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6

[김조년] 제자리로 돌아와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제자리로 돌아와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제자리로 돌아와서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5.03.04 
한남대 명예교수

2024년 12월 3일 깊은 밤부터 오늘까지 잠자고 일어나고, 밥먹고 물마시고 일하고 여가를 활용하고 맘 편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주말이면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기쁘고 즐거운 맘으로 이 땅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서나 맘에서 아주 험한 쌍욕을 내뱉고 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내뱉으면 잠시 속은 시원할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속은 또 얼마나 더러워지고 기분 나쁘고 찜찜한 기운으로 가득하게 되었을까? 정치나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졌든 아니든 눈만 뜨면 새로운 소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궁금해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밤사이에 별고가 없기를 바라면서 맘을 쓰는 것은 전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생활이다. 복잡한 생활이라고 하지만, 아침에 해뜨고 저녁에 해지는 것이 걱정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 없이도 더 깊이 믿고 살듯이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주말만 되면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광주로, 대전으로 달리면서 원정집회를 열듯이 하는 이 모양은 정상일까? 이것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비상시국이다. 이렇게 어지럽게 살게 된 책임은 일단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어떤 집단의 책임을 맡은 자에게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통합하여 화해롭게 살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을 책무가 있다. 그런데 특히 이번 대통령은 자기 편 사람들로 파당정치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나는 그가 대통령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우리 사회나 이웃관계를 위해서 좋다고 공개서한을 쓴 적이 있다. 그나 그를 돕는 사람들이 그 편지를 읽은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읽은 일반 사람들은 그는 절대로 그 편지에 들어 있는 내용대로 하지 않을 것인데 왜 쓸데없는 편지를 쓰느라 애를 먹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 글을 쓸 때 진정으로 그와 우리 사회를 깊이 생각하였다. 살 길이 거기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상계엄선포’라니! 그 순간부터 일반 시민들은 정신을 차리고 사회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우리는 이미 비상계엄상황을 가지고 온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수사에서 밝혀진 것들이 간간이 보도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재판과정을 통하여 큰 갈래는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할 상황이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왜 그렇게 했는가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대통령은 탄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사회는 정상생활로 돌아갈 길이 열리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또 바라기 참으로 힘든 것을 그에게 요청한다. 재판을 받기 위하여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그가 깊게 성찰하여 통합하는 말을 내어놓으면 좋겠다. ‘나는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를 한 것이니 나를 믿어달라’는 말로 패를 갈라놓는 대신, ‘나는 내가 한 일의 대가를 기꺼이 받을 것이니 시민들은 한 맘으로 다투지 않고 화해롭게 살기 바란다’는 말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시민들을 갈라놓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말기를 바란다. 생활을 잃어버린 시민들이 제자리로 돌아와 정상생활을 하도록 하는 성찰의 말을 그가 하기 바라는 것은 난망한 일인가? 아니, 그래도 나는 그가 달라지기를 바란다.


이번 비상계엄사태가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일까를 많은 분들이 자주 생각할 것이다. 나도 생각해본다. 다 알 듯이 사회는 끝없이 달라진다. 제도도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모습도 달라진다. 그러면서 점점 더 개인들이 자기중심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또 공동체를 구성하는 존재들로 다른 이들과 함께 꾸리지 않으면 삶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홀로 살면서 또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다. 나는 이번 기회에 이 부분이 좀 더 명확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장자를 읽다가 이런 대목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상자에 보물을 넣고 자물쇠로 잠그고 끈으로 잘 묶어 두었다. 그런데 도적놈은 그 상자를 몽땅 들어가버렸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져가는 데 안전하게 되었는가 자물쇠를 확인하고 묶은 끈이 단단한가를 살핀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런 내용이 있다. 큰 도적은 나라나 집단을 도적질하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귀한 보물들, 즉 사상 철학 윤리와 도덕 관습 따위를 함께 훔쳐간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잘 활용하여 성현의 정치를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들어 내는 온갖 제도, 문화, 철학과 사상과 과학 따위는 매우 귀한 보물들이다. 그것들이 나라라는 틀 안에 있다.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나라라는 틀을 가지려는, 아주 험하게 말하면 훔치려는 행위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온갖 감언이설로 시민들의 맘을 얻고 표를 얻는 자가 나라라는 보물상자를 얻는다. 못된 도적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보물들을 제 멋대로, 제 동무들과 나누어 즐기는 것으로 쓴다. 이 때 제대로 되려면 그들에게 맘을 주고 표를 준 주인들이 깨어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깨어 있는 시민, 생각하는 시민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깨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스스로 깨우치고 알리는 행동도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제 삶을 살 것이다. 대신 살아주는 이는 없는 법이니, 내 삶 내가 살아간다는 의식으로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