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0

Taechang Kim | 이명권 Laozi OldSon 권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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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対話哲学者イミョンクオン著
《イエス、釈迦に出会: 福音書と般若心経との対話》
(開かれた書院, 2刷発行 2017年2月25日). 20余年間 キリスト教 仏教 イスラム教 道教 ヒンズー教は勿論、東西哲学の開かれた対話という新たな道を開いて来たイミョンクオン博士の '対話' シリーズのイエスと釈迦の対話編. 出会えば知り、知れば愛し合うようになるという今日の我々の心晴れる対話哲学の白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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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 OldSon

이명권. 알지도 못하면서 노자를 연구한다는 엉터리 작자로군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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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Laozi OldSon 중국유학해서 공부는 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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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 OldSon

Taechang Kim 우리가 흔히 도덕경이라 부르는 문헌의 텍스트는 왕필본입니다. 그리고 이는 하상공본의 텍스트와 동일합니다. 원본은 죽간일 것이고 이를 필사한 것이 백서帛書인데 하상공본 왕필본은 둘다 이를 변조한 것입니다. 노자가 전국시대 초입 사람이라면 그때 쓰던 한어漢語는 오늘날과 크게 달랐을 것이고 따라서 번역도 상고한어의 문법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김용옥, 이명권 같은 이들입니다. 한마디로 상고한어를 기록한 고문 문법을 모르고 字義를 엮어 말을 지어내는 사람들이죠. 아무리 중국에서, 또는 타이완에서 공부했다 하더라도 상고한어를 기록한 고문법을 모르고 노자를 연구한다면 이는 모두 헛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Taechang Kim
Laozi OldSon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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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LaoziOl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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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려가 하면 전쟁 연습, 북고려가 탄도미사일 쏘면 자위 훈련.
평화통일? 남북 어느 쪽이 하든 통일은 흡수통일일 수밖에 없고 결국은 하드랜딩이여.
그나마 전쟁을 피하려면, 또는 중국이 끼어드는 걸 막으려면 
남북고려가 서로 상대방 체제와 권력을 인정하는 길 밖엔 없다고. 
남고려 헌법 영토 조항도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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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 Ol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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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01]

도덕경道德經.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老子가 저술했다는 문서. 알아듣기 어려운 신비한 말로 가득 찼다는 문서. 그러다 보니 이 문건을 난해한 형이상학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독해 자체가 안 되다 보니 널리 알려진 한자 뜻을 가지고 대충 엮어 말을 만든다. 난해한 글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한자 한 글자가 지닌 수많은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한자 한 글자가 정반대되는 뜻을 함께 지닌 것도 있으며 요즘엔 거의 쓰지 않는 고대의 자의를 적용해야 할 때도 있는데 말이다. 그 뿐인가. 문법은 아예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
이런 내 생각을 두고 중국 사람들이 어째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겠느냐고 한다. 중국, 또는 타이완의 유명 학자(!)들이 자신들의 글자로 적은 문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타이완으로 유학까지 가서 연구한 이들의 성과를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렇다. 쥐뿔도 모르면서 이 문건을 해독한답시고 달려들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자들이 바로 학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뻐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로지 왕필의 주석을 금과옥조로 삼아 자기가 공부한 서양 철학이나 종교 철학, 또는 그리스도교 신학, 때로는 불교 철학의 개념을 버무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구나 고대의 문헌, 곧 고대 한어를 적은 문헌을 놓고 오늘날의 한어를 읽는 방식으로 하니 엉망진창, 옆차기 de 쥐라르가 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나친 말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김용옥 따위를) 질투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이도 보았다. 그럼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답해 보라. 끝까지 읽기는 해 봤나. 끝까지 읽었다면 조금 길어도 좋으니 전체 요지를 정리할 수 있나. 전체 요지가 무위無爲라고? 노자가 도대체 어디에서 무위라는 말을 했는지, 그리고 노자가 어디에서 무위를 설명하고 정의했는지 알려다오. 무위는 有爲의 반대 개념이라고? 그 유위는 도덕경 어디에 나오는 개념인지 말해 다오. 아니 그보다도 爲가 지닌 여러 가지 자의와 용법은 다 젖혀 두고 ‘하다’라는 뜻으로만 읽어야 하는 까닭을 말해 다오.
확신하건대 그 무엇도 속시원히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느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김용옥이니 최진석이니 오강남이니 노자를 연구한다는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노자가 옳았다고? 뭔 소린지 제대로 읽어 내지도 못하면서 옳은지 그른지는 어찌 아누?
딴전 피우고 있네. 너 말이야 너! 빡빡이 도올 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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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지난한 일이 될 것이 뻔한) 사전 작업을 아직 마무리짓지 못했다. 어그러진 순서를 바로잡는 일이다. 나는 죽간 자체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마구 뒤섞인 상황에서 필사된 것이 백서이며, 그 백서가 변조와 왜곡을 거듭하다가 하상공본, 즉 한대에 이르러 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두를 일은 아니지만 (자발적) 백수 된지 넉달 째, 슬슬 작업을 시작한다고 미리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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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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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 Ol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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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디 하려 했던 건 노자강의다. 그러나 라디오라는 한계도 있고 도덕경의 순차를 확정하는 일도 있어서 음악방송(재즈)을 먼저 시작한 것이다.
이제 더 미루면 안 될듯한데 먼저 시작할 것이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잘난 척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려고 하는 사람인 건 맞지만 그런 까닭으로 남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기야 한문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도 위爲를 '체할 위'로 보는 내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고 위僞를 말하는 것이냐고 되묻고 있으니 말 다한 거지. 이건 자전에 나와 있는데 말이다.)
노자 공부 십년을 통해 노자에 대한 오해를 걷어낼 수 있었고 사기史記의 기록이 일부 맞다는 것도 확인했다. (진짜로 잘난 척을 하자면) 노자 이래 최초로 그 참뜻과 참 얘기를 알아냈다고 자부한다.
세상아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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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이 돌대가리 뿐일까마는 이제껏 이해해 온 노자/도덕경의 모든 것은 잘못됐다고 하면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출판사 사장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껏 해온 번역은 의심할 여지가 있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순화해서 말할 생각은 없다. 욕설에 가까울 정도로 심하게 몰아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자 공부 십 년. 처음엔 유명인들의 번역을 모사하기 시작했지만 알면 알수록 드는 의심, 특히 문법과 자의에 대한 의심이 나를 예까지 끌고 왔다. 서문 형식으로 쓰고 있지만 지금 쓰는 글은 이제껏 해온 노자/도덕경 연구가 전혀 엉뚱한 헛다리를 짚은 것이며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옳다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히는 글이 될 것이다.
내가 하는 노자/도덕경 번역의 실마리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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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 Ol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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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공본이든 왕필본이든 고본古本은 남아 있지 않으니 뭐가 제대로 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둘다 백서를 개작한 것이 틀림 없으니 어느 것이 옳으냐는 질문이나 고민은 쓸 데 없는 짓이다. 노자/도덕경이란 문헌이 어떤 식으로 변천해 갔느냐는 따져 볼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문법도 맥락도 모두 흐트러져 버린 것을 기를 쓰고 들여다 볼 까닭은 없다고 본다. 그러니 지금 전해지는 수많은 이본들도 (왕본이나 하상공본을 토대로 한 것이니) 굳이 연구할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간본은 상당수 유실되었으므로) 백서 갑본을 텍스트로 놓고 을본, 간본, 하상공본, 왕본을 참고로 삼는 것이 마땅하리라 보는데 오늘날 학자들은 거꾸로 한다. 후대에 변조된 왕본을 금과옥조로 삼아 이전 시대의 백서나 간본을 해석하려 한다. 세상에 이런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다 있는가.
그런데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Laozi Ol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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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처음으로 노자/도덕경의 참 뜻을 밝혀 낸다는 자부심이 오히려 나를 위축되게 한다.
서장序章에 해당하는 강의일 터이니 이제껏 행한 관습에 따라 무성의하게 해온 노자 번역의 문제점을 꿰뚫어야 하는데 할 말이 많다 보니 지저분해지려고 한다. 자칫하다간 내가 경멸해 마지않는 김용옥 마냥 중구난방, 천방지축, 횡설수설이 되어 버리기 쉽다.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을 찌를 것.
말은 쉽지만 이게 어려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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