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1

④ 일본의 법화계 신불교들 < 신학자가 본 일본불교&문화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금강신문

④ 일본의 법화계 신불교들 < 신학자가 본 일본불교&문화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금강신문



④ 일본의 법화계 신불교들
기자명 금강신문
입력 2008.04.1

▲ 리쇼코세이카이 대성당 법회 장면. 이들은 《법화삼부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며 초역사적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신다.

태평양전쟁 후 무너진 국가주의 공백 메워

인류 종교사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 성장해온 변화의 역사다. 새롭다고는 하지만,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내적 요구에 기존 종교가 부합하지 못하거나, 잠복해있던 기존 종교의 특정 부분이 새로운 상황에 처한 이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지고 부각되면서 신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본의 신불교도 이런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에도시대(1603-1867) 일본 불교는 사실상 국가의 통제를 받는 국가종교가 되었다. 그로 인해 영향력도 커졌지만,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새로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에도 정부는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기도 했지만, 당시 유교는 엘리트 사무라이 문화 내지 삶의 자세에 주로 반영되었을 뿐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불교든 유교든 국교로서의 끈은 느슨한 편이었다. 민간신앙들도 있었지만 세련된 교리나 조직은 미약했고, 현세적 기복주의 형태에 머물렀다. 보편적이고 세련된 구원론까지 전개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메이지시대(1868-1912) 이래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고취된 국가주의 내지 애국주의가 2차대전의 굴욕적인 패전 후 미국의 지배를 받으며 크게 무너졌다. 승승장구해온 일본인의 국가주의적 자존심이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중 하나가 일본적 연속성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힘을 가져다줄 종교적 가르침이었다. 이 때 애국주의에 호소하면서도 세련된 구원론을 갖춘 새로운 불교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레이유카이, 소카가카이, 리쇼코세이카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법화경을 기초로 하면서 사람을 모으고 제도 교단으로 발전해나갔다.

일본사에서의 법화경
일본에서 법화경, 즉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일본발음 묘호렌게교)은 남다른 위치를 지닌다. 법화경의 가르침은 불성사상·방편사상·일승사상으로 정리된다. 모든 중생에게는 평등하게 불성이 갖추어져있다는 것과, 다른 가르침은 중생 구제의 ‘방편’이지만 법화경은 부처님의 직접 가르침이요 소승과 대승을 넘어서는 일승(一乘)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일본 불교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쇼토쿠(聖德) 태자는 법화경에 감화를 받아 직접 주석서를 쓰기도 했고, 사이초(最澄)는 법화경을 기초로 일본 천태종을 개창했다. 천태종에서 법화경을 배운 니치렌(日蓮, 1222-1282)은 당시의 국가적 혼란기를 부처님이 예언한 말법시대로 해석한 뒤, 다른 경전은 부정하고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통일을 추구하고 촉구했다.

특히 니치렌은 법화경의 제목을 부르고 귀의하는 일, 즉 “남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를 암송하는 단순한 실천만으로도 칠악이 사라지고 칠복이 들어온다고 가르쳤다.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정토종의 내세 지향적 염불법도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지만, 니치렌의 가르침은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현세 지향적이었다. 니치렌은 현세적 고통으로부터의 구원 및 현세의 변혁 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그는 일본 전체를 법화경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할 정도였으며, 그의 열정은 후에 니치렌슈(日蓮宗)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니치렌슈의 애국주의, 단순한 신앙실천, 불교전통에 입각한 세련된 구원론은 일본인의 마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 정신은 니치렌슈를 통해 계승되기도 했지만, 두고두고 일본 내 신종교 탄생의 사상적 근원지가 되기도 했다.

마키구치 쯔네사부로(牧口常三郞, 1871-1944)가 창립한 소카가카이(創價學會)가 니치렌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경우이다. 소학교 교사로서 니치렌세이슈(日蓮正宗) 신자였던 마키구치는 니치렌의 법화사상이 인격의 가치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개인과 사회의 혁신을 위한 교육 개혁 운동을 도모했다. 제자였던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1900-1958)와 함께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를 창립한 뒤(1930), 니치렌의 불법을 구체화시키는 종교단체로 발전시켜나갔다. 니치렌을 대성인으로 받들면서 법화경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종교법인 소카가카이’를 출범시켰다.(1952) 2차대전 패전 후 정교분리를 추진했던 정부 정책과는 반대로, 도리어 ‘공명정치연맹’(1961)을 결성하면서 정교일치를 추구했다.

이것은 공명당(公明黨)의 창당으로 이어졌고(1964), 공명당은 현재 자민당과 연합해 공동연립여당을 구성하면서 일본 보수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소카대학(創價大學) 설립 등 각종 사업도 도모하는 가운데 ‘소카가카이 인터내셔널’(SGI)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그 중심에는 늘 니치렌의 법화경 해석이 기본에 놓여 있다.

법화경과 리쇼코세이카이
리쇼코세이카이(立正成會)는 니와노 닛쿄(庭野日敬, 1906-1999)와 나가누마 묘코(長沼妙 , 1889-1956)에 의해 1938년 창립된 재가불교단체이다. 이들은 한 때 법화경 신앙 위에서 조상 공경을 기본 교리로 하고 있는 불교 단체인 레이유카이(靈友會)에 몸담은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레이유카이의 교리는 리쇼코세이카이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와 연결지어보면, 리쇼코세이카이에서도 니치렌의 흔적이 발견된다. 니와노 니쿄가 본명을 니치렌과 비슷하게 니쿄(日敬)로 바꾼 일이나, 당초 이름 ‘大日本立正交成會’가 니치렌의 저술 《立正安國論》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일 등이 그 증거다.

물론 리쇼코세이카이는 《법화삼부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승불교단체다. 그렇더라도 이때의 석가모니불은 역사적인 석가모니불이라기보다는, 역사 안에 태어났지만 실제는 본래부터 영원한 부처였다고 간주되는, 법화경의 주인공으로서의 석가모니불(久遠實成大恩敎主釋迦牟尼佛)이다. 어찌되었든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보살행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리쇼코세이카이는 전형적인 대승불교적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선조공양’, ‘친효행’ 같은 조상중심의 의례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느 대승불교 종단과 차별성을 보인다.

이 가운데 ‘선조공양’은 레이유카이의 흔적이기는 하지만, 레이유카이가 전반적으로 일본 국가주의적 성향을 보인 데 비해, 리쇼코세이카이는 지구적 평화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개조인 니와노가 주도하면서 WCRP(세계종교인평화회의)를 창립하고(1970), 그것이 한국에서는 KCRP(한국종교인평화회의)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리쇼코세이카이가 한국 종교계는 물론 세계 종교간 대화의 역사에서 적지 않은 공헌을 하고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신종교, 어디로 갈 것인가
그동안 일본의 신종교는 일본 애국주의에 기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다. 일본도 집단적 권위가 사라지고 개인적 영성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적 자존심의 성립에 기대기도 하던 법화계 신종교의 성장도 둔화되었다.
오늘날의 세계적 흐름이 그렇듯이, 일본인 가운데 종교를 찾는 이들도 개인적 영성, 신비주의적 체험, 과학주의적 상상이 동원된 새로운 형태들에서 힘을 얻어가는 경향을 보여준다. 특정 종교 집단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는 탈종교적 시대, 한동안 니치렌식의 법화경에 신세져오던 일본종교 분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갈지 조망하는 일은 한국 종교계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기 위해서라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 리쇼코세이카이 발상지. 초기에 본부가 있었고, 신자들이 수행하던 곳이다. 여전히 신자들이 찾아와 법회를 보고 수행하는 장소로 사용한다.(사진위) 리쇼코세이카이 발상지 안에 설치된 개조 니와노 닛쿄(오른쪽)와 협조 나가누마 묘코의 동상.(사진아래)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일본 교성학림 객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