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가진 형은 제게 문화인류학 이해시켜준 스승이죠"
구은서2025. 7. 29.
<야생의 실종> 저자 이노세 고헤이 인터뷰

"이 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관계에 대한 책일 뿐 아니라 모든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생의 실종> 저자 이노세 고헤이 교수는 지난 28일 서울 북촌 김영사 사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해와 소통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5월 한국에 책이 출간된 이후 처음 방한한 이노세 교수는 이날 북토크 행사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이노세 교수는 메이지가쿠인대 교양교육센터에서 문화인류학과 자원봉사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9년부터 장애인들이 지역과 호흡하며 농사를 짓는 '미누마 논 복지농원' 활동에 참여해왔다.
그의 책 <야생의 실종>은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노세 교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장애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말 못하는 어린아이를 대하는 일, 부모님이나 배우자, 직장동료와의 관계를 되돌아본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자는 지적 장애와 자폐증이 있는 형 료타의 '싯소'를 겪으며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경계와 그를 뛰어넘는 공존에 대해 고찰한다. '싯소'는 일본어에서 '실종(失踪)' 또는 '질주(疾走)'를 의미하는 발음으로, 저자는 두 의미를 모두 담아 히라가나로 표기했다. 형은 말 없이 집을 나가버려 경찰이나 이웃, 가족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오곤 한다. 이노세 교수는 형의 '싯소'를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선을 뛰어넘는 질주로 이해한다.
료타는 현재 장애인 시설이 아닌 셰어하우스에서 방문 도우미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노세 교수는 "일본에서도 장애인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 집에서 지내거나 시설에 갇혀 생활하는 게 보편적"이라며 "이럴 경우 사회와의 관계가 막혀버릴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료타가 사회와 연결되는 시도가 언제나 낭만적인 건 아니다. 형이 '싯소' 후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그의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책은 장애 문제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키는 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는 일이야말로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책에서 언급하는 쓰쿠이야마유리엔 사건이 이를 보여준다. 이 사건은 2016년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던 20대 남성이 입소자 19명을 흉기로 살해하고 26명에게 중상을 입힌 장애인 혐오범죄다. 범인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와 연결되려는 노력은 료타와 가족들에게 '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이노세 교수의 부모는 중학교 졸업여행 비디오 속 료타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고 양호학교(일본의 특수학교) 대신에 같은 지역의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한다. 살고 있는 지역의 정시제 고등학교(야간학교)에 진학하는 데에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노세 교수는 "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양호학교 의무제도라는 게 생겼다"며 "학교에 갈 수 없던 장애아동들을 위한 양호학교를 만들자고 시작됐는데, 일반학교에 다니던 장애아도 멀리 떨어진 양호학교로 옮기도록 하면서 반대운동이 일었다"고 설명했다. "젊어서 학생운동을 했던 저희 아버지는 '료타가 작은 몸으로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모습은 마치 내가 시위를 진압하는 기동대랑 맞서 싸우던 모습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책은 형의 발자취를 좇으며 문화인류학의 다양한 주제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문화인류학자 주앙 비엘이 1997년 브라질 정신장애인 격리시설을 조사한 일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등이 언급된다. 이노세 교수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형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게 인류학 이론을 이해시켜준 선생님이었다"며 "인류학 이론이 깊어지면서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가까운 존재인 형을 통해 그제야 이해했다"고 말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그의 최근 연구 주제는 '안피나무(산닥나무)'다. 일본 전통종이 화지의 재료로 쓰이는 이 나무는 인위적 재배가 불가능해 자연에서 채집해야 한다. 이노세 교수는 "고치현에서 안피나무 재배를 시도 중인 노인들 중에는 어려서 만주에 끌려갔던 사람 등 일본 정부가 역사에 남기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한 분들이 있다"며 "안피나무로 만든 종이는 3000년 간다고 얘기하는데, 그분들의 기억도 안피나무로 연결해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연결'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연결'은 <야생의 실종>의 주제이자 성취다. 책이 나온 뒤 NHK에서 이노세 교수 가족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는데, 이 방송을 본 어느 교사가 '차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한 것. 이 소식을 메일로 전해준 건 교사와 교류하던 특수학교의 학부모로,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노세 교수는 "우연이 겹쳐 비장애인 아이들이 장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책을 쓸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여러 독자와 연결될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이노세 교수는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형과 함께 쓴 이 이야기가 당신이 살아온 생생한 경험과 한순간에 겹치기를 바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
야생의 실종 - 세계와 세계를 잇는 인류학의 질주이노세 고헤이 (지은이),박동섭 (옮긴이)김영사2025-05-14






















미리보기
책소개
코로나19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던 2021년 3월의 봄날 새벽, 자폐증과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던 형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달빛 아래 활짝 핀 벚꽃 사이로 질주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경찰은 그것을 ‘실종’이라 불렀다.
나는 형이 집을 나간 이유를 추측해보지만, 그 추측은 번번이 어긋나버린다. 내가 형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간신히 깨닫는 것은, 형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행위는 당연하게도 늘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 나는 결코 형을 이해할 수도 대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럼에도 이 세상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형과 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감지한 다른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형은 ‘실종’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절된 세계를 가로지르는 ‘질주’였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실종 혹은 질주 전에
1. 침묵과 목소리
싸우지 않는 것, ‘싯소’하는 것
3월 하순 오전 2시 반에 달려나가다
현대의 야만인, 카타리나의 마음가짐
묵도와 외침1
묵도와 외침2
2. 감귤의 달림
어긋남과 절충
몇몇 죽음과 함께
몇몇 죽음과
대면과 원격
여름귤의 싯소
증여의 교훈
3. 세계를 착란하고 세계를 구축하기
자원봉사의 시작
보름달과 블루임펄스 혹은 우리의 축제에 관하여
노선도의 착란1
노선도의 착란2
트레인 트레인
4. 성급한 포옹
아버지와 염소 아저씨
잠자는 아버지
전도転倒의 다음
실종/질주
선회와 싯소
제비 신화
5. 봄과 아수라
이야기 끝에
맺는 말: 토끼처럼 넓은 초원을
옮긴이의 말
미주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P. 26 “익명의 ‘무책임한 인간’이 아니라 ‘고유명을 가진 자기만의 죽음을 맞이하는 한 인간 존재’로서 그 사람을 감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단죄한 그 사람과 나만의 죽음/대체 불가능한 죽음에 직면한 사람끼리 겨우 연결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P. 110 “2020년 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대학 캠퍼스에 학생들이 오지 못하게 되면서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온라인 수업’과의 대비로 사용하기 시작한 단어가 ‘대면 수업’이라는 말이다. 그 말에 나는 계속 위화감이 든다.”
P. 137 “야마나시 씨의 여름귤 배달 투어도 단순히 여름귤만이 배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음식 대접이 있고 연회가 있으며 옛날이야기와 세상 이야기가 있다. 야마나시 씨와 여름귤의 내방에 맞추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받은 많은 여름귤은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에게 다시 건네진다. (…) 여름귤을 많은 사람이 먹음으로써 여름귤을 통해, 여름귤을 키우는 노동도, 여름귤이 자라는 산도 이어진다.” 접기

P. 187 “지하철의 규칙성은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그에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그것에 따름으로써 쾌적한 이동을 할 수 있고, 그 쾌적한 이동을 통해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낸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압력이나 비난에 노출되는 위험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형의 여행은 상식적인 이동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형의 여행은 부정적인 힘에 노출되는 것과 종이 한 장 차이이기도 하다.” 접기

P. 244 “사가미댐 건설 순직자 추도회에서 댐 건설로 희생된 희생자와 쓰쿠이야마유리엔에서 살상당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묵도의 침묵 속에서, 형은 “아—”라고 외쳤다.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려고 하던 나는, 때로는 외칠 수 있는데, 소리치지 않는 자신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나는 형이 없어진 것을 실종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형의 행선지를 알았을 때, 질주할 수 있는데도, 질주하지 않는 나 자신이 질책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접기

더보기
추천글
“‘서로를 알면 알수록’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강력한 믿음은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타자를 이해하는 것’에 관한 뿌리 깊은 무지를 흔들고 일깨워준다.”
- 박동섭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마주한다. 말로는 닿을 수 없는 형의 흔들리는 세계, 그곳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 마츠무라 케이이치로 (문화인류학자)

“감각적으로 사고하며 질주하는 그와 내면의 야생에 마취된 우리. 그와 우리 사이에 있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며 서로 중첩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 테라오 사호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2025년 5월 16일자 '책과 생각'
문화일보

- 문화일보 2025년 5월 16일자 '이 책'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25년 5월 17일자 '한줄읽기'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5년 5월 15일자 '책과 삶'
저자 및 역자소개
이노세 고헤이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오사카대학교 인간과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 과정 및 사회인류학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도쿄도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메이지가쿠인대학교 교양교육센터의 교수이자 같은 대학의 자원봉사센터를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화인류학, 자원봉사학 등이며, 농업, 모닥불 피우기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9년부터 장애인 간 상호 교류, 지역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미누마 논 복지농원 활동에 참여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장애, 복지, 자원봉사, 환경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을과 개발》, 《분해자들》, 《자원봉사가 뭐야?》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야생의 실종> … 총 2종 (모두보기)
박동섭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독립연구자. 사상가와 철학자의 언어를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치다 다쓰루 연구자를 자처하며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과 『우치다 다쓰루』를 썼다. 이외 『심리학의 저편으로』 『성숙, 레비나스와의 시간』 『동사로 살다』 『레프 비고츠키』 등의 저서를 쓰고, 『무지의 즐거움』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단단한 삶』 『야생의 실종』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작 : <심리학의 저편으로>,<성숙, 레비나스와의 시간>,<[큰글자책] 성숙, 레비나스와의 시간> … 총 84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김영사
도서 모두보기
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다른 우주의 문법>,<메리 제인의 모험>,<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등 총 1,804종
대표분야 : 요리만화 1위 (브랜드 지수 380,651점), 사회/역사/철학 1위 (브랜드 지수 787,282점), 과학 2위 (브랜드 지수 897,49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장애와 소통을 넘어서 외부의 타자가 아니라
내면의 타자를 대면하는 사유와 깨달음의 기록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인 이노세 고헤이는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 자폐와 지적 장애를 가진 형을 쫓으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향한 질주임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 경험을 ‘싯소しっそう’, 즉 질주이자 실종이라 명명한다(일본어에서 실종疾走과 질주失踪는 발음이 같은데 이를 히라가나로 표기한 것).
어린 시절, 저자는 형이 ‘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폐와 지적 장애라는 진단이 붙고, 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특수학교로 보내야 하는 제약이 생긴다. 형은 ‘보통의 형’이 아닌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바뀌며, 저자와 형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절단선이 생긴다. 세상이 형을 장애인이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저자는 그것이 세상이 타자를 다루는 방식의 단면임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사회와 규범이 만들어낸 분리의 선을 인식하면서부터 저자는 형을 주제로 장애인류학 연구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문적 시선조차 형과 자신 사이를 가르는 절단선을 지우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문화인류학의 ‘거리두기’로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형이라는 타자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저자는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는 대신 실종된 형을 뒤쫓는 여정을 그대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야생의 실종》은 인류학에서 상정하는 ‘외부의 타자’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 경험과 사유의 기록이다. 학문적 거리두기나 객관적 분석 대신 저자는 동생으로서 형을 쫓으면서 형과 형이 살아가는 세계를 경험하고 사유한다.
이성과 구조에서 경험과 감각으로,
세계를 가로지르는 야생과의 동행
인류학의 고전 《야생의 사고》에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원시부족에게도 서구문명과 동등한 체계화된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야생의 실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노세 고헤이는 야생의 ‘구조’가 아닌, 개별적 존재의 고유한 진동을 사유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형의 질주와 외침, 묵언들은 분석 가능한 ‘구조’가 아니라, 해석을 거부하는 몸의 ‘신호’이자 감각이 된다. 구조가 아닌 개인의 경험, 분류가 아닌 접촉, 해석이 아닌 동행을 통해 형이 살아가는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종국적으로 우리가 ‘타자’라고 부르는 존재와 ‘이해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책에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 장애인 복지시설에서의 집단 살상 사건까지, 일본 사회를 뒤흔든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세계의 공고한 구조를 상징하는 이 사건들이 형의 ‘싯소’와 맞물려 저자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비로소 저자는 그동안 몰랐던 사회가 만들어놓은 경계선들을 발견하게 된다. 형이 마스크 없이 거리로 뛰쳐나가는 ‘실종’은 사회에서는 한 장애인의 방역수칙 위반 문제에 불과하지만, ‘질주’로 인식하는 순간 그 행동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과 통제의 체제를 뒤흔드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책은 세 개의 선을 따라 전개된다. 첫 번째는 형의 실종과 질주라는 ‘현실의 선’, 두 번째는 그것을 따라가며 사유하는 저자의 ‘인식의 선’, 세 번째는 그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사회와 국가가 만들어내는 ‘구조의 선’이다. 저자는 이 선들이 만나는 접점을 따라가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일상 속 선들과 세계의 단절을 발견하고, 단절된 세계들을 다시 잇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사유는 장애를 넘어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늙음으로 확장된다. 노쇠는 장애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타자성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신축 단지였던 본가가 이제는 개보수가 절실한 낡은 구축이 되어버리듯, 아버지는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고, 낯설어지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해지면서 점점 타자가 된다. 저자는 형과 아버지의 동거를 통해 전통적인 가족의 부활을 기대해 보지만 그런 기대조차도 형과 아버지를 타자화시킨 자신의 헛된 바람이었음을 깨닫는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이해를 통해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설명을 통해, 공감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타자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이 깃들어 있다. 《야생의 실종》은 그 믿음을 단호하게 깨버린다. 이해했다는 착각,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은 관계의 전제가 아니라,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행착오 끝에, 형을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 고유한 질서, 감각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공존은 완전한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불완전한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다. 저자는 끝내 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폐인 형과 문화인류학자 동생이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공존할 수 있다. 마침내 ‘싯소’한 형을 발견하고 함께 돌아오는 저자의 여정처럼.
단절된 시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야생의 실종》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연결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닿는 곳에서 서로의 세계는 다시 연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