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6

정경모 81. 일본인들 ‘우상’에 미국 대통령도 열광

정경모 81. 일본인들 ‘우상’에 미국 대통령도 열광



정경모 '길을 찾아서' 2009/08/25 10:30 leerberg

일본인들 ‘우상’에 미국 대통령도 열광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81 

 
»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메이지시대의 선각자로 숭배하는 인물인 오카쿠라 덴신(왼쪽)과 옛 5000엔짜리 지폐에 들어 있던 니토베 이나조의 초상(오른쪽). 두 사람의 영문 책은 서양인들에게 일본 민족의 우수성과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일본 사람들이 숭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메이지(명치)시대의 ‘선각자’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카쿠라 덴신(1862~1913)인데, 이 사람은 일본의 전통적 미술뿐 아니라 서양과는 다른 일본적인 동양사상을 유려한 영문으로 널리 외국인들에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특히 존경과 숭모를 받고 있소이다. 오카쿠라가 남긴 영문으로 된 저서 중에서도 <차(茶)에 대한 책>, <동양의 이상>, <일본의 각성>은 말하자면 고전으로서 고교생들에게까지 거의 필독서로 추천되고 있는 책들인데, 이 중에서 내가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1904년 러일전쟁 전야에 미국에서 출판된 <일본의 각성>이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외다.
“조선의 시조 단군은 일본의 시조 아마테라스의 아우 스사노오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조선은 일본의 제14대 천황 주아이의 황후, 신공이 정벌군을 파견하여 삼한 땅을 정복했던 3세기 이후 8세기에 이르는 500년 동안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고유의 속주(original province)였다. 따라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선을 식민지로 재지배한다 하여도 그것은 침략이 아니라 역사적 원상복귀일 뿐이다.” 
역사에 대한 이런 ‘해박한’ 지식에 덧붙여 미술의 대가인 오카쿠라는 다음과 같은 말도 하고 있소이다. 
조선의 고분에서 나오는 출토품들이 일본 고분의 출토품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것만 보아도, 일본이 태곳적부터 이미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이건 위사(僞史)조차도 아닌 터무니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라는 사고를 대통령 이하 미국 정부의 수뇌부 머릿속에 심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논리였던 것이외다. 
또 하나, 메이지시대의 선각자로서 오늘날까지 숭앙받는 우상이 니토베 이나조인데, 이 사람도 역시 유창한 영문으로 씌어진 <무사도>(Bushido)라는 책을 1905년 미국에서 출판함으로써, 낙양(洛陽)이 아닌 화성(華城·워싱턴)의 지가(紙價)를 올렸던 일본의 지식인이었소이다. 니토베의 책은 일본인이 얼마나 고매하고 용감한 무사도(사무라이) 정신을 이어받은 우수한 민족인가를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서술한 책으로서, 그때 막 러일전쟁에 돌입한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여론을 환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 역사가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문건이외다. 이 책에는 조선 민족에 대해서 모멸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없었소이다. 그러나 니토베는 그 배후인물의 하나가 이토 히로부미였으며 통감부의 촉탁으로서 조선 각지를 답사한 뒤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하였소이다. 
“조선인은 그 풍모로 보나 생활상태로 보나 도저히 20세기의 인종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원시적이며, 민족으로서 생존의 기한은 끝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조선반도에 드리우고 있는 것은 죽음의 그늘이다.”(잡지 <삼천리> 34호) 
당시의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니토베의 저서에 매혹된 나머지 수십권이나 그 책을 구입해 각료는 물론 정부 각 부처의 관료들에게 읽으라고 배부했다는 사실도 기록에는 남아 있는데, 아무튼 대통령 루스벨트 머릿속에 “놀라울 만한 마셜 스피릿(무사도 정신)으로 무장된 우수한 일본 민족”이라는 개념과, “자기 자신의 방위를 위하여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머저리 같은 조선 민족”이라는 개념이 동시진행적으로 침투해 가는 데 오카쿠라와 니토베의 입김이 얼마나 컸는지, 이 두 사람의 영향이 일본의 국가이익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 일본 사람들이 이 둘을 우상과 같이 숭배하고 있는지도 이해할 만한 노릇이 아니오이까.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일본이 러시아를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는 와중에,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의 체결을 며칠 앞둔 어느날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 대표단의 일원인 가네코 겐타로를 백악관으로 불러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언질을 준 것이었소이다.

“카리브해 연안지역인 쿠바를 미국이 지배하듯이, 황해 연안 지역인 조선을 일본이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미국은 인정한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기사등록 : 2009-08-24 오후 09:10:08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