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7

예수와 비폭력 저항 -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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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예수와 비폭력 저항 - 제3의 길  pdf

월터 윙크 (지은이) | 김준우 (옮긴이)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2-08-02  | 원제 Jesus and Nonviolence: A Third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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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말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그것을 실제적인 현장에서의 실천원리로 재구성해내고 있는 책. 가장 성공한 '비폭력 투쟁가'인 예수를 두고, 그의 비폭력 투쟁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비폭력 저항의 효과와 원수를 사랑하는 십자가의 영성은 무엇인지, 비폭력 저항 훈련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



1장 비폭력 저항이 성공하는가?

2장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의 참된 의미

3장 비폭력 행동원리

4장 비폭룍 저항의 효과

5장 원수 사랑과 십자가 영성

6장 비폭력 저항 훈련의 필요성

Notes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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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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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의 확신을 가지게 한 책  새창으로 보기

임광지 ㅣ 2004-11-16 ㅣ 공감(0) ㅣ 댓글 (0)



    승리의 확신을 가지게 한 책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는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마태복음 5:38-41) 이 말씀을 한두 번 읽은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원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서 높은 수준의 이상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수준에 우리가 도달할 수 없지만 노력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 그러면 좀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다.’



폭력적 현실 앞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이런 대응 방식이 성공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 우리가 이 길을 따라가면 과연 악을 제압하고 승리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 간다면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확신이 서지 않는 길을 가기는 망설여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해해 왔던 성서 이해가 얼마나 짧은 것이었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비폭력’이라는 단어와 ‘투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어울리는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폭력이라는 수단이 폭력이라는 수단보다 더욱 강력한 대응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악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비폭력이라면, ‘비폭력’이라는 단어와 ‘투쟁’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가장 자연스럽다. ‘비폭력’이라는 단어와 ‘투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유는, ‘비폭력’이라는 수단으로는 폭력 집단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터 윙크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나라의 예를 들면서 비폭력 투쟁이 폭력적 투쟁보다 악을 제압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악에 대해서 도피하거나 아니면 폭력적으로 대항하는 두 가지 수단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 삼의 길이 바로 비폭력 투쟁이라고 말한다. 이 길이 승리의 확률이 더 높다고 말한다.

비폭력 투쟁은 결코 약한 자들의 무기력한 행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악을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 악의 세력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수치심을 가지게 만들어서 변화로 이끄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제삼의 길, 비폭력 투쟁은 원수에 대한 사랑이 그 핵심이라고 한다. 원수 역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고, 원수를 변화의 길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속에 내면화 되어 있는 폭력숭배와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을 벗어나게 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제삼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십자가의 영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삼의 길은 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폭력이 더 교묘하고 악랄해지고 있다. 제국주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미국이 그렇고, 합법적 민주주의를 가장한 사법적 폭력이 그렇고,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그렇고, 구국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성조기를 흔들어 대는 근본주의 신앙인들이 그렇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애국을 위한 행동이라고 하고, 안보를 위한 행동이라고 하고, 선교사를 보내준 은혜에 나라에 대한 보은이라고 한다. 폭력은 이렇게 더욱 자신의 행동을 폭력이라고 하지 않고 정체를 숨긴다. 폭력의 피해를 입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폭력 투쟁을 따라가면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폭력적 투쟁이 아니라도 폭력집단의 정체를 드러내고 승리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한다. 비폭력 투쟁이 결코 도덕적 이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가능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없는 약자들의 무기력한 대응방식이 아니라 악한 집단을 회개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투쟁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폭력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전의(戰意)를 새롭게 한 이 책에 대해서 더욱 고마움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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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도 불법도 아닌 또 다른 방식의 저항  새창으로 보기

kwangma ㅣ 2004-11-05 ㅣ 공감(0) ㅣ 댓글 (0)



미국 대선이 끝낫고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적 국가의 억압과 불의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국내의 복잡한 정치 현실 속에서 유독 기독교의 모습이 더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불의에 대한 교회의 이름모를 침묵과 그것을 넘어 불의에 대한 지지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소극적인 모습 때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일듯 싶지만... 월터 윙크의 이 책은 나에게는 생소한 비폭력 저항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폭력 저항이란 불의에 대한 침묵과 굴복의 방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왔다. 다른 의미로는 소극적이면서 수동적인 대응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책의 표지에 적혀있던 제 3의 길은 나로서는 다소 충격이었다. 저자는 폭력에 직접 폭력으로 대항하거나 침묵하면서 불의를 참는 두 가지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지적한 제 3의 길이 있으며 그것이 비폭력 저항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다음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 마5:38~42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이 말씀은 주로 악한 사람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 또는 침묵 그리고 용납이라는 메시지로, 때로는 단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베풀라는 메시지로 이해되어왔지만 저자는 이 말씀은 전혀 다른 의미로 예수가 말하는 제3의 길 비폭력 저항의 방식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주장은 십분 타당해 보인다. 이 성경 말씀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의 비폭력 저항에 대한 입장에 대해 내가 동조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부분이며 아마 다른 이들에게도 설득력있게 다가올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회속에서 억압받는 이들이 가득하지만 침묵하는 교회를 향해 저자의 외침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저자는 책을 통해 한가지를 더 중요하게 강조한다. 그것은 단지 그런 비폭력 저항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며 우리 스스로도 상대만이 악한자이고 우리는 선하다는 자만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비폭력은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또 다른 길이며, 상대가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우리와 상대 모두 기쁨을 누리는 길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그렇기에 단지 상대를 악한 자들이라고 믿고 그들이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또한 믿는 것은 예수의 길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악한 적을 단지 쓰러뜨리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변화할 인격체로 받아들이면서 불법을 통한 대응이 아니라 비폭력을 통한 저항을 하는 것은 수동적이거나 불의에 순응하는 왜곡된 입장도 아니고 폭력에 의거한 불법적인 입장도 아닌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나의 생각은 바뀌어 갔다. 이 책은 최근에 출판된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최근에 출판된 좀더 완성도 있는 저자의 책을 통해 좀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에 대한 찬사와 수상 내용을 볼 때 기대되는 책이기도 하다. 특히 혼란스러운 폭력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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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복음의 진수를 맛보라!!!  새창으로 보기

서로사랑   ㅣ 2004-10-29 ㅣ 공감(1) ㅣ 댓글 (0)



2000년대에 들어서 “예수는 없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들이 기독교의 현주소를 돌아보게는 했지만, 예수와 그의 복음을 만나게 하는 데는 미흡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연구소의 김준우 교수가 번역한 월터 윙크의 “예수와 비폭력저항(Jesus and Nonviolence: A Third Way)”은 이천년 전의 예수와 그의 복음을 직접 만나게 해줄 뿐만 아니라 현대에 적용가능하게 해주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책이다.



또한 우리는 작년에 미국의 이라크전쟁 동맹계획을 막았던 역사상 전례가 없던 최초의 세계적 반전평화운동(2003년 2월 15일, 3월 15일)의 힘을 보았는데, 이 책은 김준우 교수의 말대로 기독교 근본주의와 군사주의가 만나 군사패권주의 라는 전쟁경제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폭력극복과 평화정착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윙크는 최근의 비폭력 투쟁의 성공사례들과 통계를 들면서 비폭력저항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념을 깨뜨린다. 그리고 비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적이어서 악에 대한 무력함이나 도피를 말하는 것처럼 들릴 뿐만 아니라, 복음이 왜곡된 상황에서는 비폭력이 수동성 내지 무저항을 뜻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일부 평화주의자들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고난보다 자신들의 의로움에 더욱 관심을 쏟는 것은 예수의 제 3의 길인 비폭력저항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며, 깨끗한 손과 더러운 심장을 지닌 채 죽으라는 악마의 유혹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윙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불의를 참지 못하고 바로 잡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비폭력에 관한 가르침을 단순히 실천할 수 없는 이상주의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큰 오해이며, 예수는 결코 그렇게 살거나 가르치지 않으셨다고 강변한다.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은 역사상 이제까지의 어떤 발언보다도 가장 혁명적인 정치적 선언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마5:39)는 말의 참된 의미는 ‘악한 자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 맞서서 폭력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것이다. 악에 대해 반로마 투사들 못지않게  대항했던 예수는 악에 대항하기 위해 수동적 태도를 취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제 3의 길인 전투적인 ‘비폭력’을 택했다는 것이다.



윙크는 이를 실증하기 위하여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누가 너를 고소하여 네 겉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누가 너더러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세 가지 예수의 말씀을 예로 든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변화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법칙화되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변질시킨 이 말씀들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여, 예수가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열어놓은 악에 대한 비폭력저항의 탁월성을 밝히 보여준다. 그리고 예수의 제 3의 길의 핵심은 “원수사랑”이며, 현대에 와서는 원수사랑이 참다운 기독교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윙크는 우리 시대는 원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는 테러리즘의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모두에게 햇빛을 비춰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거나 더 이상 새날을 보지 못하거나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억압적인 법에 대항하면서도 법의 지배를 존중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영혼 속의 폭력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제 3의 길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십자가의 길이며, 훈련과 연합된 투쟁을 요구한다고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며, 예수의 복음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 책으로서 강력히 추천하며, 이 책의 원판으로 곧 출판될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도 적극 추천한다. (한성수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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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평화의 길  새창으로 보기

성경단 ㅣ 2004-10-26 ㅣ 공감(0) ㅣ 댓글 (0)



80년 대 군사독재 정권의 무자비한 칼이 춤을 추던 시절, 그 당시의 현실에 대해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말은 대체로 두 종류였다. 첫째는 “세상의 권세는 하늘에서 준 것이니 복종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주 우회적인 표현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가 칼을 쓴다고 해서 믿는 자들도 칼로 대항하면 안된다” 는 논리였다.



첫 번째 종류의 이야기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고, 두 번째 논리를 펴는 사람들의 요지는 한 마디로 ‘예수님은 비폭력주의자’ 이셨다라는 것이다. 시대와 상황은 변했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에 대한 생각이 ‘비폭력 저항자’로서의 상일 것이다. 하지만 문자적으로 나타나는 답은 같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내용이나 그 답에 이르게 된 과정은 오늘 윙크가 말하는 예수와는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 먼저 윙크는 ‘비폭력’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내용에 이의를 제기한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비폭력은 대체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자기 의로움의 결과물로, 권력 앞에 복종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비폭력 저항주의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과정과 결과이며 하나님의 평화를 일구어 내는 데 가장 적극적인 노력이라는 것이다.



나아가서 윙크는 2장에서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는 말은 악에 대해서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보복하지 말아라’, 즉 ‘비폭력 저항’이 예수의 참 정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악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 방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수동적 태도 2) 폭력적 대응 3) 비폭력 저항 예수의 삶을 살펴 보면 첫 번째 두 번째 태도는 싫어하셨고 3의 길, 즉 비폭력 저항의 길을 선택하시고 악에 대해 싸우셨음을 알 수 있다.



윙크는 그 예로 예수의 말씀 가운데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누가 너를 고소하여 네 겉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누가 너더러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이 세가지 말씀을 해석하면서 예수의 비폭력 저항의 정신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수와 솔 알린스키의 비폭력 공동체 행동원리들을 나란히 비교하면서 내가 혹은 우리 공동체가 삶에서 부딪히는 실제적인 악에 대항해서 근본적인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리와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비폭력 저항이야 말로 폭력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5장에 있다. 윙크는 예수의 3의 길(비폭력 저항)의 종국적인 목표는 ‘원수 사랑’에 있음을 강조한다. 원수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제가가 되는 확실한 시험 과목이라는 것이다. 원수사랑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임을 증명하는 길이다. 데이비드 레이놀즈의 말에 따르면 비폭력의 철학이란 한마디로 ‘적의를 넘어서는 용기’이며 ‘비폭력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법을 위반하거나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의 인간성을 주장하는 일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그들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변화하는 미래의 모습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비폭력 저항의 정신은 우리 자신 속에 남아 있는 영혼 속의 폭력의 뿌리들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지적으로서 윙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관점에서 비폭력 저항이야 말로 근본적인 자기 신앙의 성찰의 과정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윙크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우리는 악에 대해서 맞대응해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싸울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 의로운 사람’임을 내세우며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한다. 비폭력 저항은 악에 대해서 악으로 대응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쓴뿌리들을 제거하는 좋은 훈련 과정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윙크는 예수의 비폭력 저항은 ‘십자가의 길’임을 단언한다. 비폭력 저항은 고난의 길이라는 것이다. 십자가는 악을 다루는 예수의 방식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길은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 우리는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한다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은 궁극적으로는 승리의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야 한다. 악에 대해서 힘없이 복종하든지, 같은 방법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으로는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를 일구어 낼 수 없다. 비폭력 저항의 길이야 말로 예수의 삶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따라야 하는 제자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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