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9

강주영 - #동학에_신은_없다

강주영 - #동학에_신은_없다 베트남에 오는 비행기가 지루해서 천상에서 이 글을 쓴다. ​동학의 하늘님 또는... | Facebook

강주영 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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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에_신은_없다

베트남에 오는 비행기가 지루해서 천상에서 이 글을 쓴다.

​동학의 하늘님 또는 한울님은 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나 이슬람 같은 '인격신'도 아니요,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법의 신'도 아니다. 

내 생각에 ​하늘님은 모든 존재마다 있는 령(靈)의 이름이다. 령이 무엇인가? 령은 신비로운 것도, 존재의 본질도 아니다. 령은 정신도 마음도 아니요. 육체도 아니다. 령은 육체와 마음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다. 령은 서로 얽혀서 존재를 존재케 하며, 유에서 유를 생성하는 힘 곧 기(氣)라고도 할 수 있다. 

령은 사건의 담지자, 사건의 연쇄파동자다.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가 령이다. 신령하다고 하는 것은 존재들의 생성력에 다름아니다. 령은 데카르트에게서는 '코키토'요, 스피노자에게서는 '코나투스'요, 니체에게서는 '힘에의 의지'다.  
 
​령은 높은 도덕적 세계도 아니요, 고상함도 아니다. 령은 불택선악,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령은 성스럽지 않다
 시중에서 '영성적이다'라는 말을 신비롭고도 높고 고상함 등으로 쓰는 것 같은데 악인도 영성적이다. 
인간이 '최령자'라는 말은 인간이 천지만물 중에서 가장 악하기도 하고, 가장 착하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 말은 틀림없다. 

​존재에 '본질'이 따로 있고, 본질이 생생하게 드러난(현전) '양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스피노자는 양태를 실체가 현전하는 것이라 하고, 실체는 그 자신 이외의 그 어떤 원인자가 없는 것이라 하였다. 

​나는 스피노자와 달리 순수한 자기원인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올은 노자의 도법자연을 스스로 그러하다고 한다. 도올은 수운의 무위이화를 노자의 도법자연과 같다고 한다. 도올이 생각하는 도법자연과 무위이화는 스피노자의 실체와 같아 보인다. 

세계는 순수한 제1자기원인자가 없을 뿐더러 내유신령함외유기화하여 조화정함으로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존재들은 타자와 얽혀서 만이 세계의 구성에 참여한다. 그래서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 것이 세계라는 것이 수운의 '무위이화'라고 본다. 도올의 말대로 스스로 그러한 주체의 의지만으로 세계가 구성된다면 세계는 주체의 폭력으로 넘쳐날 것이다. 
순수 단독자로 자신 이외의 원인자가 없다는 스피노자의 '실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스피노자의 '실체'와 '양태'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스피노자의 실체는 기독교의 인격신과 달리 자연의 이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스피노자가 신을 자연이라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세간에서 스피노자를 범신론이라고 하는 주장은 신을 자연이라 한 것을 두고 한 말이지만  자연의 이법을 범신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범신론은 완전히 헛짚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동학을 스피노자의 범신론 같은 것이라고 하는 학자가 있는데 내 생각에 동학은 범신론이 아니다.

​동학의 하늘님은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노동하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동학은 모시라고 한다. 시천주(侍天主)가 그것이다. 

천주를 모심이 아니니 시/천주가 아니다. 
시천한 님들 시천/주다. 
주는 님이다. 
시천에서 천은 무엇인가? 조화정하는 힘이 곧 천이다. 
조화정이 뭣인가? 존재의 생성력, 사건의 생성력이다. 
세계는 존재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쇄파동이다. 
나는 그것이 시천, 즉 세계를 구성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본다. 

세계를 구성하는 생성력 즉 '령'을 잘 모셔서 지상천국을 구성하라는 것이 동학이라고 본다. 

하여 동학의 하늘님은 길가의 주정뱅이에게도, 컨테이너에 눌린 청년노동자에게도, 윤석열에게도, 김정은에게도, 바이든에게도 있다. 
길가의 고양이에게도, 겨자씨에도, 개망초에도 있다. 

어떻게 하면 존재의 생성력, 사건의 생성력을 잘 모셔서​ 
우애와 협동, 나눔과 돌봄, 생명과 평화의 지상천국을 만들 수 있을까? 
파국을 막고 존재들의 갖은 억압과 불의로부터  해방을 이룰 수 있을까? 

모심은 수련도 아니요, 시일(예배)도 아니요. 기도도 아니고, 주문도 아니다. 
주문하고, 수련을 하는 것은 모심을 잘 하라는 것이지 
주문하고 수련하는 것이 곧 모심은 아니다.

 주문의 첫번째는 잘 듣는 것이다. 그래야 접신강령한다. 

​기독교가 말씀주의, 성령주의, 경전주의  복음주의로 빠지면서 혹세무민하게 되는 것처럼, 
동학이 말씀주의, 경전주의에 빠진다면 종교의 아편에 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