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jae Lee
31 July at 03:21 ·
트라우마를 극복한 '위대한 혼'만이 새 문명을 노래한다.
1. 우리는 이틀에 걸쳐 ‘구원’이라는 엄청난 주제를 가지고 페북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물음과 답변을 했다. 서로 얼굴을 보지도 못한 상태이지만 용감한 많은 분들이 자신의 ‘구원관’에 대해 솔직한 답변을 해 주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구원관’이라 표현하면 혹 그 간단한 늘 생각하던 바를 적은 것이라고 과소평가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 분의 ‘구원관’이다. 유명한 신학자의 ‘구원관’은 책에 적혀 있어, 편집과정을 거쳐 세련되게 정리된 것이지만, 이 분들의 ‘구원관’은 일상생활의 날 것을 그대로 공개한 것이기에 거칠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을 이미 아는 페북친구들이 혹 있다. 내가 쓴 글보다는 페북친구들의 댓글을 열심히 읽으며 맘에 드는 것에 일일이 ‘좋아요’ ‘최고요’를 구별해서 누르고 있다. 이미 이 분은 인생의 정수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2. .누구든지 ‘트리우마’가 있다. 심리학 용어로 ‘정신적 외상’이라고 한다. 가슴에 담긴 남모르는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맺힌 트라우마가 평생을 지배한다. 심지어 역사적 트라우마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게다가 어느 민족보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진 민족은 우리나라이다.
떨리는 가슴으로 다시 한번 우리 역사를 되새겨 보라. 교만한 중국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위기상황에 불쑥불쑥 곰발바닥을 음흉하게 내미는 러시아, 자기 안방인듯 안하무인인 미국 등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한국현대! 한민족의 오천년 역사책마저 식민사관에 찌든 실증사학자에 의해 기술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위대한 자기’을 잃어버리고 늘 남에게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받으려는 뿌리박힌 사대주의(큰 것에 기대어 자신을 확인하려는 주의)에 쓰여진 역사의 자양분으로 어찌 위대한 혼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이 사대주의는 적게 가진 민중보다 오히려 많이 가진 기득권이 더 심할 지 모른다. 그래서 흔히 99섬 가진 부자가 한 섬 가진 가난한 이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범람하는 제국학문주의에 빠져있는 배경에는 이런 '학문적 트라우마'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신앙'마저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신앙을 마치 자기 신앙인양 대리만족하는 주구신앙에 빠져있다. 다시 말하면 끊임없이 그 뿌리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며, 자기의 건강한 몸을 회복할 생각은 고사하고 환상의 무지개를 쫒던 것이 우리의 짧은 인생이요, 우리의 신앙이요, 한민족의 역사였다고 하면 과언인가!
3. 이젠 트리우마를 극복한 '위대한 혼'으로 탄생되어야 할 시점이다. 솔직해 지자. 기독교인이 금과 옥조로 모시는 성경이라는 텍스트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려진 하나님이고 헬레니즘이라는 콘텍스트로 해석되어 ‘하나님의 말씀’은 왜곡되어 전달되어 진다. 성경의 편집과정 자체가 이미 종교권력의 힘이 작용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모든 경전은 ‘신비화되고 주술화 되어’ 신성성을 강조한다. 기독교의 성경만이 아니라 경전은 그렇게 하늘나라의 말씀을 적은 글이라고 경전에서 강조되며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은 그렇게 신앙하고 있다. 그 중의 최고는 자기가 신앙하는 경전이고 신앙대상이다. 그러니까 믿는 것이다. 한 예로 들어보자. 서구에서 믿는 예수, 특히 미국에서 믿는 예수는 그동안 잘 생긴 미남형 ‘백인예수(아래 사진 왼쪽)’로 알아왔다. 우리도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BBC 방송에서 고증예측한 유대인 예수(아래 사진 오른쪽 위)라고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갓 쓰고 한복입은 예수(운보 김기창 작, 아래사진 오른쪽 밑)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친구예수를 벗삼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온전한 것 같이 우리도 온전한 자리에 까지 가야한다'. 예수의 부활의 당부이자 사랑의 명령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이 눈이 새까맣고 코가 납작하다고 주장하고, 트라키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이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이 빨갛다고 주장한다. - 크레노파네스 (B.C 570~ 475)
마음속에 종교권위에 의해 형성된 일체의 우상, 사회적 권력에 의해 조성된 식민사관, 지구촌의 강대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유포되는 사유체계에서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누구를 통해 얻은 일체의 믿음과 지식을 팽개치고 자신의 위대한 혼을 찾으라. 이것을 찾으면 승자이고, 못 찾으면 패자이다. 진리의 자리는 누가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건물성전에서 예배에 참여해야 신앙이 돈독해 진다면 이미 낡은 시대의 대리신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십중팔구 틀리지 않는다.
4. 우리는 위대한 결단을 내려 나의 위대한 혼을 되찾아야 한다. 어느 한 순간 나의 전 실존을 타자와의 관계에서 끊고 남모르는 그 아픔을 안고 새로운 알로 태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믿음의 터 위에 위대한 꿈을 꾸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믿음에 끼어있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 모든 끼꺼기가 제거된 자리, 그 마음의 지성소에 ‘나의 말’이 성령의 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 그 불로 ‘교리체계와 신학체계’를 불태워야 한다. 입술에 이미 습관화되어 버린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멘, 할렐루야, 믿음, 은총, 은혜’ 등의 현란함을 ‘묵여뢰’의 침묵으로 이겨내야 한다.
3. 이젠 트리우마를 극복한 '위대한 혼'으로 탄생되어야 할 시점이다. 솔직해 지자. 기독교인이 금과 옥조로 모시는 성경이라는 텍스트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려진 하나님이고 헬레니즘이라는 콘텍스트로 해석되어 ‘하나님의 말씀’은 왜곡되어 전달되어 진다. 성경의 편집과정 자체가 이미 종교권력의 힘이 작용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모든 경전은 ‘신비화되고 주술화 되어’ 신성성을 강조한다. 기독교의 성경만이 아니라 경전은 그렇게 하늘나라의 말씀을 적은 글이라고 경전에서 강조되며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은 그렇게 신앙하고 있다. 그 중의 최고는 자기가 신앙하는 경전이고 신앙대상이다. 그러니까 믿는 것이다. 한 예로 들어보자. 서구에서 믿는 예수, 특히 미국에서 믿는 예수는 그동안 잘 생긴 미남형 ‘백인예수(아래 사진 왼쪽)’로 알아왔다. 우리도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BBC 방송에서 고증예측한 유대인 예수(아래 사진 오른쪽 위)라고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갓 쓰고 한복입은 예수(운보 김기창 작, 아래사진 오른쪽 밑)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친구예수를 벗삼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온전한 것 같이 우리도 온전한 자리에 까지 가야한다'. 예수의 부활의 당부이자 사랑의 명령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이 눈이 새까맣고 코가 납작하다고 주장하고, 트라키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이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이 빨갛다고 주장한다. - 크레노파네스 (B.C 570~ 475)
마음속에 종교권위에 의해 형성된 일체의 우상, 사회적 권력에 의해 조성된 식민사관, 지구촌의 강대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유포되는 사유체계에서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누구를 통해 얻은 일체의 믿음과 지식을 팽개치고 자신의 위대한 혼을 찾으라. 이것을 찾으면 승자이고, 못 찾으면 패자이다. 진리의 자리는 누가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건물성전에서 예배에 참여해야 신앙이 돈독해 진다면 이미 낡은 시대의 대리신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십중팔구 틀리지 않는다.
4. 우리는 위대한 결단을 내려 나의 위대한 혼을 되찾아야 한다. 어느 한 순간 나의 전 실존을 타자와의 관계에서 끊고 남모르는 그 아픔을 안고 새로운 알로 태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믿음의 터 위에 위대한 꿈을 꾸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믿음에 끼어있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 모든 끼꺼기가 제거된 자리, 그 마음의 지성소에 ‘나의 말’이 성령의 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 그 불로 ‘교리체계와 신학체계’를 불태워야 한다. 입술에 이미 습관화되어 버린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멘, 할렐루야, 믿음, 은총, 은혜’ 등의 현란함을 ‘묵여뢰’의 침묵으로 이겨내야 한다.
얼마 전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고 3수험생인데 자기가 한국 신학에 관심이 있어 “다석의 마지막강의”라는 책을 누구에게(이름대면 여러분이 다 알만한 사람이다) 추천받아 칠개월에 걸쳐 다 읽었단다. 페북을 보다보니 내 페북에 추천책(아마 김흡영의 “도의 신학”, 기온찍기, 박영호의 “다석전기”,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이 찍힌 사진들을 보고 어떤 책부터 읽는 것이 좋은 지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인가? 수험생 그것도 고 3수험생이라 우선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가서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 때 다시 연락하라고 답을 했다. 더 가관인 것은 자기는 공부 열심히 하고 머리 식히면서 읽을 책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이런 젊은이들이 지금 곳곳에 있다. 어찌 희망을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5. 새 문명의 아침은 밝아왔다. 새로운 천지개벽 혹은 새로운 빛이라는 ‘새벽’은 늘 우리를 맞이한다. 하늘은 0시에 깨고, 땅은 두 시에 깨고, 인간은 네 시에 깨어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다 깨어난 후 새벽은 온다. 새 문명의 새벽이 이 땅에서 다시 떠오른다. 새 문명의 성격과 모양은 지금 우리 세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 가에 달려있다. 나를 찾자! 강대한 세계제국이 유포하는 불량세계관, 사회적 위계의 탐욕, 종교적 식민신앙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왜 동시대에 한국인으로 태어나 ‘백척간두’에 선 분단조국을 애처롭게 혹은 분노하며 혹은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가? 모두 사생결단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새 문명’을 펼쳐보라는 ‘하나님’을 믿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 발짝 더 내딛어야 한다. 진리는 역설이다. 새 문명은 이 역설을 실천하는 자에 의해 만들어 진다. 한민족의 새벽은 밝아오고 있다. 깨어나 세수하고 새 태양을 맞이하자.
5. 새 문명의 아침은 밝아왔다. 새로운 천지개벽 혹은 새로운 빛이라는 ‘새벽’은 늘 우리를 맞이한다. 하늘은 0시에 깨고, 땅은 두 시에 깨고, 인간은 네 시에 깨어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다 깨어난 후 새벽은 온다. 새 문명의 새벽이 이 땅에서 다시 떠오른다. 새 문명의 성격과 모양은 지금 우리 세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 가에 달려있다. 나를 찾자! 강대한 세계제국이 유포하는 불량세계관, 사회적 위계의 탐욕, 종교적 식민신앙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왜 동시대에 한국인으로 태어나 ‘백척간두’에 선 분단조국을 애처롭게 혹은 분노하며 혹은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가? 모두 사생결단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새 문명’을 펼쳐보라는 ‘하나님’을 믿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 발짝 더 내딛어야 한다. 진리는 역설이다. 새 문명은 이 역설을 실천하는 자에 의해 만들어 진다. 한민족의 새벽은 밝아오고 있다. 깨어나 세수하고 새 태양을 맞이하자.
118You, 이찬수, KarpChon Kim and 115 others
16 comments12 shares
Soonki Lee 명쾌하고 시원합니다. 박수 보내드립니다. 😊
김태진 이런 좋은 그림을 그린게 하필이면 이응노 ㅜㅜ
Hojae Lee replied
· 2 replies
Doheum Lee 지지합니다.
Hojae Lee replied
· 1 reply
김혜경 긴글 잘 읽었습니다 하마터면 큰일날뻔했어요 언뜻 신본주의이신듯하여 댓글 몇번 올리고 조아요 눌렸는데 저와는 신앙관이 맞지않는듯합니다 사람들에게 의견과 생각을 묻고 은연중에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시는 수단이 굉장히 탁월하십니다 하마터면 저도 넘어갈뻔했어요 혹시 무신론자는 아니신지 묻고싶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Hojae Lee 김선생님! 저는 글에서 이미 수차례 입장을 밝히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본'주의는 무엇이고 인'본'주의는 무엇인지요? 저는 종교학자로서 그 '본'을 묻고 있는 겁니다. 넘어갈 뻔 하셨다는데 어디로 넘어갈 뻔 하셨는지요? ㅎㅎ 주체적 신앙을 하라고 글마다 주장하고 있는데! 그래도 혹 심심하시면 놀러 오셔도 환영합니다. 김선생님의 댓글은 한국 교회의 신앙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같습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김혜경 Hojae Lee 그리스도인들의 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즉 말씀이지요 주체적인신앙을 하라고 말씀하셨는 그주체의 위치가.......
Hojae Lee 김혜경 네 김선생님! 이렇게 질문하시면 답을 할 수가 있지요!(제가 그동안 쓴 글을 시간이 되시면 정독해 보세요) 그 주체의 '나'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하고 그 믿음이 맞다면, 만약 그리스도교인 이라면 '성령의 아홉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은혜와 은총과 은사'를 말하며 기독교인이라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고 있는지, 그 결과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지를 체크해 보라는 것이지요! 저는 교회 등 제도종교에는 몸을 담은 적도, 한국 종교의 상황을 보니 담고 싶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