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1

평화와 영성 /박성준 20020909

평화와 영성 /박성준 20020909





박성준 (24)목록보기|요약보기|펼쳐보기



마리산인 2008.02.20 09:08 http://blog.daum.net/jebinae/9329205





<2002 아셈 민간포럼 종교영성분과 국내워크숍> 2002년 9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조발제문









평화와 영성

-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군사주의에 대응하는 평화의 영성과 종교의 역할 -

                                             



                      박성준 박사

(움직이는 학교 대표/성공회대겸임교수, 평화학)





오늘의 세계



냉전이 끝나자 세계 도처에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민족(ethnic: 정치적 단위인 nation과는 달리 ethnic은 어느 특정한 역사적 기억, 문화, 종교 등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집단)문제이거나 문화적 또는 종교적 문제였다. 그러나 한편 이런 문제의 사회적 원인을 함께 보지 않으면 문제의 본질을 놓지기 쉽다.



보스니아와 코소보 사태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냉전체제의 해체와 동시에 전지구적 규모로 전개된 [글로벌리제이션]의 반작용(reactions)으로 나타난 [중심부와 주변부의 분극화], [의미를 박탈당한 세계] 곧 [가치관의 혼미](Identity Crisis) {과거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사회 시스템(자본주의 vs. 공산주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돈에 의해서(위해서)만 움직일 뿐. 그 결과 사회성, 公共性이 쇠퇴하고 정체성의 위기가 도래. 아이덴티티 확인을 위해 민족의식과 종교의식으로 회귀} 특히 보스니아 내전의 경우를 보면,  티토의 시대에는 통합의 이데올로기(유고식 사회주의)가 있었는데 1980년 그의 사망 후 국민통합의 근거상실, 시장경제 도입, 경제악화, IMF 체제에 의존, 멕시코처럼 실패 케이스로 전락, 빈부격차 심화, 국가내부의 인간집단과 ethnic 간의 대립 갈등 격화, 내전과 폭력은 집단적 좌절감, 증오, 복수심 등 사회적 좌절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흔히 21세기적인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9.11 사태는 현재 진행 중일 뿐만 아니라 사건 자체가 너무 심각하고 거대해서 그 후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다.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이 사태를 방치하면 안 된다. 이 사태가 인류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붙잡아야 한다. 그러한 노력과 함께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방식, 사회구조와 문화 등 모든 것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즉 문명의 전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온 것이다.

미국의 한 농사꾼이자 평화운동가인 월든 베리(Wendell Berry)씨는 “Thoughts in the Presence of Fear(의역: ‘무너지는 낙관론 - 공포 가운데서 살아가기’)라는 글에서 문명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대략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9월11일 사건과 더불어, 기술적/경제적 낙관론이 의문의 여지없이 통하던 시대는 이제 끝장났다. ‘신세계질서’, ‘신경제’ 운운하면서 마치 우리가 무한정 성장하는 경제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서있던 낙관론은 이제 무너지고 있다. 그런 낙관론을 신봉했던 정치지도자들과 대기업간부들과 투자자들은, 번영의 결과가 전 세계 인구의 극히 일부인 한줌의 부유층들에게 귀속된다는 사실, 그것도 미국과 같은 잘 사는 나라에서조차 극히 제한된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그 번영은 전 세계에 걸친 가난한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딛고 서있으며, 그 번영의 생태적 비용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 위협으로부터 부유층들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발전된’ 나라들은 ‘자유시장’에게 신(god)의 지위를 부여해 왔다. 그들은 한편 농민들과 농토와 마을 공동체와 숲과 습지와 평원을, 한마디로 전 생태계를 희생 제물로 삼아왔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지금 전세계적으로 ‘경제의 비집중화’(economic decentralization), ‘경제정의’, ‘생태적 책임’을 요구하는 부르짖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9월 11일 사건 이후로 그러한 노력은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일련의 연속적 기술혁신 조차도 이번에 경험한 더 엄청난 혁신, 즉 새로운 형태의 전쟁(a new kind of war)에 의해 마구 짓밟혀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예견치 못했다. 그 새로운 무기, 새 전쟁은 우리가 이제까지 이룩해 놓은 기술혁신의 성과를 우리들의 재앙으로 바꾸어놓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이대로 무한경쟁 자유무역의 지구경제시스템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도를 찾을 것인가 하는 선택이다. 부유한 산업국가의 시민들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자기비판과 자기수정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군림해온 ‘기술혁신’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행복한 환상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세계적 차원의 힘과 국민의 삶을 조정하는 매개자로서 국가는 초국가적 힘들의 횡포를 완화하고 세계화의 힘이 국민 전체의 복지에 기여할 수 있게 조정해야 한다. 국가는 신자유주의의 수혜자인 부유층에게 공공의식을 부활시키고 경제적 비용 부담을 요청하는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시장원리의 전횡을 견제하고 시장의 힘과 논리에 침식당한 시민사회에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력의 결집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치의 힘은 세계적 차원과 국내적 차원에서 동시에 수립되어야 한다. 시장의 세계화에 대응하여 시장논리에만 맡겨둘 수 없는 공동의 문제들 - 시장의 논리가 도외시한 세계적 빈부격차의 해소, 환경 보존, 노동의 권리, 전쟁방지, 군축과 평화, 인권 등의 문제- 을 공론화하는 장으로서 [세계시민사회(global civil society)]가 건재해야 한다. 또한 정치적 경제적 결정에 있어서 소외된 집단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subtantative democracy)]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국적 차원의 시민사회도 발전, 강화되어야 한다. 시민사회운동의 세계적 연대를 강화해서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추진세력들을 규제, 조정하며 시장기구를 조정하여 소외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시민사회의 대항 헤게모니 블록]의 형성이 요망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 변화는 주어진 구조적 여건 속에서 인간의 주체적 선택과 참여에 의해 그 방향과 변화의 내용이 창조되는 것이다.



현재 일방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구조를 새로운 종합(synthesis)과 조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체적 창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창조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힘의 담지자는 누구인가? 변혁의 수단과 방법은 무엇인가?



NGO 운동과 평화운동의 부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는 피라밋식 권위주의 체제, 구조, 방법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뿌리 채 흔들어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며 그러한 근본적 변혁의 수단과 방법은 무엇인가?





그 힘과 [영성]은 어떤 관계?



<곳간 정리>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복음 13장 52절)



1) 서남동은 한국민중의 ‘恨’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는 독특한 기여를 했다. 나는 ‘한’을 민중신학의 핵심 주제로 설정하는 데 대하여 서남동에게 확고한 지지를 보내왔고 그 점에 있어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민중이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한울님’(동학=崔水雲) 또는 ‘내재하는 빛’(the Light within) (퀘이커=George Fox)을 민중신학적 성찰의 중심에 놓는, 그래서 ‘한’과 더불어 또 하나의 핵심되는 주제로 삼는 민중신학의 새로운 얼개를 구상해 보게 되었다. 민중의 ‘한’이라는 하나의 핵심에 편중되면 역사창조 주체로서의 민중의 생명력(자율성, 자주성, 창조성, 자기 구원의 주체성)이라는 다른 하나의 핵심이 가려지거나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중 안에 있는 ‘恨’은 보면서 민중이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빛’(=그리스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민중의 일면 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서남동이 지배자의 언어인 ‘죄’에 대해서 민중의 언어인 ‘한’을 제시한 것은 옳다. 그러나 이제는 지배자의 언어인 ‘죄’에 대해서 민중 안에 있는 ‘빛’을 제시할 차례이다. 민중의 ‘한’과 함께 ‘빛’을 보고 그 상호관계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면서 그 양자를 민중신학의 중심에 역동적으로 위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남동의 신학에서 민중의 ‘한’과 ‘고난’이 민중의 ‘메시아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능력’이라는 기독교의 正統 敎義에 있었다. 민중의 메시아성을 이렇게 대속적 능력 쪽으로만 치우쳐 이해할 것이 아니라 민중이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빛과 창조력에도 동시에 주목하면서 그 메시아성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첫째로, 함석헌의 민중 이해로부터 ‘씨’을 받아들이되 <ㅇ  ㄹ>의 각 요소를 적극적으로 深化 發展시킨다. 즉 <ㅇ>은 초월적인 하늘을, <  >는 내재적인 하늘을, <ㄹ>은 활동하는 생명을 나타낸다고 그가 스스로 설명해 놓은 그 각 項을 적극적으로 탐구해서 한층 더 심오하고 풍부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민중의 목마름의 重層구조를 천착하는 것이다. 민중이 갈구해 마지않는 구원과 해방에의 타는 목마름 곧 민중의 영성은, 예컨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日常의 안전과 편안함, 경제적 안정 등에의 갈망이라는 層位가 있는가 하면, 우정과 고독, 사랑의 아픔과 번뇌, 인간관계의 어려움에서 오는 고민 등의 層位가 있으며, 영혼의 허기(虛飢), 생애를 통해 지속되는 인격의 성숙과 자기완성에의 갈구, 진실과 진리를 향한 목마름, 질고(疾苦)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등의 층위, 이렇게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 목마름을 ‘민중의 거룩한 갈망’(the holy longing of minjung) 또는 ‘민중 영성’(minjung spirituality)이라는 범주로서 다루어 볼 수 있다.



   셋째로, 민중신학은 ‘사건’의 신학을 보완하기 위해 ‘사건’과 ‘日常’을 손의 앞뒤면 처럼 설정하여, 사건과 일상이 갖는 각각의 의미와 함께 둘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련성을 올바르게 밝힐 필요가 있다. 민중은 1970년대,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연쇄적으로 분출하는 활화산 기슭에서, 또는 언제 터질지 모르게 꿈틀대는 화산맥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민중은 아마도 더 많은 일상의 시간을 너른 들녘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갈 수도 있으며 때로는 여름 한철 가뭄에 강바닥으로 스며들어 소리 없는 지하수로 흐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땅 속으로 흐르는 지하수가 없다면 장대비가 아무리 퍼부어도 샘의 분출은 있을 수 없다. 물이 콸콸 솟는 샘은 실은 땅 속을 흐르는 저류(the underground stream)와 연결되어 그것에 의해 지탱되고(sustained) 있는 것이다. 사건과 일상의 관계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사건’의 신학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민중적 일상’의 신학화가 요청된다.



2) 함석헌의 씨 사상

  함석헌은 씨의 은유로 역사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根幹이 되는 사람, 곧 민중을 나타내고자 했다. 민중은 씨이다. 태어난 그저 그대로인 씨, 풀씨 같은 존재. “씨이란 다른 거 아니고 자연이지요. 문명은 결국은 자연에서 멀어져 가는 방향이고(참 문명이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러니깐 지금은 사람의 큰 잘못이 자연을 잊어버리고 자연에 반항하고 하는 건데, 근본의 절대적인 의지랄까 그게 곧 자연인데, 자연 속에 있는 건데----”(“씨의 소리, 씨의 사상” <씨의 소리> 76년 9월호)



  씨은 이 끝에서 보면 있는 그대로인 ‘나’이고 저 끝에서 보면 하나님이라고 한다. 결국 민중 곧 씨과 하나님은 이 끝과 저 끝으로 서로 연결된, 둘이 아닌  한 <>이다.

“민중이 뭐냐? 씨이 뭐냐? 곧 나다. 나대로 있는 사람이다. 모든 옷을 벗은 사람, 곧  사람이다. 은 실(實), 참, real이다.............정말 있는 것은, 은, 한  뿐이다. 그 한 이 이 끝에서는 나로 알려져있고, 저 끝에서는 하나님, 하늘, 브라만으로 알려져 있다.”(“씨의 설음”, 함석헌 전집 제4권, 66면)

 나아가, 함석헌은 씨의 속에 있는 것 곧 씨의 ‘혼’을 불러내자고 한다. 그렇게만 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불러내느냐가 문제다. 속에는 다 개인의 행위와 역사의 사건으로 영향을 입지 않는, 입힐 수 없는 혼이 잠자고 있다. 그것을 불러내기만 하면 된다...........씨 속에 잠을 자고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있다. 그것은 일할 터를 찾고 일할 거리를 기다린다. 그것을 능히 알아 불러내어 동원하면 산을 옮길 수 있고 바다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전집 제4권 129면)

  민중은 자기 속 깊이에 계신 하나님, 그 창조적인 생명과 무한한 힘의 원천에 깊숙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민중 곧 씨은 자기 속의 하나님을 직접 만나야 한다.  씨 속에, 곧 내 속에 잠을 자고 기다리고 있는 나=하나님(‘나라’, I am.)을 일깨우고 ‘불러내자.’ 그리하여 하나 하나의 씨은 함께 새 세상을 시대를 힘차게 열어가야 한다.





3) 퀘이커 사상과 민중신학의 만남

    퀘이커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 시대는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격동의 시대, 혁명과 변화의 시대였다. 당시 영국 국교회에서는 외적인 종교의식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국교에 반대하는 침례파와 장로회파의 교회들은 신앙을 성경의 권위나 공식적 신조와 대체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의식이나 신조에 염증을 느끼게 된 수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갔다. 혹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사람들은 개인적 체험의 종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갈구하고 있었다.



  죠오지 폭스(George Fox, 1624-1689)도 그런 사람들--당시 영국에서는 그들을 ‘구하는 자들’(seekers)이라고 불렀다--중의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그는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했다. 製靴工의 徒弟, 소먹이 목동 등으로 지내는 동안 홀로 고요한 묵상에 잠기는 습관을 익혔고, 성경을 읽고 깊이 생각에 잠겼으며, 온 피조세계의 오묘하고 미세한 소리에도 예리하게 반응하곤 했다. 열 아홉 살 때에 집과 부모의 곁을 떠나 절절한 목마름으로 진리를 찾는 영적 여행(spiritual journey)에 나섰다. 4년간의 영혼을 달구는 숱한 시험과 연단 끝에 Pendle Hill이라는 작은 山頂에서 그는 드디어 진리를 깨닫고 환상(vision)을 보았다. 그때의 경험을 그는 이렇게 썼다:



   “그들(성직자들)에게 걸었던 나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리하여 외적으로는 내가 의지할 아무 것도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어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나는 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니, 그는 너의 처지에 맞게 말씀하신다.’(‘There is one, even Christ Jesus, that can speak to thy condition.’)라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자 내 가슴은 환희작약(歡喜雀躍)하였다. ........ 주님을 향한 나의 갈구,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지식에의 열망은 더욱 거센 불길로 타올랐다.” (Fox, 11)



 그가 얻은 다음과 같은 진리는 재래적이고 인습적인 신조들(creeds)과 날카롭게 충돌하는 것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that of God in everyone) 이것이 퀘이커 신앙의 정수(精髓)다. 우리 각자의 깊은 속에 하나님의 씨앗(the Seed), 하나님의 영(the Spirit), 그리스도(the Christ), 내면의 빛(the inner Light)을 지니고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직접--즉 성직자나 교회의 儀式이나 어떤 다른 매개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역사적인 예수가 기름부음을 받아 (신적인)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계시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영속된다는 것(the continuing revelation). 이것이 그의 새로운 깨달음의 내용이었다. 자기 자신 속에 불타오르는 이 깨달음(revelation)을 지니고서, 죠오지 폭스는 세상를 향해서 힘차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회개하고 돌아섭시다. 자기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러한 (즉 하나님을 모신)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갑시다.”라고.



 그 깨달음을 근거로 그는 오늘날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Quaker는 별명이다.)로 알려진 신앙적 結社의 기치를 올렸다. 죠오지 폭스는 거듭 거듭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을 몸소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Jesus Christ is come to teach his people himself.)라고 외쳤다. 이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the Second Coming of Christ'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하시 하처에 육신적으로(physically) 재림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민중의 마음 속에 이미 ‘내면의 빛’, ‘씨앗’, ‘하나님의 영’이 들어있음으로 해서 이미 ‘그리스도’가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죠오지 폭스의 새 진리를 따라 새 사람으로 변화된(transformed)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 그리스도가 그 시대와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내면의 빛과 씨앗, 영을 통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단지 私的인 내면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된 남녀들이 새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밖으로 사회와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운동을 뜻했다. 초기 퀘이커들(Early Friends)은 당대의 사회에 불을 지피는 불씨의 전령이었다. 그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 온갖 종교집단, 모든 사회조직에 불을 붙였다. 죠오지 폭스는 17세기 영국인이었지만 오늘의 우리들과 우리 시대를 위해서도 빛을 던져준다.



함석헌은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의 펜들 힐(Pendle Hill; A Quaker Center for Study and Contemplation)에서 퀘이커의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씨 사상을 전개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나 자신이 비교 검토해 본 바로는 그의 씨 사상의 핵심 내용은 퀘이커 사상과 거의 일치한다. 민중신학의 창시자 격인 서남동과 안병무에게 미친 씨 사상의 영향을 생각할 때, 민중신학과 퀘이커사상의 만남은 일찍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恨’과 더불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빛’, ‘영’, ‘그리스도’에 주목할 수 있다면 주체로서의 민중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민중을 세계와 역사의 중심에 세우는 데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4) 동학의 전통으로부터

  우리는 이제 19세기 말엽 한반도에서 출현한 동학운동, 그 중에서도 1860년-98년의 水雲 崔濟愚와 海月 崔時亨, 그리고 갑오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동학의 재건을 의도했던 甑山 姜一淳의 사상과 실천에 주목할 차례다.



 동학은 19세기말, 조선의 봉건제가 한계에 도달, 근대사회로 이행되기 시작하는 세기말적인 일대 전환기에 피어난 한국사상문화종교의 꽃이고, 조선의 근대역사가 시작되는 發源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동학이 창시되던 1860년 당대의 조선의 현실에 대한 수운의 인식은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 질서의 모든 차원에서 총체적 위기 그것이었다.  조선왕조는,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 신분제의 문란(紊亂), 도탄(塗炭)에 빠진 민중의 잦은 봉기와 사회적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서양세력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과거의 중국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구미제국의 근대문명이 압도해오는 가운데, 전통적 종교인 儒佛仙은 정신적 지주나 새로운 사회이념의 기능을 이미 상실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윤리와 가치규범의 붕괴, 사상의 혼돈, 민중의 정신적 방황이 극도에 달한 시대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조선사회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민중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절망과 암흑의 시대, 바로 그 한가운데서, 수운은 先天문화 질서의 종말과 후천개벽의 새 문화, 새 시대의 도래를 예감했다. 수운은, 동양문명의 해체와 몰락, 서양문명의 침략적 폭력성을 확인하면서, 전통적 지배이념인 朱子學을 대체할 새로운 道學을 갈구했다. 그는 前人未踏의 새 길, 동서양의 기존의 종교와 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원리를 찾아내어 新天地, 新文明을 구현하고자 고난에 찬 구도의 길을 홀로 걸었다.



   “庚申年에 이르러 전하여 오는 말을 들으니 서양사람들은 한울님을 위한다는 뜻으로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아 그들의 교회당을 세우고 그들의 교를 널리 퍼뜨린다는 것이므로, 나는 과연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느니라.”<東經大典, 前編 五>



   “서양사람들은 전쟁을 하면 이기므로 쳐서 빼앗아 그들의 뜻대로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다. 이리하여 천하가 다 멸망한다면, 어찌 입술이 상하여 없어지면 이가 시려 견디기 어려운 것과 같이 되지 아니하겠는가.” <東經大典, 前編 九>

               

  본격적인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6년째 되던 1860년 음력4월, 그의 나이 37세 때 그는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해 得道에 이른다. 그의 신비체험은 한울님 마음과 하나가 된 경지에서 ‘天語’를 듣게 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한울님과의 사이에 문답 형식으로 여러 달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내용을 냉철히 반성 체득하면서 한 해 남짓 걸쳐 동학의 신관, 세계관, 인간관, 修行法 등을 글로 체계화해 나갔다. 득도한 이듬해(1861년) 6월부터 그는 布敎에 나섰다. 득도로부터 체포되기까지 불과 2년 6개월 사이에 수운은 漢文體의 <東經大典>과 한글로 된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게 되었다.



  수운의 가르침은 고통과 시련에 찬 현실을 극복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 땅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그 시대의 민중들의 가슴에 심었다. 사방에서 그의 소문을 듣고 그의 거처인 경상북도 경주 용담정(龍潭亭)으로 찾아오는 민중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수운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따랐다. 1864년 3월 수운은 41세의 나이로 참수형(斬首刑)에 처해졌는데, 세상을 어지럽게 한 邪術의 傀首라는 죄목이었다.



  - 수운의 제자이자 동지였던 해월은 道統 承繼 후 殉道할 때까지 30여년 간 가시밭 길을 걸으며 조선 땅에 동학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人乃天’, ‘事人如天’의 교의로써 교도들을 지도하는 한한편, 지배권력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接’조직을 확장해나가다가 1898년(72세)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스승 수운의 뒤를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 동학의 인간 이해의 핵심은,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몸 안에 모시고 있는 신령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데 있다. 사람이 곧 한울님, 한울사람, 섬김 받아야 할 신령한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이 이러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될 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지극히 공경(敬人)하게 되고 한울님을 공경(敬天)하게 되며 한울님의 뜻을 이 세상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주체로서 바로 서게 된다. 즉 현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분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사는 신령한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한울사람(God's person)을 통해서만 사회와 세상의 聖化(한울나라의 실현)가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주체성은 우주 가족의 일원으로서 더 큰 생명인 우주를 어버이로서 섬기며(敬物), 우주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相生(서로 살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책임적 존재이다.



- 동학에서는 지금까지 저 밖에 있는 신(God without)을 향해 놓았던 祭床과 位牌를 나를 향해(向我) 돌려놓도록 하는 새로운 祭祀法을 창안했다. 이것을 ‘向我設位’라고 하는데, 저 밖에 있는 초월적 신을 상정한 인류 문명 문화 樣式의 일대전환과 정신개벽을 이로써 상징한다.  



   또한 ‘同歸一體’라고 하여 후천개벽운동의 동반자들의 공동체, 새 인간(한울사람), 새 천지(한울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인류문명사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신령한 도덕적 주체들의 공동체를 제시한다. 이 공동체는 타종교 공동체의 전통을 존중하며 관용의 정신과 개방적 태도로써 후천개벽의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길동무(道伴)들의 공동체이다. 동학에서는 특히 생활의 주인이자 新天地 창조의 주역으로서의 여성의 지위가 강조된다.



 - 강증산은 스무 살 무렵에 동학당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甲午동학혁명이 실패한 뒤, 시체가 가득 널려진 폐허의 강산을 여러 해에 걸쳐 편력했다. 그때에 그는 구천에 사무치는 울부짖음과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민중의 고통을 보았으며 민중이 그 얼마나 절실하게 생명의 회복을 바라고 있는가를 사무치게 절감했다. 따라서 간증산은 자기의 목표를 동학의 동세개벽 실패 이후의 민생의 재건과 활인(活人)에 두게 되었다.



 갑오동학혁명이 민중반란의 조직적 확대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함으로써 후천개벽을 실현하려 했다면, 강증산의 실천은 하나 하나의 이름 없는 민중들의 그날 그날의 먹고, 살고, 입고(衣食住), 고통받고, 병들고, 죽고, 두려움과 굶주림과 죽임 당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구체적인 삶, 곧 민중생존을 중심으로 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매일 매일의 自助 自活의 작은 공동체 건설과 협동생활의 조직을 통해 후천개벽을 실천해 나가는 방향이었다.(김지하 사상기행, 2권, 206-9면 참조)  



   그렇다면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은 ‘민중적 일상’의 신학화를 꾀하려는 우리들의 작업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몸 안에 모시고 있는 신령하고 존엄한 존재라고 하는 동학의 인간관은, 매개 사람 속의 빛, 영,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퀘이커 사상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민중신학은 퀘이커 사상의 인간이해로부터 배움과 동시에 동학의 인간관을 민중이해에 적극 도입함으로써 민중의 대상화, 객체화를 극복하고 민중의 ‘주체화’에 진실로 기여하는 큰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민중적 영성’(평화의 영성)의  가능성



- 함석헌이 말한 씨의 속에 있는 것 곧 씨의 ‘혼’이 영성아닌지? 그것을 불러내기만 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씨의 혼’이라!



 spirituality는 사람의 존재 깊은 곳에서 그 존재를 관통하고 그 존재를 떠받치고  그 존재를 推動하는 영적 힘, 에너지, 불꽃과 같은 그 무엇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우리가 종교적이든 아니든 간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spirituality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spirituality는 기독교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인의 영성, 무신론자의 영성도 있을 수 있다.(나는 사실 감옥에서 무신론자들의 심오한 영성에 무수히 접했다.)



- 민중이 갈구해 마지않는 ‘구원과 해방에의 타는 목마름’이 바로 민중의 영성 아닌가. 나는 앞에서,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 목마름을 ‘민중의 거룩한 갈망’(the holy longing of minjung) 또는 ‘민중 영성’(minjung spirituality)이라는 범주로서 다루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민중신학이 민중의 ‘恨’이라는 범주로 다루어온 영역과 크게 겹치는(overlap) 영역이어서 민중의 恨과 민중 spirituality의 관계와 구조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 spirituality는 우리의 日常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의 욕망과 애정, 고통과 슬픔, 고독, 야심과 좌절감, 불안과 초조, 공포와 희망 등등, 이 하나 하나가 spirituality와 깊이 관련된다. 어떤 사람의 영성은 그가 자기 속의 그 영적 에너지 혹은 불꽃을 가지고 실제로 현실 속에서 무엇을 행하는가와 깊이 관련된다. 즉 spirituality는 신앙이나 종교성과 관련된 것 이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매일 매일의 일상과 관련된 것이다. 사랑(compassion)과 자비(mercy), 평화와 화해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 참된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를 갈구하는 정치적 각성, 깨어있는 양심, 도덕적 민감성 등은 민중적 영성의 불가결한 요소들(integral elements)이다.







  개인의 영적 체험과 공동의 영적 수련은 상호 의존적이다. 서로 보완하고 서로 북돋아 준다. 민중신학은 개인의 영적 체험 또는 개인적 영성수련과 공동체적 영성 또는 영적 공동 생활(spiritual life together)에 같은 비중을 두어 이 양자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 민중적 영성은 서로 모시고 섬기는 相生의 영성이다. 그 엣센스는 겸허하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깊이 귀기울여 듣는 데(敬聽, mindful listening) 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고요히,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민중신학에는 이 敬聽의 영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여겨진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서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증언자의 역할을 자임하다보니 민중, 씨에게 귀기울여 듣는 마음의 餘白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말하는’(preaching) 종교지 ‘듣는’(listening)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큰 약점의 하나다. 하나님과 자연과 사람이 관계의 그물에 얽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상호의존하고 있는 이 우주와 세계 공동체 안에서 ‘敬聽의 spirituality’가 없이는 相生의 관계를 창조해나갈 수가 없다. 이제 21세기와 새 천년의 입구에서 기독교는, 그리고 민중신학은, 말하는 ‘입’으로부터 듣는 ‘귀’로의 radical한 파라다임 전환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언자적 선포(prophetic speaking)는 중요하다. 그러나 예언자적 경청(prophetic listening)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예언자적 경청은 권력과 富에 억눌리고 빼앗겨온 자연과 민중, 곧 씨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씨에게 경청한다 함은 하나님께 경청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 같을 때, 더 깊숙이 귀를 기울여 고요히 기다려 보라. 소리 아닌 소리가 내 마음의 귀에 들려오지 않는가. 민중인 씨(들)에게 말과 설교를 가지고 가는 대신에 마음의 귀를 가지고 가본 사람은 안다. 경청하는 사람이 자신의 계획이나 용건, 판단이나 충고 따위를 완전히 접어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나를 내맡기는 방법으로 귀를 기울일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가 둘 사이에 싹튼다는 것을.



  듣기에만 길들여져 있는 것으로 보였던 씨이, 그래서 자기 주견이나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보였던 민중이 비로소 가슴을 열고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기 시작할 때, 그(들) 자신 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놀라운 지혜와 꿈과 비전이 엉킨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 나오지 않던가. 이 새로운 관계, 새 카이로스 속에서 상처가 아물고 한풀이가 시작된다. 씨이 제 이야기에 스스로 격려를 받고 힘이 북돋아져 현재의 곤경을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열리고 문제에 해답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함석헌이 말한 “씨의 혼(魂)을 불러내는” 방법이 아닐까.



씨의 속에 있는 것 곧 씨의 ‘혼’이 영성아닌지? 그것을 불러내자.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  방법과 수단만 바르게만 쓴다면 ‘씨의 혼’의 위대한 힘으로 세계를 변혁할 수도 있다.



평화 문화의 창조



1. 제도/ 조직의 영성(spirituality of institutions)

spirituality는, 비록 여전히 모호하고 정의하기 어렵긴 해도, 이미 종교인이나 신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제도(institutions)나 조직(organizations)에 관련해서도 spirituality가 거론 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조직이나 단체의 목적과 정신, 가치체계, 구성원리 등에 관하여 그러한 것들의 영적 정신적 차원(spiritual dimensions)를 평가하고 논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서, 영성론적 개념과 범주를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도 적용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NGO의 영성, 시민사회단체의 영성 또는 노동조합의 영신적 측면(spiritual aspects)을 말할 수 있으며, [NGO 활동가의 영성]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은 전통적인 종교의 신앙체계에는 걸맞지 않겠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이 삶의 어느 부분이나 측면에 모종의 영적 차원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앞에서 이미 말했지만, 어떤 사람(들)의 영성은 그가 자기(또는 집단) 속의 영적 에너지 혹은 혼의 불꽃을 가지고 실제로 현실 속에서 무엇을 행하는가와 긴밀히 관련된다. 즉 spirituality는 신앙이나 종교성과 관련된 것 이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일상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해방적 영성 vs. 억압적 영성

우리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지닌 spirituality의 성격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영성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해방적 성격의 영성이 있는가 하면 억압적 성격의 영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예로 예수와 그 제자들의 집단을 들 수 있겠고 후자의 예로 미 부시행정부의 대테러 전쟁 정책 추진 팀(그 구성원은 부시, 딕 체이니, 럼스펠드, 라이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정책에는 영적 측면의 비중이 (아마도 오사마 빈 라덴의 경우에 못지 않게) 크게 두드러지는데, 그 성격은 해방적(liberating), 평화적이기보다는 억압적, 폭력적이며, 심지어는 [악마적](demonic)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NGO의 영성의 경우에도 그것이 해방적인가 아닌가를 따져볼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 가운데도 위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원리와 구조, 분위기(ethos)와 관행을 가진 단체가 있는가 하면 그러한 것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부단히 스스로를 쇄신해가는 단체도 있을 수 있다. 예수집단은 오늘의 교회와는 달리 [비제도화, 비권위주의, 전복적(subersive)성격, 바람처럼 자유로움, 자기쇄신의 능력]을 그 영성적 특징성으로 지닌 지극히 매력적인 단체였을 터인데, 이 점에서 예수집단은 오늘날의 교회보다는 오히려 NGO들, 그 중에서도 특히 환경단체나 여성단체, 평화운동 단체들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월터 윙크(Walter Wink)는 그의 삼부작 ‘The Powers’ 의 제3권에서 특별히 ‘제도조직/기구)의 영성’(the spirituality of institutions)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의 명제는, 신약성서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초등학문을 가진 자들과 권세자들](Principalities and Powers)이라 불렀던,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경험했던, 그 자들은  실재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성서시대의 사람들은 당대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제도와 기구의 심장부를 겨냥하여 그 영적 성격(spirituality)을 분별(discerning)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권력의 영적 측면은 단순히 제도나 조직의 성격을 의인화(a personification of the institutional qualities)한 것만은 아니다. 그 권세자들이 의인화한 모습으로 우리들에 의해 지각되건 지각되지 않건 간에, 그 권력의 영적 측면은 엄연히 존재한다. 어떤 제도나 조직의 영성도 마찬가지다. 제도나 조직은 실제로 영적 에토스(an actual spiritual ethos)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조직 생활의 이러한 면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그는 나아가 귀신들(demons)과 권세자들(Powers)이라는 전통적 표현이 하늘이 맡겨준 임무를 배반하고 이 세상의 ‘지배체제’(the Domination System)에 복무하는  제도들(systems)과 구조들(structures)의 영성을 실제로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윙크에게 있어서 ‘institution’이 의미하는 바는 인종주의, 나치즘, 분리주의(apartheid),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등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재하는 세력들이다. 예컨대, 교회에게 위탁된 본래의 임무는 그러한 악마적 세력들에 저항하고 대결하는 것인데, 많은 경우 교회는 그러한 자신의 임무를 방기했거나 멀리 일탈하고 있다.



어떤 단체나 조직이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기본적 임무를 망각하거나 그로부터 일탈했을 경우, 조직에 내장된 자기성찰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그러한 비정상의 상황을 분별(discerning)하여 경고를 발하고, 과오와 일탈을 극복하고 본래적 임무로 복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한다. 이 점은 개인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나 단체나 집단의 생활에 있어서나 공통되는 것이다.



오늘날 NGO 단체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조직의 이러한 영적 측면에 대한 요구와 반성의 소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내가 [NGO 활동가의 마음공부]  라는 제목으로 아래의 글을 썼던 것(월간 ‘참여사회’ 2001년 3월호)은 그런 요구의 반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말을 줄이고 남의 이야기에 조용히, 깊이 귀기울이는 지도자,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온후한 표정의,

그러면서도 유능한, NGO 활동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NGO의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이, 어느 틈엔가 우리 사회의 여늬 지도층과 마찬가지로,

굳어져버린 표정에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말투와 제스춰를 배워버렸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몸과 마음에 평안과 휴식을 가져다 주는 고요한 명상과 내면의 성찰은

종교인에게만이 아니라 사회운동가와 NGO 활동가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활동가들이 일에 지치는 것은 건강문제나 육체적 피로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에 마음의 건강과 영적(정신적) 발전에 힘쓰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정신의 부실이 육신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간디는, 중요한 사회적 행동을 앞에 두고는 반드시 그 준비를 위해 고독한 명상, 기도,

때로는 단식을 했다고 한다. 간디만이 그랬던 것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훌륭한 많은 NGO 지도자와 활동가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내적 변혁을 위한 성찰과 정진으로부터 얻은 것만큼 만 사회운동에 쏟아 부을 수 있을 뿐이다.(*"We can only spend in social works what we earn in contemplation." -Douglas Steere)”  



2. 평화의 문화(Peace Culture/ Cultures of Peace)

나는 '예언자적 경청'(prophetic listening)이라는 말을 엘리스 보울딩(Elise Boulding)에게서 배웠는데, 그녀는 최근의 역작 [‘평화의 문화’(Cultures of Peace) - 역사의 숨겨진 측면(The Hidden Side of History)]에서, 전쟁과 폭력의 문화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으나 역사의 저류를 형성하며 맥맥히 흘러온 ‘평화의 문화’, ‘평화운동의 역사’를 탁월한 접근법으로 증언하고, 21세기를 보다 평화로운 세기로 만들기 위해 ‘평화를 이룩하는 활동들’(peace building activities)을 어떻게 전개할 지에 대해 그녀의 풍부한 ‘경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엘리스 보울딩에 따르면, ‘평화의 문화’란 무엇보다 먼저 '평화로운 다양성'(peaceable diversity)을 증진시키는 문화이다. 평화의 문화는 삶의 방식(lifeways), 신념체계, 가치관, 행동 패턴 등을 포함하며, 서로 돌봄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제도적 보장을 동반한다. 평화의 문화는 또한 차이(서로 다름)의 존중, 봉사정신, 지구 자원을 모든 중생들과 인류사회의 멤버들 간에 평등하게 나누어 쓰는 일(equitable sharing)을 포함한다.

평화의 문화는 모든 차이와 다양성 안에서 인류가, 종(species)과 개체의 심오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또한 동시에 살아있는 생명체인 지구와의 혈연 의식을 느끼면서, 상호 안전(mutual security)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러한 문화이다. 우리가 이런 문화를 이룩한다면, 거기에는 ‘폭력’은 있을 수 없다. 폭력이 발붙일 토양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적으로 잔인해 질 수 있고 야수처럼 흉포해 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평화의 문화를 창조해 누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평화로움’(peaceableness)는 행동적 개념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위한 복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쉬임없이 생활세계를 변화시켜나는 가운데, 상호이해와 행동양식, 상황과 제도 등을 끊임없이 새로 만들고 다시 고치고 또 새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창조된다.  이러한 의미의 평화문화는 소위 스테레오 타입의 평화와는 질을 달리 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평화는 지루함, 무미건조, 비현실, 무능력, 비활동성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그래서 ‘평화’를 말하면 하품이 나오고 졸리게 되곤 한다. 그러나 ‘평화의 문화’는 그런 정태적, 비행동적 평화개념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평화문화의 평화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평화요, 자기 쇄신의 과정(process)으로서의 평화요, 평화를 지키고 이룩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 가운데 있는 평화요, 모험과 탐구, 미지의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용기와 의지로 충만한 그런 평화이다.



평화의 문화는 ‘평화의 영성’을 간직하기 마련인데, 평화의 영성의 해방적 성격은 위의 설명에서 해명되었으리라. 평화의 영성은 사람과 중생을 먹이고 보살피고 섬기는 살림의 영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평화]와 [평화로움]은 NGO와 사회운동이 바람직한  규범(social norm)으로 삼아도 좋을 만하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는 자기 성찰의 메커니즘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그 조직과 구조와 사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다시 고쳐 만들어내는 그런 활동과 환경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평화문화를 창조하는 쉬임 없는 노력의 과정은 다양한 수준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한 개인의 내면적 자기성찰과 수행과 훈련의 수준이 있는가 하면, 가족이나 친구, 이웃, 직장동료 사이의 사회적 교제의 차원이 있고, 한 도시의 주민운동체로부터 국제연합(UN)에 이르는 시민사회운동의 누진적 관계의 수준들과 관계망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도 그 한 부분인 우주적 생명세계와의 교섭과 상호작용이 포함될 것이다.  그 수많은 수준들(levels)의 간단없는 상호작용과 상호침투 가운데서 평화를 이룩해가는 사회적 능력(the societal capacity of peacebuilding)은 개인과 개인상호간, 집단, 국가, 국제사회, 지구환경 등의 상호관계에서 우리가 어떠한 삶의 패턴과 문화를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연 속에는 동일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두 사람도 똑 같지 않다. 그러므로 평화문화의 창조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서로 ‘다름’(difference)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기초 위에서 ‘평화로운 사회’(peaceable society)를 건설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방법과 수단은은 평화, 나아가 ‘비폭력적 평화’(nonviolent peace}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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