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기독교 철학자 프란시스 쉐퍼 - 위키백과, Francis A. Schaeffer

프란시스 쉐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프란시스 쉐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프란시스 쉐퍼 목사(선교사)
라브리공동체 설립자
원어이름Francis A. Schaeffer
개인정보
출생이름Francis August Schaeffer
출생1912년 1월 30일
미국의 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저먼타운
사망1984년 5월 15일
미국의 기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
국적스위스의 기 스위스
교파장로교
배우자에디스 쉐퍼(Edith Seville Schaeffer)
가족자녀: 프랭크 쉐퍼

프란시스 쉐퍼(영어Francis A. Schaeffer1912년 1월 30일 ~ 1984년 5월 15일)는 미국의 기독교 철학이며 장로교 목사이자 복음주의 운동가이다.  쉐퍼는 신학적 모더니즘를 반대하고 역사적 개신교 신앙에 더욱더 촉진시켰으며, 그 시대의 질문에 대답할 기독교 변증학을 위해 전제주의 변증 방법을 발전시켰다. 성경을 통해서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사회와 정치를 분석하고 예언적 방향을 제시한 그의 방식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라브리공동체를 창설하여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과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토론하고 기독교 문화에도 많은 도전을 주었다.

경력[편집]

프란시스 쉐퍼는 1912년 독일계 이민 프랜시스 오거스트 쉐퍼 3세와 베시 윌리엄슨 사이에서 펜실베이니아 저먼 타운에서 태어났다. 1935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페이스 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다. 1938년 장로교 목사로 안수받았으며, 1949년부터 스위스의 로마 가톨릭 주인 샹페리 주에 정착했다. 1955년 신학적인 갈등으로 개신교 주인 보드 위에모(Huemoz)주로 이주했으며, 1955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있는 기독교적인 배움공동체 라브리 공동체(프랑스어L’Abri)를 설립했다. 1984년 임파선 암으로 별세했다.[1]

쉐퍼의 문화관[편집]

성인경이 말하는 프란시스 쉐퍼의 문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2]

첫째, 쉐퍼는 모든 문화가 복음 안에서 통일되기를 추구했다. 그가 일했던 서구 교회는 16세기에 되찾았던 만물에 미치는 그리스도의 주재권(Lordship, 골1:17,18)을 17세기의 경건주의 시대 이후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문화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해 버렸고 이원화시켰던 것이다. 특히 20세기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반문화적(反文化的)인 사고가 팽배하던 시대였다.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학문과 신앙을 통합하는 것을 포기했고,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에서 메시지를 상실한 채 심미적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에서 절망을 부르짖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쉐퍼는 아퀴나스 이후로 제기된 자연과 은혜의 분리를 중단하고, 정신계와 물질계의 이원화를 배제하고, 신학과 타 학문 사이의 분열을 멈추고, 복음과 문화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할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복음과 문화, 그리스도와 세상이라는 분리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베이스(Gene E. Veith)는 "쉐퍼가 그리스도와 문화 모두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들을 대립시켜서 일치점과 차이점을 찾아내어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패커(J.I.Packer)는 다소 신학적으로 규명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창조된 실재의 전체성과, 기독교인의 삶이란 그에 상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포괄적인 실재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즉,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이 다같이 가치를 인정받으며 동등한 열정으로 추구되어야 하는 그런 삶을 말한다. 이러한 측면들이 제도적으로는 라브리에서 구현되었으므로 그의 사역이 주목받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의 사역이 워낙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쉐퍼는 모든 문화의 가치는 하나님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예술의 가치와 본질은 '예술가라는 인간의 위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있다고 보았다. 즉 하나님의 인격성(人格性)과 창조성(創造性)이 모든 예술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탁월하고 창조적인 예술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도 그 분을 닮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예술이란 인간이 하나님의 인격성과 창조성을 과시하고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탐구하면 할수록,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는 피조물들의 다양성은 물론 하나님의 창조력의 완전함과 그의 상상력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제람 바즈(Jerram Barrs)는 그 점을 지적하여, "이 세상의 별과, 꽃과, 새와 같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엄청난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두 개가 똑 같은 피조물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호랑이의 발자국이 다 다르듯이 모든 것은 서로 다르다. 세상은 이 같이 놀라운 다양성과 풍성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근본적인 출발점이다"고 잘 지적했다.

그러므로 현대 예술가들이 자랑하는 창조적 '예술성만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창의성이 뛰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격성을 파괴하는 예술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들로부터 거부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인격이 지나치게 파괴되기 때문이다.

셋째, 기독교적인 주제에만 제한되면 안 된다고 보았다.

쉐퍼는 예술을 기독교적인 주제에만 제한시키지 않았다. 그는 어떤 작품이 속칭 '기독교적인 주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는 옳은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동시에 기독교적인 주제를 사용했다고 무조건 좋은 작품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하는 비기독교적 주제의 예술 작품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예술가의 '상상력(imagination)'과 관련이 있는 것이며, 모든 예술가들의 생명이다.

쉐퍼는 우리의 예술적 감각, 즉 상상력은 "저 별들의 넘어까지도 나래를 펼 수 있다"고 말 함으로써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에까지 예술가의 영역이 됨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쉐퍼는 주제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종교 개혁적 영성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바하(John.S.Bach)는 메시야와 같은 성가곡만 작곡한 것이 아니라 궁중 파티를 위한 춤출 수 있는 '세속적인' 곡이라 부르는 작품들도 작곡했다.

그 점은 미술에 있어서 렘브란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에는 엄두도 못 낼 피아노 앞에 앉은 아내의 엉덩이를 그렸고, 의사의 수술 장면을 그렸다. 쉐퍼는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노래나 그림 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간 세상의 아픔'을 담아내는 노래나 그림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 문화는 '미(beauty)'뿐만 아니라 '실체(reality)'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쉐퍼는 작품을 통하여 작가와 시대, 예술성을 비평했다.

현대적인 예술 비평방법은 "창의성"에 모든 생명을 걸고 있는데, 예술가의 독창적인 "개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한 시대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있어서 예술 작품이 오용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루이스(C.S. Lewis, 1989-1963)의 말을 인용해 본다면, "현대 비평의 중심되는 단어들은 파행적, 전통에 반하는 독자성, 규칙에 반하는 자유 등이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들의 명단에 들어 갈려면 파생적, 독자성, 자유가 마음껏 발휘되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이들보다 더 혁명적이고 개척자적인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쉐퍼는 예술 작품을 완전히 반대로 접근했다. 즉 쉐퍼는 예술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는데, '예술 작품의 분석을 통하여 그 작가와 그 시대의 세계관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예술 비평 방법인데, 마치 '역사에 있어서는 텍스트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사용하지 않고 텍스트를 통하여 한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사상적 변동을 설명하는 방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작품을 감상할 때는 종교적 주제 여부, 혹은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먼저 비판하기 보다는 그 작품을 통하여 작가, 시대, 예술성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는 문화 감상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작품의 예술성(artistics), 기술성(technology), 사상성(message)을 중시했다. 작품 속에 비기독교적인 예술성이나 기술성이 지나치게 내포되어 있을 경우에는 때로는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많은 경우에 예술성은 배우고 감상할 것이 많다고 보았다. 사상성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음미해 보아야 하는데, 20세기 예술은 작가와 관객사이에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단절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는 작품 이름이 "무제"라는 것이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곡된 사상을 전하는 작품은 아무리 예술성과 기술성이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재고해야 한다.

다섯째, 문화를 전도의 접촉점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쉐퍼는 분석뿐만 아니라 분석한 것을 복음 전도의 유용한 다리로 사용했다. 그의 "문화 변증학"이라는 것은 복음의 내용을 변질 시키지 않으면서도 문화를 접촉점으로 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의 변증학은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제도, 외식)과 사마리아 여인(물, 물동이, 남편)에게, 그리고 바울이 루스드라(농경문화), 아테네(우상, 지식과 종교 문화), 벨릭스 총독(정치문화)에게 전도할 때처럼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을 대화의 접촉점으로 삼고 토론을 전개하는 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문화 속에 숨어있는 세계관에 주목했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결했다. "역사와 문명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사상에 근원을 둔다. 인간은 내적 정신생활에 있어서는 특이한 존재이다. 즉 그들의 정신세계는 그들의 행동을 결정짓는다." 그가 현대 문화의 사상적 뿌리를 심각하게 본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관뿐만 아니라 요즘 같으면 영화, 음악, 미술 등이 복음전파의 가장 좋은 다리로서 사용될 수 있다. 라브리에서는 음식이나 산책, 여행, 노동까지도 복음의 접촉점으로 사용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데 그의 문화적 변증학, 문화적 전도학이 성경적 방법이라는 것이 인정되고 빛을 발할 때가 된 것이다.

저서[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

Francis Schaeffer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Francis Schaeffer
Founder of the L'Abri community
Born
Francis August Schaeffer

January 30, 1912
DiedMay 15, 1984 (aged 72)
Occupation(s)Christian philosopher, Evangelical church leader, author
SpouseEdith Seville Schaeffer
ChildrenPriscilla Sandri
Susan Macaulay
Deborah Middelmann
Frank Schaeffer
Signature

Francis August Schaeffer (January 30, 1912 – May 15, 1984)[1] was an American evangelical theologianphilosopher, and Presbyterian pastor. He co-founded the L'Abri community in Switzerland with his wife Edith Schaeffernée Seville, a prolific author in her own right.[2] Opposed to theological modernism, Schaeffer promoted what he claimed was a more historic Protestant faith and a presuppositional approach to Christian apologetics, which he believed would answer the questions of the age.

Biography[edit]

Schaeffer was born on January 30, 1912, in Germantown, Pennsylvania, to Franz A. Schaeffer III and Bessie Williamson.[3] He was of German and English ancestry.[4][page needed]

In 1935, Schaeffer graduated magna cum laude from Hampden–Sydney College. The same year he married Edith Seville, the daughter of missionary parents who had been with the China Inland Mission founded by Hudson Taylor. Schaeffer then enrolled at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in the fall and studied under Cornelius Van Til (presuppositional apologetics) and J. Gresham Machen (doctrine of inerrancy).[5]

In 1937, Schaeffer transferred to Faith Theological Seminary, graduating in 1938. This seminary was newly formed as a result of a split between the 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now 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and the Bible Presbyterian Church, a Presbyterian denomination more identified with Fundamentalist Christianity and premillennialism. Schaeffer was the first student to graduate and the first to be ordained in the Bible Presbyterian Church. He served pastorates in Pennsylvania (Grove City and Chester) and St. Louis, Missouri. Schaeffer eventually sided with the Bible Presbyterian Church Columbus Synod following the BPC Collingswood and BPC Columbus split in 1956. BPC Columbus reorganized as the 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in 1961, and Schaeffer followed the EPC into the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Evangelical Synod when the Bible Presbyterian Church's Columbus Synod merged with the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General Synod in 1965,[6] a denomination which would merge with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in 1982.

In 1948, the Schaeffer family moved to Switzerland and in 1955 established the community called L'Abri (French for "the shelter").[1][7] Serving as both a philosophy seminar and a spiritual community, L'Abri attracted thousands of young people, and was later expanded into Sweden, France, the Netherlands, Canada, the United Kingdom and the United States.

Schaeffer received numerous honorary degrees. In 1954, he was awarded an honorary Doctor of Divinity degree from Highland College in Long Beach, California.[8] In 1971, he received an honorary Doctor of Letters degree from Gordon College in Wenham, Massachusetts.[9][10] In 1982, John Warwick Montgomery nominated Schaeffer for an honorary Doctor of Laws degree, which was conferred in 1983 by the Simon Greenleaf School of LawAnaheim, California in recognition of his apologetic writings and ministry.[11]

Schaeffer died of lymphoma on May 15, 1984, in Rochester, Minnesota.[12][13] He opened a L'Abri branch there before his death. Schaeffer Academy, a private K-12 school in Rochester, is named after him.[14]

Family relationships[edit]

In Crazy for God, Schaeffer's son Frank presents a portrait of his father that is far more nuanced and multi-dimensional than was suggested by his public persona. He states, for example, that Schaeffer's primary passions in life were not the Bible and theology but rather art and culture. "And what moved him was not theology but beauty".[15] Schaeffer's son claims he had frequent bouts with depression and a verbally and physically abusive relationship with his wife, Edith.[8] Those in the inner circle at L'Abri challenge Frank's account. Os Guinness, who lived with the Schaeffers and was a close friend of both the younger and elder Schaeffer, described Crazy for God as a "scurrilous caricature" and said, "[N]o one should take Frank's allegations at face value."[16]

Frank Schaeffer initially supported his father's ideas and political program, but has since distanced himself from many of those views, first converting to the Eastern Orthodox Church[17] and later becoming a liberal and a self described "atheist who believes in God."[18][19]

Apologetics[edit]

Schaeffer's approach to Christian apologetics was primarily influenced by Herman Dooyeweerd,[failed verification] Edward John Carnell, and Cornelius Van Til, but he was not known to be a strict presuppositionalist in the Van Tillian tradition. His approach to culture was heavily influenced by his friendship with Hans Rookmaaker. In a 1948 article in The Bible Today, Schaeffer explained his own apologetics and how he walked a middle path between evidentialism and presuppositionalism, noting that "If the unsaved man was consistent he would be an atheist in religion, an irrationalist in philosophy (including a complete uncertainty concerning 'natural laws'), and completely a-moral in the widest sense."[20] J. Budziszewski summarizes the article about this middle path approach by writing:

Presuppositionalists, he held, are right to assert that the ultimate premises of Christian and anti–Christian systems of thought are utterly at odds in relation to their origin. On the other hand, evidentialists are right to assert that between Christian and anti–Christian systems of thought there is always a point of contact in the shape of reality itself. The reason for this point of contact, he argued, is that nonbelievers cannot bring themselves to be completely consistent with their own presuppositions, and this inconsistency is a result of what many call common grace and is in fact the reality of God having made, and spoken into, a defined and unavoidable creation. "Thus, illogically", he wrote, "men have in their accepted worldviews various amounts of that which is ours. But, illogical though it may be, it is there and we can appeal to it."[21]

Schaeffer came to use this middle path as the basis for his method of evangelism which he called "Taking the roof off".[22] An example of Taking the roof off in written form can be found in Schaeffer's work entitled Death in the City.[23] Nancy Pearcey also describes two books by Schaeffer, Escape From Reason and The God Who Is There in this way:

In these books, Schaeffer explains the history of the two-story division of knowledge, often referred to as the fact/value split. He also describes his apologetics method, which combined elements of both evidentialism and presuppositionalism.[24]

Influence of Rushdoony[edit]

In the 1960s Schaeffer read the works of Reconstructionist theologian Rousas John Rushdoony with appreciation, and according to Barry Hankins, "it is quite likely that Schaeffer's belief that the United States was founded on a Christian base came in part from Rushdoony."[3] Schaeffer later lost this fervor because Rushdoony was a postmillennialist (holding the doctrine that the kingdom of God will be built on earth before the second coming of Jesus) while Schaeffer was a premillennialist (holding that the kingdom of God will only be ushered in with the second coming). Further Schaeffer thought that Rushdoony's system would require a merger of church and state, which he opposed. He held that the principles, not the actual details, of Old Testament civil law were applicable under the New Covenant of Jesus. He wrote "The moral law [of the Old Testament], of course, is constant, but the civil law only was operative for the Old Testament theocracy. I do not think there is any indication of a theocracy in the New Testament until Christ returns as king."[3]

Legacy[edit]

The Francis A. Schaeffer Foundation in Gryon, Switzerland is led by one of his daughters and sons-in-law as a small-scale alternative to the original L'Abri Fellowship International, which is still operating in nearby Huemoz-sur-Ollon and other places in the world.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has established the Francis A. Schaeffer Institute directed by a former English L'Abri member, Jerram Barrs. The purpose of the school is to train Christians to demonstrate compassionately and defend reasonably what they see as the claims of Christ on all of life.[25]

According to Michael Hamilton of Christianity Today, "Perhaps no intellectual save C. S. Lewis affected the thinking of evangelicals more profoundly [than Francis Schaeffer]; perhaps no leader of the period save Billy Graham left a deeper stamp on the movement as a whole."[26]

Institute of Church Leadership[edit]

In 1978, Schaeffer asked a group of Reformed Episcopal Clergy to research his thoughts and current trends, forming a church guild called "The Society of Reformed Philosophical Thinkers". This was merged in 1988 with "Into Thy Word Ministries", which was then transformed into "The Francis A. Schaeffer Institute of Church Leadership Development" in 1998. Its purpose is to strategize how to reach and train pastors and church leaders to focus on Christ centered principles. Its aim is to point the church back to "true-Truth" and "true spirituality". The foundation develops comprehensive curriculum for pastors, church planters and church leaders.[citation needed]

Political activism[edit]

Francis Schaeffer is credited with helping spark a return to political activism among Protestant evangelicals and fundamentalists in the late 1970s and early 1980s, especially in relation to the issue of abortion.[27] In his memoir Crazy for God, Schaeffer's son Frank takes credit for pressing his father to take on the abortion issue, which Schaeffer initially considered "too political".[8] Schaeffer called for a challenge to what he saw as the increasing influence of secular humanism. Schaeffer's views were expressed in two works, his book entitled A Christian Manifesto, as well as the book and film series, Whatever Happened to the Human Race?.[citation needed]

A Christian Manifesto[edit]

Schaeffer's book A Christian Manifesto[28] was published in 1981 and later delivered as a sermon in 1982. It was intended as a Christian answer to The Communist Manifesto of 1848 and the Humanist Manifesto documents of 1933 and 1973. Schaeffer's diagnosis is that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 is due to society having become increasingly pluralistic, resulting in a shift "away from a world view that was at least vaguely Christian in people's memory… toward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citation needed] Schaeffer argues that there is a philosophical struggle between the people of God and the secular humanists.[improper synthesis?] In the sermon version of the book, Schaeffer defines secular humanism as the worldview where "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citation needed] He claims that critics of the Christian right miss the mark by confusing the "humanist religion" with humanitarianism, the humanities, or love of humans. He describes the conflict with secular humanism as a battle in which "these two religions, Christianity and humanism, stand over against each other as totalities."[citation needed] He writes that the decline of commitment to objective truth that he perceives in the various institutions of society is "not because of a conspiracy, but because the church has forsaken its duty to be the salt of the culture."[29]

A true Christian in Hitler's Germany and in the occupied countries should have defied the false and counterfeit state and hidden his Jewish neighbors from the German SS Troops. The government had abrogated its authority, and it had no right to make any demands.

He then suggests that similar tactics be used to stop abortion. But Schaeffer argues he is not talking about a theocracy:

State officials must know that we are serious about stopping abortion… First, we must make definite that we are in no way talking about any kind of theocracy. Let me say that with great emphasis. Witherspoon, Jefferson, the American Founders had no idea of a theocracy. That is made plain by the First Amendment, and we must continually emphasize the fact that we are not talking about some kind, or any kind, of a theocracy.[30]

Christian Reconstructionists Gary North and David Chilton were highly critical of A Christian Manifesto and Schaeffer.[31]

Their critical comments were prompted, they wrote, by the popularity of Schaeffer's book.[32] They suggested that Schaeffer supports pluralism because he sees the First Amendment as freedom of religion for all; and they themselves reject pluralism.[33] Pointing out negative statements Schaeffer made about theocracy, North and Chilton then explain why they promote it.[34] They extend their criticism of Schaeffer:

The fact remains that Dr. Schaeffer's manifesto offers no prescriptions for a Christian society. We mention that merely in the interests of clarity, for we are not sure that anybody has noticed it up to now. The same comment applies to all of Dr. Schaeffer's writings: he does not spell out the Christian alternative.[35]

Influence on Christian conservatives[edit]

Christian conservative leaders such as Tim LaHaye have credited Schaeffer for influencing their theological arguments urging political participation by evangelicals.[36]

Beginning in the 1990s, critics[who?] began exploring the intellectual and ideological connection between Schaeffer's political activism and writings of the early 1980s to contemporary religious-political trends in the Christian Right, sometimes grouped under the name Dominionism, with mixed conclusions.[citation needed]

Sara Diamond and Frederick Clarkson[37] have written articles tracing the activism of numerous key figures in the Christian Right to the influence of Francis Schaeffer. According to Diamond: "The idea of taking dominion over secular society gained widespread currency with the 1981 publication of...Schaeffer's book A Christian Manifesto. The book sold 290,000 copies in its first year, and it remains one of the movement's most frequently cited texts."[38] Diamond summarizes the book and its importance to the Christian Right:

In A Christian Manifesto, Schaeffer's argument is simple. The United States began as a nation rooted in Biblical principles. But as society became more pluralistic, with each new wave of immigrants, proponents of a new philosophy of secular humanism gradually came to dominate debate on policy issues. Since humanists place human progress, not God, at the center of their considerations, they pushed American culture in all manner of ungodly directions, the most visible results of which included legalized abortion and the secularization of the public schools. At the end of -- A Christian Manifesto, Schaeffer calls for Christians to use civil disobedience to restore Biblical morality, which explains Schaeffer's popularity with groups like Operation RescueRandall Terry has credited Schaeffer as a major influence in his life.[38]

Frederick Clarkson explains that this had practical applications:

"Francis Schaeffer is widely credited with providing the impetus for Protestant evangelical political action against abortion. For example, Randall Terry, the founder of Operation Rescue, says: "You have to read Schaeffer's Christian Manifesto if you want to understand Operation Rescue." Schaeffer, a longtime leader in Rev. Carl McIntire's splinter denomination, the Bible Presbyterian Church, was a reader of Reconstructionist literature but has been reluctant to acknowledge its influence. Indeed, Schaeffer and his followers specifically rejected the modern application of Old Testament law."[39]

Analyses of Schaeffer as the major intellectual influence on Dominionism can be found in the works of authors such as Diamond[40] and Chip Berlet.[41] Other authors argue against a close connection with dominionism, for example Irving Hexham of the University of Calgary, who maintains that Schaeffer's political position has been misconstrued as advocating the Dominionist views of R. J. Rushdoony, who is a Christian Reconstructionist. Hexham indicates that Schaeffer's essential philosophy was derived from Herman Dooyeweerd, not Rushdoony, and that Hans Rookmaaker introduced Schaeffer to his writings.[42] Dooyeweerd was a Dutch legal scholar and philosopher,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Neo-Calvinist Abraham Kuyper.

Congresswoman and 2012 United States presidential candidate Michele Bachmann has cited Schaeffer's documentary series How Should We Then Live? as having a "profound influence" on her life and that of her husband Marcus.[43]

Writings[edit]

The complete works of Francis Schaeffer.

Francis A. Schaeffer wrote twenty-two books, which covering a range of issues. They can be roughly split into five sections, as in the edition of his Complete Works (ISBN 0-89107-347-7):

  • A Christian View of Philosophy and Culture: The first three books in this block are known as Schaeffer's "trilogy", laying down the apologetical, philosophical, epistemological, and theological foundation for all his work.
  • A Christian View of the Bible as Truth
    • Genesis in Space and Time: Argues that the historical (as opposed to literalist or figurative) view of Genesis as historically true is fundamental to the Christian faith.
    • No Final Conflict
    • Joshua and the Flow of Biblical History
    • Basic Bible Studies: Biblical studies on the fundamentals of the faith.
    • Art and the Bible
  • A Christian View of Spirituality
    • No Little People: Argues that Christians should never despair of having a significant life of realizations, small as they seem to be.
    • True Spirituality: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Schaeffer's work, as a complement to the theological and philosophical approach of most other books. Useful for gaining a balanced view of the whole of Schaeffer's life and ministry.
    • The New Super-Spirituality: Claims the intellectual decadence of students and the counter-culture from the late sixties to the early seventies can be traced back to the conformism of their fathers, only with fewer moral absolutes, and predicts the contamination of the church. Offers an analysis of Postmodernism.
    • Two Contents, Two Realities: First presented as a position paper at the Firs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at Lausanne, Switzerland in 1974.
  • A Christian View of the Church
  • A Christian View of the West

In addition to his books, one of the last public lectures Schaeffer delivered was at the Law Faculty, University of Strasbourg. It was published as "Christian Faith and Human Rights", The Simon Greenleaf Law Review, 2 (1982–83) pp. 3–12. Most of his writings during his Bible Presbyterian days have not been collected, nor reprinted in decades.

In addition to the five volume Complete Works listed above there were also two books by Dr. Schaeffer published after his death:

  • Dennis, Lane T. (ed) Letters of Francis A. Schaeffer, Crossway Books, Westchester, 1985.
  • Schaeffer, Francis A. The Finished Work of Christ: The Truth of Romans 1–8, Crossway Books, Wheaton, 1998.

Films[edit]

Schaeffer was persuaded to adapt his book How Should We Then Live? The Rise and Decline of Western Thought and Culture to film by Gospel Films, Inc. CEO and executive evangelical media producer Billy Zeoli who pitched the idea of hiring Schaeffer's then recently married son, teenage father, and painter Frank Schaeffer as a producer for the film project. Zeoli was instrumental in providing the Schaeffers with introductions to wealthy American evangelicals who would eventually bankroll the How We Should Then Live film project. This book is still being read and used today in American Universities as well as in various small group studies to help shed light on the contemporary cultural problems of the past and how they have led to many of the issues that America is facing today. Issues such as race, apathy, abortion, and the non-compassionate use of wealth are topics still relevant today. Schaeffer argues that the humanist base for morals is fundamentally a weak base upon which to build a moral framework for society. By contrast, the Bible, understood as the revealed revelation from God is able to provide a fundamentally sound basis for societal norms as well as a base for science. The president of Christian Leaders Institute (CLI), Henry Reyenga Jr., secured rights to post this film series in an ethics class at CLI. This freemium ministry training school lists "deceased" Francis Schaeffer on its faculty.[44]

The American distribution of the book and film was responsible for bringing many evangelical Protestants into the then largely Roman Catholic public protest movement against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 Roe v. Wade decision, 410 U.S. 113 (1973) supporting legal abortion in the United States.[45]

  • How Should We Then Live? The Rise and Decline of Western Thought and Culture (1976). Frank Schaeffer produced his father Francis Schaeffer's film series, which was released with a book by the same title.
  • Whatever Happened to the Human Race? (1979). A Christian response to abortion, euthanasia, and infanticide, narrated by Francis Schaeffer and future Surgeon General Dr. C. Everett Koop; it was released with a book by the same title.

Notes[edit]

  1. Jump up to:a b "Biographical Sketch"Francis August Schaeffer Papers, PCA Historical Center,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May 17, 2014, retrieved August 26, 2006.
  2. ^ List of works by Edith Schaeffer, Amazon.
  3. Jump up to:a b c Hankins, Barry (2008). Francis Schaeffer and the Shaping of Evangelical America. Eerdmans.
  4. ^ Duriez 2008.
  5. ^ Duriez 2008, p. 34.
  6. ^ Francis A. Schaeffer, "A Step Forward"The Presbyterian Journal, March 6, 1974, pp. 7–8. Retrieved September 7, 2007.
  7. ^ Hamilton, Michael S., "The Dissatisfaction of Francis Schaeffer"Christianity Today, A Tribute to Mark Heard, vol. 41, no. 3, p. 22,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December 21, 2006, retrieved August 25, 2006.
  8. Jump up to:a b c Schaeffer 2007, p. [page needed].
  9. ^ "Francis August Schaeffer Papers [Early Ministry] Manuscript Collection # 29, Box 134". PCA Historical Center.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May 17, 2014. Retrieved July 24, 2006.
  10. ^ Douglas, James Dixon (1992). Who's who in Christian History. Tyndale House. p. 609. ISBN 978-0-8423-1014-7.
  11. ^ Parkhurst, LG (1985), "Appendix A: Chronology of the Life of Francis Schaeffer", Francis Schaeffer: The Man and His Message, Wheaton, IL: Tyndale House, pp. 213–15.
  12. ^ Duriez 2008, p. 210.
  13. ^ Saxon, Wolfgang, "Rev. Francis A. Schaeffer, 72; Founder of Spiritual Centers", New York Times, May 17, 1984.
  14. ^ "Founding".
  15. ^ Schaeffer 2007, p. 140.
  16. ^ Guinness, Os (March–April 2008). "Fathers and Sons: On Francis Schaeffer, Frank Schaeffer, and Crazy for God"Books & Culture. Retrieved May 23, 2008.
  17. ^ Ethics daily.
  18. ^ Winston, Kimberly (June 13, 2014). "Frank Schaeffer, Former Evangelical Leader, Is A Self-Declared Atheist Who Believes in God"Huffington Post. Retrieved April 2, 2016.
  19. ^ Oppenheimer, Mark (August 19, 2011). "Son of Evangelical Royalty Turns His Back, and Tells the Tale"The New York Times. Retrieved April 2, 2016.
  20. ^ Schaeffer, Francis, "A Review of a Review", in The Bible Today, October 1948, pp. 7–9. Accessed August 21, 2006. Reprinted at PCA Historical Center.
  21. ^ Budziszewski, J (May 2000). "Evidentialists and Presuppositionalists". Letters. First Things. Retrieved May 19, 2019.
  22. ^ Edgar, William (Spring 1995), "Two Christian Warriors: Cornelius Van Til and Francis A. Schaeffer Compared",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57 (1): 57–80.
  23. ^ Schaeffer, Francis, "Chapter 9: The Universe and Two Chairs", in Death in the City, reprinted at Nehemiah's Prayer Watch. Retrieved August 22, 2006.
  24. ^ Pearcey, Nancy (2004), Total Truth: Liberating Christianity From Its Cultural Captivity, Wheaton, IL: Crossway Books, p. 453.
  25. ^ "Our Purpose", FSI, Covenant seminar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September 1, 2006, retrieved August 26, 2006.
  26. ^ Hamilton, Michael (March 3, 1997). "The Dissatisfaction of Francis Schaeffer"Christianity Today. Retrieved April 2, 2016.
  27. ^ Jon, Ronson. "Things fell apart. Episode 1: 1000 dolls". BBC. Retrieved November 16, 2021.
  28. ^ Schaeffer, Francis (1982), A Christian Manifesto (revised ed.), Crossway, ISBN 0-89107-233-0.
  29. ^ Schaeffer, Francis (1982), A Christian Manifesto, People for life, retrieved June 24, 2005.
  30. ^ Schaeffer, Francis, A Christian Manifesto, in The Collected Works… Volume 5, pp. 485–86.
  31. ^ North, Gary; Chilton, David (1983), "Apologetics and Strategy", in North, Gary (ed.), Tactics of Christian Resistance: A Symposium, Tyler, TX: Geneva Divinity School, pp. 100–40.
  32. ^ North & Chilton 1983, pp. 116–17.
  33. ^ North & Chilton 1983, pp. 128–29.
  34. ^ North & Chilton 1983, pp. 121–22.
  35. ^ North & Chilton 1983, pp. 127–28.
  36. ^ Tim LaHaye, 1980, The Battle for the Mind, Old Tappan, NJ: Fleming H. Revell, p. 5.
  37. ^ Clarkson, Frederick (1994). "Theocratic Dominionism Gains Influence"The Public Eye Magazine VIII (1 & 2).
  38. Jump up to:a b Diamond, Sara (1994). "Dominion Theology: The Truth About the Christian Right's Bid for Power", Z Magazine (column) February 1995. Publiceye.org.
  39. ^ Clarkson, Frederick. (1995). "Christian Reconstructionism: Theocratic Dominionism Gains Influence." In Chip Berlet (Ed.), Eyes Right! Challenging the Right Wing Backlash (pp. 59–80). Boston: South End Press. Revised and included in Clarkson, Eternal HostilityPubliceye.org
  40. ^ Sara Diamond, 1995, Roads to Dominion: Right–Wing Movements and Political Power in the United States, New York: Guilford, pp. 246-249.
  41. ^ Chip Berlet and Matthew N. Lyons, 2000, Right–Wing Populism in America: Too Close for Comfort, New York: Guilford Press, pp. 212-213.
  42. ^ Hexham, Irving, "The Evangelical Response to the New Age", in Perspectives on the New Age, edited by James R. Lewis & J. Gordon Melt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Albany, New York, 1992, pp. 152-163, and especially p. 322 Note 16.
  43. ^ Lizza, Ryan"Leap of Faith: The making of a Republican front-runner"New Yorker Magazine, August 15, 2011.
  44. ^ "The Late Dr. Francis Schaeffer"Free Ministry Training – Ordination. Christian leadership institute. June 5, 2011. Retrieved September 15, 2016.
  45. ^ Randall Balmer (May 27, 2014). "The Real Origins of the Religious Right"POLITICO Magazine. Retrieved May 4, 2022.

Cited sources[edit]

Further reading[edit]

  • Bazinek, Leonore, "Schaeffer, Francis A. (1912-1984)", in Biographisch-Bibliographisches Kirchenlexikon Vol. 8, 1398–1405.
  • Bazinek, Leonore, "Das Problem der Erkenntnis von Wahrheit im Feld der Begegnung von pluralistischer und biblisch-christlicher Weltanschauung, Regensburg: Roderer, 1990.
  • Boa, Kenneth D., and Robert M. Bowman, Faith Has Its Reasons: An Integrative Approach to Defending Christianity, NAV Press, Colorado Springs, 2001.
  • Burson, Scott R. and Jerry L. Walls. C.S. Lewis and Francis Schaeffer: Lessons for a New Century from the Most Influential Apologists of Our Time. Leicester: InterVarsity Press, 1998.
  • Coward, Harold, Pluralism: The Challenge to World Religions, Orbis Books, Maryknoll, 1986.
  • Cunningham, Stuart, "Towards A Critique of Francis Schaeffer's Thought", Interchange, 24 (1978) pp. 205–21.
  • Dennis, Lane T. (ed) Francis A. Schaeffer: Portraits of the Man and His Work, Crossway, Westchester, 1986.
  • Follis, Bryan A., Truth With Love: Apologetics of Francis Schaeffer, Crossway, Wheaton, 2006.
  • Fowler, Robert Booth, A New Engagement: Evangelical Political Thought 1966–1976, William B. Eerdmans, Grand Rapids, 1982.
  • Garber, Stephen S. (Spring 2002). "Substantial healing, one more time"Knowing & Doing: 8–11, 19.
  • Hankins, Barry, Francis Schaeffer And the Shaping of Evangelical America, Wm. B. Eerdmans, Grand Rapids, 2008.
  • Hexham, Irving, "The Evangelical Response to the New Age", in Perspectives on the New Age, edited by James R. Lewis & J. Gordon Melt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Albany, New York, 1992, pp. 152–63.
  • Kubsch, Ron, ed. (2007), Wahrheit und Liebe: Was wir von Francis Schaeffer für die Gegenwart lernen können (in German), Bonn: VKW.
  • Morris, Thomas V., Francis Schaeffer's Apologetics: A Critique,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1987.
  • Parkhurst, Louis Gifford, Francis Schaeffer: The Man and His Message, Tyndale House, Wheaton, 1985.
  • ——— (1996), Francis & Edith Schaeffer, Minneapolis: Bethany House.
  • Ramsey, George W.,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Israel, SCM Press, London, 1982, pp. 107–15.
  • Roper, D. L., "A Sympathetic Criticism of Francis Schaeffer's Writings", Interchange, 41 (1987) pp. 41–55.
  • Ruegsegger, Ronald W, ed. (1986), Reflections on Francis Schaeffer, Grand Rapids: Zondervan.
  • Stadler, G Thomas (June 1989), "Renaissance Humanism: Francis Schaeffer Versus Some Contemporary Scholars", Fides et Historia2: 4–20.

External links[edit]



===

**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기독교적 고찰-

균형과 긴장의 공간 :: [심리학,상담학]

케노이스 2018.12.28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기독교적 고찰-
작가 모건 스콧 펙, 출판 열음사 발매 2007


스캇 펙 박사의 명저. 그리고 엄청나게 많이 팔린 저서.
우리의 인생은 '정신의 성숙' 을 이루기 위한 여정으로서 실패한 게 아니다. 이렇게 끝나 버린 게 아니다.
아직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함축적인 메시지만 이해하고 있어도 이 책은 상당한 통찰력을 제공해 줬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전반적으로 훌륭한 책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서 스캇 팩의 '인간의 내면 성찰' 능력 이라든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솜씨'는 역시 '스캇 팩' 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그가 얻게 된 '소중한 지식' 들이..
내겐 참 많이 공감이 되고,새롭게 배우거나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8년 전에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세계관 자체에서 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가 정의 내리는 '사랑'. 그가 주장하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 그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이 내겐 좀 위험해 보인다. 성경과 잘 매치가 안 된다고나 할까.(정확히 조사하진 못했지만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스캇 팩 박사님이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딱히 논란이 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사람의 정신을 다루는 이들이 범하기 쉬운 우를 잘 따라가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프로이트 등의 유물론자들의 사고가 은연 중에 깔리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입으로는 '하나님' 을 말하지만, 그 '단어'는 그저 하나의 term으로서 '하나님' 을 의미하는 것이지, 만유를 창조하시고 ,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시는 살아계신 '실존적 하나님' 을 의미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러한 '신식학' 을 경고한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은 8년 전에는 쉐퍼의 세계관을 많이 동조했었기에 이와 같이 추론했었지만, 지금 다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좀 더 관대한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좀 더 공부하고 이 분에 대해 논하고 싶다.

[8년 전에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부분들]

<아직도 가야 할 길> 외에도 다수의 저서를 남긴 , 훌륭한 기독교 의학자이자 영성
상담자로 알려져 있는 스캇 팩 박사님.
저는 아직 <아직도 가야할 길> , <영혼의 부정> 밖에 보지 않은 상태구요. 앞으로 더욱 부지런히 그의 저작들을 읽어 보려 합니다.(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진보가 없습니다.;)
참 ,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최근에 옥성호 집사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에서 심리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들을 우려하는 내용과 더불어 스캇 펙이 비판을 받았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적혀 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 이 집사님은 스캇 펙은 기독교인이 아닌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설명해 두고 있습니다.)
2권의 책만 읽은 상태에서 제 생각은 그는 훌륭한 심리학자 , 유망한 정신과 의사라는 칭호를 받을 만은 하겠지만 , '크리스천' 인지는 정말 모르겠다는 겁니다.
(지금에 와서는 옥성호 집사의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고 있고, 스캇 팩 박사가 나중에 크리스천으로 회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스캇펙의 고백>

나는 대체로 별 볼일 없는 학자일 뿐만 아니라 특히 성경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학생이란 점
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양육에 대한 두 번째 예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여태 껏
신약성서를 요한 계시록까지 읽어 본 일이 없다. 그리고 사도들의 서한에 대해서도 아는 바
가 없다. 더구나 구약성서는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했다.
나는 구약성서의 다니엘서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알고 있듯이
다니엘은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어떤 이유로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하느님의 은혜로 목숨을
구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 평생 다니엘서를 읽어 본 일도 없었
다.

어린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귀엽게 넘어가 주겠지만 ,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 기독교적 마인드를 지닌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이런 어린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것을 '정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 이렇게 '진리' 에 대한 열망이 없고 ,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 주장하는 영혼의 개념 , 내세의 개념 , 하나님에 대한 지식 등이 과연 바른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져 봤을 때 ,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진다.


2] <그가 말하는 심리학>

즉 신학과 심리학의 문제에 종속된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 두 문제가 분리되어 온 것은 실
상 허울 뿐이다. 나는 이미 생존적 , 정신적 고통을 심리적 , 영적 현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모든 논쟁을 종결시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독자들이 나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
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신학적인 차원과 심리학적인
차원에서 그 두 가지를 통합하는 노력을 경주해 보라는 것이다.

투철한 직업 정신은 인정해 주겠지만 , 이런 면에서 보면 심리학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심리학이 추구하는 '자기 발견' , '자아 사랑' , '긍정적 마인드' 등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기 부인' , '십자가 은혜' , '인간의 죄의 깊이' 등에 대한 개념 습득에 매우 큰 장애물이 됨을 고백해야 겠다. 분명 [베전2:9] 등에서 말하듯이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이라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는 존재임에 틀림 없지만 , 인간이 '자신의 죄의 본질' 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서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은 거의 100% 불가능하. 이건 '거듭난 이들' 의 수 많은 증언들이 크나큰 근거가 되어 줄 것이며 성경적으로도 이건 매우 정확한 진실이다. 하지만 , 스캇 펙 박사는 영혼과 정신을 동등한 개념으로 취급해 버림으로써 , 심리학과 신학도 함께 묶어 버릴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심리학'은 전반적으로 '신학'과 함께 '인간 이해'를 위한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 준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 그의 '진화론 적 사고' 가 큰 역할을 하는데 , 단순히 '진화론' 을 믿는다는 그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유신론자이면서도 진화론을 믿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 이 '진화론적 사고' 가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극히 일부만 언급해 보겠다.


3] <진화론 적 발언>

우리 뇌의 가운데 부분에 신경세포가 뭉쳐 있는 중추가 있는데 , 이 중추를 자극하면 우울증
이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중추에는 분노와 유포리아(행복감) 같은 특정의
감정을 만들어 내는 다른 중추들도 위치하고 있다. 이 각기 다른 신경중추들과 마찬가지로
우울 중추도 수천년 간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뇌 속에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정교하게 진화되어 왔다. 어떤 목적일까?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짝을 구하려는 성적 본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짝짓기를 통해 아이를 낳고 이리하여 종족의 보존을 이어 가려는 것으로 , 사랑에 빠져 일시적인 자아 영역의 붕괴를 일으키는 것은 내부의 성적 충동과 외부의 성적 자극 상황에 대한 인간 본능의 전형적인 반응 형태일뿐이라는 것이다.
다소 우스꽝 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유전자가 정신을 속이는 하나의 속임수로써 결국은 결혼이라는 덫에 걸리게 만든다. 이런 계략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성적인 충동이나 자극에 동성애적이거나 다른 요인-부모의 간섭 , 정신 질환 , 책임에 따른 갈등 또는 자기 훈련 등- 이 끼어 들어 결합을 방해하는 경우가 그 것이다. 반면에 이런 계략 , 즉 세상이 다 자기 것 같은 환상적이고 유아기적 결합과 퇴행이 없었다면 , 행복하든 불행하든 현재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공포감마저 드는 현실 때문에 결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았을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신화의 경우 , 그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아마도 그 신화에 지독한 거짓말이 필요한 이유는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결혼으로 향한 우리의 음모를 격려하고 또 정당하게 하여 인류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러한 고백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 '영적 본성' 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듯 하다. 크리스천이 아니다. 정말 심각하게 그에게 제안하고 싶은 건 , '성경' 을 읽어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사랑' 이 그저 '신화' 요 , '거짓말' 이 되어 버리다
니....후반부에 가면 그는 '낭만적 사랑' 은 '일종의 환상' 이긴 하지만 , 유용하기 때문에 '존속할 가치' 가있다고 말한다. 이게 바로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진화론적 사고' 에 흡수 당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종족보존' 을 취우선에 두는 비기독교적인 사고. 그리고그의 마음은 '물질주의' 에 찬성하지 않는다면서 , 그가 말하는 '성장해 나가는 영혼' 은 결국 , '진화해 나가는 정신' 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손으로 만질 수 없다뿐이지 , '눈으로는 보이는 듯한 육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 로 충만하게 짜여져 있다. 한 마디로 '말장난'이 많다는 것이다. 영혼을 인정하고 ,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입술로 고백하는 '하,나,님' , '영,혼' , '사,랑' 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도통 일치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쓸 당시 스캇 팩이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는 포인트를 감안해 준다면 너그러이 봐줄 수 있긴 합니다만, 기독교 서적에서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건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4] <사랑에 대하여>

사랑을 받는 것이 당신들의 목적이라면 그걸 성취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첫 번째 생의 목적이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라면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 인간 사회에서는 , 그리고 기존의 심리학에서는 적절한 상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의 영혼을 치료할 때 , 이런 식의 발언을 계속 고수한다면 , 그 영혼은 '하나님' 을 만날 수 없다. '죄의 깊이' 를 인지 하지 못한다면 , '십자가의 은혜' 는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가 구원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음을 가슴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힘을 자기의 신으로 삼는 '호세아' 가 말하는 부류의 사람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저와 같은 말을 하며 , "당신의 영혼의 성장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세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았답니다.." 라고 이야기 해 줄 때 , 이 모든 핵심적인 메세지에는 '나' 란 존재가 주인공이지 , '하나님' 은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오캄의 면도날 법칙에 의해 '하나님' 이라는 개념은
그냥 잘라서 없애 버리는 게 더 논리적이다. 굳이 '하나님' 을 끼워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의 참된 목적이란 오직 정신적 성장이나 인간의 발전입니다."

-> 이게 기독교에서,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자기 희생이란 잘못된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랑은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 이것은 자기 희생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확대인 것이다.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순수한 사랑은 자기를 채워 나가는 활동이다. 그것은 자신을 위축시키기 보다는 확대시키고 ,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한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과 같이 자기중심적이다. 여기에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자기 중심적이지 않다' 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문제가 사랑을 사랑 아닌 것으로부터 구분해 주지는 않는다. 그 구분은 행동의 목적에 있다. 진정한 사랑은 그 목적이 항상 정신적 성장이고 , 사랑이 아닐 때는 그 목적이 항상 다른 것에 있다.

-> 하나님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주장은 내 힘으로 저러한 궁극적 사랑을 성취해 나갈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그는 '공동 창조자' 라는 표현으로 신과 내가 함께 '공동 사역' 을 해 나간다고 말하지만 , 그의 마인드 속에는 '나는 곧 하나님이 된다' 라는 개념이 숨어 있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 '자신의 정신적 성장' 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이상 그의 주장은 '범신론' 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사랑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 라고 했다.

-> 그에게는 한 영혼의 구원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그는 이미 '기독교인' 이 아니다. 자신은 기독교인이 되고 싶겠지만 , 애석하게도 '잘못된 지식' 을 가지고 있기에 '기독교인' 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에 부합되는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정신과 영혼을 제대로 구분 못 한다면 프로이트 등의 트릭에 평균치 이상의 영향을 받아 버린 건 아닐까?

"아이가 셋 있는 서른 다섯 살의 부인이 있었다. 독재적이고 남을 무시하며 융통성이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한 그 부인은 날이 갈수록 남편에게 의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존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도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남편은 그들 관계의 본질을 변화시켜 보려는 부인의 모든 시도를 막았다. 하지만 그 부인은 용감하게 남편의 반대와 이웃의 비난을 무릅쓰고 남편과 이혼해 아이들을 데리고 홀로 지내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모험 덕에 그 부인은 자기 일생에 처음으로 자신의 주인이 된 듯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는 그 가련한 여인의 단호한 결정에 박수를 쳐야 마땅하지만 , 이 행동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인가?.. '나의 자아' , '나의 인생 여정' 에 큰 가치를 부여하다 보니 , 결국 '이제껏 감당해 본 적 없는 어려움' 앞에 쉽사리 도피해 버리는 나약한 영혼을 양산해 내는 꼴이 되어 버렸다. 두사람의 만남은 아버지가 개입하신 일이었으며 , 심지어 아이가 셋이나 있다. 3자가 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 힘들어도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그녀가 눈물로 하나님 아버지께 힘을 구하며 , 위로를 구할 때 하늘 아버지가 그녀를 더욱 강하고 지혜로운 여자로 세우시며 , 그 남편마저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을 터인데........
(그녀의 '고통' 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발언을 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 이게 성경적으로 맞는 경로인걸 어떻게 하겠는가? 비기독교인이면 할 말이 없지만 , 기독교인이 이런 지침을 조장한다는 건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남아나는 가정이 도대체 몇 가정 되겠는가?)

"어떤 정신 치료자들은 환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치료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오히려 환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치료자이며 성적인 욕구에 대한 이해심이 적어서 그럴 것이라고 여겨진다. 더욱 깊이 생각해서 환자의 정신적인 성장이 성적 관계를 가짐으로써 진전된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 나는 서슴지 않고 그런 관계를 가질 것이다.

->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정신의 성장' 으로 두다 보니 , 이런 끔찍한 결론 도출도 주저함 없이 하기에 이른다. 환자를 사랑하고, 포용해 주는 듯 한 느낌.... 참 따뜻한 사람...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칭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 크리스천은 아니다. 그건 인정하자.(심지어 도덕적으로도 낮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이들이 바로 모든 종교는 하나로! 를 외치며 '다원주의 신앙' 을 조장하는 것이다. '진리의 토대' 가 없다시피 하기에, 자신이 어떤 입장을 정하고 , 어떤 주장을 함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 또는 그 '기준' 이 너무 세속적이어서 , '진리' 에 위배된다.
그 외에도 기적적인 '질병의 치유' 대한 그의 발언. '범신론의 냄새' 가 다분히 느껴지는 글을 아무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태도. 때론 프로이트보다 융을 지지하면서 그가 말하는 '무의식' 의 개념을 거의 '신' 의 자리에 올려 놓는 그의 태도.

5] <무의식>

"사실 무의식은 모든 면에서 의식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현명하다"

라는 둥의 발언을 하고 , '집단 무의식' 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데 그 2가지 근거는 너무 빈약한 그대....

"우리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이 질문에 접근하더라도 ,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가정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탐구하다 보면 결국은 한 가지 무서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곧 진화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바로 진화시키는 힘의 원천이자 도착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은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말하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 스캇 펙은 꼭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나서 , 뒷 문장에서 한 발 물러선 말들을 하면서 안전망에 들어가는 경우가 참 많다. 이 발언은 '그리스도의 형상' 을 닮아가는 '은혜로 구원 받은 죄인들' 에 대한 이야기 보다'나도 곧 신이요!' 라는 범신론에 아주 가깝다. 단지 이 문장만 봐서 그렇다는 게 아니고 , 그가 하는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 앞으로 봐도 , 뒤로 봐도 '범신론' 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 그때야말로 "자, 일은 끝났어. 나는 목적을 이룬 거야" 라고 말하며 쉴 수는 절대로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지혜롭고 , 더욱 현명해지도록 밀고 끌어올려야 한다. 이 믿음을 따른다면 자기 향상과 영적 성장을 위한 끝 없는 노력을 죽는 순간까지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나님의 책임은 우리의 책임이다. 하나님이 된다는 가능성을 인간들이 끔찍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영혼의 개념.....그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내 힘" , "내 의" 를 신의 경지에 까지 올리려는 시도를 해 나가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 가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인간은 '하나님이 된다는 가능성' 을 끔찍해 한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적 마인드를 계속 깔고 봤을 때는 , '정말 성경을 안 본 사람이구나. 뭘 정말 모르는 구나'라고 밖에 말 못 하겠다.(스스로도 인정했다.)
또는 기독교인 뿐만 아니고 , 일반인들의 마음도 치유해 줘야 하기에 그 두 가지 세계관을 뒤 섞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비 논리적인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차라리 이 책을 썼을 당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껍질 뿐인 기독교식 포장은 안 했으면 더 고 퀄리티의 작품이 탄생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6] <게으름>

"게으름은 사랑의 반대말이다."

-> 이 개념 자체가 "나의 행동 , 나의 의" 를 극대화시키는 발언이다.

"나는 오랫동안 원죄라는 개념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부정해 왔다. 나는 섹스를 특별히 죄악시하지 않았다. 그 밖의 다양한 욕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종 맛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탐닉했고 그 결과 복통에 시달리곤 했지만 , 죄의식 따위가 주는 고통 때문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 미안하지만 , 그는 십자가의 놀라운 은헤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고집과 아집을 버리지 않는 이상은...... 자신이 느끼고 있다고 주장해도 그건 본질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할터....
"그는 창세기를 신화로 보고 있으며 아담과 하와의 잘못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문을 묻지 않은 게으름 때문이란다. 그래서 원죄가 있다면 그건 '게으름' 이라고 주장하는데 아주 황당한 주장이다.

"나는 앞에서 게으름이 바로 원죄이며 , 우리 속에 병든 자아의 형태로 존재하는 악마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기에 , 그 자리가 너무 공허하며 , 그러기에 그 분을 하나의 '인격체' , '실존' 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 은 '특정 대상' 이 아니고 , '불순종' 이라는 개념은 '특정대상' 에게 적용하는 것이기에 , 그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념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는 악이란 영적 성장을 촉진할 목적으로 자아를 확대하는 것을 회피하는 정치적 권력 행사-노골적이거나 은밀히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로 본다.

-> 그가 말하는 '영적' 은 성경이 말하는 '영적' 과 다르다. 그저 '육적인 정신의 성장' 을 촉진시키지 못하게 하는 개념들은 다 싸잡아서 '악' 이라고 정의 내린다.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 도 이 '악'과 밀접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태가 심각하다.


7] <그가 말하는 은총,은혜>

우리가 은총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장소는 바로 나 자신의 내부이다. 지금의 자기 자신보다 좀 더 현명해지고 싶다면 자신의 내부에서 길을 찾아라. 이 말은 곧 하나님과 인간이 마주 보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식과 무의식이 마주 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무의식이 바로 신이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다. 우리는 언제나 신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어제도 ,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충격적이네요.

"독자들이 무의식이 곧 신이라는 개념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결코 이단적인 개념이 아님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것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성령 또는 성신이라는 기독교적 개념과 근본적으로 같은 개념다."

-> 당신은 틀렸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설령 당신이 초자연적인 신의 음성을 실제로 들었다던 몇 번의 고백이 실제로 일어났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한 '기적' 의 영역을 어떻게든 물질 또는 정신의 영역으로 예속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 결국 성령님 마저 , '무의식' 이라는 감옥에 가둬버리는군요.

"나는 영적 성장의 궁극적 목표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데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 신이 아는 만큼 인간도 알게 되는 것이다."

-> 마틴 루터가 울고 가고 , 칼빈이 기가 막혀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형상을 닮아간다고 해서 , 창조자와 피조물 간의 '넘사벽' 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 매우 심각한 신학적 오류입니다.


8] <그가 생각하는 동물의 개념>

"내가 다른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영혼을 갖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들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떤 동물은 영혼이 있을 것이다."

-> C.S LEWIS 도 동물의 구원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 자신의 '희망 사항' 이 '비 성경적' 임을 잘 알고 그냥 '혹시 그러면 좋겠다' 정도로 이야기 했었는데 , 스캇 펙은 노골적이다. 진화론적 사고는 이러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그 기본 토양이 되어 준다.


9] <육체의 부활>

"나는 중도적 입장의 크리스천임에도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편이다. 내 생각에 이 교리는 육체와 영혼을 혼동하고 있다. 그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육체는 매체이다. 즉, 물질이다. 우리의 영혼은 혼이다. 그리고 혼은 육체와는 전적으로 다른 법칙을 따른다. 우리는 우리 육체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물질주의자들에게는 육체가 없는 어떤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상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욕을 먹는 이유는 , 그는 자신이 자신 있어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고 , 자신이 없어하는 '십자가' , '천국과 지옥' , '말세' , '은혜' 에 대한 개념들은 거의 언급하지 않아 버리는 특성이 있다.(아얘 알려고 하질 않는다). 스캇 펙도 '하나님의 상상의 초월성' 은 익히 잘 알고 있어서 능수능란하게 인용하며 쓰고 있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이 '부활' 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고 계시는지를 먼저 돌아봤어야 했다. 영혼과 혼의 개념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 왜 특정 인들이 '육체의 부활' 을 주장하는지 , 그 이유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물질주의' 에 물들어서 그런 걸까? ㅅ사실  그런 이들은 '부활' 자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나면 , 자신이 이렇게 글을 쓴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10]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나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다."
"영혼의 창조는 하나의 실험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들의 여러 실험이 처음에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예감과는 다른 결과를 낳는 것에 대해 이젠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실험을 실패한 실험이라 고 부른다. 비록 우리가 그 실패한 실험을 통해서 성공했을 때만큼 무엇인가를 얻을지라도 그 실험은 실패했다고 한다. 이런 실패한 실험들은 우리들에게 계획을 다시 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영혼의 창조에 관한 신비를 모두 제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결국 하나님의 '창조' 는 불완전했기에 , 실패의 구석이 있으며 이러이러한 연유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은 가 보다. 이 말을 들으면서 리처드 도킨스 , 버드런트 러셀 등은 덩실덩실 춤을 추겠지만 , 그는 하나님을 모른다. 접근하는 방법이 무신론자와 다를 바가 없다. '특정 현상' 을 보고 , '그 현상을 일으킨 존재' 에 대해 논증하고 있다. 하지만 , '현상을 일으킨 존재' 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 '그 특정 현상' 을 설명해 내는 게 기독교 아닌가? '믿음' 의 힘은 이 때 발휘되는 것이고 말이다..

또 충격적인 고백을 들어 보자.

"성인 사도 바울은 '죄악의 신비성' 을 '인간 악의 신비'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더욱 큰 신비는 인간의 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선에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될것이다. 나의 견해로는 보통의 인간들은 그냥 우연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점잖고 영웅적이라고 생각된다."

-> 이웃을 격려해 주고 , 높여 주는 용도로서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견해' 가 참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 이건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정의' 가 아니다. 그도 역시 '인간' 이기에 , '자신의 죄의 깊이' 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저 수건이 가려진 상태로는 '십자가' 가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 그 놀라운 은혜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며 , 그러기에 그에게 있어서 '삶의 최고 가치' 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심'[고전2:2] 에 없는 것이다. 그 선하심을 한 번만 맛 봐도 , 자신의 활동에 , 자신의 고백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될텐데.....
스캇 팩의 이 저서가 일반 심리학으로 분류되면 좀 더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워낙 기독교의 개념을 잘못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보니, 일반 심리학으로 넣기에도 애매하고, 기독교 심리학 저서로 보기에 는 아주 낮은 점수 밖에 줄 수 없는 저서입니다.

당혹스럽습니다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 옥성호 - 교보문고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 옥성호 - 교보문고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1
옥성호 저자(글)
부흥과개혁사 · 2007년 04월 10일
5.5
(10개의 리뷰)
평가된 감성태그가
없습니다

A4
사이즈 비교
210x297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사이즈 비교153x224단위 : mm

01 / 02
MD의 선택 소득공제
10% 10,800원 12,000원
적립/혜택
600P









작가정보

저자(글) 옥성호
인물정보
기독교인



지은이 옥성호는 크리스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20대 후반 어느 시점에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 자체를 끊었다. 그러나 가정적 환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교회 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며 겉으로는 기독교인으로 행세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6년 1월 로이드 존스 목사의 <교리 강좌 시리즈>를 읽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목차
감사의 말
추천의 글
저자 머리말
글을 열며

1. 심리학은 과학인가, 종교인가
2. 기독교 심리학은 존재하는가
3. 왜 심리학은 반기독교적인가
4.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
5. 성경은 참으로 충분한가

글을 닫으며
부록
참고 문헌
접기

기본정보

ISBN 9788960920088
발행(출시)일자 2007년 04월 10일
쪽수 349쪽
크기
153 * 224 mm판형알림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Klover 리뷰 (10)

전체 리뷰


좋아요 순
종이책je****|2007.06.15|신고/차단

도서명 :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저자 : 옥성호 출판사 : 부흥과 개혁사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한다. 대학원에서 '청소년지도'를 공부하면서 상담심리학, 가족치료, 집단상담 등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많은 상담이론과 기법으로 사람들의 정서적, 심리적 상처를 진단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아주 깊은 곳 근본적인 치유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상담기법들이 종교적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교수들마저도 전혀 거리낌 없이 뉴에이지적 사상에 깊이 물든 상담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최근 출간되어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교회 안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심리학적 요소들을 지적하고 그로 인해 어떻게 기독교적 정신이 훼손되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심리학은 본질적으로 반기독교적이다. 심리학의 중심에는 프로이드와 융의 사상이 있는데, 이들의 사상은 철저히 반기독교적이다. 게다가 심리학은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이다. 따라서 그 기초 위에 성경구절 몇개 덧붙인다고 해서 기독교적 심리학이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프로이드나 스키너, 융과 같은 심리학자들의 반기독교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많은 크리스천 상담가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키는 심리학의 많은 유익한 것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응용하여 좀 더 신앙적, 인격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 심리학의 관점이다. 더 나아가 내면 깊은 곳에 뿌리박혀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정서적, 관계적 문제와 상처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내적치유'라고 할 수 있겠다.저자 옥성호는 성경말씀 자체보다 이러한 '심리학적 프로그램'에 더 의존하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실랄하게 꼬집고 있다. 그 이상으로 심리학 자체가 기독교 내부로 스며드는 것 자체를 경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심리학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게리 콜린스나 우리나라 주서택 목사등의 내적치유 프로그램도 부분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찬,반의 논리가 다소 뜨겁게 전개되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기독교내부로 심리학의 요소가 스며들고 있고 성경말씀 자체보다 이러한 프로그램이나 기법들이 더 설득력있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크리스천들이 균형있는 시각으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사람의 내적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으며 때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하였고, 용기있게 문제제기한 면은 있으나, 심리학의 비기독교적인 측면을 설득하기 위하여 약간 무리한 논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며, '영성'에 대해서 좀 더 많이 경험하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교회내에 깊숙히 스며들어 큰 영향을 미치는 심리학의 가면에 대해서 잘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폐해로 자기사랑, 긍정적 사고방식, 성공의 법칙 이렇게 세가지를 들고 있다. 이것을 가면이라 부르는 이유는, 교회 내에서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되어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그중에서도 '긍정적 사고 방식'에 가장 많이 공감할 수 있었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100만부 이상 팔린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을 비롯한 긍정적 사고방식 전파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긍정적 사고를 갖는 것이 나쁠리야 없다. 문제는 긍정적 사고를 하면서 믿는대로 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믿음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주장과 같다. 또한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어 단련시키기도 하시는데,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고난을 겪는 사람은 믿음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편리할대로 복음을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다.책으 후반부에는 조엘 오스틴이 래리 킹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내용이 실려있는데, 그 부분을 읽다보면 오스틴이 과연 진정한 크리스천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는 3부작으로 심리학 편에 이어 엔터테인먼트와 마켓팅 편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그 후속편이 더 기대가 된다.부디 나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또한 전심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랑하기를 소망해본다.
접기
3답글 0
종이책me******|2008.05.22|신고/차단

[북멘토] 오래동안 망설이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책을 읽어 보고서 내용을 다 다루고 싶지만 난 먼저 왜 이런책이 기독교에 대해서 지금 변혁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성적으로 판단 기준이 연약한, 젊은이들에게 상술을 가장한 도서가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맞추어 보았다. 책 핵심 내용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힘에 대한 내용들을 보면서 이해가 안되는 점을 발견하여 본다. 그러나 이 책은 부분적으로 흐름이 끊어지는 짜깁기 된 내용전개와 그리고 열악한 출판사의 작업이 옥에 티로 도처에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점은 본문에 나오는 긍정의 힘(조엘오스틴 지음)에 대한 녹취된 내용을 다룬 것들은 과연 저작권 문제에 충분히 조엘 오스틴 목사측에 허락을 받았는지 궁금하면서 , 오히려 이책을 쓴 옥성호 집사님과 함께 제가 아는 미국에 많은 지인들이 오히려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의 목회적 방식에 대해서 비판하는 분들도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감추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들추어 낸다. 또한 이책이 그동안에 건강한 상담학을 전공한 이관직 교수님 같은 분들에 인격과 학문성까지도 평범한 신앙인이 지나칠 정도로 그분에 사랑하는 마음에 권고 내용을 무시하고서 책이 다루어 졌다는 것이다. 부흥과 개혁사 출판사도 마케팅을 포장한 것을 보면 책에다 주고 받은 메일을 올려 놓았을까? 그런 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이후에 2,3권에서 다루어질 책에 내용에 대한 신선미를 출판사 측에서 오히려 추락시킨 인본주의적 행위라고 볼수 있다. 옥한흠 목사님 아들이라고 꼭 들어가야 했을까? 목회자이면서 한국교회 부흥과 개혁을 외친 분이 혹여 근본주의 신학적인 잣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것이 아닐런지, 합리화 시킬수 없으나 긍정의 힘에 대해서 비평하였던 필자도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번영의 신학(긍정의 힘 작가, 로버트 슐러등)이 한국교회와 강단과 개인의 신앙에 침투하는 현실을 경계해본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고 이중표목사님 같은 별세신학론을 외치면서 , 생애를 모세와 같이 잘 마무리하며, 청지기로서 생애를 잘 정리한 종이 한국교회에는 몇분이나 있는가? 이런 모든 한국교회 상황들을 충분히 연구하면서 본서가 다루어 졌다면 어떨까 하는 심정으로 이 책 부족한 기독교 중에서 "심리학에 물든 기독교"에 대해서 논해 보기로 한다. 옥성호 집사가 출판한 [부족한 기독교 / 부흥과 개혁사간 ] 책은 교회안에 파고든 심리학을 사용한 목회 유린에 대한 일침이며 하나님없이 인간문제를 풀려는 고민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파고들어 자리잡은 것에 대한 경계를 세우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대형교회를 담임하시는 목회자의 자제로서 지근거리에서 고통스러워 하며 사색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누가 만일 이 책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가지고 비평하려면 그의 고뇌에 못지 않은 또 다른 고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책의 문제점을 드러내려면 또다른 종류의 심리학적 잣대나 구구한 변론이 아닌 성경신학적 문제점[옥성호씨의 기독교 세계관이 건강한 세계관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접근해야 할것이다. 옥성호씨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적지않게 많이 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가 개혁주의적인 조직신학이나 기독교 세계관을 제대로 연구하였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교회에 심리학의 침투는 차제하고라도 제대로 된 신학이나 세계관 없이 우리손에 들려진 성경만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할 때에는 지극히 위험한 독소가 거기 또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약을 제조할 때 세균을 이용한 백신을 제조하여 투약함으로서 면역을 증가 시키기도 하지만 그 세균에 감염되어 죽기도 하는 것을 보게된다. 독이 약이 되기도 하고 약이 독이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것 처럼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불변의 진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단은 성경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집단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성경해석이 인간존재를 넘어서서 이루어 지는 일이 아니기에 신학적 미완성이나 계시사상을 드러내는 일의 불완전함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신학연구 과정이 생략되거나 수많은 계시 해석자들의 산물인 성경주석과 기독교 세계관 이해 없는 독단적인 오직 성경의 고집은 설득되기를 포기한 이단들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들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그렇고, 신천지 00 성전 이단이 그렇다. 요즈음 성경 점쟁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성경구절을 가감없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자적 해석과 주문 암기식으로 성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나는 이전에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동역을 시도했다가 가슴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하였다. 또한 내 친구 목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본다. 그에 동기인 정00 [96년 당시 00대 교육학과 동기]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묵상하고 자칭 구원의 완성자라고 하며 메시아를 지칭하는 '이0희[신0지 교주]'의 제자가 되어 지금 부산지역 신천지의 책임자가 되지 않았는가? 친구 목사는 1992년 그분의 집을 방문하였던 바 있다. 그때그는 이만희의 책을 연구하며 책을 다른이들이 보이기 원치 않았는지 책을 뒤집어 꼽아놓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진리를 추구하는 이에게 그런 당당함이 없었을까? 어떤이들은 성경을 많이 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성경많이 읽은 성경다독 신비주의자 앞에서는 꼼짝없이 묶여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문제가 해결이 안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것이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둘다 놓칠수 없는 것이다. 성경적 세계관이 정확히 세워지려면 신학을 반드시 해야 한다. 온전한 교회생활을 통하여서도 건강한 신앙을 실천 할 수 있는 신학의 테두리는 세워 질 것이다. 그러나 치열하고도 피흘림이 없는 신학 과정이 없이 지도자로 나설때 그가 가진 기독교 세계관으로는 거의 확실하게 이설과 이단을 만들 수 밖에 없다. 나는 옥성호 집사의 책에서 또 다른 무서움을 보았다. 한국교회가 영적 침체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이땅을 책임지지 못한채 사회적 지탄을 받아온 문제가 어디있을까? 그것이 심리학의 해악으로 부터일까? 하나님의 진리를 교리와 신학의 카테고리에 얽어매어 이 세상을 내집이 아니라고 외치는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반성은 필요 없을까? 장차 망할 이 세상에 살면서 마치 자신은 하늘에서 출장나온 사람처럼 신령하게 보일찌라도 우리는 이 땅에 발붙히고 살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의와 타협하며 죄와 협력하지 않고 세운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오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나라와 전혀 관계가 없을까? 우리는 통전적 안목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세상과 세속을 구별하지 못한채 교회만의 천국을 외쳤던 지난날을 반성한 적은 있는가? 나는 신학 만능이나 교리 만능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날에 이 땅의 기독교인들이 추구해 왔던 세계관이 건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할 수 있는 것보다 할수 없는 것이 머리속에 가득 차 죄책감과 얽매임만 더욱 심어주는 극단주의 신앙의 오류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예수 믿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많다. 모든인간은 타락의 결과 유전적으로 계속되는 죄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전적 무능력의 존재가 되었다. 선한것을 도모할수도 없게 되었다. 우리는 벌레와 티끌이 되었다. 존재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상황적으로도 우리는 죄인 중에 괴수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 예수를 외통수로 만나면 그 순간부터 죄인중에 괴수가 된다. 다 맞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끝인가? 괴수그 이상은 없는가? 예수를 믿으면 괴수에서 거룩한 성도가 된다.상황적으로는 여전히 죄의 영향력을 100%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함과 그분의 탄식으로 인해 거룩과 성화를 향하여 행진하는 신령한 성도가 된다. 도덕보다 기준이 높은 성결의 사람이 되어 인간에게 본래 부여 하였던 하나님스러운 거룩한 성품이 회복된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죄짓는일 빼고는 무슨일이든지 할수 있는 거룩한 자유와 진리의 가운데를 걸을수 있는 자유인이 된다. 이것이 어찌 심리학이며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매도당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한다.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주안에서, 주님의 능력안에서 그렇게 될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한다. 그 위대함이 구 훌륭함이 그 시대의 타락한 시대정신과 세상에 진리의 외침이 되고 있는가? 진리의 깃발이 되고 있는가? 그 당대를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위대한 주님의 사상인가? 소위 진검승부는 일어나고 있다.지금도 어느 한 곳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의 개혁과 부흥의 불길이 이 땅에 참 진리의 진검승부를 한판 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예수 패밀리인 성도들이 분연히 일어나 지성과 정서 그리고 몸에 밴 진리를 구현하는 삶을 통하여 이 땅에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하는 거룩한 일이 여기서 부터 일어날 것이다. 부족한 기독교라는 책에 나타난 비성경적 요소를 찾아내는 일은 목회자들이 할 일이다. 심리학을 비판하다가 하나님의 진리를 비판해서는 안된다. 만일 목회자의 입장에서 심리학을 변호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옥성호 집사의 책의 자기 사랑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100% 부정하는 입장은 성경적으로 50%정도만 맞는다고 볼수 밖에 없다. 자기사랑의 반대는 무엇인가? 자기 부정이다. 자기 부정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자기의 존재를 부정할수 없다. 자기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부정할수 없다. 거룩한 성령에 이끌려 살려는 열정을 부인할수 없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자기 부정은 죄와 세속성을 향하는 죄된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보양해야 한다. 자기 심리와 그 상태도 복음과 성령으로 잘돌봐야 한다. 성경적 심리학까지 부정하면 어찌하자는 말인가? 이 건강한 자기 사랑이 성경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자기를 보양하는것이 예수님이 교회를 보양하는 것처럼 self ministry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판적 책읽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비판적 칼날을 드리댄다면 이는 독서철폐를 주장하는 단순주장이 될 것이다. 성경 지상주의는 기름부으심이 있는 책들 조차도 읽는 일에 소극적이게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비평적 책읽기도 거부감을 갖게 함으로서 교회가 다시금 근본주의로 돌아가게 하는 역 부흥의 현상을 부채질 할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성도들이 제발 책을 읽기를 권하고 있다. 성경을 붙잡고 있으면 천국에 간사람처럼 이땅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변질되가는 이땅의 기독교 인들에게 권한다. 제발 책을 읽자고..... 우리는 성경을 읽어서 하나님을 변화 시키거나 성경을 변화 시키려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을 변화 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무슨생각을 하며 무슨 일을 도모하는지 알아야 할 것아닌가? 심리학의 동향도 알아야 하고 철학의 동향도 알아야 할 것이다? 경영과 마케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할것아닌가? 상대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씨름판에서 삿바와 씨름하는가? 상대를 알아야 나를 훈련해갈수 있는 것 아닌가? 옥집사님의 지나친 근본주의 잣대로 글을 전개하면서 쓸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역사에 사랑의 교회와 기성 교인들에 모습을 통해서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부족한 기독교는 넉넉하고 풍성할 것이다. 바라기는 다음에 나오는 책은 더욱 균형이 있는 책이 나오길 바래본다. [한국양서보급중앙회 북멘토&북코치클럽] http://blog.naver.com/mentorpark21
접기
2답글 0
종이책ke*****|2011.02.27|신고/차단

우선 옥성호 씨의 오류는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1.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을 개신교 근본주의에 의해 선과 악으로 나누었다는 점
(상식적으로 세계 3대 기독교는 가톨릭, 동방정교, 개신교 순이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의 칼뱅의 개신교는 유대자본과(엄밀히 말하면 고대 가나안인과 바벨론에서 비롯된
짝퉁유대 세계정부) 결탁하여 자본주의를 만들었다는 점을 간과했다.
세계정부가 종교로 택한 유대교와 칼뱅의 청교도의 공통점은 자본주의의 발판을 만드는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선민사상과 예정설, 즉 야훼께 지정선택된 자들만 구원얻는다는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중세 가톨릭보다 더 폐쇄적일 정도의 교리를 갖고 출발했다.

2. 심리학 도입에 대해선 비약적인 부분이 다분했다. 개신교 근본주의 특유의 이분법(이원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노만 빈센트 필로부터 시작된 적극적 사고로부터 현재의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나 각종 마케팅 대형교회에 대한
지적은 설득력이 있으나 초대 기독교 위주의 시선으로 좀 더 거시적이고 세계사적인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은사주의나 각종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사례들을 깔아 뭉갬으로서 개신교 근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옥성호 씨는 한국 대형교회의 대표적인 패악성, 즉 물량주의, 십일조, 목사 중심의 제사장주의와 권위주의,
자본주의와 청교도와의 관계, 강남 중심의 대형교회 문제, 설교의 유무의미성 등을 절대 거론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시무하던 사랑의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문제점
(강해설교, 제자훈련을 통한 목사 중심의 중앙집중식 기득권적 교회, 강남의 7,80년대식 선구자적 대형교회 문제) 들을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또한 개신교 근본주의적 배타성을 마틴 로이드 존스 사례를 들먹이면서
교리 중심의 원론적 기독교라고 과대 포장하는 기만술을 보여주는 헛점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설교라는 것이 정녕 필요하고 목사라는 직업이 정녕 필요한가에 대해서 의심을 가진 적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즉 기독교 비판에 있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거시적이고 중립적인 모습을 전혀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많은 모순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칼뱅식 지정 선민사상을 기반으로 한 개신교(특히 장로교) 근본주의의 틀에서 절대 벗어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버지를 잘 만나서(?) 생긴 자연적인 오류일 것이다. 그가 만약에 비장로교 집안의 중산층 이하 집안에서 성장했다면???

즉 칼뱅식 선민사상인 소명설 중심의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여타 사람들은 어찌되든 관계없이) 지침서로만 볼수 있는 저서였습니다.


--------------------------------------------------------------



참고 : 현 개신교의 유래와 오류 : 자본+적극적 사고+다원 신비주의 기독교를 개독교화시킨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자본에 의한 잠식과 인간변혁 프로그램에 의한 잠식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1. 자본에 의한 잠식
과거 중세시대에는 로마제국이나 교황청의 정치화와 유럽의 십자군 등 제국주의를 통하여 기독교를 잠식해 왔다면
종교개혁 이후에는 17세기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 과정에서 자본에 의하여 잠식되었다고 봅니다.
즉 자본주의는 세계정부와 청교도의 합작품인 셈입니다.

유럽은 중세 암흑기 이후 크게 독일의 종교개혁에 의한 신구교간 30년전쟁, 그리고 영국의 '명예혁명' 사건이 터집니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 이후,
대부분의 유대인은 신교의 해방구였던 네덜란드에서 둥지를 틀고 암스테르담을 거점으로 은행을 만들면서 경제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이들은 앞서 스페인에서 거주하다가 쫒겨나면서 그 자본력이 네덜란드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네덜란드는 유대 자본을 바탕으로 무역에 뛰어들면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1602년에는 세계 최초로 증권거래소를 만들어서 투기를 시작했습니다.
30년전쟁은 1600년대 초반 독일의 신구교간 싸움에서 일어났고 그 후 독일 인구의 2/3가 줄어듭니다.그당시 프랑스는 가톨릭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와 적대적이어서 신교에 합세할 정도로 기나긴 싸움이었습니다.그동안 유대인을 괴롭혀왔던 신구교인들은 이 싸움으로 인해 유대인들의 고리대금 전쟁자금과 용병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미 칼뱅은 청부론에 입각하여 유대인의 5%이자율 한도 내에서 대부업을 허용했습니다.그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서 독일은 신구교의 종교자유를 허락하고
이 종교자유를 원인으로 유대인은 본격적 득세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영국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암투가 있었으며 그 와중에 크롬웰은 의회파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힘을 입어구테타에 성공하여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청교도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네덜란드 유대인들의 입국을 허용하면서 이들은 영국에서 본격적 득세를 합니다.
즉 영란은행을 설립하여 영국 화폐를 주조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크롬웰의 철권정치에 신물이 난 영국백성들은 크롬웰이 죽자 찰스 2세, 또 그 동생 제임스 2세가 왕당파의 부활을 맞이했으나
왕의 사위 윌리엄3세와 의회파의 합작으로 권리장전과 명예혁명이 일어났습니다.그는 유대 자본의 후원 하에 영국왕이 되었고 그 답례로 영국 중앙은행을 유대인에게 넘겨줍니다.결국 유대인은 영국 화폐제조와 중앙은행을 장악하게 되는 것입니다.자본주의 역사는 유대 자본과 청교도 의회파들의 공동 합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2. 인간변혁 프로그램에 의한 잠식
세계정부의 케네디 암살 사후 린든 존슨은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였는데,이미 세계정부는 '질질 끄는 베트남전'을 기획하였고반면에 반전운동을 기획하였습니다.이간질은 세계정부의 주특기요 위선은 이들의 대표적 전술입니다.마약이라는 매개체는 이미 과거 로스차일드 가문과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조부 등을 비롯한구미 상인들이 중국에 아편을 가지고 들어와 아편전쟁이라는 과거 중국 점령의 일환으로 사용하였으며, 베트남전의 배후에 CIA 등 세계정부 산하 정보기관이 미국인 가축화를 위해 많이 써먹던 방법입니다.베트남전은 한국전쟁처럼 냉전 기획의 일환으로 사용되었지만
당시 골든트라이앵글(황금의 삼각지대)인 라오스,태국,미얀마의 삼림지대로부터미국 국내로 마약을 가져오기 위한 CIA의 기민한 정보전도 작용했습니다.

이 때부터 반전운동과 함께 마약, 히피문화, 비틀즈로부터 이어지는 록큰롤, 점성술, UFO, 3S정책,
채널링 혹은 신지학, 아쉬케나짐 세계정부에 의한 헐리웃산업 등의 뉴에이지 문화혁명과여러 사상들이 대중에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문란한 성생활, 낙태, 총기난사사건, 표현의 자유가 유행되기 시작했습니다.특히 기독교에는 기독교 분열 시스템인 타비스톡 연구소의 '적극적 사고'와 함께 힌두이즘 계급적 체념정신과 환생설이 불교와 함께 왜곡 범벅되여 각종 신비주의와 '인간변혁 프로그램' 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이들은 차후의 시대는 물병자리 시대이므로 그 시대에 맞게 모든 것을 변혁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과거 아인쉬타인의 양자물리학을 기발하게 응용하여 기독교에 도입시켜 야훼가 주체가 아닌 '나'가 주체, '나를 중심으로 끌어당김'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짐'등의 마약의 효과가 있는 인간변혁 프로그램이 목회에 도입되면서

후에 대형교회라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형교회라고 해서 나쁜 것인가? 시각에 따라서 달라질수 있다고 봅니다.다만 대형교회의 근원적 원류를 파악해 보면 교리니 사상이니를 떠나서 궁극적으로 물량, 돈이 주체인 것으로써 시작부터 잘못된 체제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기한 긍정주의, 낙관주의는 잘만 이용하면 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세계정부의 밀턴프리드먼식 화폐주의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 시점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독이 되는게 다반사입니다. 애초의 세계정부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 박정희 시대에 '하면 된다'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 적합한 구조였고 신자유주의가 아직 한반도에 뿌리내리지 않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무개나 영력이나 카리스마(은사)라고는 전무하면서도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둥 남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국 청교도 혁명 자체가 브루주아지 즉 자본가와 의회파에 의한 혁명이며세계정부가 합작한 것이기에 자본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였으므로 십일조나 물량주의, 건물지상주의는 자연스럽게 확산되었습니다.
계몽주의의 산물이라며 왕정과 귀족 몰아낸 민중 혁명이라고 호도하는 무식하기 이를데 없었던 프랑스혁명 역시
근원은 세계정부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시민 자본가인 브루주아지들이 주체가 된 혁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잠식효과가 현재 기독교에서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을까요?
미국 최초 대형교회는 로버트 슐러의 수정교회이며 현재 수정교회는 미국의 대형교회 부자세습의 원조격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에는 두가지 대형교회 유형으로

하나는
노만 빈센트 필 --> 로버트 슐러 --> 빌리 그래함으로 이어지는 무분별한 '적극적 사고방식'을 유용하게 써먹은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 유형으로서 현재까지 사기꾼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류로 명맥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은 로버터 슐러에게 이어졌는데실제로 필은 죽은 자의 혼령과 대화를 나누는 신비주의 목사였습니다.그의 자서전을 보면 실제 그의 부모나 죽은 그의 동생의 혼령과 대화를 나누는장면이 그려져 있으나 그의 귀신론을 한국 목회에 적용한다면 문제될게 뻔하므로한국 대형교회의 그의 제자목사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된 것입니다.한국교회는 귀신얘기만 나오면 뻘쩍 뛰는데 귀신 얘기하면 이단 운운할께 뻔하므로그들의 관심은 영력보다는 오직 물량주의에만 쏠려있기 때문입니다.

빌리 그래함 역시 힌두교와 불교에 심취했으며대표적인 힌두이즘식 신비주의 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기도 중에 흔히 말하는 전생퇴행이나 최면치료를 많이 행해왔으나실제 목회에서는 적극적 사고와 물량주의 기법에만 천착하며 대형교회 기법으로대중을 장악한 케이스입니다.
우둔한 한국교회는 귀신론이니 신비주의 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이단낙인 찍으려 하는과거 선교사들의 이상한 가르침에서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으로 한국의 성황당식 기복신앙을 비하시켜 버림 셈입니다.물론 말도 안되는 전생퇴행이나 UFO 등은 구분할줄 알아야겠지만 초대교회는 애초에영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사와 이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야훼로부터 내려오는 은사주의와 그렇지 않은 다원 신비주의를 구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문제는 이들이 야훼의 영력을 뒤로 한체 적극적사고와 물량주의만을 도입했다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기독교 근본주의에서는 이단으로 낙인찍힌 김기동 성락교회의 귀신론으로 유명한 '베뢰아'라는 교단이었습니다.이 베뢰아로부터 한국의 대형교회 중 반 이상은 베뢰아 제자들이 목사가 되어이루어진 것입니다.사실 기독 근본주의자들이 귀신론을 들어서 이 교단을 매도하지만 귀신론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나 사적으로 다른 교리를 집어넣은 것 중에서 문제될 것들이 다분합니다.

한국 대형교회의 원조라 하면 지금은 신앙촌으로 전락한 박태선의 마포전도관인데,1950년대말 3만명이나 모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능력은 탁월했으나 이를 끌고 나갈 교리를 만들지 못하여 신앙촌 간장공장으로 전락한 것입니다.대체로 대형교회의 원조는 기독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단출신들입니다.게 중 베뢰아 성락교회의 김기동 목사가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는데
명성교회 김삼환, 주안교회 나겸일, 온누리교회 하용조, 연세중앙교회 윤석전,대전중문교회 장경동, 예루살렘교회 이초석 목사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김기동 목사의 영력은 출중하여 멀쩡한 목사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귀신을 뽑아낼 정도였다 합니다.야훼의 영력이건 귀신의 영력이건 자신의 영력이건 영력을 개발하면 인간은 얼마든지기적과 이사를 행할수 있습니다.
최근 일산 한소망교회 유영모 목사나 신길교회의 이신웅 목사, 과천 하베스트샬롬교회 등은 부흥회 중에 이빨을 금니빨로 둔갑시키거나 금가루가 내리게 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야훼의 능력임은 맞습니다.
이것은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각이 극과 극일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세계정부의 기독교 지배로 인하여 모든 야훼의 능력을 목사들을 통해 대형교회와 물량주의로 개독교화시켰음에 있습니다.
이들의 한사코 공통된 특징은 궁극적으로 또는 노골적으로 돈과 물량을 밝힌다는 것입니다.
박수무당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작금의
대형교회라 일컬어지는 직접적 근원은 대체로 노만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와김기동 목사의 제자들로 인한,
두 갈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독교라고 해서 정말 못된 것일까요?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잘못된 면만 부각시켜 목사들이 이용해 먹다 보니부정적으로 각인된 것입니다.

사실 예수 사후 313년 로마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이전까지의 초대 기독교의 공동체는 은사주의였습니다. 즉 공동체 내에서 물량주의를 차단하고 십일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연보라는 형식을 사용했고,다락방 같은 곳에서 각종 기사와 이적이 끊이지 않은 형태의 순전한 기독교였습니다.현 기독 근본주의자들이 은사주의를 이단이라 비난하면서성경 원리주의에만 사람들을 옭아매어 권위주의 제사장 중심으로 기득권자들만의 사교장으로서만 작동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전도를 도대체 왜 하는 건가요? 전도는 금지해야 합니다. 성서에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말씀 하나 가지고 전도라는 방식을 이용했으나모두 불순한 목적이었고 잘못된 오용 투성이었습니다.
성경 문자주의와 원리주의가 낳은 수많은 불량품 중 하나입니다. 불량품은 안하면 됩니다.
가톨릭 전도의 근원격인 예수회조차도 유럽 제국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의 앞잡이가 실체였습니다.모세 5경을 토라로 제시한 유대교의 탁월한 점은 물론 선민사상이라는 폐쇄성 때문이기는 하지만절대 전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따라서 유대교는 그다지 비난받지 않는 반면 오히려 교육적으로 권장되는 측면이 있습니다.전도하면서 노상방뇨 버러지 취급당하는 것이 과연 청교도 정신일까요?

로마 국교 이후 이들이 순수 은사주의 형태로서 유지를 시켜왔다면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을 잘 발전시켜세계정부의 대 인류 붕괴정책에 잘 맞설수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중세까지는 로마나 유럽 중심 제국주의의 일환으로, 근대 종교개혁 이후에는 자본주의의 일환으로,현재는 은사주의에 각종 인간변혁 프로그램과 성장 위주의 무분별한 적극적 사고,돈을 중심으로 한 물량주의만를 도입시켜 인류에게도 버림받고 세계정부에도 버림받는 개독교로 성장시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저 무지몽매한 기독교 비난자(비판이 아닌 집단최면적 비난)들 조차도적극적 긍정적 사고, 인생뭐있어 류의 낙관 낙천주의자들 투성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계정부의 인간가축화 전략 자체가,
애초에 상기한 인간변혁 프로그램에 의해 무뇌화시킨 다음에 서서히 서서히 착고를 채우는 형식입니다.
고로 이들 낙관주의자들은 공부나 분석을 할 필요없이 인간변혁 프로그램에만 몰두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쓰면 꼭두각시에 불과한 역사적 독재자나 지도자, 대통령들처럼
정신없이 우왕좌왕 돌팔매질 당하며 막판에 쑈를 벌일 필요없이
커튼 뒤의 세계정부 지도자들은 뒷짐지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각국의 백성들을 농락할수 있습니다.


또한
기독 근본주의자들은 다원 긍정주의로 변형된 복음주의적 대형교회나 은사주의를 비난한답시고
마틴 로이드 존스 들먹이며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중생들에게 제자훈련, 강해설교를 강조하여 옭아매면서
교회를 영력이 없는 권위주의 중앙집권체제 하에서 기득권들만의 사교장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뒤로는 자본을 그러모으면서 과거 중세 가톨릭 식의 교리와 형식 중심의 권력집중과 배타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세계정부의 당수인 존 록펠러를 비롯하여 노만 빈센트 필, 로버트 슐러, 빌리 그래함처럼
마틴 로이드 존스 역시 세계정부가 사주한 인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대부분의 교회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부분 지역적 기득권 지역인 강남 3구에 밀집해 있습니다.
장로교나 침례교로 탈바꿈하여 상기 1번의 세계정부와 청교도의 합작품인 자본에 의한 잠식을 철처히 따르는 종교라 하겠습니다.

유대교나 애초의 칼뱅식 장로교의 공통점은 청부사상이요 선민사상이나 예정설로 인한 배타성입니다.
즉 지정 선택된 자만 구원얻는다는 논리입니다.
칼뱅이 기독교를 유대교와 같은 청부사상의 반열에 올린 것은 업적이라 할 만 하나,선민사상과 별다름없는 예정설로 인해 가식 위선적인 경건주의로 중생들을 중세 가톨릭보다 더 율법주의적으로 옭아매고
예수의 복음의 핵심인 전인류 구원교리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들은 종교통합을 무분별하게 비난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종교통합과 종교일치는 천지의 차이입니다.
무분별한 종교통합 다원주의는 최악이라면 날카로우면서도 포용적인 종교일치는 최선입니다.
게다가
대형교회를 비판한답시고 유럽식 좌파 변증신학 한다는 자들은
한국 특유의 어용좌파(친북이나 친어용민주당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변증 철학들은 잘도 끌어대는데 야훼로부터 내려오는 은사주의는 아예 내리깔아 버립니다.
유물사관에만 집착함으로 영력의 기독교를 그리스 철학식 인본주의 종교로 전락시켰습니다.
세계정부가 좌파 우파를 이용해 정치후진국을 잠식해 간다는 점에서는 이들이 제일 한심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정용섭, 조헌정 목사나 한복입고 전통사물극으로 목회를 한다는 사기꾼등 다방면입니다.

세계정부는 이렇듯 기만술에 능하고 선동적이고 위선적입니다.이것이 바로 기독교 분열시스템, 궁극의 인류 분열시스템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이미 우리는 그들의 인간 가축화로 인하여 동물농장에서 살고 있습니다.포탈, 블로그 시스템에 접속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물론 이용해서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단일시스템 구조입니다. 몸에 칩 박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닌것이 이미 베리칩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단지 갖고 다니는게 불편하냐 아니냐에 따라 어찌 될지 모를 일일 뿐입니다.언론과 대중성이라는 세계정부의 매트릭스 시스템 속에서 로마 기독교 이후 그간 은밀하게 명맥을 유지해 온 소수의 훌륭한 은사주의 기독교 시스템이나 각종 훌륭한 영적 신비주의조차 사라져가는 대신공장에서 찍어내듯 대중에 입맛에 맞는 가시적이고 공학적인 시스템들과 짜맞춰진 인간모양새들과 복합적이지 않은 획일화된 인간형만 성장 발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 세계정부의 미국인 가축화로 인해 단순 무식해진 미국의 국민성이
현재 전세계에 얼마나 파급되어졌는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잘 먹히는 바보 이미지로 인한 대중장악, 나쁜남자 신드롬, 아이돌 지상주의,
세계정부의 모략으로 인한 지도자나 정치 약점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토크쇼와 예능 강국으로의 매스컴 장악과 대중의 환기,
이들의 특징은 공부나 분석을 혐오하거나 샤프함을 평가절하하는 대신 궤변이나 현학에 몰입한다는 점입니다.

즉 인간기계화와 인간가축화는 현재진행형입니다.

피똥인지 고추장인지도 모르고 악다구니쓰는 피해의식 분출구로서만의
오르가즘식 막무가내식 기독교 비난이
실상은 세계정부의 총알받이이자 유년 유아기적 떼쓰기 발상이며
촌철살인같은 기독교 비판과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대목에서 다시 각인됩니다.
하여간 어딜 가나 이념분열 조장하는 놈들이나 종교분열 조장하는 놈들이 말썽입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려면 기독교 안에서보다는 기독교 밖에서 비판해야
부처님 손바닥 보듯이 할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기독교 밖에 있듯이 비판할수 있다면
더욱 정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 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정부와 줄다리기를 벌이는 사람들은 가능합니다.
접기
1답글 0
종이책hy****|2009.11.05|신고/차단

1. 도입

대학교 1학년때 우연히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감도 독특한 말이었지
만 왠지 모를 궁금증에 국회도서관에서 주제어 검색을 하여 8권 정도의 책을 찾았었다. 학교에는
몇 권되지 않았는데 그 책들을 다 빌려서 쌓아놓고 읽다가... 당시 내 지식 수준으론 넘 어려운
이야기들에 도로 다 반납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정의이다. 모더니즘이 과거로부터의 "변화"를 꿈꾸는 것이었다
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변화의 기준이 되는 틀 조차 바뀌어져 버린 것이라고.

오늘날 사회의 모습이 그렇다. 더 이상의 절대적인 기준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른 기준들이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어진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교회나 그리스도인 들은 사실
상 철저히 말씀에 근거하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영악하게 그 흐름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어
보인다. 세상이 그저 이전과 다르게만 흘러가는 것이라면 성경의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이
야기 할 텐데, 이제는 그 기준의 틀에 대해서 시비를 걸게 되니...


2. 책에 대한 찬사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작가의 지적이다. 사실 목사님 아들로 30년 넘게 교회에서 이른바 "신앙생
활"을 해온 작가는 교회가 돌아가는 흐름들을 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 근거한 작가의 지적은 정말로 탁월하다.

교회 내에 도입된 여러 심리학적 기법들, 마케팅 기법들. 사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데 유익한 것
이라면 나 개인적으로는 가치 중립적인 방법들에 대해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늘 교회 공동체에는 영적인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공동체의 리더가 아무 생각없이 좋은
뜻으로 한 말 한 마디라도 그 의미와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
생각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 말씀과 복음에 기초하지 않은 교회,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죄와
함께 할 수 없으시기에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의 죄의 댓가를 감당하게 하신 사랑,그 예수님을 통
해 창조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그 진정한 교제의 장에 나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회개와 돌이킴을 빼 놓는다면 사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그 의미가 희석될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하나님의 관점은 분명히 사람을 향한 사랑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땅 위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인본주의적 사고가 아니라 다 함께 하나님께 돌아가기위한 탕
자의 옷을 찢는 돌이킴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심리학적인 기법으로 희석시키는
것은 오늘날 하나님보다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세대 교회의 큰 문제이다.

작가의 이러한 관점은 정말 탁월한 지적이다.


3. 유감스러운 그늘들

1) "심리학"이 교회에 필요하게 된 이유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특히 시스템에 도입된 모든 제도는 그 것이 요구된 "상황"이 있다. 현
대 교회에 "심리학" 기법이 들어와 있는 것은 그저 이유없는 사단의 장난질로 말미암은 것이 아
니다. 그 이유를 찾아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작가의 이야기는 그저 현상에 대한 비판
만 될 것이다.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필요"에 대한 온전한 정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필립얀시와 달라스 윌라드와 같은 작가들의 글을 좋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달라스 윌라드이다. "하나님의 모략", "마음의 혁신"등의 책을
쓴 분 인데 이 분은 신학자이시면서 인문학자이다. 그렇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일반 신학자
에 비해 탁월하다. 이 분의 책들은 미국의 보수적인 신학교에서도 사전교재로 인정되는 상황이
고. 이 작가가 이 분의 글을 배척한 것은 아마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본주의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고 본 것 같다(작가가 책을 반대하는 정확한 설명이 없어서 이 것은 그저 나의 추측이
다).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사람"은 의외로 참 복잡한 존재라는 것이다. 작가가 문제 삼은 심리학
이란 것도 결국은 이런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학문이다. 또한 과거의 권위주의 사회를 거
치면서 우리들은 "사람"의 존재(sein)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제도와 조직에 의해 무언가를 하여
야 한다(sollen)에 관심을 두어서 이것들을 강요해 왔다.

"종교"라는 형태로 "기독교"라는 타이틀을 가진 우리 교회도 특히 이런 모습에 익숙하다. 무언가
를 하여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이후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바
울의 고백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를 외치며 마음을 따르지 않는 육신을 한탄하며.여
기에서 우리는 "성화"를 말한다.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하지만 교회는 그
에 대한 방법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저 기도하고 말씀보라는 이야기 뿐. 사실 이게 정답이다.
기도 안에, 말씀 속에 우리 영혼이 주님을 깊이 만나면 모든 것이 회복된다. 그.러.나.. 그게 그렇
게 쉽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판을 가지고 사람과 하나님을 바라본다. 거창하게 "세계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미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판이 참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상처치유건 상담이건, 무언가 공동체에서 이렇게 뒤틀려진 우리의 마음판을 바로 잡아주는 시도
가 없다면 사람들은 심리학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이라도 취하려 할 것이다.
예수님 목마릅니다.. 를 외치며.


2) 과연 심리학은 과학이 아닌가?

작가는 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가 반복될 수 있는 것". 그렇
기에 다양한 사람의 특성으로 인하여 동일한 결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을 연구하는 심리학은 과
학이 아니라고... 우리의 신앙에서 과학적인 것은 수용이 가능하나 과학적인 것은 수용이 불가능
하므로 심리학은 신앙에서 수용될 수 없다고..

사실 위의 생각은 논리적인 결론이 아니라 심리학을 배척하기 위한 임의적인 논리 전개라고 생각
된다. 잘못된 심리학 기법들을 교회의 가르침에서 배척하여야 할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두 손
들어 찬성한다. 작가의 지적은 정확하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의 정의를 인문
과학에 가져와서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참 황당하고 억지스럽
다고 생각된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모든 심리학도들에 대한 결례가 아닐지..

작가의 말대로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면 심리학은 "학문"도 아닌가? 심리학에서
나온 모든 이론들은 정말로 "쓰레기"인가?.. 나는 심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심리학 책들을 통해
사람의 본성에 대한 많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물론 작가가 지적한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에 문제
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의 모든 것이 정신분석기법은 아니지 않나?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작가의 단언은 사실 너무 무모하
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3) 너무도 거친 말투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계속 비추어 지는 작가의 분노어린 말들이었다. "표현
에서부터 매우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P70)" 등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
부터 지나친 비약에 의한 비꼼들.. 작가의 현상에 대한 분노는 이해하지만 그러한 거칠고 정돈되
지 않은 표현들이 사람을 감정적으로(내용에 찬성하던 부정하던) 불편함을 느끼게 하여 책이 가
진 좋은 내용을 퇴색시키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촌철살인..까지는 아니어도 조금만 감정이 배
제되었다면 독자가 훨씬 편했을 텐데.. 독자를 배려못한 작가의 생각이 아쉽다.


3. 앞으로의 과제

1)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찌니..

철저한 복음으로의 복귀.. 사람의 힘으로 무언가를 얻으려고 했던 노력은 기독교 역사상 끊임없
이 계속되어온 이단의 노력이었다. 이단이라는 특별한 세력이 계속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이 원래 빚지고는 못 사니.. 무언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 이루었다는 이야기 하고 싶은게 본
마음이니.. 그렇기에 2% 부족한 복음을 이야기하게 되고.. 여기가 인본주의가 비집고 들어갈 가
장 절묘한 공간이 된다. 하지만 주님은 철저히 이것을 배척하신다. 근본이 죄인인 우리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새로 시행되는 교통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공부할 게 생기고.. 버스 한번 지하철 한번 타기도 쉽지 않은 것이 이 세상이
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식을 쌓기를 갈망하고 이 지식으로 우리를 구원시키려 한다. 죄가 아닌 죄
책감으로부터, 영적인 목마름을 육신의 목마름으로 착각하며 그 처방을 내린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말고는 도
저히 정답이 없다. 심리학이든 과학이던 어떤 최첨담 학문을 가지고도 절대로 이를 수 없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어긋나는 길을 교회에서 이야기한다면 상처치유건 무엇이건 그건 잘못된 가
르침 일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 질 수록 순수한 복음이 정답이 되었던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 우리
는 분명 이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황당
무게한 가르침을 이야기한다는 손가락 질을 받더라도 우리가 아는 복음을 정확히말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그 주님이 오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삶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
해야 한다..

2) 너희가 사람을 알아?..

인본주의에 대적하여 살아야 할 우리에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주님의 관심은 오직 사람이었
다. 물론, 당연히 사람을 모든 것의 궁극적인 해답으로 바라보는 인본주의와 달리 주님은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말씀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작가는 심리학을 과학도 아닌 가치없는 것으로 단정하였지만 내가 심리학에 조금의 의미를 두는
것은 그것이 사람을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을 쌓아 왔다는 이유이다.

사람은 참으로 신비하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실체 없어 보이는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단지 "뇌"라는 기관(organ)속에서 벌어지는 화학물질의 전달 작용이상의 것들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사람의 마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나는 사람의 존재를 신과 같이 경배(?)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본따 지어진 사람 자체의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우리는 사람에게 당위만을 강요하며 가르
쳐왔지 교회 내에서 각 개인의 마음을 만져주는 일은 드물었다. 심지어 현대 교회는 교회조직을
하나의 회사집단과 같이 여겨 효율성과 성과를 따지니..

우리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사람의 죄성을 연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공부말이다.
성경은 사람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저 타락하고 구원되어야 할 객체가 아니라 하
나님의 형상(image)를 본딴 존재로서.

작가가 비판한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것이 교회 내에 이러한 사람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결과 등
장한 기형아가 아닐까?.. 심리, 즉 마음 이상의 영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에 대한 연구와 정리가 나
온다면 가장 정확한 인간에 대한 보고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곤고해하
는 내 마음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4. 마지막 단상들..

이 책을 읽는동안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같이 보게 되었다. 하나 느낀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자신의 배경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나 무신론자 도킨스나..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플라톤이 말했던 극장
의 우상처럼..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글자화 된 내용을 맹신하게 되지 않는가? 저자의 글을
발전적으로 비판하며 읽는 능력이 참으로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접기
1답글 0
종이책mo*****|2013.11.07|신고/차단



지금 우리나라 교회에 적지않은 영향력과 관심을 받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상담일 것이다. 단순히 목회상담이나 상담실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교회사역에 스며들어 있다. 여러 형태의 성격분석, 심리문제 등을 다루는 기법들이 등장하고 있고 상담과정이라는 이름하에 사설 과정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는 설교에 있어서도 상담적 접근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목회가 사람을 상대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사람에 대한 이해는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이 상담적 접근엔 기본적으로 심리학적 이해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성격 및 심리분석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반과 모든 기법들이 과연 성경적인가하는 점은 거의 검토되지 않고 있다. 내자신 목회함에 있어 상담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종종 그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의문이 되는 부분들을 보곤 한다. 예컨대 죄라고 인정해야 할 부분에 있어서 그저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식의 해석은 분명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죄를 말함은 종종 율법주의자와 사랑이 없는 편협함이라고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죄에 대한 지적은 정죄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치유를 위한 인간의 상태에대한 정확한 인식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죄에 대한 일부 상담학의 시선은 문제가 있다. 목회자가 성도의 필요라는 이름하에 무분별하게 상담과 그 근간이 되는 심리학을 수용하는 것은 분명 바른 방법이라고 말할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를 꺼내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상당한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이것이 틀렸고 상당한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않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옥성호씨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속칭 ‘삼부기’시리즈의 첫 번째 저서인 이 책은 심리학의 기반이 비성경적이며 성경과 합일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심리학 자체가 과학이라 말할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중심을 이루는 프로이드나 칼 융의 주관적 논리, 그리고 교계에 강하게 자리한 자존감, 긍정적 사고의 문제와 그 중심을 이루는 인물들의 문제와 뉴에이지 등을 비판한다.
저자가 심리학에 대한 비전공자라는 문제와 심리학에 대한 일부 편협되게 느껴지는 비판은 문제가 있는 듯 하지만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또 대중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수용하는 잘못된 교계의 흐름에 대해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읽어볼만한 책이다.
펼치기
0답글 1
종이책ji*******|2011.02.19|신고/차단

거짓과 왜곡에서 시작된 책!
이 책은 솔직히 별1개도 주기 힘든 책이다.
솔직히 안 나오는게 더 현명했을 법한 책이다.

옥성호씨가 쓴 이 책은 수필이나 소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논문에 가까운 딱딱한 내용의 책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각주까지 써가면서
자신이 하고있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 가는 논리적인 글이다.

이런 글의 가장 중요한 점은 사실임을 증명해 가는 것이기에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글들을 인용하고
그 글에 대한 각주를 표시한다.

이러한 글은 각주를 표시하기에 절대로 거짓을 표기하면 안된다.
그것은 글쓴이의 76페이지에 있는 31번의 각주는 솔직히 말하면
거짓이다.
게리 콜린스라는 인물을 깎아내리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힌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원래 과학적이라는 상담 요법이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고 밑에 부분을 잘라버린 것이다.
글쓴이의 양심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것이 일반 심리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공격하지만,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학문이 완벽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것을 바라는 것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기가 발로 걷고, 뛰고 마음대로 먹고
어른과 똑같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긴 시간 속에서 성숙해가고
다듬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덜 다듬어진 부분이 있기에 많은 학자들이 다듬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겠는가?

그리고 책의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관점이 일정해야 한다.
즉 한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 한 가지 주제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 심리학자나 상담학자도 아닌 로버트 슐러나, 조엘 오스틴을 이 책에 끌어들여와
비판을 하는가?
그 부분은 따로 때야 하는 것 아니지 않는가?
그들은 상담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풀면 맞는 주제에 속할 것인가?
그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준다고 그것이 기독교 심리학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인가?
거의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들의 신학 노선이 그런 것이다.
기독교 심리학과는 엄밀히 말하면 별개인 것이다.

암튼 이 책을 읽은 후에 부흥과 개혁사와 옥성호 씨라는 분한테 큰 실망을 했다.
자기의 주장을 주장하기 위해 거짓을 사실인양 쓴 것을 보고
양심적이지 않는 저자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 이 분의 책은 사서 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앞으로도 이 분은 자신의 주장을 위해 어떤 자료를 왜곡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이 책을 사서 볼 사람이라면
차라리 게리 콜린스의 크리스천 심리학이라는 책을 사서보길 바란다
그 책이 훨씬 양심적이다.
접기
0답글 0
종이책ma********|2011.01.01|신고/차단

음..............

충격이담..ㅜㅜ
0답글 0
종이책ha*****|2008.08.15|신고/차단

솔직히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모르겠다.

아버지의 후광때문?

내 입맛에 안맞으니 포스트모던이란다. 문제가 있단다.

그러는 저자는 문제가 없는지...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접기
0답글 0
종이책hu*******|2008.01.15|신고/차단

언젠가 토요일 강남역에서 약속이 있었다. 약속시간 보다 좀 일찍 나가서 교보문고에 들렀다. 서점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눈에 띄는 책 집어들고선 읽어보는 취미를 오랫만에 즐겨보기 위함이었다.

뜻하지 않게 귀한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이 취미의 가장 큰 핵심이다.

그때 그 토요일에도 그러한 즐거움이 있었다.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 옥성호 저

'부족한 기독교'라는 큰 글자에 눈이 먼저 갔다.
차례를 대충 읽고 중간에 아무데나 펴서 읽고 있는데, 대뜸, 이 저자가 내가 예전에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었다.

그 외의 책을 몇 권 더 사서 조용한 곳에 가서 만날 사람 기다리면서 이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신 것들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 날 셈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나의 책임이자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글을 쓰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저자에게 있어서 이 책을 쓰는 것은 그의 소명의 한 부분이었던 셈이다. 소명...
직장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가외의 소명을 붙잡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겠건만, 그는 성실하고
꿋꿋하게 붙잡고 나아간 듯 하다.

저자는 다섯 단계로 자신의 논의를 나누어서 진행한다.

첫 단계에서 그는 심리학이 과연 '과학'인가 하는 점을 조명하면서 심리학이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부분들로 인해 '과학'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체계라는 점을 들면서 '종교'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일반 자연과학조차 패러다임이라 흔히 불리는 신념의 체계에 지배를 받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심리학과 같이 '종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저자는 그 점을 드러내고 있다.

두번째 단계에서 저자는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성경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을 나름대로 논증하고 있다.

세번째 단계에서 심리학이 결국 인간이 선하다는 전제로 출발하며, 인간 중심적일 수 밖에 없음을 드러내어, 심리학의 반 기독교적 측면을 드러낸다.

네번째 단계에서 저자는 현대의 대중 심리학이 보이는 세가지 가면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그 첫째는 자기 사랑이고, 둘째는 긍정적 사고방식, 세째는 성공의 법칙이다. 얼핏 보면 성경하고도 잘 맞는 것 같고, 마치 비슷한 성경구절을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무나 반성경적인 이러한 논리들이 기독교에 침투해 들어와서 수많은 주일 설교 교단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현실이 새삼 소름끼치기 조차 한다.

다섯번째 단계에서 저자는 성경으로 이미 우리는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반성경적인 세상의 가르침을 굳이 들여오는 것은 성경을 부끄러워 하는 모습에 다름이 아니라고 외친다.

저자는 기독교 문화를 오랫동안 접해왔지만, 진심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지는 아직 1년반 정도 밖에 안된 듯 하다. 그가 기독교의 밖에 있을 때 접하고 익혀왔던 세상적인 지식들의 모습, 그 자기 중심의 논리, 인간 중심의 논리가 기독교 안에 들어왔을 때 교회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발견되는 모습을 보고서 저자는 충격을 받고, 이러한 책을 집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느낌에 저자는 글을 많이 써본 경험이 없는 듯 하다. 독서량은 엄청나지만 말이다. 책을 읽다가 보면, 여기저기 논리적 비약이 보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조금 지나치게 고양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다가 말고 쉽게 던져버릴 수도 있겠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평점 5는 좀 무리인 듯 하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들이 책 전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잘못 전하게 하지는 않는 듯 하다. 도리어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고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써낼 수 있는 뚝심과 그 열정이 도리어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복음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철저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바울과도 같이 잘못된 가르침에도 역시 민감해질 수 밖에 없게 되겠지.

이 책의 저자는 나의 안일한 신앙생활에 일침을 가해서 내 맘 깊은 곳의 뭔가를 깨어나게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내 신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듯 하다. 정말 순수한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내 앞으로의 신앙 생활의 방향까지도 새롭게 생각하게 했다.

이 책은 오늘날의 복음주의 기독교가 처한 가장 큰 위협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또한 깨닫게 한다. 놀랍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것은 바울이 그의 시대에 큰 위협으로 느꼈던 것과 성격상 동일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
이 책의 중간에 '긍정의 힘 (Your Best Life Now)'의 저자 조엘 오스틴 목사와 래리 킹의 인터뷰 전문이 한글 번역으로, 책의 뒷편엔 영어 원문으로 올라와 있다. 2005년 여름과 2006년 겨울에 이루어진 두 번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기가 막히다. 말하는 내용이 목사님이 아니라 무슨 초신자 같다
***

개인적으로 스캇 펙의 책을 참 좋아한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책의 페이지 페이지마다 넘치는 깊은 통찰에 감탄을 하고, 심리학자이자 정신치료자인 그 분이 결국 기독교인으로서 회심할 수 밖에 없게된 과정을 보는 것 또한 기쁨이다.

심리학이 가지는 한계는 있을지라도, 현대 사회에서 처한 인간의 영적 상황을 통찰하는 귀중한 도구로서의 유용성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때 선언한 세가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Sola Fide,Sola Scriptura,Sola Gratia

이 책은 그 중 하나에 관한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