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0

윤녕 나는 왜 본질화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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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본질화시키는가.
금년에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을 꼽으라면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콰메 아피아 앤서니의 <The Lies That Bind: Rethinking Identity>.

배럿은 인지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고, 아피아는 철학자인데 두 책 모두 심리학적 본질주의(psychological essentialism)적 생각을 비판한다.
이 사실을 알고 읽은 건 아닌데 둘 다 수잔 겔만(Susan Gelman)의 논문을 인용(“Psychological Essentialism in Children,”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8 (9, September): 404-409). 다른 종교 관련 뇌과학에서도 겔만의 본질주의 논문을 인용하더라.
겔만의 2021년 미시간대 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etTPgJHsAKw&t=1672s
겔만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이해할 때 사물이나 생명체에 숨겨진 본질(essence)이 있다고 믿는 경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 본질은 직접 관찰할 수는 없지만, 사물이 그 정체성을 가지는 이유와 특정 범주(category) 안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특성을 설명한다고. “Essentialism is the view that certain categories have an underlying reality or true nature that one cannot observe directly, but that gives an object its identity, and is responsible for other similarities that category members share.”
겔만에 따르면, 어린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본질을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1. 범주 간 구분: 어린이는 사물을 특정 범주로 나누고, 그 범주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보이지 않는 속성이 있다고 믿는다. 고양이와 개를 구분할 때, 단순히 외형적인 특징만이 아니라 "고양이로 만드는 어떤 본질"이 있다고 생각함.
2. 속성의 불변성: 어린이는 사물이나 생명체의 내재된 본질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새끼 고양이는 어른 고양이로 성장해도 여전히 고양이이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음.
3. 표면적 특성 이상의 믿음: 표면적으로 관찰되는 특징(모양, 소리 등) 외에, 숨겨진 이유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모양이 토끼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스컹크라면 "스컹크의 본질"을 가진 것으로 간주.
겔만은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어린이가 본질주의적으로 생각하는 여러 사례를 제시한다:
1. 변형 실험: 어린이에게 토끼와 스컹크를 보여준 뒤, 스컹크가 토끼처럼 보이도록 변형되었다고 설명한다. 어린이는 "겉모습이 바뀌더라도, 스컹크는 여전히 스컹크다"라고 답하며, 본질적인 정체성이 겉모습을 초월한다고 간주한다.
2. 범주와 내재적 속성: 어린이는 표면적 특성이 달라 보이는 생물이라도 같은 범주에 속하면 공통적인 본질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새의 모양과 색이 다르더라도, "모두 새다"는 본질적 공통점을 인식함.
3. 생물학적 본질주의: 어린이는 생물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호랑이가 사육장에서 자라도 "야생 동물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 사회적 범주와 본질주의: 어린이는 사회적 범주(예: 성별, 인종)에 대해서도 본질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는 "여자들은 특정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을 보일 수 있음. 이는 본질주의적 생각의 한 예이다.
본질주의적 생각은 어린 시절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이는 아이들이 세상을 효율적으로 이해하고 분류하려는 인지적 전략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이는 생물학적 대상뿐 아니라, 성별, 인종, 직업 등 사회적 범주에도 적용되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여성은 감정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다"는 믿음은 사회적 본질주의가 편견으로 작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아피아는 정체성과 문화적 본질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특정 집단(예: 인종, 민족, 성별)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을 문제 삼는다. 아피아는 이러한 본질주의가 정체성을 단일한 특징으로 단순화하여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체성을 사회적 구성물로 보며, 변화 가능하고 맥락 의존적이라고 설명한다.
배럿은 뇌와 감정에 대한 본질주의적 접근을 비판한다. 특히, 폴 에크먼(Paul Ekman)과 같은 심리학자들이 제안한 기본 감정 이론을 비판하는데, 이 이론은 인간이 보편적인 "기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은 특정한 뇌 구조나 회로에 고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을 고정되고 보편적이며 특정한 뇌 구조와 연결된 것으로 본다. 복잡한 감정 경험을 단순화하여 인간의 개별적 경험과 문화적 맥락을 배제한다.
배럿은 population thinking이라는 다윈주의적 사고방식을 감정과 뇌 연구에 적용한다. 감정은 특정 뇌 영역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다양성), 뇌의 여러 영역이 상황에 따라 협력하여 만들어낸 가변적이고 동적인 결과이다. 감정은 생물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문화적, 개인적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정 감정은 특정 뇌 부위에만 국한되지 않고, 뇌의 네트워크 활동에 의해 창발적으로 형성된다.
내 R서사에서 내가 숨을 어떻게 본질화시키는지, 그리고 그걸 지적당할 때까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겔만은 본질주의가 일반명제를 통해 전달되고 교육된다고 한다. "Generics transmit essentialism." "숨은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행위다"라는 일반명제에서 숨을 사람의 본질로 보는 생각이 나온 셈. 어린 시절 형성된 본질주의적 생각은 자동적이고 직관적으로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을 듯. 본질주의가 어느 정도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시켜 판단해 결정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성찰하는 건 얼마나 고된 과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