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6

Chee-Kwan Kim [Usable Past – 쓸만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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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ble Past – 쓸만한 과거]
1.
20세기 초 비엔나의 미학자 알로이 리겔 (Alois Riegl)은 미술과 역사/문화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예술작품은 그 자체 독립적/추상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언제나 시대적 맥락 속에서 탐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Kunstwollen”이라고 명명하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예술가(들)의 예술욕망만이 새로운 조류를 탄생시키고 예술의 변화를 선도한다고 주장한다.
Kunstwollen이란 개념은 따라서 美, 그리고 심미안이 시대에 따라서 왜,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리겔에 따르면 예술가들은 시대의 변화에 가장 강하게 자극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예술의 변화에 –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 가장 앞장서는 이들이다. 따라서 진정한 예술가들은, 리겔의 이론을 따르자면, 언제나 전위 - 아방 가르드 - 일 수 밖에 없다.
2.
하지만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 – 때로는 아주 낡은 것 - 에서 시작한다. 비엔나 모더니즘의 선구자로서 클림트의 위대함은 물론, 사진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한계에 봉착한 서양미술에 꿈과 무의식이 지배하는 주관의 세계를 소개하며 하나의 활로를 제시한 것이겠지만,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3차원의 세상에 속박된 2차원의 캔버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가 원용한 것은 (인상파와는 다른 시각에서) 일본의 우키요에 (浮世絵)이고, 고대 비잔틴 예술이었다.
20세기초 클림트는 비잔틴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이태리로 향하고, 그곳에서 발견한 2차원 평면의 모자이크 작품들로부터 큰 영감을 받는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그림들은 3차원의 입체감을 거부하는 대신 각종 문양과 인물들의 조화를 통해 예술적 진실에 가까워졌다고 그는 느끼고, 클림트 또한 그러한 방법론을 도입한다. 그는 특히 성 비탈레 성당에 지금도 남아 있는 테오도라 여왕을 묘사한 기원후 6세기 작품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3.
미국의 문학비평가 브룩스 (Van Wyck Brooks)는 미국인들의 공통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논하면서, “쓸만한 과거 (Usable Past)”란 표현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20세기 초 예술활동을 한 모더니스트 클림트에게는 새로운 표현방법으로써, 하나의 기억의 창출방법으로써, 6세기 유럽의 기억이 하나의 “쓸만한 과거”였던 것이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든 과거를 필요로 한다. 하나의 사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쓸만한 과거”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한다. 쓸만한 과거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과거만이 “쓸만한 과거”이다.
나는 쓸만한 과거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 지 못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외부에 있지는 않을까? - 한국사회에서 기억은 파편화되어 있고, 반동으로서의 기억의 축적이 이어졌다는 인식에는 도달했다. 클림트의 그림들을 오랜만에 펼쳐보면서, 새로운, 쓸모있는 기억의 축적이 시작될 수 있길 바라는 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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