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7

모든 종교는 모성성으로 통한다 -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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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는 모성성으로 통한다
이가람 / 여성신문 기자
승인 2014.01.16 

[인터뷰] 씨튼연구원 원장 최현민 수녀

"종교 간 대화, 평화는 여성이 더 잘 할 수 있다"


씨튼연구원 정원에 선 최현민 수녀.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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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불교, 아버지는 유교,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셨어요. 다종교 국가인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족 형태죠. 그중 할머님은 수도자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실 만큼 깊은 차원의 영성을 추구하셨어요. 제가 가톨릭 수녀로서 불교를 전공하고 종교 간 평화를 연구하는 이유는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에요.”

최현민(54·사진) 수녀는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연구하는 씨튼연구원 원장이다. 27세 때 수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후 대학 전공을 살려 고등학교 과학교사로 활동했다. 평소 이웃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강대 종교대학원에서 불교를 세부전공으로 석·박사를 따냈다. 그곳에서 씨튼연구원 원장을 지내던 김승혜 수녀를 만나 오늘날 연구원을 이끌고 있다.

“불교를 전공한 이유는 
  • 할머니의 영향도 있었고, 
  •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불교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 수행명상 체계에 대해 배워보고 싶기도 했고요. 
  • 공부하면서 이웃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종교 평화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더 단단해졌고요.”

최현민 수녀는 하느님께 종신서원까지 한 종신수녀다. 수녀마다 차이가 있지만 종신수녀가 되기 위해선 길게는 10년이 넘게 걸린다. 지원기 1년, 청원기 1년, 2년의 수련기를 거치면 하느님께 첫 서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때부터는 일반 수녀 자격이 부여된다. 몇 년 동안 서원을 갱신하면 종신서원을 할 수 있다. 그때까지 수도자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청빈, 순명, 정결의 삶을 이어온 수녀는 비로소 종신수녀가 되는 것이다.

최현민 수녀가 속한 ‘사랑의 씨튼수녀회’는 미국의 성녀 엘리자베스 앤 시튼이 빈민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수녀회다. 최현민 수녀는 그곳에서 종교의 평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씨튼연구원을 5년째 이끌고 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등 한국 5대 종교를 연구하는 교수 중심으로 1년에 네 차례 종교인의 대화 자리를 마련한다. 또한 학자, 종교 지도자, 신도가 들을 수 있는 종교 강좌를 매달 한 차례씩 열고 있다.


최현민 수녀가 14일 서울 성북구 씨튼연구원에서 진행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신문“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만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한자로 사람인(人)이 두 개의 선이 하나로 모여 서로를 받쳐주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이유죠. 종교는 인간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줍니다. 신념이죠. 때문에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갈등이 일어나요. 그게 전쟁까지 가는 경우도 있죠.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선 이웃 종교에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우엔 겉으론 평화로워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아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잠재적인 휴화산이죠.”



최현민 수녀는 인터뷰 내내 ‘진정한 의미의 평화’‘함께’라는 단어에 여러 차례 방점을 찍었다. 그는 “‘종교가 평화롭다’고 규정하기 전에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며 “서로를 겉으로만 이해하는 차원은 종교 간 갈등이 극에 치달았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이 생기고 나서는 종교를 비교하는 일을 해왔어요. 지난 10년간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생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민했죠. 이젠 사람들의 관계 단절의 문제를 종교 영성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두 자기 것에만 매몰돼 있잖아요. 그래서 올 한 해에는 연구소에서 ‘타자 되기의 관계 영성’에 대해 연구하고 강좌를 열 계획입니다. 쉬운 말로 깊은 차원의 역지사지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자는 겁니다.(웃음)”

올해 여성신문의 구호가 ‘여성이 평화입니다’라고 일러주자 최현민 수녀는 활짝 웃었다.

“그리스도적 표현을 빌리자면 평화는 사랑을 통해 이뤄집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에너지가 있는데 그걸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건 종교예요. 그중에서도 종교가 지닌 ‘모성성’이죠. 유교의 인(仁), 불교의 자비(慈悲)도 같습니다. 더불어 함께한다는 ‘평화’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이 잘 해낼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에서 가톨릭에서 여성 사제가 허용돼야 해요. 여성 사제들의 몫이 신부님들의 몫과 함께 어우러지면 훨씬 따뜻한 교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가람 / 여성신문 기자