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소학정신을 살린다면(동지冬至)
태안미래 | tanews@naver.com
승인 2020.12.17
▲ 문필서예가 림성만
생각은 사랑이 있을 때 피어나는 하나의 정신적인 불꽃이며, 사랑의 정신으로 꽃 피울 때 참으로 불꽃이 되어 살아 나오는 것이 생각입니다. 나란 바로 정신입니다. 정신이 자라는 것이 생각이며, 정신이 깨어나고 정신이 불붙어야 합니다. 정신은 거저 깨어나지 않습니다. 가난과 고초를 겪은 뒤에 정신이 깨어납니다.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문제인거죠. 정신이 통일되어야 불이 붙습니다. 분열된 정신은 연기만 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좋은 말이 있습니다.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지난 일을 잘 간추려서 미래에 대비하라는 경구이기도 합니다. 이는 또 집안일을 다스린 연후에 남의 것을 배우라는 주문에 다름 아닙니다.
한때 세계화 운동이 번져 외국 것 배우기에 한창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정황은 다를 바 없습니다만, 그런데 우린 옛 것을 가꾸고 지키는 일에는 정성을 덜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고유의 윤리나 가치관을 깡그리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도 높습니다. 솔직히 되짚어 보면 세상사의 쓰임새만 강조되는 교육이 되다 보니 마음을 다듬고 인정을 베푸는 참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열 살 이전부터 외국어를 외우면서도 실질적 학문의 기초가 되는 소학「小學」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직설적으로 현실을 말하면 지식은 노옹이면서도 지성은 어린애 수준인 학사들이 많은 것은 이런 교육의 파행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자기밖에 모르고 물질만이 숭앙 받는 사회 풍조가 만연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물론 외국어를 배우지 말고 한문을 배우자는 케케묵은 우격다짐이 아닙니다. 세계화에 역행이기도 하구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윤리나 예의범절에는 동서고금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고유의 정신을 먼저 배우자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오랜 세월 우리의 사표가 되었던 선현들의 가르침을 고전으로부터 얻자는 말입니다.
2002년으로 기억되는데, 어느 대학에서 「명심보감」을 강좌로 채택했다 해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학문 정신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입니다. 그런데 「명심보감」은 「소학」을 배우기 전에 어린아이들이 읽고 공부하는 아주 초보적 단계의 학습서로 명색이 대학생들이 대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감이 있습니다. 옛적에는 8세가 되면 읽었던 「소학」을 대학에서 배운다는 것도 어찌 보면 우스울 일인데, 그 보다 수준이 낮은 「명심보감」을 ‘보감’ 으로 받들어야 하는 우리 교육의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옛것을 따뜻이 간수하면서 새것을 깨쳐 나가는 자세, 우리네 정신을 바로 한 연후에 남의 솜씨를 갖다 쓰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지혜를 발휘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학문에 있어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했는데 과연 집터를 닦는 것이 먼저인가, 집을 짓는 일이 먼저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평생동안 「소학」을 공부한 학자가 있어 소개합니다. 조선 초 유학자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소학동자(小學童子)’ 라 부르면서 처신을 겸허히 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소신은 많이 아는 것보다는 착실한 실천 궁행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 잘하는 사장(詞章)을 가볍게 보고 마음을 가꾸는 경학(經學)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정몽주·길재·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정통 도학의 연원을 받아 조광조·이장곤·김안국 들로 내려 주었습니다. 이른바 사림파의 사장으로 도학 정치의 터전을 일궜으며, 이로 하여 조선 전기 5현으로 문묘에 종사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이같은 대학자가 아동이 읽는 「소학」을 자나깨나 품속에 넣고 송독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느 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러 글을 읽어도 천기를 모르겠더니/ 소학을 보고서야 지난 잘못을 깨달았네/ 이제부터 마음 잡고 자식도리 다하려니/ 어찌 좋은 옷 살찐말을 부러워하랴
「소학」은 옛날 중국의 3대(하厦·은殷·주周) 때부터 소학이라는 학교의 교재로 사용했던 책인데, 「분서갱유(焚書坑儒)·중국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는 백성을 자기 뜻대로 다스리기 위해 자신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선비는 산채로 파묻기도 하고 시문(詩文)의 책을 불사르기도 하는 등 악독한 일을 서슴치 않았다. 이는 재상 이사(李斯)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유실되었다가 이를 송나라의 주희(朱熹)가 옛일을 상고하고 들을 것을 취하여 다시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학문하는 이가 반드시 갖춰야 할 긴요하고 절실한 덕목이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가언(嘉言)·선행(善行) 편으로 나뉘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말엽에 들어와 선비 가문에서 필독서로 읽혔으며, 숙종이 「어제소학서(御製小學序」를 비롯해 「소학언해(小學言解)」 영조의 「어제소학지남(御製小學指南」 정약용의 「소학지언(小學指言)」 등 주해서도 많이 나왔습니다. 소학의 요체는 한 마디로 사람은 모름지기 쓸고 닦고 인사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학의 단정한 몸가짐은 반드시 충절로 이어집니다. 예절이 없고 뜻이 없고 사랑이 없는 학문은 결코 올바른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로 열매 맺지 못합니다. 유자(儒者)가 아닌 무부(武夫)들로 학문의 종지를 모르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소학정신을 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서 이 글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