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0

[한국불화 원류를 찾아서] 4. 귀자모 도상 - 현대불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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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화 원류를 찾아서] 4. 귀자모 도상
조성금/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객원교수
입력 2020.02.14


역병마저 교화한 부처님 위신력

치명적인 역병이었던 천연두
역병의 신 ‘귀자모’로 신격화

불교 전래되며 神衆으로 흡수
〈잡보장경〉 귀자모 일화 전해
경전 바탕으로 ‘귀자모도’ 조성


지금 전 세계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발병한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와 피해에 떨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인류는 이미 삼가다 3천 년 전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거나 후유증에 시달렸다. 바이러스가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력과 높은 치사율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전염병의 퇴치를 위해서 혹은 달래기 위해서 ‘역병의 신’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천연두(天然痘)는 두창(痘瘡) 혹은 마마(땶땶, smallpox)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의 일종으로서 아동이 감염될 경우 80%의 사망률을 가졌다. 아마도 천연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1979년 박멸을 선언할 때까지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러한 천연두에 대한 공포가 만든 역병의 신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귀자모(鬼子母)’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여러 종교에 존재하는 많은 신들은 각 종교의 발달과 함께 구체적인 도상과 신격, 관련 경전 등을 갖추며 발전하여 왔다. 그 중에서 특히 불교는 불법의 수호 및 전파 과정에 여러 계층의 요구에 부흥하기 위하여 다양한 신앙의 대상이 필요했고, 이에 외래 종교 혹은 지역의 토속신이 불교의 여러 신들로 흡수 되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귀자모는 원래 인도 중북부 및 네팔지역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천연두를 일으키는 무서운 야차이었다.

귀자모는 하리티(Hrit)의 의역으로서, 하리티의 뜻은 ‘생명을 가져가다’ 혹은 ‘생명을 빼앗다’는 뜻이다. 어린아이의 생명을 빼앗는 천연두 하리티가 불교에 차용된 후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신으로 바뀌었고,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에 전래되어 귀자모로 더 널리 알려졌다. 귀자모는 아리제모(訶梨帝母), 아리가(訶梨迦), 아리저(訶里底) 등으로도 표기되며, 이후 야차녀, 애자모(愛子母), 환희모(歡喜母), 구자모(九子母)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귀자모는 현존하는 유물들을 통해서 볼 때, 늦어도 기원 1~2세기에는 불교의 호법신이 되어 인도 전역에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귀자모는 경전과 관련해서 보아도 초기의 빨리어 경전부터 대승경전 및 밀교경전에 이르기까지 약 20여종에 가까운 관련 경전을 가지고 있어, 불교에서 귀자모 신앙의 유행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에 차용되기 이전의 하리티는 오늘날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흔히 접하는 자애가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귀자모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원전 3세기경 제작된 〈쿠베라와 하리티상〉의 하리티는 취하고 있는 자세나 얼굴의 묘사가 악귀의 모습에 가까워 불교에 차용되기 이전의 모습 혹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신으로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과도기적 모습일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 후 간다라 지역에서 제작된 귀자모상은 아이들을 거느린 모자상과 남편인 판치카와 함께 아이들을 거느린 부부상의 두 가지 도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모자상의 경우 입상 혹은 좌상의 귀자모가 젖먹이 어린 아이를 안고 있고 다른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귀자모의 주변에서 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사례가 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부부상의 경우는 장신구와 보관을 착용한 귀자모가 그녀의 남편 판치카와 함께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른 시기의 귀자모는 종종 그리스 티케 여신의 상징인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를 들고 있으며, 서너 명의 아이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어 그리스·로마미술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인도의 중북부 아잔타 석굴 2굴에 조영된 〈귀자모상〉은 남편 판치키와 함께 석굴사원 안의 독립적인 공간에 다른 신상들보다 크게 조성되어 있어, 5세기 경 인도 중북부지역에서 불교신상으로서의 귀자모 신앙이 어느 정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귀자모상과 신앙은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서역 즉, 오늘날 중국 신장성 위구르자치구로 전파되었으며, 이 지역에서 현존하는 다수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서역남로에 위치하는 호탄(和田)지역의 단단윌릭 사원지에서 나무판과 사원벽에 그려진 몇 개의 귀자모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은 대략 5-6세기에 평지에 조성된 사원의 벽면을 장식하였던 것으로서 단단윌릭 사원지 DⅡ, D ⅩⅢ 북벽과 서벽, CD Ⅳ-Ⅴ, D Ⅹ-Ⅷ 등에서 힌두의 다양한 신들과 함께 묘사된 귀자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역북로의 쿠차(庫車)지역 키질석굴에도 여러 장면의 귀자모관련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키질석굴 80굴과 34굴에 그려진 귀자모는 인연고사화의 주인공으로 표현되어 석굴사원의 천장에 마름모형태의 공간에 도해되어 있다(그림 2). 화면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한 귀자모와 부처님의 바루에 들어있는 막내아들 그리고 부처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장면은 귀자모가 불교에 교화된 결정적인 사건을 담고 있는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귀자모실자연(鬼子母失子緣)’의 내용을 도해한 것으로 보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자(鬼子)의 어머니는 늙은 귀신의 왕 반사가(般?迦)의 아내로서 1만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큰 역사의 힘이 있었다. 제일 작은 아들은 이름이 빈가라(嬪伽羅)였다. 귀자의 어머니는 흉악하고 요사하며 사나워 사람의 아이들을 잡아먹었으므로 사람들은 걱정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아들 빈가라를 붙잡아 발우 밑에 숨겨 두었다.

〈중략〉귀자의 어머니는 아뢰었다. “만일 지금 제가 빈가라만 찾으면 다시는 세상 사람들의 아들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귀자의 어머니에게 발우 밑에 있는 빈가라를 보여 주셨다. 그는 신력을 다하였으나 들어 낼 수가 없어 도로 부처님께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지금 삼귀오계(三歸五戒)를 받고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네 아들을 돌려주리라.”

귀자의 어머니는 부처님의 분부대로 삼귀오계를 받들어 가졌다. 부처님께서는 그 아들을 돌려주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부터 계율을 잘 받들어 가져라. 너는 가섭부처님 때 갈니왕(哲훮王)의 일곱째 딸로서 굳게 공덕을 지었지마는, 계율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귀신의 형상을 받은 것이다.”

독일 투르판 탐험대의 2차 조사 때 그륀베델이 교하고성(交河古城)에서 획득한 〈귀자모도〉는 아이를 안고 있는 귀자모를 중심으로 좌우 각 네 명씩 상하로 배치된 총 아홉 명의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아이들에 관한 내용은 관련 경전들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데, 귀자모와 아홉 명의 아이가 표현된 사례가 교하고성 출토 작품 이외에 성당시기 파중석굴(巴中石窟) 68감, 일부에서 성모마리아상이라고 칭하는 남송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구자모상〉 등 다수가 현존하고 있다.

귀자모와 9명의 아이들에 관해서는 〈한서(漢書)〉 권10 ‘성제기’ 제10에 “…갑관재태자궁갑지, 주용유생야. 화당화구자모…(…甲觀在太子宮甲地, 主用乳生也. 츐堂츐九子母…)”라는 기록이 있어 주목된다. 한나라 성제가 태자시절 세 살 나이에 어머니를 여위자 태자의 건강을 염려하며, ‘구자모’ 그림을 태자궁에 그려 건강을 빌었다는 내용인데, 이 기록을 통해서 중국에서는 이미 2세기경에 구자모라는 대상에게 어린아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음을 알 수 있다.

귀자모의 기원에서부터 정리해 보면 천연두의 신 하리티가 간다라 지역에서 불교에 흡수되어 이전의 악귀의 모습을 버리고 아이를 보호하고 출산을 도와주는 귀자모가 되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의 일부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중국 전통의 多子사상이 만들어낸 구자모와 결합하여 9세기 투르판 교하고성 출토의 〈귀자모도〉,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12-13세기 경 제작의 〈귀자모상〉, 12세기 일본 다이도지(醍苕寺) 소장의 〈아리제모도(訶梨帝母圖)〉가 제작되었다고 본다.

햇볕이 좋은 해남에서 〈잡보장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옭긴 〈귀자모도〉를 보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리고 우리의 염려도 포용력 크고 넓으신 부처님께서 품어주시길 기도한다. 

조성금/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객원교수 hyunbulnews@hyunbul.com 기자의 다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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