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인격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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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람은 평생동안 받은 모든 상처, 서러움, 외로움을 의식의 수면 아래에 꾹꾹 눌러놓고 이성이라는 뚜껑을 덮어 버리고서 사는 듯. 그러다 몸에 병이 들거나 나이들어 이성의 제어력이 약해지면 그 뚜껑이 열리면서, 그때 그때 적절히 해결하지 못해 속안에서 평생 곪아 온 온갖 상처들이 모두 튀어나오는 듯. 내가 몸이 아프거나 나이들었을 때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 (가족이든 간병인이든)들이 실은 내 평생에 가장 고마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온갖 트집을 잡아 가며 '화풀이' (몸이 아파 나오는 단순 짜증 이상의, 평생 쌓인 恨에 대한 거의 눈먼 복수에 가까운 분풀이)를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가끔은 있는 듯. 멀쩡한 정신일 때는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치매' 환자조차 대개는 24시간 중 단 몇 시간, 몇 분씩이라도 '제정신'이 돌아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신의 힘이 약해졌을 때 그렇게 되는 것에는 그래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부분이 0%라고는 하기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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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자식의 돈으로 고용한 간병인이나 양로원의 돌보미분들에 대해서는 이 화풀이가 더 심해지는데, 돈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는 관계 내의 갑-을 위치가 확실하기 때문. 하지만, 노인의 가족이 돈만 지불하고 노인에게 무심하여 방문을 거의 안 한다거나 할 경우엔 어느 날 관계가 뒤집혀, 노인의 갑질을 참다 못한 보호사가 오히려 노인을 구박하는 갑질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때부터는 누가 돈이 더 많은지와 전혀 무관하게 노인이 오히려 보호사의 눈치를 보며 살다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연출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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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인간은 정말이지 아주 뼛속까지 정치적인 존재.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돈이든 물리적 힘이든 애정이든, 그 '권력'을 상대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내게 가해질지도 모르는 물리적/정신적 불이익/불편이 바로 두려움의 원천이며, 그 '권력'이라는 것이 늘 가시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함정. 예를 들어, 가시적인 파워를 더 많이 갖고 있는 A가 그렇지 않은 B를 돕는 상황에서, A의 선의와 관용과 인내심과 B에 대한 A의 애정이 확실시되면 그 순간부터는 오히려 B가 A를 채무자취급 혹은 서커스단의 곰취급하는 일도 존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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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나 애완동물을 훈육할 때 'test the limits'라는 표현을 쓰는데, 부모가 금지하는 일을 야금야금 하면서 부모의 인내심의 한계까지 자신의 욕망/욕심을 최대로 밀어붙이는 행동을 지칭. 그런데 어른들 사이에서도 기본적으로 똑같으며, 비난 등의 불이익이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밀어붙이기만 할 뿐 상대방을 존중/배려하여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멈추는 사람은 드문 듯.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와 전혀 무관하게, '내게 이렇게 해 주는 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수고가 될까?'에는 생각이 전혀 미치지 않으면서 '상대가 이렇게 저렇게 해 주면 내 몸/마음이 이만큼 더 편해질 텐데!’라는 오로지 이 하나만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태어난 것이 인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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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인 권력관계의 균형여부가 어떻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disrespectful / inconsiderate / unfair한 언행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라는 오로지 그 한 가지 이유인 것. '인격자'라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 어려운 일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고. 다시 말해, '나쁜 의도'가 있어서 남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자기합리화를 제어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남에게 갑질/착취를 하게 되는 것. (그래서 대부분의 사기꾼들은 오히려 자신이 ‘오해받아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괴롭히려는 '나쁜 의도' 전혀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갑질/착취를 하면서도 '나는 너를 좋아했는데/믿었는데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2차, 3차, n차 무한 가해를 하는 것이 바로 인간.. mindful 하지 않은 인간은 모두 by nature 음주운전자인 것.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고통을 주고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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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oo Hong and 11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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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쓸쓸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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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데 존중이라는 것은 나이, 성별, 지위 등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니 ‘어르신’이라는 단어좀 안 쓰면 안 될지. 나이가 특별히 많다고 해서 특별한 존중, 공경, ‘모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결국 ‘나이가 적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존중받아도 된다’는 것처럼 작용하건만..
    "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EDAILY.CO.KR
    "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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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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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희수님이 지적한 악한 측면을 오랜 병환을 겪으며 표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지각한 이후에 다행히 건강을 다소 회복하고 강의를 맡게 되면서 악을 일정 부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렇기에 저는 평범한 인간이 덕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비록 유한한 대상이며 궁극적으로는 집착의 대상이지만 그래도 일정한 부, 지위, 건강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적당한 부와 지위, 그리고 건강이 인간에게 평화를 주고 그를 보다 관용적인 존재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 입장이죠. 이런 맥락에서 저는 극소수와 대다수 간의 심각한 불평등을 낳지만 동시에 대다수의 경제적 수준을 크게 향상시키는 전지구적인 자유 무역 체제에 긍정적입니다. 행복에는 외부적 운도 영향을 준다고 시인하는 이런 사고 방식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발견됩니다. 하지만 불교는 이 문제를 전혀 다르게 분석할 것 같아요. 불교는 권력 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갑질과 같은 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해법을 추구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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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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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신우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하시네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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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질에 대한 불교식 해석을 본 적은 없지만,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든 고통이 탐진치에서 나오고 탐과 진조차 실은 치가 그 뿌리이며 그렇기에 당연히 고통의 해결도 지혜, 즉 어리석음의 제거에 있다고 말하니, 제 수준에선 이런 원론적인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 어리석음을 스스로 제거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딜레마이기는 한데, 그래서 부처님이 팔정도를 수행법으로 제시하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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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언급하자면.. 부처님이 당신의 아들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듯이, 모든 행동 (생각과 말 포함)의 사전에, 와중에, 그리고 또 사후에, 어떤 탐진치가 작용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면밀히 관찰, 분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는 어마어마한 냉철함과 정직함이 필요한데다가, 어리석은 나의 분석이 정확할 리 없으므로 부처님 말씀을 계속 공부하면서 나보다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이와 꾸준히 상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초기불교는 가르칩니다. 또 오계를 지키는 과정에서 분별력이 향상되기에 오계가 아주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며,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 보일 만큼 맑고 깨끗하면서도 고요한 연못 물처럼 자신의 마음을 늘 유지하기 위해 명상도 해야 하구요.                       대부분은 무작정 명상 (팔정도의 8번째 요소)부터 하시려고들 하는데, 팔정도의 8요소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중점을 두어 가며 차례대로 계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명상의 부작용들은 전부 앞의 7요소들이 제대로 계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의 집중력만 높이려고 하는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초기불교는 말합니다. 소위 말하는 초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앞의 7요소들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Wrong Concentration이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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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원론적으로는 이런데.. 저도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팔정도의 첫째 요소인 Right View 단계에 불과한지라, 실천은 못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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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덧붙이자면, 말씀하신 대로 삶의 객관적 조건들도 웬만큼 되어야 수행도 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건강, 인간관계, 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한다든가 뭐 이럴 시간적 정신적 여유 자체가 없겠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더더욱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윤회계의 많은 세상들 중에서 인간계보다 낮은 곳에서는 *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을 당해야 하고, 또 인간계보다 높은 곳에서는 고통보다 즐거움이 훨씬 많아 나태해지며, 그래서 그 즐거움이 다 하면 다시 낮은 차원으로 떨어지기에, 그래서 인간계에 있을 때 수행을 시작하여 의식 수준을 최대한 높여 놓아야 한다고 초기불교는 얘기합니다. (수행이 웬만한 수준에 이르면 내세에 천상계에 태어나도 나태해지지 않고 계속 수행한다고 하네요. ^^) 인간계에는 즐거움과 고통이 적당히 섞여 있어서 수행의 의지를 내기가 쉽고, 인간계에서 아무리 괴로운들 인간계보다 낮은 차원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운명의 개척'이라는 것은 소망사고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mindfulness가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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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h
    • 希修
       소상한 답변 감사합니다. 🙂 😉 팔정도의 불교적 맥락을 한자로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순우리말로 아주 쉽게 풀어 설명한 한국어 교재가 있을까요? 정견=바른 견해...와 같은 설명은 그럴듯 하지만, 초심자는 '바르다'가 무엇인지에 대한 부처님의 생각을 모르기에 오독할 소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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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h
    • 위의 두 권 모두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의 암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빠알리(팔리) 경전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데, 제가 초기 불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입문용으로 적합한 책인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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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h
  • 완전 동감..탐진치를 버리는.. 명상을 하여 자기를 율하지 않으면 바로 교만해지는 존재...쓸쓸하지만 본성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100%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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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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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오늘도 남의 집 간다, '문턱 노동자' 보고서]①

폭언·성추행 위협 시달리는 가구방문 '문턱 노동자'
고객 클레임으로 불이익·업무해지 걱정에 항의 어렵고
부당지시, 인격권 침해에도 안전장치 미비

등록 2021-05-01 




공지유 기자

전기제품 설치·수리기사에서부터 가스안전점검원, 렌탈제품 방문점검원, 요양보호사까지. 고객의 집에 방문에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약 141만명에 달합니다. 이들 노동자는 고객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곳이 ‘공포의 문턱’으로 변한다고 호소합니다. 폭언과 폭행과 성범죄에 노출된 것은 물론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법·제도적 보호장치는 사실상 없는 형편입니다. 131주년 노동절을 맞아 소외된 ‘문턱 노동자’를 조명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①“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②살인에 극단 선택까지…‘문턱 노동자’ 참극, 그래도 바뀌지 않았다

③“코로나19에 무방비, 고객들은 세균취급”…구멍 뚫린 보호법

④선진국도 예외 아닌 ‘문턱 노동자’ 폭력…美·日, 보호대책 마련 분주

⑤“반복되는 ‘문턱 노동자’ 관련 사건, 고용주 책임 강화해야”<끝>


[이데일리 공지유 박기주 박순엽 기자] “우리는 하루살이예요. 오늘 출근해도 하루아침에 ‘이제 나오지 마라’고 할까 봐 항상 두려움에 떨죠.”


“효도하는 마음으로 모시는데 ‘내가 돈 주는데 왜 말을 안 듣냐’고 파출부 취급을 해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일한다는 게 사무치게 슬퍼요.”

매일 다른 사람들의 집 문턱을 넘어 출근하지만, ‘문턱 노동자’(가구방문노동자)들에게 고객의 집 앞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항상 두렵다. 어떤 고객들은 ‘왜 일을 제대로 안 하냐’며 이들을 다그치고,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희롱적 언사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도 미비해 자기 자신 말고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데일리가 현장에서 만난 ‘문턱 노동자’들은 오늘도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사소한 바람을 입에 담는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사진= 연합뉴스)


성추행 겪어도 같은 곳으로 출근…“센터에선 ‘어쩔 수 없다’고만”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재가요양보호사 60대 윤영희씨는 지난 2007년 요양보호사가 된 후 14년째 한결같이 어르신들을 케어하고 있다. 윤씨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수없는 폭언과 성추행 위험에 놓였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4년 전 서울에서 일할 때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고령의 환자를 케어하러 집을 방문했을 때, 환자의 아내는 여행을 간다며 그녀에게 환자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그 순간 환자가 “그럼 우리 둘만 남은 거냐”고 돌변하며 순식간에 윤씨에게 다가왔다.

윤씨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인데 어디서 힘이 났는지 모르겠다”며 “잡히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무작정 베란다로 도망쳤는데, ‘5층 아파트인데 여기서 뛰어내려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윤씨가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겠다고 경고해 위험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날 일은 윤씨에게 여전히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년 전 또 다른 환자도 윤씨가 케어를 위해 방문하자 “주말에 못 봤으니 끌어안고 뽀뽀를 해 달라”며 신체적 접촉을 종용했다.

이런 일은 비단 윤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난달 요양서비스노조가 전국 요양보호사 5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무 중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43.3%에 달했다. 윤씨는 “요양보호사들에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털어놨을 때 보호자가 ‘이제부터 오지 마라’고 할까 봐 두려워서 말을 안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환자로부터의 폭언과 업무 외 지시도 일상이다. 윤씨는 “다른 보호사들이 꺼려서 어쩔 수 없이 한 환자를 케어하게 됐는데 들어가자마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전지가위로 정원을 다듬으라는 등 업무 외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다른 요양보호사 A씨도 “출근을 하면 음식과 청소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마치 요양보호사를 가정부처럼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노동자들은 고객에게 ‘갑질’을 당했을 때 대처방법이 없다. 김종진 노무사는 “요양보호사의 노동실태를 보면 수급자로부터의 성희롱과 폭행 등 범죄에 노출돼 있는데, 이에 대한 제도적 보호가 없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정수기 렌탈업체 방문점검원 업무를 하고 있는 손소희(28)씨가 26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슬기로운 재테크 생활! 네이버 채널 구독“폭언에도 클레임 걸까 미소만”…악성고객에도 회사는 ‘뒷짐’

1년 반 전부터 경기도 오산에서 정수기 렌탈업체 방문점검원 일을 시작한 손소희(28)씨는 근무를 시작한 후로 밥을 한 끼 이상 먹은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많은 양의 계정을 할당받은 손씨는 점심도 먹지 않고 밤낮으로 고객의 가정에 방문해 점검을 하느라 20개월 된 딸을 어린이집에 밤 9시 30분까지 맡겨야 했다.

건강에 적신호까지 올 정도였지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계속해온 손씨는 고객들의 몰상식한 언행을 겪을 때마다 허탈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손씨는 “작년 봄 고객이 나이를 물어 28살이라고 하니 ‘이 일 하면서 얼마 버냐’, ‘대학교는 나왔냐’고 비하하듯 말했다”며 “하대하는 발언을 계속하니 모욕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씨와 같은 점검원들은 쉽게 고객에게 항의할 수 없다. 서비스 이용 후 고객에게 만족도를 묻는 ‘해피콜’로 인해 지국장과 팀장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 손씨는 “고객 중 ‘물맛이 이상하다’, ‘기계를 왜 이따위로 만들었냐’는 등 심한 말을 하는 분이 있다”며 “다음 점검 때 그 집에 또 가야 하는데 대꾸라도 해서 해피콜에서 안 좋은 말을 할까 봐 눈치 보여 아무 말도 못 한다”고 했다.

점검 시 다가와 불필요한 접촉을 하는 고객, 속옷만 입은 채로 서 있는 고객은 ‘양반’이라고 한다. 항상 성추행 위협에 놓인 방문점검원 중에는 나체 상태인 고객과 마주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동료들도 적지 않다.


폭언과 부당한 지시를 당해도 회사의 적절한 대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회사와 방문점검원이 업무대행계약 관계이다보니 업무는 고객과 직접 연락해 일정을 정하고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이다. 회사가 악성 고객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손씨는 “개인사업자라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니 회사에서는 ‘보호해줄 의무가 없다’고 여긴다”며 “고객에게 욕설을 들었을 때 다른 직원들은 보호를 받는데 우린 그런 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이 아무리 ‘갑질’을 해도 우리는 블랙리스트 작성을 하지 않고 무조건 고객으로 모셔야 한다”며 “회사가 우리를 노동자, 근로자로 생각했다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