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0

제3강 몸과 기억 - I 1교시; 세상은 과연 이미지들로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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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몸과 기억 - I

1교시; 세상은 과연 이미지들로 이루어지는가?

< image? 명사)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남아 있는 인상이나 기억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물에 대한 감각적 영상, 심상(心象)

영어) 이미지/ 시각적 거울에 비친 모습이나 모양, 꼴
비슷한 모습, 초상, 조상, 우상/ 아주 비슷한 것/ 꼭 닮음
직유나 은유 등의 말의 꾸민 표현 / 심상, 표상, 관념

프랑스어) 이마주/ 거울 따위에 비친 상(reflet), 영상
사실 그대로의 재현이나 반영, 사진, 조상
비유나 상징, 심상, 이미지, 평판

Q) 인간의 시각 경험은 보는 눈과 보이는 대상을 전제로 하는 한 근본 적으로 이미지 경험이다. 보는 나와 보이는 것의 지속을 외면하고 이 둘을 병치시켜서 공간적으로 정지시킬 때 지성적인 이론활동이 가능하다. 대상으로부터 가능한 직접적이고 생동적인 이미지는 표상 (re-present- ation)이 되고 표상이 더욱 공간화/ 고정되고 경직될 때 개념이 된다.

- 샘물의 비유.
-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장자의 꿈의 비유/ 흄의 인상(impressions)
- 솔로몬의 독백(하늘 아래 영원하고 고장 불변된 것이 없음)

☞ 개념적 활동인 이론 학문은 대상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소여성으로부터 멀어지는 단점을 지니지만, 그 반면에 개별적이고도 불가공약적인 직접적 소여성/ 질적인 지속의 다양성으로부터 공감 가능한 소통의 장/ 다시 말해서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장점을 지닌다.
< 베르그송의 지속의 철학의 존재론적 개념은 이미지다?

-이미지가 존재론적인 실재성을 장담할 수 없다면 반면에 지속이란 엄연하게 베르그송 철학의 존재론적인 실재 개념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속을 이해할 때 기존의 실체적인 실재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지속은 고정 불변된 실체가 아닌 역동적인 새로운 실재 개념에 해당한다. 이점에서 베르그송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자가 아니고 새로운 형이상학자이며 현대적인 의미의 형이상학자라고 할 수 있다.

*

베르그송 철학에서 이미지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구분해서 사용된다.
첫 번째는 물질과 기억에서의 이미지 일원론적인 세계관에서의 그것이고
두 번째로는 직관의 표현과 전달 가능성에서 개념보다 더 직관에 근접할 수 있는 표현 수단으로서의 그것이다. 말하자면 전자의 이미지는 존재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후자의 이미지는 인식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질이란 이미지들의 총체이다. 이미지란 관념론자가 표상이라고 부르는 것 이상의, 그러나 실재론자가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 이하의 어떤 존재를 의미한다. ~ 사물과 표상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이런 물질 개념은 간단히 말해서 상식적인 개념이다.”(MM. p.1.)

→ 관념론과 실재론은 둘 다 동일하게 지나친 이론들이다. 관념론과 실재론이 행한 분리 이전의 물질, 우리가 지각하는 그대로의 생동감 있는 물체는 하나의 이미지이다.(MM. p.2)

* 우리는 이미지들의 형태 아래서 만이 사물들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제기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미지들에 제휴해서이고 이미지들 만에 의해서이다.

* 모든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들의 내부에, 그리고 다른 이미지들의 외부에 있다. 그러나 이미지들의 총체에 관해서 그것이 우리들의 외부에 있다거나 혹은 내부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MM. p.21.)


< 『물질과 기억 et 』부제: 육체와 정신의 관계에 관한 시론 Essai sur la relation du corps a l'esprit

- 지속의 실재론이 전제하는 두 가지 실재성은?
① 정신의 실재성(la realite de l'esprit)
② 물질의 실재성(la realite de la )

☞ 베르그송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이원론의 구도를 전제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이원론은 데카르트의 토대주의처럼 실체론적인 이 원론이 아니다. 베르그송의 이원론은 이론의 전개와 이해를 수월하게 돕기 위한 이론장치로서 요청된다는 측면 하나와 - 언제나 이론상 혹은 원리상 혹은 권리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일원론적인 지속의 전개 선상에서 분기(分岐)하는 다양성을 총칭하거나 묶는 수단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베르그송의 지속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원론적인 것들이 맺는 그 관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실체 이원론을 주장한 데카르트도 마지막 저서인 『정념론』에서 인간을 이해할 때 실체 이원론이 유효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고심했다. ☞정념(les passions)이란 무엇인가? 외부의 감각 대상으로부터 인간의 정신이 수동적으로 겪는 심적 상태나 감정 등을 말한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이 외부의 감각적인 물질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자족적인 실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념의 경우 정신의 자족성을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 송과선이 등장한다.- 정념을 육체로 인하여 비롯되는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표상으로 이해한다.

☞ 그렇다고 한다면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을 거부하는 베르그송철학에 있어서 정신과 육체의 관계성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정념과 정념의 텃밭인 우리의 몸이야말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의식이 아닐 수 없다.


< 정신과 물질,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 기억이라는 분명한 보기에 양자의 관계를 규정하고자 한다.

“ 이 책은 ‘정신과 물질의 실재성’을 인정하고 기억이라는 분명한 보기에 의거하여 양자의 관계를 규정하고자 한다.” (MM. p.1.) “선입견이 없이 사실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영혼과 육체 혹은 정신과 육체에 관한 이 오래된 문제는 즉시 기억의 문제로 축소되는 듯하다.”(MM. p.5)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철학사를 통해서 부단히 문제시되어왔을지언정 실제로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MM. p.4.)

- 의식의 상태와 두뇌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의복과 그것이 걸려 있는 못 사이에도 또한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못을 잡아 뺀다면 의복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못의 모양이 의복의 모양을 결정한다고 말하자. 그렇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이를 예측하겠는가?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즉 심리적인 사실이 두뇌의 상태에 걸려 있다는 사실로부터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두 현상의 병행론(le )을 결론지을 수는 없다.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거나 심지어 항상적인 것도 아니다. - 우리의 뇌의 상태는 우리의 심리생활을 행동으로 외재화하거나 또는 심리생활을 순수한 인식으로 내재화하는 경향이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정신 상태를 다소 함유한다.
- 따라서 결국 정신생활(la vie mentale)의 상이한 어조들이 있는데 우리의 심리 생활(notre vie psychologique)은 ‘삶과 생명, 생활에(a vie) 대한 우리의 주의(attention)의 정도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행동으로부터 멀리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행동 가까이에서 상이한 고도로써 행해지는 것이다. - 이 점이 바로 MM의 주요 사상 가운데 하나이자 본서의 출발점이다.(MM.pp.6~7 정리)


***본서의 두 가지 길잡이 원리

① 심리학적인 분석은 본질적으로 행동에로 향하는 우리의 정신 기능이 지닌 공리적 성격에 관하여 끊임없이 알아차려야만 한다.

② 행동 속에 배게 된 습관들이 사색의 영역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사색의 영역 속에서 인위적인 문제들을 창조해낸다. 형이상학은 이런 인위적인 문제들과 그 모호성들을 제거함에 의하여 시작해야만 한다.



2교시; 이미지들의 출입구인 우리의 몸

< 두뇌가 의식의 소여를 가공해낼 수는 없지 않은가? insane한 마인드의 경우처럼 헛것을 본다든가 환상, 환영을 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삶의 온갖 직접적인 소여는 당연히 그 일차적인 관문으로 우리의 몸을 경유할 수밖에 없다. 물론 뇌신경계가 구심성과 원심성이라는 양 방향의 성질을 갖고 있지만 두뇌도 엄연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이미지들의 출입구는 우리의 몸이라는 표현을 해도 무리가 없다.

-우리의 눈이 보이는 것과의 만남을 주선한다면 우리의 몸은 보이는 것은 물론 이 세상이라는 직접적인 소여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말하자면 이미지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출입구이며 출입문인 셈이다. 우리의 몸에 대한 중요성은 비단 그 몸의 주인공의 건강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 몸을 지닌 주인공 자신은 물론 그가 처해 있는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관건일 수밖에 없다.

-세상의 온갖 이미지들이 우리의 몸을 통하여 지금 이 순간도 출입하면서 왕래하고 있다.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유발하면서 혹은 우리들이 무슨 생각에 잠기면서 이미지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 지속의 시간을.......? -말줄임표에 각자의 생각을 써 넣어보세요^ ^-ex) 맞이하고 보내고 만나고 헤어지고 망각하고 기억하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초연하고 덤덤하고 무감각하고 태연하고 등등.


<C'est mon corps. ☞ 베르그송의 철학은 육체의 재발견이다!!!

"지각에 의해서 외부로부터 뿐만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 내부로부터 내가 그 이미지를 안다는 의미에 있어서 다른 모든 이미지들과는 대조를 이루는 하나의 우호적인 이미지가 나의 육체(mon corps)이다.
나는 이런 감정들이 일어나는 조건들을 검사한다. 마치 최종적인 과정에다 나쁘게 결정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내가 외부로부터 받는 동요들 사이와 내가 실행하려고 하는 운동들 사이에 이런 감정들이 항상 개입되고자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나의 다양한 감정을 검토한다. 각각의 감정은 제 나름대로 행동에의 부추김을 지니며 동시에 기다리도록 허락받고 그리고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허락받은 듯이 보인다.(MM. pp.11~2.)"


" 내가 우주라고 부르는 이미지의 총체 속에서 마치 나의 육체를 통해서 나에게 제공되는 특수한 유형의 이미지의 중재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새로 산출될 수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은 발생한다.”(MM.p.12)
(Tout se passe comme si, dans cet ensemble d'images que j'appelle l'univers, rien ne se pouvait produire de nouveau que par  de certaines images particulieres, don't le type m'est fourni par mon corps.)

“ 나의 육체는 그것이 받아들이는 바를 반환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로는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유일한 차이점을 지니면서, 물리적인 세계의 전체 속에서 다른 이미지들처럼 운동을 받으며 그리고 주면서 활동하는 하나의 이미지이다.”


“ 대상들을 움직이도록 의도된 물체인 나의 육체는 행동의 중심(un centre d'action)이다. 그것은 표상을 낳도록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나의 육체가 그것을 둘러싼 대상에게 실재적이고 새로운 행동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그것은 이것들에 대하여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해야만 한다.”

“ 나의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서 나를 둘러싼 이미지들은 보다 단조로운 바닥 위에로 나타나는 듯 보이고 그리고 내게는 무관해진다. 내가 이 시야를 좁힐수록 이것이 보는 물체들은 나의 육체가 그것들을 만지거나 움직이는 용이함의 정도에 따라서 더욱 또렷하게 계속 늘어선다. 그것들은 따라서 거울이 그렇게 할 것처럼, 나의 육체에다가 그의 우연적인 영향을 준다. 그것들은 나의 육체의 증대하는 혹은 감소하는 힘에 따라서 정돈된다. 나의 육체를 둘러싼 물체들은 그것들에 대한 나의 육체의 가능한 행위를 반영한다.” (MM.,pp.15~6.)


“유년시절을 연구한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표상이 비인격적인 것이 됨으로써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표상이 우리의 육체를 중심으로 채택하고서 그리고 나서 우리의 표상이 된다는 것은 서서히 귀납에 의해 드러난다. 이런 작용의 기제는 게다가 이해하기가 쉽다.”

“ 나의 육체가 공간 속에서 이동하는데 따라서 다른 모든 이미지들은 변한다; 이와는 반대로 나의 육체의 이미지는 확고하게 머문다. 때문에 나는 이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데 나는 나의 육체 이미지에다가 다른 모든 이미지들을 결부시킬 것이다.”

“ 경험이 입증하는 것처럼 이미지의 총체가 먼저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나의 육체가 어떻게 해서 이런 이미지의 총체 속에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처음에는 나의 육체와 다른 육체간의 구별일 뿐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내부와 외부라는 개념이 생기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 먼저 이미지 전체가 있다. 이 전체 속에는 ‘행동의 중심’이 있는데 이것에 기대어 연관된 이미지들은 반사 되는 듯하다. 이렇게 해서 지각이 생기고 행동이 준비된다. 나의 육체(mon corps)는 이런 지각의 중심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나의 인격(ma personne)은 이것에다 행동들을 결부시켜야 하는 그런 존재이다.”

“ 나의 육체로 불리게 될 이 행동의 중심을 점차로 제한하고 이것을 다른 모든 육체나 물체와 구별하기 위하여 사실상 단번에 물질의 세계로 위치하는 것과는 달리, 왜 우리들은 이렇게 원하는가? 왜 우리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내가 나의 의식적인 자아(mon moi conscient)로부터 나의 육체에로, 그리고 이어서 나의 육체로부터 다른 육체들에로 나아가기를 원하는가?” (MM, pp.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