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1

[인터뷰] 박성준-움직이는 학교(새길이야기 3호)

[인터뷰] 박성준-움직이는 학교(새길이야기 3호)





움직이는 학교 박성준 선생



김문음(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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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음: 호칭을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요?

박성준: 그냥 '씨'가 어떨까요?



무슨 위원장님, 회장님, 이사장님, 사무총장님, 박사님, 교수님 등 호칭의 홍수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려운 이들을 만난다. 인터뷰가 진행된 양천구 신정동 아파트 거실. 직접 차를 내오는 선생님의 인상이 무척이나 차분하다.



특이한 이력



김: 박성준 선생님 이력을 보면,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릿쿄오(立敎)대학 신학박사..., 그런데요, 감옥엔 왜 이렇게 오래 계셨어요?



박: 함석헌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의 발꿈치에 채여서랄까...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한편으론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감옥에 쉽게 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요? 기사의 분량이 어느 정도 되나요?



그는 한국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두 살 아래인 동생과 함께 고아가 됐다. 그의 나이 열 살 때였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친구들 교과서를 빌려 헌 종이 묶음에 베껴 쓰면서, 그에겐 무슨 책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생겨났다.



대학 시절, 그는 성서를 읽기 시작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경제학도로서 여러 경제학 책을 섭렵했다. 미국 경제학은 사회의 모순을 설명해내지 못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복음과 사회과학을 결합시키는 대안을 모색하던 그는, 당시 금서였던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고, (어릴 때부터 익힌, '빌린 책을 단숨에 베끼는' 재주를 발휘해) 일어로 된 책들을 번역, 그가 조직한 '경제복지회' 회원들에게 유포했다. 이는 당시, 국가보안법 1조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그는, 같은 서클 후배였던 한명숙과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투옥, 13년 반 동안 옥살이를 했다.



박: 우리 한명숙이가, 나 옥에 있을 때, 한국의 주요 신학교 교과서를 다 보내줬어요. 13년 반 만에 재결합해 태어난 아들이, 이제 고 1입니다.



그 세월의 갈피에 끼인 절절함을 어찌 쉬이 알 수 있겠는가. 현재 부인 한명숙은 여성부 장관이다. 박성준은 출소 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서남동, 안병무 등과 교류하며 한국 신학연구소 학술부장을 역임하고,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인 '한백교회'를 설립, 8년 동안 목회를 했다.



퀘이커와의 만남



김: 건너뛰어서, 퀘이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저처럼 무지한 사람을 위해서 소개해 주신다면.



박: 퀘이커(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났지요. 당시, 외적인 종교의식이나 성경의 권위, 공식적인 신조에 중점을 두고 있던 기존 교회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체험의 종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갈구하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이런 이들을 '구하는 자들(seekers)'이라 불렀습니다.

목동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유난히 예민한 감성을 지녔던 조지 폭스(Gorge Fox, 1624∼1689)가 '영적인 여행(spiritual journey)' 끝에 펜들 힐(Pendle Hill)이라는 작은 산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환상(vision)을 보았는데 이것이 퀘이커의 시초입니다.



김: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나요?



박: 그가 들었던 소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니, 그는 너의 처지에 맞게 말씀하신다(There is one, even Christ Jesus, that can speak to thy condition)."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인습적인 신조들(creeds)과 날카롭게 충돌하는 것이었지요. 퀘이커들은 "각 사람 속에 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There is that of God in everyone)." 이것이 퀘이커 신앙의 정수(精髓)죠.



김: 놀랍게도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통하는군요.



박: 19세기 말엽 한반도에 출현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와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의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모시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동학의 핵심은, 지금까지 저 밖에 있는 신(God without)을 향해 놓았던 제상(祭床)과 위패(位牌)를 나를 향해(向我) 돌려놓도록 하는 새로운 제사법을 창안했습니다. 이는 훗날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 함석헌의 씨알 사상과도 연결되지요(함석헌은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의 펜들 힐에서 퀘이커 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민중신학의 창시자격인 서남동과 안병무에게 미친 씨알 사상의 영향을 생각할 때, 퀘이커 신앙과 민중신학의 만남은 일찍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금도 우리에게 호소력이 있습니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한(恨)'과 더불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빛'­ 퀘이커들은 이것을 '영', '그리스도', '씨앗'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 에 주목할 수 있다면, 그 민중을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와 역사 창조의 중심에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박선생님께서도 펜실베니아주 퀘이커 학교 공동체 '펜들 힐'에 가서 직접 생활하셨지요?



박: 94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온 후 3년 간 일본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크리스천을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만나고 다닌 것이 준비 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맑시스트 크리스천으로서, 저를 보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했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처음엔 일주일 코스로 펜들 힐 영성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후에 결국 2년 동안 거주하며 주로 '평화'를 주제로 공부하였습니다.



예언자적 경청의 힘



김: 펜들 힐에선 무엇을 발견하셨는지요?



박: '경청의 힘'이지요. 우리는 말하는 데 익숙해 있지, 자신이나 남을 잘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언자적 말하기(prophetic speaking)'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예언자적 듣기(prophetic listening)입니다. 말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자신은 바뀌지 않지요.

'경청'은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훨씬 강력한 것이라는 게 제 경험이에요. '각 사람 속에 빛이 있다'는 것이 뿌리가 되어, 각 사람의 말을, 마음을 듣는 것 - 새벽 여명처럼 존재하는 자신과 상대방의 씨앗을 일깨우는 '경청'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김: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기존의 설교 중심의 예배 방식에도 이의를 제기하시겠군요.



박: 그렇습니다. 예배에서 말과 소리를 좀 줄이고, 고요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 예배의 주체인 각 사람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 여백을 타고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시리라 생각합니다.



김: 경청에도 훈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박: 예컨대 틱 낫한 스님은 '숨쉬기'를 수련하라고 권합니다.



그는 베트남 출신인 틱 냣한 스님의 'mindfulness'란 사상으로부터 '경청'(mindful listening)이라는 중심 개념을 얻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mindfulness'란 보름달처럼 어느 한군데 이지러짐이 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경청은 그런 마음의 상태로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다.



 " '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숨쉬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숨쉬기는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숨쉬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삶과 깨어 있는 의식 사이를 다리 놓아 줍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산만해질 때면, 그대의 숨을 사용해서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숨을 다스리는 것은 몸과 마음을 그대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입니다."

 "어느 때라도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고 싶으면, 즉시 그대의 숨을 먼저 관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처음에는 정상적인 숨을 쉬다가 차츰 숨을 길고 느리게 하여 숨결이 곱고 잔잔해지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숨의 길이는 꽤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숨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가 'mindfulness(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의 상태라 하겠습니다.  펜들 힐에 있는 동안 저도 매일 아침 '고요한 예배'에서 '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저는 이것을 '따뜻한 의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체험이 저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아침 묵상 가운데, 내 안에 있는 빛을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며 깊고 고른 숨을 길게 내쉬고 들이쉽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라고 생각하지요.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맑은 샘이 솟듯이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움직이는 학교



김: '따뜻한 의식'은 '사회 문제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박: 예전엔 운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의식화'를 위해 많이 노력했죠. '의식화'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깨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된 '따뜻한 의식'으로 사회적 행동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 펜들 힐에서 돌아오실 땐 보람이 있으셨겠어요. 5년 반 만의 귀국이셨다죠?



박: 예. 저는 '선물'을 준비해 갖고 온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81년, 크리스마스날 새벽, 13년 반 만에 감옥에서 돌아오던 때보다 더 큰 기쁨과 희망에 찬 귀향이었습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학교'라는 제 새로운 꿈(vision) 때문이었습니다.



김: '움직이는' 학교요?



박: 예. 움직이는 학교는 위치가 없습니다. 고정된 건물이나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사람과 사람이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마치 처음이듯 새롭게 다시 만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지요.



그의 부연에 의하면,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이내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깊이 귀를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임을 갖는다. '움직이는 학교'에선 한 사람이 너무 길게 말하거나 이야기를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둘러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누구나 이야기에 참여한다. 남이 이야기할 때 잘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 잠기거나 상대방의 이야기 속의 허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를 온전히 내맡겨서 남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통째로 듣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각자 1분 정도씩 말을 한다. 이야기할 준비가 미처 안 됐다고 느끼거나 혹시라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말없는 손짓으로 옆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넘겨 주면 된다.



상대방의 말을 분석 비판하면서 듣고 허점을 발견하여 논박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통째로 듣기'가 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연습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야기가 돌아가며 무르익어 간다.



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 속에 잠자던 이야기를 일깨우는 실마리가 되고 상대의 진실이 나의 심금에 부딪쳐 와 내 소리를 울려낸다. 개성과 차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공감의 깊이가 더해지며, 나와 너의 진실이 맞닿고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며 해답이 주어진다.



김: 하나의 운동인 셈이군요.



박: 브랜드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학교의 정신적 푯대가 되는 원리는 물론 '경청'입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사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학교에는 선생과 학생이라는 이분법적 분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선생이고 학생이라고나 할까요. 이 선물을 받게 되는 이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김: 예수님이야말로 움직이는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동안 개교를 많이 하셨나요?



박: 소리없이 퍼져가고 있지요. 움직이는 학교도 끊임없이 변해가야 합니다.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비우고 가득 차고... 방법론 자체도 변해갈 겁니다.



김: 최근 우리 모두를 걱정시키고 있는 세계의 테러리즘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박: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와 질병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 자체를 공격하는 방법이 아닌, 평화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국제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통제하려면, 먼저, 또는 적어도 동시에 미국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 간디옹은 이렇게 놀라운 통찰의 말을 했지요.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고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폭력'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새 발견에 끊임없이 놀라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비폭력'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더 놀라운 발견들, 예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고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을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꿈 꾸라



그는 2001년 봄 학기부터 성공회 대학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박: 마음과 정성을 다해 우리가 서로 경청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지하수'를 뿜어 올릴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마중물'이요? 처음 들어요. 참 아름다운 단어네요.



박: 개인의 우물 하나 하나는 우리가 다 갖고 있는 기반이죠. 그 뒤에는 더 큰 하나님의 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김: 말씀 나누다 보니까, 감옥에 계셨든, 외유를 하셨든, 선생님께서는 삶의 정수(精髓)만을 찾아다니는, 진짜 욕심쟁이같군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대책 없어 보이던 첫 모습은, 공생(共生)의 삶을 끝없이 궁리하고 꿈꾸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보였다. 헤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늘 나는 박성준 선생님이 주재하는 '움직이는 학교'의 1人 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만치... 새로운 문이 열리고, 하얀 빛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