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를 나이에,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논어 연찬’과 ‘대종경 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인생이다.
좋은 인연으로 요즘 대종경을 읽으면서 시대는 다르지만 소태산 대종사님의 깨달음과 큰 서원(誓願)을 접하면서 나를 돌아 보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큰 은혜다.
큰 서원을 내고 그것을 실천할 수양·연구·취사의 삼대력(三大力)을 길러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경지를 얻는 것이야말로 사람으로 태어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대종사의 말씀에 ‘마음의 난리(亂離)’라는 말이 있는데, 해방동이로 험한 세월을 살아 왔지만, 요즘처럼 실감나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난이나 독재와 싸워야 했던 시절에는 객관적인 경계가 대상이었지만,
객관적인 상황이 많이 좋아진 지금 심리적 내전을 겪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궁극의 평화는 ‘마음’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실증하는 것 같아서, 진화의 피할 수 없는 단계라고 위안을 해 본다.
물질·제도·의식의 유기적 진화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난세(亂世)는 마음의 난세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으로 보고 있지만, 괴로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음의 난세는 양심(도덕)과 지성(담론)이 마비되거나 방향을 상실하는 현상이다.
저절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현상의 난세로 되어 패국망신(敗國亡身)할 수 있다.
내가 ‘중도(中道)의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음의 난세를 극복하자는 취지이기도 하다.
중도는 큰 욕심을 내는 것이다. 큰 욕심이 작은 욕심을 잠재우는 마음의 혁명이다.
그것이 현상으로 나타날 때, 내전의 오래된 뿌리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한 나라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급류와 폭포를 만나고 있지만, 더 건강해진 양심과 지성으로 마음의 강물이 풍성해지기를 기도(祈禱)한다.
하늘이여, 우리를 보우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