 묻는 권도형의 편지
특파원 칼럼
임우선 뉴욕 특파원
으로 스탠퍼드대에 진학했다. 이 스토리로 책도 냈는데, 당 시 교육계에서 이 같은 출판은 일종의 '스펙 차별화 전략'으 로 통했다. 부모가 얼마나 많은 공력과 재력을 들여 그를 키 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는 제가 무엇에 대해 위대해져야 하는지는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위대함 그 자체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명확한 목적 없이 고도로 기능적인 존재로 길러졌 습니다.'
이달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연방법원에 서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34)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 날 권 씨는 수많은 거짓말과 사기적 수법으로 자신의 가상 화폐 테라 루나를 홍보하고, 400억 달러(약 59조원) 규모 의 폭락 사태를 초래해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투자자에게 회 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힌 죄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오만과 교만 낳은 '독이 된' 교육
이날 선고에 앞서 권 씨는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편 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나는 비교적 독특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며 "여덟 살 때 아버지가 해리포터를 읽어 주면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해서 스스로 영어를 배웠고, 어 머니는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운명이라고 믿어 TV부터 컴 퓨터까지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걸 제거했다"고 적었다.
그는 또 "또래 아이들이 가요를 들을 때 나는 고전 오디오 북과 알렉산더, 나폴레옹의 전기를 읽었다"며 "친구들이 보 드게임을 할 때 난 영재를 위한 퍼즐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대체 그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라고 자조 했다. 이어 "대입 때 옥스퍼드대와 스탠퍼드대 등 여러 학교 에 합격했지만 하버드대엔 합격하지 못했다"며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방을 나갔다"고도 적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학창 시절부터 '기능적으로 매우 우 수'했다. 지금보다 외국어고의 선호도가 훨씬 높던 시절에 외고 중 가장 치열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원외고에 입학했 다. 또 재학 중 승승장구한 영어토론대회 수상 실적을 바탕
"인간의 모습을 한 가상화폐" 힐난
하지만 이후 그의 행적을 보면 그의 교육에서 뭔가 대단 히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 다. 권 씨는 2022년 5월 테라와 루나가 한꺼번에 무너지기 직전, 자신에게 의구심을 제기한 이에게 "난 가난뱅이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그쪽에게 줄 잔돈이 없어 미안하다"고 조 롱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가상화폐의 미래에 대해 "(나를 95%는 사라질 것"이라며 "그런 망해가는 회사들을 보뺀 는 것도 즐거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의 공소장에서는 테라·루나 붕괴 이후에도 철저히 부도덕했던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겉으로는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지인과의 대화에서는 "꺼지 라고 해"라고 발언했고, 위조 여권으로 해외 도피를 하면 처벌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말 그대로, 정상적 인 사람이라면 보이기 힘든 수준의 오만과 교만이었다.
이번 재판에서 판사는 "권 씨의 피해자들로부터 315통의 편지를 받았고, 밤잠을 포기하거나 다른 계획을 취소하며 모 두 읽었다"며 "당신이 초래한 인간의 참상을 보여주는 투어 였다"고 개탄했다. 편지에서 세계 각지의 피해자들은 자살 하거나, 자살을 생각했고, 이혼과 파산, 건강 악화에 시달렸 다. 그러나 판사가 권 씨에게 "이 모든 편지를 읽어봤느냐" 고 물었을 때 그는 "법률팀이 일부를 읽어줬다"고 답했다.
그런 권 씨를 두고 한 외신은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가 상화폐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공감력이 느껴지지 않는 그 의 몰인간성과 맹목적 욕망, 그 안의 위험성을 신랄하게 비 판한 것이다. 그에게 그 많은 교육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런 교육을 받고 있는 건 권 씨뿐일까,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 말하고 있을까, 어쩌면 권씨 사건은 '금융 범죄물'이기에을 앞서 '교육 비극물'이었는지 모른다.
imsu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