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자가 본 한국사회의 작동 원리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오구라 기조, 성리학, 리기론
by오태규May 02. 2022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신체 구조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신을 제대로 관조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것이 자신의 실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철학, 사상을 전공한 일본 교토대학교의 오구라 기조 교수(인간, 환경연구과)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모시는사람들, 조성환 옮김, 2017년 12월)은 타자의 눈으로 한국사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한국 사람이 아닌 외부의 사람이 본 한국이기 때문에 더욱 실체와 가까운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 사람이 싫어하는 일본 사람이 썼기 때문에 반발감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오구라 기조 교수와는 인연이 있다. 한일 유식자들이 참가하는 한일포럼 등의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고, 오사카총영사 시절에도 그가 근무하는 대학이 관할지 안에 있기 때문에 때때로 만나 얘기를 나눴다. 한일관계가 대법원의 강제동원 노동자에 관한 위자료 지급 판결(2018년 10월) 이후 한창 악화됐던 2019년 2월에는, 그가 자신이 주관하는 '저고리와 기모노'라는 교토의 연례포럼(교토시 국제교류협회 주최)에 나를 초청해 한일관계 좌담을 한 적도 있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부인은 재일동포다. 그의 장인은 총련이 만든 조선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 이런 개인적인 인연이 그가 한국, 한국사회, 한국철학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치열하게 공부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사회는 주자학이 사실상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 왕조에 의한 사회 전체의 유교화 이후, 한국은 줄곧 유교 국가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주자학 국가였다. 체제나 이데오르기가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줄곧 주자학 국가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는 주자학은 '리'와 '기'로 모든 문제를 설명하는데, 한국사회는 기보다 리가 압도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여기서 리가 도덕과 이념을 의미한다면 기는 욕망과 현실을 뜻한다. 그런데 기보다 리가 주도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도덕과 이념을 장악하려는 '도덕 쟁탈전'이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런 모습이 다소 완화되고 다양화한 면도 있지만 사회의 리 중심의 기본 작동원리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연기나 실력 외에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으면 끝장 나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역시 도덕 쟁탈전이 가장 극적이고 치열하게 전개되는 분야는 정치 쪽이다. 그는 도덕 쟁탈전을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은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라고 정의한다. 이 설명은 바로 20대 대선 선거전에서 우리가 목도했던 바를 연상시킨다. 정책보다는 상대 흠집내기로 일관했던 20대 대선의 선거전이 특수한 양상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유교 사회의 지식인은 죽을 때까지 도덕으로 싸우는 격투기 선수"로 비유했는데, 20대 대선에서 활약한 지식인들이 바로 그런 모습으로 이전투구를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은 한국 사람이 잘 보지 못하는 한국의 모습, 한국사회의 작동원리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정말 한국 사회가 그가 말하듯이 주자학의 선악관, 리기론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사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 이 책이 한국에 대한 찬탄과 비판의 책이라면서 찬탄은 제목의 '철학'이란 말에 비판은 '하나'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한국사회는 '주자학 원리주의'"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찬탄보다는 비판에 방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오만하게도 한국 사회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내내 받았는데, 저자 스스로 후기에서 오만과 건방짐을 각오하고 쓴 책이라고 설명하니 오해가 다소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한 권으로 한국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해소해주겠다는 저자의 태도는 겸허함과 거리가 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후기 마지막에 한국과 일본의 대학이 "서양적 세계관의 대리인들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지배되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은 경청할 만하다. 그는 "특히 최근에는 한국 연구라는 분야에 과거에는 없던 '우등생'이라는 사람들이 대거 가담하게 되어, 이 식민지화는 더욱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권위를 인정받은 저명한 서양적 세계관(방법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한국을 인식했다는 흉내를 내고, 적당한 논문을 써서 대학에서 자리를 얻고, 대량의 예산(세금)을 확보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주구들을 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결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2011년에 쓴 문고판 후기에서 "다시 한 번 내가 한국에 접근하는 일이 있을까, 한국이 나에게 접근하는 날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겼지만, 2017년 11월 다시 <조선사상전사, 치쿠마신서>라는 대작을 들고 다시 한국에 접근했다. 이 책은 조선사상사(길, 이신철 옮김, 2022년 3월)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