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6

[희망의 인문학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7)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

[희망의 인문학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7)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

[희망의 인문학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7)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1.08.30 00:58 수정 2014.10.16 12:05 | 종합 26면 지면보기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의 삶을 이어달리기에 비유했다. ‘나’라는 개별 존재가 한 팀(온생명)의 일원으로 달리고, 그 바통을 후세에 전해준 뒤 휴식을 취한다는 뜻에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당신 나이는 40억 살, 우리 모두는 지구 탄생부터 생명으로 이어졌으니 …

사람들은 나누기를 좋아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이념 문제만이 아니다. 삶과 죽음을, 인간과 자연을 구분한다. 인문학과 과학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장회익(73) 서울대 명예교수가 차지하는 자리는 각별하다. 물리학자이면서도 인문학 주제를 천착해온 그에게 삶은 앎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였고, 과학 연구는 철학적 성찰이었다. 그가 주창한 ‘온생명’은 이런 통합과 소통의 결실이다.

 정재승 교수(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가 장 교수를 만났다. 중앙일보와 예스24가 공동 기획한 ‘희망의 인문학’의 첫 공개 대담에서다. 2003년 퇴임 뒤 충남 아산에 살고 있는 장 교수가 기차를 타고 서울을 찾았다. 25일 오후 7시30분 서울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대담에서 장 교수는 “따로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과학을 삶과 연결해 고민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나를 인문학자로 불렀다. 과학과 인문학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승=선생님의 『공부도둑』은 일반 과학자의 자서전과 달랐습니다. “학문이 담긴 창고의 열쇠를 훔치는 공부도둑이 되길 원했다”고 하셨죠. 언제부터 호기심이 왕성한 공부꾼이 되셨어요.

 ▶장회익=초등 6학년 때 중퇴를 했어요.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학교 가지 말라”고 하셨죠. 정신이 얼얼해졌죠. 다들 학교 가는데 저는 산에 가서 나무를 했거든요. 남다른 공부를 한 거죠. (웃음) ‘그래도 공부는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중학교 때 정식 편입을 했지요.

 ▶정=『온생명에 대하여』를 읽고 놀랐습니다. 생명을 재정의하게 된 계기라면요.

 ▶장=물리학은 사물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그걸로 만족이 안 됐어요. 가장 중요한 생명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등을 읽었는데,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어요.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생명은 다른 거구나 하고요.

지난 25일 독자 초대 공개대담을 하고 있는 장회익(오른쪽) 교수와 정재승 교수.

 ▶정=그게 온생명이죠.

 ▶장=한 생명이 완성되려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연결돼야 합니다. 온생명인 거죠. 한 부분만 떼어서는 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사람을 생명이라고 하는데 공기나 물 없이 사람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 동안 많은 과학자가 생명의 한 끄트머리를 붙잡고 연구한 겁니다. 사물의 상호작용, 인과관계를 보다 보니 온생명에 도달했습니다.

 ▶정=온생명의 통찰력은 무엇일까요.

 ▶장=우리가 온생명의 일부라는, 또 내가 곧 온생명이라는 것이죠. 30~40억 년 전에 시작된 모든 생태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내가 먹는 음식은 무엇으로부터 오죠. 태양에너지입니다. 태양에서부터 나까지 모두 연결됩니다. 올해 정 교수 나이가 어떻게 되죠.

 ▶정=우리 나이로 40세입니다.

 ▶장=온생명으로 말하면 40억세에요.(웃음) 온생명 관점으로 보면 ‘나’의 의미가 달라지죠. 40억세인 내가 존재하는 동시에 개체로서의 나도 있죠. 온생명이 살아있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그런 뜻도 됩니다. 산다는 것은 이어달리기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바통을 이어받아 달린 뒤 그것을 넘겨주고 휴식을 취하는 거죠. 그게 온생명으로서의 삶입니다. 경기장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휴식하는 거에요. 그래서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정=과학자도 인문학을 해야 할까요.

 ▶장=인문학을 따로 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기계적입니다. 앎이 나의 삶, 우리 삶과 어떻게 관계되는지 관심을 갖는 게 인문학입니다.

 ▶정=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장=인문학은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가 아니죠. 양자역학, 상대성이론을 파고들다 보면 철학인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모르게 철학을 하게 된 것이에요. (웃음) 제가 과학과 삶을 연결 짓는 얘기를 하니까 저를 인문학자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과학을 빠뜨리고 인문학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과학은 사물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인문학, 순수과학, 엔지니어 무엇이든 제대로 과학을 해봐야죠.

 마이크가 직장인·주부·대학생·중학생 등 공개대담에 참여한 독자들에게 돌아갔다. 질문이 쏟아졌다.

 ▶독자1=온생명론을 인식 못하는 생명도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을 이용할 수 있다는 당위성을 주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장=온생명 중에서 정신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인간이죠. 어떻게 보면 놀랍고, 다행인 일입니다. 문제는 그조차도 인식을 못 하고, 나 혼자 잘 살아야겠다며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온생명에 암세포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내가 조금 잘 못하면 생명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독자2=과학문명만큼 정신이 함께 성숙했는지 의문입니다.

 ▶장=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은 과학을 이해하며 자연에 대한 힘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주는 눈은 공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과학이 주는 지혜를 피하고 물질적인 편리만 이용하려고 하죠. 온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과학은 더 치열하게 해야 해요.

 ▶정=앞으로 성취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장=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아요. 난 온생명에 빚을 지고 있으니, 꼭 갚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님은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점심에 그걸 써놓고 저녁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혼자 알고 없어지면 안 되죠.

 ▶정=요즘 고민이 많은 청춘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장=삶의 목표를 되도록 높이 가지세요. 목표는 마지막 바통을 어떻게 넘겨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게 없으면 살아가는 힘이 없어요. 내 삶이란 가벼운 게 아닙니다. 높은 목표를 세우되 그 과정에서 진행하는 중간 목표는 낮추세요. 과정의 목표가 너무 높으면 멀리 못 갑니다. 예컨대, 꼴찌에서 일등을 하겠다가 아니라, 꼴찌에서 두 번째 하겠다는 목표를 하면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어요. 앞에 닥친 목표는 작게 만들고, 그것의 달성 또는 초과달성을 즐기세요. 하지만 최종 목표는 가장 높게, 그 목표를 위해선 아무것도 양보하지 마세요.

정리=이은주 기자, 김민영 프리랜서 작가
DA 300



◆장회익(張會翼)=1938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원과 루이지애나대 방문교수를 거쳐 지난 30여 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대학 총장을 지냈다.

장회익 교수의 책책책

◆삶과 온생명(솔출판사, 1998)=주역이나 성리학 등 동양 전통학문이 말하는 삶의 자세와 서구 과학을 통해 본 ‘온생명’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모색했다. ‘조선성리학의 자연관’ ‘온생명과 현대사회’ ‘과학문화, 재앙인가 구원인가’ 등을 논했다.

◆공부도둑(생각의나무, 2008)=스스로를 ‘공부꾼’ ‘공부도둑’이라는 부르는 저자의 70년 인생과 학문 이야기. 어린 시절 학업을 중단하고 나무하러 다닌 이야기, 청주공고와 유학시절 등 공부여정을 섬세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물질, 생명, 인간(돌베개, 2009)=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등 철학을 파고들었던 지은이의 학문적 여정을 오롯이 담았다. 인간의 앎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기초해 물질과 생명현상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

☞◆온생명론(Theory of global life)= 1988년 4월 유고슬라비아의 두브로브닉에서 열린 과학철학 모임에서 장회익 교수가 발표한 이론. 생명을 하나하나의 세포나 생물학적 종으로 보는 개체중심에서 벗어나 태양-지구계처럼 통합적 에너지를 품고 있는 자족 단위로 파악한다. 오늘날 생태계 위기는 인간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보생명(co-life)’으로 보지 않고, 인간을 위한 ‘환경’으로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알림

※ 장회익·정재승 교수 대담 동영상과 내용 전문을 중앙일보와 예스24가 함께하는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홈페이지(http://inmun.yes24.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QR코드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기사를 읽은 소감을 9월 18일까지 홈페이지 댓글 코너에 글을 남겨주시거나 분야별 추천 도서에 대한 서평을 올려주세요. 선정된 독자께 도서지원금을 드립니다. 9월 5일에는 주경철 교수(서울대·서양사)와 정재승 교수의 공개대담이 열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캠페인 홈페이지에 9월 1일까지 신청해 주세요.


[출처: 중앙일보] [희망의 인문학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7)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