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31

Philo Kalia - ’23년 물의 왕(水王): 동학과 화엄의 아우라지 기행(2)

(6) Philo Kalia - ’23년 물의 왕(水王): 동학과 화엄의 아우라지 기행(2) -교룡산성 선국사 은적암(隱寂庵)... | Facebook


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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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물의 왕(水王): 동학과 화엄의 아우라지 기행(2)
-교룡산성 선국사 은적암(隱寂庵)

27일(목) 9.40에 만인의총에서 남원역에 도착한 일행이 우리를 픽업하기로 했는데 늦어진 사람들이 있어 10.00시경에나 합류하여 출발할 수 있었다. 동행자들은 당대의 자랑할 예술 평론(비평)가들과 젊은 창의적인 작가들, 13분과 서로 인사를 나눴다. 모두 동학과 김지하의 수왕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다.

은적암은 수운 최제우가 1860년 4월 5일 무극대도를 받고 6월부터 포덕을 시작하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문중의 비난과 관의 제동을 피해 용담을 떠나 울산 – 부산 – 진해 – 고성 – 승주 – 여수(충무묘 배알)와 구례를 거쳐 남원까지 간 것이다.
 
남원에서 10일 동안 제자 최충희와 함께 약종상 서형칠의 집에서 유숙하다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은적암에 머문 것이다. 수운은 새해를 맞이하면서 <도수사>를 짓고, 1월에는 <권학가>와 <논학문>을 짓고 5월에는 각지 도인들에게 통유(通諭)를 발하고, 6월에는 <수덕문>과 <몽중노소문답가>를 짓고 7월 초에 경주로 이거한다. 그러니까 남원에 머문 기간이 7개월이 넘는다.

김지하가 1984년 12월 수운과 비슷한 계절인 겨울, 은적암을 찾은 이유는 남접과 북접이 모두 수운의 동학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확신을 증험하기 위함이었다. 남접은 주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충청남도를 포섭하는 조직의 명칭이고, 북접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가원도와 황해도, 경기도와 함경도, 평안도를 포섭하는 조직의 갈래로 이해했다.


그런데 당시까지 북접은 혁명만 하고, 남접은 수양만 하는 시각으로 조직의 성격을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라도 쪽을 중심으로 한 갑오동학혁명은 단지 동학을 수단으로만 생각했고 그들의 조직이나 운동, 활력이나 운동방법, 전략과 전술들을 사회경제사적 방법으로 환원시켜 이해했다는 것이다.


김지하는 이러한 양분된 이해를 불식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인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접 또한 수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으며 그 증거로 7-8개월 수운의 남원 은적암 체류 기간에서 생겨난 동학도들을 주목한 것이다. 

김지하의 말이다. “남원 은적암 피신시대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갑오혁명을 전후한 모든 시기에 있어서의 남접과 북접에 대한 통합적, 역동적, 통일적인 이해, 즉 살아 생동하는 총제적 이해의 관점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와 맥을 찾는 것이 될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7번 테제에서 야만의 기록이 아닌 문화의 기록이란 없으니 바닥에 누워 있는 자들을 짓밟고 가는 지배자들의 역사 개념을 전복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남원에는 해월과 남접을 연결할 수 있는 어떠한 역사의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동학꾼들은 모두 살육을 당했고 그 후손들도 혁명에 대해 침묵하거나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김지하에게는 어떤 기억보다 느슨한 단계이지만 높은 차원에 속한 예감(豫感)이 작동한다. 그의 예감은 이렇다.

“우리는 동란이 지나간 뒤 억압받는 민중들이 그 스스로 주체적으로 창조해낸 사상과 운동ㄷㄹ의 흔적이 말소되어 온 것을 역사적으로 어디에서나 잘 보아왔습니다. 기록만이 아니라 구전까지, 구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기억조차, 또는 집안과 집안 사이에서의 족보에서마저도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싸그리 그 자취들을 없애버리는 비극적인 단절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지배자와 억압자에 의한 이 비극적인 기억의 단절, 폭력적인 삶의 초토화,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까지 다 숨통을 끊는 진멸(헤렘)이 작동한 것이다. 여기서는 살아 남아있는 자들의 숨소리와 몸짓, 바람을 타고 종종 들리는 신음소리를 통해 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교룡산성 입구에서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지하의 수묵시화첩 『절, 그 언저리』를 디자인한 안상수 교수(홍익대)의 주문에 따라 우리는 한 눈을 손으로 가렸다. 이 형상을 어디서 봤지, 바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표지 그림이다.











Jungsik Cha

인상 깊은 여행기입니다. 교룡산성과 은적암을 옆으로 스치며 지나가기만 했는데 
수운의 발자취 따라 조만간 답사를 해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Zino Yang

남접과 북접의 특징을 바꾸어 기술하신 듯합니다. “북접은 혁명만 하고 남접은 수양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