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9

큰빛교회-임현수목사-설교비평-성경에서 말하는 돈 버는 법 - 바보스쿨



큰빛교회-임현수목사-설교비평-성경에서 말하는 돈 버는 법 - 바보스쿨



2011-05-16 글쓴이 순두게
큰빛교회-임현수목사-설교비평-성경에서 말하는 돈 버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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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비평의 대상은 2011년 3월 6일에 토론토 큰빛 장로교회 담임인 임현수목사(이하 임목사)가 행한 주일 설교입니다. 필자는 이 게시판 처음 다섯편의 순서를 지키려 했지만, 중간에 변방의 최목사 설교가 끼어 들고 등등 해서 순서가 약간 뒤바뀌었군요. 만일 그일로 왜 우리교회 “목쌰-아-안님” 만 두번씩이나 바보스쿨 대문짝에 툭 튀어나오게 했느냐고 불평하시는 분께는 참으로 송구한 마음입니다.

필자가 읽으시는 분들께, 오늘 진실로 죄송스러운 마음은, 이번 설교비평은 완전히 “거저 먹는” 그런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부흥회 하면 그 주일의 주일 설교는 부흥 강사가 할 터이니 해당교회의 담임 목사는 그 주일은 설교준비 땡땡이치고 “그냥 거저” 먹습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교회로 부터 월급은 똑 같이 받습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 곳 북미 학교시스템은, 방학에는 선생에게 돈을 안줘요, 학교가 쉬는 데 무슨 돈?,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지요. 그래서 학교선생들이 방학에 ESL같은 부업합니다. 참내, 같은 맥락으로 제가 지금 그런 모양새로 별로 시간 안들이고 비평문 한편 쓰게 생겼다 이 말씀입니다.

자유게시판 어느글 댓글에 제가 한편의 설교 비평을 쓰는 과정에 대해 대강의 설명을 다음처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한편의 설교 비평을 쓰는 과정은 이러합니다. 먼저 서너번 동영상을 전체를 듣기만합니다. 그 후에 두어번 더 들으면서 전체 줄거리를 약술합니다. 즉 뼈대를 잡습니다. 그다음에 이야기의 한 문단을 쓰기 위해 동영상의 일정구간을 열번 이상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쓴 내용이 실제 설교자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함은 물론 비평적인 요소를 타이핑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적어도 20-40번 정도는 들은 후에 써놓고 이번에는 써 놓은 내용을 다시 읽고, 미심쩍으면 다시 들어 보고 하는 후에 포스팅합니다.”

그런데 오늘 필자는 임목사의 설교동영상을 딱 두번 들었습니다. 이유는, 임목사가 친절(?)하게도 설교 내용을 글로 써서 게시판에 올려 놓았고, 필자는 임목사가 글로 올린 내용과 동영상과 얼마나 일치하느냐 아니면 가깝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가 올리지도 않을 뿐더러 올려도 실제 설교를 하면서 온갖 잡다한 이야기가 뒤섞여 들어가는 그리하여 동영상의 내용과 설교문과는 내용이 완전 딴판이 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임목사의 이번 비평의 설교문과 동영상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먼젓번에는 차이가 많이 나서 동영상에 의존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이번 설교 동영상을 다시 글로서 옮겨 비교한다면 똑 같지는 않습니다. 필자는 이번 만큼은 설교문과 동영상이 아주 흡사하다고 지금 말합니다.

또한 글을 대하며 읽는 설교와 실제로 육성을 직접 듣는 경우도 받아 들이는 점에 있어서 많이 다르지요.

예를 들어 다음의 두 문장:

1. “믿-음-이 쭝요–합-니-다”

2.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에 쫒겨 숨어 들어간 동굴은 “피 – 나 – 안 – 처 – 어 – 어 ~~”


(참고 여기서 ‘-‘는 숨을 한 숨 고르기에 약간 길게 발음한다는 것을 의합니다. ‘~’는 약간의 바이브레이션이 들어가면서 느끼한 맛을 돋우는 표현입니다.)

위 두 문장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별로 감동(?)이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번 박헌승 목사의 본한인교회 부흥회 마지막날 주일 설교 가운데 실제로 있었던 내용입니다. 육성으로 들어 보면, “내가 지금 주일 학교 교사 공과공부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일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납니다.

아뭏든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 설교비평은 임목사의 설교문에 의해 진행하겠습니다. 들어서 얻는 느낌은 읽어서 얻는 그것과 분명 다름에도, 오늘은 꽤나 괜챦을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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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임목사의 설교제목 “성경이 말하는 돈 버는 법” – 34번 삼화상운 시내버스 타고 미아리 고개 털털거리며 올라가다 보면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많은 점쟁이집 간판 중의 하나,, 글쎄 필자의 착각은 아닙니까?

그래요, 임목사도 이 사실을 알긴 알았는지 오늘은 작정하고 이렇게 시작했다고 하니 계속 가보십시다. 기독교도라고 해서 돈 벌면 안되는 그런 법도 없거니와 많이 벌면 않된다는 그런 법은 더더욱 없습니다.

임목사의 설교전문을 댓글란에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임목사는 오늘 설교의 대부분을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 켄터키 프라이치킨 할아버지, 맥도날드 창업자, 강철왕 카네기, 어떤 목사의 전도사 시절 이야기, 한국의 대리운전 업계를 평정한 김동진 사장이야기…… 로 때웠습니다.

필자가, 짖궂게도 임목사의 설교원문의 전체 글자의 수를 에디터로 확인 해봤습니다. 공백문자없이(스페이스) 8,526 글자입니다. 이번에는 위에서 말한 돈 많이 번 사람들의 이야기 부분만을 골라서 삭제한 후에 글자 수를 확인해봤습니다. 공백문자없이 3,655 글자 입니다.

8526 – 3655 = 4871, 그러니까 4871 글자가 영웅, 비즈니스맨 이야기에 할애되었군요. 설교문 전체 글자 수의 약 57퍼센트가 영웅, 비즈니스 맨에게 쓰여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43%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 즉 성경을 읽고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 즉 주의 의를 밝히 깨닫게 했느냐? 보시다시피, 어찌 되었든, 무슨 일을 하던 그건 별 상관이 없고, 돈 만 많이 벌어 세상의 유명 인사가 되면 그것이 곧 전부인 양 임목사는 자본주의에 찌든 자신의 천박한 정신세계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음이 필자의 눈에 확연합니다.

그렇다면 제목대로 돈 버는 법을 확실하게 기르쳐 주셔서, 돈에 한 맺힌 사람들 한을 풀어 주신 것도 아니고 그냥 기도해라, 지혜로워라, 성실해라, 현장감을 가져라, 온유해라 등등 원론적인 뜬 구름만 잔뜩 잡으시면서, 줄창 돈 많이 번 사람들 이야기만 해대시니 누구 약올리시는 것도 아니고,,, 임목사 자신의 머리깍는 양반을 들어 은근히 띄워 뭘 어쩌자는 것인지,, (필자의 추측 : 그렇게 성공한 분이 헌금 많이 했으니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시라 고 들리기도 합니다. 이유는 그 교회가 요즘 현안문제인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는 풍문에의하면. 어디까지나 풍문이외다.)

(얼마전 이곳 자유게시판에 “앞으로 익명의 글은 다지운다” 는 큰빛교회 웹사이트 자유게시판에서의 임목사의 선언이 그대로 복사되어 포스팅되어 있습니다. 항상 자기가 듣기에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눈에 넣으려 하는 임목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 이것이 하나님 나라, 복음,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설교입니까? 누가 설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까? 영웅, 비즈니스맨입니까? 하나님, 예수입니까? 더구나, 이제 각론으로 들어 가면 임목사의 머리 속에 깊이 박혀버린 “영웅주의”가 빛을 발합니다.

돈을 벌려면 기도해야 된다고 첫번째 일성을 임목사는 날렸지만, 이야기는 갑자기 불평 불만을 하면 않된다 원하는 바는 기도와 간구로 다 해결된다,, 임목사의 횡설수설은 드디어 장황한 켄터키치킨 할아버지 성공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꿈에 본 닭, 계속 기도하던 중에 양념 닭튀김요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주었고, 어찌 어찌해서 크게 성공했다고 임목사는 말합니다.

KFC는 이제 국민의 보건을 심하게 해친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비만과 심장병의 보이지 않은 원인인 정크푸드의 대명사가 되어있음을 필자는 물론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맥도날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들이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원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사육하는 “닭” 농장을 카메라에 담은 동영상은 유튜브에흔하게 널려있습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로지 가장 빠른 시간에 많이 살을 찌우게 하려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간에 닭을 가둬놓고 살 많이 찌는 사료를 줍니다. 닭이 움직이면, 즉 운동을 하면 살이 찌는 속도가 늦기때문입니다. 닭이 그 좁은 공간에서 나와 도살을 기다릴 때, 닭은 자신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여 걷기는 커녕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먹는 치킨버거의 패티가, 비닐 봉지에 들어있는 닭 가슴살 – 바로 그런 슬픈 이야기를 담고있지요. 임목사께서 보고도 그런말을 하는지 아니면 몰라서 그러는지 필자는 알수가 없네요.

임목사는, 두번째로 지혜를 말하면서 카네기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앤드루 카네기에 관한 이야기는 노동 조합에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그의 부도덕한 면을 알고 있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합니다. 공공복지에 돈을 쓰지마라, 그돈으로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카네기의 말을 들은 카네기 소유의 공장 근로자가 “하루 12시간 일하고 언제 그런데를 가겠는가” 라고 되물었다 합니다. 이렇게 구린 구석있는 카네기 이야기를 임목사는 장황하게 늘어 놓습니다.

어떤 목사의 전도사시절의 에피소드에 이어, 세번째로 성실해야 한다고 임목사는 화제를 옮깁니다. 여기서도 임목사는 잠언 한 절 읽어주고 곧바로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야기를 합니다. 연이어서 술꾼들의 안전한 귀가를 보장한 대리운전회사 창업자 김동진 사장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리운전 김동진 사장 이야기는 김사장의 사업이 더 잘되려면, 전국민이 술꾼, 그것도 그냥 술꾼이 아니라 알콜중독 주정뱅이가 되어 매일 밤 대리 운전 기사를 부르지 않으면 않될 정도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야 합니다. 임목사 말 대로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사는 현장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라면, 무슨 일이던지 현장정신만 확실하면 돈 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목사가 하는 말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건 아니다”.

김동진 사장이 현장 정신이 강했는지 어땠는지, 고생은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설교 예화치고는 도저히 납득이 안갑니다. 술취하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면, 즉 말씀대로 살면 김동진 사장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망한다는 것은 건강한 신앙생활의 한 표적이 될 터인데, 그가 잘된것이 자랑거리가 됩니다, 설교 마당에서 만큼은 자랑이 아닌것 같은데,,,,,, 필자는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임목사는, 맥도널드 햄버거 창업자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현장정신을 또 말합니다.

임목사는 마지막으로 온유를 설명하면서 시편 본문 한 절 읽고 바로, 연매상 30만 달러에서 130만 달러로 올린 어느 장로의 이야기를 하며 온유해서 그랬답니다.

계속해서, 임목사는 노드스트롬 백화점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임목사는 1970년대에 미국 시애틀의 노드스트롬 백화점에서 있었던 아주 유명한 실화를 들어, 한 점원이 베푼 작은 친절이 노드스트롬 백화점을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고급백화점으로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기업 경영자들은 무슨 대단한 성공비결을 발견한 것처럼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조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이미 2천년전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갈파하신 대인관계의 황금법칙이라며 마가복음 7:12절을 들이 댑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어서 임목사는 “궤변”이 무엇인지 아주 좋은 공부재료를 다음처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방대한 구약성경의 정신이 바로 서비스 정신이라고 요약해 주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산상설교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마5:5절입니다.”

단 한마디로 구약성경의 정신이 서비스 정신이라고, 예수께서는 하지도 않은 말을 임목사가 지어냅니다. 아 – 필자는 이런 생각이 자꾸듭니다.

“예수와 임목사 그리고 나, 제발 3자대면 좀 해봤으면……”

필자의 너무 어이없는 기대인가요??? 예수께서 지금 이자리에 없으시다고(?) 임목사가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는 생각이 필자에게 강하게 듭니다. 서비스 정신 – 봉사 정신인데, 업계의 말로 하면 “섬김”인데 이것이 돈 받고 해도 계속 섬김인가, 장사인가? 필자도 이제 오락 가락합니다.

설교문 후반에 나오는 월마트,, 아마 임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 중에 편의점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상당 수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목사가 매일 아침 맛있게 먹는 아침 밥상에는 그들의 애환이 없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벌어서, 임목사가 그들을 세뇌한 대로, 온갖 헌금 다 하여, 임목사가 먹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트러블에 빠져있습니다. 그 이유중의 큰 이유는 월마트라고 이구동성입니다. 도매상에서 사오는 물건의 원가가 월마트 셸브에 놓인 그것의 소매가격보다 월등히 높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지금 월마트는, 캐나다 주류사회의 일정액의 캐쉬가 흘러 한인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캐쉬플로우를 비틀어 소형 자영업자들의 목을 죄고 있는 형국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월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된답니다. 그런데 임목사는 월마트 회장을 본받으라네요. 모든 사람이 다 샘 월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임목사는 어떤 특정한 몇가지 사례를 들어 전체를 일반화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확연하게 필자에게 보입니다.

설교문에는 없지만 동영상에는 있는 내용 한가지를 필자가 옮김니다. 큰빛교회의 어떤 장로께서 이발업으로 반세기를 종사했는데, 성실하게 했더니 터론토의 명사들이 많이 모여드는 이발관이 되었다, 여러분도 가 봐라 라고 말할 때는, 이걸 설교라고 들어야 하나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루 10시간 조그만 스토어에서 열심히 일하는 어떤 집사도 안되는 성도님은 “게을러서 그럽니까? 임목싸아-안-님!!” 전교인 열심히 릴레이 통성기도, 심방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임목사교회의 교우는 믿음이 없어서, 아니면 기도한 그 사람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리 되었나요? 임목사는 답이 없음을 필자는 확신합니다.

비록 많이는 벌지 못했지만, 그 돈으로 주말에 아이들과 강가에서 소시지 몇개 굽는, 어린이 축구교실에서 씩씩하게 공을 차는 내 새끼의 모습을 보는 그 “소박함의 미학”을 임목사 당신이 어찌 알겠는가? 임목사야말로 현장정신을 배워야 할 사람 명단 제 0순위, 필자의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시편 37편은 다윗이 늙으막에 젊은이들을 향한 권면의 시라고 대부분 말하는데, 여기서 웬 돈 버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참 기괴합니다요.

이렇게 잡담에 가까운 함량미달의 말의 성찬만 예배당에 왜 가득한 것일까? 그것은 딱 한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밝히 깨달아 알게 하면 됩니다. 예수의 사랑과 십자가의 도를 전하면 그만입니다. 허상뿐인 인간의 이야기, 겉으로는 다 좋아 보이지만 반드시 어둡고 구린 구석이 있는 법, 따라서 인간의 이야기를 하면 구린내만 진동할 뿐임을 필자는 또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필자 역시 인간인지라, 카네기, 록펠러, 김동진, 샘월튼, 파월 처럼 돈도 많이 벌고 지혜롭고 온유하고 성실하고 현장감이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고, 또 그들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아무리 돈에 한이 맺혀있다한들, 돈에 깔려 잘 보이지 않는 구린 곳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설교의 중심에 있는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카테고리설교비평태그설교비평, 성경이말하는돈버는법, 임현수목사, 큰빛교회

“큰빛교회-임현수목사-설교비평-성경에서 말하는 돈 버는 법”에 대한 9개의 댓글

순두게
2011-05-25 09:56

“큰빛교회-임현수목사-설교비평-성경에서 말하는 돈 버는 법”에 대한 9개의 댓글

  1. 임현수 목사 설교 전문 – 성경이 말하는 돈 버는 법 / 시37:1-11 / 2011-03-06
    성경에는 우리들이 찾고 구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보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죄에서의 구원과 함께 통전적 구원 을 말합니다. 성경은 철학, 음악, 미술, 농업, 공업, 문학, 의학 등 모든 분야에서 지혜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깨끗한 부자가 되는 원리도 분명히 나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업가들에게도, 직장인들에게도, 시골 농부에게도, 대학 교수에게도 성경은 지혜를 제공해 줍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특별히 직업이 없으신 분들이나 사업을 찾는 분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이 되고 안정된 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돈 버는 법칙 4가지를 본문에서 찾아 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기도의 법입니다.
    돈을 버는 가장 성경적인 방법은 기도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가장 실제적인 방법을 알려 드리는 것 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의하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첫 번째 함정은 언제나 인생을 불평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문제입니다. (시 37: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성경은 언제나 불평 대신 기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대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고 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 37: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크리스챤의 삶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것 입니다. 맡겨드림으로 염려를 버리는 것 입니다. 참아 기다리므로 승리하는 것 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도로 가능합니다. 염려가 있거든 더 많이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미국과 카나다에 살았던 한 사업가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 사람은 열다섯 살에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농장 인부, 자동차 페인트공, 보험 설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39세가 되던 1929년, 켄터키 주의 코빈이라는 작은 마을에 주유소를 차리고 조그만 식당도 차려서 꽤 번창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샌더스 카페에는 손님이 하나 둘씩 줄더니 급기야 가게 문을 닫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상황이 악화되어 식당은 결국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에 그는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이미 그의 나이는 65세가 되었습니다. 제기가 불가능해 보였던 그는 마음의 병까지 얻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시름 시름 죽어가던 그는 어느 날 새벽에 밖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듣게 됩니다. 누가 이 새벽부터 찬송을 부르는가 싶어 밖을 쳐다봤더니 찬송을 부르고 있는 사람은 한쪽 다리가 없는 청소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청소부는 계속 해서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이 찬송소리에 감동을 받고 청소부를 불렀습니다. “아니, 당신은 목발을 짚고 있으면서도 어쩜 그렇게 행복하게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아저씨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예요. 저의 영원한 집은 저 하늘나라에 있어요. 그래서 지금 내 환경이 어려워도 저는 항상 즐겁게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청소부와의 교제 속에서 그는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가기를 시작 했습니다.
    퇴원한 후에 그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 하나님 저는 이제 나이도 많은데 이 나이에 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그랬더니 기도 하는 중에 수많은 닭들이 날아가는 그림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 그림이 자꾸 눈앞을 가려서 더 이상 기도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이게 도데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기껏 말하기를 “그것은 닭 울기 전에 회개 하는 것이라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 기도 하던 중 사람들이 좋아하던 양념 닭튀김요리를 다시 해서 사람들에게 주었더니 모두들 맛이 아주 좋다고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힘을 얻고 미국 캔터키 주에 있었던 자기 집에서 닭 튀김 장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 압력솥과 양념을 싣고 곳곳의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치킨 맛에 호의를 갖는 식당 주인들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자동차에서 잠을 자고 주유소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면서 수많은 레스토랑을 찾아다닌 지 2년이 지나자 다섯 개의 체인점을 모집할 수 있었고, 4년 뒤인 1960년엔 체인점 수가 2백 개를 넘어서 지금은 전세계 80여 개 국에 1만여 매장이 생길 만큼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65세에 사업을 시작해서 1980년 90세의 나이로 삶을 마칠 때까지 그는 각 나라 의 매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일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 (korea for Christ?) 의 출입문 앞에 푸근한 웃음을 짓고 서 있는 할아버지 인형의 주인공으로서 바로 창업주인 커넬 할랜드 샌더스입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 니까? 그는 남들이 연금을 받아 살 궁리를 할 65세의 나이에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 하므로 응답을 받아 그의 인생의 황혼 마지막 25년을 불태우면서 열심히 살다가 이 땅에 많은 수 많은 교회를 세워 놓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25년은 믿음의 생애였고, 그의 재기는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환난 날에 우리가 할 것은 무엇입니까?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왜 구하지 않습니까? 왜 찾지 않습니까? 왜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 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 하십니까? 사업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공부를 위해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구하라 찾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이든지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지혜의 법입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지혜는 작은 아이들에게도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갑부중 한 사람인 강철왕 카네기의 어릴적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하루는 어린 카네기가 어머님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갔습니다. 이것 저것 구경하다 가 딸기 파는 가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어린 카네기는 가만히 서서 딸기를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습니다. 하도 쳐다 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안됐던지 한움큼 집어먹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카네기는 쳐다만 봅니다.
    집어 먹으래도 집어 먹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안됐는지 자기 손으로 딸기를 한움큼 집어서 카네기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카네기는 기다렸 다는 듯이 두 손으로 그것을 넙죽 받아 챙깁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카네기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얘야. 할아버지가 너한테 집어 먹으라고 할 때는 왜 안 집어 먹었니?”그랬더니 어린 카네기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내 손은 작고 할아버지의 손은 크쟎아요?” ……… 지혜입니다.
    카네기가 10살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토끼를 길렀는데 토끼가 자꾸 번식합니다. 그래서 먹이가 부족합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친구들한테 이런 약속을 합니다. “얘들아, 토끼풀을 뜯어다가 먹여주면 토끼한테 너네 이름을 붙여줄게” 그랬더니 친구들이 앞을 다투어 토끼풀을 뜯어다가 먹여줍니다. 지혜는 두레박과 같아서 모든 좋은 것을 퍼 올리는 것 입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피츠버그에 제철공장을 세웠을 때 그는 자기 이름으로 공장 이름을 짓지 않고 에드가 톰슨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에드가 톰슨은 그당시 펜실바니아에 있었던 한 철도회사 사장의 이름 이었습니다. 왜 카네기가 자기공장 에다 그 사장의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는 자기 공장에서 생산되는 레일을 그 철도 회사에 팔아먹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물론 결국은 그의 계획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기도응답의 기회가 왔을 때, 그는 장수를 구하지도 않았고, 잘 사는 부유함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잠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잠 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결국은 지혜 안에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도 기도로 얻는 것 입니다. 솔로몬도 지혜로웠고, 다니엘도 지혜로웠고, 요셉도 지혜로웠습니다. 성실이 지혜를 만나면 거기서 탁월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전 10: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지혜가 우리의 성실을 탁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세상을 이기시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가지를 긁어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전도사님이 결혼을 했다. 신혼방에 들어서서 짐을 정리하다가 사모님의 가방에서 조그만 통을 발견했다. 궁금해서 사모님께 물었다. “이게 뭐요?” 그러자 사모님은 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절대 열어보시면 안돼요, 알았죠” 전도사님은 궁금했지만 워낙 완강하게 말리는 통에 알았다고 약속했다. 그런 후 잊어버리고 세월이 20년이 흘렀다. 20년간 목회 하면서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어 짐을 정리하다가, 20년 전의 그 통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목사님은 속으로 “이제는 20년이나 지났는데 설마 괜찮겠지” 하며 살짝 통을 열어봤다. 그런데 그 안에는 현금 200만원 과 계란 3개가 들어 있는게 아닌가, 너무 궁금해서 사모님께 사실을 말하고 물었다. “도대체 이게 뭐요?” 사모님은 절대 열어보지 말랬는데 열어보았다고 원망하면서 마지못해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하면서 말했다. “좋아요, 이제는 말씀드리죠, 당신이 저와 결혼 후에 교회에서 설교 하실 때, 제가 졸음이 오면 그 때마다 계란을 하나씩 모았어요” 그러자 목사님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래? 20년 동안 내가 3번 밖에는 졸음이 오는 설교를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돈은 뭐지?” 그러자 사모님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계란 판 돈요”
    셋째로, 성실의 법입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내내 강조하시는 것은 성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처음에 명령하신 것도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도박과 투기로 버는 돈은 일하지 않고 번 불로소득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서 돈을 벌거나 뇌물을 받거나 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어느 지역의 개발 정보를 빼내서 거기에 땅을 샀다가 땅값이 열배로 올라서 돈을 번다든지 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모두 불로소득이기에 안 좋은 것 입니다.
    우리나라 농협의 기본 정신 가운데 하나도 현장정신입니다. 잠언 기자는 네 양떼를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 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심방이 교회의 현장정신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 11: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잠 19: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한 흑인 고등학생이 코카콜라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바닥에 흘러내린 콜라를 닥아내는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50개의 콜라병이 든 상자가 터져버렸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닦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그 흑인 학생이 바닥에 꿇어 엎드려 그 콜라를 열심히 닦아냈습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자마이카 출신의 미국이민자 였습니다. 그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그의 가정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그의 학교 성적은 항상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직했고 성실했고 어떤 시련 앞에서도 용감했습니다. 그는 그의 성실을 바탕으로 훗날 미국 합참의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걸프전쟁의 영웅 콜린 파월 입니다. 그는 백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는 콧대높은 미국인들로부터 크게 존경 받는 인물 입니다. 그에게는 항상 흑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닙니다. 그는 흑인 최초로 미국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성공하게 만들었을까요? 그의 성실성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한다는 현장정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 이십니까? I am Who I am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사는 현장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현재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3무(학연,지연,혈연이 전무하다) 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김동진 사장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같은 사업 가운데 <대리운전>이라는 사업이 있습니다. 술들을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계에 대부가 된 김동진 사장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1577-1577이라는 앞뒤가 같은 번호 하나 가지고 9년 만에 대리 운전 시장을 평정 시킨 사람입니다. 
    이 분의 이야기는 시골에서 어머니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 꾸어서 준 돈 2,000 원 들고 서울로 상경하는 눈물겨운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중학교 졸업도 못하고, 서울 장안동 중고차 상점에서 광택 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운전수, 밤중에는 파지 줏어서 파는 일까지 하루에 3가지 직업을 갖고 일 할 정도로 열심과 성실로 살았습니다. 조그만 교회에서 결혼하고 난 후 이 부부는 대리운전이라는 사업을 둘이서 시작 합니다. 하루종일 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새벽 3시경에 일어나 위험을 무릎쓰고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에 들어가 작은 현수막을 50개 씩 걸어 놓고.. 수없이 고생 했습니다. 
    한번에 12,000원 받고 술 취한 손님을 모셔다 드리고 자기는 버스 타고 돌아 오는데… 어느 겨울에는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버스 기다리다가 발에 동상이 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물차 하나 구입해서 길에다 세워 놓고 …
    그것이 사무실이 되고 부부가 둘이서 전화 받으면서 발로 뜁니다…. 그 직업은 술취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기에 전화가 걸려 올 때부터 80%가 반말이고 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욕 먹으면서 시작한 사업이 어느 날 번창 하기 시작 하더니 지금은 운전 기사만 4,600명, 상담원 120명을 거느린 대한민국 1등 대리운전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600명의 직원들에게 대기업 수준의 복지 혜택을 베풀며 회사의 이미지 개선에도 1등 회사가 되었습니다. 
    세계최고의 햄버거 업체인 맥도날드사의 현장정신은 유명합니다. 창업주 레이 크록(Ray Kroc)은 52세에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현장에서 철저하게 햄버거 사업의 모든 것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햄버거를 직접 만들고 배달해본 사람만 회사의 요직에 앉혔습니다. 지금의 프레드 트너 회장도 창업주 밑에서 빵을 굽던 사람 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피 눈물 나는 현장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강철왕 카네기,석유왕 록펠러,발명왕 에디슨, 자동차왕 헨리 포드, 월마트의 샘 월튼, KFC의 카널 샌더스 현대 정주영, 이랜드의 박성수… 이들의 성공역사는 투철한 현장정신 이었습니다.
    기도와 지혜 그리고 성실함을 능가할 자가 누구겠습니까? 성실하신 하나님을 닮아 범사에 성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기무라의 기적의 사과 유티브 동영상…)
    4. 온유의 법입니다.
    본문 11절을 보겠습니다. (시 37:11) 그러나 온유(溫柔)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온유란 말은 <따뜻할온(溫) 부드러울유(柔)>를 뜻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따뜻하고 부드러운친철 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요즘은 서비스 정신 이라고도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도 맥도날드가 서비스가 부족해서 1년에 몇 억불의 손해를 보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런던 한인 장로교회 장로님으로부터 점심 시간에 그의 사업 얘기를 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하시던 분인데 은퇴하고 버라이어티를 시작 했다고 합니다. 그냥 보통 가게였답니다. 그런데 이분은 손님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경영의 우선으로 삼고 시작했는데 이 분이 이 가게를 인수한 후부터 가게 매상이 3배가 올랐다고 합니다. 1년에 30만불 되던 매상이 130만 불로 올라가더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온유와 친절의 법칙입니다. 
    한 노부인이 미국의 피츠버그 백화점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어느 한 사람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노부인이 가구 코너로 갔습니다. 그러자 젊은 점원이 공손하고 친절하게 인사하면서 뭐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노부인은 그냥 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어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젊은 점원은 의자를 내어놓으면서 앉으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차 한 잔도 대접했습니다. 얼마 후 비가 그치자 젊은 점원은 노부인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가서 잘 가시라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노부인은 떠나면서 젊은 점원의 명함을 하나 받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몇 달이 지났는데 편지 한 장이 백화점 주인에게 날아들었습니다. 새 집을 단장해야 하겠으니 그 가구 코너의 젊은 점원을 스코틀랜드로 보내달라는 편지였습니다. 백화점 주인은 젊은 점원이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분야의 전문가를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며칠 후에 답신이 왔는데 젊은 점원 외에는 아무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답신에는 놀랍게도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의 자필 서명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젊은 점원은 스코틀랜드로 파견됐고 수십만 달러 어치의 가구를 주문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백화점의 동업자 자격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그 백화점 수익의 50%를 차지하는 주인이 되었습니다. 작은 친절이 큰 복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한 중년 아주머니가 백화점 쇼핑을 하다가 옷 한 벌을 사고는 공항으로 달려갔습 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른 나머지 비행기표를 백화점 카운터에다 두고 나왔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 때 뜻밖에도 백화점 점원이 나타 나서 비행기표를 건네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점원은 뒤늦게 표를 발견하고는 곧장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 그 아주머니는 그 백화점의 단골손님이 됐고 또 홍보요원이 됐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1970년대에 미국 시애틀의 노드스트롬 백화점에서 있었던 아주 유명한 실화입니다. 한 점원이 베푼 작은 친절이 노드스트롬 백화점을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고급백화점으로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 경영자들은 무슨 대단한 성공비결을 발견한 것처럼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2천년 전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갈파하신 대인관계의 황금법칙이었습니다. 마7:12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예수님은 방대한 구약성경의 정신이 바로 서비스 정신이라고 요약해 주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산상설교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마5:5절입니다.
    5 온유(친절)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성공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자리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행복에 이르고 성공에 이르는 바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바르게 안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지식이 많고 아는 것이 많은 것과 바르게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그 지식이 바르지 못할 때에는 그 지식이 오히려 불행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작은 가게를 하든지, 평범한 직장에 다니든지, 공부하는 학생이든지, 가정 주부 이든지 항상 이런 법칙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의 법, 지혜의 법, 성실의 법, 친절의 법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 하다고 합니다. 이민 생활이 너무 어렵다고들 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계십니다. 광야에도 찾아 오셨고 더러운 마굿간에도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진심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들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주님은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십니다. 이런 특권을 약속 받고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불신앙이나 불순종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거나 시기하지 마십시오. 삶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분노하지 말고 조급하지도 마십시오. 행악에 치우칠 뿐입니다.
    두려워 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사랑과 능력과 지혜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주안에서 승리할 수 있고, 주안에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의 은혜로 이 한주간도 승리 하시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마르다
1970-01-01 00:00


힘든 겨을지나고 희망의 봄맞아 열씸히 돈벌어볼끼라고,
이민현장 일터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면서, 바보 핵교 짬짬이 눈도장만 찍고 갔는데
더디어,
오매불망
아 !!! 꿈에도 그리던 돈벼락맞는 비법을 전수해주시는군요.
그런데, 하늘의 뜻을 밝히아는 임목싸안님 !!
가장 실제적인 방법을 갈켜준다했는데, 도데체 얼마만큼 기도해야하고,
무슨 지혜를 가져야하며, 어느만큼 성실, 온유해야 하나요?
보통의 예배당 열심파들 KFC 할배만큼 기도할낀데요.,
하루 몇시간 혹은 일주에 몇시간인지를 갈켜줘야 내 할일(기도)하고나서
돼지든 소든 그림을 안보여주면,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한테 따질수 있을것 아님니까?
글카고, 카네긴가하는 어린놈- 아니,- 분이 하는짖이 지혜입니까, 영악한겁니까?
보통의 우리같은 시장터의 민중 할아배가 애를 불쌍히여겨, 베풀고 나누는 이웃사랑을
잔머리 굴려 이용하는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지혠게요 ? 그런것이었나요 ???
만약에 내 자식놈이 고롷케 잔마리 굴렸으면 쟉신패고 시장할아배께 무릅꿇고 빌게했을 겁니다. 고딴것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라고 !!! @#$%$#@
전도사 이야기 – 헐 !!!!!!!!!!!!!1
200백만원 나누기 약 요즘시세 삼천원($2.99계란 12개 값 ?)이라치고 = 666. 다즌
666 다즌 곱하기 계란 12 개 = 7992 , 그리고 더하기 남은계란 3개 = 7995
한번더,
개란 7995개 나누기 20년하면 일년(365일 맞제? )에 싸모님모시고 한 설교만 해도
약 399.75번을 햤구만요 !!
뻥을 쳐도 정도껏 쳐야지, 사전조사는 사기당하는 병신도에대한 최소한의 예절 !
글카고 이런 멍청한 예편내가 지혜로운 바가지란다. 캬 !!

“그가 바로 걸프전쟁의 영웅 콜린 파월 입니다.” –
그럼 그보다 더높은 父子 대통령 부시는 얼마나 성실했을까? 또 명박이는 ???
더 이상 헐말 어읍씀. 쫑 !!
漸入佳境(점입가경) – 소위 말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짓이 더욱 꼴불견일때 쓰는말.
결정 타타타 !! 퇬 퇬 퇬 !!!
예수님은 방대한 구약성경의 정신이 바로 서비스 정신이라고 요약해 주신 것입니다.
——————————————————- 밑줄 쫙
끝으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진심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들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ㅡ 설교에 은혜받은 나의간구. ㅡ
나는 진짜로 임목싸님이 믿는 하나님을 밌싸옵꼬,
임목싸님의 주님은 구하는자에게 응답하여 주씬다 해앴싸오니,
다가오는 복권 $50 밀리온(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요구) 벼락 맞게하여주시옵쏘써,
Amen !!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순두게
1970-01-01 00:00


계란 계산까지 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제목은 돈버는 법, 그것도 성경에서, 그런데 보셨다시피 완전 뜬 구름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뜬 구름은 굳이 성경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있지요. 차라리, 금융주를 사라, 제조주는 빨리 팔아라, 등등 차라리 이런 뜬 구름이라도 잡았으면 훨 나을뻔했지요. 마르다님은 더 학씰하시네,,, 복권 번호좀 갈쳐달라고 하셨으니….
큰빛교회 참 대단한 교회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회학자가 아니라 사회학도가 기말 레포트 정도의 목적으로 그 집단의 정신상태를 연구해 보면 담당 교수가 점수 잘 줄것 같은데. 교회를 가는 것인지, 교회당 건물에 아무생각없이 그냥 본능적으로 들랑날랑하는 건지, 동네 문화회관 에서 정기적으로 개설한 재무설계 혹은 장사잘하기 강좌들으러 다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알수가.
댓글 감사.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마르다
1970-01-01 00:00


하나더.
상대지망생 아들에게 주는 조언
야, 핵교 때리치우고 성경 “이나” 봐라 . 벼락부자 될끼다.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Bill
2013-04-10 02:34


제가 볼쩍에 임현수 목사님 설교 참 성경적이고 올바른 말씀이고 믿는 자에게 유익한 말씀인데, 너무 삐딱하게 보는것 같네요. 목사의 잘못된 점, 비리, 비성경적인 내용들은 통렬히 비탄하는 것에는 동감하나, 설교 말을 비틀어 야유하는것 같은 댓글같아 보이네요. 정말 기도 하면 응답아여 주시는 하나님이고, 자녀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우리 하나님이고,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라는 것을 설교 하셨는데, 왜 비판 받아야 할까 라는 의문입니다. 어디서 이렇게 하면 벼락부자 로또당첨되듯이 되다라고 설교에 써있는지 알수가 없네요.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마르다
2013-04-16 00:54


Bill님의 지적대로 비꼬고 야유하는둣한 표현으로 비춰졌다면 필력이 약한 저를 스스로 탓하고 조심스럽게 여러분들께 이해와 용서를 바랍니다.

여기 바보스쿨에서 비평한것은 임목사 개인을 향한것이 아닌, 이 시대를 깨우지 못하는 넓게는 이 세상의 목사들, 좁게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영향을 끼치는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이라고 이해하고 있읍니다. 더군다나 이십년 가까이 임목사를 곁에서 보고, 그의 성품을 쬐끔은 알고있는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감정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분의 성품을 좋아하고 저보다도 인격이 몇십배는 훌륭하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설교는 일전에 목사님 전상서 예언자편에서 밝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를 든 위의 설교에서와 같이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설교가 우리가 뭔가 (혹은 위의 설교처럼 기도,지혜,성실,온유의 법칙을 따라) 열심히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것처럼 가르치는데 위의 설교와 성경에서 절절히 경고하는 풍요의 신 우상 바알의 기도와 무엇이 다름니까?
님께서 성경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성경어디에 돈버는 법이라고 나오는지요.
돈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살고 싶은것은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우리들(아니 모두)의 욕심일 뿐입니다. 그 우리들의 욕심을 번지르하게 성경이야기로 포장했을뿐이지 성경은 아닙니다. 우리의 욕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싸 해 보이지만 성경은 경제학교제가 아님니다.

오히려 성경은 사도바울을 통해 “십자가의 도” 외에는 이땅의 모든것이 배설물이라고 했고, 부자청년이 예수께 영생을 물을때 너의 모든 소유를 팔아 이웃과 나눔을 통해 빈손이 되라 하셨읍니다. 욕심많은 대부분의 우리들의 죄의식을 성경구절을 이용해서 정당화시키는것이지 저의 생각은 절대 성경적이지 않읍니다. (제 생각이 잘못 됐다면 부디 가르침을 주소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복은 물질,성공,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연약함, 죄인됨을 발견하는것- 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읍니다.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가는것 많큼이나 어렵다고 하셨읍니다. 일전에 어떤 목사가 예수께서 과장법을 쓰셨다더군요. 정말로 예수께서 과장법으로 성경을 기록 했을까요? 아님, 우리 인간들의 욕심을 감추려고 목사께서 성도들에게 좋은 덕담으로 이야기 했을까요? 만약 내기를 걸수 있다면 부자가 천국가는게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가는것 만큼이나 어렵다에 올인하겠읍니다. 예수의 말씀을 우리가 믿는다면, 위에 설교에서 부자된 사람들 천국가기 힘들다는 이야기이고 오늘날 교회안에서 ” 부자되세요 ” 하는 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님 ! 혹시라도 님께서 목사들이 이야기하는 달콤한 복말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복받기 원하시면 마음 단단히 먹으시길 바렘니다. 성령받은 제자들의 복된길의 끝이 어떠했으며 그들의 바라는 소망이 무엇이었는지를 안다면 말입니다. 목사가 아닌 예수께서 직접 경전(성경)에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말세에 참성도들이 많지 않을것이고 참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것이 라구요 !!

저는 누구를 비꼬는것이 아니라, 성경과 목사들의 설교(?) 사이에서 참담한 한 평신도의 절규이고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는 탄식입니다. 몇십년을 거짓 축복의 설교에 속은 분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께 여전히 야유하는 듯이 보인다면 답답한 내가슴을 보일 수 없는 나는 거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웬지 예수가 불쌍타 !!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마르다
2013-04-18 16:41


설교본문중에서 –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피 눈물 나는 현장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강철왕 카네기,석유왕 록펠러,발명왕 에디슨, 자동차왕 헨리 포드, 월마트의 샘 월튼, KFC의 카널 샌더스 현대 정주영, 이랜드의 박성수… 이들의 성공역사는 투철한 현장정신 이었습니다.
.
과연 이런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야기하는 성경적 성공한 사람들의 본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기업의 성공신화는 하나님께 단물만 빨아먹는 타락한 인간의 욕심일 뿐입니다. 인간 중심의 우상숭배나 다를게 없읍니다. 차라리 저에게는 남들에게 피해주지않는 복권이 훨씬 더 깔끔하다고 사료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기업성공이나 복권이나 인간욕심을 나타내는 한 방편일 뿐입니다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마르다
2013-04-23 16:18


모두의 꿈 – 성공하는 삶, 축복받는 삶, 목적에 이끌리어 남들보다 보다 나은 질의 삶,
목회자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다는 번영신학, 목회성공, 건강한교회, 그리고 수많은 수식어들 !
그 거룩한 기초를 위하여 온 성도들의 헌신을 바란다는 대동소이한 호소의 성전건축

여기 어느 목사의 통곡이 들립니다. – 강추
http://www.youtube.com/watch?v=k6I6ROxchuk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geek
2013-05-13 17:12


김성수 목사,,, 다행히도 제도권 목사들 중에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뭄에 콩나듯,,,,,, 잘 보았습니다. 감사.이 댓글에 댓글달기 로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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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han Omar: Obama a 'pretty face' who got 'away with murder'



Ilhan Omar: Obama a 'pretty face' who got 'away with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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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esota Rep. Ilhan Omar ripped former President Barack Obama in an interview published Friday, belittling his “pretty face” and saying his agenda of hope and change was an illusion.

She cited the “caging of kids” at the Mexican border and the “droning of countries around the world” on Obama’s watch — and argued that he wasn’t much different from President Trump

“We can’t be only upset with Trump,” the freshman firebrand told Politico Magazine.

“His policies are bad, but many of the people who came before him also had really bad policies. They just were more polished than he was,” Omar said.

“And that’s not what we should be looking for anymore. We don’t want anybody to get away with murder because they are polished. We want to recognize the actual policies that are behind the pretty face and the smile.”

The explosive comments about a man lionized by Democrats were only the latest in a series of incendiary statements that have put the national spotlight on Omar, a Somali-American Muslim who spent four years in a refugee camp in Kenya after her family fled the violence in their homeland.
In February, her second month in office, Omar responded to a tweet about House GOP leader Kevin McCarthy’s threats to punish her and another congresswoman for criticizing Israel.

“It’s all about the Benjamins baby,” she tweeted, a line from a Puff Daddy song about $100 bills.

Critics said Omar was perpetuating a hateful trope about Jewish Americans and money.

She recently got into another hot mess after another tweet was slammed by some as anti-Semitic.

The ensuing firestorm rattled the Democratic House majority and spurred days of recriminations and tense negotiations that led to the compromise package condemning bigotry that sailed through the House on Thursday, with only 23 Republicans voting against it.

The party’s leftist wing, led by New York Rep. Alexandria Ocasio-Cortez, said Omar was being singled out when others at the highest levels of government had said things that were worse and escaped censure.

More moderate Dems, including Jewish lawmakers such as New York’s Eliot Engle, wanted the resolution to focus only on anti-Semitism as a direct response to Omar’s comment, which questioned the loyalty of politicians who accept donations from pro-Israel PACs and organizations.
Ultimately, after days of chaos and acrimony, House Speaker Nancy Pelosi was able to unite her caucus — and box in a big majority of Republicans — to back the compromise.

And Omar — along with Rashida Tlaib of Michigan the first Muslim women in Congress — said she’s willing to keep speaking out and be a Republican punching bag if it helps advance her agenda, a prospect that likely makes many of her fellow Democrats cringe.

“개인의 하느님에서 공동체의 하느님으로”...곽건용



“개인의 하느님에서 공동체의 하느님으로”...곽건용




“개인의 하느님에서 공동체의 하느님으로”...곽건용
우리안에 있는 가짜 하느님 죽이기...“그가 내 이웃? 내가 그의 이웃?”
2019-03-08

[삶과 영성]

“그가 내 이웃? 내가 그의 이웃?”

“우리 안에 있는 가짜 하느님 죽이기”...12번째 강론문

March 07, 2019

지난 주일(3/3) 강론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짜 하느님 죽이기' 열두 번째이자 '개인의 하느님에서 공동체의 하느님으로' 첫 번째 설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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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 주현절 후 여덟째 주일
우리 안에 있는 가짜 하느님 죽이기 12

“그가 내 이웃? 내가 그의 이웃?” (누가 17:20-21)

설교: 곽건용 목사

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보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습니다."(누가 17:20-21)

해묵은 논쟁,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오늘은 ‘우리 안에 있는 가짜 하느님 죽이기’ 열두 번째이고 다섯 번째 소주제 ‘개인의 하느님에서 공동체의 하느님으로’ 첫 번째 설교가 되겠습니다. ‘개인의 하느님’이냐 ‘공동체의 하느님’이냐 하는 주제는 한국교회에서 쉰내가 날 정도로 오래된 논쟁의 주제입니다. 사실 개인의 하느님, 공동체의 하느님이란 말보다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란 말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주제입니다. 이 논쟁 역시 기독교인이 술 담배를 해도 되느냐 아니냐를 두고 벌여온 논쟁처럼 제가 어렸을 때부터니까 거의 50년 동안 벌어지고 있는 고리타분한 논쟁입니다. 이게 과연 그 정도로 오래 논쟁할만한 주제가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전에는 개인구원 아니면 사회구원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대개의 경우 양측 모두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논쟁은 합의에 이르지 않고 끝나곤 했습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개인구원을 택했고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사회구원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논쟁이 벌어지면(이 주제로 논쟁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결론은 ‘둘 다 있어야 한다.’로 내려지곤 합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도 사회구원을 전혀 무시하지는 않으며 진보적인 기독교인이라도 개인구원이 불필요하다고 도외시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뭐 하러 논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둘 다 필요하다면 하나마나한 논쟁 아니냐는 겁니다.

저도 이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유가 다릅니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보수기독교인이나 진보기독교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둘 다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구원’(salvation)에 대한 양쪽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논쟁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개인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은 ‘죽은 다음에 사람이 염원하는 모든 것이 보장된 저 세상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키는 반면 사회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은 ‘살아 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 충만한 생명의 삶을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양편 모두 사람마다 구원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개인구원파는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저 세상’에서의 삶에 더 중점을 두는 반면 사회구원파는 반대로 ‘저 세상’에서의 삶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더 중요시한다는 겁니다.

이렇듯 구원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거기 도달하는 길이 같은지 다른지를 따지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예컨대 한 사람은 부산을 가려고 또 한 사람은 광주를 가려고 하는데 서로 자기가 탈 기차를 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게 말이 됩니까.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를 두고 벌여온 논쟁은 이처럼 서로 다른 목적지로 가려고 하면서 자기가 가는 방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개인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기 이르기 위해 자기들이 택한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야 하고 마찬가지로 사회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거기 다다르기 위해 스스로 택한 길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곧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동일한 차원의 얘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걸 동일한 차원으로 간주하고 둘 중 하나를 택하자고 논쟁을 해왔으니 이 논쟁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이 논쟁이 별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 설교를 하는데 동기를 제공한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는 둘을 같은 차원으로 간주하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그와 생각이 달라서 이 주제에 관해서는 그의 책에서 크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장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건너뛸까도 생각해봤지만 돌아보니 제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에 대해서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설교하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주제이긴 했지만 한 번쯤 제대로 다뤄봐야겠다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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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국가’라고?

‘사람은 섬으로 살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무인도에 던져진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2차 대전이 끝난 줄도 모르고 필리핀 정글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았던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어떤 모양으로든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스스로 삶의 모든 일들을 혼자 해결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개인은 현대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에 베트남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이 회담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높였는데 아쉽게도 만족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낙망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망스러운 결과인 것 맞지만 이런 중차대한 일이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앞으로 갈 길이 머니 기운 내서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상회담 보도를 보면서 상당히 불만스런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국 언론들이 ‘정상국가’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차별 없이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어야 한다느니 정상국가로 이끌어야 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저는 매우 불편했고 화가 나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회담이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북한은 ‘비정상국가’였다는 말입니까? 어엿이 유엔에 가입한 나라가 정상국가가 아니라면 어느 나라가 정상국가란 말입니까?

저는 그들이 사용하는 ‘정상국가’라는 말은 미국과 유럽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통합되고 흡수되어 있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정상국가가 아니란 말은 그 체제에 통합되어 있지 않은 나라라는 뜻이겠지요. 1980년대 말이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급속하게 미국과 유럽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됐습니다.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중국조차 이른바 ‘개방’이란 이름으로 이 체제와 교류하면서 서서히 통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체제는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강도 높은 경제제재와 압박을 통해서 북한을 자본주의 체제에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그들 표현을 따르면 ‘정상국가’를 만들려 했던 겁니다. 게다가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는 1990년대 이후 줄곧 북한을 폭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 동안 북폭 위기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북한은 어떻게 대처했나요. 북한은 구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고 연방 해체되고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하면서 급속히 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되고 중국마저 개방의 길을 가게 되자 그만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미국은 경제제재 이외에도 무력을 써서라도 북한을 굴복시키고 자기가 맹주 자리에 앉아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흡수하려 하자 생존을 위해 핵개발을 했던 겁니다.

하지만 북한도 언제까지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없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와 무관하게 고립되어 지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자주를 외치지만 세계체제와는 무관하게 완전히 자주적이고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국가로 남아 있을 수 없음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자주성을 유지하며 서서히 개방하려 했습니다. 결국 북한도 개인이 섬으로는 살지 못하는 것처럼 국가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했던 겁니다.

‘개인’의 등장

‘개인’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리고 지난 주간에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렸기에 그 얘길 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독자성과 독립성과 자주성을 본래 주어진 걸로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근대적인 현상입니다. 곧 근대 이전에는 ‘개인’이 강조되거나 ‘개인’의 가치나 중요성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근대 이전에는 개인보다는 집단, 곧 공동체가 더 중시됐습니다. 아니, 공동체와는 무관한 개인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야 맞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언제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이 벌거벗고 돌도끼 들고 채집하고 사냥하던 시대에 사람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힘이 약했기 때문에 무리를 이루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옛날뿐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사람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은 공동체적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도 같은 아파트 사람끼리도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람이 죽어도 모른다지 않습니까.

개인이 강조되기 시작한 때는 근대에 들어와서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부터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신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도 일종의 사회현상이고 문화현상이므로 사회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가르침 역시 시대정신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사회학의 조상들 중에 막스 베버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정말 다방면에 걸쳐서 엄청난 연구를 수행한 르네상스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사회학자로서 당시의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대교 역사까지도 연구한 학자입니다. 그의 주요 저서들 중에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개신교 윤리, 특히 깔뱅주의(칼빈주의)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이에는 뗄 수 없이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책인데 대략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베버는 유럽에서 개신교 특히 예정조화설을 믿는 깔뱅주의 개혁교회가 지배적인 지역에서 자본주의가 일찍 발달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뭔지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한 책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깰뱅주의 개혁교회 교인들이 믿는 예정조화설은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기로 정해져 있는 사람은 아무리 악하게 살아도 결국에는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반면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리 잘 믿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개인은 자기가 구원을 받기로 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은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구원받도록 선택됐음을 확신하기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한다는 겁니다. 영어로 ‘calling’은 하느님의 부름을 뜻하기도 하고 직업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구원에로의) 부름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기 위해 사람은 ‘직업’으로서의 calling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이 지역에서 일찍 자본주의가 발단하게 됐다는 겁니다. 지금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베버의 연구는 사회학 초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베버의 주장의 다른 면을 봅니다. 예정조화설을 믿는 사람들의 성실성 덕분에 자본주의가 일찍 발달했다고는 저도 믿지 않지만 그의 논의에서 드러난 또 다른 사실은 당시 유럽사회에서 신앙은 이미 공동체의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현상이던 신앙이 베버의 연구 당시에는 개개인 각자의 일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어떻게 이리 야속할 수 있나…….

앞에서도 말씀했지만 저는 개인구원이니 사회구원이니 하는 말들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저는 기독교인이 된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 개인구원주의자였습니다. 물론 이는 어렸을 때 교회에서 받은 주입된 교육 탓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서를 읽고 연구하다가 저로서는 매우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분명 오랫동안 그 구절을 읽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점을 발견한 겁니다. 제게는 이 발견이 개인구원이니 사회구원이니 하는 논쟁과 무관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시각을 갖게 해줬습니다. 그건 이런 겁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유랑에 종지부를 찍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연설한 내용을 전합니다. 이미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비스가 산정에 올라가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거기서 죽습니다. 성서는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하느님의 백성을 거기서 이끌어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야훼 하느님에게 받았습니다. 그 일은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는 자기가 도망쳤던 바로 그 땅 이집트로 돌아가서 파라오와 실랑이를 벌인 끝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광야 길이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습니다. 직선거리로는 불과 일주일이면 갈 길을 40년 동안 유랑해야 했습니다. 그 동안 백성들을 그에게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이집트에 있었더라면 고기 가마 옆에서 배불리 먹고 있었을 텐데 공연히 자기들을 이끌고 나와서 생고생을 시킨다고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노예들에게 고기를 배불리 먹인 노예주가 어디 있습니까. 이들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겁니다. 오죽하면 모세가 하느님에게 “이 자들을 제가 낳았습니까!”라고 하소연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좌우간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물론 이들도 이유는 잘 몰랐겠지만 자기들을 40년 동안 이끈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자기들과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데 대해서 일언반구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들은 모세에게 아무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그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기들이 오랜 유랑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궁금하고 의아했습니다. 왜 이럴까? 왜 이들은 자기들을 40년 동안이나 인도해온 자기들의 지도자가 정작 그렇게도 그리던 약속의 땅에 함께 들어가지 못하는 데 대해 한 마디의 아쉬움도 표현하지 않을까? 왜 이들은 모세에게 이토록 무관심할까 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기들밖에 모를까. 자기들만 행복하고 자기 욕구만 채워지면 남은 어찌 되든 상관없나…….

개인이 구원받는지 사회가 구원받는지를 따지기 전에, 어느 편이 옳은지 판결하기 전에 먼저 적어도 한 번쯤은 ‘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저 매사를 내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남의 눈으로 보면 어떨지, 이 일이 남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만일 내가 저 사람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볼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겁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에 40년 광야를 헤매면서 가나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고 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광야 유랑 기간을 당신 백성을 훈련하는 기간으로 삼았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가 좋았느냐 하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들은 합격점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기들과 같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에 대한 이들의 태도에서 저는 그걸 봅니다.

저는 그 동안 숱하게 이 구절을 읽었는데 이런 점을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이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세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철저한 무관심에서 신앙은 나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행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행할 줄 아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게 타인의 눈으로 삶을 보셨던 분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에게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하는 문제는 논쟁의 주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개인이 구원의 대상이냐 사회(공동체)가 구원의 대상이냐 하는 문제는 눈곱만큼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문제였다면 예수님에게는 ‘누가 하느님과 손을 잡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곧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동반자로서의 개인과 공동체가 문제였다는 겁니다. 그 얘기는 다음 주일에 하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


*곽건용 목사

곽건용 (kwakgunyong)목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에 기독교인이 됐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서서히 목회자의 길을 가리라고 마음을 정하고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혀 신학교에 진학하면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후에 곽 목사는 몇 차례 위기 겸 기회를 맞았다. 곽 목사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다니던 교회가 속해 있던 교단의 신학대학원에 별 고민 없이 진학했다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그 교단의 신학이 맞지 않아 고민하다가 곧 휴학을 하고 혼자 신학서적을 읽으며 신학과 신앙, 그리고 기독교 사회윤리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3년 간 서울 용산의 한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일하며 독학하던 곽 목사는 1985년 한국기독교장로회로 소속을 옮기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새로운 환경에서 신학공부와 목회를 재개했다. 곽 목사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신학과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 스승들을 만나게 된다. 당시 한신대 교수였던 고 안병무 박사와 향린교회 담임목사인 홍근수 목사가 그분들이다. 곽 목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로부터 아래로부터 성서를 읽는 시각과 서재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신학하는 방법을 배웠고, 홍근수 목사로부터 해방의 복음에 충실한 설교와 교인들과 더불어 목회하는 민주적인 목회정신을 배웠다. 곽 목사는 서울 향린교회에서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전도사와 부목사로 목회하며 사회선교, 특히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선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목회경험을 쌓았다.

곽 목사는 1993년 말에 나성 선한사마리아인교회(현 나성 향린교회)의 청빙을 받아 미국에 온 이후 현재까지 같은 교회에서 인간 해방의 복음 선포,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선교, 모든 차별을 거부하는 민주적인 교회, 다문화 목회, 종교간의 대화를 추구하는 목회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클레어몬트 대학원(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박사과정에서 구약신학을 공부를 하며 학문적 성과를 목회와 삶에서 활용하는 목회를 추구하고 있다.

곽 목사는 1982년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1988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가족으로 소셜워커로 일하는 아내 (윤)경혜와 두 아들 인걸(Jason), 인선(Justin)이 있다. 저서로 설교집 『길은 끝나지 않았다』(한울출판사, 1993년)가 있다.


LA 향린교회 주소:

540 S Commonwealth Ave, Los Angeles, CA 90020

2019/03/08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유진벨재단, 북한 결핵 환자들에게 희망 주다 2011년 3월호 | 통일한국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유진벨재단, 북한 결핵 환자들에게 희망 주다 2011년 3월호 | 통일한국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유진벨재단, 북한 결핵 환자들에게 희망 주다 201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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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3


유진벨재단, 북한 결핵 환자들에게 희망 주다


오지에 위치한 구성시 제3요양소에 방문하기 위해 달구지를 타고 강을 건너는 대표단의 모습 ⓒ유진벨재단

“(후원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에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이 많은데, 이 약을 제대로 열심히 먹고 병을 고치겠습니다. (저는) 39살이고 아이는 6살입니다. (아이를) 보고 싶은 거야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2008년 5월 유진벨재단의 인세반 회장이 직접 결핵 치료약을 건네준 북한의 한 내성결핵 환자가 한 말이다. 가족과 떨어져 결핵요양소에서 병을 치료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어려움과 소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결핵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병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사회와 떨어져 요양을 하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결핵을 앓으면 일반적인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전혀 그릴 수 없다는 것이 이 병의 또 다른 비극이다.

북한, 최근 내성결핵 환자 급증


유진벨재단은 북한의 결핵 환자들에 대한 맞춤 치료로 이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유진벨은 1895년 한국에 파송된 유진벨(Eugene Bell) 선교사의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4대손인 인세반(Stephen W. Linton) 회장이 지난 1995년 미국에서 설립한 대북지원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0년에 재단이 설립됐다.

1995년 설립 당시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 통로가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유진벨은 해외동포들의 인도적인 대북지원 창구로 그 역할을 시작했다. 지원 초기에는 식량난을 겪고 있던 북한에 곡물을 보냈으며, 1997년 북한의 보건성으로부터 결핵퇴치 지원을 공식 요청받은 이후 지금까지 북한 전역에 25만여 명, 북한 내 인구 1/3 이상 지역을 맡아 결핵 퇴치 지원을 해오고 있다.

결핵(tuberculosis, TB)은 결핵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매우 무서운 전염병이다. 결핵에 걸린 환자들은 오한과 식은땀, 체중 감소를 겪으며 심한 기침 끝에 피가 섞인 가래를 토하기도 한다. 결핵이 악화되면 환자들은 사망에 이른다. 결핵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낯선 질병이 아니다.

과거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 정도로 결핵이 치부된 때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결핵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급격한 체중 감량과 스트레스가 우리나라 결핵 발생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환자들의 건강기록 차트를 점검하며 서류를 작성하는 북한 의료진 및 유진벨재단 대표단 ⓒ유진벨재단

“중증환자 각혈 빨아내다 감염됐습니다”

북한의 결핵 상황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인구 10만명당 184명의 환자가 신고 되고 있다. 2003년 WHO 글로벌 리포트는 2003년 한 해 동안 북한에서 4만277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3,549명의 환자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결핵은 분명한 치료약이 있다. 그러나 그 치료과정은 매우 어렵고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적절한 영양 보충과 더불어 요양을 하면서 여러 항생제들을 시간 맞춰 복용해야 한다. 결핵 환자들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는 대표적으로 DOTS(Direct observation Treatment Strategy)가 있다.

DOTS는 결핵 환자를 발견하여 6개월에서 9개월 동안 환자들이 치료약을 철저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으로, WHO의 결핵 관리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유진벨도 기본적으로 DOTS를 적용,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에는 일반 결핵치료약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되지 않는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내성결핵 환자가 이처럼 증가하는 이유는 일반결핵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거나 다른 내성결핵 환자로부터 감염이 되어 내성결핵으로 전이된 환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내성결핵 환자들은 내성 검사를 통해 각 환자별로 다른 약을 써야 하며 완치 기간도 6~9개월에 불과한 일반결핵과 달리 최소 2년에서 3년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는 내성결핵균을 검사할 수 있는 실험실이 없고, 내성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2차 치료약제를 구하기 힘들어 내성결핵 환자들은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유진벨재단은 지난 2007년부터 이러한 내성결핵 환자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환자들의 개별적인 객담(가래)을 받아 와서 직접 검사하고 개별 처방을 내린 뒤 환자들에게 맞춤형 결핵약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유진벨재단의 지원사업이 이렇게 짜여 있으니 유진벨의 지원 현장은 환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정확한 약 처방과 환자 관리를 위해 환자들의 몸무게와 키, 체중을 측정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시간이 방문하는 결핵요양소마다 마련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결핵 환자 치료에 헌신하다가 환자로부터 결핵에 감염된 담당 의사들도 만나게 된다. 북한의 한 결핵요양소에서 일하는 김영선 의사 선생도 그러한 경우다.

2009년 5월 북한 방문에서 인세반 회장이 만난 그는 “중증 환자들이 각혈할 때 기도에 막힌 것을 입으로 빨아내는 것을 수차례 하다 보니까 감염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진벨재단은 이러한 의사들의 객담도 받아와 약을 처방, 다음 방문 시에 치료약을 지원하고 있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뿐만이 아니라 주기적인 검사를 통한 경과 확인, 환자에 필요한 영양 공급, 기타 의료물품들이 통합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의료 물품들이 통합적으로 지원될 때 결핵 치료기관이 환자 치료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어 환자 치료율도 높아질 수 있다.

유진벨은 후원자와 북한의 요양원이 1:1 자매결연을 맺고 결핵 치료에 필요한 결핵약 및 진단장비, 소모품, 농업용품, 요양원 운영에 필요한 기타 물품 일체를 패키지화하여 지원하고 있다.

맞춤형 지원 … 환자 생활까지 꼼꼼히 챙겨


유진벨재단의 사업은 또 장기간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생활까지 챙기는 꼼꼼함을 갖추고 있다. 북한의 요양소에서는 입원 환자의 치료와 약 공급 이외에 일반적인 식사나 생필품 등의 지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직접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들 역시, 여력이 없기 때문에 장기간 입원 중인 환자들의 생활은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유진벨은 수건과 비누, 치약, 칫솔, 양말 등 생필품도 지원함으로써 환자들이 힘든 투병생활을 극복하고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부실한 난방시설에 방한용품마저 부족한 북한에서 환자들이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점퍼와 내의, 장갑 등 방한 용품도 지원, 환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유진벨재단의 인세반 회장이 각 지역에 위치한 결핵요양소를 방문하는 길은 그야말로 산넘고 물건너 가는 길이다. 요양소가 환자들의 격리를 위해 보통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매년 2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인세반 회장의 요양소 방문 길에 더욱 많은 사람이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손종도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장

11 준비된 농업개발 모델, AFSC 2011년 4월호 | 통일한국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준비된 농업개발 모델, AFSC 2011년 4월호 | 통일한국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준비된 농업개발 모델, AFSC 2011년 4월호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4
준비된 농업개발 모델, AFSC


AFSC가 사업을 펼치고 있는 협동농장의 관리자들

지난 2007년 5월 9일, 인상 좋은 외국인 3명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들은 당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추진 중이던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협동농장에서의 벼농사 및 시설농업 협력사업에 특히 큰 관심을 보였다. 벽안의 방문자들은 북한에서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열정과 진지함으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사업내용을 경청하고, 또 자신들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설명하던 이들이 1997년부터 북한에서 협동농장 단위의 농업협력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온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AFSC)의 전(前) 농업개발협력 자문관 렌달 아이어슨(W. Randall Ireson) 박사와 그의 동료들이었다.

미국친우봉사회로도 잘 알려진 AFSC는 미국의 기독교 퀘이커 교단에 소속된 민간구호단체로, 퀘이커 교단 내 ‘친구들의 종교적 모임(Religious Society of Friends)’ 산하의 모임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1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전쟁 희생자 구제, 세계 인류평화 모색을 목표로 정식 설립된다. 이후 활발한 평화 및 구호 활동을 벌여 1947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평안남도 소재 협동농장 내 시험포전

노벨 평화상에 빛나는 국제 구호 단체


이들은 1984년대부터 북한의 ‘조선세계인민연대위원회(The Korean Committee on Solidarity with the World’s People)’와 접촉하면서 초기에는 ‘전쟁화해와 평화’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펼쳤다.

1997년부터는 본격적인 농업과 보건의료 개발협력사업과 함께 이들 분야에서의 북·미 양국 간 민간교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AFSC의 30여 년에 달하는 대북 인도지원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개발협력사업과 그간 이들이 북한 당국과 쌓은 각별한 신뢰는 AFSC의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급 구호 차원의 일회성 식량 지원보다 그 이상의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의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그 해법이라는 것에도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농업 인프라 체계가 무너진 현실 속에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북한은 산림황폐화와 관개 체계의 능력저하로 매년 반복되는 농경지에 대한 수해 피해 등과 함께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비료, 농약, 농업용 비닐 등 농자재 공급부족과 품종 개량 기술 및 밀식 재배 형식의 주체 농법 등 낙후된 농업 기술과 농촌의 노동력 부족이 그것이다.

북한 스스로도 자신들의 어려운 농업 현실 속에서 최소한의 노동력과 물자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알곡생산’, 즉 최대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 절실한 과제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AFSC는 이러한 북한의 열악한 농업 환경을 직시하고, 협동농장에 대한 비료, 농기자재, 종자 등의 단순 농업 지원사업과 함께 현실적인 농업 기술의 개발과 보급, 그리고 역량 구축(capacity building) 분야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농업 개발지원적 접근을 시도한다.

화학비료 의존도 낮은 새 종자·농법 개발


AFSC는 먼저 비료가 절대 부족한 북한의 농업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 농업과학원, 농업대학, 유기농업개발협회, 복합미생물연구소 등과 협력하여 황폐해진 토양에 질소를 공급하기 위한 콩과 작물 도입과 함께 화학 비료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새로운 종자 개발 연구를 진행하였다.
아울러 농학자로 유명한 미주리 대학의 제리 넬슨(Jerry C. Nelson) 교수 등 미국의 농업 전문가들을 북한에 초청해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퇴비와 농업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마침내 이들은 기존 못자리 준비 작업 방식을 적용하는 것과 비교해서 75%나 적은 종자와 비료만으로도 농사가 가능한 농법을 개발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인 농업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AFSC는 이렇게 개발한 새로운 농업 기술을 북한 농업 생산의 기본 단위이자 전초 기지라 할 수 있는 협동농장에 적용하는 시험재배 사업을 추진한다. 2008년 평안남도 소재 협동농장 네 곳에서 진행한 시험재배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250ha 규모의 시범 포전에서 기존 못자리 방식의 4분의 1수준의 종자와 비료만으로 헥타르 당 수확량을 최소 0.5t에서 1t까지 증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더욱 놀라운 사실은 농업 투입재의 절감과 더불어 북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력 투입측면에서도 획기적인 절감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AFSC의 기술을 현장에 보급하는 문건을 통해 “논벼 파종 전단계 계렬기술(모내기 전 준비단계에서 적용하는 벼농사 기술)을 보급하면, 조선에서 모내기시기에 농촌의 노동력이 부족하고 농촌투자가 긴장하여 알곡생산이 부진되고 있던 문제들을 크게 해결할 수 있으며, 현재에 비하여 적은 노동력과 물자투자로 알곡생산량을 훨씬 높일 수 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예의 기술개발 및 보급 이외에도 협동농장의 토양 비옥도 및 토양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합리적 관개 및 수자원의 관리, 농작물의 다변화, 작물 취급 및 처리 방식 개선, 효율적인 농작을 위한 협동농장의 관리 체계 개선을 위한 사업도 병행 추진하여 효율성의 극대화를 꾀했다. 그렇다고 AFSC가 현장중심의 농업 개발협력사업만 진행한 것은 아니다.

AFSC는 미국의 구호단체인 MCC(Mennonite Central Committee)와 함께 북한 농축산 전문가들과 연구자들이 미국과 중국에서 선진 농업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본격적인 역량 구축(capacity building) 분야의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2002년 AFSC는 북한 농업성 이성조 부국장을 단장으로 한 5명의 북한 농축산대표단이 50일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농축산 관련 시찰 및 교육 연수를 받도록 하는 전문인력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북한 대표단은 연수기간 중 아이오와, 미주리, 워싱턴 주립대학과 사료생산 기업 등을 방문하여 미국의 농·축산 전문가, 수의사 등을 만나 서로의 의견과 과제를 교환하는 한편, 농축산 분야의 신기술을 학습하는 기회를 가졌다. 북한의 호응과 평가가 상당했던 이 사업은 그러나 아쉽게도 2005년을 마지막으로 북미관계 악화 등의 이유로 중단된다.

현지 역량구축 위한 해외 연수 적극 추진


그러나 북한 인력들의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중국에서의 연수 프로그램은 꾸준히 진행하여, 2010년에는 협동농장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중국에서 종합 작물과 축산 분야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중국 대련에서 대북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AFSC의 중국 현지사무소 책임자인 린다 루이스(Linda Lewis)는 며칠 전 “현재도 북한의 농학자들과 함께 중국내 여러 곳을 돌면서 플라스틱 육묘상자를 사용한 모내기 농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남측 민간단체들의 사업들이 모두 중단된 상황에서 린다 루이스의 답변은 반가움과 더불어 깊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AFSC는 북한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농업 협력사업과 전문 인력 양성과 같은 역량 개발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북한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농업 분야 개발협력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일회성이 아닌 중·장기적인 안목과 목표를 근간으로 한 지속적인 사업의 추진과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북측 파트너와의 두터운 신뢰 관계를 형성하였다.

AFSC의 농업분야 개발협력사업들은 꾸준한 사업 추진과 수원국과의 신뢰 형성이 성공적인 개발협력 사업 추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잘 보여준다.

황재성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장

18 북한 산림| 통일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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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11 저먼애그로액션, 북한 식량난 해법 도시농업에서 찾다 2011년 1월호 | 통일한국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저먼애그로액션, 북한 식량난 해법 도시농업에서 찾다 2011년 1월호 | 통일한국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저먼애그로액션, 북한 식량난 해법 도시농업에서 찾다 2011년 1월호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저먼애그로액션, 북한 식량난 해법 도시농업에서 찾다


수경재배시스템을 도입한 GAA의 온실




북한의 농촌 인구보다 도시 거주자들의 식량난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식량배급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직접 농작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농촌에 비해 식량을 구매해야 하는 도시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도시 주민들은 주말이면 도시 외곽 개간지를 경작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농촌의 친척들이 보내주는 먹거리에 의존한다. 이 같은 도시 식량난 해결을 위해 독일의 비정부기구 저먼애그로액션(German Agro Action, 이하 GAA)은 2008년부터 북한 도시농업 지원 사업을 전개하였다.

도시농업, 1990년대 쿠바 식량난 해결


도시 농업. 조금은 생소한 용어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 농업에 의존해 오고 있다. 발코니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채소를 기르고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땅에서 거둔 푸성귀를 밥상에 올리고. 이 모두가 도시 농업의 일부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뒷마당에서 거두는 상추와 오이가 뭐 얼마나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구권의 붕괴 이후 경제난과 더불어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했던 쿠바가 1990년대 후반에는 도시농업을 통해 전체 쌀 소비량의 65%, 채소의 46%, 오렌지를 뺀 과일류의 38%를 충당했으며, 도시농업이 쿠바의 식량난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이렇듯 도시농업은 조건과 정책 여하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GAA의 지원사업은 단체 이름이 말해 주듯 농업 분야를 근간으로 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실무자들이 농업 혹은 그와 연관된 분야를 전공했고, 1962년 창립 이후 다양한 기후와 자연 환경을 가진 70여 개 국가에서 농업 지원사업을 펼치면서 노하우를 쌓아왔다. 그런 배경 속에서 GAA의 북한 도시농업 지원사업이 시작되었다.

2008년 11월에 시작하여 2011년 4월에 종료되는 1단계 북한 도시농업 지원사업은 EU 등이 후원한 172만유로(한화 약 26억원)가 투입됐으며, 평양 봉수동과 평남 순천시 동암동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크게 2개의 하위 프로젝트로 나뉘는데 첫째는 수경재배시스템을 도입한 태양열 채소온실 지원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개별 가정을 대상으로 한 채소재배 지원사업이다.

태양열 채소온실 지원사업은 수경재배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는데 수경재배는 일반 흙을 이용한 재배보다 수확량이 월등하다. 태양열 온실은 겨울의 혹한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온실 한쪽 면에 낮 동안의 태양열을 흡수하는 콘크리트 수조를 설치하여 외부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더라도 내부는 0도 이상을 유지하도록 했다.

봉수동과 동암동의 하우스 단지는 각각 60m×9m 크기의 온실 14개동, 그리고 그보다 조금 작은 아치형 온실 1개동 등 15개동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재배한 채소는 인근 42개 탁아소와 유치원에 공급되며 일부는 시장 판매를 통해 농민들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


북한 가정에 보급된 채소재배시설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개별 가정에 대한 채소재배 지원사업은 뉴질랜드 매시(Massey) 대학과 공동으로 개발한 채소재배 시설을 각 가정에 지원하고 재배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재배시설은 3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첫 번째 유형은 10m×5m 크기의 온실타입, 두 번째는 30m×1m의 터널타입, 그리고 4m×1m 크기의 세 번째 유형은 토마토 재배용 챔버이다.

이 재배시설들은 최소한의 토양과 물을 사용하는 구조로 발코니나 뒷마당, 옥상 등 어느 곳에나 설치할 수 있다. 여기서 생산된 야채는 한 가족이 소비하기에 충분할 뿐더러 일부는 시장에서 판매된다. 봉수동과 동암동에 각각 105세대, 총 210개의 시설이 공급되었다.

GAA는 각 하우스 단지의 1개동에 양어장을 설치하여 물고기 배설물을 비료로 이용하는 재순환농법(Aquaponics)도 시범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공할 경우 비료에 대한 부담을 더는 것은 물론, 주민들에게 단백질까지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농사짓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쿠바 당국은 도시농업을 식량난 해결을 위한 주요 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도시 곳곳에 유기질비료 생산시설과 각종 관련 연구소를 설치하였고, 도시농업 종사자들이 언제든지 이를 이용하고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아직 시범사업에 머물러 있는 북한의 도시농업이 그저 뒷마당에서 상추와 오이를 조금 더 거둬들이는 정도로 끝날지 아니면 도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할지는 북한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다.

더 많은 북한 주민, 도시농부로 거듭나길


“북한 도시농업 지원사업은 매우 성공적입니다. 우리 단체와 북한의 카운터파트는 내년엔 이 사업을 2~3개 도시로 확대하기로 합의했지요. 그런데 자금 확보가 문제예요.” 게르하르트 우흐마허(Gerhard Uhrmacher) GAA 북한사업담당관이 말한다.

그러나 곧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조만간 이 문제도 해결 되리라 믿어요.” 전문성과 더불어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가 14년간 대북지원사업을 이끌어 온 힘이었을까? 게르하르트의 믿음처럼 그가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도시 농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저먼애그로액션(German Agro Action, 독일명 Welthungerhilfe)
독일의 비정부기구. 196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펼치는 “기아로부터의 자유 캠페인”의 독일 실행단체로 설립되었고 이후 비영리민간단체로 독립했다. ‘기아와 빈곤이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 아래 70여 개 국가에서 농업축산, 환경, 아동/청소년, 긴급지원/복구사업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1997년 북한 지원사업을 시작했으며 현재 EU의 지원을 받는 유럽연합지원계획(EUPS) Unit 4로 평양에 상주사무소를 운영하며 지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예정 부장(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5) Ok-kyung Pak - Inter-cultural trip to Turkey

(5) Ok-kyung Pak - Inter-cultural trip to Turkey Un cadeau tombé du...



Inter-cultural trip to Turkey
Un cadeau tombé du ciel : Inter-cultural trip to Turkey (2011)
Ok-Kyung Pak 2011-08-16, Montrea
Introduction
Have you ever heard of the Intercultural Dialogue Institute (IDI) in Canada and intercultural trips to Turkey sponsored by it? No. It is not a travel agency. It is an NGO (www.interculturaldialog.ca), located in 9 cities of Canada with headquarters in Toronto. I heard about it in the spring of 2011 from a friend and I grabbed the opportunity for the trip, scheduled for July (1-11). I just completed the trip.
I know life is not fair, yet in everyone's life, some rare opportunities are presented. Knowingly or unknowingly, one has to recognize these opportunities presented to oneself, and make the best of them. My contact with IDI and the trip to Turkey is one of those opportunities, as I realize now when I am writing this essay. This contact was through a friend. You might say it was an accident, but I would say that my friend is one of many angels who have helped me throughout my life so far, since she brought me this unique opportunity for a new opening/direction, when I am starting a new phase of my life – retirement. Life has interesting twists, and there are many angels,when one cares to see them.
How could I have guessed that this trip was a preparation, mediated by a Catholic French woman, to allow a pilgrimage in an Islamic country for a Korean- Canadian Buddhist anthropologist in retirement, still looking for a spiritual Eldorado in this world? I have been preparing myself looking for a vocation to make the best use of the last segment of my life- search for a spiritual Eldorado, which is described in my short autobiography - a contribution to my mother's biography (published in Korea, 2010). Opinions are divided in different religious traditions on whether there is such a place as a spiritual Eldorado in this world. I would like to say that we have no choice but to construct one even if there is none, since we brought our children to this world .
A passage in the Bible justifies my search for Eldorado in this world as below: «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whatever you bind on earth wi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se on earth will be lost in heaven » (Matthew 16:18-19).
Apparently, this passage inspired the construction of the first church carved in the rock of Antakya that spread Christianity in Cappadocia. (Cappadocia, by Jeoffrey Larmec, 2010) (see below for more on Cappadocia)
Trip in Turkey
The most fascinating aspect of Turkey for me was that it is the land of a meeting point of the West and the East. I heard about this characteristic of Turkey, but until I landed there, I did not exactly understand what it meant. I would strongly recommend that one should visit China to understand the civiliziation of the East, and visit Turkey to understand the meeting of the Eastern and Western civilizations, which was then called by the name of the Ottoman Empire.
The glory of the Ottoman Empire has declined after so many centuries and now modern Turkey is blooming with much complexities and challenges. As Rumi , a mystic Sufi 'master' wrote at his time (13th century):
Il est bon de franchir chaque jour une étape
Comme l'eau vive qui ne stagne pas
Hier s'est enfui, l'histoire d'hier elle aussi est passée
Il convient aujourd'hui de conter une histoire nouvelle
(Les Quatrains de Rumi)
We visited 5 cities (Istanbul – north west; Antalya – southwest coast; Izmir – west coast; Kayseri & Konya – central Turkey) (see a map of Turkey attached, with 5 cities marked). Our group consisted of 4 people. The group was led by a charming young man, the Executive Director of IDI. His ingenuity in finding solutions to all kinds of small problems encountered during the trip as in any group travel, his spontaniety, energy, sincerity, and a total confidence in what he was doing cannot be praised enough. Nobody can do such a job without a conviction. It was delightful to be led by him.
As for the organization of the trip, there is room for some improvement. No explanation was offered why these cities were chosen for our trip, nor the schedule of the trip, until half way through our trip. Different groups seem to have visited other cities, overlapping with some we visited. However, in retrospect our itinerary made sense, since each of these cities allowed us to see and taste , within a limited time, different geographical features , different cultures, religions and civilizations that inhabited this vast land. I have been always attracted to Turkey, but most of all Istanbul, since Turkey was for me synonymous with Istanbul., an ancient, cosmopolitan city from the period when it was called Constantinople. The rest of Turkey did not mean much to me. Now I became aware of my profound ignorance of this country, the region and its history. Since I came back from the trip, I
have been complementing my knowledge on Turkey, by reading history books, novels and tourism books. It is simply fascinating.
Some of the places and historical sites we visited
We arrived in Istanbul on Friday night. Immediately early next morning we flew to Antalay - a southern coastal city.
Antalay:
This is a resort area for the Turks as well as people from the region. This visit allowed us to start our trip in a real holiday mood. We spent the entire weekend there. The hotel was very comfortable, the sea beautiful. Our charming guide - executive director of the IDI contacted his uncle who has a small family run tourist business on the beach. Luckily, he did not have any reservation of his boat by tourists, and offered us a motor boat excursion along the coast. It was an imemorable afternoon. The boat was equipped with a mongolfare, and when the motor speeded up, the mongolfare attached to the boat flew high in the blue sky. Some of us adventured to fly on it. We even swam for 10 minutes in the beautiful, immense blue Meditarenean sea. We were small dots in the immense space of the blue sea simmlessly connected by the blue sky.
Ephesus in the City of Izmir:
From Antaly we flew to Izmir, which is in the western part of Anatolia, to see the
ruins of Ephesus from Roman era. Ephesus is near the historical town of Seljuk, between the cities of Aydin and Izmir.
As one enters the ruins, it is not difficult to imagine the historical past of the city- that of the Roman era, when Ephesus was the capital of five hundred Anatolian towns. This was after the period in which Homer wrote his immortal works, but coincides with the time in which St. John lived and died. Two important figures in Christian religion – St. Paul and St. John lived in Ephesus, attracting the interest of Christians all over the world even now.
The glory of Ephesus at its height is described by Naci Keskin (Ephesus, 2011) as below:
« At that time you could see the stairs of the colossal theatre from the sea far away, and the huge gleaming columns of the temple of Artemis, which once used to blind people with their beauty. About 250,000 people used to live in this famous city where the most skilful artisans and rich merchants gathered together. ....Sportmen, musicians and theatre players used to attract people from the surrounding area, and apectators from as far away as Jerusalem and Athens as well....The ruins of Ephesus are magnificent. Though hundreds of years have passed, and in spite of the ravages of time, they have survived to the present day, and they still preserve their grace and elegance. (p.3).
The Cappadocia region-another planet:
From Izmir, we flew to Kayseri in central Turkey. Göreme is situated between the cities of Kayseri and Nevsehir. This area is the Cappadocia region. The alttitude of Nevsehir is between 500-1000m, and most of the geologial and historical wonders that we saw in this area, such as unique valleys, elongated mushroom shape fairy chimneys, rock dwelling churches, underground cities, and open air museums are near this city. The region looks more as though it belongs to a different planet other than Earth.
Jeffrey Lamec's description of the pre-historic state of this region helps to evoke the geological formation and scenery of Kayseri and its surroundings with volcanic layers, rock canyons and underground cities, which are completely different from other cities we saw earlier. Lamec writes (Cappadoccia, 2010: 3-5):
« Millions of years ago, during the 3rd geological period, Mid-Anatolian Plateau was an inner sea surrounded by forests and plains, which were not higher than 500 meters. In the south, between Lycaonai (northeast of Konya) and the Taurus
Mountains range, a series of volcanoes appeared as a result of the movement of the Taurus Mountains. The continuous eruptions of the mountains in this area have structured Mid-Anatolian Plateau with masses of lava and ash that are 200 meters in height. In the 4th geological era (two million years ago), the earth went through climatic changes that included four different ice ages. It is believed that the long- lasting presence of glaciers from the ice age in Asia Minor is the reason why civilizations did not inhabit this region. With the end of the ice ages climate
became milder and in Cappadocia, especially around Konya and Aksaray, several
lakes appeared. Ash, sandstone, clay, basalt and ignimbrite, soft tufa and other
minerals that make up the volcanic layers eroded by natural forces and formed the unique rock formations that are only seen in Cappadocia. Soft tufa stones and
layers were affected differently by the erosion process. .....
During the times of the Roman Empire, the people of Cappadocia chiseled rocks in order to create hiding places from the Roman tax collectors. During the reign of Emperor Septimus Severus (born in Kayseri today) economical revival occurred. Christians of Anatolia built monasteries and churches out of sight in Ihlara and
Gôreme in 4th Century by making use of the soft tufa rocks. During this time,
Aksaray and Kayseri turned into important religious centers. »
Göreme valley and the rock churches, now called Open Air Museum of Göreme,
was one of the significant centres in early Byzantine times. Towards the 11th century, a total aristocratic period began in church art. The paintings in this period, done by accompolished artists working for the emperor, are very different from the early Byzantine era. The fresco paintings on walls and ceilings of rock churches we saw were most interesting. We visited one of these rock churches – St. Barbara Church.
basalt
Underground cities of Cappadocia
These underground cities were most fascinating. Some places were so low and narrow that one has to bend 90 degrees to pass through the tunnel. It reminded me of tunnels I saw in Vietnam, built by the Vietcongs near Saigon, during the Vietnam war in order to resist the American soldiers.
The Cappadocia region was occupied by different cultures in the course of its history. People who normally dwell in houses would move into these underground caves with their domestic animals for security purposes. There are apparently a total of 200 dwellings that are known in the area. Common characteristics of the underground cities are long stables on the first floor, where all the animals were kept; long carved chimneys for air conditioning and communication between dwellings; dining room, bedrooms, kitchen with stone stoves, chapels and wineries; as well as toilets and septic wells. We visited one of these underground cities.
The Silk Road and carawanserais:
We drove from Kayseri towards Konya on what used to be called the 'Silk Road'. On the way we stopped at a carasanserai and attended a Whirling Dervish Dance Ceremony. It was most fascinating to see an elaborately decorated, imposing stone building in the middle of nowhere.
All of us heard and read about the silk road in our history book. The transportation of silk and spice, as well as other products of the east, in caravans to the west created the famous silk Road trade ways that extended from China to Europe. The Silk Road crossed Anatolia from one side to the other. It not only provided a means to transport commercial goods and people, but also the opportunity for the exchange of culture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During the Seljuks' rule, there were three key elements of trade: roads, caravans, and caravanserais. They symbolyzed the guarantee of the state over the commercial transportation with their castle-like appearances, decorated with rich stone ornaments and well- planned interior designs. There were rooms around the courtyard that were used as bedrooms, kitchens, baths, storage rooms, and toilets. Aside from securing the transporation of goods and travelers, they also created a channel of communication between cultures. Research shows that there were nearly 200 caravanserais in Anatolia. They were built 30-40 km from each other. We visited one of these caravanserais – Saruhan and attended a solumn Semâ ceremony.
The Semâ (whirlying Dervish dance) ceremony at Saruhan
I have always dreamed of seeing « whirling dervish dance », of which I have read about in Rumi's writing. This dream came along. It was a solemn, elegant ceremony, full of symboilism and meaning. It is said that « The Semâ ceremony
represents a mystical journey of man's spiritual ascent through love, deserts his ego, finds the truth and arrives to the ' perfect' ». In addition to the whirlying dance we saw, our visit to Saruhan presented to me another quite unexpected reflection. When we bought our tickets for the dance ceremony, we were given a leaflet. On it were a brief explanation of the dance, photos of the Dervish dancers and Rumi's seven counsels, which are:
1.In generosity and helping others, be like a river.... 2.In compassion and grace, be like the sun...
3.In concealing others' faults, be like night....
4.In anger and fury, be like the dead....
5.In modesty and humility, be like the earth... 6.In tolerance, be like a sea...
7.Either exist as you are or be as you look.
Every member of our group was very much moved by Rumi's seven counsels. Particularly the first one – be like a river in generosity and helping others- penetrated into my heart. When I read the word « river », instantly my pen name 'cloud-river' came to my mind, and I felt like I was struck by Rumi. I gave myself this name as an orientation of my life -detachment from all and everything, like cloud and river which flows without attachment. I am realizing now that the word 'river' in my name symbolizing 'detachment' reflects my profound disappointment with humanity. By detaching myself from the weakness and ugliness of humanity, I would have less disappointment and judgement of the others. On the other hand, the word 'river' in Rumi's counsel symbolizes abundance of generosity and giving to the others. The focus here is 'the other', while the river in my name focuses on myself – my disappointment with the others. The largeness of Rumi's spirit filled my heart.
Konya
Mawlana Museum (where Rumi's tomb is located) was the rose garden of the Seljuk Palace in Konya. The rose garden was still there. Apparently it was presented as a gift to Rumi's father by the Seljuk Sultan. Rumi's father was a famous scholar from what is now known as Afghanistan. He migrated to Kony escaping the invasion of Mongols in Afghanistan. Rumi's father, Rumi himself (died in 1273) and his son are buried there. The museum, displaying religious relics, was very beautiful. I was very much moved, realizing that here finally I meet Rumi, quite unexpectedly.
Istanbul
Finally we came back to Istanbul, flying from Konya. It was the last stage of our trip and we spent four days there. We visited Saint Sofia Basilique, one of the majestic remains of the Constantinople period (now called Istanbul), which was the capital of the oriental Roman Empire for almost 1000 years. Constantinople then was the richest city of Christianity. We also visited the famous blue mosque, Dolmabahçe Palace, Topkapi Palace, some of the 9 hills of the city, Spice Bazar, and crossed the famous Bosphorus by a ferry.
The time immemorial Spice Bazar was more fascinating for me than anything else, since this was and still is one of the places, where common people (not sultans) conducted their trade and wove their daily life. We visited one of the spice stores, whose owner is a member of the IDI. We were invited to come up to the upper floor of the store. This upper floor of a tiny store had a dome like ceiling painted with flowers and plants, which looked much more spacious than the actual space with its dome. With a much cooler temperature than the street, this space was like an oasis, offering a refuge from the noise and business of downstairs. After having visited majestic palaces and mosques displaying an overwhelming wealth and power of the rulers of different periods, I was relived to see and admired the ingenuity and simple aesthetics of the common people, not so wealthy as sultans. It was a breath of fresh air.
I will always remember the most delicious Turkish coffee and 'turkish delights' along with dried apricots covered with nuts offered to us at this oasis. Our mouth and eyes were filled with pleasure. Each of us was also offered with a gift of turkish delights, which delighted our hearts.
People we met and institutions visited:
We also visited a number of institutions in Istanbul, such as a TV station, a university, several high schools, an association of journalists, and a hospital. We were also invited by families in their houses for supper. These meetings at individual homes and institutions allowed us to have a glimpse of the family life in Turkey, their very strong family oriented values, their social ethos and the outlook to life of the professionals at their workplaces. Every single person we met was very clear about their life objectives and had a strong commitment to them. Their objective in life , we were told, is to bring a peace to the world and live together with others of different cultures, faiths, ethnic origins and nationalities. No wonder. It is a difficult but a noble objective in this country and region, which cradled so many different civilizations and conflicts\conquests. We were meeting members or volunteers of the IDI. These objectives are also those of IDI.
In addition to the organized meetings with people, I also met people on the street. What is most fascinating was the warm current overflowing from people on the street, when our eyes met. Some women and young girls even asked my permission to take photos of myself and also together with them. This never
happened to me (not even in my country of origin - Korea), with one exception (in Chili with an indigenous man who looked like a Korean), in all those numerous countries where I visited. I did not need Rumi's poem (see below) to feel that I came from the same origin as they.
Le coeur est un jardin secret ou se cachent des arbres
Il manifeste cent formes, mais il n'a qu'une seule forme C'est un océan immense sans limites et sans rives
Cent vagues s'y brisent, les vagues de chaque âme.
(Les Quatrins de Rumi)
Place of Gifts and food-offering in Turkey
Whenever we visited – homes or organizations- we were always offered gifts, after a meal or coffee\tea. From this pattern, we gradually learned that gifts and offers of food are very important in Turkey, and an essential part of social life. We were told to bring small gifts when we left Canada, but we were embarassed sometimes to offer such small gifts. Gifts and offers of food (meal) are an essential part of social life in Asia in general, but Turkish gifts and meals were overwhelming. We were hoping to receive a suitecase to put all of the gifts we received, but it did not happen.
Rumi's Teaching & followers: F. Gullen & IDI
Gradually, I realized that all these families we met and institutions visited are supporters\partners and volunteers of the contemporary Gullen Movement in Turkey and \or volunteers of the IDI in Canada. The core principle of the Gullen Movement is « respect for humankind ». Gullen wrote:
« Loving and respecting humanity merely because they are human is an expression of respect for the Almighty Creator. The other side of the coin, loving and showing respect to only those who think the same as one thinks, is nothing but egotism and selfworship. More than this, it is irreverent and self-conceited
behavior to hurt the feelings of others who may not think exactly as we think, but who still are on the same main road with us in their toughts and visions (more on Gullen, see James C. Harrington, Wrestling with Free Speech, Religious Freedom, and Democracy in Turkey: The Political Trials and Times of Fethullah Güllen, 2011
As I understand it, Gullen's vision arises from teachings of Jalaludin Rumi, who taught and spread a message of love transcening the boundaries of time and space. In Rumi's own words, he expressed the one origin of the humanity in his poems as below:
Je viens de cette âme qui est à l'origine de toutes les âmes
Je suis de cette ville qui est la ville de ceux qui sont sans ville
Le chemin de cette ville n'a pas de fin, Va, perds tout ce que tu as
C'est cela qui est le tout. (Les Quatrins de Rumi)
The relevance of Rumi's teaching to everybody (even non-Muslims) is pointed out by a contemporary US educated psychocologist as follows (Michaela M. Ozelsel, Rumi resonates through the Ages, pp.34-42, in Rumi & his Sufi path of love, ed. By M. Fatih Çitlak – Hüseyin Bingül, 2011):
« ...there will always be things in life that we cannot alter no matter how hard we try.... If we are Muslims, then we know: If the ego urges us to complain, do not complain; rather give thanks instead. »
But how can we convey this insight to non-Muslims? According to Ozelsel, Rumi guides the way as follows:
« This is the way of dervishes. When the mind wants to complain, do the opposite
– give thanks. Exaggerate the matter to such a degree that you find within yourself a love of what repels you. Pretending thankfulness is a way of seeking the love of God »
Epilogue:
All I saw and heard during our trip in Turkey are very familiar words and notions that I have been struggling with in my life. I never expected to meet Rumi in Turkey, since my limited knowledge of Rumi was that he was born in what is called now Afghanistan.My 10 day trip was an intense lesson on history of Turkey and the region, a re-encounter with Rumi in a completely unexpected way in a modern setting of Turkey and a re-capitulation of my life outlook/philosophy, and an opening of a new direction for the future. It turns out that my trip to Turkey was a pilgrimage to Rumi's land. I am so filled with awe and blessings I received from people I met and places I visited during my trip that I did not have to keep the carpet I bought, although I had long hoped to find such a carpet. I hope my daughter who received it as a gift receives the same blessing through the carpet coming from Turkey. END

[가슴의 대화 80회] 사랑으로 돌아오는 시간여행 (삶의예술학교 박유진 님)

[가슴의 대화] 2회 2부 - 전생연구소 박진여님 편 Heart to heart 2nd story session2)

[가슴의 대화] 2회 1부 - 전생연구소 박진여 님 편 Heart to heart 2nd story session1)

2019/03/07

[기의 세계] 39. 좌망(坐忘)과 심제(心齊)법



[기의 세계] 39. 좌망(坐忘)과 심제(心齊)법

[기의 세계] 39. 좌망(坐忘)과 심제(心齊)법
[중앙일보] 입력 1999.12.01

 


장자(莊子)의 숨쉬기를 말할 땐 으레 종식법(踵息法)을 들먹인다. 그러나 '장자' 를 읽어보면 종식법 외에 두 가지의 조식법(調息法)이 쓰여있다. 좌망(坐忘)법과 심제(心齊)법이 그것으로 이는 종식법을 능가하는 최상승(最上乘)의 공법에 속한다고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다.



한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장자는 좌망법과 심제법을 말하면서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 안회(顔回)의 대화를 예증(例證)으로 삼고 있다. 이 대화는 실제로 있었다기 보다 장자의 상상력으로 실화(實話)처럼 꾸민 것으로 말해진다.



어느날 안회가 공자에게 "스승님 드디어 좌망이 되었습니다" 라고 했다. 공자는 "좌망이 무엇인데?" 라고 반문했다. 안회가 대답했다. "자기의 지체(肢體)를 잊고, 생각을 멈추고, 현실적인 존재감이 없어지고 도(道)에 융합하여 일체(一體)가 된 것, 그것이 바로 좌망입니다. "

이런 안회의 대답은 좌공(坐功)의 수행방법과 경지를 말해 준다. 몸을 바르게 하고 조용히 앉아 숨을 고르는 것이 좌공의 기본이다. 이때 잡념을 완전히 없애 이른바 입정(入靜)상태가 되지 않고는 좌망의 경지를 이를 수 없다.



심제법의 설명은 안회가 공자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안회가 "심제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리고 청식법(聽息法)을 행하여 숨소리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나아가서 마음으로도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야 한다. 귀로도 듣지않고 마음으로도 듣지않도록 생각을 멈추면 허(虛)의 상태가 된다. 기라는 것은 허의 상태에서만 진면모를 알 수 있다. 도(道)는 허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바로 그 허가 심제이니라. "

이런 공자의 대답으로 미루어 심제법은 좌망법보다 한 단계 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좌망이 아니고서는 심제가 이루어 질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심제의 수행방법은 세 단계다. 첫 단계는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가다듬어 정식(靜息)으로 들어가는 것. 둘째는 청식법으로 숨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것인데 이 단계에선 반드시 일정기간(1개월~3개월)의 수련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진전을 이루면 마음 아닌 기로 숨소리를 듣는 셋째 단계의 수행으로 들어 간다. 기로 듣는다는 것은 청각과 생각이 멈추는 느낌에 휩싸이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다.



이규행 <언론인.현묘학회장>

심제(心齋)

테두리없는 거울 :: 심제(心齋)


심제(心齋)

도는 찾지 않으면 곧곧에 없는 곳이 없고, 찾으면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사물의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만물의 이치를 분석하여, 시비와 선악의 분별을 일삼으며, 원래 온전할 덕을 쪼개고 살필 뿐, 회광반조(回光返照), 즉 본래의 그 자리를 살필 줄을 모른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분쟁의 원인은, 자신의 본래 면목은 살필 줄 모르고 대상만을 계속 시비분별하는 우리의 중생심 때문이다.
남의 잘못을 보는 것이 스스로의 허물이라고 육조단경에서 밝히고 있듯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스스로의 잘못이다. 어둠을 하나하나 긁어내려는 것이 이미 어둠이고 미혹이다. 그냥 스스로의 빛을 밝히기만 하면 될 뿐, 어둠은 건드릴 필요가 없다. 즉 스스로의 행이 밝기만 하면 눈이 있는 자들의 무명(無明)은 걷히게 되어 있다. 물론 저도 자유로울 수는없지만, 마음공부를 꽤 했다는 분들도 곧잘 남의 언행과 태도에 분별심을 내며 끌려 다닌다.

삶과 법이 둘이 아니듯이, 마음공부는 삶속에서 항상 마주치는 선악과 시비를 경계해야 하지않겠는가?
부처와 마구니가 다른 것은 나와 별개로 부처와 마구니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처와 마구니를 만들어서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이다. 비운다는 말과 비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수용하라는 말도 다르게 느껴지는 까닭은 내가 있고, 나의 견해가 있기에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흰색이나 검은 색이나 모습에 끌려 다니지 않으면 흰색이나 검은 색은 다를 바가 없다. 비록 체험을 했다고 해도 있다는 말이나 없다는 말에 끌려 다니는 이들은 스스로의 견해가 사라진 있음과 없음을 초월한 자리를 아직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자리는 지키고 머무르는 자리가없는 것이며, 머무름이 없다는 생각마저 사라진 자리이니 대승에서는 불이중도라고 한다.

 안회가 스승인 공자에게 묻기를, “제가 심제(心齋)를 실천하기 전에는 안회라는 제 자신이 실제처럼 존재하지만, 심제를 실천하여 제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 이것을 비움이라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는 대목이 장자에 나온다. 심제는 결국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 스스를 비워 도에 합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역시 장자에 나오는 또 다른 표현인 좌망(좌忘),전일(專一), 수일(守一)과 다르지 않다.

또한 심제를 실천하니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반야심경에 이르기를, 반야바라밀다를 실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모든 고통을 벗어난다는 구절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심제라는 말은 반야심경의 반야바라밀다나, 대승의 불이중도와  다르지 않다. 마음공부의 비결을 알고자 하는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도는 빈 곳으로 모이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생각을 경계하고 마음을 비우시라! 도덕경에서는 손지우손(損之又損)하라고 하고 있지, 그것이 쉽지 않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3/7/2019 테두리없는 거울 :: 심제(心齋) https://lifendeath.tistory.com/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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