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철학으로 도달한 미래의 시간 | arte365몸의 철학으로 도달한 미래의 시간알바로 레스트레포, 마리 프랑스 들뢰방 / 콜롬비아 몸의학교 교장
우 연 _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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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 ‘몸의학교(El Colegio del Cuerpo)’가 설립된 것은 1997년이다.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2008년 무렵으로 설립 후 10년이 지난 뒤였다. 당시 KBS 다큐멘터리, EBS 지식채널을 통해 몸의학교의 철학과 운영방식이 처음 소개되었고, 실제로 몸의학교 학생들의 공연도 서울과 안산, 부산에서 이루어졌다. 그 후 베네수엘라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사례와 함께 콜롬비아의 몸의학교는 소외계층을 위한 예술교육 사례로 전파되었고, 이 분야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다시 십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몸의학교는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어왔을까? 지구 저편에 50년 이상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가 있다고, 우리의 아이들이 키보드로 모니터 속 적군을 죽일 때, 거리에서 실제 총탄을 피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고, 세계에 대한 미천한 상상력을 확장시켜 준 이 학교는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건재한 것일까? 콜롬비아의 대문호 마르케스가 이야기했던 ‘고독의 시간’을 여전히 겪고 있는 중일까?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 ‘미래의 시간’에 도달해 있을까? 평창 아트 드림캠프와 해외전문가 초청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콜롬비아 몸의학교 교장 알바로 레스트레포(Álvaro Restrepo)와 마리 프랑스 들뢰방(Marie-France Delieuvin)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마리 프랑스 들뢰방(왼), 알바로 레스트레포
알바로 선생님은 2008년 당시 몸의학교를 ‘콜롬비아 미래 세대를 위한 학교’라고 소개했다. 10년, 20년 전 몸의학교 학생들에게 2017년 지금은 바로, 그 당시 바라본 ‘미래의 시간’이다. 이제 성인이 되었을, 당시 몸의학교 학생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알바로 레스트레포(이하 알바로) 지난 20년은 우리 모두에게 극적인 시간이었다. 그들은 이제 대부분 예술가가 되었다. 자기 삶을 극적으로 바꾸고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기적처럼 전환시킨 친구들도 많다. 설립 당시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콜롬비아라는 불행한 작은 세계에 갇힌 사람들이 아니라 콜롬비아 밖의 세계를 통찰하는 세계시민이 되었다. 전 세계를 돌며 투어 공연도 하고 국제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몇몇은 이러한 인생의 반전에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10년 전 선생님께서는 ‘우리는 창조자들의 창조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이제 당당한 예술가가 되었다면, ‘창조자를 창조하는’ 역할을 이미 완수하신 것이다. 더불어 이들이 미래의 몸의학교 운영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꿈도 이루신 것인가?
알바로 이번 워크숍에는 두 명의 무용수, 리카르도 부스타만테 마티네(Ricardo Bustamante Martinez), 요한 구티에레 파딜라(Johan Gutierrez Padilla)와 함께 왔다. 이들이 바로 이제 몸의학교 운영자가 된 과거의 내 학생들이다. 워크숍에서도 질의응답 시간에 요한이 잠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몸의학교에 다니며 내가 배운 것들을 직접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되어 실제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 너무 큰 만족감과 성취감이 느껴진다고. 요한은 극한적인 콜롬비아의 현실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지금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교육자로서의 만족감이 남다를 것이다. 몸의학교는 요한처럼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킨 리더, 정치 사회적인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뒤바꿔 온 창조자를 위한 학교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20년 동안 콜롬비아 사회도 매우 역동적인 변화를 겪어왔다고 알고 있다. 처음 설립하실 때와 지금, 학교를 둘러싼 콜롬비아 사회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
알바로 콜롬비아는 현재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고, 몸의학교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몸의학교는 결국 콜롬비아 사회의 축소판이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학교 설립 당시는 콜롬비아 내전이 극심한 상황이어서 폭력과 가난이라는 환경 자체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교육의 핵심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평화시대에 대비해 우리가 하는 작업이 사회에 어떻게 더욱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예를 들면 청소년을 키우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어떻게 가동할 수 있는지, 이러한 프로그램이 다른 지역의 많은 어린이들에게도 전파될 수 있도록 문화부나 교육부, 대통령실과 협력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평화시대에 대비한다고 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얼마 전 50년간 내전으로 고통 받던 콜롬비아에서 대통령과 게릴라 대표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가 있었다. 평화를 고대하던 콜롬비아가 한 열흘 동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들었는데 막상 평화협정 국민투표의 결과는 부결이었다. 콜롬비아 사회는 평화를 원하지 않았던 것일까? 맥락을 모르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격적인 결과다. 몸의학교 이야기로부터 너무 멀리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콜롬비아의 이 역사적인 상황과 몸의학교의 운영도 별개로 사고할 수 없으니 설명을 부탁한다.
마리 프랑스 들뢰방(이하 마리 프랑스) 정치적인 과정의 실수가 있었다. 정부와 게릴라 간에 4년간 평화협정을 위한 합의작업이 있었는데, 이 합의의 내용을 먼저 국민투표를 통해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합의를 마친 후에 국민들에게 물어보는, 순서가 뒤바뀐 정치적 실수가 있었다. 이 속에서 국민들의 무관심이 표출될 수밖에 없었으니 콜롬비아 전체가 충격을 받고 있다. 나 또한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현재 한국사회도 중요한 국면에 서 있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국민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상식과는 다른 이견(異見)과 갈등을 대면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분명 충격적이기도 하다.
알바로 콜롬비아의 경우, 충격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투표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65% 정도가 투표를 안 해서 부결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원한다고 한 사람들이 이긴 게 아니라 무관심한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아서 생긴 비극적인 드라마 같은 상황이다. 보고타 젊은이들이 평화의 시대가 온다며 축하하고 거리행진도 하고 그랬지만, 국민 대부분이 무관심한 상태로, ‘평화가 나한테 뭐가 중요해?’, ‘내전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어?’ 이러한 태도로 지난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정치적 불신과 무관심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의 콜롬비아다.
이렇게 사회적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몸의학교 학생들의 교육환경도 달라졌을 것이라 예상한다. 학생들이 처한 문제의 본질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알바로 평화협정이라든지 새로운 시대로 가자는 논의가 시작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이나 조건이 바뀌었다고 볼 수 없고, 여전히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기대하고, 향후 평화정책이 잘 정비되길 바랄 뿐이다. 태평양 시대에 대비하게 되고, 그동안 내전에 쓰였던 국방비 등이 처음으로 교육부문에 투자되고 있는 중이고, 교육에 대해 국가의 관심이 커졌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고위층과 기득권층의 부패, 사회 불평등 문제 등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 않는다면,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로서는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것이 아무리 평화시대라 명명된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가?
알바로 몸의학교 학생들은 여전히 대부분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철학은 변화된 것이 없다. 만약 사회가 더 이상 폭력적이지 않다면, 우리 사회가 가진 트라우마나 상처가 치유된다면, 그때부터는 치유보다는 예술 본연의 역할, 창조,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않을까 싶다. 즉 지금 콜롬비아에서는 예술의 역할이 사회적 기능, 치료의 기능, 정치적 기능을 많이 요구받게 되는데,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 예술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길 바란다.
마리 프랑스 알바로 씨의 이야기에 동의하고 꿈꾸고 소원하지만, 정치적 상황이 우리에게 주었던 상처가 도대체 몇 세대를 지나야 치유될 수 있을까? 지금 세대 역시 여전히 깊은 상처를 입고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 같아서, 시간이 지나더라도 몸의학교의 철학은 많이 변화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조리한 일들이 콜롬비아에도, 우리의 학생들에게도, 나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트럼프처럼.
화제를 바꿔, 한국의 학생들이 처한 몸의 양상은 콜롬비아와는 많이 다르다. 이에 대해 예술교육자로서의 조언을 듣고 싶다. 이를테면 ‘움직이지 마시오’와 같이 권력과 지시에 의해 통제받는 ‘수동적인 몸’, 히키코모리처럼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자폐적인 몸’, SNS나 인터넷과 같은 가상현실에 빠져 ‘움직이지 않는 몸’, 대지진이나 세월호 참사와 같이 ‘재난에 처한 몸’ 등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재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몸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께서는 한국의 학생들이 몸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하고, 이들을 가르치는 예술교육자들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마리 프랑스 사람의 몸은 어떤 상황에서도 외부적 힘이나 순종으로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컨트롤되어야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면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몸의 본능조차 억압하는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어제 한국 예술교육자 대상으로 워크숍을 하면서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할 때 매우 놀랐다. 다수 참가자들이 어릴 때 겪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고백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트라우마를 교육현장에서 계속해서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교육자 스스로가 여전히 어떤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극복하지 못한 상태로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 앞에 서려면 우선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어느 정도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린이들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한국 예술교육자들에게 영감을 주신다면? 예술교육자로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했었던 경험을 하나만 꼽는다면?
마리 프랑스 너무 많은데.(웃음) 콜롬비아에 처음 와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카르타헤나 지역 어린이들의 문제를 막 발견하던 때다. 당시 카르타헤나 지역 중 ‘만델라’라는 소외지역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굉장한 폭력 속에서 자라나 언제나 경직되어 있던 한 아이를 만났다. 수업을 해도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아이에게 다가가 긴장을 풀어주려고 얼굴을 마사지하듯 다정하게 쓸어주었다. 그런데 한 번도 긴장을 풀지 않던 그 아이가 갑자기 눈물을 후두둑 흘렸다. 그때 참 안정되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내가 그 아이에게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어떤 신뢰감을 줬던 것이다. ‘신뢰’라는 것이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알바로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면서) 많은 어린이들이 한 교실에 앉아있는 사진이다. 이 아이들은 정말 시끄럽게 떠들고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빈민 지역의 평범한 아이들이다. 그중 이 어린이는 평창 아트 드림캠프에도 같이 왔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어린이들이 어느 순간 스스로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며 그 침묵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이것이 정말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한 몸이다. 언젠가는 이런 몸이 될 수도 있겠지?
몸의학교 명상 장면
[사진제공]알바로 레스트레포
이번 한국 방문에서 느낀 인상이나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알바로 이번 한국 방문에 만족스럽고 다시 한 번 몸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5개 국가가 함께 작업했는데, 국가도, 인종도 다 다르지만, 우리가 똑같이 몸을 가지고 있고, 그 모든 몸은 다 우주적인 몸이고, 우리가 몸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감사하다.
마리 프랑스 워크숍을 하면서 참가자들이 정말 무언가에 허기져있고 무언가를 실제로 찾고 있다는, 열정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가오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걱정, 또한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새로운 생각을 대면하는 즐거움 등으로 가득 찬 참가자들을 보면서 매우 감명 깊었다. 이 예술교육자들은 무언가 낯선 것에 대해 호기심을 지닐 줄 알고, 찾아보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라고 느꼈다.
알바로 레스트레포(Álvaro Restrepo)
몸의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콜롬비아 현대무용의 선구자로 무용 외 철학, 문학, 음악, 연극 분야 ‘통합신체교육’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981년 콜롬비아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안무를 전공하고 귀국하여 1997년 몸의학교를 설립했다. 생각과 정신을 담고 있는 ‘몸’을 매개로 힘든 환경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춤추고 생각하는 방법을 통해 몸을 아끼고 타인을 존중하는 학습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마리 프랑스 들뢰방(Marie-France Delieuvin)
몸의학교 교장. 무용가이자 안무가, 교육자이다. 프랑스 리옹 국립 무용 컨서바토리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1년 프랑스 문화부 Superior Contemporary Dance School of Angers 감독을 역임했다. 현재 몸의학교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및 다수의 사회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_ Studio E
우 연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및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기획실장(1998-2005), 서울예술단 기획PD(2006),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장(2007-2012)을 역임하며 서울아트마켓(PAMS)및 국제교류 사업을 총괄했다. LIG문화재단 기획실장 (2013-2014)으로 LIG아트홀 강남·합정·부산 3개 제작 극장을 운영했고, 현재 창작연극 제작극장인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으로 일하고 있다.
yeoniri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