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평
영산출장소 앞에 펼쳐진 들판으로 교단 초창기에 대종사님과 9인 선진께서 이룩한 간척답이다. 대종사는 당시의 일반적인 풍조였던 허황된 미신을 타파하고 구세주의 출현을 통한 구원만을 추구하던 민중들에게 허례폐지, 미신 타파, 금주금연 등의 생활운동 전개와 저축조합운동 등을 통한 근검저축, 협동단결 정신을 실질적으로 보여준 것이 간척사업이다.
정부나 외부의 도움과 협조를 받지 아니하고 순수한 조합원들의 노력과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길룡리에는 논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이 정관평으로 인해 비로소 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경지 정리를 시작할 즈음에 조합원에게 각각 할당해 주었고 개간한 사람의 소작지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 방언답을 처음엔 구호농장이라고도 부르다가 후에 정관평이라 하였다. 구호농장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구호동의 이름을 따서 구호농장이라 하였다는 의견도 있고 아홉 조합원이 일심단결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 구호농장이 정관평이라 불리게 된 시기는 원기 19년 10월 {회보} 12호 [영광지부 각지 상황]에 [정관평]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정관평이라는 이름은 대종사 당대에 지어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정관평의 [정관]이란 당나라 태종시의 연호로 태평성대를 노래한데서 유래되었으며 일원의 광대무량한 낙원세계 건설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재방언공사시 재방언의 노래가 있었는데 '구인혈심(九人血心) 다시 이어 재방사업(再防事業) 이루었네. 오는 세상 두고두고 많은 동지 표본되어 무량겁의 대천세계 사부도덕(師父道德) 빛을 내리'로 이는 대산 종사가 기술한 내용이다. 이러한 간척사업은 원불교 교단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교단의 창립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원불교 교단을 영육쌍전, 이사병행의 생활종교로 발전케 한 하나의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
방언 공사는 교단의 경제적 기반 확립 이상으로 정신적인 큰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대종사는 방언공사의 의의를 "믿기 어려운 이 일을 할 때에 신심이 있고 없음을 알 것이며, 시종을 볼 때에 사업 성취의 힘을 알 수 있고, 근로작업으로 복록의 근본을 알 것이며, 괴로운 일을 할 때 솔성하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혀주고 있다.
지금은 영산출장소에서 전 면적을 관리하지만 당시에는 소작을 주어 3분작으로 1/3을 선원에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하지만 언을 막고 얼마동안은 염수로 인해 농사짓기가 어려워 생활의 빈곤이 있었다.
당시 방언공사를 할 때의 서약문은 다음과 같다.
(박정훈. {한울안 한이치에} 이리. 원불교출판사. 19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