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3

이코노믹리뷰 모바일 사이트, 농사 지으면서 치료도 하는 영속·치유농업 각광



이코노믹리뷰 모바일 사이트, 농사 지으면서 치료도 하는 영속·치유농업 각광



농사 지으면서 치료도 하는 영속·치유농업 각광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서 인기.. 한국에서는 영주시와 서울시가 도입

천영준 농업ICT 전문위원 겸 에디터/공학박사 taisama@econovill.com

기사승인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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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농민이 별도의 조작을 가하지 않고 작물이 스스로 클 수 있도록 하는 ‘영속 농업’이 유럽에서 인기다. 비료나 제초제 등을 뿌리지 않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작물이 크는 ‘영속 농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농사를 지으면서 심성 교육이 이루어지고, 심리 치료, 재활 치료 등이 가능한 치유 농업 분야도 성장하고 있다.


▲ 프랑스의 '미래의 농업' 조합(출처=Fermes D'avenir)



‘작물이 알아서 자라게 내버려 두자’, 영속농업

“자연 속에서 작물들이 알아서 살게끔 내버려 두면서 농장이 만들어져 가는 흐름만 살펴 보자.” 1970년대 말 호주에서 빌 몰리슨이라는 태즈매니아대학 농대 교수가 내 놓은 주장이다. 몰리슨 교수는 “18세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은 일부러 땅을 일궈 이랑을 만들거나 모종을 심지 않고도 식용 작물들이 알아서 농장을 일구게 했다. 인간이 가급적 농사에 개입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작물이 자라게 해야 한다.”고 외쳤다.

몰리슨의 철학을 계승한 농업 운동가들은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영원한 농업’을 만들자는 뜻에서 ‘영속 농업’(Permaculture)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숲 속에서 자연히 자란 약초나 작물들을 적정량만 수확해 먹는 습관이나 비료나 제초제 등을 뿌리지 않고 환경을 보존하는 모습 모두 영속 농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영속 농업이 시작된 70년대부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환경 관련 공공기관이 생겨났고, 녹색당이나 친환경정치연합과 같은 생태 정당이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내게 됐다. 유기농업자들도 사회운동처럼 조직을 만들고 아시아나 중남미 등으로 ‘영속 농업’ 운동을 전파했다.

영속농업 선진국 프랑스

요즘 영속 농업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 국내 250곳에서 작은 규모로 친환경 농산물 재배를 고집하는 ‘영속 농장’들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 ‘미래의 농장 조합’(Fermers D’avenir)은 ‘영속 농장 일주 프로그램’을 만들어 1만5000명의 참가자와 함께 프랑스 국내 30곳의 농장을 돌았다. 코트라에 따르면 프랑스 영속농장들은 1000 제곱미터 당 5만5000유로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통 농업으로 일궈지는 농장 1헥타르(ha)에서 산출되는 가치와 맞먹는 규모다. 프랑스에서는 ‘블루 비’(Blue Bee)라는 영속농업 전용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만들어 졌다. 농부들이 생태 농업 프로젝트를 플랫폼에 올리면,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이 증권 또는 대출 형태로 투자금을 붓는 식이다. 블루비가 2011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290만 유로의 투자금이 집행됐다. 성공한 프로젝트는 167개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돈 주고 영속 농업을 배운다. 하루에 300 유로가 넘는 실습비를 내야 하지만 영속 농장의 인턴 자리를 구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 영속농업에 투자하는 크라우드펀딩 '블루비'(출처=블루비 홈페이지)



친환경 농사를 통해 심리 치료하는 ‘치유 농업’

영속 농업과 함께 주목되는 또 다른 트렌드는 ‘치유 농업’(Care farming)이다. 농사를 통한 ‘힐링’을 강조하는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치유 농업은 1990년부터 환자들의 재활 치료나 심리 치료, 아동의 교육을 위한 학교 농업으로 발전해 왔다. 미국의 뉴욕이나 시카고에서는 학교 폭력이나 범죄 행위에 노출된 지역의 공립 학교들이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면서 문제 발생률이 줄어들고 있다.

치유 농장들은 동물이나 식물을 이용해 재배자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친환경 농법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을 가르친다. 문제 행동 청소년이나 사회심리적 환자, 알코올 중독자, 수감자 등이 수강 대상이다.

▲ 영주시에 만들어질 국립 농업치유 단지(출처=영주시)



치유농업이 가장 발달한 네덜란드에서는 839개의 치유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은 개인이 운영하지만, 병원들이나 복지회들이 환자들의 재활을 위해 운영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장애인을 고용해 소득원을 창출하거나 실업자들에게 친환경 농법을 가르쳐 재도약을 돕는 프로그램 등이 가동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700개의 사회적 기업형 치유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농장주들과 치료 전문가, 치료 대상자가 팀을 이뤄 농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는 과정이 핵심 프로그램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다른 국가에 비해 치유 농장이 적지만, 국가 주도형 복지 정책으로 치유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도시 병 치유하는 치유 농업과 영속 농업
하버드대 뉴로사이언스랩의 김수 박사는 “식량 농업을 위한 농사가 아니라,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자연 속에서 친환경으로 작물을 기르고, 그 과정에서 심리 치료를 하는 것이 치유 농업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최근 5년 간 신세계, 삼성 DMC 연구센터 등과 함께 도시 농업과 인간 심리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김 박사는 “현재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농업과 관련된 실과 시간의 비중이 매우 적다. 학생들이 국ㆍ영ㆍ수 공부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품성 교육 차원에서 농업에 관심을 갖도록 농업계나 관련 기업 등이 적극적으로 교육계에 건의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네덜란드와 미국에서는 주 정부의 농업 당국이 ‘학교 안의 치유 농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네덜란드 오버레이셀 주에서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돌봄 이니셔티브’를 통해 320명의 청소년들이 40개의 농장에서 방과후 농업 활동에 참여했다. 이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오후나 주말에 농장주와 농장주 가족이 운영하는 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채소 가꾸기, 농산물 수확 후 요리하기 등의 활동을 했다. ‘청소년 돌봄 이니셔티브’ 참가자 대부분은 가정이 불우하거나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기 힘든 청소년들이다.

김 박사는 “연간 1500만 명이 이용하는 네덜란드 도시 농장이 친환경 농업과 교육을 위한 농업으로 운영되는 것을 우리 교육계와 농업계도 참고해 볼 만 하다”고 평가했다.

도시농업 기획자인 고창록 노원 몬드라곤협동조합 이사장은 소백산 자락에 약초 농업 단지를 만들고 치유농업 교육 센터를 가동하고 있는 영주시 사례를 언급했다. 고 이사장은 “치유 농장을 운영하면 의료비 절감도 크고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친숙도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고 이사장은 “서울 행촌권 도시농업 특구에서도 영속 농업과 치유 농업의 만남을 통해 중고등학생들에게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을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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