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hippanisanti sutta (AN 5:169)의 흥미로운 점 두 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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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처님이 정확한 언어 사용이나 논리를 폄하라도 하신 듯 착각/오해를 하면서 달-손가락 운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초기불교는 무수한 톱니바퀴들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와도 비슷하다는 게 내가 받는 인상이다. 아래 사진 역시, ‘아’ 다르고 ‘어’ 다른 차이까지 정확히 하는 노력이 ‘쓸데없는’ 일도 아니요 ‘영적이지 못 한’ 일도 결코 아님을 시사한다. 아무리 유명한 스님이나 종파의 해석이라 해도 단어 하나 하나 따지라는 것이 DN 16의 가르침이며, 귀에만 심오하게 들리는 시적 (詩的)인 얘기는 허풍쟁이의 언어일 뿐이라고 AN 2:46도 말한다. 언어/논리를 따지는 건 ‘에고가 강한’ 사람이나 하는 수준낮은 짓이고 ‘심오한’ 진리는 비논리적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건 도가의 영향이 아닐지. 그런데 초기경전이 아닌 선사/고승들의 일화들을 읽고서 ‘불교’를 배웠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 비언어적인 소통을 의미하는 염화미소, 이심전심, 교외별전, 불립문자 등은 초기경전에는 나오지 않는 얘기들이건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 #12. 불교는 언어/논리를 중시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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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진은 또 아난다가 사리풋타에게 설명을 해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살아 계신 동안 아난다는 아라한이 아직 아니었고 사리풋타는 이미 아라한일 뿐 아니라 지혜면에서 최고라는 부처님의 칭찬을 받는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사리풋타가 오히려 아난다로부터 배우기도 했다는 점 역시 음미,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