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7

알라딘: 아버지, 옥한흠



알라딘: 아버지, 옥한흠

아버지, 옥한흠
옥성호 (지은이)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201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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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반양장본
212쪽
128*188mm (B6)
212g
ISBN : 978895731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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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의교회 故 옥한흠 목사의 인간미를 조명한 책. 존경받는 목사로서의 옥한흠이 아닌, 자식을 둔 한 아버로서의 인간 옥한흠을 만나볼 수 있다. 아들은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 자신이 보고 겪은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특유의 필치로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려 보여 준다.

아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판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봐 염려하는 아버지, 뒤늦게 아들의 자질을 발견하고 목회자가 되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아버지 옥한흠의 눈물이 새롭게 다가온다. 아들이 꺼내는 진솔한 이야기는 평소 옥한흠 목사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에게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표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표지 그림 설명
표지 그림과 글씨는 옥한흠 목사의 첫 손녀이자 저자의 딸인 옥은혜의 작품이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둘만 같이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게 마음 아프고 속상해서 비록 그림으로나마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 위에 두 개의 원은 할아버지와 아빠를 상징하는데, 두 사람이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또 비슷한 점도 많아 그 부분을 교집합으로 표현했다.

☞ 저자 인터뷰 동영상 바로가기



목차


들어가는 글_ 프랜시스 쉐퍼 박사와 그의 아들 프랭키

첫 번째 여정 아버지와의 동행
하나. 세 번의 눈물
둘. 부족한 기독교
셋. 미완성의 가정 예배
넷. 넌 목사가 되어야 해
다섯. 너무도 솔직해서
여섯. 쓰러지지 않는 이유
일곱. 간절한 외침
여덞. 아빠, 나 사랑하세요?

두 번째 여정 그 길을 돌아보며
아홉. 어머니의 기도
열. 알 수 없는 질문
열하나. 필연적인 고독
열둘. 주일 오후 중환자실
열셋. 영원한 안식 앞에서
열넷. 아버지의 영정사진
열다섯. 아버지를 위한 기도

뒷이야기_ 아버지와 아들의 서로 다른 시선과 대화

접기


책속에서



이 세상에는 너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나도, 또 나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제대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나에게 비록 짧은 며칠이었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_ 중에서 접기
평생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눈물을 아버지가 떠나시던 그해 세 번씩이나 만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각각 그가 살았던 삶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지금껏 남들 앞에서 지도자로 살았기에 어쩌면 당신 자신에게조차도 솔직할 수 없었던 스스로의 모습을 비로소 똑바로 보았기에 흘린 눈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눈물들은 홀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숱하게 쏟던 눈물과는 전혀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던 가족들에게조차도 생소한 눈물, 옥한흠 목사의 눈물이 아닌 인간 옥한흠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나로 하여금 아버지 옥한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준 그런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_ 중에서 접기
훈계조 잔소리가 끝나자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였습니다. 바로 다음이 아버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나오는 전형적인 타이밍이었습니다.
“뭐, 읽어 보니까 내용은 괜찮은 거 같다. 너 말대로 교회가 이런 부분들이 좀 많으니까 말이다. 글도 처음 쓴 거치고는 꽤 잘 쓴 거 같고. 언제 책은 그렇게 많이 읽었냐?”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자식에 대한 대견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전화는 항상 훈계로 시작해서 훈계로 끝나야 했습니다.
“그래도 말 나온 김에 내가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제발 부탁이다. 모든 것을 다 삐딱하게만 보는 너의 그 시각만큼은 꼭 좀 고쳐줄 수 없겠냐? 그게 그렇게도 힘드니? 그냥 모든 걸 좀 너그럽게 봐 주고 품어주면 안 되겠냐? 너 자신도 그렇게 철저하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면서 왜 만사를 그렇게 다 삐딱하게만 보려고 하니? 사실 이 책의 내용으로만 보면 국제제자훈련원에서도 얼마든지 낼 수 있을 만한 글이긴 한데……. 성호야, 하지만 난 다른 건 몰라도 내 아들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각인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만약 이 글을 내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썼다면 오히려 내가 먼저 얼마든지 책으로 내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너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하는 그런 책을 낼 수는 없다.” _ 중에서 접기
모든 것이 너무도…… 늦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아들이 개척한 교회의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꿈을 꾸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놈의 자식이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목사가 되었는지, 평소와 다르게 그날은 설교 중에도 이런저런 개인적인 얘기들을 풀어놓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마지막은 아마도 당신의 아들이 비록 은혜가 모자란 형편없는 목사지만 성도 여러분들께서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달라는 말로 그 설교를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 철저한 옥한흠 목사도 평생에 단 한 번 정도는 못난 아들 때문에 그런 감상적인 설교를 했어도 되었을 테니까요. _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옥성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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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 노터데임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7년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시작으로 『갑각류 크리스천』 시리즈, 『아버지, 옥한흠』 『진영, 아빠는 유학중』 『진리해부』 『야고보를 찾아서』, 장편소설 『서초교회 잔혹사』 『낯선 하루』 등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특허 솔루션 전문 기업인 위즈도메인에서 10년간 미주 지사장을 그리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국제제자훈련원 출판본부장을 역임했다. 2018년 현재 ... 더보기


최근작 : <신의 변명>,<야고보를 찾아서>,<진리해부> … 총 24종(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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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QTeen(큐틴) 2019.6>,<날마다 솟는 샘물 2019.6>,<디사이플 Disciple 2019.5>등 총 378종
대표분야 : 기독교(개신교) 7위 (브랜드 지수 379,25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아들이 부르는 사부곡... ‘아버지 옥한흠’ ”_ 연합뉴스, 중앙일보 2011. 2. 15
“평생 사랑을 말했지만 자식에겐 사랑을 감췄던 그 사람... 아버지” _ 조선일보 2011. 2. 16.
“교회만 사랑한 줄 알았던 아버지, 자식사랑을 더 품고 있었다” _ 국민일보 2011. 2. 17.

故 옥한흠 목사의 인간미가 엿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부족한 기독교>의 저자 옥성호, 목회자가 아닌 아버지 옥한흠을 말하다!

공적 영역에서의 옥한흠 목사 말고, 사적 영역에서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 옥한흠 목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강단 위에서의 냉철한 설교가로서나 제자훈련의 대가로서만 알려진 옥한흠 목사 대신 그의 다양한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바로 그의 아들이 직접 집필한 『아버지, 옥한흠』이 그것이다.

저자는 2010년 초 『이성에서의 도피』로 유명한 프랜시스 쉐퍼 박사의 인간적 면모를 다룬 『Crazy for God』를 읽고, 『아버지, 옥한흠』을 쓰는 데 모티프를 얻었다고 밝힌다. 그 책은 바로 쉐퍼 박사의 아들 프랭크 쉐퍼가 쓴 것이다. 사실 외국의 기독교 유명 인사들의 경우, 대부분 그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집필해서 사후에 더 유명해진 기독교 지도자들이 많다. 『전능자의 그늘』의 짐 엘리엇의 경우,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집필해 알려진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저자는 프랭크 쉐퍼와 같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버지 옥한흠과 관련된 추억이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아버지, 옥한흠』은 저자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저술하면서 아버지와 주고받은 대화와 지난해 소천하기 직전 병실에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해서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인간적 면모를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특히 책 서두 ‘세 번의 눈물’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되는 옥한흠 목사가 흘린 세 번의 눈물 이야기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까지 적시기에 충분하다. 제자훈련 사역에 광인(狂人)의 열정을 한창 불태우던 옥한흠 목사가 과로로 쓰러져 안식년을 갖고, 이후 소천 직전까지 육체적 고통이 따라붙었던 원인이 바로 일본 제자훈련 사역 때문이었다.

그런데 20년 동안 쏟아 부은 일본사역이 좌초된 것이다. 2010년 초 온몸에 암이 퍼진 가운데 접한 일본사역 실패의 쓰라림은 옥 목사를 더욱 힘들게 했고, 아들을 보자 눈물을 흘린 것이다. 두 번째 눈물은 2010년 3월 식사 도중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를 보고 자랑스러워서 흘린 눈물이었다. 마지막 눈물은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뒤 침대 위에서 지난 삶을 회고하며 흘린 눈물이다.

저자는 세 번의 눈물을 통해, 교회 지도자로 살았기에 어쩌면 당신 자신에게조차 솔직할 수 없었던, 그리고 가족에게조차 생소했던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눈물이 바로 인간 옥한흠의 눈물이었으며, 자신이 아버지에게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이 외에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책 출판을 앞두고, 출판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책을 내려고 하는 아들 사이에 오간 대화와 미완성의 가정예배, 뒤늦게 아들의 자질을 알아보고 목사가 될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는 이야기 등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옥한흠 목사만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고독과 인간미 등을 아들의 시각에서 진솔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인간미만을 다루지 않는다. 책의 말미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통해 저자는 우리만의 섬으로 전락한 한국 교회를 보며 아버지 옥한흠 목사가 영정 사진 속에서 “너희들 잘 할 수 있지? 내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서술한다.

더불어 책의 말미에 <아버지와 아들의 서로 다른 시선과 대화>라는 그 어느 신학적 논쟁 못지않은 이메일 내용이 첨부됐다. 교회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교회 개혁을 지적하는 아들의 서로 다르지만 어찌 보면 한 길을 바라보는 듯한 부자의 글을 보며 아버지보다 나은 평신도 사역자로서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대해 본다. <국제제자훈련원 제공>

저자 인터뷰

*옥한흠 목사는 아버지로서 어떤 분이었나?
자라면서 지켜본 아버지를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엄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중학교 시절 감기가 걸려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아버지가 밤에 잠깐 방에 들어와 내 침대 머리맡에 젖은 수건을 걸어 놓고 나가셨다. 당시에 가습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는데....아무튼 아픈 아들을 위해 그렇게 하신 건데 내게 지금도 그 날 밤 그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그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평소에 항상 엄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 날 밤 젖은 수건을 아픈 아들 머리맡에 걸어놓은 아버지의 모습이 어쩌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일 텐데 아버지는 그런 모습을 별로 표현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하나는 너무 바빴기 때문일 테고 또 하나는 아버지가 그런 자상한 아버지를 전혀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뭐, 당시 사람들이 다 그랬겠지만 가족들의 얘기를 들으면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엄한 것을 넘어서 폭력적이기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아무튼 아버지는 엄하고 바쁜 사람....표현하지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어딘가에도 썼지만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남아주는 것보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더 큰 선물이 있을까? 아버지는 내게 바로 그 선물을 주셨다.

*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가 나오고 말들이 많았다. 정작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나?
첫 질문과 관련이 있는데 엄한 아버지, 바쁜 아버지와 그 자식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자명하지 않을까? 좋고 나쁘고 라는 단어를 붙일 여지가 별로 없는 거 같다. 청소년 시절 아버지와 사실 대화다운 대화를 몇 번 한 기억이 없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는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항상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 같은 장남을 도통 이해할 수 없으셨고 나는 나대로 나름 지독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방황했었기에 더욱이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는 나름의 긴장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런 모든 관계가 사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가 나오면서 바뀌었다. 내가 책에도 자세히 썼지만 부족한 기독교는 내가 아버지를 바로 보는 계기를 제공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 동안 몰랐던 나를 제대로 알고 평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아버지와의 관계는 나름 동반자적 관계, 서로 대등하게 대화로 토론 하는 관계가 되었다고 할까?

*아들이 아닌, 평신도이자 기독교 작가로서 보는 목회자 옥한흠은 어떤가?
아버지는 목회자로서 매우 많은 장점들을 타고 나신 분이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사람들과의 어울림보다 고독의 시간을 더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주변에서 찾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게 된 유명인이 되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송받는 것에 대해서 경계했다. 이 부분은 아버지의 타고난 성품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고 그 점은 아버지에게 매우 유익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목회자로서 일종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데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목사가 어떻게 그런 일을....'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부분은 아버지가 목회자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한 동인이다. 아버지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난 요셉이 이해가 안 가. 왜 하나님이 주신 꿈을 혼자 간직하면 되지 굳이 형들한테 가 그렇게 떠들어 댔을까?" 아버지의 스타일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 옥한흠』을 쓰게 된 동기는?
인간 옥한흠을 이해하는 것이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군 제자훈련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지름길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 그리고 목회자 옥한흠의 장점이 제자훈련의 장점이고 그의 단점이 제자훈련의 단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보다 입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앞으로 사실상 제 2기를 맞는 제자훈련 사역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의 서두에도 앞으로 만들어질 옥한흠 평전을 중요하게 언급한 것이다. 또 하나는 내가 이미 천국에 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글 중에도 언급했지만 아버지 생전에 그 분께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 것은 내게 하나의 한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이 내게는 아버지에 대해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고백이었던 것 같다. 동시에 아버지께 한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감사의 고백이기도 하다. 접기







사랑하는 목사님의마지막을필력이뛰어난아들을통해볼수있을것같아가슴이두근거립니다.
kimho 2011-02-1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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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목회자이신 나의 아버지의 삶을 돌이켜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네요 감사
랜던 2011-03-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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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가아닌 아버지 옥한흠목사의 인간미를 볼수 있는 따스한 책입니다.
graceson 2011-08-0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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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옥한흠, 목사 옥한흠




부자의 관계는, 부전자전의 관계

우선, 저자 옥성호 씨를 뭐라고 불러야할까? 그는 이미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를 통해 기독교내에서는 알아주는 저술가 되었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책은 오늘날의 교회에 가차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공식직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교회평론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아버지 영정에 바치는 '사부곡'을 썼다. 아버지 옥한흠과 아들 옥성호의 관계는, 작년 9월초 옥한흠 목사님이 작고를 하면서 그를 추모하는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그러면서 저자의 이런 가차없는 성정이 과연 누구에게로부터 왔을까를 생각해 볼 때, 그건 확실히 아버지 옥한흠 목사에게서 그대로 나왔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옥한흠 목사님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빈틈이 없고, 때론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기도 한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의 하는 일에 자신의 성정이 스며있는 법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어른이시다. 오늘 날, 부드러움과 유연함, 융통성, 타협, 관용 등이 요구되어지는 세계관에서 그것은 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가? 정말 비타협적이고, 융통성없는 인물로 낙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은 항상 옳은 것만을 외쳤다. 잘못되었으면 잘못됐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이건 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듯한 세상에서 얼마나 청량제 같은 구실을 하였던가?

하지만 그분의 그런 성정이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역시 쉽게 받아드려질만한 건 아닌듯 싶다. 그런 성정을 아드님들이 그대로 이어받았다면 그것은 분명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고슴도치 같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나는 옥함흠 목사님 타계 직후 모 잡지에 나온 추모글을 읽는 가운데, 그분의 세 아들 중 하나가, 그분의 저서 중 하나인 <예수 믿는 가정 무엇이 다른가?>란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아버지는 이런 책을 내실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사역 가운데 바빠 가정을 돌볼 틈이 없으셨던 분이셨기에 아들 역시 아버지를 닮아 둘러 말할 줄 몰랐나 보다. 그러니 목사님으로선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 우리네 같으면 그렇게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있다면 속은 어떨지 몰라도 인정상 위로를 했을지 모를 일인데 말이다. 그러기에 같은 극끼리는 통하지 못한다고 했는가 보다. 하지만 또 그런 아버지의 성정을 그대로 이어받았기에 세상에 나가선 아버지 같이 그 역할 그대로를 닮아 살게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두고 부전자전이라고 하는 것일게다.

아버지의 삶을 말한다는 것에 관하여

이 책 초두에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써야했던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의 소천 이후 주위에서 그런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로만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저자로 하여금 좀 더 쓰지 않으면 안 될 강력한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프랭크 쉐퍼가 쓴 Crazy for God를 읽고 나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프랭크 쉐퍼는 저명한 기독교 철학자 프랜시스 쉐퍼의 아들이다. 프랜시스 쉐퍼가 말년에 림프암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아들 프랭크는 아버지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미술에 재능은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림을 그만 둔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버지에 관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쓴 게 Crazy for God이고, 그것은 어찌보면 저자와 그의 아버지 옥한흠과 비슷해 보인다.

프랜시스 쉐퍼는 아들의 미술적 재능을 높이 사 늘 그림을 다시 그리길 바랬지만, 자신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 아들에 대해 늘 마음 아파했었다고 한다. 옥한흠 목사 역시도 살아생전 아들의 책을 읽으면서 목회의 길을 가게 되길 바랬지만, 그것을 따라주지 않는 것에 늘 아쉬움을 가졌다고 한다. 프랭크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해 아버지의 병실을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었던 것처럼, 저자 역시 옥한흠 목사의 임종을 앞두고 목회의 길을 갈 것과 아버지의 삶에 관해 쓸 것을 다짐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삶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떤 의밀까? 모르긴 해도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 두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평범치 않은 삶을 사시고, 사회의 존망을 받으셨던 분이며 더구나 당신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록(옥한흠 목사님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나마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일기조차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을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저자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했다. 앞으로 아버지의 평전을 누군가 쓰게 된다면 그것에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쓴다고.

인간, 옥한흠

옛 속담에,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꼭 그 사람의 성공을 점칠 때만 쓰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건, 어디에 될성 부르냐는 것인데 인간 옥한흠은 확실히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에서의 될성 부른 떡닢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 살아생전 가톨릭에 일정 정도 호의적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마더 데레사 수녀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인도에서 삶을 헌신한 테레사 수녀에 대해 존경을 넘어 일종의 열등감 내지는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89p) 그만큼 인간 옥한흠은 자신이 한 가정의 가장이고, 교회와 교단을 대표하는 중책을 맡은 것에 대해 늘 부담스러워 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마더 데레사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헌신적인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옥한흠 목사의 사후 그의 삶을 증언하는 다른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부름과 그에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아버지의 장례 때, 아버지를 가리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고백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나이와 상관없이, 신분의 고하와 상관없이 늘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솔직했던 바로 그 점 그리고 그 점을 채우려고 어린아이와 같이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라고 했다.(94p)

목사, 옥한흠

옥한흠 목사님은 자주 강단에서 자신의 이름의 뜻을 설명하시곤 했다. 물론 원래 가지고 있는 함자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누구도 동명이인이 되는 것을 선뜻 허락하지 않을만큼 독특하기도 하다. 그런데 목사님은, 한없이 흠이 많은 사람을 하늘 나라에선 옥에 티 한 점없이, 흠없이 들어 사용하여 주셔서 옥한흠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풀이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분에 넘치도록 사용해 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에겐 얼마나 못 믿을 말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일지 짐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신됨을 증명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비워 자신의 자신됨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독특한' 인생관일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으로 유명하고, 평생 그것을 목회철학으로 삶아 목회를 하신 분으로 유명한데, 그것 말고도 그분에겐 평생 짊어지신 십자가 있었다. 그것은 사분오열 갈라진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를 하나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것은 생각보다 골이 깊고 치유 불가능한 것처럼도 보인다. 이때문에 그분은 오래 전부터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를 창립에 교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셨다. 또한 지난 2007년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 설교에서, 이미 암에게 자신의 폐가 점령 당하도록 내어준 상태에서 그는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설교했고, 기도했다. (114p~115p)

그분은 제자훈련을 너무나 열심히 한 나머지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변절하고 돌아서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몸을 해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매번 설교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아 붙곤 했는데, 그가 정년보다 일찍 퇴임을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설교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기 위함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을 목회의 길로 내어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성호야, 목회자에게 필요한 건 딱 하나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목사는 딱 두 종류가 있다. 은혜를 아는 목사와 은혜를 모르는 목사다. 은혜를 알아도 은혜를 깊이 라는 목사와 피상적으로 아는 목사로 또 나눌 수 있다. 은혜를 모르는 목사가 설교를 하면 그럴듯하기는 한데, 그 설교는 결코 듣는 사람의 영혼을 때리는 울림이 없다. 성령의 감동이 없다. 너는 그런 설교가 어떤 것인지 가장 잘 알지 않니? 그게 바로 은혜의 차이 때문이다.(82p)



한마디로 은혜를 알고, 은혜를 끼치는 목사가 되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항상 교회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걱정을 했다. 원래 제자훈련이란 게 사람이 많아서 좋은 성질의 것이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많아져 버리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할 수 없다고 걱정을 했던 것이다.

옥한흠 목사님이 숨을 거두시기 직전, 아들과 나눈 필담에서(인공 호흡기를 찬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자, 그분은 힘들게 칠판에 쓰셨다고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즉 그가 평생 사랑하던 교인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목회자 옥한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옥한흠

사실 일개의 교인으로서 나에게 그분의 이미지는'근엄함' 그 보다 더 적절한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감히 그분 곁에 다가설 수 없고, 그분의 그림자조차도 차마 밟을 수 없는 그런 분으로 인식된다. 그런 목사님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나마 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분도 한 가정에서는 천상 아버지였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소 엄한 아버지.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딸 보다 기가 세다. 그런 아들을 슬하에 셋씩이나 두셨으니 보통 엄해 가지고 되겠는가? 더구나 명망있는 집안의 자제들이고 보면 그 이름에 누가 될까봐 엄하게 다스리지 않고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세도에 반기를 드는 자식은 어느 집이나 다 있다. 공교롭게도 옥 목사님에겐 큰아들 ,바로 이 책의 저자였는가 보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를, 삼형제중 자신이 가장 공부를 못했으며, 아버지의 속을 가장 많이 썩혀 드렸다고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성정을 가장 많이 닮았기에 가장 많이 아버지를 안타깝게 해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가장 가깝게 또 가장 깊이 이해하는 아들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책 면면을 살펴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사안을 가지고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기도 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걱정하는지를 볼 수가 있다. 자식의 기를 살려주겠다고 무조건 잘한다고 박수만 쳐주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오늘 날의 아버지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잘할 땐 칭찬도 해 주지만, 그 칭찬 뒤엔 뼈있는 조언, 엄한 훈계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저자의 비판적 성향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나왔을 터.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고 보면 아들의 이런 자세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야를 가지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건, 중학교 시절 저자가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 때 매번 아버지에게 꾸중과 잔소리만 듣던 중 한번은 그런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성호야, 이 아빠한테 사랑의 교회가 중요한 것 같니, 아니면 네가 더 중요한 것 같니?" 이에 아들은 교회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성호야, 아빠는 너를 위해서라면 사랑의 교회도 포기할 수 있어." (123p~124P) 같은 교회 교인이라면 섭섭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가 중학교의 나이었다면 목사님의 목회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고 한창 바쁠 시기였을 때 과연 목회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그분의 아들이었다면, 난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분은 결코 허언을 하시지 않으시거니와 난 그분의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어찌 그 아비의 아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아버지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옥한흠 목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도 세차게 불었다.



이 사진은 저자가 영정사진으로 고른 사진이라고 한다. 저 사진을 골랐을 때 한 소리 듣기도 했었나 보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 사진을 자세히 보라고 말한다. 이 사진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웃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울고 있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울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웃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저자 역시도 이 사진은 울고 있으면서 동시에 웃고 있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즐겨하셨던 목사님이셨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상당한 수준급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분은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지만 백 퍼센트 만족한 사진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의 렌즈에게 그만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고 한다.(171p) 그렇다면 저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야하는 건 마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분 한 평생의 삶이 저 표정속에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눈을 감으시던 날 새벽은 바람이 몹시도 세차게 불었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그날 태풍의 여파로 그런 것이었겠지만, 그날 하나님이 그분을 데려 가시기 위해 그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나 보다고 우리들은 말했었다. 마치 선지자 엘리아처럼.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는 그 다음 날 조문을 위해 저 영상사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따로있다. 바로 이 사진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그분의 사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지금쯤 천국에선 저렇게 환하게 웃고 계시겠지.

지금까지 책을 보다 울어버린 책은 고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란 책과 이 책이다. 앞의 책은 고인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 울었다면, 이 책은 고인이 너무 그리워 울었다. 그리고 공통점은 내가 이 분들이 살아계실 땐 관심없다가 작고하고나니 마음이 가는구나 싶다. 이제 내 인생에 있어 가급적 후회를 남기지 말고 살자 했는데 또 후회를 남기고 만다. 언제쯤 나는 똑똑해지려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비교적 얇은 책은 책이다. 옥한흠 목사님의 삶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 책은 도무지 성에 안 차는 책이다. 아무리 아들이라하여 겸손하느라 그런다고는 하지만 책도 언제 다 읽었을까 싶게 다 읽어버렸다. 아쉬운 일이다. 이제 저자는 교회를 평론하는 일에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목회의 길을 기기위해 신학교에 들어간 모양이다. 이 모습을 아버지가 천국에서 지켜 보고 얼마나 대견해 하셨을까? 당신은 참 좋은 아버지를 두셨다고 저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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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3-20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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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옥한흠을 읽고





『아버지 옥한흠』을 읽고



자녀가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좋은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복 받은 가정이라 생각을 해본다. 바로 부자간에 서로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마음을 글로써 표현해 낸다는 것을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자신도 장차 이런 꿈을 갖고 있기는 하다.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보리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 꿈이 있기에 이 책은 내 자신에게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버지 고(故)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라는 국내 대표적 대형교회를 개척했다는 것 외에도 목회자로서의 엄격한 자세와 성품으로도 귀감이 됐던 인물이다. 이와 같이 목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너무 엄격하고 어려워서 쉽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이런 아들의 마음을 담아서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생전에 아버지에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하려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떠난 후 5개월 만에 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책에는 목사 아버지 아래서 태어났으나 한때 신앙을 버리기도 했던 아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과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저술하면서 아버지와 주고받은 대화를 비롯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얽힌 짧은 추억과 지난해 소천하기 직전 병실에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해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인간적 면모를 독자들에게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종교 신도들이 있다. 각자가 신봉하는 종교에 대해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서 자신의 인생을 잘 관리하면서 생활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간혹 너무 자기 종교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서 다른 종교나 무신도들에 대해서 조금은 문을 열지 않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너른 마음과 열린 모습으로 다 포용하고 배려하는 모습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각자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런 믿음과 사랑, 소망의 바람직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한국의 교회도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노력해왔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종의 여러 사회문제의 하나로 교회이야기가 회자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바로 이러한 때에 이 책의 주인공이었던 옥한흠 목사가 계셨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한 사람의 훌륭한 인품은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평소 옥한흠 목사로부터 제자훈련을 받은 목회자들과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성도들에게 이 책은 많은 감동과 위로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힘을 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교회와 관련은 않더라도 보통 사람들도 살아가는데 있어 부모님과의 평소에 사랑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훈련을 많이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자간 서로의 사랑 표현으로 멋진 하늘의 아버지와 땅의 아들 간의 무한한 사랑모습이 너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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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사 2011-05-1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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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옥한흠




한국 개신교계의 어른 고(故)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라는 국내 대표적 대형교회를 개척했다는 것 외에도 목회자로서의 엄격한 자세와 성품으로도 귀감이 됐던 인물이다. 목회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철저했던 고 옥한흠 목사, 그러나 가정에서는 어땠을까. 고 옥한흠 목사의 장남, 옥성호 집사는 아버지가 너무 어려워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었다고 회고한다.

“이미 천국에 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생전에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 것이 제게 하나의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이 제게는 아버지에 대해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고백이자, 아버지께 한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감사의 고백이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5개월 만에 내놓은 이 책에는 목사 아버지 아래서 태어났으나 한때 신앙을 버리기도 했던 아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저자는 <이성에서의 도피>로 유명한 20세기의 대표적인 기독지성 프랜시스 쉐퍼 박사의 인간적 면모를 다룬 <Crazy for God>을 읽었다고 한다. 프랜시스 쉐퍼 박사가 림프암으로 소천하기 1년 전, 그의 아들 프랭키가 병실을 찾아왔다. 이틀 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단 둘이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이 매년 들렀던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풍경을 기억해 그렸고, 이후엔 인간 쉐퍼 박사의 고뇌와 삶을 생생하게 담은 ‘Crazy for God’을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아버지, 옥한흠>을 쓰는 데 모티프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저술하면서 아버지와 주고받은 대화와 지난해 소천하기 직전 병실에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해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인간적 면모를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이 책은 저자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저술하면서 아버지와 주고받은 대화를 비롯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얽힌 짧은 추억들이 소개된다. 특히 책 서두 ‘세 번의 눈물’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되는 옥한흠 목사가 흘린 세 번의 눈물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가슴까지 적시기에 충분하다. 첫 번째 눈물은 20년 동안 쏟아 부은 일본사역이 좌초된 후 아들을 보자 눈물을 흘린 것이다. 두 번째 눈물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를 보고 자랑스러워서 흘린 눈물이었다. 세 번째 눈물은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뒤 침대 위에서 지난 삶을 회고하며 흘린 눈물이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첫 번째 여정, 아버지와의 동행’에서는 자신과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사적인 일들 중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화와, 오늘날의 교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화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제2부 ‘두 번째 여정, 그 길을 돌아보며’에서는 아버지가 소천하기 직전 병실에 계실 때와 장례 직후에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다시 다듬어 실어놓았다. 책의 말미에는 기독교 베스트셀러를 화두 삼아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이메일도 일부 공개되어 목회자가 아닌 아버지로서의 인간 옥한흠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앞장서 왔었다. 구한말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위풍당당했다. 학교를 세워 백성들을 계몽해 왔고 병원을 세워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런 한국의 기독교가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분을 망각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런 때 옥한흠 목사가 계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이 옥한흠 목사에게서 제자훈련을 받고 한국교회를 위해 애쓰시는 목회자들과 옥한흠 목사를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성도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안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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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2011-05-1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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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옥한흠


아버지!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이 책은 옥성호씨가 아버지를 보내며 그리움과 사랑으로 이 글을 썼다.
아버지와 관계속에서 그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아버지는 교회일로 인해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따뜻하게 아버지의 마음을 비춰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교회 성도들의 목사였다.
그 아버지는 마음속에 담겨진 그리움이 되었다.
한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이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아버지가 계셨지만 아버지는 자신들의 삶속에 계시지 않았다.
마치, 어떤 아이가 그림을 그린다면 아버지는 없고
엄마와 형제만 그린 것과 같다.
아버지는 존재하지만 자신들에게는 없는 아버지를 이제는 만난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아버지가 계셨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와 함께 잠시동안이지만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의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그 아버지는 지금 또 떠났다. 이제는 멀고도 먼 곳으로 떠났다.
그래서 그립다.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
옥성호씨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기술한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은 목사 옥한흠.
그렇지만 아들앞에서는 나약한 인간 아버지로 돌아온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분명하고 완고하신 목사님이지만
아들앞에서 하염없이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로 돌아온 것이다.
그 아버지가 좋다. 그 아버지를 사랑한다.
많은 이들의 목사가 아닌 진정 나의 아버지, 옥한흠이 좋다.
아들에게 비춰진 나약한 모습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과 실망감을 줄 수 있지만
옥성호씨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돌아옴의 기쁨을 보여주고 있다.
목사 옥한흠이 아닌 인간 옥한흠을 보여주고 싶다.
목사가 아닌 아버지 옥한흠을 만남으로 인해 갖는 기쁨과 그리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옥한흠 목사의 사역과 가정과 자녀들과의 관계를
보게 되었다. 옥한흠목사는 제자훈련에 목숨을 걸었다.
목숨은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 목숨을 나눌 수 없었다.
사역중에 빠져있는 동안 가정과 자녀들의 삶은 피폐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한흠 목사는 제자들을 키웠다.
아들 옥성호는 아팠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아팠다.
그런 아버지가 평상에 누웠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신다.
그 아버지가 이제는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아버지로 돌아와 주신 것에 감사한 것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마음의 교통이 이 책에 가득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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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미소 2011-03-2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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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옥한흠]을 읽고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생기면서, 나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데에 있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면서, 아버지라는 단어는 조금은 두려운, 그러면서도 말씀은 별로 없으시면서 가정이라는 수레바퀴를 앞에서 끌고 가는 강인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지금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상이 그렇게 그려지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 책이 전하는 아버지상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이 하면서 읽어 나가게 되었다.
우선 성직자로서의 삶이 바쁘고, 대외활동이 많아서 젊은 시절 이 책의 주인공인 옥한흠 신부님은 이 책의 저자인 아들인 옥성호씨랑은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진 못 한 듯 하다. 우리들의 보통의 아버지들 처럼 말이다. 또한 아들에 대한 칭찬이 인색한 것도 또한 오늘날의 아버지들과 닮아 있다. 물론 가슴 속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한 것도 말이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도 가슴 아픔을 느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우리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면, 어머니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이 책의 아버지 옥한흠, 또한 사랑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 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중간 중간 그려졌다.
이 책의 저자가 아버지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느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도,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며 소위 아버지와의 화해를 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정말로 사랑 표현에 인색하시고, 언제나 대외활동으로 바쁘시고 집에 오면 별말씀이 없으신 그런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신부로써 너무나도 유명하셨던 분 중의 한 분인 옥한흠 신부님에 대한 책이다 보니, 책의 대부분이 신부님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그려지다 보니, 아무래도 다소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읽기를 권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부분을 벗어버리면, 이 책은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그 분의 지난 행적과 그 분과 함께 한 추억들을 엮은 하나의 산문집과도 같은 책으로 느껴 지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들 곁에 계시거나, 아니면 곁에 계시지 않는 아버님과의 추억을 하나 하나 글로 쓰면서, 그 분과 예기로 나누지 못한 사랑을 느끼고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어느새 나도 몰래 예전 사진을 꺼내어 놓고는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며, 이 책이 준 추억의 시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이런 추억의 시간을 가지리라 생각하며, 주변에 권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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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mangun 2011-05-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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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을 받을 때




어제 우연히 교회 서점을 들어갔다가 작년 9월 작고한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 옥성호씨를 봤다. 그는 최근 그의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에 관한 책을 냈고, 책을 산 사람에게 사인을 해 주기 위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여느 작가라면 사인회를 한다고 광고도 하고, 날잡아 큰 서점에서 거창하게 했을텐데, 그는 그야말로 소리 소문 없이 한 거나 다름 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평소 거창한 것을 싫어한 옥한흠 목사님과 판박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냥 소박하게 자신과 같은 교회 나가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봉사라고나 할까? 덕분에 나도 다른 책을 사러 들어갔다가 하필 돈도 넉넉치 못해 예정한 책은 후에 사기로 하고, 냉큼 이 책을 사 그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사 볼 생각이었는데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사실 옥성호씨는 그의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의 장례를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했을 때 본 적이 있다. 고인의 장남이었던만큼 장례가 끝나갈 무렵 가족을 대표하여 참석한 내빈들에게 인사를 했었다. 요즘 흔한 헤어스프레이나 무스도 안 바른 더벅머리에 검은테 안경을 쓴 것이 영낙 없는 공부벌레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만큼이나 날이 선 성격이고 보면 판사나 검사 같이도 보인다. 그런 그가 인사를 했을 때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혹시라도 아버님의 작고가 교인들에게 누가 될까봐 오히려 강한 모습으로 참석한 이들을 격려해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런 그를 어제 사인을 받을 때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건 어찌보면 나에겐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는 나와 같은 또래다. 20년 전, 내가 사랑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청년부에 들어 갔었고, 같은 또래 끼리 모이는 모임에서 옥한흠 목사님의 큰 아드님이 우리가 같은 또래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옥한흠 목사님은 살아생전 가족들에 관해선 거의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였을까? 말만 그렇게 들었을 뿐 그가 아버지의 교회를 다녔을지조차 의문스럽게 그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하지만 목사님의 둘째와 세째 아드님은 봐서 알고 있다. 둘째 아들은 한때 나와 주일학교 교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를 만나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나 할까?ㅋ 뭐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옥한흠 목사님이야 워낙에 기독교계에선 존경받은 분이시기도 하니 웬지 목사님을 알면 그의 가족들도 다 아는 것처럼 착각이 들기도 한다. 단지 안타까운 건 그들은 나를 모른다는 것이겠지만.



또 하나 행운인 것은, 그는 유명한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오늘 날 위기에 처해있는 한국의 기독교의 문제점을 비판한 책으로 유명하다. 또한 기독교계에선 존경과 신망을 얻는 목사의 아들이 썼다는 점에서 출간 당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이러면 얼핏 아버지를 욕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겠지만, 저자는 오늘 날의 기독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정확히 짚어냈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합격점을 받았고, 오히려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 스스로가 아들의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것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모습으로 보였다. 그것은, 그런 저자의 책을 아버지가 홍보했다는 것 보다, 오늘 날 기독교는 비기독교 진영에서 더 많이 비판을 받는데, 나는 그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같은 기독교 진영이라야 맞는 것 아닌가? 비기독교는 그야말로 비판만하고 비난만 한다. 그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비판만하고, 비난만 할 뿐이지 이렇다할 대안도 각성도 촉구하지도 않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 비난을 위한 비난이야 누군들 못하겠는가? 나는 그들이 과연 기독교에 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떠드는 것이 맞는 일인가? 의문스럽다. 그러나 유명한 목사의 아들이란 걸 떠나서, 같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이런 책을 썼을 땐 비판만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성을 촉구하는 의도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건, 작년 이 맘 때 오랜만에 교회 청년부 때 같은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다 마침 옥한흠 목사와 그의 아들 옥성호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는, 옥함흠 목사님은 그렇게 복음주의 설교를 열심히 하는데, 그의 아들은 교회를 비판하는 책을 썼다고 나름 희화하면서 깔깔대고 웃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에겐 얼마나 이상하고 어색한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같으면서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그점에 있어서는 그들은 아직 생각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실제로 본 그는 인터넷 화면에서 본 것 보다 조금 더 나이들어 보이고, 거칠어도 보인다. 사실 서점엔 그다지 사람이 많지가 않았는데 거기에 사람이 많았더라면 사인하느라 바빴을텐데 자신의 책을 앞에 쌓아놓고 오도카니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다소 쓸쓸해 보였다. 손이라도 잡아주며, 같은 또래예요. 라고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었고, 사모님(옥한흠 목사님 사모)은 안녕하시냐고 묻고도 싶었다(정말 그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렸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사인만 받은 체 거기를 나와야 했다. 사인을 받는 것 그 이상의 태도를 취한다는 건 또 얼마나 우습고,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인가?

지금까지 저자들의 사인을 많이 받아 온 것은 아니지만, 사인을 하는 저자들은 모습은 대체로 진지하고, 겸손하고, 때로는 상냥하기도 하다. 하지만 또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런데, 사인을 받는 그 짧은 순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람이 있다면, 하나는 노벨문학상의 르 클레지오의 사인을 받을 때이고, 또 하나는 어제 옥성호씨의 사인을 받을 때가 아닌가 한다. 르 클레지오는 무엇보다 상당히 진지하다. 그는 사인을 받으러 온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진지하게 소리내어 본다. 그 발음은 또 얼마나 어색할 것인가? 그래도 그렇게 함으로 그날 모인 독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어하는 열망 내지는 호기심 같은 것이 스며있다. 또한 그의 유난히 맑아보이는 회색빛 눈동자도 인상적이고. 그리고 옥성호 씨는 얼듯 볼 땐 차가운 것 같지만 상당히 겸손했다. 난 그저 "안녕하세요?"하며 방금 산 그의 책을 내밀었는데, 그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나의 인사를 받아줬고, 힘있게 사인을 했으며, 안녕히 가시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면 정말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어찌보면 진지함과 겸손함은 한 줄기에서 나오는 인간의 가장 탁월한 태도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의 책을 받고 나오는데 콧 끝이 찡했다. 이제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지 햇수로 7개월째다. 아직도 그게 잘 인정이 안 된다. 아직도 그분이 목회하셨던 교회엔 저리도 교인들이 북적이는데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옥한흠 목사님은 안 계시다니. 쓸쓸함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