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5

경직되지않게, 넘치지도 않게 잘 살기 : 벗님글방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경직되지않게, 넘치지도 않게 잘 살기 : 벗님글방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경직되지않게, 넘치지도 않게 잘 살기

등록 :2021-11-11 

실상사 작은학교의 공부모습.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내가 살고 있는 지리산 산내면은 귀촌 귀농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새길을 찾은 사람들이 깃들어 살고 있다. 그 가족들이 대략 600명 정도 된다고 하니 새로운 삶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해도 넘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산내 초등학교에는 100명의 새싹들이 공부하고 있다. 전교생 모두 십여명 안팍인 면소재지의 초등학교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초등학교 이전에 부모를 따라 온 학생, 귀촌한 부모 덕분에 이곳에서 출생한 학생들이다. 벌써 이곳에서 출생한 훤민이와 금강이는 벌써 17세가 되어 대안학교인 작은학교 5학년이다. 이제 산내면에서 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좋은 일이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이곳에 온 사람, 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우리 공동체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동체 산책’을 마무리했다. 공동체 산책은 이곳 활동가로 살기로 발원한 사람들이 100일 동안 실습 하는, 일종의 인턴과정이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농장에서 일하고, 선배들과 대화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힘을 시험하고 기른다. 나는 백일동안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밭에서 일하며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눴다고 말했지만 주로 내가 말을 많이 했다. 그만큼 해주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적이나 훈계로 받아들이지 않은 그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지리산 실상사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함께 하는 걷기. 사진 실상사 제공

“농촌으로 오는 사람들은 자연과 친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친해져야 할 것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밭 고랑을 만들고 씨앗을 넣으면서 내가 묻는다. “그게 뭐예요” 인턴 학생이 묻는다. “그건, 노동친화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몸 쓰는 일이 정신에 스며들고, 몸으로 하는 일이 힘들지만 즐거워야 합니다.” 이어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몸 쓰는 즐거움의 맥락과 핵심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이를테면, 돈을 지불하면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일을 몸 쓰는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 둘레길을 걷거나 텃밭 정도를 돌보는 정도를 몸을 쓰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것들도 나름 의미와 쓸모가 있겠지만, 진정한 몸씀, 몸살림은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노동을 통하여 흠뻑 젖는 땀의 쾌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도 빛나고 노동도 빛나야 한다.



조언의 필수품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생각의 힘을 빼는’ 일이다. 이 무슨 뜻인가? 귀촌 귀농한 분들 중에는, 청년이건 성인이건 간혹 특정 ‘이념’의 틀에 갇혀 사시는 분들이 보인다. 가령 이렇다. 민주적 시민성을 강조한다.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다양한 지식과 이론을 말한다. 성인지 감수성을 논하고 전파한다.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평등을 주장한다. 모두 옳은 말씀이다. 그런데 그런 이념과 신념을 가지고 농촌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간혹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어떤 귀촌 귀농인은 이웃과 담을 쌓고 사는 이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골 사람들이 의식도 낙후되어 있고, 그리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지도 않고 있다고 폄하한다. 그러면서 사사건건 지적질하고 싸운다. 그러는게 정의고 공정이라고 말한다.





전북 남원 산내면 실상사 농장에서 일하다 흥겨운 한때를 보내는 법인 스님과 청년들. 사진 실상사 제공

옆에서 보기에 참 딱하다. 존중하면서 함께 살고자 하지 않고 시골 사람들이 온통 문제점 투성이고 계몽과 교화의 대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런 분들의 이력을 보면 대개 도시에 살면서 과도하게 학습과 운동이 몸에 박힌 분들로 보인다. 이념의 과잉은 태도의 경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귀촌한 인턴들에게 생각의 힘을 빼라고 주제 넘게 말을 보태곤 한다. 보다 겸손한 자세, 진정한 존중, 늘 함께 사이 좋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토대라고 말을 건넨다. 그런데 사명감에 충실해서인지 정의와 평등, 공정과 자유가 지나치게 넘치고 힘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사이가 잘 풀릴 수가 없다.



이념의 과잉과 태도의 경직! 우리 사회 곳곳에 발견되고 있다. 설령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경직과 과잉은 어떤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 좋은 세상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글 법인 스님/실상사 한주 &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조계종 전 교육부장 &참여연대 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