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0

‘신념’ 따른 병역거부 첫 인정했지만…법원 일각 ‘반감’ 여전 - 경향신문



‘신념’ 따른 병역거부 첫 인정했지만…법원 일각 ‘반감’ 여전 - 경향신문

‘신념’ 따른 병역거부 첫 인정했지만…법원 일각 ‘반감’ 여전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입력 : 2019.02.19

“대법, 종교적 이유 심사기준만 적시…이외엔 기준 없어”
피고인 진정성 입증 자료 선제출, 과도한 입증 책임 부여


“피고인이 군대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4주죠? 기본훈련을 마치고 나면 얼마든지 군대에도 여러 분야가 있거든요. 꼭 전방에서 총 들고 폐쇄적인 생활을 하는 것만이 군대가 아니에요.”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22호 법정에서는 형사항소4부 재판장인 김영학 부장판사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홍정훈씨를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


홍씨는 무죄 판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아니라 비폭력·평화주의 등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11월 종교뿐만 아니라 ‘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까지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고, 지난 14일엔 수원지법 형사5단독 이재은 부장판사가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판결을 처음으로 선고했다. 모두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선 안된다는 취지이지만 일선 법원의 재판은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여전히 쉽지 않다.


김 부장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며 “군대에 가기 싫다고 하면 얼마든지 그런 사유를 들어 대체복무제를 통해서 병역의무를 해소하겠다고 할, 일종의 도피처가 마련될 위험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사회생활과 상당 부분 절연되기는 하지만 군대와 폭력성은 관계가 없다”며 “저도 사병 생활을 했지만 피고인이 생각하는 고참이 후배에게 얼차려를 주고 폭력 행사하는 것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군대를 보고 있다면 (피고인이) 문제”라고 했다.


홍씨는 대학 때 선배들의 폭력을 경험한 것을 계기로 위계질서 에서 폭력이 정당화되는 군대에 갈 수 없다는 신념이 형성됐다는 내용의 진술서와 학교 생활기록부를 냈다. 1심 때 지인에 대한 증인신문과 피고인신문까지 했다.


홍씨 측이 “군대 가기 싫어서 감옥 가는 경우는 없다”고 했지만, 재판장은 자료를 더 내라고 요구했다. 홍씨는 2017년 1월에 기소돼 현재까지 2년째 재판 중이다.


비폭력·평화주의 등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 법원이 종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보다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 혐의를 검찰이 입증하지만,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 피고인이 진정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먼저 내고 검찰이 탄핵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했다. 자칫 피고인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하는 임재성 변호사는 “대법원이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심사기준만 적시해 비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며 “(법원에서)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엄격한 방식을 대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수원지법 판결을 보면 이 재판부는 크게 네 가지 기준을 댔다. 양심을 어떻게 형성해왔는지에 대한 당사자의 일관된 진술, 양심적 병역거부로 받는 불이익이 이익보다 크다는 점, 범죄로 인한 처벌 전력이 있는지, 대법원 판결 전에 병역거부를 한 것인지 여부다. 다만 이 사건은 예비군 훈련 거부 사례로 현역 입영 거부 사례에 대한 법원 판단은 아직 나온 게 없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2192138005&code=940301&utm_source=dable#csidx9fe3403868ec779833debf54b85420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