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2

(4) Namgok Lee ‘다시 개벽’ 운동에 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공감한다.

(4) Namgok Lee



요즘 내가 잘 알고 또 좋아하는 분들이 열어가고 있는 ‘다시 개벽’ 운동에 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공감한다.
내 개인적으로 말하면 1980년대를 전후(前後)해서 표현은 그렇게 안했지만 개벽운동으로 전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예견되는 가운데 그 왜곡된 변화들을 보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내 개인이 어떤 사건과 만나면서 겪었던 내적 고뇌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개벽운동가라고 자기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것은 ‘개벽’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세기에 어울리지 않은 종교나 신비주의 그리고 넘어서야할 닫힌 민족주의(특히 열등감에서 나오는 지나친 과거 역사 미화)와 주로 연관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개벽’운동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 종교성이나 역사 해석 등을 주로 하는 관념적 운동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개벽 운동이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운동이 되려면 ‘각자도생의 이기적 경쟁’을 넘어서는 동기에 의한 생산력이 경제의 토대로 자리잡을 수 있는 전망이나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결코 자유롭지도 않고 행복을 주지도 않는다.그러나 그 시스템(자본주의)이 생산력을 증대시켜 왔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시도들은 실패하였다.
지난 한 세기의 세계사적 실험에서 사회주의는 무릎을 꿇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전념(몰입)하여 그것이 기쁨으로 되는' 동기가 생산력의 원천으로 될 때 새로운 생산관계가 가능해질 것이다.
요즘 빠른 속도로 확대 심화되고 있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은 ‘제도’와 ‘의식’만 뒷받침되면 즐거운 생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내가 1980년대에 감동적으로 만났던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정신은 새로운 동기에 의한 생산력과 시스템을 갖출 때 비로소 개벽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연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원불교의 대종사이신 소태산 박중빈 선생께서 초기에 ‘협동조합’을 하신 뜻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잘 보고 있지만, 세계자본주의는 많은 심각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의 보편적 시스템으로 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시스템(제도)을 전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 ‘개벽’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불교의 존경하고 신뢰하는 벗님들께도 이런 제안을 드린 적이 있다.
내가 ‘다시 개벽’ 운동에 심정적으로 적극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관념화 추상화된 운동으로 흘러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Comments
  • 김경일 적극 공감합니다
    문제는 이기적 경쟁의 동기를 어떻게 자리이타적 공생의 동기로 바꿀 수 있는가가 문제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