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2

0728 Hojae Lee [특정 종교조직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은 허구이다]


Hojae Lee
28 July at 12:47 ·



[특정 종교조직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은 허구이다]

1. 사실 페이스북에 이 글을 먼저 올려야 하는데 새벽녁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랫글을 먼저 올리게 되었다. 다소 늦었지만 어제 많은 페북친구들이 한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특히 어제 댓글을 올려 주신 분은 정말 용감(!)하신 분들이다. 어떤 글이든지 '제소리'를 내지 못하는 '앵무새 소리'는 창조주가 있다면 창조의 뜻에도 맞지 않다.

2. 생각해 보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찬송과 영광의 목소리가 독창이겠는가? 칼뱅의 소리와 웨슬리의 소리와 메이첸의 소리와 루터의 소리만 들리겠는가? 아담과 하와를 포함한 가인과 아벨, 빛나는 예언자와 선지자, 한민족의 성도들의 목소리는 없겠는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장엄한 합창교향곡이 울리지 않겠는가! 구원받은 장엄한 목소리에 분명히 '나'는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의 맥락에서 누가 구원을 받는가? 지금 교계에 만연되어 있는 '개인구원'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다. 속된 말로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누가 교회에 나가겠는가. 이는 한국 주류인 보수신학을 하는 신도들의 신앙의식이지 않는가? '구원'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왜냐하면 이 개념자체도 다양하고 백가쟁명식이다. 신학자마다 다양한 소리를 내고 있다. 궁금하시면 한국조직신학회의 "구원론"을 읽어보시라)


3. 그리고 신앙의 원점에서 진지하게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들에게 물어보라.

1) 목사님 구원이 뭐래요?
2) 구원받는 조건이 무엇이래요?
- 일단 교회에 나와야 하고, 헌금내야 하고, 믿음, 은총, 은혜가 충만해야 하고 등등등
- 그럼 '열심히 믿은 당신'은 일상생활에서 충족스러운 삶을 사는가? 속고 속이지 말아야 한다.
2) 다른 기독교 교파에도 다른 교회에도 구원이 있나요?
- 그럼 천주교에 가도 되고 개신교에 가도 되지 않는가? 개신교에서는 천주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나? 종교적 성향에 따라 다니는 걸텐데
3) 그럼 불교 등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나요?
- 십중팔구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럼 또 물어보라. 목사님 팔만대장경은 읽어보셨나요? 성경은 66권이지만, 불경은 페이지수로만 따져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다.
대부분의 목사는 팔만대장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다른 종교를 잘도 평가한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면 팔만대장경이라는 광대한 종교텍스트에도 창조주의 섭리가 들어가 있지 않겠는가? 열린 신앙을 하여야 한다.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 앎'이라고 공자가 말한다.

[창조주라는 전지전능한 신을 신앙하면서 '일지일능一知一能'한 인간이 만든 교리체계의 '성경해석권'으로 만든 구원관으로 창조주를 재단말라].

4. 그럼 당연히 이 두 성구를 들고 말할 것이다, 예수를 믿는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위에 인용한 두 성구는 기독교 광신자들이 이교도를 정죄할 때 가장 잘 쓰는 성구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기독교의 교주로 만들고 자기들의 교리 속에 유폐시킨 자들이다. 예수는 기독교의 교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독생자로 모든 인류를 위해 오신 분이다."

5. 그럼 예수 복음이 전파되기 전에 태어난 우리 조상들은, 쉽게 말해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은 다 '지옥'간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종교다원주의에서 포괄주의적 입장을 가진 칼 라너는 다른 종교인을 '익명의 그리스도교인"라 하지 않나! 그럼 불교인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이 "익명의 불교인"이라고 하면 기독교인들은 이 말을 수용할 수 있나? 피차일반이다. 그래서 역사속에서 작동하는 모든 종교는 구원(제)'의 종교적 기제가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 구원'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같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6. 그럼 이 성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요한계시록 7장 [ 9절 - 10절 ]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오직 한국인 가운데 두 명만이 이 문제에 대해 헬레니즘적 사유에서 해석한 성경해석 전통을 넘어 한국인의 삶의 정황에서 성경적 맥락과 세계 신학의 지평에서 답을 하고 있다.

7. 성경적 언어맥락에서도 특정 종교조직이 구원을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증해 준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수 백개의 교파가운데 어디가 구원을 담보하고, 그 기준은 도데체 무엇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8. 수십억의 기독교인이 있는데 성경의 이 구절을 보고 현재의 기독교인은 편안한 신앙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8"라고 한다. 한국 교회는 마치 재림 예수가 언제 올때를 아는 것처럼 이렇게 '시궁창'냄새를 풍기고 있는가? 만약 재림 예수가 정말로 온다고 신앙한다면 언제올 줄 알고 이렇게 한가한가?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