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2

명상학교 수선재 - 명상학교 선생님 문화영(文花英)1951~2012

명상학교 수선재 - 맑게 밝게 따뜻하게



명상학교 선생님

문화영(文花英)1951~2012명상학교 수선재의 선생님이자 선계수련의 안내자로 살다 가신 분이며, 선인(仙人)이 되신 분이다.

1951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하시었고 강원도에서 성장하셨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에서 정치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민윤리학과에서 한국학을 전공하셨다. 이후 한국여성 개발원 창립멤버로서 한국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셨으며 국회, 대한적십 자사 등에서 일하신 적도 있다.

39살이 되던 해 사회 활동을 접고 수련의 길에 들었으며 선계의 스승이신 천강(天降) 선인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삶과 죽음의 관문을 넘는 극한의 수련 끝에 초각(初覺, 견성)을 이루셨다. 이후 우주의 진면목을 깨닫는 중각(中覺)과 우주와 합일하는 종각(終覺)의 경지 를 넘으시고 선인 인가를 받으셨다.

한편, 수련과 문학을 병행하시어 『현대문학』을 통해 희곡작가로 등단하셨으며, KBS <라디오 무대>를 통해 방송작가로도 등단하셨으며, 『광복50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홍범도』 『한국외교비사 남북외교의 시작과 끝』으로 한국방송대상 라디오드라마 부문 우수작품상을 두 차례 수상하신바 있다.

문화영님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약 15년 동안 수선재의 ‘선생’으로서 제자들을 기르셨으며 그 과정에서 방대한 분량의 선서(仙書)를 남기셨다. 선서는 우주창조 목적, 지구창 조 목적, 인간창조 목적 등의 근원 진리와 더불어 호흡과 명상, 대선인과의 대화, 선(仙) 문화 실천 지침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며 30여권의 책으로 출간된바 있다.

문화영님은 사명을 완수하신 후 2012년 향선(向仙)하셨으며, 이후 선계수련의 맥은 명상 학교 수선재의 제자들이 잇고 있다.
출생 당시 이야기
1000일 금촉수련
견성과 초각 인가
안내자로서의 사명

출생
당시 이야기

‘모도’라는 원산 앞바다에 있는 섬에 피난을 가서 저를 낳으셨는데, 피난은 한 9개월 전에 가셨다니까 아마 그 섬에서 계속 저를 뱃속에 가지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 섬 안에서 저희 아버지가 또 행방불명되시고요. 수산 쪽의 일을 하시니까 그 섬에 있는 사람들을 전 부 데리고 내려오시겠다고 배를 구하러 나가셨는데, 안 돌아오신 거예요. 행방불명되셨어요. 한겨울에 나가서 안 들어오신 거죠. 그때 어머니는 만삭이셨다 그러시고요.

그런데 그 섬 안에서 다 굶고.... 원래 아홉 가구가 살던 섬이었는데 수백 명이 있다 보니 까 식량은 바닥나고 아수라장이죠.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날씨는 춥고.

가지고 가신 게 없었어요. 금방 피난에서 돌아오실 줄 알고 사진하고 비상약만 잔뜩 가지 고 가셨다고 그러시더군요. 페니실린이니 이런 약. 그 약으로 섬사람들을 치료해주시고 하면서 의사 선생님으로 통했다고 그러시네요.

어머니께서 옛날에 대학을 나오셨는데 이화여대가 선교사들이 만든 학교니까 농촌 봉사를 다니시면서 의료 이런 것들은 아셨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으로 통하셔서 병을 고쳐주고 쌀 한 줌 얻어다가 연명하고, 이렇게 하셨다고 하세요.

그런데 저를 가지시고 맨날 폭탄이 터지고 굶고 그러시니까 산모가 계속 얼굴이 부으셨다 고 그러세요. 못 먹고 하시니까. 쌀 한 말을 가지고 석 달을 사셨다고 그러시고요. 임산부 가 그렇게 굶으시니까 얼굴이 누렇게 뜨고....

이렇게 해서 제가 태어났는데, 굶은 상태에서 낳으시니까 어머니가 완전히 기진맥진하셨어요. 그래서 여잔지 남잔지도 모르고 한쪽으로 밀쳐놨다가 저녁에 정신이 들어서 보니까 여자더라 하시는데....

3일을 아무것도 못 드셨으니까 젖이 나올 리가 없죠. 또 갓난아이가 쌔근쌔근하면서 열이 많이 오르더랍니다. 그래서 들여다보면서 이 아이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셨답니다. 살려봤자 조금 있다가 죽을 게 뻔하니까요. 살아있는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데 새 생명을 살려봤자.... ‘그래도 태어났는데’ 그러시고는 물을 끓여서 증류수를 만들 어서 페니실린을 섞어서 제 입에다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뜨려 놨더니 열이 내리면서 깨 어나더라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제가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지 못한 탄생을 한 거예요. 피난을 가서, 아버지도 안 계시고, 못 먹고.... 그때만 해도 오빠도 있어서 언니 세 명에 오빠 하나. 북한 사람이니까 남한에 가봐야 아무런 일가친척이 없어요. 그래서 3년을 거의 거지처럼 사셨다고 합니다.

아이가 따뜻한 방에서 자라야 되는데 그때 냉골이었답니다. 그러니까 갓난아이가 냉병이 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니까 제가 몸이 건강할 리가 없죠. 아주 탄생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 몸만 좀 건강했으면 뭘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평생 했어요. 체력이 받 쳐주지를 않으니까. 악으로 하고 깡으로 했습니다. 평생 제가 건강 때문에 장애를 겪었습 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제 인생이에요.

그 이후도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서 제가 과거는 다 잊어버린 상태에요. 생각하기 싫어서요. 언니들은 기억력이 좋아서 옛날에 이렇고 저렇고 이런 얘기 를 자꾸 하시는데, 더군다나 글 쓰는 한 언니는 시시콜콜 옛날에 고생한 얘기를 끄집어내 시는데 저는 아예 망각하는 병에 걸린 거예요. 수련하기 전에 이미 과거는 다 잊어버린 상태여서 과거 얘기하면 저는 하나도 몰라요. 의도적으로 생각하기 싫으니까 아주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서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인생이길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여튼 저도 어려서부터 죽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죽을까? 맨날 살기 싫으니까, 귀찮고 재미없고 이러 니까. 일종의 우울병이죠.

제가 나중에 부처님에 관한 책을 보니까 부처님이 심한 우울증을 갖고 태어나셨더군요. 왕자로 태어났지만 매일같이 우울해서 웃지 않고 사색에 젖어 있고요. 왕이 큰일 났다 싶 어서 예쁜 여자들을 계속 들이고 해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일찍 결혼을 시켰더군요. 그래 서 부처님이 일찍 장가를 갔는데, 아무리 부인이 예쁘고 훌륭한 여성이어도 우울증이 낫 지 않다가 결국은 출가를 했잖아요. 왕자면 부러울 것이 없을 텐데....

이 수련의 인연에 든 사람들은 행복하면 수련을 안 하니까 그런 큰 장애요인을 가지고 태 어나는 겁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실 텐데, 아주 크 게 모자라는 부분들을 갖고 태어나는 거예요.

저의 경우에는 가정환경이 불행했죠. 유복자에다가 축복받지 못한 가정이었죠. 또 신체가 허약한 상태였는데 극복하고 살아냈다는 것. 그래서 오늘 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54세를 지내면서 생일이 기쁘다는 생각을 제가 안 해본 거예요. 탄생이 기쁘지가 않은 거예요. 왜 나를 내보냈는가 원망도 하고. 어머니 왜 나를 내놨느냐? 이렇게 고생시 킬 것이면 왜 나를 났느냐? 따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제가 사람으로부터는 축복을 못 받았는데, 다 늙어서 선계로부터 무지막지한 축하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수련하면서 생일을 제일 축하해 주시는 분은 항상 선계시더라고 그랬는데, 그중에서 오늘 생일이 제일 행복하다....
- 2004년 3월 23일 하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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