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7

알라딘: 면도날 The Razor's Edge 서머싯 몸

알라딘: 면도날
면도날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은이),안진환 (옮긴이)민음사2009-06-30
원제 : The Razor's Edge (1944년)




전자책
9,100원 

529쪽

책소개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193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린다. 날카로운 면도날을 넘어서는 것처럼 고되고 험난한 구도의 길을 선택한 한 젊은이를 통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축은 주인공 래리의 구도적 여정이다.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집안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래리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교회에도 나가고 골프도 즐기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어려서부터 사귀어 온 예쁜 여자 친구와의 결혼도 아무런 장애 없이 받아들일 만큼 그의 미래는 순탄해 보였다.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소박한 기대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로 래리의 삶은 보통 젊은이들과 다른 궤도에 들어선다. 부대에서 친해진 친구가 자신을 구해 주고, 눈앞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래리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들에 사로잡힌다.

작품 속 시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하여 대공황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다. 서머싯 몸은 이 시기의 사회적 혼돈을 소모적인 허무주의나 현실 도피로 연결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허영과 불안에 주목하기보다 래리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몰입한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책속에서


나는 순간, 직감이랄까, 이 청년의 내면에서 어떤 혼란스러운 갈등이 요동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갈등이 어느 정도 깊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막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 혼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래리, 그거 알아? 당신은 나한테 맞지도 않는 삶을 요구하고 있어. 내가 관심도 없고, 또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은 삶 말이야. 난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 난 이제 겨우 스무 살이야. 10년 후면 늙어 버릴 거고, 지금 시간이 있을 때 삶을 즐기고 싶어. 아, 래리, 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삶은 시시해.  접기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이런저런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독하게 괴로워하면서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것처럼 생각해. 하지만 바다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면 놀라게 될 걸.˝
˝그게 무슨 뜻이에요?˝
˝사랑은 항해에 서투르기 때문에 바다에 나서면 약해지지. 이사벨과 래리 사이에 대서양이 놓이게 되면, 배를... 더보기 - LAYLA
여자의 직감은 그 여자가 믿고 싶어 하는 것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 LAYLA
여자들은 정말 불행한 존재예요. 사랑에 빠지면 매력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 LAYLA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그 확신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것은 그 어떤 술보다 중독성이 강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그 어떤 악덕보다도 강력하고 매혹적이야. 사람은 자신을 희생시키는 순간 하나님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가 되지. 왜냐면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자신을 희생시키지는 못했으니까. 기껏해야 자신의 독생자, 그러니까 예수만 희생시켰지.  접기 - LAY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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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지은이) 

세계적 문호 중 가장 능숙한 이야기꾼의 하나인 서머싯 몸은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대사관 법률 고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2년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영국의 교구 목사인 작은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사립 중등학교 킹스 스쿨에 입학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이후 런던의 성 토머스 병원 부속 의과 대학에 입학했지만, 의사보다 작가가 될 꿈을 품고 1897년 첫 소설 『램버스의 라이자』를 발표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의업을 포기하고 소설과 희곡 집필에 몰두했으며, 1908년 그의 희곡 네 편이 런던 웨스트엔드의 극장에서 동시 상연되면서 극작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1915년 자신의 정신적 발전의 자취를 더듬은 자전적 성장 소설 『인간의 굴레』를 출간했으며, 1919년 화가 폴 고갱의 전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소설 『달과 6펜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밖에 1921년 단편집 『나뭇잎의 떨림』을 출간하면서 단편 작가로도 명성을 쌓았으며, 이후로도 10권이 넘는 단편 선집을 더 출간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몸은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비밀 요원이 되어 스파이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1917년에는 볼셰비키 혁명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받고 혁명이 진행 중이던 러시아에 잠입하여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의 체험들을 바탕으로 1928년 연작 소설집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을 출간했다. 몸이 자신의 실제 경험에 허구를 가미하여 집필한 이 작품은 현대 스파이 소설의 원조이자 고전으로 평가된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과자와 맥주』(1930), 『면도날』(1944) 등의 소설들과 「약속의 땅」(1913), 「공전」(1921) 등의 희곡들, 『서밍 업』(1938), 『작가 수첩』(1949)을 비롯한 회고록과 에세이 들이 있다. 몸은 1965년 프랑스 남부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접기
최근작 : <서머싯 몸 단편선 2>,<케이크와 맥주>,<서머싯 몸 단편선 1> … 총 1184종 (모두보기)


안진환 (옮긴이) 
경제경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번역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주요 역서로 《전쟁의 기술》, 《넛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디즈니만이 하는 것》, 《스틱!》, 《스티브 잡스》, 《하드씽》, 《괴짜경제학》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영어실무 번역》, 《Cool 영작문》 등이 있다.
최근작 : <[CD] 난제해결 방정식 - 오디오 CD 1장>,<끌어당김의 지혜>,<끌어당김 Attraction> … 총 38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
비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작품
평범한 삶의 위대함, 그 위대함을 넘어서는 고귀한 여정

“몸은 위대한 예술가다. 그는 천재다.” ― 시어도어 드라이저
“보기 드물게 뛰어난 몸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상상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선데이 타임스》
“이 시대의 정직한 작가라면 서머싯 몸의 작품에 도저히 무관심한 척할 수가 없다. 몸은 작가로서 빛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고어 비달


서머싯 몸의 장편소설 <면도날>은 1930년대 유럽, 그 풍요와 야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린다.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에서>와 함께 서머싯 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면도날>은 날카로운 면도날을 넘어서는 것처럼 고되고 험난한 구도의 길을 선택한 한 젊은이를 통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몸은 ‘구원’이라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특유의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와 유머를 잃지 않아, ‘소설은 재미를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문학관을 이 작품에서도 성공적으로 보여 준다. 치밀한 구성으로 주인공 래리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이 발산하는 젊음의 색깔들을 고르게 펼치는 <면도날>은 이 시대의 움츠러든 청춘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 대중이 사랑한 20세기 작가 서머싯 몸

서머싯 몸은 자전적 회상록 <요약(The Summing Up)>에서 “나는 20대에는 비평가들의 잔인한 평을 받았으며, 30대에는 건방지다는 평을, 40대에는 냉소적이라는 평을, 50대에는 유능하다는 평을, 그리고 60대에는 천박하다는 평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많은 작품이 사랑받았고, 말년에는 명예 훈위, 문학 훈위 칭호까지 받은 작가에 대한 평가치곤 가혹하게 느껴지지만, 이 고백이 작가의 엄살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생전에 비평가들에게 외면당한 작가였고, 그 명성에 비해 작품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아직까지도 의외로 적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몸은 많은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 통찰과 발견을 제공한 20세기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91세까지 사는 동안 장편소설 20편, 희곡 25편, 여행기와 평론집 11편, 단편소설 100편을 완성해 “정력의 작가”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성실하게 작품 활동을 했는데, 문학을 향한 그의 높은 열정은 당대의 대중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따라서 몸의 표현을 빗대어 그를 다시 소개하자면, 그는 살아서는 대중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고, 죽어서는 불멸의 고전으로 기억되는 거장이 되었다. 특히 그의 몇몇 장편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생생한 인물 묘사를 바탕으로 심오한 세계를 창조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중 하나가 뒤늦게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소개되는 <면도날>이다.

■ 평범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가치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축은 주인공 래리의 구도적 여정이다.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집안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래리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교회에도 나가고 골프도 즐기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어려서부터 사귀어 온 예쁜 여자 친구와의 결혼도 아무런 장애 없이 받아들일 만큼 그의 미래는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소박한 기대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로 래리의 삶은 보통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궤도에 들어선다. 부대에서 친해진 쾌활한 친구가 교전 중에 자신을 구해 주고는, 눈앞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삶의 날카로운 일면을 경험한 그는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들에 사로잡힌다.

“나는 순간, 직감이랄까, 이 청년의 내면에서 어떤 혼란스러운 갈등이 요동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갈등이 어느 정도 깊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막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 혼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래리는 안정된 직장과 결혼을 앞둔 약혼녀, 평범하게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버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답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그 구도의 여정은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곳곳을 돌아 마침내 인도의 아슈라마에까지 이른다.
이 작품 속 시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하여 대공황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다. 여러 굵직한 사건들로 인해 전통적 가치가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는 미처 성숙하지 못한 사회적 혼란기이다. 하지만 <면도날>은 이 혼돈을 소모적인 허무주의나 현실 도피로 연결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허영과 불안에 주목하기보다 래리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몰입한다.
소설 속 래리의 구원은 동양적 세계관과 닿아 있다. 래리는 로이스부르크 같은 신비주의자의 책을 탐독하고, 개개인의 영성적 변화에서 구원을 찾으며, 방랑자적인 면모를 풍긴다. 이것은 서머싯 몸 자신의 관심과도 일치한다. 실제로 몸은 젊은 시절 인도 여행을 통해서 많은 철학적 영감과 얻었으며, 그 경험을 이 소설에서 생생하게 녹여 낸다.

■ 세속적 삶 속에 숨겨진 성스러운 씨앗

한편 래리의 약혼녀 이사벨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래리와 전혀 다른 결단을 내린다.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함께 자라서 래리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는 이사벨이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래리가 예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져 불안해한다. 결혼은커녕 취직할 의지도 없이 “빈둥거리는” 래리를 보다 못한 이사벨은 파리에 가서 2년간 원하는 공부를 실컷 하고 돌아오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약속한 2년이 다 흐르도록 래리가 “바보 같은 소리”만 늘어놓자 미련 없이 그를 포기한다.

“하지만 래리, 그거 알아? 당신은 나한테 맞지도 않는 삶을 요구하고 있어. 내가 관심도 없고, 또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은 삶 말이야. 난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 난 이제 겨우 스무 살이야. 10년 후면 늙어 버릴 거고, 지금 시간이 있을 때 삶을 즐기고 싶어. 아, 래리, 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삶은 시시해.”

사랑 대신 안정되고 화려한 생활을 선택한 이사벨은 래리의 친구이자 재벌 2세인 그레이와 결혼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사벨을 단순히 악녀로만 묘사하진 않는다. 오히려 순수하고 욕망에 솔직한 사랑스러운 여성으로 그린다. 그녀뿐만 아니라 무리한 고집으로 사업을 벌이다 대공황 때 빈털터리가 된 그레이나, 남편과 아이를 잃고 미쳐 버린 소피,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첩으로 살아가는 닳고 닳은 수잔, 파리 사교계의 지독한 속물 엘리엇마저도 작가는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몸은 여러 가지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이 시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아름답게 진열한다. 결국 그것이 개인적인 행복이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면도날>의 인물들은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당당하고, 그것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세속적 삶 속에 숨어 있는 성스러움의 씨앗을 볼 수 있다. 세속적 삶과 가장 동떨어진 래리조차도, 긴 여행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어 나간다. 이로써 작가는 시끌벅적하고 서로 부대끼는 구체적인 현실이 마냥 천박하고 비루한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을 구현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이야기 안팎을 오가며 펼쳐지는 생생한 입담

이 책의 독특함 중 하나는 작가 자신이 소설 속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작품 속 조연인 ‘서머싯 몸’은 때론 인물들의 가까운 이웃으로, 때론 몇 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옛 친구로 그들의 삶을 전해 준다. 소설 속 서머싯 몸은 명백히 가공된 인물이지만 작가라는 직업과 이름이 똑같을 뿐 아니라, 취미, 버릇, 성격 등 실제 자신을 모델로 실감나는 이야기를 창조한다. 또한 이러한 참신한 설정을 활용해, 작가는 이야기 밖에서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마땅히 붙일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별로 없고 결말이 죽음이나 결혼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말년의 몸은 여전히 독설가이고, 냉소적인 개인주의자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이기심에 관대하고, 아집을 포용하는 어른의 태도를 보여 준다. 작가는 <면도날>을 통해, 방황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열성적인 후원자는 아닐지라도,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면도날>은 세상이 정해 놓은 레일을 뛰어 넘은 래리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준다. 누구에게나 잠재하는 숭고함의 씨앗은, 삶을 통해서 증명될 때 비로소 명징한 빛을 밝힐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숭고함을 절대시하기보다, 가치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 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의 삶에서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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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
긴 글
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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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1899년,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미국의 상류계층을 '유한계급'으로 지칭하며 그네들의 과시적인 낭비 행태를 풍자하는 책, 『유한계급론』을 출간하였다. 이 책을 두고 한 서평가는 이 책이 영국의 유한계급을 모방하고 영국 귀족과 결혼하려 드는 미국 상류층의 행태를 묘사한 점에서 미국 문학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 평가하였다. 공교롭게도 20세기 초 미국 '유한계급'의 행태는 1944년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의 『면도날』로 비슷하게 재연되었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면도날』은 작가인 서머싯 몸이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대공황 시기까지, 두 부류의 인물상을 관찰한 이야기다. 한편에는 미국인 속물들이라 할만한 엘리엣 템플턴과 조카딸 이사벨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1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였으나 눈 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로랜스 대릴, 줄여서 래리가 있다. 래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한동안 세상을 등졌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온다.



몸은 이 책을 시작하면서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없는 이런 글이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가 우려한다.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없다. 내가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마땅히 붙일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별로 없고 결말이 죽음이나 결혼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p. 9


확실히 이 책에서 등장인물들이 일으키는 사건은 이 책에서 잠깐 언급되는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일으키는 사건과는 거리가 있다. 스트릭랜드가 사고뭉치라면, 이 소설은 후반부의 한 사건만 빼고 끊임없이 화자인 몸이 엘리엇, 이사벨, 래리, 그외 소피, 수잔 루비에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 중심에는 래리가 있다.



이 책은 내가 이따금 만나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한 남자를 회상한 내용이다. 나는 그가 나와 만나지 않았던 기간에는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나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기간에 있었을 법한 일을 그럴듯하게 꾸며 내 좀 더 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단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P10


인물 간의 갈등(주로 이사벨과 래리 사이)이 빚어지긴 하지만, 주요 인물들 중 찰스 스트릭랜드에 비견될 만한 초대형사고를 치는 인물은 없다. 



이 책에서 긍정적으로 비춰지는 인물은 역시 주인공이라 할 인물은 래리이다. 래리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한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서 공군으로 참전한 후 동료가 한순간에 '핏덩이'가 되는 꼴을 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래리의 등장은 상당히 늦다.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속물근성으로 가득찬 엘리엇 템플턴이다. 이 소설의 비중만 놓고보면 엘리엇 템플턴이 진짜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엘리엇은 풍족한 재산을 지니고, 유럽의 사교계에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사람을 대할 때 사회적 신분을 따지며 대하는 속물의 전형이다. 그가 머무는 방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그가 몸과 친해진 계기도 몸이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나중 가면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속옷을 몸에게 보여준다거나, 죽음을 앞두고서도 사교 파티 초대장에 답하려 하는, 나름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예술품을 알아보는 교양과 안목이 있으며, 프랑스어와 영국식 영어에도 능통한 인물이다. 술집에서 다같이 대화를 나눌 때, 술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한껏 늘어놓는다. 



이 같은 엘리엇 템플턴의 면모는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묘사한 유한계급의 모습과 많은 점에서 들어맞는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이 쓸모없는 지식과 예의범절을 학습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는 과시적 여가, 역시 쓸모없이 소비하며 재산을 과시하는 과시적 소비, 이른바 과시적 낭비를 일삼는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시간과 재산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유한계급은 쓸데없는 예의범절과 오로지 낭비로만 귀결되는 각종 지식을 남들 앞에서 보여준다는게 그의 요지다.



어느새 우리는 미술관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도 그림으로 옮겨 갔다. 나는 엘리엇의 박학다식함과 예술적 안목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관광객이라도 안내하듯 나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 어떤 미술교수라도 엘리엇만큼 훌륭하게 그림을 설명해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 P41
그때부터 엘리엇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최고급 요리사를 불러왔고, 얼마 후 그의 집에 가면 리비에라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평판이 자자해졌다. 집사와 하인에게는 어깨에 금줄 장식이 달린 흰색 제복을 입혔다. 그는 최대한 후하고 성대하게 손님들을 대접하되, 고상한 품위를 지키기 위한 한계선은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P207
내가 엘리엇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감탄한 점은, 그가 신분 높은 인사들을 대할 때 우아함과 예의를 한껏 갖추면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독립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P208
이러한 엘리엇의 모습에서, 그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사생활 속에서 얼마나 자신의 예의범절과 '교양'을 갈고 닦았는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래리는 책의 첫 페이지에 인용되는 카타 우파니샤드의 구절, 넘어서기 어려운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건너 구원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래리는 엘리엇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 이후에나 등장한다. 3장과 6장에서 몸이 래리에게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래리는 대체로 몸, 엘리엇, 이사벨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 엘리엇과 이사벨이 소설 내내 파리에 머무는 동안, 래리는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를 떠돌다가 마침내 인도에 가 요가수행자를 만나 수행까지 하고 돌아온다.



엘리엇, 이사벨의 가치관과 래리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은 래리가 이사벨과 파혼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사벨은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나 래리는 정신적으로 의미있는 삶을 찾고자 한다.



이사벨과 래리의 관계에서도 주목할 측면이 있다. 이사벨은 그레이 매튜린과 결혼한 이후에도 래리를 향한 욕정을 내보이는가 하면, 래리가 소피 맥도널드와 결혼하려하자 이를 훼방놓는다. 이사벨은 어떻게든 래리를 소유하려하지만 이사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오히려 소피와의 결혼이 무산된 래리는 이사벨을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다.



래리라는 인물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6장에서 독자는 몸과 래리의 대화를 통해 인도철학을 일부 나마 접하게 된다. 이때 래리가 말하는 인도 철학은 래리의 관점으로 정제된 인도철학, 즉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인도 철학'이다. 이 지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으로 해부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이 쓰여진 당시에는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 같은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테니 그러려니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배경은 20세기 초, 정확히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해당한다. 1944년에 발표되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의 시점을 다룬 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물질주의적인 속물들, 엘리엇과 이사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래리를 통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족한 삶, 남들이 우러러 보는 삶이 의미있는 삶, 행복한 삶인가? 아니면 소설 후반부에서 래리가 선택한 것처럼 물질적으로는 평범한 삶,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단할 수도 있는 삶을 살더라도,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 갈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인가? 결국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동시에 삶의 의미를 성찰 하는 것과도 같다.



래리와 몸의 대화 중 래리의 흥미로운 한 마디를 언급하면서 본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연히였죠.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간의 유럽 생활 끝에 치러야만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 P409
가끔 우연과 필연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우리 삶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인 줄 알았더니 사실 처음부터 그 결과가 래리 말마따나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번번이 그에 대해 나 스스로 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항상 재미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 P7

그러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엘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 P515

Heath 2023-02-04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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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1월 달이었다. 결산도 이틀이나 늦고.







올해 처음 읽은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까. 쉽게 읽히는 책이며 메타버스, AI 같은 최신 트렌드와 해당 트렌드의 맥락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분량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얇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ChatGPT를 접할 때 이 책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신장판은 6권이지만 구판은 무려 18권. 2부 6권까지는 폴 아트레이데스가 주인공이다. 폴 아트레이데스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지만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2부 6권 마지막에 그려지는 폴의 모습은 씁쓸하다.







"듄의 아이들"이라는 제목 답게 이야기의 주역이 폴의 아이들, 레토 2세와 가니마에게로 옮겨갔다. 빨리 8, 9권도 읽어야 할텐데. 









요즘 핫한 ChatGPT를 쓰다 보면 이 글에서 제일 먼저 언급된 메타버스 사피엔스가 아니라 이 책부터 생각난다. 구글 검색을 할 때는, 구글이 엄청난 정보를 툭 던져 놓으면 사용자가 일일이 구글이 던져놓은 정보와 지식을 검토해야 했다. 그런데 ChatGPT를 써보면 (아직 한계가 있다지만) AI가 알아서 정보를 다 찾아와 입에 떠 먹여주는 수준이다. 그 점에서 단순 정보나 지식을 획득하는 수준을 넘어, 지혜에 이르는 공부를 일찍부터 강조한 이 책은 지금 시대, 다가오는 시대에 더 필요하다 해야 할까. 



 



20세기를 넘어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열렬한 호응(?)을 받는 작가 살만 루슈디의 문제작. 이 작품을 통해 루슈디라는 작가에게 매혹되고 루슈디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한데 아쉽게도 루슈디의 다른 작품을 읽을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덧붙여 문학동네 개정판이 아니라 구판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을 빌릴 때 도서관에는 2022년 문학동네 개정판 2권이 없어서였다. 이번 2월 달에 "Victory City"라는 루슈디의 신작도 나온다고 하는데 과연 국내에는 언제 출간될지?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일으킨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마지막 저서. 촛불을 보고 떠오르는 몽상은 무엇인가를 담은 책이다. 읽고 글 하나 써보려했다가 처음 포기한 책이기도 하다. 다음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그때는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판본도 참고해보려 한다. 







에코가 여러 소설에서 보여준 관심사가 사실상 이 책 하나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에코의 소설을 많이 접하고 에코의 소설을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이 책이 매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원래 1월에 구상한 계획 중 하나가 서평 관련 책들을 읽은 후 모티머 애들러 식으로 말하자면 통합적 독서, 혹은 주제서평 쓰기 비슷한, 그런 걸 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진척이 안되고 있다. 일단 각각의 책들마다 리뷰부터 남겨야 할텐데.









삶의 의미를 물질적 부유함에서 이미 찾고 만족하는 엘리엇, 이사벨과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주인공 래리가 대비되는 소설이다. 읽기는 금방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쓰는 중이다.







책 읽는법과 서평 쓰는 법을 간단히 알려주는 동시에 실제 저자의 서평을 모아놓은 서평집이다. 덧붙여 만만찮은 분량에 달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서평이 덤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문서를 읽다보면 본문 아래에 조그맣게 달려 있는 각주의 역사를 추적한 책.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다만 모든 분야의 각주를 다루지는 않고 '역사학에서의 각주'에 관한 역사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분야는 간간히 언급만 된다.

Heath 2023-02-02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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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묘사가 살짝 힘들고 지루했지만 역시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왜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munsun09 2022-07-19 공감 (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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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묘사가 살짝 힘들고 지루했지만
역시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왜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구매
munsun09 2022-07-19 공감 (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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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서머싯 몸, 재미 하나는 진짜 끝내준다. 그러나 래리가 인도로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서구인에게 갠지스강이란, 인도란 무엇인가. <인생의 베일>의 ‘키티’, <케이크와 맥주>의 ‘로지’ 그리고 이 책의 이사벨, 수잔, 소피 등 몸이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은 확실히 좀 남다르다.  구매
잠자냥 2022-02-07 공감 (2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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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에 토종이 있다면
영국엔 백남 문학이 있구먼.
이 책은 가히 백남 문학의 정수라 할만한다. 토종하고 겨뤄 싸우면 누가 이길것인가..
재미는 있지만 백남 문학의 정수여...
보부아르가 왜 깠는지 너무 잘 알겠고요..  구매
다락방 2019-11-27 공감 (2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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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던 소설이다. 걸작!!!  구매
올리브 2013-08-07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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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이라하기엔 조금 무딘......... 역시 인생이란 단순하고도 어려운 것이구나......  구매
오늘도 맑음 2016-03-01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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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면도날은 무엇입니까? 새창으로 보기 구매
사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성공이나 권력, 지위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며 또 어떤 이는 건강, 사랑, 애정 같은 가치를 높이 사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을 최고의 삶으로 여기기도 할 것이다. <면도날>에도 이렇게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다양한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시작은 최근 읽었던 몸의 또 다른 작품  <케이크와 맥주>와 비슷하다. <케이크와 맥주>처럼 작가가 대단히 속물적인 한 인물을 만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단 <면도날>의 화자로, 직업이 작가인 ‘나’는 서머싯 몸 그 자신이다(이 작품의 재미 중 하나는 이렇게 서머싯 몸이 작품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나’(그러니까 서머싯 몸 그 자신)는 우연한 기회에 ‘엘리엇 템플턴’이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 사회적 신분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 없는 인물로, 상류사회는 그에게 인생 전부이며 파티는 숨구멍과도 같다. 사교계의 명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엘리엇에게 사실 일개 작가인 ‘나’는 처음에는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나’ 또한 그의 속물스러움에 때로는 진저리를 치기도 하지만 사람을 잘 챙기고 베풀기 잘 하고 배려심이 깊은 그를 종종 만나며 친분을 쌓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작품이 엘리엇 템플과 화자인 ‘나’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이윽고 새로운 인물들-래리, 이사벨, 그레이 같은-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미국인인 엘리엇은 사교계의 명성을 좇아 이곳 유럽으로 건너와,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생활을 즐기는데 거기에 그의 조카딸인 이사벨 가족이 함께 하게 된다. 이제 막 스물 청춘인 이사벨과 래리는 약혼한 사이로,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인물들이다. ‘나’ 또한 래리와 이사벨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들을 종종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을 지켜보게 된다. 엘리엇은 조카딸을 사랑하는데 비해 그녀의 약혼자인 래리에게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데, 알고 보니 래리는 번듯한 외모와는 달리 빈둥빈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한량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고향에 돌아와 전쟁 영웅 대접을 받은 뒤 성공가도를 달릴만한 일에 뛰어들고도 남을 텐데 이 청년은 여기저기서 제안하는 좋은 일자리를 다 마다하고 벌써 꽤 오래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래리가 보란 듯이 일자리를 얻어 예전처럼 활기차고 의욕적인 삶으로 뛰어들 것이 분명하리라 기대하던 이사벨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래리와 단 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통해 그가 전쟁터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이후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래리- 그는 정신적인 삶에 몰두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아 나선다.





“난 증권 같은 걸 만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알았어. 그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의학 공부를 하는 건 어때?”
“아니, 그런 건 싫어.”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면도날>, 80쪽)

“그런데 왜 취직을 안 하겠다는 거야?”
“왜냐고 난 돈에 관심이 없어.”
이사벨은 웃었다.
“래리,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난 조금은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만큼은 있다구.”
“빈둥거리는 거?”
“그래.” (<면도날>, 82쪽)




래리가 예전의 모습대로 돌아오기만을 바라던 이사벨은 급기야 툭 터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돈에 관심이 없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고 싶다는 래리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위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래리는 하루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가까이 책을 읽고, 소르본 대학에서 하는 강의도 듣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사벨은 도무지 그런 약혼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배워서 뭐하려고 그래?” “현실적으로 별로 쓸모없는 것들 같은데.” 말할 뿐이다. 정신적인 삶에 만족하는 래리를 ‘너는 미국인’이라고 다그치며 이제까지 없던 번영의 시기를 누리는 미국의 발전에 참여하고 이바지하는 삶을 살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래리는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이사벨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데카르트를 읽고 평온함과, 품격, 명석함에 전율하는 사람과 ‘커다란 쇼윈도가 줄줄이 이어진 콘크리트 보도를 걸으면서 모자나 모피코트, 다이아몬드 팔찌, 금장 화장품 케이스 등을 구경할 수 없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결혼해 삶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어쩐지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그래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다.

서머싯 몸은 이 두 청춘, 이사벨과 래리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켜보며 그들이,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지, 원하는 바를 얻는지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래리는 그가 찾는 인생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고자 안정적인 직장과 보장된 미래, 사랑하는 약혼녀도 모두 버리고 유럽 곳곳-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등지를 방랑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향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여정은 인도의 아슈라마에까지 이른다. 사실 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다가 래리가 인도로 갔다는 부분, 래리가 갠지스강을 바라보면서 정신적으로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는 조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별 다섯에서 갑자기 별 넷으로 하락하는 시점…. 결국 서양인의 방랑의 끝, 방황의 끝은 인도인가, 갠지스강인가 싶어 그놈의 오리엔탈리즘은 입담꾼 서머싯 몸도 어쩔 수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래리는 자신이 바라는 걸 정말 얻었을까?

물질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처음에는 래리의 선택에 사뭇 공감이 갔다. 하루 8~10시간 가까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빈둥빈둥 책을 읽고 배우고 싶은 언어를 마음껏 배우고 여기저기 떠도는(여행하는) 삶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에게는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부유한 환경이 있었다. 그는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현재도 빈둥빈둥 놀면서 지내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돈이 들어온다. 래리처럼 해마다 3천만 원 가까운 돈이 들어온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책 읽고 언어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알라딘 서재에는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래리의 정신적인 삶을 찾아 떠나는 방랑에는 얼마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富)가 뒷받침되었기에 조금은 배부른 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그는 어느 순간 그 돈마저도 굴레라고 말하면서 그 굴레를 벗어난다. ‘나’, 즉 서머싯 몸은 그런 래리를 어리석다며 뜯어 말리는데 이런 작가의 어느 정도 속물적인 모습은 참 인간적으로 다가와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돈과 명예, 화려한 삶을 좇는 이사벨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인간 유형은 아니지만 나쁜 여자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사벨뿐만이 아니라 래리를 스쳐지나가는 또 다른 여인들, 수잔이나 소피도 그들의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에 어떤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나름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그려간다. 이 여성인물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밝히고 그것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케이크와 맥주>의 ‘로지’와 닮았다. 물론 소피가 애초에 선택한 삶은 자기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천국 같은 생활을 하다가 그것을 잃게 되니까 보통 사람들이 사는 보통 세상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해서 지옥으로 곤두박질친” 것처럼 “신들이 마시는 넥타를 마실 수 없다면 차라리 밀주를 마셔도 상관없다고 생각”(328쪽)하고 자기를 내던지듯 살아가는 그녀의 선택도 선택이라면 선택이 아닐까. 진짜 천국이 아니면 차라리 지옥을 선택하겠다는, 그 극단적이리만치 성스러움을 고집한 그녀의 모습에서 래리가 ‘결혼을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사는 게 엿 같잖아요. 그걸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당연히 누려야죠.” (<면도날>, 370쪽)


소피는 이렇게 말했다. 고단한 삶에서 그걸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그 ‘무언가’- 그것이 결국 여기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추구했던, 저마다 높이 샀던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엘리엇은 사교계의 명성을, 이사벨은 부와 성공을,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장과 사무실을, 수잔은 다정하고 안정적인 삶을, 소피는 지옥이 된 현실을 벗어나기를, 그리고 래리는 정신과 영혼이 충만한 삶을…. 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그들은 그 ‘무언가’를 찾아 계속 방랑할 것이고, 그러다가 정말 운이 좋은 그 누군가는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 접기
잠자냥 2022-02-08 공감(40) 댓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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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님 찬양

또 출장이다. 이제 정말 그만 하고 싶은데...지난번 출장때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도 쓰고 싶은데...이웅. 2주전 공항 그때의 그 의자에 앉아서 면도날을 읽기 시작했다. 어마나.....가독성, 흡입력, 재미, 게다가 깊이도 있는 이책. 미췬듯이 읽어내려갔다. 킨들을 한손에 쥐고, literally  눈에서 킨들을 뗄 수가 없었다. 우와. 몸님. 오랜만의 글자 중독질.
han22598 2022-04-26 공감(30)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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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담배 한 대만 주세요... 
면도날 ㅡ 서머싯 몸

그러던 어느 날 , 이런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 샤르트르에 갔다가 파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 그레이가 운전을 하고 래리는 조수석에 , 이사벨과 나는 뒷자석에 앉았다 . 긴 하루를 보낸 터라 모두들 지친 상태였다 . 래리는 조수석 등받이 위쪽으로 팔을 뻗어 걸쳐놓았는데 , 그 자세 때문에 셔츠 소매가 올라가면서 가늘지만 강인한 팔목과 팔뚝이 드러났다 . 팔뚝을 가볍게 뒤덮은 솜털 위로 햇살이 쏟아져 황금빛으로 빛났다 . 순간 나는 이사벨의 몸이 경직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그녀를 흘끗 보았다 . 그녀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 호흡이 빨라지면서 두 눈은 금빛 솜털로 뒤덮인 강인한 손목에 고정되었다 . 그의 손가락은 길고 섬세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 나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토록 강렬한 욕정을 본 적이 없었다 . 마치 색욕의 가면 같았다 . 그 아름다운 얼굴에 그토록 방자하고 음탕한 표정이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 음탕한 표정 때문에 섬뜩하고 무섭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 마치 교미 중인 암캐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그녀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 .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래리의 손뿐이었다 . 무심하게 등받이를 감싼 그 손이 그녀를 광란의 욕정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 잠시 후 , 마치 경련이 인 듯 그녀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두 눈을 감고 구석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말했다 .

" 담배 한  대만 주세요 ."

ㅡ본문 313 /314 쪽에서 ㅡ

책을 읽고도 나는 제목이 주려한 느낌이나 뉘앙스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조금 괴로웠던 상태였다 . 멍하니 오전이 지나가는 것을 두 눈만 뜬 채로 흘려보내다가 돌연하게 떠올린 것이 위의 문장이었다 . 순간 날카롭게 뭔가가 왔다갔는데 지금 다시 그 느낌을 잡으려하니 그 짧은 찰나가 신경성 위통처럼 고통스럽다 . 누군가 나를 보고있다면 나 역시나 이사벨이 느낀 꽁꽁 묶인 관능의 고통을 겪는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 

래리는 글 속에서 거의 무성애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  마치 성욕 같은 건 오로지 이 세상의 것이고 그 자신은 순수한 사랑 ( 박애) (에로스처럼) 그 이상도 이하도 꿈꾸지 않는 일종의 구도자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제목은 흐릿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명화 ㅡ 가 하나 있었다 .  

발랄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작은 활을 든채 화면을 작게 가로지르는 에로스와 그를 향한 나신의 여성(비너스?)이 좀 더 커다란 활을 들어 올리는 몸짓과 함께 둘 사이의 공기를 먼 데서 엿보는 듯하던  그 그림에 ,  그 이상적인 모성 발현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 내겐 몹시도 애로틱해 보여서 어리둥절 했을 뿐이었던 기억 ㅡ 그러니 어쩌면 이 작품의 배경엔 서머싯 몸이 명화 속 비너스와 에로스의 한 장면을 보며 연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순전한 추측을 놓아본다 . 

운전석의 남성이 아닌 조수석의 남성 , 그레이의 육중한 몸과 래리의 날렵하고 강인해보이는 육체 , 이사벨은 매일 밤 그레이와 나란히 눕는 평온한 밤을 가졌지만 진심으로 오래도록 사랑해 온 래리는 끝내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했다 . 어쩌면 그 지점이 래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모성 쯤으로 변환시켜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거라면 , 위의 순간엔 마침내 모성을 걷어내고 한 이성을 순순한 욕구만을 드러내고 본다 . 인간의 욕망이란게 어디 멀리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겠냐고 하듯이 , 맨 얼굴을 보이는 비너스의 파괴적인 순간 . 그러니 인간과 인간이 가진 욕망은 ,  그 틈은 면도날처럼 얇디 얇아서 스윽 베이고도 뒤늦게 맺힌 핏방울에  상처를 느끼고 비릿한 피 맛을 볼 뿐이란 이야기가 아닐까  . 

이사벨은 그 날 그 순간이 몹시 고통스러웠을 게다 . 다 가졌는데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결코 가질 수 없는 한 인간을 보며 ,  들끓는 애욕으로 번다한 밤이 앞으로 내내 찾아오지 않을까 .  그레이의 얼굴을 몸을 끌어 안으면서도 그 뒤론 래리의 몸짓을  느끼고 싶어 갈망하는 밤 . 
욕망을 숨기는 우리의 가면은 실상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일(?) 들에 무너진다 .  아, 아 , 그러니 저도 담배 한 대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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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3-13 공감(28) 댓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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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읽는 서머싯 몸의 소설 새창으로 보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서머싯 몸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하루키씨의 소설을 보다가 였습니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이 서머싯 몸의 책을 읽고 있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서머싯 몸, 일단 이름부터 느낌있습니다.



 어느 날 스터디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지루해졌습니다. 카페 내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던 중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별로 끌리지는 않았지만 '흐음, 한 번 봐볼까?' 하고 책을 펼쳤습니다. 고갱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것조차 모르고 봤습니다. 엄청난 이야기의 흡입력이었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한 달음에 다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머싯 몸을 기억하게 됐고 그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사의 <면도날>을 구입했습니다. 책 표지도 그렇고 손이 잘 안 갔습니다. 책도 두꺼워서 더 손이 안 갔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조금 봐볼까?' 하는 생각으로 <면도날>을 들었습니다. 역시나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습니다. 서머싯 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면도날>을 읽고 서머싯 몸의 작품은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드는 작가가 많은 편입니다. 실제로 다 읽는 경우는 드물지만요.



 아무튼 <면도날>을 재밌게 읽고 <인간의 굴레에서>1, 2 를 구입했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는 않아서 빨려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면도날>은 한 젊은이의 여정을 그립니다. 전쟁의 상흔을 겪고 변해버린 젊은이는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들에 사로잡힙니다. 저도 주인공 래리라는 젊은이에 공감이 많이 가서 그런지 더욱 재밌게 봤습니다. 



 서머싯 몸의 소설은 재밌습니다.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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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03-04 공감(2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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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면도날을 넘어서는 사람은 과연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1899년,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미국의 상류계층을 '유한계급'으로 지칭하며 그네들의 과시적인 낭비 행태를 풍자하는 책, 『유한계급론』을 출간하였다. 이 책을 두고 한 서평가는 이 책이 영국의 유한계급을 모방하고 영국 귀족과 결혼하려 드는 미국 상류층의 행태를 묘사한 점에서 미국 문학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 평가하였다. 공교롭게도 20세기 초 미국 '유한계급'의 행태는 1944년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의 『면도날』로 비슷하게 재연되었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면도날』은 작가인 서머싯 몸이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대공황 시기까지, 두 부류의 인물상을 관찰한 이야기다. 한편에는 미국인 속물들이라 할만한 엘리엣 템플턴과 조카딸 이사벨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1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였으나 눈 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로랜스 대릴, 줄여서 래리가 있다. 래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한동안 세상을 등졌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온다.



몸은 이 책을 시작하면서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없는 이런 글이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가 우려한다.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없다. 내가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마땅히 붙일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별로 없고 결말이 죽음이나 결혼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p. 9


확실히 이 책에서 등장인물들이 일으키는 사건은 이 책에서 잠깐 언급되는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일으키는 사건과는 거리가 있다. 스트릭랜드가 사고뭉치라면, 이 소설은 후반부의 한 사건만 빼고 끊임없이 화자인 몸이 엘리엇, 이사벨, 래리, 그외 소피, 수잔 루비에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 중심에는 래리가 있다.



이 책은 내가 이따금 만나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한 남자를 회상한 내용이다. 나는 그가 나와 만나지 않았던 기간에는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나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기간에 있었을 법한 일을 그럴듯하게 꾸며 내 좀 더 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단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P10


인물 간의 갈등(주로 이사벨과 래리 사이)이 빚어지긴 하지만, 주요 인물들 중 찰스 스트릭랜드에 비견될 만한 초대형사고를 치는 인물은 없다. 



이 책에서 긍정적으로 비춰지는 인물은 역시 주인공이라 할 인물은 래리이다. 래리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한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서 공군으로 참전한 후 동료가 한순간에 '핏덩이'가 되는 꼴을 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래리의 등장은 상당히 늦다.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속물근성으로 가득찬 엘리엇 템플턴이다. 이 소설의 비중만 놓고보면 엘리엇 템플턴이 진짜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엘리엇은 풍족한 재산을 지니고, 유럽의 사교계에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사람을 대할 때 사회적 신분을 따지며 대하는 속물의 전형이다. 그가 머무는 방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그가 몸과 친해진 계기도 몸이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나중 가면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속옷을 몸에게 보여준다거나, 죽음을 앞두고서도 사교 파티 초대장에 답하려 하는, 나름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예술품을 알아보는 교양과 안목이 있으며, 프랑스어와 영국식 영어에도 능통한 인물이다. 술집에서 다같이 대화를 나눌 때, 술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한껏 늘어놓는다. 



이 같은 엘리엇 템플턴의 면모는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묘사한 유한계급의 모습과 많은 점에서 들어맞는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이 쓸모없는 지식과 예의범절을 학습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는 과시적 여가, 역시 쓸모없이 소비하며 재산을 과시하는 과시적 소비, 이른바 과시적 낭비를 일삼는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시간과 재산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유한계급은 쓸데없는 예의범절과 오로지 낭비로만 귀결되는 각종 지식을 남들 앞에서 보여준다는게 그의 요지다.



어느새 우리는 미술관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도 그림으로 옮겨 갔다. 나는 엘리엇의 박학다식함과 예술적 안목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관광객이라도 안내하듯 나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 어떤 미술교수라도 엘리엇만큼 훌륭하게 그림을 설명해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 P41
그때부터 엘리엇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최고급 요리사를 불러왔고, 얼마 후 그의 집에 가면 리비에라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평판이 자자해졌다. 집사와 하인에게는 어깨에 금줄 장식이 달린 흰색 제복을 입혔다. 그는 최대한 후하고 성대하게 손님들을 대접하되, 고상한 품위를 지키기 위한 한계선은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P207
내가 엘리엇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감탄한 점은, 그가 신분 높은 인사들을 대할 때 우아함과 예의를 한껏 갖추면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독립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P208
이러한 엘리엇의 모습에서, 그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사생활 속에서 얼마나 자신의 예의범절과 '교양'을 갈고 닦았는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래리는 책의 첫 페이지에 인용되는 카타 우파니샤드의 구절, 넘어서기 어려운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건너 구원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래리는 엘리엇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 이후에나 등장한다. 3장과 6장에서 몸이 래리에게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래리는 대체로 몸, 엘리엇, 이사벨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 엘리엇과 이사벨이 소설 내내 파리에 머무는 동안, 래리는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를 떠돌다가 마침내 인도에 가 요가수행자를 만나 수행까지 하고 돌아온다.



엘리엇, 이사벨의 가치관과 래리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은 래리가 이사벨과 파혼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사벨은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나 래리는 정신적으로 의미있는 삶을 찾고자 한다.



이사벨과 래리의 관계에서도 주목할 측면이 있다. 이사벨은 그레이 매튜린과 결혼한 이후에도 래리를 향한 욕정을 내보이는가 하면, 래리가 소피 맥도널드와 결혼하려하자 이를 훼방놓는다. 이사벨은 어떻게든 래리를 소유하려하지만 이사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오히려 소피와의 결혼이 무산된 래리는 이사벨을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다.



래리라는 인물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6장에서 독자는 몸과 래리의 대화를 통해 인도철학을 일부 나마 접하게 된다. 이때 래리가 말하는 인도 철학은 래리의 관점으로 정제된 인도철학, 즉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인도 철학'이다. 이 지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으로 해부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이 쓰여진 당시에는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 같은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테니 그러려니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배경은 20세기 초, 정확히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해당한다. 1944년에 발표되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의 시점을 다룬 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물질주의적인 속물들, 엘리엇과 이사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래리를 통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족한 삶, 남들이 우러러 보는 삶이 의미있는 삶, 행복한 삶인가? 아니면 소설 후반부에서 래리가 선택한 것처럼 물질적으로는 평범한 삶,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단할 수도 있는 삶을 살더라도,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 갈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인가? 결국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동시에 삶의 의미를 성찰 하는 것과도 같다.



래리와 몸의 대화 중 래리의 흥미로운 한 마디를 언급하면서 본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연히였죠.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간의 유럽 생활 끝에 치러야만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 P409
가끔 우연과 필연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우리 삶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인 줄 알았더니 사실 처음부터 그 결과가 래리 말마따나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번번이 그에 대해 나 스스로 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항상 재미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 P7

그러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엘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 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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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 2023-02-04 공감(1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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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찾는 여정 그리고 평범한 삶 ,소설 ‘면도날’
2018.12.07 
[위드인뉴스 홍승범]




인간에게 과연 ‘구원’이 있을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은 고되고 험난하다. 하지만 여느 성자들이 다 그러했듯이 구도의 길이 이끄는 엄청난 관성은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 때문이라면 더더욱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전쟁에서 내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구하고 죽는 순간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만드는 순간이다. ‘면도날’은 자신의 삶을 뛰어넘어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는 한 인간





인간의 존재 근원에 대한 ‘면도날’의 날카로운 질문
면도날은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로 손 꼽힌다. 1930년대 유럽, 새로운 경험을 꿈꾸던 한 젊은이 래리는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목격한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집안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래리는 평범한 미국청년으로 성장해 여자친구인 이사벨과 결혼을 생각할 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저 유렵으로 향한다는 기대감 만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인간으로 보기 힘든 전쟁의 끔찍한 참상들을 그대로 목격하게 된다.




▲작가 윌리엄 서머셋 모옴은 ‘면도날’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출처 = picryl)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래리는 이사벨과 재회하지만 래리는 이미 예전의 래리가 아니었다. 그는 미래에 윤택한 삶에 대한 목표는 멀리 하고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런 래리를 보는 이사벨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결국 이사벨은 래리를 떠나고 래리 역시 자신이 걷고 있던 삶의 길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찾아 길을 떠난다.




래리의 구도 여정은 그를 다시 유럽으로 이끈다.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돌아 래리는 인도에 까지 이르게 된다. 한편 래리와 이별한 후 이사벨은 재벌 2세인 그레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이 무조건 세속적이라 할 수 있을까? 소설은 래리와 이사벨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나열하며 무엇이 진정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다른 길을 찾아 떠난 래리와 이사벨, 정답은 있을까?
‘면도날’은 세상을 벗어나는 한 인간의 여정을 통해 존재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이 과정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숭고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윌리엄 서머셋 모옴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손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유머러스하고 간결한 문체는 구도의 길을 찾아나서는 래리의 여정을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만들어준다.




특히 래리 뿐만 아니라 이사벨, 그레이 등 다양한 인물들이 인생을 만들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삶과 인간 존재의 가치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은 미묘한 은유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특별한 ‘구도의 삶’과 ‘평범한 삶’이 어떤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인간 군상의 나열은 독자들에게 인생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윌리엄 서머셋 모옴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20세기의 대표적 작가다. 그는 91세까지 사는 동안 장편소설 20편, 희곡 25편, 여행기와 평론집 11편, 단편소설 100편을 써냈다. 끊임없는 작품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낸 그의 창작은 대중들에게 그를 잊을 수 없는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 그의 삶에 대한 정수를 ‘면도날’에서 볼 수 있다.

홍승범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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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찾아 떠난 여행, 서머싯 몸의 '면도날'


석지헌 기자

입력2017-10-15 

[글로벌이코노믹 석지헌 기자]

윌리엄 서머싯 몸(1874.1.25 ~ 1965.12.16)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책의 제목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면도할 때 쓰는 그 면도날이 맞다. 저자는 구원에 이르는 고행의 길은 면도날의 칼날처럼 날카롭고 아프다는 의미에서 책의 이름을 <면도날>로 붙였다고 한다. 이 책은 주인공 래리가 '자기완성'을 위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책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명성을 찾는 자, 돈을 좇는 자, 이상을 찾는 자, 죽음과 안정을 찾는 자. 이들은 사고방식도, 삶의 방식도 모두 다르다. 저자는 식상하게 명성이나 지위, 돈을 추구하는 인물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 삶의 방식이 모두 옳다고,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한 인물의 삶에 유독 초점 맞추는데 그 인물이 바로 '래리'다. 10대의 젊은 나이로 1차 세계대전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래리는 참전하기 전까진 아름다운 여자친구 '이사벨'과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전쟁에 나가 자신을 구하려다 친구가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본 후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그때 나도 그런 느낌이었어."

래리는 한 존재가 사라진 모습을 위와 같이 회상한다. 전쟁은 그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돈을 버는 일이나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전쟁 속 참혹한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해,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은 성찰의 길에 들어선다.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는 나를 찾는 여행을 위해 탄광촌으로 인도로, 성자를 따라 명상과 배움의 길에 들어선다.

기나긴 여정 끝에 다시 나타난 그는 "인간을 초월한 어떤 인식이 나를 소유하면서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골치 아팠던 모든 것이 설명되는 기분"이라며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묘사한다. 그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서머싯 몸의 '면도날'."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혼자' 노력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냐고 되묻는 누군가의 물음에 래리는 답한다.

"시도는 할 수 있잖아요. 물레도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거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한 사람이었어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작게나마 영향력을 갖고 있게 마련이죠. 연못에 돌 하나를 던져도 이 우주는 돌을 던지기 전의 우주와 똑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 인간이 고결하고 완벽해지면 그런 성품의 영향력이 널리 퍼져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그 사람에게 이끌리게 됩니다."

올 가을, 래리와 깨달음의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면 <면도날>을 읽어보자.


석지헌 기자 cak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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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기
by 익독 2020. 5. 18.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1930년대 유럽, 그 풍요와 야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

www.yes24.com
 

 

얼마 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문학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나에겐 정말 고맙고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에 참존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라는 책도 알게 되어 읽었지만, 이번 책 역시 그러하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여행하고 싶어 지고, 삶의 의욕이 생기게 되는 책이라나?

 

친구들로부터 책에 대한 예찬과 추천은 끊이질 않았기에, 군대 휴가 나온 친구 집에 급하게 들러서 결국 빌려서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다. 

 

 

 

 


면도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기
 

책에 대한 친구들의 칭찬과 추천이 끊이질 않았던 책, 면도날.

 

가슴 속 피가 끓어오르고, 여행을 가고 싶어 지고, 래리(작중 인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지고 등등.

 

나도 그렇고 이 책을 추천해주는 나의 절친들은 평상시 과장을 좀 하는 것이 없지 않아 조금 있지만, 알면서도 그들의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과 느낀 점은 나로 하여금 흥분과 기대를 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말이 백번 맞았다.

 

그러나 이 책의 결말에서 작가는 특정한 상황과 어떤 충격적인 결말을 연출하지않고 작품의 처음과 끝이 동일한 리듬으로 묵묵히 전개된다. 

 

몰입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기에, 비록 500여 페이지의 분량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지만 하루 날만 잡았다면 사흘이 아닌 당일날 바로 다 읽었을 것 같다. 

 

이 훌륭한 전개와 몰입도는 나에게 책을 읽으면서 작중 인물들의 대화 속에 당장이라도 같이 끼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했고, 이들의 생김새는 이미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특히, 이 소설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래리'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나아가려하는 여정은 나의 가슴속 열정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위에 기름마저 부어버렸다.

 

시중에는 많은 자기계발서가 있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계발서가 하는 얘기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로 똑같다. 우리가 다 아는 얘기이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를 쓴 작가들은 우리가 아는 똑같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으니 자기 계발서가 지루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기 계발서에서 얻은 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에 비로소 얻음이 있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렇듯, 이는 더운 여름날 갈증을 잠깐 해소하게 해주는 코카콜라고, 어두운 곳을 비춰주는 배터리가 얼마 안 남은 손전등이다. 그냥 순간적이다.

 

면도날은 천천히 조용히 가슴 속에 스며들어 나를 자극한다. 자기계발서처럼 나에게 어떤 행동과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강요하지 않음이 오히려 나로 하여금 움직이고 싶게 하고, 나를 사랑하게 하고, 멀리 그리고 더 높이 바라보게 한다.

 

 

 


면도날 목차. 총 7장과 작품 해설 그리고 작가 연보로 이루어져있다.

목차를 넘기면 나오는 장엄한 인용구
 

목차는 총 7장으로 구성되어있고, 목차를 넘기고 나면 장엄하게 한 문구가 쓰여있다.

 

그리고 이 책의 장엄한 여정은 저 말의 뜻을 찾기 위해 전개된다.

 

 

사회가 바라는 삶과 내가 바라는 삶
이 책의 뒤편에 이렇게 적혀있다. '비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작품.'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이 고민하는 것에 대해 이 책이 어느 정도 이정표 역할을 해주기에 위와 같이 소개를 한 것 같다. 

 

극단적이지만,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사회가 바라는 삶과 내가 정말 추구하고 싶은 삶이라는 기로에 놓여 자주 방황한다. 

 

나는 어렸을 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알아가는 것이 많아지니 더욱 소극적이게 되고 사회에 들어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음속에 천천히 뿌리내리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요즘 경제적으로 독립을 얻고 싶고, 얼른 직장도 다니고 싶고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작중 인물 래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그 삶은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다.

 

사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터무니없고 고리타분한 주제이고 그것이 래리가 추구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으나, 작품을 읽으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그냥 래리와 한 달만 동행하고 싶어 졌다.

 

그리고 진리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경제적 독립"이 내가 바라는 목표이고 현재 나의 진리이다 라는 편협한 생각과 가치관에서 좀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겨져 있었다.

 

정신적으로 해방되고 자유로움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세계인지 감히 가늠도 안 잡힌다.

 

 


 

 

 

 

 

윤회에 대한 나의 생각 
책의 후반부 6장에서는 래리와 작가가 나누는 길고 긴 얘기의 재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둘의 얘기라고 보기는 사실상 힘들고, 래리의 일방적인 스토리텔링과 작가의 경청이다. (작가는 래리만큼 멋있다. 정말 잘 들어준다.)

 

 


오늘 한강에서 마저 읽은 면도날.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좋았다.
 

6장은 줄거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작가는 얘기하나, 이 대화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런 책을 쓸 생각조차 안 했을 거라고 나를 책 속으로 더욱 잡아당긴다.

 

래리와 작가의 대화는 점점 절대자의 존재와 자유 그리고 진리 등 영원적인 것에 대한 것으로 흘러간다. 

 

읽으면서 감탄스러웠던 것은 6장에서 다뤄지는 사상과 내용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닌데, 작가가 이만치 쉽게 풀어낸 것이 문득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번 참존가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책에서 다뤄졌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면도날에서도 한 사상이 다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윤회이다. 

 

윤회는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죽으면 다음 생에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계속 돌고 돈다는 건데, 우리의 자아는 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말보다는 아래 책 속 한 부분을 첨부하는 것이 더 좋겠다.

 

 


p.444
 

바다에서 증발한 물이 다시 구름으로 올라가 소나기가 되어 내리고 이는 개천으로 흘러들어 가 강물을 굽이 따라가다 결국 다시 바다로 돌아온다. 윤회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말을 읽고 영혼은 세상을 돌고 돌아도 육신은 다르니 그것은 개성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책 속 작가가 나를 대신해해 주었다.

 

그리고 래리는 결국 개성이라는 건 자아의식의 표출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대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때 래리의 대답으로부터 내가 느낀 것은 윤회 사상, 자아실현과 추구 등의 추상적인 것은 오히려 더욱 아니었고, 

 

나의 육신이 현재(顯在)하듯, 나의 영혼 또한 그렇다는 것과 나의 영혼은 어디로 와서 나에게는 몇 번째로 왔는지는 몰라도 금생(今生)에선 나와 함께 있으며 나의 영혼에게 자유를 주고 싶고 잘해주고 싶어 졌다.

 

윤회? 사실은 잘 모르겠고,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래리의 대답과 이 책은 나에게 외부적 방향성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에 대한 방향성도 제시해주는 것 같다.

 

 

결론
책에 대해서 그리고 작중 인물인 래리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고 더 예찬하고 싶지만, 래리가 말했듯 침묵 또한 충분한 말과 대화가 될 수 있으니 나머지는 가슴속에 간직하려 한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이 책은 나의 가슴을 뜨겁게 했지만, 냄비가 팔팔 끓어올랐다가 금세 꺼지는 듯한 뜨거움이 아닌 아주 천천히 뜨거운 온기로 나를 감싸 어딘가로 날아가게 해주는 열기구를 하늘로 띄우는 뜨거움이었다.

 

래리가 너무 멋있었다. 래리와 식사를 한번 해보고 싶어 졌고, 래리가 가는 곳을 동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물론, 다른 작중 인물들도 멋있었다. 작가가 얘기하듯 앨리엇, 이사벨, 그레이, 소피, 수잔 모두 자신이 추구하는 삶, 원하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소피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래리만큼 멋있었던 것이 작가였다. 그는 모든 이들의 얘기를 잘 들어줬으며,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만큼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없다. 작가는 그런 인물이었다.

 

소설에 대한 재미와 감동 그리고 뜨거움을 매우 잘 느꼈던 책이다.

 

파리가 매우 가고 싶어 지는 새벽 3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