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30

변선환을 위한 항소, ‘종교신학의 봄’을 기다리며 < 신학적 사회 비평-시대의 표징 < 교회와 세상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변선환을 위한 항소, ‘종교신학의 봄’을 기다리며 < 신학적 사회 비평-시대의 표징 < 교회와 세상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변선환을 위한 항소, ‘종교신학의 봄’을 기다리며

기자명 정경일
입력 2026.09.29
 
감신대 학술행사 무산 사태로 다시 묻는 종교다원주의 논쟁

지난 9월 17일 저녁, 감리교신학대학교(감신대)에서 충격적 사태가 일어났다. 한국의 대표적 감리교 신학자 변선환의 신학사상을 조명하려던 학술행사가 일부 신학생들의 반대 행동으로 무산된 것이다.

“일아 변선환의 동서 문명 통섭을 위한 고난의 길”이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던 이 행사는 한국信(신)연구소(소장 이은선)가 “한국적이어라, 복음적이어라, 생명적이어라”라는 대주제 아래 네 전위적 한국 신학자 김경재, 변선환, 박순경, 이신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연속 학술행사의 하나였다. 감신대에서 오랫동안 가르친 이정배 명예교수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공동 연구 프로젝트다. 네 신학자가 가르쳤던 대학에서 그들을 기리는 것이 기획 의도의 하나였다. 창조적 한국 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학술’ 토론의 장이었기에, 이런 사태는 예상하지 못했다.

행사를 반대한 학생들이 내세운 이유는, 감리교가 이단으로 규정해 출교한 변선환을 교단 신학교에서 기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찬송을 부르며 행사를 방해했다.

한국 감리교가 변선환의 신학을 이단으로 판결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신학적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그 판결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당시 판결문은 변선환과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을 “동일한 ‘범법자’로 간주”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변선환의 제자였던 신학자와 목회자 상당수가 스승을 지지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불이익을 받기도 했지만, 변선환처럼 종교다원주의를 이유로 재판을 받아 출교된 이는 없었다. 감신대 교정에서는 변선환을 추모하는 행사와 학술대회가 꾸준히 열려 왔고, 그에 대한 연구서도 여러 권 나왔다. 변선환의 신학은 현대 한국 감리교 신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단 규정 및 출교와 신학적 유산으로서의 수용이 혼재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변선환에 대한 종교재판의 불충분성과 불명료성을 드러낸다. 만약 그의 신학에 관한 철저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감리교 공동체 전체가 확고한 신학적 결론에 도달했다면, ‘변선환 지우기’에 맞선 ‘변선환 지키기’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그가 옳다”, 김정숙, 송순재, 이은선, 이정배, 장왕식, 한인철 외 (지은이), 변선환아키브 (엮은이), 동연출판사, 2023. (표지 출처=동연출판사)

1992년 5월 7일 금란교회에서 열린 변선환 재판은 그의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이단적이라는 고발로 소집된 ‘신학 재판’이었다. 그러나 그 재판에서 ‘신학 토론’을 한 이는 종교다원성의 현실에 응답하는 현대 신학서들을 한 보따리 들고 피고석에 선 변선환뿐이었다. 그의 ‘48년’ 신학 여정의 결과에 대한 심문은 고작 ‘15분’에 그쳤다. 신학적 관점을 판정하는 자리에서 정작 신학적 논쟁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 종교재판의 배경에는 사회적·교회적 맥락이 놓여 있다. 당시는 1980년대 후반 민중 저항을 통해 권위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민주화 요구가 사회 각 영역으로 흘러넘치던 시기였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 개신교 진영은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결성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간 이어져 온 급격한 교세 성장이 둔화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이처럼 안팎의 위기에 직면한 각 교단의 교권 세력은 교회와 신학 교육 기관에 대한 내부 단속을 강화하려 했고, 때마침 세계적으로 확산하던 종교다원주의 논쟁이 그 한 쟁점이 됐다.

변선환이 종교다원주의에 깊은 신학적 관심을 두고 탐구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역사적 조건이 작용했다. 하나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신학인 ‘토착화 신학’의 산실로 이름을 떨쳤던 한국 감리교의 신학적 전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계화에 따른 다종교성을 정면으로 다룬 현대 종교신학의 부상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1965년 문헌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 우리 시대(Nostra Aetate)” 이후, 타종교의 진리와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점은 전통적 배타주의 일변도에서 포용주의로 이동했고, 1980년대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원주의를 향한 신학적 탐구와 모색이 본격화했다.

1986년에는 존 힉, 폴 니터, 라이문도 파니카 등 현대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신학자들이 참여한 다원주의 신학 회의가 미국 클레어몬트대에서 개최됐다. 이때 나온 논의는 이듬해 The Myth of Christian Uniqueness: Toward a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그리스도교 유일성의 신화: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세계 신학계에 큰 충격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신학계의 동향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포착했던 변선환도 종교다원주의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그가 우선시한 과제는 서둘러 신학적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던지는 신학적 화두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그의 글에서는 ‘규범적 주장’보다 여러 이론에 대한 ‘기술적(記述的) 소개’의 비중이 더 크다. 피할 수 없는 주제라면 함께 신중하게 탐구하고 토론하자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감신대 학장을 지낸 신학자 변선환. (사진 출처=일아 변선환 박사 추모 페이지)

종교다원주의 논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학 자체에 내재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에는 하느님이 모든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보편성의 차원과 그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특수성의 차원이 공존한다. 이 둘 사이의 긴장 또는 모순에 대한 신학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현대 그리스도교가 시대적 정합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 종교문화는 그러한 신학적 탐구와 논쟁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전통적으로 유·불·선 삼교가 공존해 왔고, 그리스도교 역시 어떤 형태로든 그 전통의 영향사 속에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변선환이 한국의 그리스도교 안에 ‘유교적 그리스도교’, ‘불교적 그리스도교’, ‘무교적 그리스도교’가 공존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신학 토론을 교권으로 봉쇄하고 중단시킨 것이 1992년 종교재판이다. 이 사건은 감리교는 물론 한국 신학계 전반의 종교신학 토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특히 신학자들은 집단적 공포에 사로잡혔다. 변선환은 주변부의 이름 없는 신학자가 아니라 대표적 교단 신학교인 감신대 학장이었고, 당시 한국 신학계를 대표하던 한국기독교공동학회 회장을 지낸 이였다. 그처럼 영향력 있는 신학자조차 한순간에 이단으로 정죄되고 출교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신학자들은 종교다원주의는 물론 종교신학 자체를 다루기를 두려워하며 자기검열에 빠졌다. 세계 신학계가 종교신학 논의를 심화하는 한편 비교신학으로 지평을 넓히면서 타종교의 경전, 전통, 이성, 경험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자원으로 삼아 풍요로워지는 동안, 한국 신학계와 교회는 기나긴 ‘종교신학의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사태는 큰 충격이지만, 동시에 종교신학의 겨울이 끝나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태 이후 감리교 내부에서 1992년 변선환 재판의 정당성을 묻는 비판적 목소리가 일고 있다. 감리교 신학자, 목회자, 평신도, 신학생 사이에서 변선환 신학을 재해석하고 재평가하는 논의가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곳곳에서 돋아나고 있다. 스승을 위한 제자들과 후학들의 ‘신학적 항소’다.

부디 이번 사태가 또 하나의 시대착오적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변선환이 정직하게 붙들고 씨름했던 물음들—다종교·다중고통의 세계에서 복음화란 무엇인가, 타종교의 진리와 구원의 가능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공동선을 위해 이웃종교인과 어떻게 만나고 대화하고 협력할 것인가—을 다시 묻는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종교신학의 봄이 시작될 수 있도록.

2026/09/29

* 이은선의 삶과 사상 — [神學에서 信學으로>, 유교·기독교·페미니즘을 잇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이은선 교수의 삶과 사상, 그리고 주요 저서들의 핵심 주제를 정리 

1. 삶과 학문적 여정

이은선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에코페미니스트 신학자이자 유학 연구자, 한나 아렌트 연구자다. 초현실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고 이신 목사의 딸이기도 하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를 거쳐,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으로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취득했다. 귀국 후에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한국철학 및 유교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Ph.D.)를 받으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사상적 지평을 구축했다.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한국아렌트학회 회장, 한국유교학회 및 양명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강원도 횡성에 <한국信연구소>와 <현장아카데미>를 일구며 기독교·유교·페미니즘·정치철학의 대화와 인류세 문명 전환을 위한 글쓰기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2. 핵심 사상: 상호침투와 통전의 사유

이은선 사상의 핵심은 <동서 문명의 창조적 융합>, <가부장성을 탈각한 탈서구 페미니즘>, <공적 영역의 회복을 통한 생명 영성>으로 집약된다.

<1> 聖(종교)·性(여성)·誠(정치)의 통전 서구 근대가 분리해 놓은 종교(聖), 여성·생명(性), 정치·윤리(誠)를 한 몸으로 짜내는 통전적 사유를 펼친다. 유교의 내재적 초월성과 기독교의 예언자적 영성을 결합하여, 사적 영역에 갇혀 있던 돌봄과 생명(性)의 감수성을 공적·정치적 실천(誠)의 자리로 확장한다.

<2> <神學(신학)>에서 <信學(신학)>으로의 전환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남성신(神) 중심의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신뢰와 믿음(信)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신학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이는 기후위기와 생태 파괴로 대변되는 인류세 문명에서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영성적 토대를 제공한다.

<3> 유교와 페미니즘의 접목 (탈서구적 한국 페미니즘) 유교를 단순한 가부장적 억압 체계로 단죄하는 서구 중심적 페미니즘 시각을 비판적으로 넘어선다. 이황, 이이, 최제우 등 한국사상과 유교 전통 내에 내재된 생명성, 돌봄, 우주적 상호연결성을 발굴하여 한국적 맥락에 뿌리내린 주체적인 생태여성주의를 주창한다.

<4>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과 공공신학의 결합 한나 아렌트의 <활동적 삶>, <사유와 판단>, <악의 평범성> 개념을 한국의 역사적 비극과 정치 현실(세월호 참사, 국가 폭력 등)에 투영한다. 사유하지 않는 무사유가 낳은 사회적 재난 앞에서 종교와 교육이 어떠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비판적으로 묻는다.

3. 주요 저서와 핵심 주제

<1> 페미니즘과 유교·기독교의 대화

  •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 <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서구 페미니즘의 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동아시아 유교 텍스트(논어, 맹자, 퇴계 등)를 재해석하여, 유교적 인(仁)·예(禮)·성(誠)이 여성적 영성과 만나는 지점을 정초한다.

  •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읽기>: 가사 노동과 돌봄이라는 일상의 자리(집사람)에서 출발하여 고전 <논어>를 현대적 생명과 평화의 시각으로 다시 읽어낸다.

<2> 聖·性·誠의 영성과 신학 패러다임 전환

  • <神學(신학)에서 信學(신학)으로: 참 인류세를 위한 한국 信學>: 절대타자로서의 신론에서 벗어나 공공성과 관계성, 생태적 연대를 회복하는 한국적 신학의 완결형 테제를 제시한다.

  •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 <한국 생물 여성영성의 신학>: 분단과 군사주의로 얼룩진 동북아 현실 속에서 여성주의적 평화 영성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영성과 정치 윤리의 합일을 강조한다.

  •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 /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 한국 조직신학의 가부장성을 해체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한국적 상황 속에서 여성의 체험을 신학화한다.

<3> 한나 아렌트와 정치·교육철학

  •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읽기> / <생물권 정치학시대에서의 정치와 교육: 한나 아렌트와 유교와의 대화 속에서>: 서구의 아렌트 철학과 동양의 유학을 접목해 생물권 위기 시대에 공적 영역과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규명한다.

  •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 한나 아렌트와의 대화 속에서> / <묻는다, 이것이 공동체인가>(공저):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며 국가와 기독교의 타락을 고발하고, 고통받는 타자와 연대하는 예언자적 사유를 피력한다.

  • <통합학문으로서의 한국 교육철학>: 분과 학문으로 쪼개진 교육학을 철학·종교·생태와 통전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교육철학의 지평을 탐색한다.

<4> 종교개혁과 한국적 신학의 유산

  • <이신의 예술과 한국 信學> / <환상과 저항의 신학>(공저): 부친인 이신 목사의 예술과 초현실주의 신학을 재조명하여 한국 토착화 신학의 깊이를 밝힌다.

  • <그때도, 지금도 그가 옳다: 변선환 학장 종교재판 30년 역사를 회고하며>(공저): 감리교 종교재판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며 종교간 대화와 다원주의적 열린 신학의 정당성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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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삶과 사상 — <神學에서 信學으로>, 유교·기독교·페미니즘을 잇다

첨부하신 알라딘 목록을 시간순으로 보면 이은선의 작업은 상당히 일관된 궤적을 보입니다. 1990년대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에서 출발하여, 2000년대에는 <유교·기독교·페미니즘>,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로 나아가고, 2010년대에는 <한국 생물 여성영성의 신학>,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2020년대에는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 읽기>,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그리고 마침내 <神學에서 信學으로―참 인류세를 위한 한국 信學>에 이릅니다. 즉 단순히 ‘여성신학자’라기보다, 갈수록 <한국적 통합종교사상>을 만들려 한 사상가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첨부 목록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1. 삶: 서양 기독교 신학에서 한국 유교와 여성주의로

이은선은 이화여대에서 불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감리교신학대학을 거쳤고,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과 종교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학문적 형성 자체가 처음부터 한 분야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서구 철학·기독교 신학과 한국 유교 전통을 모두 깊이 통과한 사람입니다. 예스24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여성신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한나아렌트학회, 양명학회 등 여러 학문 공동체에서 활동했습니다. 2018년 세종대에서 명예퇴직한 뒤에는 강원도 횡성에서 <한국信연구소>를 열어 연구와 저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남편 이정배와 함께 현장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종교·철학·교육·생태 문제를 연결하는 활동을 이어갑니다. BOOKCLUB

또 하나 중요한 배경은 부친 이신(李信)입니다. 이신은 한국 토착화 신학과 ‘영(靈)의 신학’, 초현실주의 예술을 결합하려 했던 신학자·예술가였습니다. 이은선이 최근 <이신의 예술과 한국 신학(信學)>까지 쓰는 것을 보면, 그의 ‘信學’ 구상이 아버지 이신의 ‘信’과 ‘영’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스24


2. 이은선 사상의 출발점: <한국·여성·종교인>

그가 자신의 위치를 설명할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세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인–여성–종교인>

이 세 위치가 그의 사상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서구에서 형성된 기독교 신학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는 것도 거부하고, 전통 유교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도 거부합니다. 동시에 서구 여성주의를 단순 수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됩니다.

한국 여성의 역사적 경험에서 출발해 기독교와 유교를 동시에 비판하고 다시 구성한다면 어떤 종교사상이 가능한가?

이 질문이 거의 30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관통합니다. 기존 소개에서도 그의 연구를 ‘한국·여성·종교인의 시각에서 유교와 기독교, 페미니즘과 교육을 함께 보는 작업’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스24


3. 첫째 축: 한국 여성신학 — 가부장적 기독교를 넘어

초기의 대표작은 첨부목록의 1997년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과 2004년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입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초기 이은선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독교 신학 자체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통적 신학에서 하나님은 ‘아버지’, 구원자는 남성 그리스도, 교회의 지도자는 남성 성직자였습니다. 여성은 신학의 주체라기보다 신앙의 수용자로 놓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은선은 여기서 단순히 ‘하나님을 여성으로 부르자’는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합니다.

<누가 신학을 하는가?>

신학의 주체가 서양 남성 신학자에서 한국 여성으로 바뀐다면 기독교 전체의 언어와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여성신학은 여성에게 자리를 조금 더 주자는 평등론보다 <신학의 인식론 자체를 바꾸는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4. 둘째 축: 유교의 재발견 — 가부장제와 유교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은선의 가장 독특한 점은 여성신학자이면서도 유교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여성주의에서는 흔히 유교를 가부장제의 핵심 원인으로 비판합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여성 억압에서 유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은선은 이렇게 묻습니다.

<가부장적 유교가 곧 유교 전체인가?>

그의 대답은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 읽기> 같은 책에서 유교 안에 들어 있는 다른 가능성을 찾아냅니다. 첨부목록에서도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읽기>가 한 흐름을 이룹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특히 그가 발견한 것은 유교의 <성인(聖人)>, <인(仁)>, <성(誠)>, <성(性)>입니다.

유교의 초월은 서양 유일신 종교처럼 세계 밖에 있는 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초월입니다. 그는 이것을 현대의 세속사회에서도 의미가 있는 종교성으로 봅니다.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의 핵심도 바로 이러한 ‘세간적 초월’입니다. 예스24

여기에는 중요한 역전이 있습니다.

기독교 = 초월적 종교
유교 = 세속윤리

라는 전통적 구분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은선에게 유교 역시 깊은 의미에서 하나의 종교적 삶의 방식입니다.


5. 셋째 축: 聖·性·誠 — 이은선 사상의 핵심 공식

이은선의 사상을 가장 간단하게 압축하면

<聖·性·誠>

이라는 세 글자가 됩니다.

그는 이것을 대체로

聖 = 종교·초월·궁극성
性 = 여성·몸·생명
誠 = 윤리·정치·실천

이라는 서로 연결된 영역으로 사용합니다.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聖·性·誠의 여성신학>, <한국 생물 여성영성의 신학―종교 聖, 여성 性, 정치 誠의 한 몸 짜기>,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 구조를 보여줍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 영역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종교적 깨달음(聖)이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몸과 성과 생명(性)에 관계해야 하며, 다시 정치와 사회적 책임(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은선의 종교론은 순수한 ‘내면적 영성’과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그에게 종교는

<초월 → 몸 → 정치>

를 하나로 묶는 작업입니다.


6. 넷째 축: <생물(生物)> 여성영성 — 생태로의 확장

2011년 <한국 생물 여성영성의 신학>은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여기서 ‘생물’은 단순히 biological being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生物’, 즉 <만물을 살린다>는 유교적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성해방을 인간 여성의 권리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생명세계 전체와 연결합니다.

그래서 이은선의 여성신학은 점차

여성 → 인간 → 자연 → 지구생명

으로 확대됩니다.

이 때문에 그의 후기 작업에서 ‘인류세’가 중요해집니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 대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온 문명 자체를 다시 묻는 문제가 됩니다.


7. 다섯째 축: 한나 아렌트 — 정치와 책임

이은선에게 예상외로 중요한 인물이 한나 아렌트입니다.

첨부목록 첫 책이 2026년의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읽기>이며, 그는 아렌트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다>를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렌트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복수성(plurality)>과 공적 세계입니다.

이은선은 이를 동아시아의

<朋友有信>, 즉 친구 사이의 믿음

과 연결합니다.

그래서 후기의 ‘信’은 단순한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공적 세계>

라는 정치철학적 뜻까지 갖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여성신학, 유교, 아렌트의 정치철학이 하나로 만납니다.


8. 여섯째 축: 종교간 대화 —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2016년 책 제목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는 그의 사상을 매우 잘 압축합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그가 원하는 것은

기독교를 버리고 유교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유교를 기독교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둘 다 변해야 합니다.

<다른 유교>는 가부장적·권위주의적 유교에서 벗어나 인(仁)·성(誠)·관계적 인간성을 되찾는 유교입니다.

<다른 기독교>는 배타적 교리주의와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타종교와 대화하고 생명과 평화를 실천하는 기독교입니다.

따라서 종교간 대화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수준이 아니라 <상호변혁>입니다.


9. 일곱째 축: 동북아 평화와 한국적 종교사상

첨부목록에는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2020)이 있습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여기에서 이은선의 신학은 개인과 여성 문제를 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역사로 확장됩니다.

그는 구한말 유학자 이기(李沂) 같은 인물까지 새롭게 읽으며, 제국주의와 강대국 경쟁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자주성·공동체·평화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의 이기 연구에서도 자주·민권·공동체와 동북아 평화를 연결합니다. KCI

따라서 후기의 이은선에게 ‘한국적 신학’은 민족문화 자랑이 아닙니다.

<제국과 자본과 전쟁의 질서 속에서 작은 존재들이 어떻게 주체성을 회복할 것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10. 여덟째 축: 神學에서 信學으로

이은선 후기 사상의 가장 중요한 변화입니다.

2023년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神學에서 信學으로>, 2024년 <神學에서 信學으로―참 인류세를 위한 한국 信學>으로 발전합니다. 첨부자료에도 두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神學은 문자 그대로 ‘신에 관한 학문’입니다.

그런데 이은선은 이제

神 → 信

으로 중심을 옮깁니다.

여기서 信은

신앙(faith)
신뢰(trust)
성실(faithfulness)
사람 사이의 믿음
궁극적인 것에 대한 신뢰

를 동시에 포함합니다.

따라서 질문도 변합니다.

<신은 존재하는가?>

보다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서로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가 더 중요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한자 바꾸기가 아닙니다. 그의 30년 연구가 도달한 철학적 결론에 가깝습니다.


11. 아홉째 축: 교육 — 지식을 넘어 인간을 만드는 공부

이은선이 오랫동안 세종대 교육학과 교수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첨부목록에

<한국 교육철학의 새 지평>
<통합학문으로서의 한국 교육철학>
<생물권 정치학시대에서의 정치와 교육>

같은 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그에게 교육은 지식전달이 아니라 인간 형성입니다.

유교의 수양과 기독교의 신앙, 여성주의의 자기주체화, 아렌트의 세계책임을 한데 묶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목적은 경쟁력 있는 인간보다

<세계에 책임질 수 있는 인간>

을 만드는 것입니다.


12. 저서들을 사상 발전 단계로 읽으면

첨부하신 29권을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사상발전사로 읽으면 대략 다섯 단계가 보입니다.

시기대표 저작중심 문제
1990년대<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서구 신학과 남성중심주의 비판
2000년대<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유교와 기독교의 여성주의적 재구성
2010년대<한국 생물 여성영성의 신학>,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聖·性·誠, 생명·종교간 대화
2020년 전후<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 읽기>평화·생활·유교의 일상화
2023년 이후<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神學에서 信學으로>, <이신의 예술과 한국 信學>신 중심 신학에서 관계적 ‘信’의 철학으로

이 흐름은 알라딘 첨부자료에 나타난 출간 순서에서도 상당히 분명합니다. 알라딘 이은선 29건


13. 이은선 사상의 특징과 한계

제가 보기에는 이은선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한국 여성신학을 서구 여성신학의 한국판에 머물지 않게 한 것>입니다.

유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다시 기독교·페미니즘·교육·아렌트 정치철학과 연결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비교종교학’이라기보다 <새로운 한국 사상 만들기>에 가깝습니다.

특히 <聖·性·誠>과 <神學 → 信學>이라는 두 공식은 그의 독창성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논쟁적인 점도 있습니다.

첫째, 유교의 <仁·誠·聖人> 전통을 적극 복원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유교가 가부장제와 신분질서를 정당화했던 측면을 얼마나 충분히 처리했는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둘째, <한국적>이라는 범주가 너무 크게 사용될 때 한국 내부의 계급·세대·성적 소수자·문화적 차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위험도 있습니다.

셋째, 聖·性·誠과 信學의 체계가 매우 포괄적이어서 모든 것을 연결할 수 있는 대신, 사회경제적 권력구조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힘은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보다 약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앞서 우리가 이야기한 <심층종교–해방종교–생태종교>의 세 축으로 보면 특히 흥미롭습니다.


14.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은선의 평생 작업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서구 남성 중심의 神學을 한국 여성의 삶, 유교의 仁·誠, 기독교의 신앙, 페미니즘, 생태·정치·교육과 다시 엮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믿을 수 있는 ‘信學’으로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그래서 이은선을 단지 <여성신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 너무 좁습니다. 후기 이은선은 오히려 <한국적 여성주의 통합종교철학> 혹은 자신이 쓰는 말 그대로 <한국信學>의 구성자로 이해하는 것이 그의 저작 전체를 더 잘 설명합니다. 현재 그는 세종대 명예교수이자 한국信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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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ao Abe (Author of Zen and Western Thought) | Goodr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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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배의 삶과 사상 — 토착화·생명·다석·종교대화의 신학

이정배 교수의 삶과 핵심 사상, 주요 저작 주제에 대한 정리이다.

1. 삶과 여정 (생애)

  • 성장과 배움의 여정: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대광중·고등학교를 거쳐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감신대 시절 한국 토착화 신학의 거두인 변선환 학장의 가르침을 깊이 받았다. 이후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부에서 수학하여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취득했다. 당시 박사학위 논문 주제 역시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에 기반한 토착화 신학 연구였다.

  • 강단과 현장을 잇는 학문 활동: 1986년부터 2016년까지 30년간 모교인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적 신학 연구에 매진했다.

  • 조기 은퇴와 <거리의 신학자>: 2016년 정년을 수년 앞두고 자진 조기 은퇴를 결행했다. 학내 사태에 대한 책임과 제도권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 고통받는 세상 현장과 함께하겠다는 결단이었다. 세월호 참사 추모 현장,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 현장 등에서 기도와 설교를 이어가며 이른바 <거리의 신학자>로 불렸다.

  • 현장아카데미와 작은교회 운동: 은퇴 이후 <현장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학문 연구와 영성 수행을 병행하고 있다. 대형화·자본화된 한국 교회의 모순을 비판하며 자립과 연대, 생태적 영성을 추구하는 <작은교회 운동>과 <두 번째 종교개혁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2. 핵심 사상과 신학적 주제

이정배의 신학은 크게 <토착화 신학의 심화>, <한국적 생명·생태신학>, <다석 유영모의 귀일신학 연구>, <동학·개벽사상과의 대화>, <교회 개혁과 해방적 실천>이라는 5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1) 토착화 신학의 계승과 재주체화

  • 스승 변선환의 종교 다원주의 및 토착화 신학을 계승·발전시켰다.

  • 서구 중심적 신학 체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국의 사상적 토양(유·불·도 및 한국 고유 사상) 속에서 성서와 기독교 신앙을 다시 읽어내는 <한국적 기독교의 재주체화>를 역설했다.

2) 한국적 생명·생태신학

  • 1980년대 후반부터 일찍이 환경과 생태 문제에 천착했다 (<생태학과 신학>, <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 등).

  • 서구 근대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적 소비 문명이 초래한 기후 위기 및 생태계 파괴를 직시하며,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만유재신론적(Panentheistic) 시각에서 모든 피조물이 신의 거룩한 생명 그물망 안에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3) 다석(多夕) 유영모 연구와 <귀일(歸一)신학>

  • 김흥호 목사를 통해 다석 유영모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접한 뒤, 다석 사상을 한국 신학의 중요한 토대로 삼아 집중 연구했다.

  • 다석의 한글 사유와 우리말 개념(예: <없이 계신 하느님>, <빈탕한데 맞혀놀이>, <얼나>)을 현대 신학적 언어로 해석하여,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궁극적 실재로의 귀일(歸一)을 규명했다.

4) 동학과 개벽(開闢) 신학

  • 유영모, 함석헌, 이신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 사상가들의 계보를 추적하며, 최근에는 동학(東學)과 개벽 사상으로 학문적 지평을 더욱 확장했다.

  • <역사유비로서의 개벽신학 空·公·共>, <개벽의 사상사> 등을 통해 동학의 다시개벽 사상과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새 하늘과 새 땅) 종말론적 희망을 창조적으로 융합하며 문명전환기 인류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5) 제도 교회 비판과 <두 번째 종교개혁>

  • 맘몬주의(자본 숭배)와 물신화, 세습과 배타주의에 갇힌 한국 대형 교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 루터의 16세기 종교개혁 500년을 맞이하여, 기존 제도의 틀과 탐욕을 허무는 <두 번째 종교개혁>이 요청된다고 보았다. 성직자 중심의 위계 구조를 탈피하고 생명·평화·연대를 실천하는 탈성장 지향의 <작은 공동체 교회>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3. 총평

이정배는 서구 신학의 단순 수입상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토착적 정신 유산(유교, 도교, 다석 유영모, 수운 최제우의 동학)을 매개로 기독교 복음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낸 사상가이다. 또한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적 아픔이 있는 거리와 광장에 서서 문명전환과 생태적 회심을 촉구해 온 대표적인 실천적 신학자라 할 수 있다.

===

이정배의 삶과 사상 — 토착화·생명·다석·종교대화의 신학

첨부하신 자료는 이정배의 전기 자료라기보다 1991년 이후의 저서·공저 57종을 보여 주는 서지 목록입니다. 따라서 <삶>에 관한 기본 약력은 공개 자료로 보충하고, <사상의 전개>는 첨부하신 저서 목록을 중심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이 목록만 보아도 이정배의 신학은 상당히 일관된 궤적을 보입니다. 초기의 <토착화와 생명 문화>, <한국적 생명신학>에서 출발해 생태신학·과학과 종교의 대화·다석 유영모·종교다원주의를 거쳐 최근에는 ‘개벽’과 문명전환으로 확대됩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1. 이정배는 누구인가

이정배는 1955년생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쳐 1981~1986년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1986년부터 2017년까지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조직신학회장·한국문화신학회장·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감신대 명예교수입니다. 아주경제

바젤 유학 시절 그의 관심은 단순히 서구 조직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신대의 윤성범·변선환으로 이어지는 <토착화 신학>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와 유교를 연구했고, 이후 기독교와 동양사상·생태학·과학·이웃 종교를 연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연구자들도 윤성범→변선환→이정배를 감신대 토착화신학의 중요한 계보로 다룹니다. KCI

1992년 서울에서 열린 JPIC(정의·평화·창조질서의 보전) 대회를 계기로 특히 <토착화신학과 생태신학의 결합>을 자신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고 회고합니다. 아주경제

그의 저작 목록도 이것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1991년 <토착화와 생명 문화>, 1996년 <한국적 생명신학>, 1999년 <신학이 생명학 신학이 영성학>, 2004년 <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 2005년 <기독교 자연신학>, 2007년 <토착화와 세계화>, 2010년 <생태 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로 이어집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따라서 이정배를 단순히 ‘진보신학자’라고 부르는 것보다 <한국적 기독교를 만들기 위해 토착화·생명·생태·종교대화를 결합해 온 조직신학자>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2. 첫 번째 핵심 — <토착화>: 서구 기독교를 한국에서 다시 묻는다

이정배 신학의 가장 오래된 축은 <토착화>입니다.

토착화는 흔히 “기독교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는 것” 정도로 오해되지만, 이정배에게는 훨씬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가 묻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서구 기독교 문화는 정말 같은 것인가?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했지만 유럽을 거치면서 그리스 철학·로마 제도·서구 형이상학의 언어로 설명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반드시 그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정배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교·불교·동학·천부경·다석 유영모·함석헌 같은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자원을 기독교와 대화시킵니다.

그의 2007년 논문에서도 전통적인 서구 신학의 <존재유비/신앙유비> 대립만으로는 현대 기독교 선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역사적 예수의 삶을 한국적 언어로 재해석한 다석 유영모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습니다. KCI

이 점에서 이정배는 변선환의 후계자이면서도 조금 다릅니다.

변선환이 불교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종교다원주의적 토착화>를 밀어붙였다면, 이정배는 여기에

<생명·생태·과학·유교·동학·다석>

을 훨씬 넓게 끌어들입니다.


3. 두 번째 핵심 — <생명신학>

이정배의 사상을 이해하는 두 번째 단어는 <생명>입니다.

첨부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주제입니다.

<토착화와 생명 문화>(1991)
→ <한국적 생명신학>(1996)
→ <신학이 생명학 신학이 영성학>(1999)
→ <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2004)
→ <한국적 생명신학을 논하다>(2016)

라는 흐름이 20년 넘게 지속됩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여기서 <생명>은 단순히 인간 생명의 존엄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 중심적 기독교 자체를 비판하는 개념입니다.

전통적 기독교는 흔히

하느님
↓
인간
↓
자연

이라는 위계로 세계를 이해했습니다.

이정배는 이런 인간중심주의가 자연을 인간의 이용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현대 생태위기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창조론을

<하느님—인간—자연의 관계적 생명공동체>

로 다시 해석하려 합니다.


4. 세 번째 핵심 — <생태신학>: 구원받아야 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그래서 생명신학은 자연스럽게 생태신학으로 연결됩니다.

첨부 목록에

<현대 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2006),
<켄 윌버와 신학-홀아키적 우주론과 기독교의 만남>(2008),
<생태 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2010),
<몸의 우주성-동서양의 고전을 통해 읽는 몸 이야기>(2013)

등이 나타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이정배에게 생태위기는 단순한 환경정책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라는 문명과 종교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역시 생태위기에 책임이 있으며 신학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그의 신학은 “인간의 죄와 구원”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개신교보다 훨씬 우주론적입니다.


5. 네 번째 핵심 — <다석 유영모>

후기로 갈수록 이정배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석 유영모가 됩니다.

첨부 목록에서도

<다석 유영모 신학의 얼과 틀 그리고 쓰임>(2009),
<빈탕한데 맞혀놀이-다석으로 세상을 읽다>(2011),
<유영모의 귀일신학>(2020)

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이정배가 다석에게서 발견하는 핵심은 <한국어와 동양사상을 통해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가능성>입니다.

특히 유명한 표현이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입니다.

<없이 계신 하느님>은 하느님을 하늘 어디엔가 존재하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자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하느님은 어떤 ‘물건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인 바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공(空), 노장사상의 무(無), 기독교의 하느님을 대화시킬 여지가 생깁니다.

이정배는 다석신학을 단순한 ‘한국 민족신학’으로 보지 않고 세계신학과 대화할 수 있는 보편적 신학으로 발전시키려 합니다. 예스24


6. 다석에게서 <역사적 예수>를 다시 발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정배가 다석을 통해 기독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예수라기보다

<예수 이후 형성된 제도적·교리적 기독교>

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교리적 그리스도보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권력에 저항하고,
자기를 비우며,
생명을 살렸던

<역사적 예수의 삶>을 강조합니다.

이정배가 다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은 말하자면

<예수를 서구 교리의 감옥에서 꺼내 한국적·동양적 생명의 언어로 다시 읽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를 ‘역사적 예수의 재케리그마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KCI


7. 다섯 번째 핵심 — <종교다원주의와 종교간 대화>

이정배에게 불교·유교·동학은 기독교가 정복해야 할 ‘이교’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타자>입니다.

따라서 그의 종교대화는

“모든 종교가 똑같다”

는 식의 단순한 상대주의와는 조금 다릅니다.

다른 종교를 만나면서 기독교가 자기 절대성을 내려놓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첨부 자료의

<경전으로 본 세계종교 그리스도교>(2014),
<신학, 타자의 텍스트를 읽다>(2015),
<참여와 명상, 그 하나됨을 위한 여정>(2018)

같은 책들이 바로 이 흐름을 보여줍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그래서 이정배에게 종교간 대화는 예의 바른 ‘종교끼리의 친선회’가 아니라 <자기 신앙을 변화시키는 사건>에 가깝습니다.


8. 여섯 번째 핵심 — <과학과 신학>

그의 신학이 전통적인 토착화신학보다 넓어지는 또 하나의 지점입니다.

<과학 종교 윤리의 대화>(2001),
<기독교 자연신학-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근거한>(2005),
<켄 윌버와 신학>(2008)

등을 냈습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이정배는 진화론이나 현대과학을 기독교 신앙에 대한 위협으로 보기보다는 신학이 세계관을 새롭게 구성하도록 요구하는 계기로 봅니다.

그래서

과학 ↔ 종교
동양 ↔ 서양
인간 ↔ 자연
기독교 ↔ 타종교

라는 여러 경계를 동시에 넘으려 합니다.

이것이 이정배 신학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9. 일곱 번째 핵심 — <교회 비판과 사회적 신학>

이정배의 생명·생태신학은 개인적 영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2013),
<묻는다, 이것이 공동체인가-눈먼 국가 귀먹은 교회, 세월호 이후의 우리들>(2015),
<두 번째 종교개혁과 작은교회 운동>(2017),
<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이정배의 거리 설교>(2019)

라는 제목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즉 그의 <영성>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영성이 아닙니다.

생명신학은 반드시

생태위기, 사회적 약자, 국가폭력, 자본주의적 욕망, 교회의 권력화

같은 문제와 만나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이정배의 신학은 <생태영성과 사회참여>를 함께 붙들려고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0. 최근의 중요한 변화 — <개벽신학>

최근 이정배의 관심을 보면 또 한 단계 확대됩니다.

첨부하신 목록의 최근 저작에

<개벽사상과 종교공부>(2024),
<문명전환의 한국사상-개벽의 사상사 2>(2025),
<소비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2023)

가 등장합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개벽’이라는 말은 동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개혁’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기존 체제를 조금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자연관·종교관·문명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정배의 최근 신학은 초기의 <한국적 기독교>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생태적 문명전환을 위한 한국사상의 역할>

이라는 문제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 이정배 신학을 한 흐름으로 정리하면

약 35년간의 저술을 하나의 계보로 압축하면 이렇게 됩니다.

<토착화>
→ <한국적 생명신학>
→ <생태신학>
→ <과학과 종교의 대화>
→ <다석 유영모>
→ <종교간 대화>
→ <역사적 예수와 사회참여>
→ <개벽과 생태문명 전환>

겉으로 보면 주제가 너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중심 질문은 사실 하나입니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기독교의 틀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한국의 역사·종교·사상과 오늘의 생명 위기 속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이정배 신학 전체를 관통합니다.


12. 이정배의 위치 — 변선환과 오강남 사이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

세진님께서 최근 변선환과 오강남을 계속 읽으셨기 때문에, 이정배는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아보면 특히 잘 보입니다.

변선환은 주로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 → 종교다원주의>

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오강남은

<표층종교 → 심층종교>

라는 방식으로 종교 내부의 영적 전환을 강조합니다.

이정배는 이 둘과 상당 부분 겹치지만 여기에 하나를 더 강하게 넣습니다.

<심층적 종교전환 + 생태적·사회적 문명전환>

입니다.

그래서 이정배에게 종교의 문제는 단지 “다른 종교도 진리가 있는가?”도 아니고, “내면의 깊이에 도달했는가?”만도 아닙니다.

그는 더 나아가 묻습니다.

그 신앙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꾸는가?
교회의 권력성을 바꾸는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가?
소비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에 기여하는가?

바로 이 지점이 이정배 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진님께서 전에 제기하신 <표층종교/심층종교보다 아편종교/해방종교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문제와도 상당히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이정배를 이 관점에서 읽으면, 오강남보다 사회적·생태적 실천의 축이 훨씬 강하게 보이고, 변선환보다도 <문명전환>의 문제가 훨씬 크게 등장합니다.

다음 단계로는 <이정배·변선환·오강남의 종교론을 ‘심층종교–해방종교–생태종교’라는 세 축으로 비교>해보면 세 사람의 차이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날 것 같습니다.

===

이정배·변선환·오강남의 종교론 비교

— <심층종교·해방종교·생태종교>라는 세 축에서

세 사람을 함께 놓으면 상당히 흥미로운 구도가 생깁니다. 다만 먼저 한 가지 구별이 필요합니다. <심층종교>는 오강남이 실제로 사용하는 핵심 개념이고, <종교해방신학>은 변선환을 설명하는 연구문헌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반면 <생태종교>는 이정배 자신의 고유한 단일 명칭이라기보다, 그의 <한국적 생명신학·생태신학·개벽/문명전환>을 묶어 제가 비교를 위해 사용하는 범주입니다. 변선환에서 이정배로 이어지는 토착화신학의 흐름을 다룬 연구도 변선환을 <종교해방신학>, 이정배를 <한국적 생명신학>으로 특징짓습니다. KCI

이를 먼저 아주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질문오강남변선환이정배
종교의 가장 큰 문제표층적 믿음·문자주의·자아중심성기독교의 배타주의와 종교적 지배인간중심주의·생명파괴·소비문명
핵심 전환믿음 → 깨달음배타 → 대화·해방인간중심 → 생명공동체
대표 축<심층종교><해방종교><생태종교>
타종교심층에서는 서로 통한다구원의 타자이자 대화의 동반자생명문명을 함께 만드는 사상자원
개인의 변화매우 중요중요하지만 중심은 아님수행·영성과 사회변화를 결합
사회구조 변화상대적으로 약함강함강함
자연·생태부차적상대적으로 약함핵심
궁극적 목표깨달은 인간종교적·사회적 해방생명·생태문명의 전환

이제 세 축을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1. 오강남 — <종교는 나를 변화시키는가?>

세 사람 가운데 <내면의 변혁>을 가장 선명하게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은 오강남입니다.

오강남의 기본 구도는 잘 알려진

<표층종교 ↔ 심층종교>

입니다.

그가 말하는 표층종교에서는 “지금의 나”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나는 성공하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복 받고 싶고,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신은 그런 나의 욕구를 실현해 주는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반면 심층종교에서는 바로 그 <나> 자체가 변해야 합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표층종교가 기존의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종교라면, 심층종교는 기존의 자기를 넘어 더 큰 자아로 새롭게 태어나는 종교입니다. 문자적 믿음보다 깨달음,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의식의 변화와 자유를 강조합니다. 예스24

그래서 오강남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믿는가?>

보다

<그 믿음을 통해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급진적인 종교비판입니다.

기독교인이 예수를 믿고, 불교인이 부처를 믿더라도 그 사람이 여전히

욕망,
자기중심성,
타인에 대한 배타성,
교리적 독선

속에 있다면 그는 아직 종교의 ‘표층’에 있다는 것입니다.

2026년 개정판 <종교, 다시 깨달음이다> 역시 전체를 <심층종교란 무엇인가 → 심층에 어떻게 도달하는가 → 깨달음의 종교 → AI 시대의 종교>라는 구조로 배열합니다. 예스24

강점

오강남의 가장 큰 장점은 종교비판의 칼날을 먼저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는 점입니다.

“저 종교가 틀렸다”가 아니라

“나는 정말 변화되었는가?”

를 묻게 합니다.

이 때문에 불교의 깨달음, 기독교 신비주의, 도가, 힌두교 등 서로 다른 전통을 심층에서 비교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세진님께서 전에 제기하신 문제입니다.

<깊이 깨달은 개인이 불의한 사회구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정말 ‘심층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오강남의 틀 안에도 사랑·자유·해방·타자에 대한 개방성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를 단순한 개인주의적 영성가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럼에도 그의 분석의 <출발점과 무게중심>은 구조보다 의식에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토지를 소유하는가?>
<누가 노동을 착취하는가?>
<국가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식민주의와 인종주의가 종교와 어떻게 결합하는가?>

같은 질문은 <심층/표층>이라는 구분만으로는 충분히 포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변선환이 필요해집니다.


2. 변선환 — <종교는 타자를 해방시키는가?>

변선환 역시 종교의 내적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핵심은

<기독교가 자기 자신을 절대화함으로써 다른 종교와 사람들을 억압해 온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입니다.

변선환은 한국처럼 유교·불교·무속·천도교·기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서구 기독교의 배타적 종교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연구문헌에서는 그의 신학을 <토착화와 민중신학을 합류시키려 한 종교해방신학>으로 명시적으로 설명합니다. KCI

또 다른 연구에서도 변선환이 한국의 종교다원적 상황에 주목하면서 서구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편견, 교회중심주의, 배타적 기독론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고 정리합니다. KCI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를

“모든 종교가 다 똑같다.”

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독교가 타자를 판단하는 최종 심판자의 위치를 독점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종교간 대화에는 존 힉의 종교다원주의와 야기 세이치 등의 영향도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KCI


3. 왜 이것을 <해방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가

변선환의 중요한 발전은 <토착화>를 단순히 한국적인 문화표현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의 God을 한국어로 하느님이라 부르고,
한국식 찬송가를 만들고,
한복을 입고 예배한다고 해서

종교가 정말 한국적으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더 근본적인 토착화는

<서구 기독교가 가지고 들어온 종교적 지배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것>

이었습니다.

따라서 토착화는 해방의 문제와 만납니다.

여기서 ‘해방’은 두 층을 가집니다.

하나는 <타종교를 기독교의 판단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자체를 자기 절대화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변선환은 오강남보다 역사적이고 정치사회적인 방향을 갖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변선환 신학의 중심적인 타자는 주로

<다른 종교와 억압받는 인간>

입니다.

오늘날의 생태위기에서 제기되는

동물,
산과 강,
생태계,
기후,
지구 전체

를 독립적인 신학적 타자로 보는 문제는 아직 중심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지점을 이정배가 확대합니다.


4. 이정배 — <종교는 생명을 살리는가?>

이정배는 변선환의 제자 세대에 속하면서 토착화신학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습니다.

첨부하신 57종의 저서 목록 자체가 그 변화를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1991년 <토착화와 생명 문화>에서 시작해서

<한국적 생명신학>(1996),
<신학이 생명학 신학이 영성학>(1999),
<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2004),
<기독교 자연신학>(2005),
<생태 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2010),
<한국적 생명신학을 논하다>(2016)

로 발전합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최근에는 다시

<소비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문명전환의 한국사상>

으로 확장됩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이것은 단순히 연구주제가 여러 개로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질문 자체가 커진 것입니다.

변선환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라고 물었다면 이정배는 점점

<인간과 모든 생명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를 묻게 됩니다.


5. 그래서 이정배는 <심층 + 해방 + 생태>를 연결한다

이정배를 세 사람 가운데 중간에 놓으면 흥미로운 사실이 보입니다.

그에게도 <심층>이 있습니다.

다석 유영모, 영성, 수행, 자기비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때문입니다.

그에게도 <해방>이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 국가와 교회를 비판한 <묻는다, 이것이 공동체인가>, <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 <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 같은 저술이 그것을 잘 보여 줍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그리고 그 둘에 <생태>를 결합합니다.

그래서 이정배의 구조는 대략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내면의 변화
↓
종교적 자기비움
↓
타자와의 연대
↓
사회적 해방
↓
인간중심주의 극복
↓
생명공동체
↓
생태문명으로의 전환

변선환에서 이정배로 이어지는 흐름을 연구한 논문 역시 변선환이 다원주의를 민중신학과 연결했다면, 이정배는 두 스승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 <생명>을 성령론과 수행론을 통해 풀어 토착화신학의 새로운 전환을 시도했다고 평가합니다. KCI


6. 중요한 차이: 세 사람이 말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여기서 세 사람의 차이가 가장 선명해집니다.

오강남

구원은 기본적으로

<의식의 변화>

입니다.

작은 자아에서 큰 자아로, 문자에서 의미로, 믿음의 소유에서 깨달음으로 넘어갑니다.


변선환

구원은

<배타성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으로 확대됩니다.

내 종교만 참이라고 주장하면서 타자를 배제한다면 그 종교 자체가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타종교의 구원 가능성>보다 더 흥미로운 문제는 사실

<기독교 자체가 종교적 독선에서 구원되어야 한다>

는 역전입니다.


이정배

이정배에게서는 구원이 다시 확장됩니다.

<인간만 구원받아서는 세계가 구원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따라서 구원은

개인 → 타자 → 사회 → 자연 → 문명

으로 확장됩니다.

이 점이 그의 <생명신학>을 종교다원주의의 단순한 연장으로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7. 세진님이 제기한 <아편종교 ↔ 해방종교>를 넣으면 구도가 달라진다

여기서 세진님이 전에 제기하신 비판을 적용해 보면 훨씬 흥미로워집니다.

기존 오강남의 틀은

표층종교 ↔ 심층종교

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편종교 ↔ 해방종교

그리고

인간중심종교 ↔ 생태종교

를 교차시키면 종교를 세 개의 서로 다른 질문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제1축: 깊이

<나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는가?>

오강남이 가장 강합니다.

제2축: 정의

<그 종교는 억압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가?>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이 강한 질문입니다.

제3축: 생명

<그 종교는 인간 이외의 존재와 지구 생명공동체를 살리는가?>

이정배가 가장 강하게 발전시킨 질문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결론이 나옵니다.


8. <심층종교>라고 해서 반드시 <해방종교>는 아니다

어떤 사람이 대단히 깊은 명상과 신비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욕심도 적고 마음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착취, 독재, 전쟁, 인종차별을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층종교이면서 비해방적 종교

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심층/표층>만으로 종교를 판단할 때 생기는 한계입니다.

반대로 혁명적 사회운동을 하면서 자기 집단을 절대화하고 상대방을 악마화한다면

해방을 주장하면서도 심층적이지 않은 종교

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생태파괴를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세 축은 서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9. 오히려 3차원으로 보아야 한다

저라면 세 사람의 문제의식을 합쳐 종교를 이렇게 보겠습니다.

A. <심층성>

나는 변화되었는가?

B. <해방성>

타자는 자유로워졌는가?

C. <생태성>

생명공동체는 살아날 수 있는가?

세 질문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좋은 종교’와 ‘나쁜 종교’를 단순히 교파나 교리로 나누기보다 훨씬 날카롭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는

심층성 낮음 / 사회참여 높음 / 생태성 낮음

일 수도 있고,

어떤 명상공동체는

심층성 높음 / 해방성 낮음 / 생태성 높음

일 수도 있습니다.

한 종교 안에서도 세 차원의 발전 정도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세 사람의 관계를 한 문장씩 표현한다면

오강남은 묻습니다.

<당신의 종교가 당신을 깨우쳤는가?>

변선환은 묻습니다.

<당신의 종교가 타자를 자유롭게 하는가?>

이정배는 묻습니다.

<당신의 종교가 생명을 살리고 문명을 바꾸는가?>

이 세 질문은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순서대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 → 해방 → 생명>

그러나 반드시 이 순서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억압받는 사람과 함께하는 실천이 사람을 깨우치기도 하고, 생태위기를 경험하면서 자기중심적 종교관에서 벗어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1. 세 사람 가운데 이정배의 위치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

이 비교에서 제가 가장 주목할 부분은 이정배가 사실상 <세 축을 연결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다석 유영모를 통해 <심층>을 얻고,

변선환의 토착화·종교해방신학을 통해 <타자와 해방>을 계승하고,

생명신학·생태신학을 통해 <비인간 생명과 지구>까지 범위를 넓힙니다.

그래서 이정배의 연구대상이 얼핏 산만해 보입니다.

유영모, 동학, 불교, 과학, 켄 윌버, 생태, 세월호, 작은교회, 종교개혁, 개벽….

그러나 첨부하신 저서 목록을 시간순으로 보면 오히려 일관성이 있습니다. 토착화에서 출발하여 생명, 생태, 수행, 사회참여, 문명전환으로 계속 원을 크게 그려 온 것입니다. 알라딘 '이정배' 총 57건


12. 제가 보기에 가장 생산적인 종합

세진님이 앞서 제기하신 문제를 발전시키면, <심층종교냐 표층종교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종교를 최소한 세 질문으로 동시에 물어야 합니다.

<첫째, 나 자신은 변했는가?> — 오강남의 질문

<둘째, 억압받는 타자는 자유로워졌는가?> — 변선환의 질문

<셋째, 인간과 자연의 생명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는가?> — 이정배의 질문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매우 중요한 명제가 나옵니다.

<심층 없는 해방은 새로운 독선이 될 위험이 있고, 해방 없는 심층은 고급스러운 아편이 될 위험이 있으며, 생태 없는 심층과 해방은 결국 인간만을 위한 종교에 머물 위험이 있다.>

반대로 <심층·해방·생태>가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면, 종교를 개인적 깨달음과 사회정의와 지구적 생명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세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모델만으로 완결된 종교론을 만들기보다, <오강남의 심층성 + 변선환의 해방성 + 이정배의 생태성>을 삼각형으로 놓는 것이 훨씬 생산적입니다. 그리고 이 삼각형에서 이정배는 오강남과 변선환 사이에 단순히 ‘중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두 문제를 <생명과 문명전환>이라는 더 큰 틀로 확장하려 한 신학자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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