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6

세월호 5주기의 시간에 셸리 램보의 『성령과 트라우마』를 읽다 <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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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의 시간에 셸리 램보의 『성령과 트라우마』를 읽다
성토요일의 성령론과 한국 여성신학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세종대)
업데이트 2019.04.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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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며

세월호 5주기, 사순절 기간에 아주 귀한 책을 읽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을 지은 셸리 램보라는 미국의 여성신학자, 그 책을 자기 삶의 경험과 연관시키며 잘 번역해주신 번역자 박시형 목사님, 그 램보라는 여성신학자를 키운 나의 ‘동료 같은’(?) 여성신학자 캐서린 캘러 교수, 램보나 캘러 교수 등의 미국 여성신학자로 하여금 그와 같은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만든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희생자들의 고뇌와 고통, 남긴 이야기와 기억 등,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multiplicity)되어서 이 책이 나오게 되었고, 거기에 한국기독교연구소 김준우 목사님의 수고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러한 성찰이야말로 특히 한국 신학계에서 고유하게 나올 수 있는 책이고, 또한 한국 여성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해까지 4.16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해 온 성찰이 나름의 유사한 것이었다는 생각이었다.(1) 특히 올해 그 5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71주기의 제주 4.3사건 이야기, 3.1 독립운동 백 주년을 맞이해서 지난 백여 년의 시간 동안 묻혀있던 각종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겪어온 삶이야말로 바로 서구 여성신학자 램보가 부각하고자 하는 ‘성토요일’의 삶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그들이 이때까지 살아남았고,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다시 목숨과 얼굴과 안락을 감수하게 만든 힘과 숨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성토요일의 ‘성령’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는데, 그는 여성작가 김숨의 언어를 빌어서 지난해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라는 ‘증언소설집’을 남겼다. 만 14세의 나이로 속아서 일본군 전쟁터 위안소로 끌려가 겪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트라우마를 그녀는 올해 9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참으로 길게 견뎌내야 했다. 그 증언집은 독실한 불교도인 그녀가 겪는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내 주고 있다.(2)

그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그녀는 이후의 삶을 통해서 세계가 주목하는 여성인권운동가가 되었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간단한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그녀는 불교도로서 살면서 자신이 죄를 지으면 다음 생에서도 다시 유사한 고통을 겪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고, 삶의 감각이 극심하게 손상된 채로 고통스럽게 살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들을 넘어서 죽는 순간까지 일본 정부의 공적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투쟁에 몸담았으며, 세상을 떠나면서는 가진 것을 재일 조선학교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내놓으면서 자신의 저항과 투쟁과 경험이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다. 그녀 속의 ‘생리’(生理), 램보의 이야기로 하면 “숨”과 “사랑”의 “성령”이 그녀의 트라우마 속에서도 남아서 역할을 한 것이다.(3)

하지만 한국 기독교 교회와 목회의 현실은 한국 역사와 특히 근현대사만 하더라도, 그리고 오늘 우리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고통, 죽음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의 현실이 심각한데도 이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오직 승리와 부활과 성공과 빠름의 이야기만을 선호한다. 이 책의 가치와 소중함은 바로 이러한 현실로 인해서 빛나고, 특히 바로 며칠 전 강원도 고성과 속초 등에서의 산불과 같은 자연 재앙도 이제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 기독교 신앙의 기초와 기본을 그 근본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기를 요청하고, 그러나 저자인 서구 여성신학자보다 훨씬 더 중층의 다원성과 복합적으로 누적된 트라우마와 접하고 살아가는 한국 여성신학자로서 그 제안의 한계와 불철저성도 보면서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밝혀보고자 한다.

2. ‘트라우마 렌즈’(lens of trauma)와 성토요일의 발견, 성토요일의 성령론과 요한복음의 부활 증언

1) 사실 이미 오래전에 『교회와 제2의 性』,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 등의 저자인 미국 여성신학자 메리 데일리는 지금까지 기독교 교리상에 나오는 모든 기독론은 ‘그리스도 우상주의’(christolatry)에 빠진 것이고, 일종의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이라고 비판하였다.(4) 그것은 지금까지의 기독교 그리스도 이해가 철저히 영육 이원론에 빠져서 그리스도의 몸성과 인간성, 역사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묻어두고 단지 그 신성과 영웅적 그리스도성, 승리의 부활만을 강조해온 것이라는 비판이다.


램보의 『성령과 트라우마』도 같은 비판적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러나 여기서는 더 나아가서 지금까지의 기독교 복음이 신론과 기독론에 집중된 것을 넘어서 ‘성령론’이 시각에서 새롭게 보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성령론의 시각에서 신론과 그리스도의 죽음(십자가)과 부활을 새로이 이해하려는 이러한 기도는 오늘 우리 시대에 만연하게 된 ‘트라우마’라는 ‘외상 증후군’과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우리가 겪은, 또는 겪을 많은 일이, 심지어는 죽음의 경험이라는 것도 단지 한 번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삶 속에서, 매일의 일상에서, 살아있음과 더불어 반복적으로 겪는 상처와 고통이라면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이 단선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자동적으로 ‘부활’을 말하고, 막강한 힘의 담지자로서 저 어딘가 외부에 의심 없이 ‘존재’하는 신의 있음을 말한다든가, 또는 항상 승리로 이끄는 요술 방망이처럼 어떤 강력한 성취와 성공의 힘으로만 이해되는 ‘영’(성령) 이야기는 더 이상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런 정황을 다시 살피기 위해서 돌아보는 단어가 ‘성토요일’(Holy Saturday)이고, 이에 근거해서 저자는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구원 내러티브’를 다시 살피고 해체하여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2)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에 “신은 죽었다, 나의 내면의 신은 이렇게 말한다”라는 언어로 ‘세월호 以後 교회’를 말해온 나 자신도 여기서 저자가 부각하는 ‘성토요일’에 대한 이상은 갖지 못했었다. 그래서 저자의 이 책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고, 그 성토요일에 대한 상상과 더불어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또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것을 느낀다.

저자 램보는 칼 바르트와 같은 세대의 스위스 가톨릭 신학자 한스 폰 발타자르(H. U. von Balthasar)의 ‘성토요일 신학’과 그 신학의 전개를 가능케 해준 여의사 출신의 평신도 여성 아드리엔 폰 스페이어(Adrienne von Speyr)의 신비 체험에 주목한다. 스페이어는 1941년 이후 25년 동안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지옥으로 내려가서 겪는 무시무시한 고독과 버림받음, 포기를 환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체험해 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통(정통) 신학에서는 이 극도의 고통의 시간이 간단히 지워져 있었고, 금요일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곧바로 일요일의 승리에 찬 부활이 말해지면서 토요일의 죽음의 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하면서 극도로 외롭고, 어떤 희망과 재생의 가능성도 없이 철저히 내던져진 ‘지옥’의 고통과 죽음의 경험이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토요일의 경험을 우리가 겪고 듣는 ‘트라우마’의 경험과 연결한다. 그것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며, 결코 부활이나 승리를 쉽게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찬 경험이며, 그리고 그것이 정말 고통스러운 이유는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알 수 없이 ‘반복’되고 ‘지속’되어서 이 지옥과도 같은 트라우마의 고통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그것을 ‘견뎌내고’, ‘버티면서’ ‘살아남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성토요일의 성령론’은 바로 이러한 가운데서 드러나는 ‘성령’의 새로운 모습을 그리는 신학이다. 그러나 저자 램보는 그와 같은 성토요일의 신학을 말하는 발타자르조차 그 신학이 여전히 ‘기독론’(십자가) 중심적이고, ‘삼위일체론’에 묶여있다고 비판한다. 즉 발타자르가 전통의 신학이 주목하지 못하는 성토요일의 고통과 죽음의 시간을 발견하였다고 하지만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서 삼위일체적(trinitarian)으로 ‘구원’의 그리스도가 부각되어서(soteriological) ‘지옥’이나 ‘몸의 고통’이나 ‘성령’ 등의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램보는 성토요일의 신학은 더욱더 ‘성령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 성령론의 해석에서도 전통적 성령론이 주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을 밝히기 위해서 특히 요한복음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증언과 애제자 요한의 증언을 살핀다.

저자는 요한복음의 증언을 살피기 위한 첫 출발로서 요한복음 19:33-34절의 숨을 거두신 후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기록에 주목하면서, 특히 거기서 피보다는 ‘물’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그 물이란 ‘생명’과 연결되고, 결국 ‘성령’과 관계된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예수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는 말씀을 상기시키며 여기서 드러나는 성령은 사도행전 등에서 전하는 ‘성령강림절의 (확실한) 성령’이 아니라 죽은 예수의 옆구리에서 ‘남은’ 물이 흐르듯이,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 예수의 무덤에 찾아가서 만난 예수의 부활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는 가운데 그래도 “어떤 다른 종류의 존재”로 있었고, “현존과 부재가 섞여 있는 영역”에서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곳에 현존”하는 방식의 영이라고 한다. 즉 저자가 여기서 새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성령과 부활은 전래의 인습적 성령과 부활 이야기대로 그렇게 분명하고 확실한 성공적 메시지의 것이 아니라 부재이기도 하면서 현존하고, 죽음이기도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현존하는 증언이고, 그것은 그래서 “죽음의 여파 속에서 삶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증인들”의 증거라고 한다.(5)

저자가 여기서 중시하는 두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남아 있다’ 또는 ‘머무른다’의 뜻을 가진 ‘메네인’(menein)과 ‘넘겨주다’라는 뜻을 지닌 ‘파라디도나이’(paradidonai) 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토요일의 성령론과 새로운 부활 이해를 펼치기 위해서 이 두 단어를 여러 맥락에서 다양하게 풀어낸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의 예수가 신포도주를 맛보신 후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의 영(spirit/pneuma)을 넘겨주셨다’라고 증언한 대로 예수의 죽음 후 무언가가 분명히 ‘남겨졌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영’, ‘예수가 죽을 때 내쉰 숨’을 제자들이 ‘넘겨받았으며’, 순교한 베드로와는 달리 ‘남아 있는 자’가 되어서 그 영을 넘겨받은 예수의 애제자는 예수의 죽음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숨이 말하는 진실’을 ‘넘겨주는 일’을 맡은 것이라고 역설한다.

즉 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며,(6) 성령은 “승리하는 힘이 아니라 끈질기게 지속하는 힘이며, … 견디어내는 힘”이고,(7) 그래서 우리는 ‘증언’(부활)은 “죽음과 삶이 만나는 곳인 동시에 죽음과 삶으로부터 생겨나는 증언의 장소이기도 한 독특한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고,(8) ‘생존’은 “남아서 사랑하라는 독특한 명령을 통해 주어진 모습”이기 때문에 “이제 부활한 삶에 대한 개념도 달라”져서, 부활한 삶이란 “승리한 새 삶”(victorious new life)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증언”(persistent witness to love’s survival)이라고 강조한다.(9)

3. 램보 성토요일 성령론의 한계와 불철저성

이렇게 삶과 죽음, 십자가와 부활, 몸과 영의 불이적(不二的) 관계에 대한 전복적 성찰을 하면서 성령과 부활의 보다 진실한 실재에 다가서려는 저자의 노력은 매우 의미 깊다. 원래 이 저술의 시발점이 그러하듯이 특히 오늘날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삶과 죽음이 혼재한 트라우마 현실의 만연 앞에서 이러한 시도는 기독교 복음과 ‘구원’의 진실성과 성실성을 더욱더 신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보기에 저자의 이러한 탐색에는 여전히 불철저하고, 분명하지 않은 측면들이 여럿이 보인다. 그리고 그 가장 주된 원인을 본인은 저자가 여러 차원에서 전통적 기독교 사고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다원적’으로 사고하고 ‘중간성’의 의미를 강조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통 안에 머물러서 그 성령론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기독론 중심주의,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 성령론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그의 영론이 충분히 일관되게 보다 보편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예수가 죽을 때 내쉰 숨(death breath)이 넘겨졌다”라고 서술하면서(10) 이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랑”(remaining love)이며, “남아 있는 성령”(the remaining Spirit)이라고 언급하지만,(11) 동시에 거기서의 ‘영’(숨)이 ‘예수’의 영인지, ‘성령’인지 “불분명”하다고 말하고,(12) 또한, 이 장면에 대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증언을 비교하면서 누가복음의 예수는 자신의 영을 “성부”의 손에 부탁하지만, 요한복음은 예수의 영이 “누구에게 넘겨지는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바로 우리가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13) 본인에게는 저자의 이러한 질문과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이런 분석은 그가 여기 ‘이 세상’과 고통과 몸의 실제와 다원성의 중시-그녀의 트라우마의 렌즈-에도 불구하고 전통 기독교의 완고한 성속(聖俗)이원주의와 개체주의적(인격주의적) 神 이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영’으로서의 실재 이해가 철저하지 못해서 야기되는 것을 보인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많은 영향을 받은 캐더린 켈러의 ‘테홈’(tehom, 심연)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전통적 기독교의 ‘무로부터의 창조 이야기’(ex nihilo)를 극복하고 창조(시작)와 부활도 직선적이고 일회적인 것보다는 반복되고 지속되는 나선형의 ‘되어감의 사건’(continual becoming)으로 이해하는 것을 밝힌다.(14) 하지만 그러한 이해를 분명하게 ‘예수’ 부활 사건에까지 적용시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즉 전통 기독교가 여전히 놓지 않는 ‘부활’ 사건, 그 중에서도 ‘예수’ 부활 사건은 그러한 반복과 지속의 시각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영(테홈)의 반복 불가능한 유일회적 배타성으로 보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성토요일의 성령론은 예수에게서 마지막으로 넘겨진 영이 ‘하느님의 영’인지, ‘예수의 숨’인지, 아니면 생전에 예수가 자신이 가고 제자들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한 ‘성령’인지의 구분을 묻는다.

최근 한 페친이 2001년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산에 모시고 돌아온 며칠 후 꿈속에서 만났던 어머니에 대해서 구술해 주었다. 그 어머니는 평소의 옷차림으로 등에 약수터에서 길러오는 물통에 물을 한 통 지고 오셔서 병원 중환자실 옆에서 쭈그리고 있는 자신에게 작은 소반에 삭힌 고추와 깻잎장아찌를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주며 먹으라고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와 구술자가 밥을 물에 말아서 먹으며 “엄마, 죽은 거 괜찮아?”라고 물으니 말씀은 안 하시고 괜찮다는,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구술자는 살아생전에 가난한 삶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소풍날까지도 텃밭에서 키운 파로 파무침을 해주는 것을 보고, 계란과 멸치 반찬, 김밥을 싸 오기도 하는 친구들과 비교해서 창피한 생각에 소풍을 가지 않겠다고 서럽게 울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파무침, 삭힌 고추가 자신의 사랑하는 일상의 양식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어쩌면 일용할 양식은 이런 밥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하며 그렇게 “깻잎 같은, 무나 배추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들...”의 삶을 반추한다.(15)

본인은 이러한 구술 앞에서 오늘 여기서의 한 평범한 구술자가 ‘영’으로 만난 어머니 이야기가 요한복음 21장 고기 잡는 제자들의 바닷가에 나타나셔서 그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시고 고기와 빵도 마련하여 지친 제자들을 먹이시며 나의 양을 치라는 사랑의 명령을 남기시는 예수의 부활 이야기와 어떻게 다른가를 묻고 싶다. 이 두 그림은 매우 유사하게 진정으로 몸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고, 죽음 속에 남겨진 영의 사랑의 힘으로 큰 고통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다시 삶이 시작되며, 살아남은 자는 그 영의 이야기를 계속 구술하고 전하면서 새로운 삶의 장소가 되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제 5주년이 되어가고 요사이 <생일>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를 다시 찾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여러 유족이 들려주는 ‘죽음 이후’와 ‘영’에 대한 이야기, 그 이전에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들려주는 80년 5월 광주 항쟁에서 희생된 한 소년의 영에 관한 이야기 등에서도 우리는 유사한 메시지를 받는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과 이 ‘평범한’ 사람들의 부활, 요한복음 ‘성서’의 부활 증언과 우리가 오늘 ‘주변’에서 듣는 부활 이야기가 그렇게 다른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16)

‘정통’ 기독교는 지금까지 2천여 년 동안이나 기독교나 서구, 또는 유대인 남성 예수의 존재론적 유일회성을 주장하면서 그 외의 다른 문명이나 종교, 여성과 비성직자 등을 차별하고 소외시켜온 근거로 바로 이 ‘부활’, ‘예수’의 부활을 최종적인 근거로 주로 내세웠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는 근거가 바로 이 부활로서 어느 종교 전통에도 그렇게 예수처럼 몸이 부활하는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묻고자 한다. 이 주창을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앞에서 우리가 본 대로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가져와서 매우 급진적으로 그 정통을 전복시키려는 램보조차도 이 물음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니 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임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본인은 비서구 평신도 여성신학자로서 지금까지 겪어왔던 존재론적 소외와 불평등, 부정직과 의심을 억누를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동아시아적 신유교 전통과 대화하면서 나온 한국적 聖․性․誠의 여성신학이 어떻게 ‘다른’ 부활 이해, ‘다른’ 그리스도 이해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트라우마 현실 앞에서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마나 밝혀보고자 한다.

4. 한국적 聖․性․誠 여성신학의 복수(複數, plural)론적 그리스도론과 ‘구원하는 자기’ (the redemptive self)의 다른 이해

1) 본인은 지금까지 한국적 유교 전통과 대화해온 여성신학자로서 그 대화에서 얻어진 ‘聖, 性, 誠’의 세 언어를 가지고 신론과 기독론, 성령론을 재구성하고자 노력하면서 특히 “聖의 평범성의 확대”를 주창해 오고 있다.(17) 본인은 저자 램보가 많이 의지하는 캐더린 켈러의 ‘테홈’이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아주 좋게 여긴다. 그러나 그 테홈(심연)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서 보다 크게 有와 無, 있음과 없음, 하늘과 땅, 삶과 죽음, 몸과 영 등을 불이적(不二的)으로 통합하는 ‘태허’(太虛)나 ‘무극’(無極), ‘태극’(太極)이나 ‘리’(理) 등의 이름을 선호하면서, 특히 그 모든 이름을 아주 보편적으로 ‘聖’(거룩)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면서 그 속성을 ‘통합성’(the integrity)으로 해석해 왔다.

聖으로서의 하느님은 비록 트라우마의 현실, 성토요일의 지옥에 놓여있는 존재에게도 그가 결코 본래적 거룩과 신적 본질로부터 소외되어 있지 않고, 반복되는 죽음과 고통과 상처의 현실에서도 그 존재의 선험적 선성(善性)과 거룩과 무조건적으로 하늘의 자녀라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선포한다. 그런 통합성의 聖의 영성에서 보면 하느님이나 예수의 영만을 ‘성령’으로 보지 않고, 온 우주에 편재한 영을 같은 거룩의 영, ‘성령’으로 인지하고, 한국적 전통이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이나 ‘생리’(生理, 낳고 살리는 영), 또는 ‘인’(仁, 인간성) 등의 언어로도 강조해온 그 거룩한 영이(18) 트라우마의 현실에 놓여있는 죽음과 고통의 당사자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음을 보다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2) 성토요일의 죽음과 고통, 상처, 즉 트라우마는 우리 삶에서 진정 ‘타자’이다. 같이 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고, 항상 억누르고자 하고, 단번에 처치하고 싶지만 우리 삶이 다하는 동안 ‘남아서’ 어떻게든 우리는 그와 관계해야 한다. 본인은 聖․性․誠의 여성신학에서 두 번째 중간의 性을 ‘타자성’(the otherness)으로 해석하면서 우리의 신적 본래성인 통합성의 聖과 함께 이세상성, 몸성, 섹슈얼리티, 여성성 등을 지시하는 언어로 말해 왔다. 그 性은 우리가 먼저 ‘타자’로 취급하지만, 그 타자야말로 진정 우리 거룩(聖/神)의 현현의 장소임을 밝히는 의미이다.(19)

오늘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몸의 욕망과 욕구, 특히 섹슈얼리티를 이 性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사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이 性은 보통 부정적으로 이해되고, 정신과 영적 존재로서의 우리 대신에 어두운 몸적 속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이 性이야말로 우리가 저버릴 수 없고 억누를 수 없는 인간성의 또 다른 핵심이고, 그 性과 잘 관계해야지만 우리 삶과 정신적, 영적 이상이 유지, 신장되는 것을 알아간다. 그러므로 본인은 이 性이라는 단어로 램보가 트라우마에 대한 탐색에서 다각도로 밝혀준 대로 죽기까지 계속해서 다시 등장하면서 우리가 그와 관계 맺어야 하는 ‘트라우마’를 표시하는데도 부족함이 없다고 여긴다.

더군다나 신유교 전통(性理學)에서 본래 이 性이란 결코 부정성이 아니라 바로 하늘의 태극(聖)이 우리 안에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재해 있는 하늘적 씨앗(性)을 드러내는 단어로 쓰여 왔다면, 램보가 죽음의 성토요일과 트라우마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기독교의 부활과 성령 담론을 더욱 더 삶(긍정성)과 죽음(부정성)의 긴밀한 관계로 나타내고자 할 때 이 한국적 性이야기가 더 적실해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性이야기는 또 다른 기독론, 또 다른 인간론과 트라우마론으로서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램보가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둘 사이의 연결을 충실히 밀고나가지 않는 것과는 달리 보다 보편적이고 분명하게 참으로 인간적인 것 속에 하늘이 남아 있다는 것을 지시해 주고, 부활의 장소가 바로 이 인간적인 것, 트라우마, 우리의 몸과 섹슈얼리티라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보스턴 대학교 셸리 램보 교수 ⓒGetty Image

여기서 들려주는 부활과 새로운 시작과 영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트라우마의 현실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 현실에서 우리로 하여금 ‘중간의 길’ 위에서 남아있는 하늘(性)의 증언자가 되도록 한다. 사실 단순히 보더라도 우리는 우리 性을 통해서 다음 세대를 낳고, 전하고, 증언한다. 그래서 이런 모든 사실과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모두 한편으로 性의 존재라면, 2천 년 전 유대인 청년 예수만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이제 ‘복수론적(複數論的)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트라우마(性)가 우리 부활의 장소라면 ‘거룩’(聖)의 보편성(평범성)뿐 아니라 ‘부활’의 보편성도 말해져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보편성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서구 여성신학자 램보는 켈러와 함께 ‘부활(시작)’의 복수성은 인정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수성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우주적 ‘블랙홀’을 인간 모두가 그 몸의 보편적 감각으로 함께 인식하는 새 시대가 되었다면 그들도 서구적 전통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3) 램보는 성령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며, 활동으로 현존한다”라고 하면서 그 힘은 “지속하는 힘”이며 “견디는 힘”으로 밝혔다.(20) 그리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낳는 성령론적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성령은 형체(form)를 만들어 내는 숨”이라고 지시했다.(21) 이런 이야기는 한국적 聖․性․誠의 여성신학이 세 번째의 誠을 ‘지속성’(the endurance/ continuity)으로 풀면서 한국적 성령론으로 이해하는 것과 잘 통한다.

유교 전통의 『중용(中庸)』은 ‘誠(지속성)은 하늘의 길이고, 그 誠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하면서 ‘誠(지속성)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不誠無物) 라고 했다. 또한 한국의 신학자 윤성범은 오래전 그의 ‘誠의 신학’에서 중용적 ‘誠’을 요한복음 1장의 ‘말씀(言)이 육신이 되었다(成)’라는 의미로 풀어내면서 誠(지속성)을 그 신학적 사고의 핵심으로 삼았다.

한국적 트라우마 세월호 이야기는 참으로 평범했던 변방 지역 어머니들의 지속성(誠)으로 인해서 우리 시대의 부활과 구원과 남은 사랑의 이야기가 새롭게 그 형태를 이루어가고 있는 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끔찍한 트라우마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성토요일’의 영적 진실이 마련되고 있고, 복수(複數)론적 그리스도론이 증거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살펴보면, 켈러와 램보의 새로운 성령론과 부활 담론이 동아시아의 誠 이야기로 많이 접근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와 신학이 그러한 고유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구 신학에 대한 해바라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오늘 한국 교회가 스스로가 고유한 종교적 전통과 신학적 탐색 안에 서구적 ‘정통’ 신학의 승리주의와 제국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보물들을 풍성히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에 대한 탐색이 우리의 긴요한 신학적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의 현실 기독교와 목회 현장은 오히려 여기서 램보나 켈러 등이 비판하는 서구 교회의 ‘정통주의’보다도 더욱 경직되어 있고, 폭력주의적 성취지상주의에 차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4) 본인은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간단히 살펴본 한국적 聖性誠의 여성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유교와 기독교 대화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기독교 여성신학자 램보가 비판한 ‘구원하는 자기’(The Redemptive Self)의 담론을 ‘다르게’ 해석해 보고자 한다. 램보는 책 마무리에 성인발달심리학자 맥아담스(Daniel P. McAdams) 교수의 미국 성인 삶의 내러티브 연구를 가져와서 트라우마와 성토요일의 죽음과 실패에 대한 의식이 없는 미국식 기독교의 ‘구원 이야기’가 어떻게 미국인들의 의식과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밝히고 있다.

맥아담스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자기 삶 이야기는 항상 ‘구원하는 결말’(redemptive ending)의 ‘구원하는 자기’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이 개척정신과 도전의식의 미국인들 정체성의 최고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최악의 단점”이 되어서 성공하기 위한 폭력과 자기애를 정당화하고, 강한 개인주의적 경향과 특별함에 대한 요구와 선택받았다는 믿음의 “미국 우월주의’를 강화했다고 한다. 그것이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침략을 묵과하기도”하고, 삶 속에 “일종의 학대”를 유발하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극히 해로운 것일 수 있다”라는 것이다.(22)

사실 이러한 지적은 특히 오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요사이 패권주의적 미국과 사사건건 씨름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로서는 매우 수긍이 가는 것이고, 또 경청해야 하는 연구이다. 하지만 본인은 오늘 한국 기독교의 과도한 기독론 중심주의, 서구 바라기와 배타적 그리스도 우상주의 등을 마주하면서 오히려 앞에서 살핀 대로 복수론적 기독론, 트라우마와 고통의 현실에서도 견디며 스스로를 이루어나가는 誠으로서의 성령론 이해에서는 이렇게 스스로의 주체성 속에 내재하는 지속하고, 형태를 이루고, 죽음과 고통 속에서도 남겨진 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성령의 힘으로서의 ‘구원하는 자기’의 담론이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담론이 가지는 사각지대에 대한 의식도 있지만, 미국과 한국 교회의 처한 정황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래서 한국에서는 미국식 정통의 구원 이야기가 유교나 불교 등 아시아 종교 전통과의 대화 속에서 ‘다른 정통의 모습’(polydoxal possibility)으로 실행될 수 있고, 또한 그것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 기독교가 서구 남성 그리스도 우상주의에 빠져서 한편으로는 앞에서 맥아담스 교수가 지적한 미국식 정체성의 해악이 심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 기독교가 제시하는 ‘구원하는 자기’ 담론보다 더 오래되고, 특히 그것이 큰 우주적 공동체 의식(天下爲公)과 깊이 연결되는 자기 구원의 이야기를 보유하고 있는 문명의 나라로서 그 진정한 의미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고 본다. 참된 구원하는 자기의식을 잊고서 외부로부터 전달받은 편협한 구원론과 노예성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에게 그래서 본인은 진정으로 복수론적 그리스도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또 다른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나름으로 새롭게 상상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5. 마무리하는 말

지난 주일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안정공원 부지 내에서 열렸던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 예배에 가보니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세월호 유족의 엄마들이 어떻게 새로운 그리스도로 부활해 가는지가 보였다. 이제 세상이 세월호 유족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의식으로 성토요일의 길을 가고 있는 유족들이, 그 트라우마와 더불어 알게된 생명과 진실의 이야기가 오히려 우리와 한국 사회를 살려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직 겨우 그렇게 희생된 아이들의 기억을 함께 모으기 위한 추모관 건립을 위한 부지만 마련된 상황이고, 앞으로도 그 추모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무척 험난해 보이지만, 그녀들은, 그 유족들과 지금까지 지속해서 함께 해온 시대의 증인들은 여전한 슬픔 가운데서도 떳떳했고, 당당했으며, 고통 속에서 다져진 모습으로 오히려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한편 이렇게 예배드리는 곳 바로 건너편에는 이들 세월호 유민들을 그만두라고 하고 그들이 겪은 것이 개인 여행 참사라고 호도하면서 쫓아낸 ‘은혜와 진리 교회’가 높다랗게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지만, 이미 해체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본 책의 저자가 꼼꼼하고 성실하게 밝혀준 성토요일의 성령론이 어떻게 한국 세월호의 트라우마 현실 속에서도 그 빛과 진실을 드러내는지를 잘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다시 한번 감사히 여기며, 세월호 유족들에게뿐 아니라 우리 교회와 사회에 진실한 ‘위로의 책’으로서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미주
(미주 1) 작년에 출판한 본인의 책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서울: 동연, 2018)가 있다. 여기서도 세월호라는 끔찍한 재난을 겪고 난 이후의 유족과 한국 사회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견지할 수 있을까의 물음에 천착하면서 특히 ‘부활’과 ‘몸의 죽음’, ‘영’ 등의 물음과 더불어 전통 신론과 기독론의 재구성을 탐색했다.
(미주 2) 김숨,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일본군 위안부 김복동 증언집』, 현대문학, 2018.
(미주 3) 변선환 아키브 편, 『3.1정신과 ‘以後’기독교』,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9, 16-17쪽.
(미주 4) 이은선, “페미니즘 몸담론과 역사적 예수 그리고 다원주의적 여성 그리스도론”,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聖․性․誠의 여성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4, 101-102쪽.
(미주 5) 셰리 램보 지음, 『성령과 트라우마-죽음과 삶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 박시형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9, 179쪽.
(미주 6) 이은선, “세월호 참사와 우리 희망의 근거: 세월호 1주기, 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인가?”, “부활은 명멸(明滅)한다: 4.16 세월호 2주기의 진실을 통과하는 우리들”,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 117-128; 129-164.
(미주 7) 셰리 램보 지음, 『성령과 트라우마-죽음과 삶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 214쪽.
(미주 8) 같은 책, 234쪽.
(미주 9) 같은 책, 235쪽.
(미주 10) 같은 책, 228쪽.
(미주 11) 같은 책, 286쪽.
(미주 12) 같은 책, 229쪽.
(미주 13) 같은 책, 252쪽.
(미주 14) 같은 책, 266쪽.
(미주 15) https://m.facebook.com/이규원, 4월 10일.
(미주 16) 이은선, “세월호, 고통 속의 빛, 영생에 대하여”,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 104-111쪽.
(미주 17) 이은선, “종교문화적 다원성과 한국 여성신학”,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 종교聖․여성性․정치誠의 한몸짜기』,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9쪽 이하.
(미주 18) 이은선, “한국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의 미래”,『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6, 179쪽 이하.
(미주 19) 이은선, “여성으로 종교 말하기”,『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聖․性․誠의 여성신학』, 46쪽.
(미주 20) 셰리 램보, 같은 책, 214쪽.
(미주 21) 같은 책, 258쪽.
(미주 22) 같은 책, 299-304쪽.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세종대)leeus@sejong.ac.kr

[전자책] 성령과 트라우마 | 셸리 램보 | 알라딘

[전자책] 성령과 트라우마 | 셸리 램보 | 알라딘


[eBook] 성령과 트라우마
셸리 램보 (지은이),박시형 (옮긴이)한국기독교연구소2020-01-31
원제 : Spirit and Trauma: A Theology of Remaining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책소개
트라우마에 대한 최근 연구들에 근거해서 십자가와 부활, 구원을 재해석하고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의 관점에서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새롭게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성토요일의 심연에 초점을 맞춘다. 발타자르의 설교들, 스페이어의 지옥에 대한 환상들, 요한복음의 막달라 마리아와 애제자에 관한 본문들, 캐서린 켈러의 성령 해석 등에 근거해서,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제시한다.

숨, 위로자,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성령의 활동을 설명하고, 성령의 지속적인 목격과 증언을 사랑과 동일시한다. 죽음과 삶 사이의 증언이 말하는 진실은 사랑이 남았고, 우리가 그 사랑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끔찍한 고통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저자는 '끈질기게 버티는 힘으로 남아 계신 성령의 사랑'을 강조한다.


목차


옮긴이의 말 __ 7
서문 (캐서린 켈러) __ 13
감사의 말씀 __ 19

서론 __ 23
트라우마 27 / 신학 29 / 방법 37 / 개요 43 / 결론 46

1장. 트라우마를 증언함 __ 49
트라우마라는 렌즈 54 / 증언 62 / 트라우마를 이론화하기 70
트라우마의 증언과 신학 78 / 증언의 신학적 모델들 93

2장. 성(聖)토요일을 증언함 __ 107
성토요일의 발견 114 / 성토요일을 기록함 124
성토요일을 신학화하기 142 / 십자가 형태의 증언 153
중간의 성령을 향하여 160

3장. 요한복음의 증언 __ 177
막달라 마리아 180 / 애제자 197 / 고별 214
남아 있기 218 / 넘겨줌 225 / 중간의 영을 향하여 230

4장. 중간의 성령 __ 237
생명의 영 242 / 심연의 성령 244 / 성령은 숨이다 248
영은 시간 속에서 다르게 움직인다 265
성령은 사랑이다 274 / 사랑이 남았다 281 / 결론 288

5장. 사랑 안에 남아 있기 __ 295
구원하는 자기 299 / 2008년 1월, 뉴올리언스 305
러브스토리 313 / 중간으로부터의 구원 319
저류를 추적하기 329 / 삶을 느끼기 331
신학의 증언 335 / 사랑 안에 남아 있기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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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28~29 트라우마는 죽음과의 만남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세계와 그 속에서의 익숙한 삶의 모습을 산산이 부서뜨린 끔찍한 사건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에서부터 단절이 발생한다. 한 사건은 모든 것이 철저히 끝장난 것으로 생각되어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생존’이란 용어는 트라우마 사건 이후 삶이 중지된 상태를 말한다. 트라우마 사건은 그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된다. 삶은 완전히 다르게 정의되며, 불확실하고 상처받기 쉬운 트라우마 이후의 삶은 늘 죽음이 함께 있음을 뜻한다. 접기
P. 32 나는 신학이 말하는 죽음과 삶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고, 이를 통해 트라우마의 고통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구원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트라우마 속에서도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의 현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구원 말이다. 삶과 죽음을 양극단에 놓는(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고 보는?옮긴이) 해석으로는 이런 구원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트라우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삶 속에 남아 있는 죽음, 혹은 삶 속에 만연한 죽음을 설명해야만 한다. 접기
P. 33 트라우마 경험은 죽음과 삶의 관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구원 이야기들에 도전한다. 죽음은 완결된 어떤 것이 아니고, 삶도 새로운 시작이나 출발이 아니다. 삶과 죽음을 서로 반대되는 양극단에 놓은 채 구원 내러티브를 해석하는 한, 트라우마 경험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원 내러티브는 대개 생명(부활)이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이야기로 단순하게 해석된다. 이런 관점이 어떤 약속이나 희망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생명이 죽음을 극복했다는 단순한 해석은 위험하다. 이런 해석은 새 것이 옛 것을 대신하고, 선이 악을 무찌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이 마무리되고 새 삶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관점은 곤경에 처한 현실에 대해 얼버무리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앨런 루이스(Alan Lewis), 코넬 웨스트(Cornel West)와 같은 신학적인 관점을 아우르는 종교학자들은 죽음(십자가)과 삶(부활)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처럼 성급하게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그리스도교 승리주의(triumphalism)와 대체주의(supercessionism)가 될 수 있다. 만약 구원의 생명이 죽음을 이기거나 어떻게든 죽음이 종결되는 행복한 승리의 끝맺음으로 그려진다면,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경험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묻혀 버릴지도 모른다. 접기
P. 41 트라우마가 주는 통찰은 치유와 구원을 신학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해석학적 렌즈를 만들어 낸다. 그리스도교 내러티브 속 죽음과 삶의 관계는 이 렌즈를 통해 보다 다양한 빛을 발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신학이 반드시 탐구해야 할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 신학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한 열쇠다.
P. 43 2장에서는 죽음과 삶 사이에 위치한, 신학적으로 중간의 날이라 부를 수 있는 성(聖)토요일을 살펴보려 한다. 나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 스위스 출신 가톨릭 신학자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역자주))와 아드리엔느 폰 스페이어(Adrienne von Speyr, 1902-1967, 스위스 출신의 가톨릭 의사이며 신비주의 신학자로서 60권 이상의 책을 썼다.?역자주)의 신학을 통해 이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이들의 신학은 성토요일의 독특한 구원 메시지를 증언하기 위한 중간 영역을 만들어 낸다. 이 렌즈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3장에서는 십자가와 부활 중간에서의 제자들의 활동과 이에 대한 요한복음의 해석을 살펴보려 한다. 이 렌즈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두 경우 모두, 죽음을 넘어서긴 했지만 살아 있다고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찜찜한 사건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이 쉽지 않음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이런 해석은 삶 속에 지속되는 죽음의 흔적들을 목격하고 증언해야만 하는 복잡한 상황을 드러낸다. 트라우마라는 렌즈를 통해 앞서 언급한 텍스트들을 해석해 낼 때, 그 텍스트들은 살아남은 삶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생존의 텍스트가 된다. 성서와 신학 텍스트들에 대한 익숙한 해석에서 벗어날 때 텍스트가 증언하는 측면들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특정한 해석들을 유지하기 위해 묵살되고 묻혀진 측면들을 추적할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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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셸리 램보 (Shelly Rambo)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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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서, 트라우마와 폭력에 대한 종교적 응답에 초점을 맞추어 그리스도교 전통을 탐구하며, 최근에 Post-Traumatic Public Theology (Stephanie Arel과 공저, 2016)와 Resurrecting Wounds: Living in the Afterlife of Trauma (2017)를 발표했다. 박시형 목사는 서강대학교 수학과와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Boston College에서 영성 전공으로 신학석사를 마쳤다. 박시형 목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는 공동체... 더보기

최근작 : <성령과 트라우마> … 총 10종 (모두보기)

박시형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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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트라우마에 대한 최근 연구들에 근거해서 십자가와 부활, 구원을 재해석하고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의 관점에서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새롭게 제시한 책이다. 전통신학의 십자가 해석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고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희생(죽음) 중심의 구원론을 만들었으며, 부활과 구원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 교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죽음을 이긴 부활의 승리”로 해석하지만, 이런 해석은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부응하며 미래의 희망과 성공을 약속하지만, 승리에 대한 보장이 없는 트라우마의 끈질긴 고통을 외면하며, 폭력을 정당화할 위험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곧장 부활로 직선적으로 이어지는 “허울 좋은 구원”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가장 큰 적”이라고 보는 저자는 “많은 이들에게 삶은 죽음을 이긴 승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삶은 죽음 한가운데서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며, 그들의 삶 중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성토요일의 심연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발타자르의 설교들, 스페이어의 지옥에 대한 환상들, 요한복음의 막달라 마리아와 애제자에 관한 본문들, 캐서린 켈러의 성령 해석 등에 근거해서,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제시한다. “성토요일의 성령”은 죽음과 삶 사이에 아주 미약한 모습으로 현존하며 예수의 죽음과 제자들의 활동을 목격하고 증언한다. 저자는 숨, 위로자,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성령의 활동을 설명하고, 성령의 지속적인 목격과 증언을 사랑과 동일시한다. 죽음과 삶 사이의 증언이 말하는 진실은 사랑이 남았고, 우리가 그 사랑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끔찍한 고통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저자는 “끈질기게 버티는 힘으로 남아 계신 성령의 사랑”을 강조한다.

한국 사회는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5.18 등 수많은 민간인 학살사건들로 인한 트라우마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쌍용차 사태, 용산 참사, 천안함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전 국민적인 트라우마, 그리고 OECD 최악의 산재발생률과 자살률이 보여주듯 트라우마가 만연한 사회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풍과 가뭄, 식량난과 식수난, 미세먼지, 지진 등 자연재해 역시 더욱 증가하고 있다. 때로는 평생 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트라우마에 대해 정신의학이나 사회적 관점에서 연구한 책들은 많이 출판되었지만, 트라우마 경험을 근거로 기본 교리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구원론을 재검토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질문들
“아우슈비츠 이후” 시대에도 여전히 하느님을 “역사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이 상징하는 “우주의 지배자 하느님”은 아직도 살아 계신가?
“세월호 이후”에도 여전히 “십자가의 죽음(희생)을 통한 구원”을 선포할 수 있는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잔인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왜 성금요일의 어둠에서 벗어나 서둘러 “부활의 승리”를 찬양하려 하는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구원론은 왜, 또 어떻게 온갖 트라우마 경험들을 외면해왔는가?
끔찍한 트라우마 경험들은 전통적인 신론과 구원론을 어떻게 재구성하도록 만드는가?
왜 트라우마는 신학담론의 한 문제가 아니라 구원 신학의 재구성을 위한 “열쇠”인가?
예수의 갑작스럽고 참혹한 죽음 앞에서 제자들은 어떤 트라우마를 겪어야만 했는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에서 시력과 의식이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 이유는?
자기 인생이 “죽음을 이긴 승리”가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승리”란 무엇인가?
저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 대신에 “성토요일의 성령”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저자가 몰트만처럼 성령을 “생명”과만 연결시키지 않고 죽음과도 연결시킨 이유는?
“성토요일의 성령론”이 강조하는 “남겨진 사랑”과 증언, 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인가? 접기






저자의 말대로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트라우마는 외면당하기 쉽지만, 트라우마를 외면하는 부활 승리의 구원론은 억압자의 논리가 될 뿐이지, 삶 속에서 끈질긴 죽음을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더욱 절망시키는 구원론이 된다.
김준우 2019-04-03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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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담아낼 수 없지만 증언해야만 하는 진실


허울 좋게 반짝거리는 구원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가장 큰 적일 것이다.
이 구원은 약속만으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을 약속한다.
많은 이들에게 삶은 죽음을 이긴 승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삶은 죽음 한가운데서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며, 그들의 삶 중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125쪽)
메시아라 믿었던 스승이자 친구의 비참한 죽음, 예수를 저버린 자신들에 대한 죄의식, 오지 않는 하나님 나라와 재림, 전쟁으로 사라져버린 고향, 자신들을 적대하는 동포들, 의지했던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 탄압속에 죽어가는 신앙의 친구들.....초대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상처와 깊은 트라우마는 단순히 신앙으로 극복했다는 한마디로 정의 될 수 있을까
성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불과 하루 사이로 이야기 하지만 제자들의 삶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방황하며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으로 힘겨워 하지 않았을까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 상처는 몸 안에 영구적으로 각인된 흔적이다.
그 영향력은 영속적이고 언제든지 현재로 침입할 수 있다
죽음과 부활사이 침묵의 날, 성토요일이야말로 상처입은 자들을 경험하고 만나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날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내려왔고, 그 사랑이 가는 길에는 고통과 승리, 죽음과 삶이 온통 뒤섞여 있다.
성토요일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의 중요한 대목이다.
성토요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의 인식할 수 없는 곳 즉 죽음과 부활사이, 지옥 깊숙한 곳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125쪽)
부활 신앙으로 대표되는 '승리주의' 신학이 우리에게 제시했던 고통에 대한 빈약한 대답은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들을 위로하기는 커녕 비난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 남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님에 대해, 증언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십자가에서 곧바로 부활로 직행하는 기독교 신학의 구원론은 트라우마 사건과 치유 사이의 중간 단계에서 생존자들이 겪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지지해줄 수 없는 구원론이다.
트라우마 생존자가 경험하는 삶은 새로운 것도, 더 나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활이 죽음을 정복하고 승리한 삶으로 선포되는 한, 트라우마의 고통이 존재하는 현실은 묻혀 버린다.
우리는 이런 방식의 부활 선포가 죽음의 여파 속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침묵하고 그 경험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트라우마는 죽음과의 만남이다.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세계와 그 속에서의 익숙한 삶의 모습을 산산이 부서뜨린 끔찍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에서부터 단절이 발생하고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렵고 힘겨운 일이다.
죽음과 부활 사이, 그 중간에서 생존을 위해 상처를 증언하고 되짚고 해석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려고 한다.
'중간(the middle)이라고 비유하여 부르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 이 중간은 삶도 죽음도 아닌, 생존이라는 당혹스러운 영역이다.
그동안 신학은 죽음과 삶의 사건에 집중한 나머지 이 중간이라는 영역을 다루지 못했다.
중간은 위태로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서 가려지거나 무시되고 시간과 몸과 언어가 중간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에, 중간을 증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이 중간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한다.
고통경험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구원의 성급함에 반대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교 전통의 중심에 자리한 죽음과 부활이라는 내러티브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나는 신학이 말하는 죽음과 삶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고, 이를 통해 트라우마의 고통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구원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트라우마 속에서도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의 현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구원 말이다.
삶과 죽음을 양극단에 놓는(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고 보는 - 옮긴이) 해석으로는 이런 구원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트라우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삶 속에 남아 있는 죽음, 혹은 삶 속에 만연한 죽음을 설명해야만 한다.(35쪽)
생존은 한사람이 죽음을 넘어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늘 삶 안에 죽음이 잔존해 있는 것이고, 삶은 죽음의 빛 안에서 재형성되는 것이다.
죽음의 경계와 삶의 경계를 모호하게 보는 저자의 관점은 피해 생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트라우마 경험을 상처가 아니라 증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상처는 죽음을 증언하는 동시에 삶의 가능성을 증언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부활을 첫번째로 경험한 마리아를 보여준다.
성토요일, 내 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오로지 극심한 피로만 느꼈다.
영혼의 상태.
그녀는 그 고통을 신체적인 고통보다는 심리적인 고통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극도의 고독, 버림받음, 포기가 지옥에 존재한다.
그녀의 경험은, 지옥에 존재하지도 않고 그녀가 손에 넣을 수도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지옥의 고통은 그녀의 모든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마치 성자가 성부의 사랑으로부터 끊어졌듯이. 지옥은 고통을 떠맡는 곳이 아니라, 버려짐을 견디는 곳이다.(115쪽)
깊은 트라우마 속에서 예수를 만난 마리아의 증언은 누구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 증언은 미끄러지고, 받아질 수 없고, 지연된 것이다.
우리의 인지구조에서 해석될 수 없는 경험이고 이들이 증언을 해도 우리는 그 증언을 알아차릴 수 없는 맥락에 서 있을 때가 많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증언을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거기에 있었으나 거기에 없었다.
그는 그녀가 전에 알지 못하던 방식으로 현존한다.
마리아에게 트라우마의 경험은 상처가 아닌 증언이 된다.
트라우마에 대한 통찰들은 또한 예수라는 인물 대신에, 증언이라는 행위에 의해 드러나는 성령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모델들은 예수가 떠나고 난 뒤, 예수의 부재로 인해 형성된 증언의 방식들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며, 성령이 하는 증언과 성령에 대한 증언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전환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증언을 성령의 증언과 연관해 성령론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어떤의미가 있을까?
많은 경우에, 우리가 성서 속에서 보는 증언은 지금 제안된 해석들보다 훨씬 덜 직접적이다.
만약 증언이 말로 전달하기 어렵고, 간접적이며,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지도 확실치 않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교의 증언에 대한 개념이 인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우리의 관심이 증언의 내용이 아니라 증언하는 행위 자체로 옮겨지고, 목격된것들은 계속해서 생략된다면 어떻게 될까?
트라우마라는 렌즈는 선포되어야 하는 분명한 진실이 아니라, 우리가 담아낼 수 없지만 증언해야만 하는 진실을 주목하게 한다.
- 접기
사람 2020-07-28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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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성령과 트라우마


antibaal 2019-10-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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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트라우마: 남겨짐의 신학> 요약 및 평론

Spirit and Trauma: A Theology of Remaining by Shelly Rambo | Goodreads






Spirit and Trauma: A Theology of Remaining
Shelly Rambo, Catherine Keller (Foreword)

3.99
237 ratings18 reviews

Rambo draws on contemporary studies in trauma to rethink a central claim of the Christian faith: that new life arises from death. Reexamining the narrative of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from the middle day--liturgically named as Holy Saturday--she seeks a theology that addresses the experience of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uma. Through a reinterpretation of "remaining" in the Johannine Gospel, she proposes a new theology of the Spirit that challenges traditional conceptions of redemption. Offered, in its place, is a vision of the Spirit's witness from within the depths of human suffering to the persistence of divine love.

GenresTheologyPsychologyNonfictionSpiritualityReligionChristianChristianity



200 pages, Paperback

First published September 2, 2010
Book details & editions



Community Reviews

3.99
237 ratings18 reviews


Kate Davis
602 reviews54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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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5, 2017
Rambo creates a truly trauma-informed theology. No, it's better than that: she reveals the ways that Christian scripture have always been steeped in trauma, and that hermeneutics is a way of processing and responding to trauma. She moves beyond "Christus victor" -- Christ's victory over death -- into a theology of the cross that actually wrestles with death and what it means to watch your God die. She invites us into the post-trauma reality of Holy Saturday, and shows that this reality doesn't go away just because resurrection occurs; indeed, it can't go away because of the effects of trauma.

Highly recommend for anyone harmed or neglected by the church's abuse of power or its insistence that all things be happy -- you will find healing here, and a God who makes sense even in pain.

I recommend it even more highly if you're in church leadership. Even if you don't think you've been traumatized (which...read Serene Jones's Trauma & Grace after this one), this will help form your theology for those who have. Which, let's be honest, is the majority of people coming into a church who aren't just there for the social norm/country club game of it.
nf-theology nonfiction theme-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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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e Cober-Lake
35 reviews1 fol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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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 2022
Shelly Rambo's project in *Spirit and Trauma* is a worthy one: she seeks to articulate a theology that will move beyond traditional Christian narratives of the straightforward triumph of life over death in order to account for traumatic experience and the ways in which its aftermath disrupts that opposition. To do so, she wants to reclaim Holy Saturday, the gap between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as a space for a theology of the middle. She usefully points out that on Saturday the disciples did not yet understand that Christ would rise, so it was not at all clear that there was a way forward in the wake of His death. Yet Rambo is able to trace some movements of hope even in the midst of suffering, a hope she links to the work of the Holy Spirit. By shifting theology's focus from Christ to Spirit, she reorients us toward that which remains in the wake of disaster, and for her, that remainder is love. Not a triumphant love, she is careful to remind us, but a weary love that was not able to be exhausted even by death. Rambo's final move is to link this remaining to Jesus's exhortation to his disciples in the book of John to "abide in me" and "remain in my love." Through readings of the passion account that center on the handing of Jesus's final breath over to the witnesses at the cross, she connects the persistence of love to the mission of Christ's followers. In the aftermath of the cross, empowered by the love that remains, we are to live in a new way. Life cannot be the same after a traumatic loss, but it can be renewed.

The strength of Rambo's theological construction lies in her sensitivity to the pain of trauma survivors and all those who have suffered. The church is not always good at making space for grief or lament. Rather than sitting with others in their pain, many Christians rush them from crucifixion to resurrection. An over-emphasis on the triumph of life over death can feel hollow when there has been significant loss,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trauma, which can make it difficult for survivors to even begin to imagine a meaningful future. In this sense, Rambo's work demonstrates a pastoral heart and real-world implications for the church.

However, I found the academic apparatus of the book somewhat clumsy. Rambo grounds her argument in the work of Hans Urs von Balthasar and Adrienne Speyr, which relies heavily on spiritual visions of hell. Although some of Rambo's guiding images come from this work, it felt like an unstable basis for me personally. While she attempts to trace some of these images in the gospel of John, I found her close readings to be a reach in some cases, and only tangentially related to the main argument in others. Furthermore, the argument itself was quite repetitive. It would perhaps have been more suited to a long article than to a book-length treatment.

I was also left with a few theological questions. While Rambo successfully convinces readers that a view from the middle is important, she doesn't really address the meaning of the resurrection. Granted that Christ's victory gets plenty of pages in theology books, Rambo is so concerned with the elision of Holy Saturday that her work ends up eliding Easter Sunday. Though we do suffer, and though our suffering should not be minimized or rushed in any way, and though our healing on this earth may not always be complete, Jesus nevertheless does promise us meaningful restoration in Him. While we may overlook Holy Saturday at our peril, we aren't meant to get stuck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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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 Nolan
889 reviews13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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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 2018
Dense but good read on a Holy Saturday reading/view of trauma.
2016-books non-fiction religion-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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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61 reviews2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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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1, 2020
It seems fitting to have finished this book on 9/11, because Shelly Rambo makes such a compelling case for how the Spirit addresses is with a breath of love in the experience of trauma. On this September 11th anniversary, our recall of the violence and tragedy of that day is traumatically now intertwined with the loss of 63x the loss of life in the United States (which is less than a quarter of deaths around the world) due to the coronavirus and its sordid, irresponsible mismanagement.

In this thoughtful, provocative book Rambo calls us away from the easy straight line rush from easy grace that cheapens the Good News represented by the Easter message. Rambo rightly critiques the church for resolving the trauma of what follows Good Friday with our insensitive and unimaginative skip to all is well because of Jesus’ resurrection. She compares the experience of those who, on the Saturday between Good Friday and Easter Sunday, relive the broken emptiness of their friend’s death. She teases out the lost loneliness of the Jesus’ followers as parallel to the traumas that are experienced in our present times. Then, she moves the reader to look for the promised Holy Spirit, that redeems the traumatizes not with dramatic miracle but with breath and love. It’s a fascinating theological move and helpful as we consider how we can find similar help as we endure the traumas of disease, violence, racism and divisions at present.

While highly appreciating the book, I also believe that the author overly uses theological jargon and ends up sounding repetitive. I would have liked to have her relate her presentations to present situations as she drew out the significance of seeing the world through lenses of Holy Saturday and what it means to “remain,” by the persistence of redemptive love. I live near a retreat center for soldiers who suffer from PTSD. How might the ideas of the book work in their treatment? Rambo makes reference to large social concerns regarding race and gender. I would have liked to see her ideas applied in real cases instead of her larger generalizations and theory. Certainly, her vision was to present a theological thesis, which she does well. Because her end is to lift up flourishing as an alternative to our more hackneyed ideas of salvation, such practical applications seem more urgently necessary.

There is much to gain from this book, but it also begs further wor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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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erine
493 reviews72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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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1, 2021
“Holy Saturday provides a vocabulary consonant with the experience of a survivor. It is a place of alienation, confusion, and godforsakenness. But it is also a place that is continually covered over, dismissed, rendered unintelligible, and therefore subsumed under operative narratives of the progression of death to life.”

It is appropriate that I don’t fully agree or resonate with Rambo’s conclusions, but what happens in the middle of this book is life-changing. I read this over the course of a year because if I think about Holy Saturday for more than 30 seconds at a time, I need to lie down. I learned so much about God here. I will be thinking about this book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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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8 reviews10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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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4, 2016
It had so much potential, and even insight (Holy Saturday), but was fatally marred by process theology, a need for heterodox innovation, and "edginess." Only the perspective of trauma and a few minor insights prevented the book from being a total bomb; its best feature has been giving me a new lens of application to go re-read Molt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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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e Pequette
43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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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 2020
There is a lot to wrestle with here theologically. And I will be thinking and pondering this one for awhile I think. I wrestle because it is a new way of reading about redemption. Redemption from the middle of trauma. It is not a recovery but a redemption of remaining in God's love after the death in traumatized. God's spirit of love helps us to remain. The Spirit remains and speaks to the depths of the often unspeakable disoriented reality of what comes after trauma. I have been on a bit of a journey of understanding the theology that I grew up with or the theology of my adult life and weather it actually speaks to the reality of lived experience. How does the reality of a broken world and broken people meet the God of our theology? Have I understood the God of the bible correctly? Do I have just a victorious God that heals the world? But I don't see this in our world all the time. What is our role in this as a people of God? And I think while true, I am tired of saying well I guess God is just a mystery. So I have been saying for a little while that I can either say well, I guess there is no God or maybe the God I have isn't the actual God and I need to dive deeper into the story of God. I have chosen the later. I think this book was a book that helped me to imagine a theology that matches lived experience. I will wrestle with how she gets there. But it will be a good wrestling. And I will continue to wrestle with books like this in hopes of coming to a new understanding of what kind of God we actually have in the Bible that deeply involves out lived experience. Yes, God is a mystery and we can never truly know exactly all the layers of who God is. But God is a God who remains in love in our often shattered lives. I will to continue to dig and wrestle into these dep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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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ck
907 reviews24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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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9, 2021
Reflecting on the theology of Von Balthasar regarding Holy Saturday, Rambo develops a theology of the middle to help understand the experience of trauma which she describes life that carries death with it. Overall, I found the book overly abstract, and hard to follow. The theological dialogue in which she engages is one I was not equipped to follow. So I ended up skimming the last couple chapters
personal-growth theological violence-non-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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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adam
179 reviews4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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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31, 2018
If you like jargon, complicated arguments, Theology, and trauma, this book is absolutely incredible. It is amazing. It will now inform everything I ever read from this point forward.

If you like writings that are clear without being overly redundant, use simple terms, and are not thick with references, this may not be the book for you.

It is a difficult read, but its ideas are brilliant.
the-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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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United States

Windchill-06
5.0 out of 5 stars This book is excellen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February 7, 2019
Format: KindleVerified Purchase
I really, really, really enjoyed this book. Shelly did a great job of helping me to see and break up my own theologically conservative presuppositions not just about death but in general. This book was particularly helpful in this season of my walk because of my recent severance with a church that I was committed to but left due to racially insensitive things I saw playing out. This book has helped me to renew my perspective in regards to this event from a redemptive one to a remainingn one, which I would argue is truly more biblical. Buy, read and study this book. You will be glad that you 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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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et hill
5.0 out of 5 stars Healing trauma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ember 3, 2024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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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W. Cottrell
4.0 out of 5 stars Provocativ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November 3, 2015
Format: KindleVerified Purchase
Rambo brings to light an obscure Catholic theologian with provocative thoughts on surviving trauma. She vaults over thoughts about navigating smoothly through any horrible events. My hesitation with her work was the progress of thought that felt, to me, like it left the trauma reflection and over-focused in the third-quarter on biblical/theological reflections. Never-the-less I would encourage pastors, counselors, and supporters of trauma victims to give this book some time...perhaps even investigating its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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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Jay Oord
5.0 out of 5 stars I recommend this book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August 8, 2018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Shelly Rambo address a long neglected subject: the theology of trauma. The problem of evil rightly asks why a loving and powerful God doesn't prevent genuine evil. It often fails to account for why that same God doesn't end ongoing trauma. Rambo uses leading trauma research and draws from theological resources to point toward hope in the midst of trauma. I recommend this book! Thomas Jay O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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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L
5.0 out of 5 stars amazing work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19, 2011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Rambo takes on the ineffable topics of God and trauma in this book and does an amazing job of presenting one way to theologically process trauma for your congregation. She lifs up the power of Easter Saturday as a holy and sacred day of witnessing the timeless-ness of trauma and redem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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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
5.0 out of 5 stars Great Asse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8, 2018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Amazing book I used in my CPE resid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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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ckielove
5.0 out of 5 stars excellen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ember 28, 2012
Format: KindleVerified Purchase
this book is a great one and in spite i had to wait a while for it the wait was worth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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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mc
5.0 out of 5 stars EXCELLENT. I've read it once and had to order ...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May 6, 2015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EXCELLENT. I've read it once and had to order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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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Dianne
3.0 out of 5 stars Print is so small I haven't read i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22, 2013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Can I say more than that. I have heard it's a great book...but unusable. Very disappointed. I should have gotten Kindle edition if there w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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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tomer
2.0 out of 5 stars Although not without some good ideas, it gets a bit prosaic and doesn’t ...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April 18, 2018
Format: KindleVerified Purchase
Although not without some good ideas, it gets a bit prosaic and doesn’t seem to give much helpful insights in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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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nicoletto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August 18, 2017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Excellent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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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othy Prybylski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April 25, 2016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Came in great sh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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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Roe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February 4, 2015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Very pl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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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via Quaye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anuary 28, 2015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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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e Selin
5.0 out of 5 stars This book is extremely useful for people who have suffered trauma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anuary 24, 2017
Format: Kindle
This is an insightful and well written book. This book is extremely useful for people who have suffered trauma, people who work with trauma victims and for people who think they don't know anyone who has suffered from trauma. A new way to study Scri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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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other countries

Mary, Andover, UK
5.0 out of 5 stars ... role of the Holy Spirit when there is no easy remedy for evil and suffering- because it remains
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May 31, 2015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Profoundly insightful - a brave attempt to explore the role of the Holy Spirit when there is no easy remedy for evil and suffering- because it remains. I found it an inspiring spiritual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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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트라우마: 남겨짐의 신학> 요약 및 평론

1. 요약: 죽음과 부활 사이, <남겨짐>의 자리에 대하여

셸리 람보의 <성령과 트라우마: 남겨짐의 신학>은 현대 심리학의 트라우마 이론과 기독교 전통의 성령론을 결합하여, 고난과 고통을 해석하는 새로운 신학적 틀을 제시한다. 저자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이 고난(금요일) 이후 곧바로 승리와 회복(일요일)으로 넘어가는 <부활의 승리주의>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람보에 따르면,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고통은 과거의 사건으로 종결되지 않고 현재 속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성령론의 재구성: 중간 지대의 신학

람보는 성금요일(죽음)과 부활 주일(생명) 사이의 시간인 <성토요일>에 주목한다. 이 시기는 죽음이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아직 생명이 도래하지 않은, 혼돈과 정체된 고통의 시간이다. 람보는 이 지옥 같은 <중간 지대>에서 활동하는 성령을 증언한다. 여기서 성령은 고통을 순식간에 치유하거나 제거하는 전능한 치료자가 아니라, 죽음의 심연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머무는 숨결(pneuma)>로 묘사된다.

트라우마의 비선형성과 증언

트라우마는 시간의 흐름을 파괴하며, 충격적인 과거를 현재의 경험 속으로 반복해서 불러온다. 람보는 발터 베냐민과 모리스 블랑쇼 등의 철학적 사유를 빌려, 트라우마 신학은 <치유>가 아닌 <증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령은 사라지지 않는 고통의 흔적들 사이를 연결하며, 생존자가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희박한 가능성의 근거가 된다.

사랑의 의미 변화

이 책에서 사랑은 고난을 극복하는 강력한 힘이 아니라, 부서진 존재 곁에 끝까지 <남아 있는 능력>으로 재정의된다. 하나님은 고난을 방관하는 타자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현장 속에서 생존자와 함께 신음하며 그들의 파편화된 삶을 지탱하는 존재다. 람보는 이를 통해 <남겨진 자들>을 위한 위로의 신학을 구축한다.


2. 평론: 승리주의 신학을 넘어선 <심연의 연대>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

셸리 람보의 작업은 현대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전통 신학은 대개 고난을 <성장의 발판>이나 <신의 섭리>로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실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 람보는 고통을 성급하게 의미화하지 않고, 고통이 가진 <해소되지 않음>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는 고난을 도구화하지 않는 정직한 신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성령론의 탁월한 재해석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성령을 <생명의 숨결>로 정의하면서도, 그것을 화려한 기적이나 열광적인 은사가 아닌 <희박한 생존의 흔적>으로 연결한 점이다. 성토요일의 그리스도가 지옥에 내려갔듯, 성령 또한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에 머문다는 통찰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실질적인 존재론적 위로를 전달한다. 이는 성령론을 형이상학적 영역에서 고통받는 육체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성과다.

비판적 성찰: 모호함과 실천적 한계

다만, 람보의 논의는 매우 철학적이고 상징적이어서 구체적인 공동체적 실천이나 치유의 단계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남아 있음> 자체가 가지는 신학적 숭고함은 인정되나,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서 실질적인 구조와 사회적 정의를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이 <정적인 기다림>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 또한, 성경적 텍스트를 트라우마 이론에 맞추어 다소 선택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결론: 상처 입은 치유자를 위한 지침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과 트라우마>는 현대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비극들(세월호, 팬데믹, 전쟁 등) 앞에서 신학이 어떤 언어를 가져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람보는 고통을 없애는 신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신을 보여줌으로써 기독교의 사랑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승리>가 아닌 <연대>임을 증명했다. 이 책은 상처 입은 이들의 곁을 지키는 사역자들과, 자신의 깨진 삶 속에서 신의 부재를 경험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수작이다.


세진님, 이 요약과 평론이 원하시는 깊이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이 책의 특정 장(Chapter)에 대해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시거나, 다른 관련 도서와의 비교를 원하신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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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칼 폴라니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이은선

2026/02/15

필연적 혼자의 시대 | 김수영 | 알라딘

필연적 혼자의 시대 | 김수영 | 알라딘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은이)다산초당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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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독립이 고립이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이제 더 이상 1인가구는 ‘소수의 삶’이 아니다.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만 해도 27.2%를 차지했던 1인가구의 비중이 2019년부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하더니, 2025년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에는 1,012만 가구, 전체 2,412만 가구의 42%가 혼자 사는 세대로 나타났다. 열 가구 중 네 가구가 1인가구인 시대. 한 개인이 혼자 살게 된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나 가족사적 트라우마, 성적 정체성, 시대에 따라 강화되어 가는 개인주의적 성향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인가구의 증가를 이런 개인들의 선택이 모여 우연히 도달한 결과라고만 볼 수 있을까? 이것이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라면, 왜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1인가구가 폭증하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는, 1인가구의 증가를 후기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의 한국 사회를 충실하게 살았을 때 이르는 필연적 결론이라고 본다. 2019년부터 한국 1인가구의 삶을 연구하며 100인의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한 저자는 수백 시간의 경청과 수천 시간의 사유 과정에서 1인가구의 생활, 일, 여가, 돌봄, 죽음 등을 깊게 살피고 질문을 던진다. 수백만 년간 서로를 의미로 삼아 살아왔던 인간들이 혼자 살기 시작할 때, 이 세상은 어떤 곳이 되는가. 풍족한 자산이나 충분한 노후 대비만으로 과연 충분한가. 우리는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미 일어난 거대한 변화 속 독립이 고립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 사회과학 MD 박동명 (2026.02.03)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책소개
2025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가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흔한 삶의 방식이 된 1인가구는 여전히 “왜?”에 대한 답을 설명해야 하는 소수자이고, 이들이 애써 내놓는 설명도 잘 통하는 일이 없다. 묻는 사람들이 이미 1인가구를 두고 ‘자기 몸 편한 것만 좋아해서’, ‘결혼할 만한 조건이 안 돼서’ 같은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한국 1인가구의 삶을 연구하며 100인의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한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가 본 현실은 다르다. 이들 대부분은 자유를 추구하며 전통을 거부한 사람도, 그렇다고 결혼을 ‘못’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보는 1인가구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의 한국 사회를 충실하게 살았을 때 이르는 필연적 결론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혼자 살아갈 때 뒤따르는 그림자는 풍족한 자산이나 충분한 노후 대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으며, 독립이 고립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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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1. 가보지 않은 길
매뉴얼이 없는 시대의 도래
보통 사람 1인가구
결혼이 더 불안한 세대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
거대한 판의 이동
진실에 가닿는 응시
작은 가능성> 비난이 가리는 것

2. 나를 갈아 만든 일
무책임한 가장은 해고했던 이유
이제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나
지금 내 코가 석 자입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업무용으로 최적화한 삶
관계는 운명이고 커리어는 계획이다
교육자와 회계사의 갈림길
독창성의 이름으로
이기는 자아와 사랑하는 자아
너는 좀 더 일을 해야 마땅해
내 전체의 인생
신자유주의의 북소리를 따라서
작은 가능성> 1인분의 복지

3. 나를 수리하는 여가
게임을 하면 레벨이라도 올려야죠
카트에 든 자기계발
다 울었니? 그럼 출근하자
누구를 위한 자기성찰인가
타인이라는 백색소음
엄마 아니면 플랫폼
뒤늦게 도착한 청구서
노동시장이 원하는 홀몸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자가발전기
각자도생의 사회
작은 가능성> 국가는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가

4. 돈 많은 1인가구, 과연 행복할까?
당신이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과제를 잘해낸 모범생들
와인 한 병의 경계선
가진 게 돈밖에 없어요
유튜브가 낳은 살림꾼들
청년 1인가구의 가성비 생존전략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 삶
돈 없는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마이너스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그곳
돈으로 퉁칠 수 없는 영역
작은 가능성> 제3의 장소는 어떻게 당신을 살리는가

5. 왜 셰프도 혼자 살면 라면만 먹을까?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면
왜 혼자서는 돌봄이 안 될까
생활이라기보다는 생존
봐주는 존재
해줄 게 있어서 다행이구나
나랑 같이 밥 먹을 사람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쳐서라도
윌슨을 애정하는 마음
자기돌봄이 놓치고 있는 것
작은 가능성> 나에게 돌아온 안부

6. 혼자 하는 살림의 경제학
돈은 혼자의 삶을 얼마나 바꿀까
좁은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인생은 투룸부터 시작된다
패밀리팩과 음식물 쓰레기
1인가구 식사의 스펙트럼
배달 음식의 진정한 애용자
김치볶음밥과 수제 샐러드
저속노화 편의점 도시락
빨래방과 세탁서비스의 차이
문턱에서 끝나는 서비스
편리함이 삶의 질이 되지 못할 때
작은 가능성> 우정에 주소를 주다

7.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생애
동사로서의 가족
당신의 가족은 누구입니까
보호막, 울타리, 정체성
조카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가족의 상비군
친밀감이라는 보상, 소속감이라는 위안
그러면 이모가 섭섭해
그렇게 1인가족이 되다
잊혀진 친족
롤러코스터를 타는 1인가구의 생애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밑동
작은 가능성> 상호호혜의 숲

8. 마무리가 있는 인생
죽음이라는 사회적 사건
어떤 풍경으로 끝나는가
아무리 아파도 출근하는 이유
안 아프고 깔끔하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떠나면 그만이라지만
비참하다는 프레임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까
요람에서 무덤까지
좋은 죽음, 그래서 좋은 삶
작은 가능성> 무덤 곁의 친구들


나가며
접기


책속에서


P. 7 1인가구들은 겉보기에는 배경과 조건이 매우 달랐다. 하지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불 꺼진 집으로 향하는 귀갓길이 이들을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로 묶어주었다.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관계적 결핍이 이들이 겪는 공통의 위험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간 해왔던 어떤 연구보다 내 마음에서 크게 부딪히며 요동쳤다. 수많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수집하고 곱씹으며,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들어가며> 접기

P. 8~29 인간은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적 존재다. 근래 자유를 추구하며 비혼을 선택한 개인들이 많아졌다면, 이 또한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그 누구도 순수하게 혼자서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개인주의나 비혼주의와 같은 문화적 트렌드는 1인가구 증가를 가속시킨 촉매일 순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사회구조의 본질적인 변화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담론은 본래 관계 지향적인 인간 존재가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이 실제 어떤 현실인지를 가려버린다.
<가보지 않은 길> 접기

P. 32 1인가구의 증가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거대한 구조적 전환이다. 지구 위의 개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동서남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 밖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태양 주위를 서에서 동으로 함께 공전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무관하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라는 판 자체가 구조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  접기

P. 121 이들 1인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은 놀라울 정도로 닮은 면이 있다. 나이, 성별, 직업은 달라도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패턴은 엇비슷하다. 일 중심으로 살아가기 위해 결혼을 포기한 것인지, 결혼하지 않았기에 일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인과관계를 따지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반기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수리하는 여가> 접기

P. 150 “사실 전 아무것도 없어요. 가진 게 돈밖에 없다, 돈 외에 소유한 게 거의 없다고 봐야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건강이 안 좋아지고, 치아가 망가지고, 고지혈증이 와서 매일 약을 먹고 있어요. 지금까지 진짜 일밖에 모르면서 살았는데, 좀 벗어나 보려고 노력해도 잘 안 돼요. 사람들을 만나면 되지 않냐 물어보는데, 이제 그거는 또 너무 지친다는 거예요.” (강진모, 중소기업 대표, 53세)
<돈 많은 1인가구, 과연 행복할까?> 접기
P. 155 청년 세대는 개인화된 삶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다. 이들에게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非婚은 하나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언젠가 결혼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일상을 살기보다, 평생 혼자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예측을 바탕으로 현재의 일상을 꾸려나간다. 따라서 이들은 한 명의 개인으로 생존하기 위해 훨씬 적극적으로 생활역량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SNS와 유튜브, 각종 어플을 통해 셀프 인테리어, 수리, 세차, 세탁, 요리, 옷 수선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은 일상 문화가 되었다.
젊은 시절 공부만 하느라 살림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결국 살림을 외주화하거나 원가족에게 의존하는 고소득 중년 1인가구들과 달리 오늘의 청년 1인가구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돈 많은 1인가구, 과연 행복할까?> 접기

P. 174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비물질적 자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고소득층 1인가구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려고 더 많은 경제자본을 축적하고자 한다. 정작 그들의 위험은 돈의 결핍이 아니라 생활역량과 관계의 결핍에서 온다. 결국 스스로를 돌보는 생활의 지혜와 신뢰할 만한 타인과의 교류가 부족하다면 삶을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알아서 잘 살겠거니” 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이들은 더욱 자신의 결핍을 숨기며 보이지 않게 고립되어 간다. 2022년 서울연구원은 1인가구의 외로움·사회적 고립 실태조사에서 1인가구를 외로움군, 고립군, 외로움우울군, 고립우울군으로 분류했다. 이때 고학력 관리전문직들은 가장 심각한 유형인 고립우울군에 포진해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 많은 1인가구, 과연 행복할까?> 접기

P. 225~226 식생활 안정성이란 개념이 있다. 단순히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위해 다양한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상태를 말한다. 보통은 경제력이 높을수록 식생활 안정성도 높다. 그런데 2022년 서울연구원 김성아 박사 연구팀이 진행한 1인가구 건강실태 분석에서는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관리직,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1인가구가 식생활 안정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를 거르는 결식률도 제일 높았다. 더불어 2019년 영양학자 정복미 교수가 책임을 맡은 연구에서는 2014~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참여자 2만 3080명을 1인가구와 다인가구로 따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결과도 흥미로웠다. 실제로 소득수준이 높은 1인가구가 콜레스테롤과 열량 섭취량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포착되지 않던 역전 현상이었다. 한마디로 예전에는 저소득층의 특징으로 여겨졌던 나쁜 영양섭취와 질 낮은 식단이 1인가구에서는 고소득층에게 더 많이 관찰되고 있었다.
<혼자 하는 살림의 경제학> 접기

P. 233~234 인터뷰에 참여한 1인가구들이 거듭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살림을 위한 최소 공간이 있다는 말이었다. 1인가구들은 본격적인 살림이 가능하려면 투룸 이상의 주거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원룸을 떠났을 때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1인가구들의 경험담은 생활공간이 얼마나 자기돌봄과 살림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었다. 요리 솜씨가 있어도 고시원에서는 펼칠 수 없고, 친구가 있어도 원룸으로는 초대하기가 쉽지 않다. 르페브르의 말처럼 좁은 공간이 좁은 선택과 좁은 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부유한 1인가구라도 방 단위 주거에 머무른다면 마찬가지다. 1인가구에게도 먹고 자고 씻고 쉬는 공간이 분리된 투룸 이상의 주거가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좁은 집에서는 살림이 자라지 않는다.
<혼자 하는 살림의 경제학> 접기
P. 259 왜 1인가구에게는 돈이 삶의 질로 쉽게 전환되지 않을까? 1인가구의 살림을 여러 차원에서 검토하면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다. 이들이 돈으로 주로 구매하는 것이 삶의 질이 아닌 편리함이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 간편식, 세탁서비스, 각종 플랫폼들은 살림의 번거로움을 대신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 편의들은 삶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가사에 투입될 시간은 아껴주지만, 정작 확보된 시간은 자기를 돌보는 데 사용되기보다 노동시간으로 다시 흡수된다. 그 결과 일상의 돌봄은 점점 더 외면당한다. 돈을 더 벌고 더 쓰는데도 여유로움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혼자 하는 살림의 경제학>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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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수영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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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를 부전공했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에서 사회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부터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적 배제와 위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특정 개인의 결함이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조건의 산물임을 드러내는 연구에 집중해 왔다. 노숙인, 빈곤층, 장애인, 플랫폼 노동자 그리고 급격히 증가하는 1인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이 서로 다른 형태로 사회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추적했다. 통계가 보여주는 비율과 분포만으로는 사회현상의 이면을 충분히 조명할 수 없다고 믿기에 지금까지 일관되게 당사자를 직접 만나는 질적 연구를 고집해왔다.
최근 10년간은 시대사적 전환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위험과 배제 양상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래 사회를 ‘디지털 시대’와 ‘개인화 시대’로 압축하고, 이로 인해 ‘연결된 채 단절된 우리’가 맞닥뜨릴 고립의 징후들을 드러내 왔다. 2019년부터 Alone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인화 시대의 1인가구 생활양식을 연구해왔다. 이 책에는 지난 6년의 연구 기록이 담겼다.
디지털 복지국가의 데이터 감시, 플랫폼 노동, 배달앱 노동자의 인간관계와 산업재해 등 디지털 시대를 다룬 연구로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저서 『디지털 시대의 사회복지 패러다임』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미래 사회의 위험과 정책적 대응을 모색하는 ToSoPo(Tomorrow’s Social Policy) Network를 이끌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필연적 혼자의 시대>,<디지털 시대의 사회복지 패러다임 : 네트워크적 접근>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가
100인의 1인가구를 만나 귀 기울여 들은 새 시대의 풍경
“왜 한국의 미래는 가족이 아닌 혼자를 선택했는가”

혼자 살면 너무 좋아 자다가도 웃음이 난다는데
“다 혼자 산다.”2025년 행전안전부에서 1인가구가 천만을 넘어섰으며, 전체 가구 중 42퍼센트를 차지한다는 통계를 발표했을 때 일부 언론이 이 소식을 전하며 쓴 헤드라인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는 정책관계자들의 경종을 울리게 만들지언정 당사자들, 혹은 대중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한때 독거노인이나 빈곤청년으로 소외 계층의 대명사였던 1인가구는 이제 자유로운 골드족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1인가구로 널리 알려진 연예인 최화정은 얼마 전 자신의 유튜브에서 혼자 사는 것이 너무 좋아 자다가도 웃음이 난다 말해 화제가 되었다. 뒷수습을 해야 할 가족도 없고, 스스로 번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서울시의 1인가구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중 89퍼센트가 노동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었다. 이제 혼자 사는 것은 위기라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조금 더 자유로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지속과 존폐를 떠나, 1인가구로 살아간다는 것이 당사자 개개인에게 정말 자유롭고 편리하기만 한 일일까? 그리고 이들은 그런 자유를 추구해 이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 은폐된 사회적 위협을 연구해 온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1인가구의 급증은 그 무엇보다 구조적인 원인에서 출발한 것이며,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혼자 살아갈 때 뒤따르는 그림자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김수영 교수는 미디어의 단편적 이미지와 통계 속 숫자의 표면적 이해를 넘어서 실제 1인가구의 삶을 발견하기 위해 2019년부터 100인의 1인가구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했다. 하는 일도 경험도 너무나 다른 이들에게서 불 꺼진 집에 돌아간다는 사실 하나로 공통의 서사를 발견할 수 있을까?『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그 수백 시간의 만남들과 수천 시간의 사유를 통해 혼자 사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그 사회에서 1인가구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펼친다. 생생한 증언과 통찰이 어우러진 이 책은 1인가구 보편의 시대에 대한 가장 냉정하고도 따뜻한 보고서다.

1인가구의 자유
= 저녁에는 야근하고 주말에는 자기계발할 자유

야근 신청을 따로 하지 않아도 저는 평소에도 스스로 그냥 일을 좀 하는 편이에요. 한 두세 시간 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일하고 있었고. 할 거 없으면 일하는 경우도 좀 생기고. 그래서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진짜 쉬고 있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일을 하고 있어요. (서경수, IT 기업 디자이너, 41세)

1인가구를 대표하는 가치가 있다면 바로 자유일 것이다.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니, 삶을 어떻게 써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그런 자유가 주어진 1인가구들이 압도적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일이었다. 그들에게 일은 단순히 소득원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재미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자유는 일에 포섭되었다. 회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성과를 위해 그들은 초과근무하기 망설이지 않았고 주말에도 자기계발에 힘썼다. 더 큰 기회를 향해 이직하거나 새로운 학위를 취득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일을 말할 때 가장 신이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1인가구의 삶이 구조적인 필연이라는 김수영 교수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성취를 위해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갈아내고, 여가시간에는 지친 자신을 힐링과 자기관리로 재생해 다시 일하게끔 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인력이었다.
저자는 1인가구들 대다수는 어떤 적극적인 의지로 1인가구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커리어를 생존의 수단이자 자아의 핵심으로 받아들여 그 무엇보다 우선시했고 그 결과 혼자 살아가게 된 이들이 많았다. 커리어 앞에서 이토록 진취적이었던 이들이 관계만은 운명에 맡겨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이 혼자만의 방에 사는 시간은 자꾸만 길어진다.

돈 많은 1인가구, 과연 행복할까?
우리가 혼자 살아도 괜찮을 거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성공해서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진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채워지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에는 근거가 있다. 여러 연구가 밝혔듯,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을 때 식생활의 질 또한 높을 확률이 크다. 소득은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가난은 가족관계가 악화되거나 해체되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물질적 토대가 없다면 행복은커녕 생존조차 위태롭다.
김수영 교수는 적어도 1인가구의 경우에는 답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연구를 통해 드러낸다. 먼저 고소득 1인가구는 직장 밖에서 탄탄한 사회자본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들에게는 꾸준히 교류하며 친밀감을 나누는 이들이 얼마 되지 않았다. 저자는 그 이유를 고소득·고학력 1인가구 특유의 구별짓기에서 찾는다. 성장을 지향하는 이들은 관계에서도 목적과 이해, 자격을 따졌고, 그 결과 그들의 사회자본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실제로 2022년 1인가구 실태조사에서 전문직·관리직 1인가구들의 우울과 고립 정도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소득 1인가구는 식생활의 질도 낮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반찬을 사고 밥을 해 먹는 저소득·중소득 가구들에 비해 고소득 1인가구들은 바쁜 일과 사이 외식을 하거나 늦은 시간 퇴근해 배달 음식을 시켰다. 이런 음식은 편리했으나 장기적으로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생활 패턴은 고소득 1인가구들이 콜레스테롤과 열량 섭취량, 결식률이 높고 여러 심혈관 질환을 비롯해 만성질환의 유병률 또한 높다는 연구 결과들과 맞아떨어졌다.
다인가구에서 돈은 가족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의 질로 흘러간다. 누군가 장을 보고, 밥을 짓고, 함께 식탁에 앉는 과정에서 경제적 자본은 건강한 식생활로 전환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다. 가족 구조가 돈을 생활의 질로 바꿔주는 전환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매개가 없는 1인가구들에게 돈은 삶의 질로 전환되지 못한 채 고여 있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누구에게나 노화가 찾아온다. 찾아올 죽음의 과정에 대한 두려움 또한 성큼 강해진다. 김수영 교수는 1인가구와 다인가구가 두려워하는 죽음의 지점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데 주목한다. 다인가구가 자신을 돌봐야 할 가족을 걱정하며 죽어가는 과정을 두려워한다면, 1인가구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이들은 사후를 고민했다. 죽은 뒤 자신을 누가, 어떻게 거둘 것인가. 인터뷰에 참여한 1인가구들이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거의 공통적으로 떠올린 질문이었다.
이들의 두려움은 혼자 죽는 순간이 아니라 혼자 ‘발견될’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미디어가 전하는 고독사의 이미지가 그들의 마음속을 맴돌았다. 한 참여자는 “헤벌레 입을 벌리고 실오라기 하나 없이 죽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면 너무 수치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고, 또 다른 참여자는 “한 달이 지나 부패될 때까지 사람들이 몰랐다는 것, 이게 최악일 것 같다”고 했다. 외로워서,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죽은 불행한 인생으로 기억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사실 죽음 이후는 죽은 자가 인식할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사후를 이토록 걱정하는 걸까. 가족은 단순한 동거인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 의미가 되어준다. 누군가의 부모로서, 자녀로서, 배우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이유가 된다. 그런데 1인가구에게는 이 토대가 없다. 일터에서는 직함과 역할이 나를 정의해주지만, 퇴근 후에, 은퇴 후에, 나는 누구인가. 내 존재의 의미는 어디서 오는가. 사후에 대한 걱정은 바로 이 공백의 투영이다. 존엄하게 거둬지지 못한 죽음은 살아온 날들마저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1인가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물리적 고통만이 아니다. 방치당하고 전시당하며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고, 그리고 그것이 소급적으로 삶 전체의 의미를 지워버리는 일이다. 저자는 이처럼 죽음의 모습은 결국 산 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기에. 결국 좋은 죽음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좋은 일상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말한다. 김수영 교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어처럼, 죽음의 의례도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로 제공하는 길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혼자 살아왔다고 해서 홀로 버려지는 것이 마땅한 것은 아니기에.

독립이 고립이 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디딤판을 찾아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알코올의존자가 많은 사회는 애초에 알코올 소비량이 높은 사회라고 말했다. 한 집단이 경험하는 문제는 그 집단이 살아가는 사회에 만연한 징후를 드러낸다. 1인가구들의 삶을 살피며 접한 생존에 대한 극도의 긴장감과 그에 따른 자기착취는 또한 비단 1인가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혼자 사는 이들이 개인화된 사회가 초래하는 위험을 가장 먼저, 가장 선명하게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이 혼자의 시대에 드리운 그림자는 앞으로도 계속 짙어지기만 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이나 새로운 관계 형태가 언젠가 개인화된 사회의 공백을 메워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수영 교수는 이런 자율 조정에 대한 믿음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시간이다. 사회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가 그랬고, 1997년 IMF 외환위기 때가 그랬다. 결국 시스템은 또 다른 균형을 찾았지만, 그 사이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었다.
지금의 1인가구도 비슷한 과도기 위에 서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삶의 형태를 이미 바꾸어놓았지만, 이를 받쳐주어야 할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 지체된 불균형의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이유도 명확히 모른 채 다치고 있다.
1인가구 당사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런 아픔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우리가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었고, 그래서 개선할 수 있는 인공의 사회 구성물이다. 그래서 그는 적응이 아닌 수정을 말한다. 혼자의 시대가 고립의 시대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결혼이라는 전통적 틀 바깥에서도 사람들이 안전하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새로운 연결이 필요하다. 시장의 논리와 가족의 논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 저자는 그 길을 향한 걸음들이 모일 때, 비로소 우리는 혼자의 시대를 지나 연결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말한다. 접기








얼마 남지 않은 설날, 왜 결혼 안 하냐고 또 물을 큰아버지 얼굴에다 던져주련다
포롤롤 2026-02-0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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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만나는 따뜻하고 깊은 책. 저자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좋았다.
수수풀풀 2026-02-0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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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미뤄왔던 일. 다양한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좋아요^^
pkm 2026-02-0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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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는 늘어나는데 그에 대한 사회는 준비 되어있는가.
열시에산다 2026-02-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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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종이값이 안 아까운 책
돼지갈비 2026-02-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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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그냥 지쳤다고 말하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목격당한 것 같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지 너무 오래됐다.

그럼 괜히 불쌍하게 여김 받는 것도 싫고

인간은 같이 살아도 고독하다 따위 말을 듣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외향적이지 못한 성격인데 혼자 살고,

그만큼 일에 매달리니 지쳐서 쉬는 시간은 혼자 보냈다.

누구와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맞추고 만나서 대화가 편하게 흐를 때까지 서로의 근황을 듣고 알리고 이런 일들이 또 다른 노동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래서 혼자가 더 좋고, 일할 때 교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집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런 일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의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가끔 너무나 내 이야기 같아서

가끔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역시 1인가구라는 저자가 이 연구를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나는 이 인터뷰들과 그 함의를 그렇게 오래 품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점차 인정하게 된 것 같다.

사실 내가 혼자 사는 데 꽤 지쳤다는 걸.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괜찮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길 그만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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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풀풀 2026-02-03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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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어느날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하다 이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멸종을 앞둔 위기종처럼 보인다는 말을 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인 세상에서 자라오다 도착해보니 아무도 결혼하지 않는 세상에 온 것 같아 낯선데, 몰려오는 사람들의 무리가 너무도 당연히 결혼하지 않는 상식을 말하는 것 같아 자칫하다간 그 전의 세상에서도 이 후의 세상에서도 밀려나버릴 것만 같단 이야기였다. 그래서 '필연적 혼자의 시대'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낯선 세상에 불시착해버린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거나 결핍이 있는 것을 못견뎌하는 세상에서 왜 사람들은 유독 '전통적 가정'의 형태만은 잃어도 괜찮아하는걸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세뇌되어 왔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혼자 살 수 있고, 혼자 사는 삶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을 끝낸 것 아닐까. 외부조건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일정 기준을 넘어섰을때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공식이 깨지고 새롭게 수정된 결과값이 나온 것이다. 이 변화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이루도록 판단내렸던 계산값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어쩌면 애초의 목표가 달라져 새로운 계산법으로 내린 결과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런 분석이나 이유같은건 필요없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왜 결혼을 하지 않을까, '왜'로 시작하는 질문들은 전 세대의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전에 결혼이 때가 되면 당연히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그냥 안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인 것이다. 왜 결혼을 하는가에 남들이 다 하니까, 종의 유전자를 후대로 잇기 위한 본능이니까 같은 오래된 답들처럼 남들도 다 안하니까, 이 종이 이제는 자연히 사라지게 될 흐름이니까.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마 저자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생각하기로 이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부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임과 조건에 대한 부담.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내가 너를 책임질 수 있을까, 영원하지도 않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유로 이 관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게다가 결혼으로 인해 엮이는 관계들도 부담이다. 결혼도 되돌리기 어려운데, 출산은 더더욱이다. 이렇게 멀리 생각하지 않아도 책임을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과정 마저도 부담이다. 취업하고 차나 집을 마련할 돈을 모으고, 한 가구의 가장들이 되기에 거쳐야 할 조건들이 많다. 없으면 없는대로 꾸려나가면 된다지만 부족할 바에야 차라리 없는게 더 낫다고 '낳음 당했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 내가 만난 1인가구들도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카페, 버스, 빨래방, 그리고 자기만의 방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타인의 존재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은 백색소음으로 떠돌았다. 110"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고독한 현대 미국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호퍼의 그림과 1인가구들의 일상속의 뷰가 닮아있다는 점을 역설했는데, 그렇다면 저런 장소들에서 대체 타인과 어떤 관계맺기를 해야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어서 의아했다. 카페, 버스, 빨래방, 자기만의 방에서 너무나도 타인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에 타인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들의 특징이라고 규정될 수 있는가. 이들에 대한 어떤 규정들은 결과를 위한 규정같이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조카바보(281)'같은 것도 형제자매의 자식이어도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 조금 더 관심이 가고 예뻐할 뿐이지 프레임만큼 애정을 쏟지 않는다거나 사실 큰 교류나 관심이 없다는 입장인 사람들도 다수 보았다. 이들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 가족은 장시간 노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존재다. ...중략... 혼자 사는 노동자들은 이런 요구를 받거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언뜻 보면 이는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시간과 공간을 다시 일에 투입하다 보면, 이들의 일상은 자신도 모르게 일에 잠식당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유는 결국 멈출 수 없는 질주가 된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업무용 인생이 된다. 61"

이 부분에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1인 가구의 가장들은 무엇보다 스스로가 이끄는 가정에서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다시 노동에 투입하다니, 요즘은 정해진 값어치 이상의 노동,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업무는 거부하는 '새로운 보통'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인터뷰 대상의 연령층이 너무 높게 고정되어 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개인의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있어 가사노동은 피할 수 없는 화제였다. 밥이라는 것이 대체 뭐길래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어렵다(29)"는 답이 혼자 살 때 가장 어려운 점 1위일까. 결혼을 해서 가족이 있으면 식단의 균형이 저절로 잡히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이들이 떠올린 균형 잡힌 식사라는 것은 어쩌면 엄마와 살 때 제공되던 엄마의 가사노동의 결과(엄마 아니면 플랫폼 111)였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겼을 때 아이 식사를 챙기기 위한 변화를 염두에 두었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엄마의 가사노동 결과일 것이다. 그러니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을지도(25).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는 말. 사실, 엄마들도 이 새로운 세대를 키울 때 비슷한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분명 결혼해서 가정을 잘 꾸리고 살아가라는 바람도 있었겠지만,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결혼함과 동시에 사회적인 자신을 멈추지말고 돈을 벌어서 스스로 쓰며 살아가라는 바람도 강하게 담았다. 그동안 지속되어 온 여성의 삶에 대한 의문과 저항이 두 세대의 바람으로 묶여 지금 진통을 겪으며 결과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혼자서 살아가기로 했을까, 앞으로 우리가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책을 앞에 두고 많이 생각해보며 읽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혼자로 존재하되 함께 가는 방향을 모색하여 나아갈 필요성을 크게 느끼며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읽었다. 어떤 내용들은 나의 체감이나 생각과는 다르기도 했지만, 어떤 내용들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탕을 짚어낸 듯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뭐든지 혼자 해내는 새로운 시대에 대해 발빠르게 파악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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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 2026-02-1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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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필연적혼자의시대 #김수영지음 #다산초당 #서평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가끔은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 올라오곤 한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내 시간을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오롯한 나로 있고 싶은 욕망 말이다. 그러나 이미 가족이 있어서 혼자 살고 싶다는 것과 처음부터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따로 떨어져 혼자 살아도 우리는 결국 각자의 외로움과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TV에서 일본의 1인 가구의 삶을 다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혼밥을 할 수 있는 식당과 혼자 머물 수 있는 숙식소들을 보면서 신기하면서도 놀랍기만 했다.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는 이들을 보며 산사람의 관을 보는 듯했다. 어딘가 쓸쓸하고 낯설기만 했다. 개인화된 시스템이 정착되어 가는 일본을 보며 우리나라 역시 언젠가는 저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당연한 풍경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이 책은 예전에 내가 느꼈던 막연한 예감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저자는 자그마치 6년 동안 100명이 넘는 1인 가구를 직접 만나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계로 보이지 않던 이들이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편견을 넘어선 1인 가구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자유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보여 주고 있다. 개인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흐름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맞은 자리가 되었다. 그 모든 진실 끝에 다다른 것은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우리는 언제든 혼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계층의 1인 가구들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문제를 개인적 삶으로 국한할 수 없으며, 1인 복지와 가족 복지를 따로 두고 생각할 문제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는 연애를 하지 않는다.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자신에게 투자하기도 바쁜데 무슨 연애냐고 도리어 핀잔을 준다. 사람을 만나면 돈도 많이 들고, 차라리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지 뭐”라며 연애와 결혼을 아주 현실적으로 본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듯하면서도 아직 한창 예쁠 때인데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또래 친구들도 자신과 별다르지 않다니 더는 할말이 없다. 요즘은 메스컴이나 유투브를 통해 미리 결혼이나 연애의 현실을 접할 기회가 많기에 나자신은 그 나이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찍이 경험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내 자식이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모든 연결이 서서히 끊어지고 난 후 진짜 혼자가 되었을 때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중장년층이 아이들의 진학과 취업 그리고 자녀 결혼에 대해 고민할 때 동년배의 1인 가구들은 ‘혼자 맞이하게 될 죽음’을 생각한다고 하니 이 또한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든, 그 선택을 하지 않든 혼자의 삶과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관심사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국가는 앞으로 어떤 사회로 거듭나야 하는지, 개인은 어떤 삶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가 맞이해야 할 미래가 이 책 속에 있었다.

다산북스 @dasanbooks 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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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1978 2026-02-1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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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시대 이후를 묻다

2008년 출장으로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함께한 동료는 나를 포함해 네 명이었다. 우리는 식당과 카페에서 자리를 잡는 일부터 자주 어색해졌다. 일본에는 바(bar) 형태의 좌석 배치가 많았고, 1인 좌석이 유독 눈에 띄었다.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 창을 향해 앉은 자리들. 결국 우리는 나란히 줄지어 앉아 식사를 해야 했고, “일본은 마주 보고 밥 먹기가 어렵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그때 이미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30%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1인 가구는 아직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과 일본을 구분하던 이 풍경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1인 가구는 특정 국가의 특성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이 되었고, 우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혼자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서로를 마주하고 앉기에는 어려운 장소가 되어갔다.

김수영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이 변화의 이면을 추적한다. 이 책은 1인 가구의 증가를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의 변화로 단정 짓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혼자를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결여된 사회망과 관계의 결핍이다. 충분한 소득이 있어도 식생활은 무너지고, 삶은 편리해지지만 돌봄은 사라진다. 돈은 삶의 질로 전환되지 않고, 다시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가족이 수행하던 돌봄과 연결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이를 대체할 사회적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개인은 독립과 동시에 감당해야 할 위험 앞에서도 혼자가 되었다.

오래된 편견은 혼자의 삶이 언제나 자발적 선택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나 혼자 산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1인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가 늘어나며, 혼자는 자유와 독립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숙한 사회인의 이미지. 그러나 저자는 이 자부심의 이면을 드러낸다. 지금 시대의 자유는 종종 초과 노동과 자기 관리로 흡수되고, 관계 없는 시간은 곧 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환원된다. 개인화는 해방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자기 착취의 형식이 되기도 한다.

가장 씁쓸하게 다가온 장면은 고독사에 대한 인식이다. 1인 가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 이후의 모습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 늦게 발견되는 몸, 그리고 그 장면이 자신의 삶 전체를 설명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는 개인의 불안이라기보다, 개인화된 사회가 아직 마련하지 못한 안전망의 공백이다. 누구나 혼자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고독사는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1인 가구와의 대화 속에서 많은 실질적 대안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우리 시대의 과제를 분명히 한다. 혼자 살아도 고립되지 않는 사회, 가족이 아니어도 돌봄이 가능한 관계, 시장과 가족 사이의 새로운 연결. 우리에게는 공동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혼자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인간의 조건은 여전히 관계에 있다. 오래전 일본에서 마주 보고 식사하기 어려웠던 그 풍경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누군가는 오늘도 홀로 식탁 앞에 앉는다. 그러나 그 고독이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으로만 남겨져서는 안 된다.

책을 덮으며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제목을 가져온 존 던의 시가 떠올랐다.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고, 대양의 일부이니. 한 덩이 흙이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이 그만큼 작아지며, 곶이 줄어들거나 그대의 벗과 그대의 땅이 줄어들어도 매한가지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생명을 감소시키는 것은, 내가 인류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우리가 혼자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결코 혼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은 고립된 단위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된 존재다. 누구의 삶도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다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묻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필연적혼자의시대 #김수영 #다산초당 #서평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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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2026-02-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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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냐? 가족이냐?

#도서협찬 📚 필연적 혼자의 시대 by김수영


🌱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가 100인의 1인가구를 만나 귀 기울여 들은 새 시대의 풍경!
“왜 한국의 미래는 가족이 아닌 혼자를 선택했는가” 🌱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때가 되면 아이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 절대불변의 진리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건 마치 인간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도 출산도 필수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고의 전환을 겪은 것인가?

이 책은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저자가 100인의 1인가구를 만나며 그들의 삶과 생활, 가치관등을 알아보고 쓴 광범위한 보고서이다.
1인가구가 무려 1000만 가구를 돌파한 이 시점에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1인가구들은 겉보기에는 배경과 조건이 매우 달랐다. 하지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불 꺼진 집으로 향하는 귀갓길이 이들을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로 묶어주었다.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관계적 결핍이 이들이 겪는 공통의 위험이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왜 자꾸만 혼자살기의 길을 가는 것일까?
우선은 결혼을 하고 가족을 만드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아닌 타인과 살아간다는 건 서로가 맞추어야할 것이 많다. 그러나 그것을 맞추어가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 경제적인 것도 한몫한다.

나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세상에 둘, 셋이 된다는 건 가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안정보다 불안이 더 크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경제성은 수많은 허들 중 하나일 뿐이다.

"청년 세대는 개인화된 삶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다. 이들에게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非婚은 하나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언젠가 결혼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일상을 살기보다, 평생 혼자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예측을 바탕으로 현재의 일상을 꾸려나간다"

꼭 같이 사는 것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혼자 살게 되면 챙기지 못하는 것이 많긴 하다.
대표적인 것이 몸건강, 마음건강이다.
혼자라면 먹는 것도 부실하고 이것저것 대충 살게된다. 힘들고 지칠 때 위안을 얻을 말동무도 없다.
하루이틀이라면 모를까? 장기간 지속되면 건강에 치명적이다. 물론, 맞지않는 사람과 고통속에서 사는 것 보다는 그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가 좋으냐? 가족이 좋으냐? 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독자는 대리경험을 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국가정책적으로 본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다복하게 사는 것이 좋을 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행복은 개인이 정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자신의 삶을 정하는 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dasanbooks
🔅< 다산초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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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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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y202 2026-02-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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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협찬 #서평


>>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이 정말 많다. 예전에는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청년을 떠올렸다면, 지금은 직장도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 가운데서도 혼자 사는 경우가 흔하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다. 조용한 집, 깔끔한 공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하루. 늘 가족들로 북적이고, 조용히 있고 싶어도 쉽지 않은 필자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정말 우리는 혼자를 ‘좋아서’ 선택한 걸까?
스스로 원해서 고른 삶이 아니었던 걸까?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는 책이다. 저자가 만난 100명의 1인 가구는 자유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유의 사용처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일’이다. 퇴근 후에도 업무를 더 하고, 주말에는 자기계발을 한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듯 스펙을 쌓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혼자라서 남는 시간은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의 연속이었다. 자유로운 시간에 놀지 못하고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돈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흔히 “돈 많으면 혼자 살 만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들 중에는 바빠서 끼니를 거르거나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돌봄과 챙김의 과정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이 곧바로 삶의 질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터뷰이들의 현실적인 답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양질의 재료가 있어도 요리할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쌓아두고, 결국 배달 앱을 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마음이 불편했던 부분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죽음 그 자체보다 아무도 모르게 방치될지 모른다는 상황을 더 두려워한다. ‘고독사’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렵다는 고백, 타인에게 비칠 마지막 모습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다는 그들 역시, 결국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어 한다.

지금도 혼자 사는 삶을 꿈꾸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속감과 유대감이 약해질수록 자유는 오히려 불안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 책은 혼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이 고립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사회적 방안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또한, 혼자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라는 점도 일깨운다.
이 책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함께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는 특정 계층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 이 서평은 다산북스(@dasanbooks)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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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이 2026-02-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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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선택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만든 구조적 귀결이다 

1인가구가 1,000만을 넘고 전체 가구의 42%를 차지한다는 통계는 이제 놀랍지 않다. 하지만 《필연적 혼자의 시대》에서 김수영 교수는 이 익숙한 숫자 뒤에 숨은 진짜 질문을 드러낸다. 1인가구의 증가는 누군가의 ‘취향’이나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가 만든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1인가구를 “자유를 선택한 사람” 또는 “결혼을 못 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가 100명의 1인가구를 직접 만나 기록한 이야기는 이 통념을 전면적으로 뒤집는다. 이들은 비혼주의자도, 관계를 회피한 개인도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충실히 살아낸 결과, 구조가 그들을 ‘혼자’라는 삶의 형태로 밀어낸 것이다.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라는 거대한 판 자체가 이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구조의 움직임은 노동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IT 디자이너 서경수 씨는 말한다. “쉬고 있지 않으면 대부분 일을 하고 있어요.” 1인가구의 자유는 ‘야근할 자유’, ‘주말 자기계발 자유’로 포섭된다. 커리어는 치밀하게 계획하면서도 관계는 운명에 맡겨진 채 뒤로 밀린다. 결국 이들의 삶은 성취를 위해 스스로를 갈아넣는 신자유주의적 생존 패턴 속으로 흡수된다.

책이 드러내는 가장 인상적인 역설은 ‘돈’의 문제다. 고소득 전문직 1인가구들이 오히려 결식률이 높고, 고립·우울 지수가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등장한다. 중소기업 대표 강진모 씨의 고백처럼 “가진 게 돈밖에 없다”는 감정은 많은 이들의 공통된 고립 경험과 맞닿아 있다. 돈은 편리함을 사줄 뿐, 삶의 질이나 관계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가족이라는 중간 매개가 없는 1인가구는 경제력이 높아도 건강한 식사·정서적 교류·돌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분석이다.


이 고립은 죽음의 순간에서 더욱 적나라해진다. 1인가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는 순간이 아니라, 죽은 뒤 ‘어떤 모습으로 발견될 것인가’라는 관계적 죽음이다.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발견되는 죽음은 “내 삶 전체가 의미 없었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죽음은 그저 개인의 생물학적 마지막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이 만들어낸 사회적 사건이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을 ‘사이의 시간’이라고 진단한다. 사회 구조는 이미 바뀌었지만, 이를 받치는 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과도기. IMF 때처럼 시스템은 결국 균형을 찾겠지만,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누군가는 조용히 다친다.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관계적 결핍이 1인가구의 가장 큰 위험이라는 지적은 오늘의 한국을 가장 정직하게 비춘다.



그러나 결국 저자는 “숙명”을 말하지 않는다. 혼자의 시대는 필연이지만, 고립의 시대는 필연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적응’이 아닌 ‘수정’을 선택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전통적 틀 바깥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볼 수 있는 새로운 연결을 설계하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혼자의 시대를 지나 연결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필연적혼자의시대 #김수영 #다산초당 #다산북스 #1인가구 #1인가구사회학 #후기자본주의 #관계의붕괴 #사회구조의변화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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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tee0514 2026-02-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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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필연적혼자의시대 #김수영 #다산초당 #1인가구 #서평단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내 주변에도 꽤 많다. 결혼하지 않은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이 정말 많다. 결혼이 하고 싶었지만 때를 놓쳤다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혼자라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하다는 사람도 있고,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도 결혼을 꽤 늦게 한 편이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은 이러한 요즘 시대를 반영하고 깊이 파헤친 책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딱딱한 책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혼자 살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곳곳에 담고 있다. 이 책의 챕터를 보면 얼마나 다양한 시각에서 1인가구를 살피는지를 알 수 있다. 여가 생활부터 경제적인 부분, 먹는 것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데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느는 것은 비단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사회 구조가 이러한 현상을 초래하는 부분이 크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뤄지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그 말의 신빙성을 높여주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딱딱할 수 있는 주제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저자는 전문성을 갖춘 뛰어난 사회학자임과 동시에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 그렇지만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담고 있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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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도사 2026-02-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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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준은 뭘까

❤️도서협찬❤️《 필연적 혼자의 시대 》
ㅡ김수영

● 한국의 1인가구가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

➡️. 왜 한국의 미래는 가족이 아닌 혼자를 선택했는가?

✡️. 지금 한국의 1인가구를 위한 가장 냉정하고 가장 따뜻한 보고서


ㅡ1인가구가 많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1000 만 가구가 넘는다니!
굉장히 놀랍다.
한국은 정말 여러모로 놀라운 나라이다.
서양이 수백년에 걸쳐 이룬 일들을 몇십년만에 이루어 냈다. 경제, 문화발전 뿐만 아니라 가족의 변화도 엄청나다.
그 중심에 저출산 고령화와 1인가구의 증가가 있다.

원래 인간은 혼자다.
제목처럼 필연적으로 혼자이기는 하다.
그래도 인류의 긴 시간동안 가족이라는 구성을 이루고 산 데는 그만한 이유도 있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생활방식도 가치관도 변하니 가족구성도 변할 수는 있다.

이 책은 혼자가 나쁘다거나 가족구성이 무조건 좋다고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각각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들여다 보고 우리가 그동안 놓친 것은 없는 지, 수정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는 지를 생각해보는 책이다.

사실 전통적 가정체계에서는 모두에게 힘겨움이 존재했다.
가부장제라는 틀이 가장에게는 과도한 책임감을, 그외 가족에게는 과도한 순종을 요구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함께 일해야 하는 농경사회 특성상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먹어야 했다.
혼자 일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개개인은 독립과 자유를 얻었지만 얻은 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외로움, 안전. 보살핌, 따뜻한 밥 한끼 등
이것들은 독립과 자유의 반대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여 어느 삶을 살아갈 것인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가족 구성에 관한한 과거처럼 강요된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 만큼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혼자의 삶이 나이가 들수록 힘겨운 것은 사실이다.
돈이 많건 적건 1인가구가 겪는 결핍과 위기는 분명 존재한다. 특히나 형제자매 없이 부모까지 죽음으로 떠난 이들의 상실감은 더 엄청나다.
"이 자율 조정에 대한 믿음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시간이다. 사회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러모로 우려되는 점도 많다.
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야 할 시기다.

[ 다산초당 @dasanbooks 출판사에서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필연적혼자의시대 #김수영 #다산초당 #1인가구 #사회복지
#신간소개 #책추천 #북스타그램 #북리뷰 #추천도서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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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r114 2026-02-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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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작가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혼자 밥을 먹거나 주말을 보내면 외롭다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게 아닐까 걱정한다. 꽉 찬 스케줄이 능력의 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쁘게 살지 않으면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 혼자 사는 삶이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말하며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저자 본인이 100인의 1인가구를 만나서 연구한 노하우와 철학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뜬구름 잡는 위로가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조언들이었다.

고립과 고독의 차이가 이해갔다. 고립은 타의에 의해 남겨진 외로운 상태지만 고독은 자발적으로 나를 마주하는 성장의 시간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텅 빈 방에 혼자 있는 게 처량한 게 아니라 복잡한 세상의 소음을 끄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혼자라는 건 외톨이가 되는 게 아니라 온전한 단독자로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진짜 어른이라는 메시지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8장 마무리가 있는 인생에 대한 내용이 이 책의 좋은 부분이였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는 온 에너지를 쏟으면서 정작 끝맺음에는 소홀할 때가 많다. 저자는 이미 지나간 일이나 되돌릴 수 없는 실수에 대해 과감하게 마침표를 찍으라고 조언한다. 흐지부지 끝난 관계나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감정들이 결국 내 발목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잘 끝내야 잘 시작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방 청소를 하듯 마음속에 쌓인 묵은 감정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는 것이야말로 혼자 있는 시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혼자 사는 법을 알려주는 실용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철학서에 가깝다. 인간관계에 지쳐있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책을 덮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필연적혼자의시대 #김수영작가 #다산초당 #서평단 #1인가구 #다산북스 @das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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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bgo 2026-02-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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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wi Dong Cho
 ·
#1인가구의_삶에_대한_진짜배기_조명 
#필연적_혼자의_시대
#설_연휴에_읽으면_좋은_책

1인 가구의 삶에 대해서 몇 년간에 걸친 연구프로젝트의 결과를 모아 출판한 김수영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보았습니다. 
1인 가구에 대해서 단순히 1인 가구가 늘어난다, 왜 그들은 결혼을 안하지, 그렇게 1인가구가 되니까 라이프스타일이 이전과 어떻게 다르지....정도의 지금 많이 이야기되는 담론이 아니라
진짜 1인 가구의 삶, 생활, 신체, 경제 및 사회활동이 어떻게 규율되고 유지되고, 어떠한 위기와 불안요인을 안으면서 1인 가구가 살아가는 지에 대해 잘 조명한 책이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하나의 재생산 단위로서 1인 가구의 삶, 그리고 돌봄의 문제에서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조망하는 부분은 1인 가구의 존재에 대해서 꽤 심도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저자도 1인 가구로 그 삶을 잘 이해하시는 분이고, 그런 분이 오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제대로 연구하면 나오는 결과물인데, 읽으면서 정말  공감이 되고,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나누고 싶은 구절 인용입니다.
=============
1.
"보통은 백신 휴가도 쓰고 집에서 쉰다고 그러는 데, 저는 일부러 회사를 나갔어요. 혼자 있으니까 아파도 회사에서 아파야 사람들이 보고 조치를 해주지, 집에서 그냥 아파서 쓰러지면 큰일이잖아요" (전OO, 47세, 연구원) - 323쪽

2.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놀라울 정도로 닮은 면이 있다. 나이, 성별, 직업은 달라도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패턴은 엇비슷하다. 일 중심으로 살아가기 위해 결혼을 포기할 것인지, 결호하지 않았기에 일 중심으로 살 수 밖에 없었는 지, 닭이 먼저인지 달결이 먼저인지 인과관계를 따지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반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이제 노동자들에게 자기희생을 넘어 자기 착취를 요구한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 멈춘 시점에서 우리는 자아 실현과 성취를 위해 자기를 스스로갈아넣는 세계로 초대받아다. 자아라는 존재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이끄는 무한한 동력이 되었다.  -121쪽

3.
멕시코의 식생활 문화를 연구해 온 우리베 교수는 2019년에 <나는 위층에서 혼자 TV를 보며 밥을 먹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는 65세 이상의 혼자 사는 노인 여성들을 인터뷰했는데, 젊은 시절 가족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았던 이들이 자녀 분가와 남편 사별 이후 거의 식사를 챙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해싸. 이들은 주로 가족과 생활하던 거실과 주방이 있는 1층이 아니라 위층 침실에서 TV를 보며 대충 끼니를 때우고 이썼다. 
나 역시 올해 비슷한 일을 목격했다. 나의 엄마는 직접 텃밭을 가꾸어 음식을 할 만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랜 노환을 앓던 아빠가 몸이 더 안좋아져서 결국 요양시설에 가게 됐을 때부터 엄나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아빠를 거의 10년 넘게 간병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터라 혼자 있게 되면 더 자유로워질 주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 후로 기운도 없고 밥맛도 안난다며 라면으로 때우거나 아예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엄마의 바람으로 아빠를 한 달만에 집으로 다시 모셔왔고 그때부터 엄마는 다시 나물도 무치고 국도 끓이며 식사를 챙기기 시작했다. 
위의 사례들은 개인적으로 아무리 요리를 잘하는 살림 9단 이라도 혼자 살게 되면 부실한 식사를 하게 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혼자 밥 먹기 어려운 이유는 혼밥의 노하우나 살림 기술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바로 그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의 이유다. 내가 '자기를 돌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정부의 방침이 마음에 걸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상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 193쪽

4.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솔루션으로 제안되는 자기 돌봄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이미 모순이다. 건강해서 돌봄이 별로 필요 없을 때는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다. 요리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영양제도 먹는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정말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때, 1인 가구에게는 서로의 생명을 살릴 상대가 없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살림은 타인을 돌봐야하는 부담도 없지만  자신을 살릴 사람도 없는 위태로운 외발자전거 같은 살림이다. - 195쪽

5.
1인 가구가 말하는 봐주는 존재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기능을 한다. 도영 씨가 애인 때문에 집을 치우기 시작한 것은 감시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 아니다. 타자의 존재가 그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가 자신도 좋아서 습관이 된 것이다. 현욱씨 역시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면 깔끔도 떨고"라고 말할 때, 그것은 통제나 감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자기 돌봄의 회복을 의미했다. 타인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타인과 자아의 관계를 탐구한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인의 시선이 갖는 이 오묘한 순기능을 잘 설명해준다. 그는 우리가 타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 그 타자의 현존이 우리에게 윤리적 책임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주한다'는 것이다. 판옵티콘의 일방적 감시와 달리 이 시선은 쌍방향이다. 이처럼 마주하고 응답할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것, 그 사람이 나를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을 더 잘 살피게 된다. 그것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가 불러일으키는 책임감이다. 그렇게 관계 안에서 나 자신에 대한 돌봄이 자연스럽게 깨어난다. 그것이 '봐주는 존재'의 진정한 의미다. 
그런데 혼자 사는 집안에는 이 타자의 얼굴이 없다.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외출하려 해도, 남은 배달음식으로 세 끼를 채워도, 집안에 쓰레기가 계속 쌓여 쓰레기집이 되어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 203~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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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만성질환 3배… 집·직장 외 '제 3의 공간' 꼭 필요
[Books가 만난 사람] 1인 가구 109명 인터뷰한 김수영 서울대 교수

박진성 기자
입력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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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연적 혼자의 시대' 쓴 김수영 서울대 교수/박성원 기자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384쪽 | 1만9000원

작년 한국의 1인 가구가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 우리나라 열 가구 중 네 가구가 나 혼자 산다.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9년부터 1인 가구를 연구해 23일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초당)를 출간했다. 그는 지난 6년간 109명의 1인 가구를 일일이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Books는 1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1인 가구다.

—왜 사람들이 혼자 사나

“그간 나온 담론은 크게 두 가지다. 개인주의 문화 때문에 가족이 부담된다는 것,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 하지만 가족의 부담은 과거가 더 컸다. 부모를 부양해야 했고 아이도 많았다. 지금보다 더 불안정하고 가난했던 과거에 결혼을 더 많이 했다. 세계적으로도 1인 가구는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이 많고 가난한 나라로 갈수록 적다.

1인 가구 증가는 산업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터 근처에 산다. 농업 사회에선 토지 근처에, 제조업 사회에선 공장 근처에 산다. 서비스업 중심의 후기 산업 사회는 공장은커녕 사무실도 없는 플랫폼이 많다. 24시간 세계와 연결되는 시스템이 많아 잠 안 자고 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더 가볍게 빨리 이동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업이 암묵적으로 가장 권하는 형태가 일에 매진하는 1인 가구다."

—1인 가구가 많으면 왜 문제인가

“몸과 마음이 취약해진다. 규칙적인 생활이 어렵다. 결식률도 높다. 외식을 많이 해 영양이 불안정하다. 만성 질환 발생 확률이 3배 이상 높다. 외로움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쉽다. 우울증을 겪을 때 자살 시도가 3배가 된다.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문제는 누적된다. 노인 복지가 시작되기 전인 5060 1인 가구가 가장 취약하다.

특히 고독사는 이제 가난한 소수의 일이 아닌 보편적인 일이 됐다. 나의 사촌 동생은 명문대를 나와 대치동에서 수학 강사를 하며 돈을 잘 벌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1인 가구 프리랜서였다. 바쁠 땐 연락이 잘 안 됐다. 과일을 먹다 쓰러져 3개월 후 발견됐다. 1인 가구 남성이 과일을 챙겨 먹는 것은 삶의 의지다. 건강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고립의 취약성이다.”
신간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북스)

—1인 가구는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고?


“2030이 ‘워라밸’을 중시한다지만 정확히는 일이 아닌 일터와 삶의 분리를 중시한다. 일에는 더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이 늘었고 정규직도 성과 연봉제가 많다. 업무 성과를 위해 집에서도 혼자 일 고민을 안고 있다. 평생 직장 개념이 없어지며 이직과 자기 커리어를 준비한다. N잡러도 많아진다. 퇴근하고 유튜브나 블로그,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남는 시간도 관계에 쓰지 않고 자기 성과 관리에 쓴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돈 많은 중소기업 대표 53세 남성. 빌딩도 있고 명문대 석사도 한 사람이었다. 예능 프로 속 기안84의 삶은 기이한 게 아니다. 이 사람도 집에 TV나 식탁도 없이 침대만 있었다. 바닥에 도마와 햇반과 김이 있다. 몇 년 뒤 집에 의자를 두니 편하다는 걸 알더라. 점점 건강도 나빠져 치아도 망가지고 고지혈증도 왔다.

돈 많은 1인 가구라고 반드시 행복한 게 아니다. 돈을 삶의 질이 아닌 편리함에 쓴다. 돈을 많이 벌어도 배달 음식을 더 자주, 비싸게 시켜 먹는 식이다. 과거 1인 가구의 어려운 점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최근 조사로 올수록 식사 해결, 아플 때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꼽히고 있다.”

—혼자서 잘 살려면?

“집,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일이나 자기 계발과 상관없는 모임, 교회나 성당, 미용실 다 좋다. 그냥 있어도 되는 공간. 대화가 주된 활동인 곳. 웃음소리가 자주 들리고 편안한 곳.”

 박성원 기자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오가는 행인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모습. 그는 혼자서 잘살려면 “집, 직장이 아닌 제 3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이 필요한가?


“결혼이 다는 아니지만 가장 고품질의 사회 자본인 데다 제도화돼 있고 안정적이라 이만한 관계가 없다. 결혼이 어렵다면 가족 대신 식구라도 만들면 된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이 중요하다.

일각에선 ‘싱글세’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1인 가구는 이미 내고 있다. 가족 수당, 휴직, 건강검진, 대출 등 여러 곳에서 이미 싱글 페널티를 겪고 있다. 오히려 육아 휴가를 돌봄 휴가로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1인 가구가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한 인터뷰이는 ‘좁은 공간은 사람을 무력하게 하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는 소득이 올라가도 원룸에 산다. 투룸만 돼도 삶이 극적으로 변한다. 친구를 초대할 수 있고 빨래방을 가지 않아도 세탁할 수 있다. 요리할 때 냄새도 안 배고 휴식과 일의 공간이 분리된다.

정부의 1인 가구 주거 지원 사업이 닭장 같은 4~5평 원룸에 집중돼 있다. 투룸이 물리적으로 어렵다면 방을 각자 쓰되 주방 등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도 좋다. 독일의 ‘다세대의 집’도 배울 만하다. 보통 폐교나 청소년센터 등을 리모델링해 만든다. 세대 불문 구성원들이 모여 산다. 나이와 출신을 불문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석할 수 있다. 8세부터 88세까지 오케스트라를 함께하기도 한다. 혼자 사는 이가 아플 때면 기꺼이 돌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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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커리어 이야기엔 아주 적극적… 연애-가족계획 묻는 순간 말이 흐려져요”
동아일보
입력 2026-02-11
김소민 기자 구독

‘필연적 혼자의 시대’ 쓴 김수영 교수
정보기술(IT) 기업 디자이너로 일하는 서경수(가명·41) 씨는 회사에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15분 거리에 산다. 직장이 바뀔 때마다 웬만하면 회사 근처로 이사했다. 그에게 집은 대기실 같다. 들어가서 잠만 자는 공간. 서 씨는 “개인적으로 진짜 쉬고 있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건 그가 1인 가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42%로, 1000만 가구를 넘어섰다. 하지만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국내의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드문 게 현실.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1인 가구 109명을 직접 만나 쓴 신간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초당·사진)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다. 서 씨와 같은 이들을 수차례, 수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며 통계 뒤에 가려진 삶을 끌어냈다. 김 교수를 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김수영 교수는 이번 신간이 어떤 독자를 염두에 뒀는지에 대해 “첫 번째는 1인 가구 당사자, 두 번째는 그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라고 했다. “왜 이 사람은 혼자 사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개인 성향을 넘어 사회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습니다.” 다산북스 제공
김수영 교수는 이번 신간이 어떤 독자를 염두에 뒀는지에 대해 “첫 번째는 1인 가구 당사자, 두 번째는 그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라고 했다. “왜 이 사람은 혼자 사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개인 성향을 넘어 사회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습니다.” 다산북스 제공

“1인 가구들을 만나 보면 커리어 이야기는 아주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해요. 그런데 연애나 가족 계획을 묻는 순간, 말이 흐려지죠. ‘좋은 사람 만나면요’ 같은 식으로요.”



김 교수가 현장에서 포착한 이 미묘한 머뭇거림은 ‘혼자 사는 삶=자발적 선택’이란 통념과 사뭇 달랐다. 그는 지금을 ‘솔로 권하는 사회’라고 표현했다. 노동시장이 급격히 유연화되면서 언제든 이동 가능하고, 24시간 투입 가능하며, 가족 부양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1인 가구가 현재의 노동시장에 가장 잘 맞는 형태가 됐다는 설명이다. 업무 효율에 최적화된 삶을 살다 보니 ‘어쩌다 솔로’가 된 사람들이 지금의 1인 가구라는 해석이다.

혼자 살면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식사다. 통계에 따르면 아침 식사를 거르는 비율은 다인 가구의 두 배에 이른다. 하루 한 번 이상 외식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한다. 만성질환 유병률은 다인 가구보다 세 배, 우울 위험은 2.4배 높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1인 가구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이들을 위한 정책도 번번이 추진력을 얻지 못한다. 김 교수는 1인 가구가 겪는 문제의 핵심을 ‘관계의 결핍’에서 찾았다. 해법 역시 막대한 재정 투입이 아니라, 연결망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인 가구들이 의미를 느끼며 기여할 수 있는 삶, 가족을 이루지 않아도 사회 안에서 역할과 자리가 주어지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기부든, 자원봉사든, 작은 모임이든 형태는 다양합니다. 특히나 앞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산과 물건, 경험을 가족이 아닌 사회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늘어날 거예요. 그렇다면 이런 연결망은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이 순환되게 하는 거죠.”

그는 “전체의 42%가 1인 가구라면 그건 이미 다수”라며 “다수의 위험을 그냥 방치하는 게 국가의 기조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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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요약 및 평론

1. 요약: 고립이 아닌 자발적 단독자로의 이행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혼자>라는 상태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필연>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한다. 저자는 과거의 공동체 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이 어떻게 스스로를 정립하고 고립의 공포를 고독의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것인가를 심도 있게 다룬다.

가. 관계의 과부하와 피로 현대인은 초연결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기는 물리적 거리를 지웠으나, 동시에 개인의 내면적 공간을 침범했다. 저자는 이러한 과잉 연결이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상실하게 만들며, 타인의 시선에 저당 잡힌 삶을 살게 한다고 지적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는 결국 <번아웃>과 <소외>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나. 혼자됨의 철학적 재정의 책은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을 엄격히 구분한다. 외로움이 타인의 부재로 인한 결핍 상태라면, 고독은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타인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물러난 풍요로운 상태다. 저자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본질적 욕망과 대면하며,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 삶의 방향성을 재설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 단독자로서의 생존 전략 단순히 혼자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독자>로서 주체적인 삶을 꾸리기 위한 실천적 방안들을 제시한다. 이는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독립을 포함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관을 구축하는 과정이 곧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살아가는 핵심 무기가 된다.


2. 평론: 고독의 권리를 선포하는 지적 해방구

김수영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인 <외로움>을 인류 진화의 필연적 단계로 격상시킨 야심 찬 시도다. 이 책은 단순히 <혼밥>이나 <혼술> 같은 트렌드를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단독성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가. 시의적절한 시대적 통찰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주류가 된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함께>라는 집단주의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적 지체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혼자라는 상태를 <비정상>이나 <결함>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을 거부한다. 이는 독자들에게 심리적 해방감을 제공하며, 고립감을 느끼는 개인들에게 연대보다 강한 자립의 의지를 심어준다.

나. 주체성 회복을 향한 문장들 저자의 문체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는 독자를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기를 촉구한다. 특히 연결의 유혹을 끊어내고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가 현대의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소비적 관계망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실존적 투쟁의 기록과도 같다.

다. 한계와 아쉬움 다만, 혼자됨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이나 고립이 야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부작용(예: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노년의 고독사 등)에 대한 구조적 대안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개인의 내면적 성찰에 집중한 나머지, 사회 공동체가 이 필연적 변화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수용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후속 과제로 남는다.

라. 결론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단둘이 있을 때 행복한가?>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타인의 소음을 끄고 자신의 목소리를 켜는 법을 잊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고독의 지침서다. 혼자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당당함을, 관계에 지친 이들에게는 휴식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작이다.


세진님, 요약과 평론 내용이 마음에 드시나요? 추가로 특정 챕터의 상세 요약이나 다른 관점의 비평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다음엔 어떤 작업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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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된 근대인의 초상과 ‘관계의 재구성’ — 『필연적 혼자의 시대』 요약+평론>

📘 『필연적 혼자의 시대』 | 김수영



1. 요약 (약 750단어)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고립의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시대로 진단한다. 저자는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 현상을 단순한 인구통계의 변화로 보지 않는다. 이는 산업화 이후 가족, 공동체, 노동, 국가가 개인을 묶어두던 방식이 해체되면서 나타난 근본적 변동이다.

① 혼자는 ‘비정상’이 아니다

전통 사회에서 개인은 가족과 공동체 속에 흡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개인은 독립된 존재로 부상했다. 저자는 오늘날의 1인 가구 증가, 결혼·출산 감소, 장기 독신 등의 현상을 ‘붕괴’가 아니라 “근대 개인화의 심화”로 본다. 문제는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 제도가 여전히 ‘정상가족 모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② 고립은 심리 문제가 아니라 구조 문제

저자는 외로움을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으로 환원하는 담론을 비판한다. 혼자의 증가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조적 조건의 산물이다. 불안정 노동, 주거 비용 상승, 경쟁적 교육 시스템, 장시간 노동 등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시간과 여유를 박탈한다. 고립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결과다.

③ 관계의 재구성

저자는 과거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낭만주의를 거부한다. 대신 “새로운 관계 맺기”를 모색한다. 혈연·지연 중심의 전통 공동체 대신, 선택적 연대와 네트워크형 관계가 등장한다. 취향 공동체, 온라인 커뮤니티, 소규모 협동 네트워크 등이 그 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다. 과거에는 관계가 의무였다면, 지금은 선택이다. 그러나 선택은 동시에 불안정하다. 쉽게 연결되고 쉽게 끊어진다. 저자는 이 모순을 현대성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④ 국가와 정책의 전환

저자는 개인화 시대에 맞는 복지 체계의 재설계를 강조한다. 가족이 돌봄을 책임지는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고령화 사회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가와 지역 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복지는 ‘보호’가 아니라 ‘자립을 돕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⑤ 필연적이라는 의미

제목의 ‘필연’은 숙명론이 아니다. 이는 구조적 흐름이라는 의미다.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등은 개인화를 가속했다. 혼자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추세다. 그렇다면 질문은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가 된다.


2. 평론 (약 300단어)

이 책의 장점은 도덕적 훈계 대신 구조적 분석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혼자를 ‘문제’로 낙인찍지 않는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결혼과 가족을 정상성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개인은 은근한 압박을 받는다. 저자는 이런 규범을 해체한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관계의 재구성을 말하면서도, 구체적 모델 제시는 비교적 추상적이다. 네트워크형 공동체가 실제로 돌봄과 경제적 안전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는지는 더 검증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쟁점은 ‘자유와 불안’의 문제다. 선택적 관계는 자유를 확대하지만 동시에 고립의 위험을 높인다. 이 긴장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완충할 것인지가 향후 과제다.


3. 세진님과 연결 지점

세진님은 이미 “개인적 일기 + 공동체적 성찰”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은서 다이어리, 가족사 정리, 생애 기록 프로젝트는 전통 공동체가 해체된 이후 ‘의미 공동체’를 스스로 구축하는 실천이다. 이 책이 말하는 “선택적 연대”의 한 형태다.

또한 고령화 사회, 돌봄 문제, 1인 노년의 삶에 대한 관심은 세진님의 현재 삶과도 겹친다. 혼자의 시대는 위기가 아니라 재설계의 시대라는 관점은, 앞으로의 삶을 구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4. 결론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고립을 비관하지 않는다. 그것을 역사적 전환의 산물로 본다. 혼자는 실패가 아니라 조건이다. 문제는 그 조건 위에 어떤 관계를 다시 세울 것인가이다.

혼자의 시대는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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