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5

한시미학산책, 선시(禪詩), 깨달음의 바다 - 1. 산은 산, 물은 물①

한시미학산책, 선시(禪詩), 깨달음의 바다 - 1. 산은 산, 물은 물①
책/한시(漢詩)


2021. 12. 7. 

19. 선시(禪詩), 깨달음의 바다


1. 산은 산, 물은 물①


노승(老僧)이 30년 전 참선(參禪)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뿐이로다.

성철(性澈) 스님의 법어(法語)로 해서 유명해진 청원유신(靑源惟信) 선사의 공안(公案)이다.

 선사(禪師)는 30년간의 수행 끝에 처음 본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30년의 공력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고초일뿐이었다. 

한때 눈앞이 번쩍 열리는 깨달음의 빛 속에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 다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가?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 사이의 소식을 알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깨달음의 경계에 진입한 자일 터이다.

이 뜻을 받아 고려 때 혜심(慧諶)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이라. 
  •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 중은 속인이요, 속인이 중이로다. 

  • 이 이치를 이미 깨닫는다면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중은 중이고 속인은 속인일러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 깨달음의 경지를 그는 다시 부연한다.

깨달은 자는 포의준자(布袋尊者)가 똥덩이를 들고서 “이것이 극락세계다”라 하고, 
마른 생선 조각을 들고서 “이것이 도솔천의 궁전 밑이다.”라 한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은 자는 
  • 절굿대에 꽃이 피고, 
  • 부처의 얼굴이 온통 추함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은 자는 
  • 빈손에 호미를 쥐고 머리로 걸어가며, 
  • 물소를 타고서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 
  •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선가(禪家)의 깨달음은 미묘하여 말로 세워 전할 수가 없다. 

초조(初祖) 달마(達摩)가 동쪽으로 건너 와 말로도 세울 수 없고 가르침으로도 전할 수 없는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법을 
전한 이래, 새로운 사유의 방식을 제시한 선풍(禪風)이 중국에서 크게 진작되었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범어(梵語)의 Dhyāna를 옮긴 이 말은 
원래는 ‘명상(瞑想)’의 의미를 지녔다. 
선(禪)은 달리 ‘정려(靜慮)’ 또는 ‘사유수(思惟修)’라 옮기기도 하나, 
‘정혜(定慧)’와 같은 뜻으로 보기도 한다. 

규봉(圭峯) 종밀(宗密)은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에서 
“근심과 기쁨을 마음에서 잊는 것, 이것이 바로 선(禪, 憂喜心忘便是禪).”이라 하였다. 

또 『남천축국보리달마선사관문(南天竺國菩提達摩禪師觀門)』이란 불경에 보면, 
달마와 제자 사이에 선(禪)의 의미를 두고 다음과 같은 문답이 보인다.

묻기를,

  • “무엇을 이름하여 선정(禪定)이라 합니까?”

대답하기를,

  • “선(禪)은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하나니, 
  •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이 선정(禪定)이니라. 
  • 마음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선정(禪定)이라 하느니라. 
  • 말을 비우고 생각을 정히 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고요 속에 침잠하여, 갈 때나 머물 때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언제나 고요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까닭에 선정(禪定)이라 하느니라.”

내가 나를 잊어, 나도 없고 물(物)도 없는 자리, 일체의 경계가 모두 허물어지고 난 그 텅 빈 허공, 이것이 선(禪)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증심상조(證心相照), 통연자득(洞然自得)의 깨달음이 있을 뿐, 언어와 사변으로서는 도달할 길이 없다.




▲ 김석신(金碩臣), 「고승한담도(高僧閑談圖)」, 18세기, 36X31cm, 개인소장.

감도 없고 옴도 없다. 텅 비었고 꽉 찼다. 나는 누군가?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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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산은 산, 물은 물①

2. 산은 산, 물은 물②

3. 산은 산, 물은 물③

4.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①

5. 선기(禪機)와 (詩趣)②

6.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③

7.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④

8.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①

9.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②

10.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③

11.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①

12.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②

13.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③

14.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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