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 실험·구원에 대한 탐구… 능동적 독서 필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 세계
노승영 번역가
입력 2025.10.1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EPA 연합뉴스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헝가리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법학과 헝가리어 문학을 전공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세에 낙농장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쓴 첫 소설 ‘사탄탱고’로 명성을 얻었다.
1993년 ‘저항의 멜랑콜리’로 독일 SWR-베스텐리스테 문학상, 2013년 ‘사탄탱고’와 2014년 ‘서왕모의 강림’으로 미국 최우수번역도서상을 2년 연속 받았고, 2015년 맨부커 국제상, 2018년 ‘세계는 계속된다’로 맨부커 국제상 최종 후보 선정, 201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으로 미국 전미도서상 번역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서는 묵시론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장 하나하나가 한 문단으로 이루어지거나 문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등의 문체 실험, 구원과 예술에 대한 치열한 탐구, 헝가리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은유적 비판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카프카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수전 손태그는 “현대 헝가리 묵시 문학의 거장으로, 고골과 멜빌에 비길 만하다”고 평했으며 W G 제발트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예지력이 지닌 보편성은 고골의 ‘죽은 혼’과 맞먹으며 현대 작품들의 소소한 관심사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까다롭고 난해한 작가로 통한다. 편안한 수동적 독서가 아니라 공들인 능동적 독서를 요한다. 언뜻 보기엔 의식의 흐름 기법 같지만, 글에서는 사건들이 합리적으로 전개된다. 그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조각조각 끊어지는 단편적 사고에서 벗어나 전체를 관통하는 긴 호흡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쩌면 현대인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을 읽어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19년 9월이었다. 앞서 번역을 맡은 사람이 포기한 책이라고 했다. 살짝 겁이 났지만 얼마나 힘든 책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책이 ‘서왕모의 강림’이다. 이미 단편적 사고에 물든 내게는 여간 힘들지 않았다. 번역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는 바람에 이후 작업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번역 대표작을 다섯 권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작품이다.
‘서왕모의 강림’을 번역하다가 알자하드 이븐 샤히브라는 작가가 실존 인물인지 궁금해 크러스너호르커이에게 이메일로 문의한 적이 있다. 그는 이븐 샤히브가 허구적 인물이라면서도 이렇게 반문했다. “하지만 대답해 보세요. 번역을 위해 왜 그 사실을 알아야 하나요?” 그의 말에 담긴 의도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두 번째 질문인 ‘작중 묘사가 일본 신사의 실제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실수인가요?’에 대한 답장을 읽고 나서였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상상력을 구사합니다. 현실과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부 우연적 사건을 의미할 뿐입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들어낸 세계는 전과 다름없이 까다롭고 난해하고, 그리고 아름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